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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숨이 멎었다. 그 자리에서 계속 그림에 빠져 있었다. 헤어나오기 어려웠다.
색감들이 주는 오묘함은 그 자체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 색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만드니깐.
그림 속 이야기로 빠져 들어가 그 그림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때 깨달았다. 그림의 복제품이나 화첩 속 그림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구나.
이런 게 바로 진품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아우라구나. ![]()
그림만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소년. 행색은 허름하나 다부져보이는 모습.
처음 이 그림을 보고 연상된 건 서경석씨의 『소년의 눈물』이었다. 그래서 표지만 보고 그런 느낌의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는 게 솔직할 것이다. )
사실은 그래서 책 자체보다는 이 그림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원화로 이 그림을 가지면 좋겠다.'
음... 이 책의 표지는 그림 자체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사실 그것부터 참 안타까웠다.
그림의 느낌을, 한지의 느낌을 좀더 부각할 수 있었다면 2009년 최고의 표지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그래도 요즘 나오는 '흔하디 흔한', 똑같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내용과는 무관한 그런 표지에 비하면 매우 감동적이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세련된 맛은 없다. 투박하고 담백하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라는 작품을 통해서 '부탄'이라는 나라를 얼핏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을 통해서 티벳을 체험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체험은 직접 체험에 비하면 매우 한정된 것이다. 청동거울로 보듯 희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젠가 직접 티벳을 볼 기회가 있다면 '원화'를 보는 기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복제품이나 화첩의 그림을 많이 봐야 안목도 길러지는 것이고 그래야 진품의 감동도 커질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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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이 작품을 읽으며 그 나라와 조금은 가까워진 듯하다. 우연하게 티벳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반갑게 인사하며 적어도 30분 이상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요즘 젊은이들은 티벳어도 못 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티벳은 과연 독립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 책도 중국어로 쓰여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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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출신의 작가는 처음 만나보는 신선함이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티베트, 중국 작가들의 소설은 관심의 대상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들어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쑤퉁과 위화의 소설처럼 중국 작품들에는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특별할것도 없고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희망과 꿈을 담고 있는 소설책들 처럼 [소년은 자란다]는 내게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읽는 동안 이야기의 구성이 낯설었고 맥을 이어가지 못해서 헤매는 부분들이 많았음을 인정해야 할것 같다.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읽을 때마다 내가 그저 책장만 넘기고 있는건 아닐까란 의문이 들었다. 한쪽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린다는 속담처럼 내 머릿속에서 이 책은 한쪽으로 들어왔다가 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13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티베트와 인근 자치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며 그저 자신의 일상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평생의 숙명처럼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쌍무단 선생은 중학교 졸업후 수학교사로 일하다가 경학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사원으로 들어온다. 쌍무단 선생은 경학을 배우고 싶을 뿐이지 사원에서 평생을 살고 싶어하지 않기에 어느날 갑자기 그곳을 떠난다. 쌍무단 선생과 활불의 우정을 담은 이야기<활불과 박사친구>, 시대가 변하면서 트랙터와 자동차가 생겼음에도 자신의 말들을 데리고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부 곰보의 이야기<마지막 마부>, 단바는 사원에 들어갔다가 승려들이 모두 사원을 떠나야 했기에 승려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단바는 다시 사원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한다<라마승 단바>, 아구둔바는 태어날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지만 후에 지혜의 화신으로 유명해진다. 태어날때 부터 엄마의 생명까지 앗아가 버린 아구둔바의 이야기이다<현자 아구둔바>
단포가 외할아버지라고 부른사람은 진짜 외할아버지가 아닌 강제로 환속당한 라마였다. 서투른 양치는 솜씨를 보이는 할아버지와 단포의 소소한 일상<소년 시편>, 노루 사냥을 하러 간 세 친구의 이야기<어떤 사냥>, 어머니를 사랑하는 소년이 곰을 사냥하게 되고 동생이 생기는 일상을 통해서 점차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린이야기 이다.<소년은 자란다> 줘마는 산나물을 캐러 다니는 가난한 일상속에서 벗어나 돈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팔기로 결심한다.<스스로 팔려간 소녀> 셰라반은 주차장의 야간경비원이 되어 살아간다. 어느날 한 젊은이를 만나 홰나무꽃 찐빵을 쪄먹는 일상을 통해 행복을 알아간다.<홰나무꽃> 사고로 절름발이가 된 두 사내의 이야기<두 절름발이> 시대가 바뀌면서 사라져 버린 저울과 저울추 주인의 이야기<옛 저울추> 소형트럭을 자신의 전부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쌍지의 이야기<막다른길> "얘야,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란 없단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지. 내가 그리면 있는 것이고, 그리지 않으면 없는것이야. P247 점차 쇠락해져가고 정적만이 가득한 마을로 변모해가는 아라파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아라파라 마을>
이 책을 통해 낯선 곳에 있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엿보았다. 읽는 동안 그 삶속에 빠져들지 못하고 겉돌았던 것 같아 책을 덮는 순간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쓰촨과 티베트 경계의 지촌이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인 [소년은 자란다]는 점차 사회가 변화해 감에 따라 지촌 역시 문화와 경제적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직접적으로 어떻게 변하였다라는 언급은 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변해가는 흐름을 따라갈수 있게된다. 삶이 변해가면서 어쩔수 없이 그 변화에 순응할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었지만 지켜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쓰러워지고 애잔해지는 마음을 숨길수 없었다. 한줄기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 느껴진다. 낯설었지만 평범한 일상을 발견할수 있는 잔잔하고 조용한 소설을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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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저는 단지 티베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장소라고밖에는 말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이 그렇고 미국이 그렇듯, 프랑스와 영구그 일본이 그렇듯, 티배트도 이 세상의 한 곳일 뿐입니다.그곳에도 풀과 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열리고 꽃이 핍니다. 풀과 나무의 바다에서 사람들은 흥망성솨를 겪습니다.
티베트 자치구 중 '지촌'이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그곳사람들릐 모습을 통해 티베트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트랙터에 밀려 쓸쓸하게 퇴출된 마부의 죽음을 다룬 마부 곰보의 이야기<마지막 마부> 라마승으로 출가했지만 강제로 환속해 고향 마을인 지촌으로 돌아와 다시 라마승의 길을 걷게 되는 단바의 이야기 <라마승 단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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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방송되었던 "차마고도"를 보는듯하다. 만년설이 쌓인 높은산, 그 아래에있는 사원, 말을끌고 산등성이를 올라가는 상인, 삼보일배하며 성지를 찾아가는 스님들, 엄청난양이 흙탕물이 흐르는 강에서 소금을 만드는 여인들 등등 TV로 티베트인의 모습, 생활습관, 관습을 보았다면 "소년은 자란다"를 통하여 티베트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작가가 그린 섬세한 경치에 관한 묘사와 인간 심리를 아주 섬세하고 간결하게 표현한것 같다. 약간은 코믹한 면도 있어 읽기에 무리가 없었으며 이해하고자하는 노력없이도 글자체를 찾아가게하는 매력 또한 지니고 있는것 같다. 종교적인 면(라마승 단바, 활불과 박사친구 등)에서는 마치 스님과 선문답을 하는 듯하고 생활면(마부, 옛저울추)에서는 날로 발전해가던 1950년 이후 중국과 티베트의 생활양식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티베트인들의 모습을 보고 어릴적 신상품에 대한 시골에서의 관심사를 보는듯하여 절로 웃음이 나왔다. 과연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자 하였을까 라고 자문해본다면 때묻지 않은 티베트인의 마음을 준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본 책을 읽으면서 중국과 티베트간의 갈등, 언어적 차이, 문화이 차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으며, 중국의 문화대혁명(모던타임즈 II)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어 티베트에서 자라고 생활한 저자는 좋은 의미로 판단하고 있는듯하고 제3자의 눈으로 보는 견해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접해본 중국 저자의 티베트을 주제로한 소설 "소년은 자란다"를 통하여 티베트 문학을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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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이’는 티베트 출신의 작가이다. 소설 《소년은 자란다(2009.9.15. 아우라)》가 소개될 때마다 저자 아라이가 ‘중국 소수민족 작가’ 중 한 명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는 아라이의 소설이 티베트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강조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는 알지 못하는 티베트인들의 삶을 담고 있기에 더욱 더 강조되는 것이리라. ‘티베트’하면 독립을 원하는 시위를 벌이는 티베트인들을 중국 군인들이 강제 진압한 사건이 맨 처음 떠오른다. 그리고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고 티베트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 운동을 펼치고 있는 달라이라마가 떠오른다. 내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으로 저자가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티베트를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소년은 자란다》를 읽은 후 그런 걱정은 괜한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소설은 국경도 초월하고, 나이도 초월할 만큼 커다란 힘을 갖고 있음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소년은 자란다》는 열세 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열세 편 중 표제작이 「소년은 자란다」이며, 작품의 배경은 티베트인들이 모여 사는 지촌마을이고 등장인물은 소박하고 순수한 티베트인들이다. 「활불과 박사친구」에서는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변치 않는 우정을 보여주며, 「마지막 마부」에서는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 버린 마차와 마부의 이야기를, 「라마승 단바」에서는 중국의 불교 억압 정책으로 환속했다가 세속에 물들지 않고 다시 라마승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등 열세 편의 이야기에서는 티베트인들이 변화 속에서도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는 표제작인 「소년은 자란다」와 「스스로 팔려간 소녀」이다. 이유는 이 두 편이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비통함도 느끼도록 하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란다》는 소설이기에 허구라고 말해야겠지만, 저자가 작품을 통해 자신의 고향인 티베트를 보여 주고 싶었다는 마음을 보여주므로, 열세 편의 이야기는 티베트 사회가 겪고 있는 일면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쳐 진실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잘 모른다고 생각했던 티베트가 이 소설로 인하여 부쩍 가깝게 느껴진다. 소설의 힘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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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은 하늘과 땅이 공존하는 곳.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꿈꿀 수 조차 없는,, 낯선 라마들의 세계와 땅이라는 낮은 곳에서의 소소함들이 모호한 경계를 지니고 있는 곳이 티벳이라는 것을 보여준 소설.
결국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세계관을 보여주듯 티벳 사람들은 누구나 신의 모습과 속세의 인간의 모습을 공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치 이 책은 "다 내려놓고 사심없는 마음으로 속세에 들어 올 때 비로서 부처가 된다."라는 말을 담아내는 듯 하다.
영주인 아구둔바가 신분을 포기하고 홍길동의 모습을 보여주듯,
마지막 마부가 되어버린 곰보 마부가 말을 이끌고 산 속으로 들어가 말을 지켜내며 죽음을 맞는 모습을 보여주듯.
단포가 속세로 내려와 양을 치기 시작한 외할아버지 모습에서 작은 부처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매의 날카로운 발톱사이에서 발버퉁치고 있는 새끼양을 보며 처절한 울음소리를 들려준 환속한 라마...단바의 큰아버지처럼..
출신도 모르는 쌍녀가 누구의 아아인지도 모르는 두 자녀를 낳고도 간도 쓸개도 없는 것처럼 유쾌하게 떠들어 대는 그녀에게도 신비스러울 정도의 평온함을 가진것처럼말이다.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는 변화하는 지촌의 세상과 아직도 과거속에서 제 자리 걸음을 하기에도 버거운 개인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나무와 흙, 물의 느낌을 가져다 주는 어둠을 갈망하는 야간 주차 경비원 셰라반의 모습에서 화려하지만 속 없는 연체동물로 비유한 도시속에서 살아가는 동시대의 외로운 노인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던 강철 덩어리들인 차들이 셰라반, 자신의 손에 멈추며 조정되는 것을 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어쩌면 외로운 도시 노인들은 속박을 즐기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홰나무꽃 찐빵 안에서만 진실해질 수 있는 셰리반과 그의 아들 모습을 보면서 결국 현대인들의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변화하는 기준에 적응하지 못하고,,결국 지촌의 평범한 늙은이가 되는 저울추 청년의 모습이 현대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음을 느낀다.
새로움을 받아들이기만 하기엔 아직은 예전 그 자리에 머물로 싶은 현대인들의 모습..
마지막 마부가 그렇듯.. 전 라마, 단바의 큰아버지가 그렇듯.. 하지만 진정한 라마가 되는 것은 말굽처럼 단단하고 상처투성이인 엉덩이를 가질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 티벳인들.
라마와 동시에 속세인으로서 살아가는 티벳인들이 모든 일을 겸허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은 이미 '혹독한 시련'과 '내려 놓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은 아닐까??!!
그 '혹독한 시련'과 '내려 놓음' 속에서 개인적 선택이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자유로운 티벳인들의 모습. 언제라도 라마의 세계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라이'의 소설 속 주인공들 모두는 평안해 보인다.
아직도 내 귀에 대고 티벳인들은 이렇게 속삭이는 듯 하다.
"얘야,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란 없단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지. 내가 그리면 있는 것이고, 그리지 않으면 없는 것이야."(p. 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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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새로운 것들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속한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곳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채우기 위함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되기도 한다. 자신과는 다른 다른 이들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길. 그것은 어느 시대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발전된 나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속한 곳에 남아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비록 직접 먼 길을 떠나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 그것을 위해 책을 통해 새로움에 눈뜨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 티베트, 그곳을 흐르는 조금 느린 시간
티베트를 연상하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푸른 초원지대의 양들, 이곳보다는 공기가 훨씬 맑을 것 같은 고원지대. 그리고 주황색의 옷을 입은 라마교의 승려들 정도가 아닐까? 티베트는 우리에게 아직도 조금은 느리게 시간이 가는 곳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천천히 초원을 걷는 라마교의 승려들에 대한 미디어의 자료화면을 너무 자주 본 탓일테다. <소년은 자란다>는 바로 그 조금은 천천히 걷는 그리고 시간조차도 여유를 부릴 것 같은 곳. 티베트의 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1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이야기들은 다른 단편 소설집이 각자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묶어 놓은 것에 반해 지촌이라는 이름의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각자의 사연들을 묶어 한권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책이다. 때문에 단편이지만 각자의 배경이 전혀 다른 개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 마을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그들의 삶과 변화들을 묶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그곳의 시간도 흐르고, 변화하고, 때로는 달려간다.
<소년은 자란다>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의 티베스 라마교 승려들에 관련한 이야기부터 그곳에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변화의 흐름, 그리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고 있을법한 아주 평범하지만 그러나 일반적이지는 않은 작거나 혹은 큰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문화혁명으로 환속당해 세인이 된 승려의 세상 적응기부터, 어머니를 위해 소년에서 어른으로 자라야만 했던 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지촌이라는 그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라마교의 현자에 대한 전설과 작은 마을을 떠나기 위해 애쓰고 몸부림치는 어린처녀의 이야기까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성장의 이야기와, 사회적인 흐름을 부정하는 자와 순응하는 자 사이의 갈등, 그리고 좀 더 넓은 세계를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작은 희망들은 그곳이 티베트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독특한 상황이 아니라, 그곳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겪어야만 하는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년은 자란다>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가 그동안 겪어왔던 너무도 평범한 이야기라기엔 조금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아마도 그것은 그곳이 여전히 다른 곳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디게 흐르기에..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에서 오는 특유의 분위기이리가. 나는 아직 티베트를 가보지 못했다. 나 역시도 미디어가 만들어낸 티베트의 고정된 이미지 이외에는 다른 특별한 관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이 한권의 책.<소년은 자란다>를 통해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곳에도 사람은 살아가고, 그곳도 흘러간다는 사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티베트의 작은 마을, 그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문명이 넘쳐나는 곳 보다는 조금 느리게 시간이 흘렀으면 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뒤 그곳에서 우리가 놓친 과거를 찾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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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티베트인이 쓴 티베트인의 삶 이야기이다~ 중국에 흡수되면서 그곳에 수련하던 승려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있는지.. 그리고 교리만 공부하던 고승들이 소시민으로 되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지꺼이 떠안은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보여주고있다. 이 책은 그냥 부유층계열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산천 자연과 같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더욱더 몰입해서 읽을수 있었던것같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 속에서 티베트의 고유의 철학적인 삶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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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티베트 출신 소설가 아라이. 그는 이책 <소년은 자란다>에서 척박한 티베트와 그 인근 자치구에서 살아가는 순박한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편으로는 애잔하게, 또 한편으로는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무대는 티베트족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촌(機村) 마을이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아라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라고 한다. 2007년 저명한 중국평론가 열 명이 꼽은 '실력파 중국작가 순위' 에서 아라이는 모옌에 이어 두번째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주요 작품이 20여 나라에 번역 출간되어 있는 그는 권위 있는 마오둔 문학상 수상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 <소년은 자란다>를 만나지 않았다면 작가 아라이를 알 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한 사람을 알지 못 햇을텐데 내게는 이 책이 중국을 대표하는 소수민족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티베트하면 조용히 명상을 하는 수도자가 가장먼저 떠 오른다. 그래서 티베트는 내게 미지의 땅 정도로만 인식된 곳이다. 그 들의 생활상이라든지 그 들의 역사, 문화 등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을 아무런 선입견없이 작가가 이끄는 대로 그저 따라가며 읽기시작했다.
모두 13편의 연작소설로 되어 있는 <소년은 자란다>는 티베트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촌에서 그 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십대 시절에 목격한 외삼촌의 사랑과 주인공의 첫사랑을 그리고 있는 <소년 시편>, 중학교 동창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활불과 박사친구>,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열 두살 사생아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 <소년은 자란다>, 쇠락해가는 장족 마을을 잔잔하게 그리며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을 교차시키는 <아오파라 마을> 등...
성장소설을 겸하고 있는 <소년은 자란다>. 뭔가 빠른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도 있을것 같다. 하지만 잔잔한 이야기 속에 어느듯 빠지게 되면 그 들의 생활속을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지촌에...
하성란작가가 뒷 표지에 쑤퉁과 모엔, 위화와 비폐이위의 소설만 읽다가 아라이의 소설을 만나고 소설을 읽는 동안 자신의 속의 모든 것들이 납작 엎드렸다고 했는데 그 느낌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든 느낌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스며드는 느낌...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