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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참 빠르게 발전하면서 사람의 삶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법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최근에는 공직자들이 부정 청탁을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김영란법이 주목받았고,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유병언을 조사하면서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유병언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특히 안타까운 것으로는 등교하던 초등학생을 성폭행하고 영구 장애를 입힌 조두순이 떠오른다. 그런 충격적인 일들 외에는 법과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법이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 제정되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요즘 대통령 탄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드는 것이 바로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였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천칭과 칼을 든 형태로 묘사되는데, 정말 정의로우려면 눈을 가리지 말고 크게 떠야 한다는 말도 있다.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정과 정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2017, 폴커 키츠 지음, 한스미디어 펴냄)는 이런 시기에 내게 딱 맞는 책이었다. 법이 현실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고 수용하는 모습이 흥미로운 상황과 함께 설명되기 때문이다. 저자인 폴커 키츠는 심리학과 법학을 전공했고 저널리스트, 변호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는 법을 다루는 책인데도 드라마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이 책은 크게 정의, 존재, 자유, 가족, 벌, 죽음이라는 여섯 파트에서 법을 이야기한다. 그중에서 성전환, 잊힐 권리, 안락사 같은 항목은 최근의 현실을 담았기 때문에 생생하고, 고문과 종신형, 종교와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근본적인 면을 담고 있어서 의미 있다. 저자는 실제로 일어났던 갈등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소개한 다음, 이 문제를 법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논의하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매주 토요일에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민의 항명'을 다룬 2장을 보았다. 1983년, 핵탄두를 실은 트럭이 저장고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도로 위에 앉아서 비폭력 시위를 하는 장면을 담았다. 익숙한 장면이다. 이 1983년의 노상 시위에 앞서 1966년 클라우스 래플레의 시위가 있었다. 대학생 월정액권 가격 인상에 반대해서 수천 명이 선로에 앉는 시위를 조직한 것. 이 장에서 저자는 '폭력'의 다양한 정의를 설명한다. 과학처럼 명확한 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심하게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이야기하듯 법에는 열린 결말이 없어야 하지만 법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법의 결말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계속 달라질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법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조금 더 정의로워지는 것이다. 도로뿐 아니라 건물 안까지 꽉 채운 CCTV, 자동차마다 달려 있는 블랙박스가 세상의 눈으로 시민의 안전을 책임진다고 하지만, 사생활 침해라는 부작용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상황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배웠고, 법의 고민도 잘 느꼈다. 법이 현실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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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법은 태생부터 정의로웠고 반드시 진실을 가리고 정당하게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법이 아니라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하고 거리가 상당히 먼 생각이다. 법이 만능이고 태초에 절대적이고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설령 불안전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가역적이고 거슬러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악법도 법이다."는 말도 나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법이란 첫 시작부터 정의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완벽하지도 않고 잘못된 법은 고쳐야지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된다는 관점이 현대에 생기게 되면서 점점 정의에 가까워지게 바뀌게 되었는지 모른다. 역사 속에서도 법이 최초로 나타나는 순간에는 권력을 가진 지배자가 하층민을 원할하게 다스리고 쉽게 계급제 사회를 고착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종교와 법이 사용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의 아들인 족장이 신의 계율과 법칙에 따라 부족민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원시 사회의 법이였다. 그 뒤에 국가가 형성되고 난 뒤에도 법이란 통치자들을 위한 도구로 쓰여졌다. 독일로 가보면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고, 주변나라를 침공한 것도 다 법에 따라 이루어진 행위이다. 이런 것을 본다면 법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행위가 모두 정의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현대의 법은 과거의 형식적 법치주의가 아닌 내용도 정의로운 실질적 법치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에는 여러가지 가치가 있고,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고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 이러한 가치와 가치가 충돌을 일으킬때 정의를 가리기는 어려워지고 무엇이 정의인지 알 수 없게 되기 까지 한다. 하지만 일단 법에서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의 저자 폴커 키츠가 책의 서문에 법학자는 당장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고 법치국가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답을 내놓아야 한다. 결말을 절대 열어 두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에 나오는 19가지 논제는 정말 결정내리기 힘든 문제이다. 만화영화에서처럼 영웅 악당이 딱 구분되는 게 아니라 두 가지의 옳은 가치가 충돌해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저자인 폴터 키츠도 책 속에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독자들에게 판단을 유보한채 여러가지 상황을 설명하고 소개하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독일의 사례들이라 우리하고 환경적으로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한국의 법은 독일법에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참고하고 생각해볼 부분이 많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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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법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니 법이 정말 그러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런 상황(?)이 되지 않는 한 법은 멀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법은 특별한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 나라의 국민이라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의 자유냐 아님 법이냐....누구나 법에 대해 반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를 흑백 논리로 결정하기란 어렵다. 한동안 독일에서는 대마초 사건으로 국민들이 법에 대항했다. 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느냐라는 점이다. 한 여성이 대마초를 구입했는데 ...나로서도 법에 위배되는 행동이 아닌가 싶은데..독인에서는 이를 두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을 내세워 사람들이 전국에서 대마초를 했다는 사건이다. 결국, 이를 두고 법의 판결이 나왔는데...개인을 위해서라면 무관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법의 판단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어렵다...법은 인간이 더 편하게 살기 위해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인데...이 책을 읽으니...머리가 복잡해진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금 존재하는 법이 후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과 옳고 그름 역시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점을 애기하고 있다. 물론, 한국과 모든것이 맞지 않지만 왜 독일 국민들은 법에 대해 이런 생각들을 가질 수 있을까? 한편으로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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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법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그냥 법을 잘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나 할까.법을 잘지키는 것이 민주시민의 의무라고 막연히 생각하니 말이다. 법을 잘지킴으로써 나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하는데 언제 나의
권리를 주장해 본 적이 있었나 싶다.사실 지금까지 나는 법에 대해 무심하게 살아왔다.
그런 나를 반성하는 의미로 이 책을 읽기로 생각하고 너무 딱딱하진 않겠지 하고 지레
짐작을 해보기도 했다. <법>이란 단어는 웬지 어렵고 딱딱하단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법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독일인으로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서적을 25권이상 집필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3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최고의 자연과학
연구소 연구원을 거쳤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유감스러웠던 것은 아주
재미있어서,지루할새 없이 읽힌 이 책의 내용이 독일 헌법에 기초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독일사람이니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한편으로는우리나라 저자들은 왜 이런
책을 집필하지 않는 것일까? 하고 내심 속상하기도 했다.
맨 앞에서 마약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 저자는 우리의 일상에서 <자유>란 어떤 의미인지,
헌법에서 보호한다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은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하여 알기쉽게 설
명하였다. 마약, 동성애, 개인정보 보호, 가족, 성교육,고문, 종신형,안락사등 비교적
현시대가 안고있는 문제들에 촛점을 맞추면서 그 문제들에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설명하였다.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저자답게 책의 내용이 흥미롭고 술술 읽혔다.
<양심의 자유>라는 소제목의 글에서 직장생활에서 벌어진 예를 들었다.책에서 소개한
예들은 대개 선진국에서 일어날 법한 현대사회의 문제들 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독일은 문제가 되는 것들도 우리보다 선진국이라는 느낌이 여러번
들었다. 책을 읽는내내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는 독일의 진보된
체재가 부러웠다. 국민 서로의 행복과 권리를 위하여 최대한 공정하게 처리하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이부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삶은 달걀 두개를 유리컵에 넣을 때,두개가
약간씩 짓눌리면서 두개가 같이 유리컵에 담기는 것으로 비유를 했다. 그렇게 서로 생각과
손익의 차이가 다른, 양쪽이 서로 나름의 양보를 해야 한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법외엔 관심없이 살아온 나다. 이 책에서 만난 독일법은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고, 최대한 많은 자유와 행복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기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법은 원래 구속하는, 강제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나는 이런 느낌을 받은게 신기할 정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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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헌법재판소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과연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공교롭게도 우리의 현실과 잘 맞아 떨어지는 책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법과 정의에 대한 19가지 근원적 질문들을 던집니다. 왜 우리는 법을 의심하게 되었을까요. 그건 경험에 의한 불신입니다. 법전 속의 법은 정의를 말하지만 현실 속의 법은 권력의 힘을 알려주는 도구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有錢無罪 無錢有罪)는 돈이 있을 경우 무죄로 풀려나지만 돈이 없을 경우 유죄로 처벌받는다는 말입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실제로 범죄 사실이 없는 경우에도 사회적 약자라서 누명을 쓰는 경우입니다. 스스로 무죄를 증명할 능력이 없는 약자를 경찰, 검찰, 법원 그리고 변호사까지 유죄로 몰아간다면 그는 꼼짝없이 범죄자가 되고 맙니다. 반대로 돈과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당당하게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책 속에는 다양한 법적 사례들을 보여줍니다. 국가의 감독 vs 일반적 행동 자유권 무엇이 폭력인가? - 시민의 항명, 비폭력 시위는 위법인가? 나는 어떤 법을 따라야 하는가? - 자연법과 법실증주의 우리에게 성별이 필요한가? - 호적의 성별을 남자에서 여자로 바꾸는 것은 사회에 해가 될까? 국가의 감시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 개인 정보 수집 다른 사람이 내 정보를 유포해도 되는가? - 인터넷 세상에서 잊힐 권리 우리는 얼마나 평등한가? - 경력과 여성 할당제로 인해 남성이 역차별당하는 것은 아닌지. 인간은 동물과 자연보다 우월한가? - 헌법에 명시된 동물 보호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종교의 자유는 언제나 불가침인가? - 할례와 치유기도, 종교의 자유를 지키려면 헌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로를 파괴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의견이든 자유롭게 표현해도 되는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려면 사람들이 서로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술은 무엇이고 예술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그라피티는 예술 활동이지만 타인의 사유재산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직장 생활을 위해 양심을 저버려야 하는가? - 양심의 자유, 양심을 객관적으로 점검하려면 무엇을 잣대로 삼아야 할까? 가족이란 무엇인가? 법적인 가족과 생물학적인 가족 중 어느 쪽이 더 강한가? 국가는 어떤 가정을 보호해야 하는가? - 모두를 위한 혼인, 모든 법적 동거 형식과 혼인의 개념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내 아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지 누가 결정하는가? - 학교에서의 성교육, 학교는 학부모에게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인간 같지 않은 인간에게도 존엄성이 있는가? - 납치된 아이를 구출하기 위해서 경찰은 범인을 죽여도 될까? 무엇이 정당한 형벌인가? - 종신형, 우리는 어떤 사람을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감금해도 될까? 국가는 테러리스트로부터 국민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 - 생명과 생명이 대립할 때, 국가는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켜도 될까? 죽음은 누구의 손에 달렸는가? - 안락사, 어디까지 자살을 도와야 할까? 모든 사례는 실화이고, 결말이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지만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주제라서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법이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저자의 말처럼 "법의 결말은 절대 열려 있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법은 우리가 해도 되는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을 구별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누구든지 자신의 행위가 위법한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불안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허락되고 무엇이 금지되는지 몰라서 불안하고, 권력에 의해 좌우되는 법이라면 독재국가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 국민들은 헌법 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며 안심할 수 없는 걸까요. 법이 정의를 보여주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도 바뀌어야 된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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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신간으로 등장하는 책을 보면 세상의 변화와 유행에 따라 서점에 등장하느 책들도 달라진다. 최근 들어서 신사임당에 관한 책이
등장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법에 관한 책, 정의에 관한 책이나 해방이후 근현대사에 대한 책이 나오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 사람들의 관심사가 번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뉴스와 시사를 통해 매일 흘러나오는 최순실 게이트 관련 소식과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대한민국 시민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에서 법은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시행되느냐, 그런 것에 대해 관심 가지게 되고,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청문회와 재판에서 봐 왔듯이 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똑똑한 엘리트 계층이 법을 악용하는 모습은
권력자들이 법을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지 잘 나타났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바로 분노였다. 최순실 사태로 인해 과거
유신헌법을 주도했던 법꾸라지 김기춘과, 그분의 탄핵소추 문제, 법은 자신들과 무관하다 생각하면서 법을 악용해 왔던 정부 고위
관료들의 모습들, 그들이 하나둘 잡혀 들어가는 모습 속에서 법에 대해 조금 더 관심 가지게 된다. 특히 우리 실생활에 가까이 있는
법에 대한 이해와 해석, 판사는 어떻게 법조문을 이해하고, 판결하는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며,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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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법에 관심이 많이 가졌던 시기가 있었을까? 최순실사태로 인한 박근혜대통령의 탄핵절차로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는중이다 알다시피 법이란게 우리가 생각하는것보다 더욱 복잡하기에 어떠한 결론이 도출될지는 사실 추축하기 어렵다 단, 우리가 생각하는데로 법의 정의롭게 집행되길 바랄뿐이다 그래서 난 이책을 선택하였다 제목처럼 법이 얼마나 정의로운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에서는 헌법의 고장인 독일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례로 법이 어떻게 판결이 되어왔고 변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법이란것은 단한줄의 문장에서 출발하지만 해석하기에 다양한 결론이 도출되었다 특히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사고가 변화함으로써 같은 문장이라도 다른 결론을 도출하였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그 무엇이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하는것 같았다 법이란 우리 삶에 있어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하여 깨달았다 사실 법이 판결하는 내용과 나의 상식과는 조금은 다른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이든 정해진것은 없고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시대적해석이 중요함을 알게되었다 자유, 폭력, 성별, 사생활, 평등, 동물보호, 종교, 예술 양심, 가족, 죽음 등등등 하나가 답이라 말할 수없어 사람들은 계속 법에 물어보고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두가지의 권리가 충돌될때 법은 컵안에 든 두개의 껍질벗긴 삶은계란처럼 최대한 서로에게 침범하지 않고 그 권리가 최대한 발휘하기위한 중간지점을 찾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지점이란것은 시대적상황과 사고에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법의 결말은 언제든 열려있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다고 이야기하면 사회의 혼란을 야기할뿐이다 그 시대에 맞는 결론은 하나로 도출되어진다 하지만 법이 항상 변화하지않고 똑같이는 않다는것에 주목해야한다 법은 언제든 변화할수 있고 더욱 정의롭다 여기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점을 깨닫는다 다시 박근혜대통령의 탄핵소추로 돌아오자면 사실 몇십년전에 이런일은 밝혀지지도 않았을것이고 밝혀져도 지금처럼 크게 부각없이 덮혀졌을만한 일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국민들은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헌재들이 부디 이 시대상황에 맞는 결정을 잘 도출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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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니까 완전히 로스쿨면접문제이다. 손수호변호사님이 종방뉴스에서 패널을 하시는데 정말 멋있다고 생각을 했다. 공부실력도 있는데 법학논리력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분이 추천을 하셨다니 꼭 읽고 싶어서 읽었다. 나중에 로스쿨면접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이고 자본주의이고 법치주의인데 그런 이데올로기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우리나라가 지금의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 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아빠께서 학교에서 일하시면서 총장한테 쫓겨 날 때 연봉도 못 받고 당하는 것을 보면서 시작됐다. 아빠는 그 후로 10년 넘게 법적 투쟁을 하고 있는데 학교의 총장은 횡령과 배임으로 광장구에 빌라 120채를 사고 돈을 계속 축적하고 있다고 하는데도 교수들은 계속 돈만 뺐기고 아빠처럼 쫓겨 났다. 그렇게 계속 당하는 이유가 총장이라는 권력과 김영란법이 나오기 전의 영향이 커서 그런 것 같다. 법적인 투쟁을 끝까지 하는 이유는 너무 억울해서이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부조리함의 균형을 잃는 것을 사람들은 견디지 못한다. 인간의 깊은 양심에는 올바름으로 가야 하는 중력같은게 있는 것 같다. 독일은 집집마다 법전을 다 갖고 있다고 했다. 시골길에 아무도 없어도 건널목이 파란불이어야지 건넌다고 했다. 나도 코람데오라는의식이 있어서 빨간불이면 절대로 건너지 않고 작은 법규도 어기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바보취급을 받는다. 그저께는 어떤 아줌마가 오더니 엄마랑 지나가는데 엄마한테 무단횡단해도 되겠냐고 물어서 너무 황당했다. 엄마는 무단횡단은 범죄라고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건널목이 있는데 왜 무단횡단하는 걸 묻냐고 하니까 그 아줌마는 건널목을 찾아서 갔다. 무단횡단을 하는데 누군가의 독려를 받고 싶었나보다. 법은 사회의 변화와 같이 가야 하고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법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아야지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법은 시대의 정신을 반영해야 하고 상식이나 국민의 정서에 어느 정도 맞아야 하는데 재벌이나 권력자에게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 특검에서 재벌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에서 받아 들여 준 것은 법치국가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 같다. 아직까지 법은 힘이 없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엄중하고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인식이 강하다. 기본권침해나 어떤 법이 우선하는지 아직은 잘 몰라서 더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을 보니까 정의는 인간의 본성에, 관념의 높은 서열에, 창조질서에 존재한다고 한다. 정말 맞는 얘기이다. 자연법에서 정의는 별과 같은 존재이고 법실증주의에서는 블루베리머핀과 같아서 좋든 싫든 먹어야 하고 도덕과 분리시켰기때문에 정의롭지 못한 법도 존재하고 정의로운 법과 같은 유효성을 가진다고 한다. 감시카메라문제도 항상 논쟁거리인데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하는데 범죄보호권도 필요하니까 어디든지 설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을 공부할 때 의심하고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독일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동성결혼의 허용 여부, 잊힐 권리, 표현의 자유,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문제들과 논쟁과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법을 공부하는 이유가 상식이 통하지 않은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라고 한다. 법없이도 사는 사람이라는 말은 틀린 것 같고 법안에서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는 얘기가 맞는 것 같고 요즘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법치주의에 대해서 계속 의심이 들고 의구심이 든다. 저자 폴커 키츠는 쾰른대학교에서 심리학을, 뉴욕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3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자연과학 연구소인 막스플랑크 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저널리스트, 시나리오작가, 저작권 전문 변호사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심리학, 법학, 에세이, 경영학, 자기계발 등 분야를 넘나들며 25권 이상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고 유명 언론과 국내외 전문 학술지에 글을 다수 게재했다. 이 외에 강연, 방송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청중을 감동시키고 있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법은 열린 결말을 가지면 안된다.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에도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그림이 예술인지 외설인지 논쟁이 있었다. 이 책은 챕터 6으로 되어 있다. 예술은 무엇이고 예술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라는 챕터3을 보면 법의 역할이 정확히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은 독일의 사례를 들었는데 독일은 자기 나라의 법뿐만아니라 유럽법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아시아법이나 세계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그라피티를 하는 오즈라는 사람때문에 예술에 대한 법적인 논쟁이 일어났다. 그라피티는 '긁다, 긁어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현대적 의미의 그라피티는 1960년대 후반기,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젊은 흑인들이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를 중심으로 건물 벽이나 지하철 차량 등에 스프레이와 페인트로 그린 구호와 그림에서 출발한다. 이후 흑인 특유의 즉흥적인 면과 직접적인 접촉을 중시하는 힙합 문화와 결합했다. 미국 출신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는 뉴욕의 벽에다 낙서를 하고 다닌 천재적인 화가로 많은 그라피티 작품을 남겼으며, 이외에도 키스 헤링, 장 뒤 뷔페 등이 이 분야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고 있다. 오즈는 함부르크의 그라피티 작가다. 그는 대부분 웃는 표정의 이모티콘, 나선, 고리를 그리거나 그냥 자신의 상징인 'OZ'를 검은 색, 갖가지 색으로 도로 표지판에, 선로에, 담벼락에, 건물 벽에, 전기 배선함에, 다리밑에 그린다. 많이도 여러 곳에 그리는 것 같다. 그는 8년 이상 징역을 살았고 예술운동가들은 그에게 자유를 주라고 했다. 그는 20건에 달하는 기물을 파손했고 검사는 오즈를 기소했고 다시 1년 6개월 자유형을 선고 받았고 집행유예는 없었다. 동일전과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의 변호사는 예술의 자유를 근거로 댔다. 헌법 제5조 3항 "예술과 학문, 연구와 교수는 자유롭다." 오즈를 추종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의 그라피티를 흉물스럽다, 낙서이다, 기물파손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같으면 주관적으로 기발하다, 위트있다, 재미있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관적인 생각으로만 법적인 규정을 할 수 없다.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빈 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예술이라는데 아무 논란이 없다. 왜,,, 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것이 예술 작품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왜,,, 모차르트의 음악, 세익스피어의 극본과 연극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으로 예술로 인정되는 장르가 있다. 미술, 그래픽, 조각, 건축 같은 조형예술, 문학과 음악, 연극, 영화, 무용, 노래같은 공연 예술, 이런 작품들은 '형식적 예술 개념'에 속한다. 작품의 형식이 예술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그라피티는 고전적 미술이 아니다. 전통적인 범주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라피티가 예술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라피티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프랑스의 예술가 마르셀 뒤샹은 1917년 뉴욕의 위생도기 상점에 가서 변기를 샀다. 그는 이 소변기에 서명을 하고 작품이름을 '샘'이라고 정해 미국 독립미술가협회의 예술 박람회 '빅쇼'에 제출했다. 협회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장난이라고 생각해서 작품에서 제외했다. 뒤샹은 자신이 일상용품을 선택해서 예술로 승화한다면 예술이라고 했다. 그의 예술에 대한 선언으로 예술 개념에 대란 토론을 불러 일으켰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인가한 '샘'의 모작이 현재 세계의 박물관에 있다. 뒤샹은 예술계의 규칙에 저항했고 그것으로 새로운 예술을 이루었다. 그는 예술은 창의적 행위의 결과라는 당대의 지배적인 예술 개념을 바꿔 놓았다. 뒤샹은 규칙을 따르지 않고 의심하고 새로운 형식을 찾고자 했다. 예술 개념은 모차르트와 셰익스피어의 전통적인 형식으로 제한 될 수 없다. 개념정의는 곧 한계를 뜻하고 예술가는 바로 그런 한계를 시험하고 깨고 제거하는 일을 한다. 예술은 한계를 깸으로써 모든 개념 정의를 없앤다. 예술이라는 존재 자체가 개념 정의를 거부한다. 이런 견해는 법정밖에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예술 개념을 가진다고 해도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법정에서는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가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다. 그러므로 법정에서는 정의를 명확하게 내려야 한다. 어떤 법에서 국가에게 개를 보호하라고 요구하면 국가는 어떤 동물이 개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국가는 개를 만났을 때 개를 보호할 수 있다. 어떤 동물이 개냐 아니냐가 명확히 해명되지 않은 채 열려 있어선 안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법은 정확하게 개념을 정의하고 결과는 절대로 열려 있어서는 안된다. 영문학을 공부할 때 이론도 다양하고 다원적이고 결과는 열려 있다. 물리학을 공부할 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수학이나 이론적으로 정확하게 결론을 내리지만 또 다른 결론이 나오면 그것도 사고실험으로 받아 들이기도 한다. 경영학을 공부할 때는 사람에게서 돈을 잘 빼내는 열린 결과를 얼마든지 받아 들일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법은 사람의 목숨과 인생이 달려 있다. 법은 세상이 변하는대로 같이 변하고 예측가능성도 있어서 미리 예측도 해내야 한다. 사고관이나 세계관은 세상을 보는 틀을 만들어 주고 확장시켜 주기도 압축시켜 주기도 한다. 국가가 예술을 보호해야 한다면 예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 무엇이 예술의 자유를 누릴 수 없는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뒤샹처럼 내가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라는 것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면 모두가 예술의 자유를 근거로 교묘히 빠져 나간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잣대가 필요하다. 객관적인 잣대도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 많이 알고 싶다. 예술에 대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 국가는 개념 정의가 가능한 것만을 보호할 수 있으니 법원은 모든 개념 정의를 거부하는 개념의 정의를 찾아야 한다. 뒤샹의 샘을 다시 생각해 보면 소변기는 수많은 바와 식당에도 있다. 식당 화장실에 설치된 소변기는 그냥 소변기에 불과하다. 아무도 그것을 보고 뭔가 더 숙고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뒤샹의 소변기는 전 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숙고하게 했다. 뒤샹의 소변기를 보면서 뒤샹은 왜 이것을 전시했을까,,예술이란 무엇인가,,그는 왜 이것에 샘이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R.Mutt'라는 서명은 무슨 뜻일까,,뒤샹이 미쳤나,,아니면 우리에게 뭔가 기발한 것을 말하여는 것일까,,식당의 소변기는 무한히 많은 발언을 내포할 수 있다. 우리는 뒤샹의 소변기에서 소변기, 일상용품, 산업화, 예술 개념, 예술계, 독립미술가협회, 뒤샹, 관람객등 저마다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식당의 소변기는 모두에게 그저 소변기일 뿐이다. 위의 얘기로 우리는 무엇이 예술인지 확정할 수 있다. 해석이 필요한가,, 해석할 여지가 있는가,,그 자체 이상의 어떤 발언을 내포하는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가,, 예술은 자신의 인상, 경험, 체험을 시각적으로 그러내는 창조적 활동이다. 개념 정의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범주 밖에 있는 예술과 비예술을 구별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예술을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순간, 그의 작품은 이미 해석된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최소한 법적인 의미에서 예술에 속한다. 개념 정의의 장점은 이러한 정의에 적대적인 예술가의 작품들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은 열린 예술 개념이 있다. 예술의 자유는 질적 차이가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야 판사가 예술 심판자가 되거나 자신의 취향에 따라 예술의 자유를 좌지우지 못한다. 손재주가 전혀 보이지 않고 미학적이지 않은 작품이라도 해석의 여지를 주는 한 예술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그라피티가 예술이냐, 기물파손이냐, 그것이 아름다운지, 그리기 까다로운지, 재능이 보이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그저 선하나에 불과하냐 아니면 그 선에 해석의 여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라피티는 많은 해석을 낳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라피티가 예술이라면 이젠 자유의 범위를 따져 봐야 한다. 예술의 자유를 근거로 오즈는 자신의 예술 활동을 위해 타인의 소유물을 맘대로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예술의 자유도 종교의 자유처럼 불가침이다. 종교의 자유처럼 예술의 자유는 일반 법률의 조항으로 제한될 수 없다. 헌법은 다른 가치도 보호하고 헌법에 명시된 모든 조항은 어깨를 나란히 한다. 헌법은 예술뿐 아니라 사유재산도 보호한다. 어느 쪽도 다른 것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 그래서 둘이 싸우게 되면 헌법의 논리적 한계, 헌법의 내재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가 가능한 한 충분히 보호될 수 있도록 이런 내재적 한계를 없애야 한다. 이 논리는 삶은 달걀 두개를 비좁은 유리컵에 넣는 것과 같다. 달걀 두 개가 어느 쪽도 뭉개지지 않고 유리컵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도록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서로 양보해야 한다. 예술이 헌법의 다른 가치와 충돌할 때 최고의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라피티의 경우 예술의 자유와 사유재산 보호 사이의 최고 타협점은 무엇일까,,, 오즈의 그라피타는 환경에서 조작된 것이고 그의 예술은 거리의 예술이므로 공공장소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에서만 그의 작품이 본래의 발언을 할 수 있다. 오즈는 반 고흐처럼 화실에 가둘 수 없다. 그에게 거리를 금지하는 것은 곧 예술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예술을 위해 타인의 사유재산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사유재산 보호는 예술의 자유에게 이것을 양보해야 한다. 그럼 그반대도 생각해봐야 한다. 예술가라도 타인의 사유재산을 맘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허용되면 물감을 훔친 예술가조차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내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으면 소유주의 자유를 해치는 것이다. 타인의 사유재산을 이용하는 예술은 장기적인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이것이 예술의 자유가 사유재산 보호에게 해야 하는 양보이다. 오즈는 잘 지워지는 색료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면 사유재산 보호아 예술의 자유가 조금씩 양보해 유리컵 속의 두 달걀처럼 서로 공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최고의 타협점이다. 하지만 오즈는 이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잘 지워지지 않는 스프레이를 썼다. 그래서 판사는 그에게 기물파손으로 14개월 자유형을 선고했다. 오즌 항소했고 고등법원은 자유형을 벌금형으로 바꿨다. 그는 벌금 1500유로를 냈다. 한화로 200만원 정도 된다. 기물 파손 판결도 유지되었다. 오즈는 예술이 끓임없이 한계를 없애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동시에 예술의 자유에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이 책은 평등에 대해서도, 고문을 하는 것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상식적으로 규범적으로 깊이 질문을 한다. 답을 구하는 것도 표면적으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은 의문이나 질문을 하지 못하게 답을 해준다. 그래도 의문은 조금 남을 수 있고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있다. 이 책은 근원적이고 법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계속하게 한다. 이 책을 읽을수록 더 고민하게 되고 독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될지 더더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뒷 부분을 보면 아빠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만약 법이 개념정의를 정확히 하고 혁신적인 질문을 끝까지 한다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쓰는 일도 없고 정의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의로운 법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조인이 되어야 하고 개념정의와 질문의 능력, 닫힌 결말을 찾는 과정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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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거나 기분이 나빠지거나 어렵다거나 하는 각각의 이유로 이제껏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가 있다. 법도 그런 분야의 하나이다. 동시에 조금이라도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도 혼자 동떨어져 살아갈 수 없다. 자연 속에서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맺고 사회와 국가에 소속되어 살아간다. 이 시스템 안에서 목숨 부지하고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법이 생겨난다. 법은 때로 사사로운 사항까지 제재할 수 있고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기때문에 기본적인 이해는 필요하다는걸 나이먹을수록 깨달아간다.
이제 조금 알자는 사람에게 법이 얼마나 정의로운지에 대한 질문은 너무 까다롭다. 법을 제대로 모르는데 정의로운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사람들의 입에, 법도 있는 사람 편이다 라는 설움섞인 말이 흘러나오는걸 어디선가 주워들은 기억만을 떠올리게된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형편없다는 걸 알겠다. 그래서 읽어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 이 책이라면 그 대답도 알려주지 않을까 싶었다. 적어도 자기 대답을 할 수 있게 생각하고 판단할 근거라도 줄 것이다.
독일법과 독일의 사건 사례들을 통해 다양한 주제의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목차를 보니 어느것 하나 관심이 안가는 것이 없었고 곱씹을수록 궁금해졌다. 종교가 없는 내게도 종교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될지, 나 자신의 문제를 비롯해 결혼이나 자식문제에 대해서도 말하고 더 나아가 형벌과 죽음까지도 이야기한다. 내가 예술가는 아니더라도 어느날 예술가라고 칭하는 사람으로부터 사생활 침해 혹은 사유재산의 파손을 경험할 수 있다. 정말 거리가 멀어보이는 마약에 취한 권리의 내용도 흡연이나 음주와 같이 수위를 낮추니 또한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없어졌다. 멀고 가까운 정도는 있겠지만 누구라도 겪을 수 있고 살면서 한번은 들어봤을만한 친밀한 주제들의 문제에 법이 어떻게 사고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판단하는지 이 책은 보여준다.
사람들은 법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 이제껏 한번도 명확한 이미지나 개념을 갖고있지 않았지만 책을 읽은 후 느낀 법은 막연하게 느끼던것과도 참 많이 달랐다. 법은 참 견고했다. 불가침의 영역이 몇가지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해할 수 없었다. 그게 국가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와 대등한 영역에 속한 보장이 더 있었고 이들끼리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보장의 정도 차이가 내게 이해되지 않게 다가오기도 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인격 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것, 당연히 좋다. 그런데 이것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의 것이면서 생명권은 그 아래 단계에 있다고 한다. 법은 강하고 강제력이 있으며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인지상정과는 관련이 없다는걸 알았다. 사람을 지키고 사회와 평화로운 현실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외상황을 두어 생명을 앗아갈 수 있고 자식을 만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
만약 법이 그대로 유지만 되고 있다면 나는 꽤 실망했을 것같다. 다행히도 책을 읽으면서 법이 시대적 현실에 따라 바뀌거나 추가되는 모습을 확인했다. 법에는 현재의 평화를 보호하는 의무가 있다. 과거의 평화가 더이상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을때 법은 그 모습을 바꿀 수 있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법이 바뀌는데에 사람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불편하고 공평하지 못하다고 해도 가만히 있으면 법은 바꾸지 않는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야 하고 사회가 달라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렇게 해서 동성애 인정과 관련법 추가라는 변화가 생겼고 법적 아버지와 생물학적 아버지 양쪽의 권리가 같아졌다.
법은 만능이 아니다. 법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명쾌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 법이 스스로 가진 한계가 존재했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의 충돌이 생겨날때 법은 어느쪽으로도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양쪽 모두의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내야 했다. 이전에 읽은 현직 판사의 소설이 떠올랐다. 누가봐도 벌받아야 할 놈이 분명한데 뭘 그렇게 재고 따지나 싶었던 마음이 없지 않았다. 답답하게만 보이던 그 모습이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된다. 독일의 법이 최우선으로 두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슬쩍 본듯한 기분이다. 우리나라의 법은 어떨까. 법치국가로서 같은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젠 우리나라의 법 이야기를 하는 책을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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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 도덕, 상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은 정말 정의의 편인가? 정의로운가? 법을 가지고 싸우는 작태를 보면 도덕과 정의는 뒤로하고 이기기 위해 말장난으로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의뢰인의 상황이 무죄인가, 유죄인가. 유죄라면 형량을 최대한 줄일 수 있게 증거를 갖추고 짜맞추어 변호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위해 컨셉을 잡고 이게 맞다 설득하려 주장한다. 그게 내가 그동안 봐온 법이다. 세상물정 모를 적엔 법은 늘 약자, 혹은 억울한 사람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법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법은 냉정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법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야 나의 억울함을, 본인 스스로를 법을 이용해서 보호할 수 있다.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법대로 하자는 말은, (이 말에는 내 상식과 도덕적인 성향이 옳다 라는 말이 내재되어있다.) 그냥 " 너 한번 된통 당해봐라"하는 말과 같다. 법은 결코 어수룩한 사람의 편이 아니며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같지 않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다고 법이 당연하게 내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에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억울한 일 당해서 혼자 조율하려고 하다가 안되서 억울한 마음을 인터넷에 글로 토로 하다보면 어느새 명예훼손에 손해배상청구 당하기 딱 좋은 세상이다. 억울한 일이 원인이 되어 글을 쓴 것 뿐인데 법의 세계에선 억울한 일은 그 일대로 따로. 글 올려서 상대방 혹은 상대방과 관련된 사람이 입는 명예훼손과 손해는 또 따로라고 한다. 나같은 무지랭이들은 화가나서 이불킥하기 딱 좋은 세상이다. 나 속상하다고 임금님귀는 당나귀귀!!! 하고 소리지를 수도 없는 세상이란 말이다. 옛날과는 다르게 요즘 사회는 법과 그나마 많이 가까워졌지만 결국 법을 이용하는 것은 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본인의 상식과 도덕만 생각하다가는 정의로울 줄 알았던 법에 배신당하기 쉽다. 그래서 이 책에서 법이 얼마나 정의로운지를 말하느냐고? 아니. 법이 정의롭다고 말하지도, 정의롭냐고 반문하지도 않는다. 그저 법은 이런 애야...라고 여러 사건을 토대로 이야기를 해준다. 법이 어떻게 생각하고 풀이되어서 그런 판결이 내려질 수 밖에 없었는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법으로는 어떻게 생각이 되고 풀이가 되는지 독일 법 기준으로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덕분에 냉철한 법의 세계를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법풀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이있다. 여러 각도로 바라보고 많은 생각을 하고 연관될 다른 상황도 고민해서 결과를 낸다. 컨셉놀이를 하는 것이 한국 법률계이고 어느 한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으로 법리를 고뇌하는 것이 독일법률계인가 의문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때 우리의 법이 나를 지켜줄거라고는 믿지 않는다는 반증이 아닐까싶다. 책의 바탕은 독일법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한국사회에서 따라가지 못하거나 없는 법들이 있을 것이다. 동성애 관련법이라든지...우리 나라에 100% 맞지 않는 법이야기라고 해도 법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법이 왜 그렇게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는지, 억울한 상황에서 나는 왜 물러서야 하는지를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법은 처음 정해진대로 영원하지 않고 세월마다 바뀌는 인간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함께 변하는 생물과도 같다. 이건 한국법도 마찬가지리라. 소수의 권리가 보장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한국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명언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만든 법은 정의를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법은 정의롭지 않다는 말인가... 기득권 세력이 만든 법으로 누군가의 이익만을 보장해주는 법으로 변화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정의를 이길 수는 없어도 정의를 지키는 역할은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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