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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장벽만큼이나 높다란 책의 길이. 무언가 단절된 듯한, 아니 책장을 여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에 멈칫하고 말았습니다. 책표지에 우뚝 솟은 장벽이 다가오지 말라는 위협인 듯하여 위축된 채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어요.
어린이의 그림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언어 표현에 책을 읽는 내내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 섬의 일상은 어느 날 파도에 떠밀려온 뗏목과 그 위의 벌거벗은 한 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로 가득하게 됩니다. 바다의 위험을 잘 알기에 이방인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려는 사람들을 설득해 섬에 남게 하자는 어부의 말에 쫓겨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 힘없는 이방인 남자는 섬 한 구석에 있는 염소우리에 갇히고 말아요.
섬에 남게 한 이상 자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소수의 만류에 돼지들에게 주려던 남은 음식을 나누어 주게 되지만 전혀 위협의 요소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이 필요해 마을로 내려온 남자를 광적으로 경계하고 가지각색 추측이 난무하게 됩니다. 마치 자신들을 해하려 하는 위험요소로 여기기까지 하죠.
그러다 견딜 수 없는 섬사람들은 결국 이방인을 처음 타고 왔던 뗏목에 태워 바다로 돌려보내고, 처음 낯선 남자를 도와주려고 했던 어부의 배까지 불태워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도 넘어올 수 없도록 높다란 장벽을 쌓아요.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하기 위해 가마우지의 생명까지 앗으면서요.
마음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표면적으로 책을 보면서 남의 얘기 같았어요.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조금 다를 뿐인데,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배척하고 담을 쌓을 필요가 있나 싶었죠.
그런데 단지 이것이 남의 이야기일 뿐일까요? 나라면 그렇지 않을 텐데, 그 이방인을 따뜻하게 대해 줬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드나요? 가만히 현실을 돌아봅니다.
이 책이 말하는 진실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 마음의 기저에 낯선 것에 대한 배척심이 조금이라도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단지 소수의 진실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번 공영방송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가 있었습니다. 심리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 낯선 사람이 길을 잃고 도움을 청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이 돕는가 하는 거였어요. 대조군으로 백인과 아시아인이 등장했습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행인이 백인에게는 통하지 않는 언어로 손짓발짓을 동원해 길을 알려주거나 아예 친히 동행까지 해주었지만 아시아인에게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 단 두 사람만이 애써 길을 알려주더군요. 너무나도 씁쓸한 광경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 그림책의 시커먼 장벽이 우리 사이에서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랗게 쌓여있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남의 얘기라고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죠. 무작위 인터뷰에서도 사람들은 대다수 난 그렇지 않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배척심. 이건 우리들만의 문제도 아니죠. 이 장벽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쌓여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스스로 쌓은 장벽, 우리를 스스로 고립시키기 위한 섬. 씁쓸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책 속의 이방인이 섬에 있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외모나 다른 조건을 지녔더라면 그렇게 다시 바다로 나가게 떠밀려나게 됐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받아들이는 것. 참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할 수는 있습니다. 조금씩, 하나씩. 장벽을 낮추고 낮추어 그 울타리를 무너뜨렸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지구촌 가족이라는 그 이름을 기쁘게 부를 수 있을 거예요.
함께 하기로 해요. 우리 마음속에 쌓은 장벽 깨뜨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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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세계 안으로 단 한 명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폐쇄된 사회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섬이 있다. 어느날 한 사람이 그 섬에 표류해온다.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기에는 그 섬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한 어부의 말로 이 섬은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기로 하나 그것은 진정한 받아들임이 아니었다. 자기 사회로의 온전한 받아들임이 아닌 어쩔 수 없는 방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낯선 사람을 염소 우리로 데려다놓고 못을 박아 두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은 골치아픈 문제를 덮어두려고 했던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그 사람의 존재를 잊었다. 그 사람이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도 그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라고 대접해 주기에는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 좁았다. 염소 우리가 그 낯선 이의 처소가 되는 것은 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했다. 그리곤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먹고, 마시고, 놀고, 그리고 남을 괴롭히고....
그러던 어느날 염소 우리에 있던 낯선 사람이 문을 박차고 나온다. 너무나 배고팠기에 그는 먹을 것을 구하러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섬 사람들은 그가 왜 염소 우리에서 나왔는지를 깊이 숙고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 사람을 돌보아주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돼지나 먹을 만한 음식을 그에게 던져주는 것으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거기서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낯선 사람은 종종 공포의 대상으로 회자되었다. 자신들이 가두어놓고,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해주었으면서도 이들은 부풀리고, 자신들의 생각 속에서 있지도 않은 것들까지 만들어내어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단지 염소 우리에 갇혀서 자신들이 버린 음식으로 연명하는 불쌍한 낯선 이를 흉악한 범죄자요 괴물로까지 발전시킨다. 결국 광분한 섬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낯선 이를 다시 강제로 바다로 냅내고, 어부가 낯선 사람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해서 어부의 배를 태워버린다. 심지어는 물고기마저도 먹기를 거부한다. 낯선 이를 데리고 온 바다에서 난 것이라고 말이다.
점점 높은 성벽을 쌓고, 혹여 자신들의 소식이 알려질까봐 갈매기나 가마우지도 쏘아 주기면서 그들은 고립된 섬에서 스스로의 장벽을 높여 살게 된다.
광포한 대중들 속에서는 그나마 생각이 있던 자들조차 침묵하게 되고, 섬은 그렇게 공포와 고립의 섬으로 전락하게 된다.
낯설음에 대한 공포, 무지가 가져오는 비인간적인 행태들과 고립을 향한 삶의 모습들이 그림과 함께 너무나 잘 전달되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던 책이다.
높다란 장벽을 쌓고 살아 가는 그들의 삶은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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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민 그레더 글, 그림; 김경연 옮김 <섬 : 일상적인 이야기> - 보림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다시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섬>을 읽으며 문득 학창시절에 읽었던 이 글귀가 떠올랐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아이을 키우다 보니 교육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할 때가 있다. 교육은 영어로 education이다. 어원에 따르면 산파술 또는 안내자란 뜻으로 e는 in의 반대개념으로 밖으로 끌어내다란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교육이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일까? 비록 알을 깨고 또 다른 세상에 태어났지만 교육을 통해 또 다른 세계관을 만들고 사회화 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깐. 그런데 만약 그것이 또 다른 알의 세계를 만든다면..... 어쩌면 이렇게 교육현실이 암울하고 행복과 멀어지다보면 우리 자체가 섬이 되지 않을까? 독서마저 즐거움보다는 지식을 채우고 시험에 응용하기 위해서라면.... 과연 행복과 얼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을까? 어째 나는 바뀌는 교육현실이 어렵기만 하다. 표지와 책등에는 섬. 그리고 타이틀 페이지에는 일상적인 이야기란 부제가 달려 있다. 부서질 것 같은 위태로운 뗏목을 타고 어둔 밤 폭퐁우치는 바다를 뚫고 우린 그 남자와 함께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게 된다. 벌거벗은 남자. 그리고 적의에 찬 섬 사람들을 보는 순간 우린 '벌거벗은 나'에서 '섬 사람'으로 위치가 전환된다. 이미 난 벗었다는 것 자체가 인정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섬'이 풍기는 배타적인 느낌으로 어떤 내용이 펼쳐질 것이란 것을 예측하면서도 말이다. 컴퓨터를 켜면 네이버에 연예인 이슈기사가 뜬다. 2PM의 김재범(?)이 한국 비하발언으로 팀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갔다, 최진실 자살하다, 여자연예인 성관련 비디오 노출사건..... 등등. 이런 사건들을 통해 말로 주고 받는 상처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회에서 매장시킬 수도 있음을 실감한다. 집단은 한 사람을 마녀사냥하듯 몰아갈 때가 있다. 특히 성비디오 관련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본인이 매매를 목적으로 만들지 않은 것을 애써 찾아 보는 것도 이해가 안가고, 개인의 도덕성을 평가하듯 열심히 관람한 후에는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았다는 듯 미쳤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이해가 안 간다. 나는 성격상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사회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틀킨 그 개인이 참 안되었을 뿐이다. (성 자체가 궁금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이 왜 궁금한지 이해가 안간다) 언론은 한 개인을 파멸로 몰아넣고 난 뒤에야 마치 사회에 마녀사냥을 경고하기라도 하듯 우려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예전과 달라졌다면 그 시기가 좀 당겨졌을 뿐 기사 따먹기 언론 플레이는 여전한 것 같다. 어쩜 사회가 아닌 언론이 사회를 몰아간다는 생각도 든다. 나처럼 느끼는 사람도 많을 텐데 처음엔 극한 분노의 감정을 드러낸 사람 대다수의 의견을 다루고 사건을 극대화 시킨 후에는 반대의 의견으로 여론을 진정시킨다. 난 그런 언론이 더 짜증난다.
그런데 말이다. 나도 이런 사회에 지극히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심각한 개인적인 문제까진 아니더라도 말이다. 가끔 쇼 프로를 보면 한 개인을 비하하고 웃음거리고 만들어 내용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쇼가 끝날 쯤에는 성과가 안 좋은 연예인은 우습고 가혹한 벌칙을 받아야 한다. <전여옥 저, '일본은 없다'-푸른숲> 에서 이런 구성의 일본쇼프로그램을 비판한 글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했었다. 그리고 몇년 후 우리나라에도 그런 쇼프로 구성이 방영되었다. 처음엔 그게 뭐가 재미있어 하던 나도 어느 날 보니 깔깔 거리며 웃고 즐기고 있더란 것이다.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그런 프로는 자제해서 보게 되었다. 한 개인을 무시하면서 웃는 일 쯤 별 것 아니라며 넘기는 묵인된 그 무엇. 그런 감정들이 하나씩 분노의 목소리로 폭발하고, 따돌림 등으로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사실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섬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염소우리에 갖혀던 이방인은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온다.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간 듯 했지만 이방인에 대한 공포는 생활 곳곳에 드러난다. 섬 사람들은 고민한다. 그 사람을 노동의 일원으로 부리기 위해 식당일을 돕거나, 목수의 일을 돕거나, 짐을 나르거나, 성가대를 하거나....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일상에서 행해지는 일이기 때문에 계속 이방인은 낯설어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가대조차도. 하나님은 섬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가? 유난히 성가대 속에서 뿔을 단채 돋보이는 사탄의 모습같은 형상은 더 맘이 아프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슬프고, 외롭고 소외된, 삶이 무거운 자에게 더 필요한 것인데..... 장애인, 늙은이, 어린아이, 과부.... 예수님은 그런 아픈 자들을 더 사랑하셨다. 그런데 사실 교회에는 그렇지 않은 자들이 더 많다.
여자들은 집을 떠나지 않고, 아이들을 윽박지를 때도 그 남자를 공포의 대상으로 삼았고, 심지어는 꿈에도 나타났다고 하니 섬 사람들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나보다. 고민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큰 공포와 두려움이었지만. 결국 이방인을 도와야 한다는 어부의 말을 무시한채 그를 도로 파도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를 도와주고자 했던 어부의 배는 불태워졌고, 어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소수의 사람은 목소리를 낮출 수 밖에 없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 공포... 마치 모든 불길한 일은 이미 일어난 듯 하다. 사람들이 쌓은 높은 담벽. 심지어는 그 곁을 지나는 갈매기나 가마우지 마저 쏘아버렸으니 아무도 섬 안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이 책 단편영화로 만들면 멋질거란 생각이 드는데...뭉크의 '절규'를 닮은 주인공. 대중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림과 이방인, 섬의 소재가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 것 같다. 캐테 콜비츠가 추구했던 세계와도 그 느낌이 잘 맞는다.(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화가)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 1867~1945)는 소외되고 학대받는 민중의 삶을 작품 속에 재현하여 사회 변혁을 꿈꾼 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중심에 선 여성 판화가. 그녀는 유채색이 아니라 검정과 회색, 흰색으로 나타내는 판화야말로 인간의 아픔과 슬픔,어둠을 표출해내는 대중의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노동과 실직,기아와 전쟁의 비운 속에서 헤매는 인간의 외침,저항,투쟁,죽음,그리고 참자유와 정의,평화를 갈망하는 모습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 20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판화가가 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82&aid=0000046151
이 책을 덮는 순간 내가 쌓아 온 담벼락으로 인해 그 너머 세상이 보이지 않았다면 하나씩 내려 놓으려 한다. 내가 옳기에 남이 그른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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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살아가면서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 있는 섬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게 그저 상상으로만 끝나는 게 좋겠단 결론을 내곤 했는데..이번에 아이 책을 고르다가 알게 모르게 하나의 섬이 되어 가는 우리네 모습을 담아낸 책 '섬'을 만났습니다.
흰 바탕에 투박해 보이는 검은 성벽의 일부가 그려진 표지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잘 나타내주는데요. 언제나 예쁜 책, 밝은 책만 찾아보려던 제게 이 책의 표지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부제라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란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구요. 일상의 이야기라..그렇다면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의 이야기란 말인데..궁금증이 더 높아져 얼른 책을 펼쳐들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섬 사람들은 해변에서 자신들과는 다른 한 남자를 발견하고 그를 다시 바다 속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바다가 어떤 곳인지 잘 아는 어부의 만류로 낯선 남자를 섬에 두기로 하고 염소 우리에 그를 가두고는 일상으로 모두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염소 우리를 벗어나 마을에 나타나면서 소란이 일어납니다. 배 고파 먹을 것을 먹고 싶다고 표현하지만 섬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리고는 돼지에게나 주는 남은 음식을 그에게 주고 더욱 튼튼한 문을 만들어 낯선 사람을 가두지요. 하지만 처음 그가 왔을 때와는 달리 그는 이미 마을 사람들의 꿈 속에서, 말 안 듣는 아이에게 겁주기 위해서, 교장의 설교에서, 신문 기사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섬 사람들은 불안해졌고 마침내 그를 다시 바다 속으로 보내고 그를 섬에 두자고 했던 어부의 배를 태웠습니다. 섬 둘레에 높은 장벽을 쌓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도 모두 끊고 마침내 이방인을 보낸 바다의 물고기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문득 '어떤 설명없이는 짧은 이해도 없는 슬픈 세상'이라는 옛날 노래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마음을 이해하기가 점점 싫어집니다. 피곤해지니까요. 타인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것은 타인의 세계에 한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타인의 자리 만큼 '나'와 '나의 문제' '나의 가족'에 대한 관심이 분산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모른 척하려고, 깊이 사귀려고 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가끔씩 발견합니다. 물론 타인에게서도 느낄 때도 있구요. '섬'은 어쩌면 이런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와 다르다면 배척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장과 억측을 서슴지 않고 결국은 다른 것과의 만남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리는...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어부'는, '어부'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소수의 사람은 무엇을 의미했던 것일까요? 양심, 동정심, 배려, 위로, 관대함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척박한 우리네 마음에서 언젠가부터 희미해진 바로 따뜻한 마음이요. 다소 무겁고 추상적인 이야기지만 '섬'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와 인물과 사건을 마련해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어 아이와 함께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요즘 지나다니다 보면 집이나 건물의 벽을 허무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도 저 벽들처럼 허물어뜨릴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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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책 뒷표지에 [섬]의 주제가 하나의 문장으로 간결하게 나와있습니다. 처음 [섬]을 읽으면서 내용에 대해 약간 긴가민가했던 부분들에 대해 뒷표지의 이 한 문장이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더군요.
[섬]은 처음부터 일상적인 이야기임을 강조합니다.
어느날, 섬에 한 낯선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들과 달랐고, 그것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남자를 관찰하면서 그 남자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어부의 의견에 따라 섬에 두기로 결정합니다.
사람들은 남자를 염소우리로 데려가 가축과 같은 취급을 하고 지금까지 살던대로 계속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그 남자를 섬에 둔다]는 것은 차마 험남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로 내쫓아 죽일 수는 없기에 내린 어쩔 수 없는 결정입니다. 사람들에게 그 남자는 불청객이자 그들의 지금까지의 일상의 평온을 깨트린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밉고 싫은 존재이며, 사람들과 다르게 생겼기에 어울리고 싶지않고 따돌리고 몰아세우고 내쫓고 싶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염소우리에 가둬놓은 그 남자가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그 남자가 염소우리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터울을 침입한 것에 대해 몸서리치며 싫어하고 심지어 무서워하기까지 합니다. 이미 사람들에게 그 남자는 괴물이며, 악마입니다. 그 남자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지만 그 남자의 존재 자체가 두렵고 불결하고 증오스러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마을은 그 남자로 인해 당장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단지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는데도 사람들은 그 남자의 출현만으로도 큰 위협을 느낍니다. 그리고, 사람들 중 가장 그 남자의 입장을 생각해주었던 어부의 배도 불태워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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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의 섬과 같다.고 시작하던 한 영화가 생각납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람사는 세상은 그런게 아닐텐데, 점점 개인 혹은 집단 간의 보이지않는 성벽이 높게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어요 그 성벽안에 갇혀 나 외의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는 건 아닌지, 너무나 배타적인 주류사회에서 소수의 목소리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고, 지난 2pM 재범사태처럼 따끔한 질책정도로 대신하고 이해로 넘길 수 있는 일조차도.. 마녀사냥 하듯 배척하여 결국 그 어린 아이를 고국의 품에서 매몰차게 내보내야만 했던 건지,
아민 그레더의 '섬'은 바로 그런 불편함을 담고있습니다
어느날 파도에 휩쓸려 섬으로 오게 된 벌거벗은 한남자에 대한 섬사람들의 동요와 경계, 집단적인 광기가 내내 진행됩니다 결국 이방인을 섬 한구석 염소 우리에 가두고 못질해버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마을로 나타나 배가 고프다고 하는 남자의 모습에 기겁을 하고, 우리가 도와야한다는 한 어부의 말에 마지못해 돼지에게 주고 남은 음식을 주던 사람들. 이방인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과 공포만을 가득 담은 신문과 스스로가 만든 극한 경계심으로 다시 염소 우리에 갇힌 무력한 이방인을 밥을 먹을 때도, 술을 마실 때도, 잠을 잘 때도 떠올리며 두려워하기 시작한 사람들. 결국 이방인을 끌어내 섬에서 쫓아버리고 섬둘레에 높은 성벽을 쌓고만 사람들. 성벽 꼭대기에 망루를 두고 섬 바깥에 사는 누구도 섬 안의 소식을 들을 수 없게 하기 위해 지나가는 새마저 모두 쏘아 버리는 사람들. 이방인을 보내준 바다에서 났다는 이유로 이제 더이상 물고기를 먹지않는 사람들.
긴 판형의 책표지 2/3를 채우고 있는 거친 터치의 까만 성벽이 책장을 덮고나니 더 높고, 숨쉴 수 없을만큼 답답해보이네요 마음이 먹먹하기도 하고, 아이들 책이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끔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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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동화책이지만 어찌보면 어른들에게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보림의 책 <섬>이랍니다.
제목은 섬인데... 표지그림에는 왜 높다란 장벽만 있을까요?
어느 날 아침, 섬 사람들은 해변에서 한 남자를 발견합니다. 파도와 운명이 남자가 탄 뗏목을 그곳으로 이끈 것입니다. 남자는 그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이 이방인을 두고 섬 사람들은 남자를 섬에 있게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언쟁을 벌입니다. 그리고서 섬에 두기로 결론을 내리지요. 사람들은 남자를 염소 우리로 데려다 놓고 염소 우리 문에 못질을 한 뒤 각자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배가 고파진 남자는 탈출하여 섬사람들에게 배고픔을 호소하게 되고, 사람들은 돼지에게 주는 음식찌꺼기를 준 뒤 점차 이 남자를 멀리하고 꺼려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남자를 점차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지요. 결국 이 섬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경계심부터 갖는 자세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울타리를 치고마는 꼴이 된다는 것... 마음의 장벽이 결국 섬을 통째로 가둬버리는 장벽을 쌓게 하고야 말았다는 것...
<섬>에 등장하는 섬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도 혹시 이러한 안타까운 모습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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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장 펼쳐든 순간 시작된 저의 놀람은 초등교양도서로 출간 된 이 책을 아무런 여과없이 아이들에게 이야기 곳곳에 너무나 직설적으로 표현된 대화.. 기쁨이나 웃음, 희망이라는 단어들과는 너무나 먼 하.지.만. 이책을 읽고 처음 느꼈던 놀라움과 경악스러움의 감정은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어느날 파도와 운명에 휩쓸려 섬에 들어 온 한 남자.. 그 낯선 이방인을 둘러 싼 섬 사람들의 동요는 이야기 중 등장하는 '낯선 자가 퍼뜨리는 공포'는 일파만파 커지게 되고.. 이방인이 전하고자 했던 유일한 의사표현은 그저 배가 고프다는 것 뿐였지만 사람들은 자기와는 다른 이방인과 함께 있기 싫다는 이유로 시작된 감정이
거창하게 사회문제까지 비교해 거론하지 않아도.. 한번도 이방인의 입장에 놓여본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론 이방인이었던 한 친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던져주고 싶고.. 이야기 속 섬 사람들과 같은 입장이었던 저의 수많은 친구들은 결국엔 저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자기 합리화로
이책은 분명 어린이도서이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 아이들에게는 제가 바로 위에 적었던 학창시절 친구와의 관계 같은 주위를 둘러 보세요 내가..우리 주류 사회가 만들어 낸 든 장벽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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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민 그레더의 [섬]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랄까요? 읽고나면 마음이 꽤나 불편하지만, 어둡고 추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준 작가에게 박수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동 도서긴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야 이해가 쉬울 것 같아요. 어린이에게 늘 밝고 좋은 것만 보여줄 순 없죠. 이런 책도 접해서 보무와 대화할 거리도 생기고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을 갖출 수 있다면 좋겠어요.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 작가 아민 그레더의 놀랍도록 사실적인 통찰- 세게 최대 규모의 어린이 책 박람회인 볼로냐 아동 도서전에서 시상하는 상이랍니다. 라가치는 이탈리아 어로 어린이라는 뜻이예요. 아주 권위있는 상이죠.
조금은 당혹스러웠던 남자의 쓸쓸한 누드로 이 책은 시작합니다. 어느 섬에 떠내려온 남자 이야기입니다.
섬에 살던 주민들이 이 낯선 이방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책에서는 너무나 사실적으로 표현해줍니다.
단지 먹을 것을 찾으러 나왔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방인 남자를 보며 공포스러워하죠. 표정이 정말... 리얼하지 않습니까?
남자는 그들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지만, 섬 주민들은 그들에게 닥칠 것만 같은 이방인의 공포를 점점 더 크게 부풀리다가 결국 그를 쫓아냅니다. 목숨이 위태로울 것임에 분명한 저 파도 속으로요.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낯선 남자를 살려두고 곁에 두자고 말한 어부의 배조차 불태워집니다. 심지어 이방인을 데려다 준 바다에서 난 물고기조차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섬 둘레에 장벽을 쌓고 탑을 세워 갈매기나 가마우지가 지나가도 쏘아버렸죠. 섬은 스스로 고립되어집니다.
참... 어두운 이야기지만, 부정할 수 없죠? 특히 순혈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얼마나 와닿던지요. 우리는 이방인에게 친절한가요? 아니, 이방인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 모두의 틀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지 않던가요? 우리는... 섬주민들처럼 두려웠던 게지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이방인이.
앞으로 더 많은 이방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올 것이고, 우리 또한 다른 나라에선 이방인입니다. 우리보다 더 넓은 세계에서 자라날 아이들이 나와 남의 경계에서 자유로운 사고를 하며 자랐으면 좋겠어요. 섬주민들처럼 어리석은 판단으로 스스로를 파묻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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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니 표지의 높고 갑갑한 성벽이 더욱 와닿네요. 마음 한쪽이 한결 무거워진 느낌입니다만, 이 사실적이고 잔인한 동화는 어른들조차 깨우치게 만드네요.
이 책의 부제는 일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섬, 일상적인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