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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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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의 원형을 찾아서!기독교 신앙을 가진 신앙인들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먼저 만난다. 구세주로 영접하는 경험이 없이는 ’스승’ 예수, ’선생’(교사) 예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적인 영역을 제거하고 ’역사적 예수’와 그의 가르침만을 본다면 어떨까? 구세주 예수가 아니라, 교사 예수 또는 철학자 예수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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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의 원형을 찾아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신앙인들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먼저 만난다. 구세주로 영접하는 경험이 없이는 ’스승’ 예수, ’선생’(교사) 예수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적인 영역을 제거하고 ’역사적 예수’와 그의 가르침만을 본다면 어떨까? 구세주 예수가 아니라, 교사 예수 또는 철학자 예수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리스도 철학자>는 철학자이자 종교사회학자인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철학적이고 종교사회학적인 시각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 철학적인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의 분석’을 시도한 책이다. 역사 가운데 실제했던 예수와 예수의 생애, 그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변형되어온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추척하여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그리스도의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가르침의 본질적 핵심에 가닿고자 하는 학문적 작업이다. 그렇다. 이 책은 철저히 철학자이자 종교사회학자의 시각에서 본 예수의 모습이고, 예수의 가르침이고, 사회 안의 하나의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이다. 신앙인들 입장에서는 본질이 제거된 논의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학문적인 시각과 입장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그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는 제자들과 교회의 모습이 사회에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일 것이다. 

<그리스도 철학자>가 내세주는 주장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제도화된 교회를 통해 종교가 되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상당 부분 왜곡되었고 오히려 정반대의 길로 나아갔다고 비판한다. 예수가 자유케 한 사람들을 종교 권력이 다시 노예삼고 있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철학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휴머니즘’이라고 말한다. 교회는 인간의 이성을 빛으로 내세운 계몽주의자들이 신본주의에 반하여 ’휴머니즘’을 내세웠다고 적대시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이 ’휴머니즘’이야말로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르네상스 시기 종교개혁 운동과 더불어 휴머니즘 운동이 태동한 사실에 주목한다. 근대의 탄생을 불러온 휴머니즘의 본질적 가치들이 원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그 뿌리는 내리고 있다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주요 논지이다. (근대 정신의 뿌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오히려 교회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고 종교와 거리를 유지하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학자들에게 더 반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그리스도의 영향 아래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스도 철학자>에서 말하는 저자의 논지에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화되고 제도화되고 권력화되고 있는 교회를 향한 ’쓴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하나님이 주신 풍성함에 취하여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이 땅에 권력의 초막을 짓고 배부른 생활을 하느라 어느새 예수님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비신앙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착한 행실을 통하여 사회로부터 칭송을 들었던 초대 교회와는 달리 오랜 세월 교회는 세상에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의도된 것’이 아니라 하여도 종교 권력화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변질시킬 수 있음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예수를 믿는 신앙은 종교를 초월하고, 윤리적인 가르침을 초월하지만,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신앙인들은 개인 구원의 차원을 넘어 예수님이 주신 새계명의 의미와 사회적 의무를 진지하게 성철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같은 혁명적인 가르침을 사회에 선포한 사람은 없었고,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보여준 자도 역사에 없었다. 그 사랑을 실천하여 우리가 바로 그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철학적인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얼마나 혁신적이고 충격적인 것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인지 확인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현 사회를 이끌어가는 근대 정신의 뿌리를 이룰 뿐만 아니라, 21세기는 물론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의미있는 가르침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함을 깨우쳐준다.

c***1 2009.09.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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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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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 프래데릭 르누아르 저   역자가 번역하게 된 과정과 동기를 보면서 진주를 발견한 기분, 보물을 캐내는 기분이었을 것 같다. 자신이 선택한 몇권의 책 중에 관심밖에 있었던 책이었는 데 번역하게 되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철학자라는 제목을 접하였을 때,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철학적 , 신학적 배경을  엿볼 수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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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 프래데릭 르누아르 저

 

역자가 번역하게 된 과정과 동기를 보면서

진주를 발견한 기분, 보물을 캐내는 기분이었을 것 같다.

자신이 선택한 몇권의 책 중에 관심밖에 있었던 책이었는 데

번역하게 되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철학자라는 제목을 접하였을 때,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철학적 , 신학적 배경을  엿볼 수 있었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본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펼치고자 하는 정신과 사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했다.

감하지도 빼지도 않는 그리스도만의 사상을 전하고자 했다.

인본주의를 낳게 한 계몽주의에 밀려 그리스도의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는 시대에

그리스도가 추구하였던 복음과 삶을 인본주의에 젖어있는 현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나누고자 했다.

설득이라기보다는 우리들의 현실속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춰내고자 했다.

저자는 "예수는 실제로 존재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예수의 실존에 대해서 질문함은 여러가지 배경을 두고 있다.

철학적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달이라는 복합적인 영향으로 18세기 말 유럽에서는 모든 전통적 사과가

비판적 이성의 여과를 거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그리스도의 실존보다는 개인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며 개인의 삶이 여과되지 않고 표현되기에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춰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실존에 대해서 분명하게 저자는 설명하면서 복음서의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의 그리스도임을 증명코자 함도 보인다. 

계몽주의 시대에 비기독교적 텍스트들 가운데 나사렛 예수가 언급된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그런 텍스트들도 예수라는 역사적 실존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설명하면서

실존의 차원을 역사적 예수로 설명하고자 함이 보인다.

저자가 이 책에서 "그리스도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즉 가장 근본적이며 윤리적인 그의 가르침이

더 이상 중세 교회의 문을 통해 인간들에게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리스도의 철학은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의 창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도달코자 했다고 증언한다.

교회 제도가 인간의 존엄과 인식의 자유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잔혹한 종교재판을 통해

십자가형에 처했던 동안,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다른 길, 즉 휴머니즘을 통해 부활되었다"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설명이 이 책의 주된 주제이다.

철학속에 신학, 신학속에 철학의 관계가 아닌

그리스도와 사람과의 관계성을 찾고자 함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최상을 갖도록 함이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의 결과이다.

그리스도 또한 인간의 존엄성과 최상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 이러한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인간의 가치와 존재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와 존재가 그리스도의 사랑속에서 더욱 빛난다는 것이다.

결국 !

철학과 그리스도의 만남, 사람과 그리스도의 만남을 이끌어서

복음서에 기록된 "있는 그대로"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라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결국 사랑과 정의, 믿음과 화해, 자유와 평등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류를 새롭게 하며 정죄와 비판으로 가득한 세상을

용서와 화해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법(윤리, 도덕)에 자유한 자들은 착한 자들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상법과 성경의 법을 함께 해야 착한 자들이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그리스도의 참된 가르침이 법이라는 테두리안에 가둬

용서와 사랑으로 하나 되어 살기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기독교가 더욱

비판과 정죄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케 하는 책이다.

다시금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있는 복음서의 정신으로 살도록 외치는 저자의 마음을 읽게 되었다.  

 

저자 소개

      프레데릭 루누아르는 철학자이며 종교사학자로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개원연구원이다.

      잡지 종교의 세계 편집장이기도 한 그는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다수의 에세이들과 역사

      소설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저서 : 『책임의 시댄』『불교와 서양의 만남』『신의 변형』『비밀』『다빈치 코드 연구』『

        천사의 약속』『오라클 델라 루나』『종교사 개론』『신의 선의』『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등이 있다.

 

p***1 2009.09.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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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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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그는 보편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 가르침도 전파했다. 즉 비폭력,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  정의와 나눔, 집단보다는 개인의 우위, 선택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것, 정치와 종교의 분리, 이웃을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과 적까지 사랑하도록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드러냄에 기초하고 있으며, 따라서 초월적인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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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그는 보편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 가르침도 전파했다. 즉 비폭력,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성,  정의와 나눔, 집단보다는 개인의 우위, 선택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것, 정치와 종교의 분리, 이웃을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과 적까지 사랑하도록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드러냄에 기초하고 있으며, 따라서 초월적인 전망 속에 각인되고 있다."(P34)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그리스도 철학자에 대해서 호평이나 비평은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모든 이유와 원인 그 어떤 것을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까지 내어 놓으며 하고자 했던 그 사랑.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본 메시지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이 의도하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350Page에 달하는 이야기의 초점과 논의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이 책은 비평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속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뜨거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이 책에 대한 평가는 호평이 될 것이다.


프랑스인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쓴 그리스도 철학자. 굉장히 객관적인 시선에서 그리스도를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야기 하며, 변질되어져 버린 지금의 그리스도교가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중심의 관점이 다분하지만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독교인 천만의 한국 교회가 가진 고질적 문제점과 유사한 내용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왜 이러한 책이 현시점에서 읽혀져야 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책의 가진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리스도 전후의 모든 상황이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되어져 있다는 점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역사적인 객관성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를 바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기독교가 어떻게 변해져 갔는지, 또한 그의 복음이 어떠한 경로와 모습으로 바뀌어졌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되어져 있다. 많은 기독교인이 나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전후 그리고 역사적 배경이 말하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을 잘 모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무지 속에 알게 됨의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철학자이다.


책의 구성은 일곱 장으로 나뉜다. 일장에서는 성경의 진위 논란과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 다룬다. 이장에서는 그리스도가 가르치고자 했던 그리스도의 윤리에 대해서 설명한다. 삼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 기독교가 탄생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교회의 역사를 설명한다. 사장에서는 그리스도교가 공식 종교로 채택됨으로 맞이하게 되는 변화에서 대해서 설명한다. 오장 및 육장에서는 근대 사회속의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리고 칠장에서는 현재 기독교가 잃어버린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전반적으로 조금은 생소한 내용이고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 철학자는 예수의 생애를 지나 종교가 가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맹목적인 광신으로 변해 버린 문제점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하게 지적한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이야기처럼 그리스도가 원했던 진정한 가르침을 왜 후대에서는 그렇게 쉽게 잊어버리고 변질 시켜버렸는가? 평등, 개인의 자유, 여성의 해방, 권력과의 거리, 비폭력과 용서의 메시지,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끝없이 이야기 했던 인간을 사랑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하지만 독단적이고 집단 이기주의로 변모하고, 정치권력과 손을 잡은 교회. 세력의 확장과 유지의 명목, 권력의 유지를 위해 폭력을 불사하는 종교집단. 세상의 손가락에 지탄을 받게 된 그리고 빛과 소금의 역할은커녕 오히려 사회악의 존재로 치닫는 모습들. 그리스도 이후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 일컫는 자들이 모습이 아닌가? 


왜 믿어야 되는 가라는 질문도 중요하고 어떻게 해서 믿어야 되는지에 대한 해답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본질적 정체성을 잃어버린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 말로는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우습게도 너무 쉽게 옭아매는 여러 가지 종교적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고자 하는 많은 이들을 어려움에 도달하게 하고 있다. 마치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당시에는 혁명적인 사상을 설파한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인류애를 보이신 분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어떠한가? 수직적 권력 계층과 휴머니즘을 배제한 가치관이 대부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종교 지도자라는 특권을 남용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가? 그리고 그분의 참된 가르침을 얼마나 많이 잃어 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돌아갈 때이다. 예수 그리스도 본연의 가르침에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절대적인 계명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 과연 우리는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그를 믿는다고 이야기 하고 있을까? 실로 많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책이다.



g******4 2009.09.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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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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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예수의 일생을 나열하는 이야기식의 책도 아니요 쉽게 읽히는 책도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한번쯤 읽어볼 책이 아닐까 싶다. 철학서는 몇 장만 읽어도 졸음이 몰려오는 체질 때문에 다빈치 코드식의 책처럼 술술 읽힐 줄 알고 덤벼들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그리스도 철학자, 제목 그대로의 책이었다. 하지만 한 챕터 한 챕터를 읽어나갈 때마다 아하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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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예수의 일생을 나열하는 이야기식의 책도 아니요 쉽게 읽히는 책도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한번쯤 읽어볼 책이 아닐까 싶다. 철학서는 몇 장만 읽어도 졸음이 몰려오는 체질 때문에 다빈치 코드식의 책처럼 술술 읽힐 줄 알고 덤벼들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그리스도 철학자, 제목 그대로의 책이었다. 하지만 한 챕터 한 챕터를 읽어나갈 때마다 아하 이런 것은 이렇구나...하는 신학에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책이었다.

 

과연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동전으로 주조되고 역사적인 기록이 확실히 남아있는 그런 존재인가 예수의 존재는. 오늘날 신화처럼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던져지는 첫 질문..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싶다. 안타깝게도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또한 정확히 AD 1년에 태어난 예수는 없지만 그보다 몇년전 혹은 수십년전에 존재했던 예수란 인물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이 처해진 예수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성경에서처럼 여러곳에서 그의 행적이 쓰여져 있으니 예수라는 존재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가 직접 지은 글이나 문서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예수의 사후 수십년이 지나 제자들이 기록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 요한복음을 통해서 그의 기적과 그의 사상과 그의 믿음과 그의 희생, 그의 순종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면 우리가 아는 예수는 이들 복음서에 기록된 것 뿐인데...오늘날 우리들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과 바램대로 살고 있는가.. 이 책은 오순절의 초대 기독교부터 로마시대, 중세를 거쳐서 완성되 가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여러가지 역사적인 사실들을 찾아보면서 우리들에게 전문 신학적인 지적 호기심까지 안겨 준다.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아 아직 반 밖에 못 읽었지만 읽을수록 감탄하게 되는 책이다. 내가 이것도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그리고 갑자기 성경말씀이 간절하게 읽고 싶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더욱 앎의 갈증을 느꼈던 성도들에게 이보다 더 좋을 책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초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목차에 나온 것처럼 기독교 원전들에 대한 이야기, 예수의 생애, 예수의 영성, 그리스도의 윤리, 초대기독교부터의 기독교 역사, 기독교적 휴머니즘, 근대 세계에서의 기독교, 현재 우리들을 각성하게 해주는 내용들까지..너무나 소중한 책이다. 물론 성경부터 찾아들고 말이다.

h*****o 2009.09.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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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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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의 철학(아마도 종교적 구원)을 포함한 기독교 이천 년사를 책 한 권에 넣는 작업은 수월치 않았으리라. 특히 프랑스 작가들의 책은 생소할 따름인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종교사학자인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이 엄청난 미션에 도전장을 던졌다.   역시 작가는 철학자답게, 종교적 측면보다는 철학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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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의 철학(아마도 종교적 구원)을 포함한 기독교 이천 년사를 책 한 권에 넣는 작업은 수월치 않았으리라. 특히 프랑스 작가들의 책은 생소할 따름인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종교사학자인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이 엄청난 미션에 도전장을 던졌다.

 

역시 작가는 철학자답게, 종교적 측면보다는 철학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서구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기독교가 최근 들어, 그 원류를 자랑하는 서구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잃어 가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왜 그렇다면 근대화가 상대적으로 먼저 진행이 된 서구사회에서 기독교가 날이 갈수록 쇠퇴하고 있는걸까. 그 유래를 작가는 2,000년 전에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강림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남긴 철학적 유산에서 찾고 있다.

 

먼저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의 전설로 <그리스도 철학자>를 시작한다. 재림한 예수를 기존의 종교인들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역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이미 입증된 바가 있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온 메시아를 당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패러디다. 그리고 작가는 현재 기독교에서 정경으로 인정되고 있는 복음서들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메시지들의 역사적이면서도 철학적 관점에 초점을 맞춘다.

 

평등, 개인의 자유, 여성해방, 사회정의, 권력의 분리, 비폭력과 용서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이웃사랑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공생애를 통해 직접 실천했다. 인간 개개인의 존엄에 대한 개념조차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에 예수가 제시한 윤리들은 기존의 가치들을 전복하는 가히 충격적인 이데올로기들이었다. 아울러 당시 기득권층에게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 들여졌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수구세력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가치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탄압하고 보자라는 행동양식을 따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종교적으로는 야훼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를 이루는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유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격렬한 반발의 결과였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해, 기독교는 기존의 유대교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들에서 그 변별력을 가지게 된다. 세례, 성찬예식 그리 제자도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의 말을 듣고 따른다는 실천의 층위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선언이다. 이렇게 복음서에서 거듭되고 있는 기독교의 핵심 덕목들은, 로마제국 시대에 들어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치적인 이유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으면서부터 변질되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과 박애를 기독교 가치의 전면에 내세웠지만, 중세시대 세속권을 장악하고 있던 교회는 복음서에 나오는 “있는 그대로”의 말씀보다 제도와 질서 유지라는 명목 하에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주요 가치에 반하는 행동들을 일삼게 된다. 특히 중세교회의 결정적 오류로 평가되는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그리고 십자군원정에 있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박해 이론을 도입해서 이교도와 기독교적 가치를 불신하는 이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적들을 박해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사항들은 중세교회의 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

 

한편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성과 신앙의 화해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아울러 수도원 운동을 통한 가톨릭교회의 자정적인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성직자들의 타락과 권력욕 그리고 교조주의는 명백히 복음서에 나오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고대인들의 지혜에 반하는 것으로 결국에 가서는 종교개혁의 철퇴를 맞게 된다.

 

아울러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로마 교황청의 반종교개혁적인 태도와 근대화에 기여한 비판적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서구인들 사이에서는 가톨릭교회가 근대화를 저해했다는 의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한다. 사유를 통해 이성을 종교로부터 해방시킨 데카르트를 효시로 하는 근대철학의 상당 부분이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중요시한 그리스도 본래 가르침의 재발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상당 부분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주장이다.

 

기독교의 근대화 과정 서술 중에서 흥미로웠던 점 중의 하나는 칼뱅의 예정설로, 인간의 구원은 신의 의지에 따라 이미 예정되어 있으며,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아울러 기독교의 탈신비화를 주도했던 니체와 더불어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금욕주의에 입각한 노동으로 자본주의의 합리화를 통해 기독교의 탈마법화에 기여했다는 점도 특이할만한 발언들이었다.

 

하지만 작가에 의하면 지금도 여전히 서구인들의 사고 속에는 부지불식간에 기독교적 가치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무신론자들을 제외하면, 꾸준하게 예배에 참석하는 정통 종교인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을 진 모르지만 신의 존재에 부인하지 않고, 사회문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축제, 예술의 양식들의 존재 그리고 비가시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이 책의 독자들을 프랑스 독자들, 나아가서는 유럽의 독자들에게 국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그 외의 독자들은 자동적 소외를 경험해야 했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책이, 프랑스 밖을 벗어나 멀리 한국에서까지 읽혀질지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리스도 철학자> 대단원의 막은 예수 그리스도가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이 짧은 예화에, 그리스도 가르침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모두 담겨져 있다. 그 중에서 복음서에 나오는 결정적 가르침 두 가지를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사랑이고 두 번째는 인식의 자유에 기초한 영적 삶의 내재화다. 작가는 이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목적보다 수단이 우선하는 작금의 가치 전도 현상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동시에 작가는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오늘날을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 간의 통섭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과 신앙의 화해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가름침 -> 가르침 (38쪽)
2. 가나한 -> 가난한 (93쪽)
3. 회회 -> 회화 (290쪽)
4. 대재사장 -> 대제사장 (310쪽)

h******1 2009.09.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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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시적 기독교와 내적인 영성의 철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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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선 ‘예수는 있다’고 하고 한편에선 ‘예수는 없다’고 한다. 예수가 있다고 말하는 진영 내에서도 ‘교회에는 예수가 없다’고 비판하는 내부개혁자들이 있다. 맞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실천적 행동 속에만 있다. 종교사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도 ‘교회에 예수는 없다’편에 선다. 그는 복음서를 근거로 원시기독교의 혁명적 메시지와 교회제도의 관행간의 모순을 지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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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선 ‘예수는 있다’고 하고 한편에선 ‘예수는 없다’고 한다. 예수가 있다고 말하는 진영 내에서도 ‘교회에는 예수가 없다’고 비판하는 내부개혁자들이 있다. 맞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실천적 행동 속에만 있다. 종교사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도 ‘교회에 예수는 없다’편에 선다. 그는 복음서를 근거로 원시기독교의 혁명적 메시지와 교회제도의 관행간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교회는 예수의 정신을 축소하고 희석하고 왜곡하고 심지어 전복시켰다고 고발한다. 기독교의 공식적인 제도화는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의 헤게모니적 재생산 과정이며, 동시에 기독교적 정신의 타락과 휴머니즘 쇠퇴의 과정이라고 비판한다.

책은 기독교 교회사를 초기 순교자들의 시대, 제도화의 시대, 가톨릭 권력의 시대 등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4세기 이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교회 제도는 인간이 희구하는 기적과 신비와 권위의 아우라를 합법적으로 보장받는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사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리스도의 철학보다는 교권 정치와 교회 권위의 정통성을 더욱 중시했다. 이런 제도화와 세속화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철학이 말살되고 사라졌다. 책은 안토니우스를 필두로 하는 수도원 제도와 십자군 원정, 종교재판 같은 흐름도 더불어 소개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저자가 ‘기독교’를 논할 때 그 의미의 세가지 형태를 구분한다는 것이다. 예배적 기독교(종교적 행사로서의 기독교), 문화적 기독교(역사적 문예적 유산으로서의 기독교), 비가시적 기독교(그리스도의 철학으로서의 기독교)가 그러하다. 저자 논의의 핵심은 비가시적 기독교의 철학과 윤리의 재발견으로, 기독교와 서구 근대성과의 내재적 관계를 논할 때 비가시적 기독교의 의미와 윤리적 가치를 거듭 강조한다.

저자는 예수를 대표적인 휴머니즘의 철학자로 재조명하고, 아울러 비가시적 기독교에 이미 내재한 휴머니즘의 근대적 가치들을 강조한다. 예수의 본질적인 가르침은 신의 사랑이라는 ‘아가페’를 기초로 만인의 평등, 개인의 선택의 자유, 여성의 해방, 사회 정의와 나눔, 권력의 분리(정치와 종교의 분리), 비폭력과 용서, 이웃에 대한 사랑, 인류애 등 휴머니즘 철학을 담고 있다. 저자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을 빌어 그리스도의 철학의 핵심을 재해석하고 외적인 종교에서 내적인 영성으로 인도하는 예수의 실천적 모습을 묘사한다.

저자는 서구 휴머니즘의 계보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먼저 르네상스 휴머니즘(제1기)은 루터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미친다. 부패한 가톨릭 교회와는 대항적인 신교 교회가 건립되고 교회권력에 대한 세속권력의 헤게모니가 대두된다. 뒤이어 18세기 계몽주의 휴머니즘(제2기)은 비판적 이성과 주체의 자율성을 토대로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대혁명을 촉발하고, 기독교 계몽주의와 비종교적 계몽주의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다 19세기 중반 무신론적 휴머니즘(제3기)에 이르러서는 휴머니즘과 기독교와의 단절이 발생하고, 신앙과 이성간의 극심한 대립이 일어난다. 그러나 여기서의 기독교는 협의적인 ‘예배적 기독교’를 의미함에 주의해야 한다. 근대적 이성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충돌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반기독교 성향이 조장되는 점, 그리고 유대—기독교적 유산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비판적인 선별을 행하는 문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미셸 옹프레의 말대로, 오늘날의 서구 문화는 기독교적인 시대에 여전히 머물러 있고, 진정한 무신론적 시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z***a 2009.09.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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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그것이 바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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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퇴근하고 돌아오는 지하철안에서 이책의 리뷰를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며 책을 이리저리 흝어보고있었다그러다가 내 오른쪽 자리에 앉은사람의 책에 눈길이 갔다.제목은 모르겠지만 신학에 관련된 몇가지 내용을 접했다 눈에 들어온게 바울이라는 이름이였으니까.그러다 다음정거장에서 비어있던 나의 왼쪽편에 앉은 아가씨가가방에서 성경을 빼서 읽지 않던가.그러다가 그 옆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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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퇴근하고 돌아오는 지하철안에서
이책의 리뷰를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며 책을 이리저리 흝어보고있었다
그러다가 내 오른쪽 자리에 앉은사람의 책에 눈길이 갔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신학에 관련된 몇가지 내용을 접했다 눈에 들어온게
바울이라는 이름이였으니까.
그러다 다음정거장에서 비어있던 나의 왼쪽편에 앉은 아가씨가
가방에서 성경을 빼서 읽지 않던가.
그러다가 그 옆의 아저씨의 손에도 성경책이 들려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주위에 책읽는 사람을 찾아봤는데..
나를 포함해서 내옆자리에 앉으신분들 딱 4명이 책을 보는데.
다 기독교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던것이였다

 

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읽고있을까?

내가 이책 그리스도 철학자를 읽기전부터
내 종교활동 중에 청년 기독교회에서 JDS(JEJUS DISCIPLE SCHOOL; 예수제자학교)
과정을 보내고 있었다.

내게 이책이 오고나서 책을 읽기전에 이책을 읽더라도 읽고난 후에도
내신앙의 편견과 마음에서 영향을 받지 않고 읽겠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기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을 통해 정말 많은 사유를 가져야 했고
내안에 그것으로 신앙의 불빛이 깜박이는 느낌을 겪었다.

내안에 해결해야할 과제를 남기고 이책을 읽었던 처음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책은 역자의 친절하게도 전체를 4가지틀로 분류해주었다
1. 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분석
-철학적 관점에서 이루어진-것이다
2.기독교의 역사가 압축적으로 제시되었다(사도중심의 초대교회부터 중세를거치고 르네상스시기까지)
3.르네상스이후 근대에 이르는 '휴머니즘'의 역사를 추적하며 철학적 역사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재해석하고 있다
4.21세기의 시대,앞으로 다가올 미래 시대의 기독교의 모습을 예측한다


최근에 접한 만화 초한지에서
생명이 있는것, 생명이 없는것 그 무엇이라도 반드시 거치는 것이 있다
작게는 들판의 꽃에서도 일어나고
크게는 우주에서 늘 반복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의 답이 '시작'과'끝'이였다

프롤로그가 시작이고 에필로그가 끝이라 할때
꽤 인상적인 도입과 마무리를 전해주는 문학과 성경을 인용했다


프롤로그에서 도스토에프스키의[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통해서 문제제기를 한다.
16세기에 예수가 다시왔다는 전설을 통해 그 시대의 종교의 타락에 대해 말해주었고
그것과 함께 앞으로 이야기할 전체틀중에 기독교의 면면들을 알리며 그 서막을 시작한다

 

제1장 예수의 역사와 역사 속의 예수
=>예수 실존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하여 그 존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증명하고
예수이전의 기독교를 말하고 예수의 탄생이후부터 죽은후 부활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2장 그리스도의 철학
=>그리스도가 전해준 가치들 그것에서 찾을 수 있는 현대 윤리의 기초들의 존재의 인식.


제3장 기독교의 탄생
=>요즘 배우고 있는 신학관련중에 삼위일체를
성부,성자,성령은 그 인격, 성품 존재에 있어서 같은 분이 아닌 서로 다른분이다
하지만 이 세분은 서로에게 침투되어 있어 세분이지만 (함께거하고 계셔서)한분으로 인식된다.

기독교안에서도 여러 논란이 되기에 인식에 따라 이단으로 분류되는 여러 전개들이 있기에
참으로 미묘한 문제들을 말해주었고 현재의 문제가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인식되었고
전개해오면서 수없이 수정되어왔던 이야기들을 접하게 된다.


제4장 그리스도교 사회
=>유럽뿐 아니라 미국까지 전세계적인 기독교의 가치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례와
기독교 안에서의 역사적 사건들의 전개로 뿌리부터 이어온 근대 르네상스시대전까지의 역사를 말해준다.

 

제5장 기독교 휴머니즘에서 무신론적 휴머니즘으로
=>투쟁의 역사였다고 할까 이성의 신학으로의 발현이면서
고대인들의 지혜로의 회기와 복음서의 메시지의 일치를 통해 자유를 인식하는 과정을 말해주었다

 

제6장 근대 세계의 모태
=>이성의 발전과 근대사상의 발전으로 카톨릭의 약화와 더불어 근대 기독교의 등장을 이야기하며
카톨릭의 세속적 지배권의 종말을 맞이했다.

제7장 우리들 속에 남아 있는 기독교적인 것은 무엇인가?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그렇지만 미래의 기독교는
우리의 가치들의 근간이 되는 초월성에 대한 세속적 형태에 기초하여
그 형태가 살아남는다기보다 앞으로의 전개방향을 이야기해준다.

 

[에필로그]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면한 예수를 통해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뉘기도 전에 그시대에 가장 혁신적인
대화를 나눈것의 기록이라고 봤다
예수가 사마리아여인에서 사랑에 관하여,그리고 영적인 삶의 내재화와 인식의 자유에 관한 대화를
나눈것이고 그것이 현실이 되기까지 심지어 지금까지도 신앙안에서 투쟁하고 있는 이야기들이며
아직까지 현재의 문명이 그리스도의 그 혁신적인 가르침을 이해하기에는 덜 여물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시 지하철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우리사회는 기독교에 젖어있는 문화라고 볼수있다
가장많이 기독교문화를 받아들여뒀지만 그것이 기독교 문화의 부분이라는것이 인식되지 못할만큼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것들이 있다는것이다
기독교가 만든 문화예술등(회화,조각같은 미술과 크리스마스같은 기념일)이
그렇다는것이다. 그만큼 많이 노출되었고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인간들이 이해하고 있다는것.

결국 우리네 삶은 그 영향력을 받고 있으면 삶을 이루는 구성에서 빠질수없는 요소가 되어있다.

이 책 그리스도철학자가 전해주는 가치는 결국 기독교의 가르침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라는 말을 전해준다

 

~~~~~~~~~~~~~~~~~~~~~~~~~~~

수정중. 초고만 쓰고 다듬지 않음 머릿속에 들었던 단편들의 조합임.



r********0 2009.09.25.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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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그리스도 철학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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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잠시 종교를 가졌던 적이 있었지만 안 좋은 일을 보고 겪으면서 종교에 대해 실망을 했고 그 후로 종교를 갖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훗날 제가 실망을 했던 것은 종교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 성경은 읽어보리라 생각했고 예수의 사상에 대해선 공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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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잠시 종교를 가졌던 적이 있었지만 안 좋은 일을 보고 겪으면서 종교에 대해 실망을 했고 그 후로 종교를 갖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훗날 제가 실망을 했던 것은 종교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언젠가 성경은 읽어보리라 생각했고 예수의 사상에 대해선 공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그리스도 철학자]를 만났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선을 실천하는 삶을 삽니다. 선의 실천은 바로 예수의 가르침을 행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철학자]에 끌렸던 건 예수를 ‘기독교의 창시자’, ‘선지자’, ‘하나님의 아들’, ‘기적을 행하는 자’라는 기존 관념이 아니라 ‘위대한 현자’, 철학자의 시각에서 다뤘을 거라는 기대였습니다.

 

우리는 고통과 악에 직면하면 직접 싸우거나 도망가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예수는 피할 수 있음에도 끔찍한 고통 속으로, 악의 수수께끼 속으로 스스로 걸어갔습니다. 우리에게 질병, 슬픔, 번민, 죽음과 같은 고통을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고통을 견디며 인간은 성장하고 사랑이 가득한 인간으로 승화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이 어렵다 보니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동정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실하게 돈을 모아 부자가 된 사람도 있고 돈을 펑펑 쓰다 가난하게 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있고 평생 자비를 베풀며 산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들입니다. 동일하게 존엄하고 동일하게 평등합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영화 [세븐데이즈]에서 한숙희 교수는 자신의 딸을 죽인 살인범에게 복수를 합니다. 자신의 아이를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는 일,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은 연약한 인간에게는 너무 힘든 일입니다.

 

여성들에게 관대하지 못한 시대에 아무리 뛰어난 현자라도 남성과 여성을 대할 때는 차별을 하게 마련인데 예수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동등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또한 나눔과 자비의 삶을 강조했으며 정의로운 사회에 도달하기 위해서 폭력 사용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굉장히 ‘근대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가 인류 문화에 공헌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훌륭한 건축물들, 예술작품들 중엔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역사를 보면 혼란의 시기는 늘 존재했습니다. 혼란의 이유는 권력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혼란 역시 권력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과거 기독교는 사회, 정치, 정신적인 영역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영향력이 떨어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현대는 개인이 자신에게 적합한 종교를 선택하고 또 버립니다. 신의 실존은 확실한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고 일요일은 휴식의 날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넘쳐나고 사람들은 케이크 하나씩 손에 들고 집으로 갑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 가족이 모여 선물을 교환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더라도, 기독교를 믿지 않더라도, 위 이유만으로도 크리스마스는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철학자]는 제게 좀 어려웠습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의 철학과 함께 기독교의 역사, 교회사에 대해서도 많은 내용을 할애합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여전히 예수의 사상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답답합니다. 다른 책들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엔 예수의 사상에 첫걸음을 걸어갔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m****6 2009.09.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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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민하는 것을 이 사람도 고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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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이 책의 겉표지 때문에, 책의 겉표지에 써있는 "있는 그대로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의 머리말만 읽고도, 최근 1년동안 읽었던 기독관련 도서중에서 가장 추천할만한 책이 되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읽고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느낄지 모르겠다. 한국교회가 가진 복음적이지 않은 모습들... 시작부터 손가락으로 집듯이 콕 집어낸다. 대체
"내가 고민하는 것을 이 사람도 고민했었다." 내용보기

단지 이 책의 겉표지 때문에, 책의 겉표지에 써있는 "있는 그대로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단어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의 머리말만 읽고도, 최근 1년동안 읽었던 기독관련 도서중에서 가장 추천할만한 책이 되었다. 사실 다른 사람이 읽고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느낄지 모르겠다. 한국교회가 가진 복음적이지 않은 모습들... 시작부터 손가락으로 집듯이 콕 집어낸다. 대체 이 프랑스인 저자는 한국을 와보았던 것일까? 어찌 그리 현세대의 교회를 잘 아는지 기절할 노릇이다. 이미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복음이란 말은 이제 교회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사실 이 명제자체가 말도 안되는 오류가 아닌가? 대체 무엇이 왜곡되어서 지금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멀어지게 되었던 것일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인간이 원하는 3가지 욕망을 제시한다. "기적,신비,권위" 이 세가지는 모든 인간이 원하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모두 다 거절하신 것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사탄에게 3가지 시험을 당한다. '돌을 떡으로 바꾸는 신비, 낭떠리지에서 떨어져 다치지 않는 기적, 사탄에게 절하여 세상을 얻는 권위'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거절하셨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교회는 그것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 약한 자를 누르고 자신만의 권력을 누린다. 교회가 그렇게 한다. 중세 가톨릭교회가 그러하였고, 지금 한국의 교회가 그러하다. 복음은 온데간데 없고, 그 자리에 권력과 돈과 탐욕만이 복음의 가치로 와전되었다. 대체 인정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다.

대체 예수님은 무엇을 원하셨을까? 무슨 목적을 가지고 사역을 임하셨을까? 저자는 예수그리스도를 한 사람의 철학자로 소개한다. 그가 하셨던 가르침과 스스로의 삶의 모습을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시대를 흘러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가 저자의 관점이다. 예수의 가르침이후 초대교회를 거쳐 중세교회 현대에까지 이르는 저자의 역사서술은 간결하면서 명확하다. 왜 그렇게 변질되었는지를 저자만의 문체로 잘 써내어 주었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신을 말하는 사람들중에,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수업을 듣는 학생들같이 우리는 하나님께 묻는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전에 가르쳐 주었어. 해봐 할 수 있어" 그러면 우리는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며, "배운적이 없어요. 다시 한번 가르쳐주세요"라고 한다. 보통 가르치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그것을 설명했는지가 낱낱이 기억난다. 특히나 중요한 것은 반복하여 설명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설명을 더욱 요구한다. 해보지도 않고서 말이다. (정말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짜증이 난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성도님들, 바로 저 그리고 여러분들 한사람 한사람이 그러고 있진 않은지... 행하지 않고 안다고만 말하고 있는지 한 번쯤 더욱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g***8 2009.09.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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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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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세에 예스그리스로를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성서에 대하여 연구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모태부터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처음부터 의심없이 그가 살았던 모든 것을 믿게 되었다.그러나 살면서 많은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짧은 소견으로는 풀 수 없는 의문만을 남긴체 그냥 믿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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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세에 예스그리스로를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성서에 대하여 
연구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모태부터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처음부터 
의심없이 그가 살았던 모든 것을 믿게 되었다.그러나 살면서 많은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짧은 소견으로는 풀 수 없는 의문만을 남긴체 그냥 믿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읽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어떠
했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철학자 답게 철학적 관점에서 성서에 대하여 써내려 갔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복음서에 대한 설명 자세한 설명과 예수의 행적을 따라 제자들이
복음서를 썼던 배경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다. 초대교회는 가장 피박받는 상태에서 
오로지 예수를 기초로 하여 세워졌었다.  예루살렘의 공동체를 일끌던 열두 명의 
사도 이외에 7명의 집사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핵심적인 말씀이 전파되었으며 
그들은 많은 피박을 받으며 여러곳으로 흩어져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로마시대에 들어서면서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막강한 권력에 접근
하게 되고 핍박받는 자에서 핍박하는 자로 돌아서게 되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한 사실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근대에 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기본
이념은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우리에게 늘 필요한 사랑이다. 

근대에 들어 많은 종교신화가 만들어지고 자유주의 정신이 만연해있지만 성서가
갖고있는 기본적인 뜻과 그리스도의 뜻은 변하지 않음을 알게된다. 이제는 교회가
배타주의가 아니 포괄 주의적이해를 바탕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면서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변화속에서도 변함없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그리스도의 정신은
철학적 근거와 과학적 근거에 비추어도 변할 수 진리가 있기에 아직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만인의 평등한 존재성, 정의와 나눔, 비폭력, 집단에 대한 개인의 해방 및 남성에 
대한 여성의 해방, 선택의 자유, 종교의 분리, 인류애등은 복음서에서 전하고 있는
근본적인 복음이다. 이 모든것을 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결정권을 인간에게
주었졌으며 올바른 결정을 위해 신을 믿으며 복음서를 따라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p****9 2009.09.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