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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할 때도 보지 않았다. 그저 우리 영화라는 내 개인적인 못된 선입견 때문에 볼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볼 수밖에 없는 기회가 생겼다.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이 영화의 일부가 나오는 탓이었다. 그래서 이 디브디를 구입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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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준 감독을 다시 만났다. 그것도 그가 들고온 아주 괜찮은 영화 한 편을 통해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유쾌한 웃음에 찡한 감동으로 잘 버무려낸 첫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로 기대되는 차세대 신인 감독으로 떠올랐던 이해영ㆍ이해준 감독, 이름도 비슷한 이 두 젊은 감독들이 각자의 영화준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려왔다. 그리고 이해준 감독이 먼저 <김씨표류기>로 돌아왔다. 그것도 도심 속 무인도라는 신선한 발상에 재치넘치는 웃음을 한껏 머금은, 남의 이야기 같으나 사실은 구구절절 우리들의 이야기인 그런 가슴 찌릿한 영화를 말이다. ![]() 한 남자가 한강 다리의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다. 갚을 빚이 2억이 넘는다는 안내 전화를 끊으며 결심을 굳힌 남자 김씨, 다리에서 뛰어내린다. 그런데 이 남자,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다시 살아난다.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남자 김씨가 표류한 곳은 바로 한강의 밤섬. 생태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일명 '무인도'다. 바로 위 다리에는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한강에는 유람선이 지나가며, 강 건너 편에는 63빌딩을 비롯한 하늘 높이 치솟은 빌딩숲이 있건만 그 누구도 절박한 그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분명 도시 안에 있지만 그 누구도 없는, 그곳은 무인도다. 절망에 빠져 다시 자살을 시도하려던 남자 김씨는 극심한 복통과 설사, 배고픔,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샐비어(사루비아)의 달콤함 등 동시다발적으로 밀려드는 상황과 감정 속에 목놓아 운다. 그러다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죽는 일'을 조금 미루고 일단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한강물로 갈증을 이기고(바닷물이 아닌 게 천만다행!) 먹을 것을 찾아 밤섬 곳곳을 탐험한다. 시행착오 끝에 물고기나 새 등을 잡아 오랫만에 단백질도 보충하고 강물에 떠밀려 온 온갖 쓰레기들을 재활용하는 센스를 보이는가 하면, 부서진 오리배로 오랜 내집 마련의 꿈을 대체한다. 아무도 없는 밤섬에서의 '완벽하게 심심한' 생활에 적응하던 남자 김씨에게 어느날 한 줄의 메시지가 날아온다. 'HELLO' ![]() 한 여자가 컴컴한 방구석에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마우스는 여러 개의 미니홈피를 순례하며 '모니터속 그녀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리며 리플을 살핀다. 하루종일 싸이질에 여념이 없는 그녀, 여자 김씨다. 현실의 그녀는 3년 째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은둔형 외톨이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다르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 미니홈피 메인에는 얼짱녀의 사진이 걸려있고 미니홈피 순례에서 발견한 명품 쇼핑 사진으로 순식간에 신상녀로 변신한다. 자신을 감출 수 있는 온라인은 여자 김씨에게 환상의 세계이자 또다른 현실이다. 미니홈피를 꾸미고 달사진을 찍는 일이 전부인 여자 김씨도 세상 구경을 할 때가 있다. 일 년에 딱 두 번, 사람들이 사라지고 온전히 조용해지는 그때, 바로 민방위 훈련 경보가 울리는 20분간이다. 경보가 시작되면 꼭꼭 닫아두었던 커튼과 창문을 열고 망원렌즈로 세상을 엿본다. 한산해진 길거리와 운동장, 한강 다리 등을 살피다 밤섬 어귀에 새겨져 있는 'HELP'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란다. 외계 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한 여자 김씨는 조심스레 밤섬을 관찰하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혼자 꼬물거리는 '변태' 외계인의 메시지가 'HELP'에서 'HELLO'로 바뀌던 날 그에게 리플을 달아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로선 큰 용기가 필요한 오랜만의 외출을 감행한다. ![]() 처음 <김씨표류기>의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 톰 행크스의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 : Cast Away>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무인도에 표류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둘은 비슷한 듯 다르다. <캐스트 어웨이>의 척 놀랜드는 예기치 않은 비행기의 추락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망망대해만 보이는 남태평양의 무인도에 떨어진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세계다. 그와 달리 <김씨 표류기>의 남자 김씨는 냉혹한 사회에 등떠밀린 채 자살을 시도하다 도심 한가운데 존재하는 무인도 밤섬에 표류한다. 돌아갈 방법이 없는 무인도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바로 눈 앞에 도심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아예 안 보여서 못 돌아가는 것과 눈 앞에 뻔히 보이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분명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또한 척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인도를 벗어나야 할 공간으로 여기지만, 남자 김씨는 오히려 눈 앞의 세상보다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밤섬에 머물기를 원한다. 산더미 같이 쌓인 빚과 떠난 애인과 자신을 초라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치부하는 강 건너 세상에서 벗어난 밤섬에서 남자 김씨는 완전한 심심함 그 자체인 밤섬의 느린 삶에 적응해가며 새로운 삶의 행복을 느낀다. 물론 혼자라는 외로움은 어쩔 수가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머물고 싶든 그렇지 않든, 자의든 타의든 결국 척과 남자 김씨는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무인도에서의 생활은 그들을 예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 '도심 무인도라이프'를 표방하는 <김씨표류기>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무인도라는 기발한 소재에서 시작한다. 이해준 감독은 한강 다리 밑의 밤섬을 내려다보다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단다. 아직 한강 주변을 제대로 거닐어 본 적도 없는 지방민인 나는, 그래서 한강에 '밤섬'이라는 생태보전지구 무인도라는 기묘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다는 거대 도시 서울에 무인도가 있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도심에 존재하고는 있으나 가까이 다가갈 수 없고 누가 있는지 관심조차 갖지 않는 곳. 그렇게 서울의 무인도 밤섬은 영화 속에서 남자 김씨가 표류한 곳이지만 사실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제각각 표류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 무엇이 남자 김씨를 한강 다리의 난간 끝으로 그를 밀어냈을까.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생사를 오가는 그의 모습과 함께 회사의 파산과 실업,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출 빚과 이자, 능력보다 학력을 우선시하는 좁은 취업문 등으로 상처받은 남자 김씨의 과거가 그 물음에 대답하듯 하나둘 스쳐 지나간다. 이런 비정한 사회가 '김씨'로 대표되는 우리들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한강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자신의 대출 빚을 듣거나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서 애인의 이별 통고를 떠올리는 남자 김씨의 처절한 모습 위에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바로 그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 사회에서 밀려나 무인도에 홀로 표류한 남자 김씨와 사람들에게 따돌려져 가상 세계를 표류하는 여자 김씨. 타인과의 소통을 포기했거나 거부했던 두 김씨가 조금씩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며 소통을 시도한다. 짜장 라면의 짜장 소스가 전해준 짜장면이라는 이름의 희망이 남자 김씨를 일으킬 때, 그것은 디카의 망원렌즈를 타고 여자 김씨에게도 바이러스처럼 전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를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어 바깥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세상에서 밀려나거나 거부당한 두 김씨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울한 시대에서 작고 연약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희망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희망 바이러스는 스크린을 넘어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도 전염된다. ![]()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처럼 이해준 감독은 <김씨 표류기>에서도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아픈 면을 들춰낸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재치있는 웃음과 따듯한 배려를 잃지 않는다.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따듯한 시선이 있기에 그의 영화는 여전히 따듯하고 사랑스럽다. 벼랑 끝에 몰려 자살을 택하지만 무인도 밤섬에 표류된 채 새로운 삶을 꾸려가는 남자 김씨는 온몸으로 열연한 정재영 덕분에 더욱 빛을 발한다. 자신을 버린 세상에 분노하고 절망하지만 그래도 삶을 놓지 않고 그속에서 또다른 행복을 만들어가는 남자 김씨는 정재영의 물오른 연기로 더욱 설득력을 얻으며 생생하게 살아난다. <김씨 표류기>가 두 김씨 이야기를 교대로 보여주지만 남자 김씨의 이야기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는 것은 정재영의 이런 멋진 연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창백한 피부와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분장으로 특유의 '환자 포스'를 한껏 뽐낸 려원 또한 은둔자 여자 김씨를 잘 소화해 냈다. 방안이라는 좁고 제한된 장소에 머물며 크게 눈에 띌 만한 사건도 없어 남자 김씨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지만 려원은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몫을 성실히 해낸다. 조금씩 연기의 폭을 넓혀가는 그녀의 행보가 기대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아참, 오리 통통배의 말없는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폭풍우가 쏟아지던 그날 밤, 남자 김씨와의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말없는 눈빛 연기라뉘!! 제작발표회까지 함께 나온 이 오리배에게 조연상을 주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안되면 소품상이라도.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실 듯. ;) ![]() 처음엔 영화 포스터와 시놉시스만 보고 마냥 웃기는 영화일 거라 생각했다. 물론 이 영화, 웃긴다. 고층 빌딩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같은 공간에 분명 존재하고 있음에도 그 존재 자체를 무시당하는 그 씁쓸함마저 웃음으로 승화한다. 무엇보다 자살 대신 밤섬에서의 삶을 선택한 뒤 점점 재활용의 달인이 되어가는 남자 김씨의 리얼한 모습과 정재영의 능청스런 연기는 그 자체로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김씨 표류기>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간다. 극적 상황에 따른 웃음과 함께 지금 이 시대에 대한 공감과 반성, 그리고 삶의 희망에 대한 감동까지 놓치지 않는다. <김씨표류기>는 도심 속의 무인도와 가상 세계에서 표류하는 두 김씨를 통해 우리 시대의 문제점과 아픔을 지적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채 달려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처럼 이 시대를 표류하는 우리들에게 힘을 내라고,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며 살며시 어깨를 두드려준다. 그렇게 그들의 희망 바이러스를 살며시 관객들에게 퍼트린다. 기발하고 참신하며 웃기면서도 감동적인 따듯하고 착한 영화, 그게 바로 <김씨표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