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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성, 『나는 골목에 탐닉한다』(갤리온, 2009) 주말마나 서점 나들이하는 것이 조촐한 즐거움인데, 골목길 포토 에세이 인 이 책은 그저 지나치다 짚어들었습니다. 우리 동네인 북아현동과 충정로를 언급한 대목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헌데, 집에 와서 책을 들춰보고 다소 실망했습니다. 「재개발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우리 동네가 '마포구 북아현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마포구에는 아현동이 있고 북아현동은 서대문구입니다. 또 「형이 보고 싶다」의 '서대문구 충정로3가동'이라는 말도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그냥 '충정로'라고만 말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사소한 착오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번지수로만 통하는 우리 동네에서 '호반길', '능동길', 능안길', '명수우물길' 등 운운하는 것은 좀 오버한 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중앙여고 자리에 장조(사조세자)의 맏아들인 의소세손 능인 의령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능동쪽 길, 능안쪽 길에 각각 능동길, 능안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69쪽) 이런 구절은 '형용모순'에 해당합니다. 왜 그런지 잠깐 설명해볼까 합니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나라는 주소가 번지수로 되어 있습니다. 도로명으로의 개명은 현재 진행 중일 뿐입니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도로명을 우선으로 주소를 작명합니다. 저는 양자 간에 일장일단이 있다고 보며 도로명으로의 주소 변경을 찬성하는 축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소는 모르는 사람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하는데, 도로명을 기준으로 하면 집을 찾아가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번지수의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무허가로 난개발된 오래된 동네는 번지수로 찾아야 자장면 배달원이나 우체부에게 유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저는 좀 번거롭기는 해도 도로명으로의 개명을 반대하지 않지만 위 인용한 구절이 '형용모순'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골목길이란 과거를 추억하기 위함인데, 최근 개명된 이름으로 과거를 회억(回憶)하는 제스추어가 비논리적일뿐더러 진실성이 떨어져 그 골목길을 찾아가는 감회가 의상(衣裳)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없어지기 전에 꼭 가야 할 여행지 맛집 967』 여행책의 서평을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여행작가라는 사람이 책에 올린 지도가 대부분 틀려있어 방위 감각이 없는 사람이 남에게 여행안내서를 쓴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목조차도 비논리적입니다. 잘 되는 맛집이 없어질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갖고 무진장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마 제가 그런 축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한옥의 그 우수성을 호평하는 글이 그렇습니다. 한옥은 건축학적 양식이나 자연친화성 등 장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상 또는 부모와의 공존이라는 사상을 제쳐두고 한옥을 거론해보았자 지엽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결국 말이나 글이라는 것은 제 삶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북아현동과 충정로를 합쳐 충현동으로 바뀐 우리동네에서 40년 넘게 살면서 뭘 느꼈는가 하는가 질문이 있을 수 있겠는데, 그것은 전에 제 블로그에 http://blog.yes24.com/donghlee 올린 짤막한 글로 대신하겠습니다. 마당 나는 아파트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 1967년 가을 무렵 현재 집으로 이사 와서 사십년 넘게 내처 살고 있다. 낡은 원룸형 오피스텔인 내 사무실도 10년 가깝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보니 이제는 터줏대감이 되어버렸다. 내게 소유로서의 부동산 또는 이사에 대한 개념이 부재한 것은, 이처럼 한번 정주하면 외적 요인이 발생하지 않는 한 여간해서 움직이지 않으려는 습성과 무관하지 않다. 오피스텔만 해도 처음 오시는 분은 좀 더 번듯한 곳으로 옮기라고 권하기도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주로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어 낮에는 외려 조용하다. 아예 문을 열어두고 있기까지 하다. 통풍이 잘 될 뿐만 아니라 계단이나 복도 같은 공용공간을 나 혼자서 사용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겉보기엔 작지만 여백이 많다. 인근에 새로운 사무 빌딩이 많이 생겼지만 대부분 기교적이고 밀폐된 느낌이 들 뿐이다. 십오 년 전쯤 직장 생활을 할 때 회사 후배가 우리 집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당시 유명극장이던 단성사를 운영하던 집안의 아들이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압구정 키드였던 그는 이렇게 사는 집도 있느냐면서 눈물을 흘릴 뻔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빈민가 골목 풍경만 전문으로 찍은 김기찬이라는 사진작가가 있었는데, 그의 중림동, 만리동, 공덕동, 도화동 등 도시 서민의 사진이 바로 그즈음 북아현동 우리 집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배는 어머니에게도 종종 보여드리곤 하는 김기찬의 사진집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알지 못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증명사진 밖에 없던 내가 우리 동네와 어머니를 찍기 위해 사진기를 구입했던 것도 그 이야기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많이 읽힌다는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를 보더라도 정작 내 관심을 끈 대목은 다른 데 있었다. 「언젠가 선생님께 왜 대형 출판사를 알아보지 않으시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영어 단어 'Esoteric'을 아느냐고 되물으셨다. 이 단어의 뜻에는 작은 것의 소중함, 크게 벌였을 때 사라지고 마는 비밀스러운 즐거움이 배어 있다고 하셨다. 그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도 않고 또한 책이 팔리지 않으면 대형 서점의 진열대에서 곧바로 사라지고 마는 시장원리를 따르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150쪽, 옮긴이 후기 중에서 내가 여성월간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련된 인테리어에서 조화(造花) 같다는 거북함을 느끼는 이유도 세월의 풍화(風化) 속에 살아남은 비밀스런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좀 더 편안한 곳으로 모셔야 한다는 조언도 수십 년 전 주역인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면 개인적인 소견에 불과할 따름이다. 어머니의 무대로서 우리 집이 대부분 다세대주택으로 변한 우리 동네에서 차별화되는 이유는 마당 때문이다. 그 마당 하나만으로 '동네 유지'가 될 수 있는 곳이 달동네인 것이다. 지나가다가 불쑥 들어와 '빈 방 있어요?'라고 묻는 생면부지의 사람도 있었다. 꽤 많은 하숙생이 머물다 갔어도 비좁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던 것도 마당 덕분이다. 나는 넓은 아파트조차 갑갑하게 느끼는데 그것은 거실이 원형감옥의 감시탑처럼 여겨지는 탓이다. 마당은 거실과 다르다. 방마다 비밀스런 이야기를 간직할 수 있게 해주면서도 그 개성적인 방들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어머니 역할을 한다. 내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공존'할 수 있었던 것도 마당의 힘이 크다. 왜 외할머니는 7남매 중에서 제일 가난하면서도 성격이 편편치 않은 아버지가 있는 우리 집에만 머무시려고 했을까? 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첫째 이유가 되겠지만 마당이 보이지 않는 매력으로 작용했으리라. 게다가 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얼마나 아늑한가? 눈보다 비를 좋아하는 이유가 빗소리 때문인데 고층아파트에서는 빗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꽤 실망했다. 아니 빗소리도 듣지 못하고 사신단 말이오? 하지만 그보다 더 비밀스런 소리가 있다. 언젠가부터 밤에 자다보면 똑, 똑, 똑, 낙숫물이 떨어졌다. 아주 나지막한 소리여서 처음에는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비도 안 오는데 웬 소리지? 방바닥으로 전해져 귓가에 울리는 그 소리는 날마다 조금씩 커져갔다. 그리하여 이내 조그만 물웅덩이를 만들고 나서 어느 날부터 갑자기 폭우처럼 쏟아졌다. 한때 마당의 주연배우는 말년에 먼 곳을 향해 소실하는 노파의 단역을 겨우 맡을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관록의 지팡이로 작은 빗방울을 떨어뜨리더니 마침내 집채 같은 강물을 흐르게 했다. 그렇게 마당의 빗소리는 내 심안(心眼)을 열어주기도 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