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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인상, 글에 깃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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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은 딱 읽자마자 누구의 글인지 확신이 선다. 그가 아니고서야 이런 기똥찬(?) 문장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아는 것이다. 강렬한 개성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 미지근한 글을 그저 즐겨 쓸 줄만 아는 나는 그저 부럽기만 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첫 작품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수록된 모든 작품이 한결같았다. 무엇보다도 상상력의 힘에 놀랐다. 독특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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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은 딱 읽자마자 누구의 글인지 확신이 선다. 그가 아니고서야 이런 기똥찬(?) 문장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아는 것이다. 강렬한 개성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 미지근한 글을 그저 즐겨 쓸 줄만 아는 나는 그저 부럽기만 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첫 작품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수록된 모든 작품이 한결같았다. 무엇보다도 상상력의 힘에 놀랐다. 독특해도 너무 독특했다. 현실로부터 한없이 유리됐더라면 거리를 두고 싶었을 것이다. 전혀 공감대를 품을 수 없는 종류의 글이 우리 주변엔 널렸기에. 헌데 '눈의 황홀‘은 아니었다. 어딘가 모르게 섬뜩했다가 씁쓸하기도 했고,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에 읽는 내내 시달렸다. 남의 이야기 같으면서 내 이야기 같기도 한, 아주 묘한 글들의 향연이었다.

가장 앞부분에 자리한 것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눈의 황홀’이었다. 글의 주력 인물은 여성이었다. 어머니로부터 시작해 자녀, 손녀에게까지 이어지는 흐름에서 남성의 향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직하다고 볼 순 없겠지만 아직까지도 여성이라 하였을 때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남성보다 덜 폭력적이고, 순하고 등등. 그런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그녀들은 전형적인 여성성을 간직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여성상으로부터 왠지 모르게 동떨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무엇이든 극에 달한 건 무시무시한 법이다. 인물들이 탐하는 건 아름다움인데, 그 정도기 지나치다. “저승에나 가야 본다는 천상의 꽃”. 과연 이런 게 존재하는가? 살아서는 볼 수 없기에 그들은 죽음을 논한다. 그리고 그 죽음은 어느 순간 현실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내리 물었다. 누가 누굴 죽였던가. 끊임없이 주인공은 자신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식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숨이 막히려고 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 의해 목 졸림을 당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어진 ‘네로의 時’에서 인간은 이름 모를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한창 벌이는 중이다. 겹겹이 몸을 감싼 보호복이 조금이라도 찢어지면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강력한 바이러스가 그 안을 파고든다. 마치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양 화력 좋은 무기로 불장난(!)을 해가며 주인공은 바이러스 소탕 작전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건 희망 아닌 절망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바이러스가 아닌 바이러스 소탕작전에 투입된 이들로 인해 제거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분명 적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구미는 주인공의 폭력으로 그득한 눈빛을 보았던 것일 게다. 역사가 기억하는 최악의 군주 네로의 눈빛을 닮은.

기괴한 상상은 계속됐다. 실꾸리는 정처 없이 떠나버린 아버지의 빈자리를 남은 이들이 기형적으로 메꿔 나가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다. 어머니와 아들은 아버지가 꼬치로부터 탈출해 훨훨 날아갔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매일 거울 앞에 서서 입안을 살핀다. 그들 또한 어느 날 등에서 날개가 돋고, 떠난 이를 따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듯했다.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그들은 강박적으로 입안을 확인하며 안심하고, 남편(아버지)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며 내면의 것들을 남김없이 털어놓고자 안간힘을 쓴다. 헌데 내가 느끼기에 그들은 온몸을 실로 동여매고픈 충동에 시달리는 듯했다.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는 건 완성을 뜻한다. 미완성의 존재인 그들에게 가족을 등지고 제 길을 걷는 아버지는 원망의 대상이자 동시에 부러움의 대상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를 터이지만 나에겐 ‘흙, 일곱 마리’가 가장 기이하게 다가왔다. 흙으로 무언가를 빚는 행위는 고대 인간들도 행했던 바다. 자신과 닮은꼴을 하고 있는 부장품을 만들어 제 무덤에 넣으면서 고대인들은 영생을 기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것들이 인간이 되어 우리 눈앞에 등장한다면 과연 기분이 어떨까. 게다가 그들은 우리 인간이 꿈만 꿨지 실현하지 못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존재다. 총알을 하나 가득 온몸에 박고도 어떠한 아픔도 느끼지 않는 그들이지만 사람을 죽이고, 어쩌면 자신조차 소멸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자 인간보다 나은 선택을 감행한다. 혹자는 눈에 띠지 않고 탈출하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할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워질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 되겠는가! 하지만 그럼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다른 이들을 죽일 것을 강요받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제 형제들이 한 때 땅이었으며 바람이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삶은 그들처럼 살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도록.

낯선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작가가 의도치 않았을 욕망 품기에 한창 열을 올렸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졌다. 나 아닌 나, 지금의 나로부터 적잖은 부분을 떼어낸, 어쩌면 나라고 하기 힘든 나. 서글플까. 아니, 아닐 거 같다. 혹 부정적인 감정이 들더라도 잘 달래가며 살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내가 되진 못할지라도 내가 원하는 내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q*****2 2017.03.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