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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국의 몰락을 살펴보자. 역자 주경철은 2019년 현재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서양사학과 교수이자 저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역자는 이미 “제국”을 구축했다. 0. 우리가 검토할 판본은 Emmanuel Todd, Apres l'empire : Essai sur la decomposition du systeme americain, Galiimard, 2002. [엠마뉘엘 토드, 주경철 옮김, 제국의 몰락: 미국 체제의 해체와 세계의 재편, 까치, 2003.]
1. 이삼성은 이 번역서를 보고 “미국을 불량국가로 가진 세계의 불행과 희망(E. 또드 『제국의 몰락』, 까치 2003)”이라는 제목으로 평했다. 하지만 번역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개역본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삼성 또한 번역서에 저자 성이 토드라고 했으면, 토드라고 해야지, 또드는 또 뭐냐?
2. 먼저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를 지적한다. 1) 제목의 정확한 번역은 『제국 이후 : 합중국체제의 해체에 관한 시론』이다. 2) 고유명사에 관해 세 가지만 지적한다. 저자 이름은 엠마뉘엘이 아니라, 애마뉘앨이다. 슈팽라(Spengler)를 슈펭글러라고 하는데 이제 그만 “슈펭글러”의 진짜 성을 불러주자. 즈비그냽 브재진쓰끼(Zbigniew Brzezinsky)를 ‘브레진스키’로 옮겼지만 영어로도 브재진쓰끼라고 한다.
3. 원서 14쪽에 “Retour a la problematique du declin”을 번역서 13쪽에 “쇠퇴의 문제의식”이라고 옮겼지만, “쇠퇴의 문제로 회기”라고 해야 한다.
4. 원서 23쪽에 “De l’autonomie a la dependance economique (경제적 자율에서 경제적 의존으로)”를 번역서 24쪽에 “자율로부터 경제적 독립까지”로 옮겼다. 먼저 “의존(dependance)”이 “독립”으로 둔갑했다. 그리고 “경제적”이라는 형용사는 자율과 의존 모두를 지시한다. 이 부분은 과거 합중국은 (경제적으로)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세계에 점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저자가 지적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합중국은 과거에 세계로부터 자율적이었지만, 이제는 의존적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5. 원서 35쪽은 문제가 가장 심각한 부분이다. 1) “소말리아 부족간 투쟁(luttes de clans somaliens)”을 “소말리아 부족 간 충돌”로, “체첸 분쟁(conflit de Tchetchenie)”을 “체첸 전투”로, “터기 또는 이라크의 쿠르드족 자치주의자 요구(revendication autonomiste des Kurdes de Turquie ou d'Irak,)”를 “터키와 이라크의 쿠르드족 분리주의자들의 보복행위”로, “인도 카슈미르의 습격(attentats cachemiri en Inde)”을 “인도 카슈미르의 테러”로, 스리랑카의 “타밀족(tamoule)”을 프랑스어 표기인줄도 모르고 “타물”로 옮겼다. 2) “수마트라 북부 아체흐 이슬람주의(islamisme radical d'Aceh au nord de Sumatra)”를 “수마트라 북주 아체의 극단적 이슬람주의”로 옮겼다. 아체가 아니라 아체흐(정확히는 아째흐)이며, 북주가 아니라 북부가 옳다. 또한 급진적(radical)이지 극단적(extreme)은 아니다. “우쓰꽝스런 체제(regime bouffon)”를 “괴뢰 정부[보통 불어로 gouvernement fantoche]”로 옮겼다. 역자의 학문적 성취를 감안하면 이런 번역은 이해하기 힘들다. 대개 이런 잦은 실수(?)는 노학자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나, 역자 40대 초반이었다.
6. 원서 38쪽에 “Le processus n’est pas acheve.”를 번역서 41쪽에 “이 과정은 현재에도 진행중이다.”로 옮겼다. 하지만 “이 과정은 끝나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 내용이 비슷하다고 해도, 어감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7. 원서 41쪽에 “L'islam concret est comme un resume complet du tiers-monde en transition.”을 번역서 46쪽에 “이슬람권은 현재 변화중인 제3세계의 축소판과 같다.”고 옮겼다. 하지만 이는 불편한 번역이다. 이 문장은 “현실적 이슬람은 과도기에 있는 제3세계의 완전한 축소판과 같다.”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 문장 바로 앞에서 “인구학적 실체로서 무슬림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즉, 인구학적 실체로서 이슬람권 또는 무슬림세계는 없고, 현실적 이슬람은 완전한 제3세계와 같은 인구학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8. 원서 52쪽에 카라치(Karachi)가 있다. 번역서 58쪽에는 역주를 달면서 “파키스탄의 수도”라고 했다. 하지만 1967년부터 파키스탄 수도는 안타깝게도 이슬라마바드다.
9. 원서 93쪽에 있는 “strategie traders”를 번역서 105쪽에는 “전략적 무역론자들(strategic traders)”이라고 옮겼다. 이상하게 불어 명사가 영어 형용사로 둔갑했다.
10. 원서 147쪽 De l'effondrement du communisme a celui de la Russie (공산주의 붕괴에서 러시아 붕괴까지)를 번역서 166쪽에는 “공산주의의 붕괴로부터 소련의 붕괴까지”로 옮겼다. 이 저작에서 공산주의 붕괴는 곧 소련붕괴다. 이를 놓쳐서 결국 “공산주의 붕괴(=소련의 붕괴)로부터 소련의 붕괴”라고 오역하고 말았다.
11. 원서 64쪽에 “Le niveau d'endogamie est variable selon le lieu : 15 % en Turquie, 25 a 35 % dans le monde arabe mais 50 % au Pakistan.”을 번역서 73쪽에 “동족결혼의 정도는 지역에 따라서 달라서 터키 15퍼센트, 아랍 세계에서는 25-35퍼센트이지만, 파키스탄에서는 50퍼센트이다.” 여기서 문제는 외혼과 대비되는 “내혼(endogamie)”이라는 용어다. 내혼을 번역자는 “동족결혼”으로 옮겼는데, 이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동족은 “같은 민족”으로 사용한다. 같은 민족의 뜻이라면 터키 국민 15퍼센트만 같은 민족끼리 결혼한다는 뜻이 된다. 동족결혼과 족내혼에서 “족(族)”은 같은 글자지만 한국어화자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다르다. 따라서 “내혼(內婚)” 또는 “족내혼”으로 옮기는 것이 더 적합하다. 1) (족)내혼과 관련해서 저자는 자신의 저서 『제 3의 행성: 가족구조와 이데올로기 체계(La Troisieme Planete: Structures Familiales et Systemes Ideologiques)』(국내 미번역)를 참고하라고 권한다. 이 저작에서는 “내혼공동체가족의 성격(Caracteristiques de la famille communautaire endogame)”을 “상속규칙이 정한 형제간 평등(Egalite des freres definie par les regles successorales)”, “결혼한 아들과 그 부모들의 동거(Cohabitation des fils maries et de leurs parents)”, “두 형제의 자녀 사이의 빈번한 결혼(Mariage frequent entre les enfants de deux freres)”이라고 규정했다. 2) (족)내혼과 관련해 필자가 최근에 보고 있는 저자의 2011년 저작[Emmanuel Todd, L'Origine des systemes familiaux, Tome 1 : L'Eurasie, Paris, Gallimard, 2011](국내 미번역)에서는 “가족형태는 공동체적이지만, 사촌끼리 결혼을 선호하기에 외혼보다는 내혼인 무슬림세계는 오늘날, 전통가족의 파괴라는 맥락속에서 근본주의적인, 과도기의 다른 이데올로기를 생산한다.”고 썼다. 3) 위에서 살핀 본문과 미번역서 2권을 참조한 결과, 주경철이 "동족결혼"으로 옮긴 것은 완벽한 오역이다. 12. 리성의 과잉을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거의 날마다 우상을 주조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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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서론 딱 두 줄에 이 책의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다. "과거에 우리는 미국에게 어떤 해결책을 찾곤 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신사적이고 개방적이며 해결책과 함께 비젼을 제시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덩치만 큰 말썽꾼이 되었다. 고립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아시아 우선주의자들이 미국의 권력을 쟁취하자 미국은 갑자기 가장 거칠고 촌스러운 외교 행보로 나아갔다. 이로 인해 여타 문명국들은 거북함을 감추지 못했고, 잠재적 타겟이 되고 있는 일부 강대국들은 분노를 느껴야 했으며, 힘없이 말만 많은 소위 깡패국가들은 걸맞지 않은 린치를 당해야 했다. 찬란한 문명국들 사이에 홀연히 떠오른 촌뜨기 바바리안. 그들에게 미국의 지도력은 너무 과분한 역할이다. 저자는 기존의 반미주의자들에게 충고한다. 그들은 미국을 악의 핵심으로 파악하지만 동시에 유일무이한 파워로 다룬다. 그러나 미국의 힘은 공갈이란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조건과 일치한다. 미국은 악 혹은 공산주의, 전체주의로 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를 자임함으로써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지금 민주주의가 도처에서 이룩되고 있는 상황에서(이란까지 포함)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옛 왕좌를 유지할 수 없다. 둘째 세계 대전 이전에 미국은 자기 자신으로 충분한 자급적이고 자율적 경제 속에 있었으나, 현재는 외부 경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세계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이제 세계는 미국없이 살 수 있지만, 미국은 세계없이 살 수 없게 되었다. 세번째로 이는 서방 세계에 모두 통하는 것으로, 신진 민주국가는 더욱 민주적으로 변신하는 반면,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는 점차 과두제로 퇴화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가 평화를 가져온다는 기왕의 정설을 떠올려볼 때 전쟁(적 쇼)에 집착하는 미국의 행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의 퇴화현상은 미국에게 반복적으로 위기감을 심어주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그 위기를 변명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를 개발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대규모 국제 수지 적자 현상을 일컬어 미국의 경제는 세계의 소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류의 선전이다. 또한 미국이 여전히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 (저자가 이름붙이기를) 연극적 군사주의에 몰두하게 된다. 만만한 놈을 골라 미국의 첨단 군사력을 전시하여 미국의 강함을 만방에 떨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조만간 피터지게 싸워야 할 산유지역에 대해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집착은 거의 광적이어서 때때로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아랍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미국의 이 지역 통제를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저자는 미국의 부상과 몰락에서 얻는 교훈을 얻자고 충고한다. 미국이 부상한 것은 그들이 군사주의를 거부하고 자기 내부의 내실(경제와 사회적 문제에 집중하는 일)을 기하는데 있었던 반면, 미국이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그와 정반대되는 일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악순환의 고리에 외통수로 걸려들어 몰락의 가속도 페달을 밟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일본이 이런 미국의 자해적 꼬락서니를 답습하고 있다. 자기 경제의 붕괴 위기를 해결할 생각보다는 멀리 군대를 파견하면서 패전국의 설움을 극복하겠다는 발상말이다. 나쁜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던가? 우리마저 결코 이런 길을 따르지 말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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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미국의 경제적 관점에서 짚어본 것이며 역대 로마제국과의 견주어 봄으로써 제국 미국의 현재 위상을 점검하는 내용으로 이해했으며 그러나 미국이란 제국은 역시 세계의 주요한 물자와 정보,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나라로써 무시할 수 없는 제국이다.
1.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즉 쌍둥이 적자는 잘 알려진 사실 즉 미국의 돈이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되고 있다는 점과 약소국들과의 상대는 미국의 체력이 약화됨을 의미한다 ![]()
2.세계화란 허울 좋은 모습이 아니라 미국의 수탈능력의 향상 헤게모니를 지속하기 위한 정책 즉 미국이 궁지에 몰려 최악의 수를 두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
3.대항세력의 등장과 미국 경제의 종속성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끊임없는 군사활동을 강화하고 정당화하고 있는 미국의 모습입니다 ![]()
4.미국의 주도로 신자유주의와 함께 하고 있는 세계화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경제적 사실입니다. ![]()
5.과거제국과 오늘날 미국제국이 비교 모습입니다 로마제국처럼 독일과 일본의 경제를 틀어쥐고 있는 모습이 동일하지 않읍니까? ![]()
6.로마는 정복지에서 무한정의 부가 제국내로 쏟아져 들어옴에 따라 중산층인 농민과 장인은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여 빵과 서커스로 통제받는 신세가 되는데 오늘날 미국도 제조업의 붕괴는 로마시대와 어느정도 관련성이 있을 것입니다. ![]()
7.불편한 진실입니다. 제국이란 홀로가 아닌 주변의 여러국가로부터 경제적 물질적 부를 취함과 동시에 자국내 국민 즉 시민들도 피지배민으로 취급한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과연 미국제국은 여기서 예외 일 수가 있을까? ![]() -끝- |
| 이 책은 지금까지는 그다지 중요시되지 않던 -교육과 피임,출산율의 저하 및 가족구조의 변화를 통한 사회변화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는 있다는 점에서 특수성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이는 지난 9.11 사태 이후 한동안 거세게 밀어닥친 이슬람-기독교 문명으로의 이분법적 구분, 이슬람의 호전성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탈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는 듯 했다. 또한 그는 지금까지 미국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미국의 영향력을 너무도 과대평가, 절대시해왔기 때문에 그로 인한 자가당착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노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미국이 구 소련의 붕괴와 함께 자유주의 진영을 보호하는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상실하였으며 그로 인해 정체성의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군사력 부분에서는 이미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제국으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했으며, 무역 수지 부문 역시도 생산 없는 소비로 인한 적자에 봉착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그 예로 들고 있었다. 많은 국가와의 무역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의 독보적인 위치유지에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미국은 테러를 부각시킴으로 인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하며, 그냥 놔두어도 자연스레 붕괴, 소멸할 몇몇 약한 정권들을 군사력으로 짓밟고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이러한 그의 논리는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모든 국가에게 미국적 질서를 강요하고 있는 미국의 독선적 태도를 무리없이 설명할 수 있을 듯 하다. 자국의 생산품은 어떠한 제재 없이 수출하면서 동시에 타국의 상품에 대해서는 유례없는 높은 수위의 관세를 부각하는, 그것은 미국 경제가 처해있는 어려움을 스스로 만인에게 드러내는 행태였던 것이다. 작가는 아테네와 로마를 통하여 미국의 성격을 분석하고 있다. 그들은 로마가 제국으로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보편주의적 성향을 거부하고 있다. 작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는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없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흑인과 히스패닉에 대한 끊임없는 배제와 이스라엘에 대한 알 수 없는 원조 속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은 전 세계를 미국의 영향력 하에 두는 것 밖에는 없는 듯 해 보인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쟁이 지닌 폭력성, 남성성 대신 이슬람 문명이 지닌 여성 억압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의 전쟁을 정당화시키고 있으며 중동지역의 석유를 통제함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독보적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일본과 유럽을 통제하는 전략을 채택한다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독선은 작가의 관점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듯 해 보인다. 그는 미국이 보편주의를 도외시함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러시아를 고립시키는데 실패하였으며, 이는 러시아가 앞으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중요 세력으로 역사의 무대에 다시금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가능성에 대해 그는 러시아가 지난 날 겪었던 보편주의적 지배방식, 비폭력적/민주적인 해체 과정, 다양한 자원의 소유 등을 꼽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지니고 있는 자원을 개발함에 있어서 미국기업 혹은 미국에 기반을 둔 다국적 기업 등이 관여한다면 러시아의 역할에 대해 결코 낙관적으로 판단할 순 없을 듯 하다. 비록 과거의 전제주의적 정권으로부터 탈피하였고, 푸틴 체제가 미국 부시 행정부 보다 조금 더 교활(?)하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현실적으로 러시아는 개발을 위한 공적 자금이 필요하며 그러한 자금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국가는 다름 아닌 미국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투자는 러시아로 하여금 더 이상 미국에 저항하거나 비판할 수 없게끔 할 수 있으며, 그것은 러시아 역시도 미국의 속국으로 전락하게 됨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유럽 공동체를 통한 미국 비판 및 고립화 추구 역시도 국제화 시대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국지적 블록의 형성인 듯 하다. 아주 조금 언급되고 있긴 하지만 작가의 이러한 논리는 미국 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아시아, 남미, 남반국 국가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경제적으로 발전되어 있는 일본만이 미국에 대해 의심하고 복종을 유보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는 지금의 미국 중심적 지배질서가 유럽 중심적 지배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일 뿐, 진정한 의미의 세계 평등을 논할 수는 없을 듯 하다. 또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유럽의 방법으로 인구 증가와 핵 능력 강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역시 불안하게 느껴진다. 작가에 따르면 인구의 증가는 문맹률의 감소와 함께 필연적으로 나타난 듯 해 보인다. 현재 유럽 사회에 문제시 되고 있는 출생률 감소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정도를 감소시키는 등의 사회보장 체제의 축소가 필수적으로 야기될 수도 있을 것이며, 이는 인구 면에서는 미국을 압도할지 모르겠으나, 인구의 질 면에서는 미국에 의해 예속당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핵을 보유하고 개발하는 것은 자위의 범위를 뛰어넘어, 미국이 현재 이야기하고 있는 보편적 테러리즘과 잠정적 전쟁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으로 변모될 수 있다.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으로서의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듯이 핵을 통한 핵 공격의 저지 역시도 정당한 방법은 아닌 듯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문제시 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방관적인 태도이다. 작가는 미국 체제의 해체가 필연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 필연성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묵인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테러와의 전쟁이 미국의 에너지 소모에 도움이 되고 궁극적인 미국 체제의 해체에 기여한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제 3세계 인민들에 대해서 방관할 책임이 우리에겐 없다. 그러한 방관은 미국의 무능함 만큼이나 세계의 무능함을 입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의 지난 이라크 전쟁을 끝까지 반대하지 못하고 찬성 혹은 방관했던 수많은 국가들이 존재하는 한 미국은 그 체제 붕괴의 필연성이 존재할지라도 쉽사리 붕괴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
| 토드의 책은 참으로 논쟁적인 책이다. 우선, 현재에 대한 논의들을 종합정리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서 부제처럼 “미국 제국의 해체와 세계의 재편”을 인구학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며, 경제학이나 문화적인 분석을 통해서 현재에 대한 또다른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나 이슬람 세계에 대한 분석은 탁월한데, 각 사회의 문화적 기원이 다양함을 통해서 정신적 근대화의 과정이 다양하고 ‘테러리즘의 보편화’라는 미국의 이야기가 허구적이며 단지 정신적 히스테리의 표현일 뿐이라는 점은 너무나도 시사적이다. 또한 군사력의 한계, 경제적 토대의 취약성, 보편주의의 소멸로 인하여 미국의 제국 기획의 난점과 성공 불가능성을 논하는 지점은 현실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할 것이다. 특히 미국 군사비가 절대적인 통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미국 군사력의 절대우위”라는 또다른 환상을 부수고 “마이크로 군사주의”라는 허약한 실체를 폭로한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너무나도 쉽게 끝나버린 현재의 상황에서 너무나도 논쟁적이다. 그리고 정치적․군사적인 지배의 결과는 결국 경제적이며,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논지는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석유 자원을 확보했지만 이는 미국의 재정에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단지 초국적 자본을 살찌우는 결과밖에 되지 않으며 그렇다면 제국의 경제적 토대로서 ‘조공’(또는 공납)적 수익원을 어떻게 획득할 것이냐라는 쟁점을 남긴다. 촘스키처럼 미국을 단지 “악의 화신”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미국의 의도는 무엇이고 그것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논증한 이 책의 요지는 매우 탁월하다. 미 헤게모니가 해체되고 그에 따라 국가간 체계도 변동이 올 수밖에 없는데, 러시아와 유럽연합의 접근이라는 지점 또한 이라크 침공에 대한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의 반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또다른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면을 강조하면서도 “일반화된 세계경제”에 대한 보다 심화된 분석에 있어서의 아쉬움은 결론 부분에서의 취약함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또다른 “경제의 과소와 정치의 과잉”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우려도 해본다. 미국 헤게모니의 해체에 대한 보다 종합적이고도 근본적인 분석,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전략에 대한 보다 심화되고 기동적인 분석을 통해서 이러한 부분들을 보충해나간다면, 토드의 이 책은 충분히 보완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