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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의 산막 일지에 깃든 공동체적 삶의 의미(파블 11기 2-5)
"지율스님의 산막 일지에 깃든 공동체적 삶의 의미(파블 11기 2-5)" 내용보기
암 투병 중인 집안의 고모가 별세하여 조문하려 갔다 오는 길 여든일곱 해를 살면서 자식 걱정으로 이어졌던 한평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수인(囚人)으로 어머니 마지막 가는 길도 지키지 못하는 자식의 심정을 가늠키는 어려우면서도 속세에서의 번뇌는 끊고 극락왕생을 발원하였다. 영정 속 고모는 선한 미소를 지으며 금세라도 마루로 올라앉아 고동 까먹으라고 내놓던 그
"지율스님의 산막 일지에 깃든 공동체적 삶의 의미(파블 11기 2-5)" 내용보기

  암 투병 중인 집안의 고모가 별세하여 조문하려 갔다 오는 길 여든일곱 해를 살면서 자식 걱정으로 이어졌던 한평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수인(囚人)으로 어머니 마지막 가는 길도 지키지 못하는 자식의 심정을 가늠키는 어려우면서도 속세에서의 번뇌는 끊고 극락왕생을 발원하였다. 영정 속 고모는 선한 미소를 지으며 금세라도 마루로 올라앉아 고동 까먹으라고 내놓던 그 모습 그대로다. 삶과 죽음의 길이 다르지 않을진대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안달재신하며 탐심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가운데 뭇 생명의 존엄한 권리를 지켜달라는 간절한 바람은 무위로 돌아가고 천성산 소송을 빌미로 기득권과 야합하여 이익을 보려는 이들에게 당한 뒤 지율 스님은 오지 생활로 피폐해진 심신을 달래고 있었다. 이후 스님은 4대강 사업에 맞서 생명의 고리를 끊는 거대 자본의 야욕에 맞섰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삶을 지속하기 힘들 정도로 사위어가는 생명의 끈을 부여안고 영덕의 칠보산 기슭 산막에서 생활하며 몸을 되게 움직이며 전통적 명맥을 잇는 산촌 사람들의 일상을 질박하게 담았다.


  닷새에 한 차례 버스가 들어오고 군불을 지피는 칠보산 영해면에서 살고 있는 노인들의 일상은 가슴속에 자리한 고향의 아동기를 떠올리게 한다. 농사철에는 부엌 부지깽이도 일어나 농사를 돕는다는 말처럼 들판을 오가며 농사를 거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공동체적 삶이 살아있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 흘린다. 보리 이삭 하나라도 허투루 할 수 없기에 그것들을 주워 모으다 보면 까끄레기가 온몸을 근질거렸던 기억도 이제는 추억 속 앨범에 자리한다. 비닐을 깐 자리에 보릿단을 모아 탈곡기에 넣으면 보리 낟알은 출출 떨어져 쌓이어 수확의 기쁨을 주던 시절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고 싶었던 시절의 가난은 다양한 경험 속에 건강하게 존재하는 자신으로 변모시켰다.


  “그려도 주는 게 사랑이니더.”

  자연적 질서에 따른 섭리에 순응하며 파종하였다 싹을 틔운 작물을 가꾸고 거두는 일상을 지속하는 오지 마을 어른들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전통적 삶을 이으면서도 불평보다는 감사함으로 지금의 삶을 받아들인다. 쌀 한 톨에 일곱 근의 땀이 배어 있다는 말처럼 농사꾼의 땀과 정성으로 열매를 거두고 수확한 작물들을 자식들에게 부치는 어른들의 모습은 대가 없이 베푸는 내리사랑으로 숭고함을 더한다. 대처로 나간 자식들은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한두 차례 오지마을의 부모를 찾지만 어르신들은 사진 속 혈육들을 불러내 고독을 달랜다.


  10 가구가 모여 사는 오지 마을 어르신들은 평생 땅을 일구어 작물을 심고 기르며 거두어 나누며 살아왔다. 편리함을 추구하며 속력을 내어 욕망을 채우는데 급급한 이들의 근시안적 태도에 일침을 가하듯 산촌에 깃들어 사는 어른들의 질박한 현장의 소리는 자연의 신음소리를 도외시하며 개발을 일삼던 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찾아든 영덕산 기슭의 산막에서 지율 스님은 바람 소리와 빗소리, 할배의 장작 패는 소리, 모내기 준비를 하느라 소를 모는 소리, 할매의 구성진 노랫소리를 들으며 건강을 회복해갔다.  


  스님은 어르신들의 일손을 보태고 음식을 나누며 오순도순 정을 쌓아가는 산촌의 일상은 정이 녹아 있는 상생의 삶을 책에 담았다. 우물 속에 도롱뇽을 돌보고 가재를 기르는 생명의 귀함과 저마다 가슴에 담고 사는 인생살이는 애틋함을 더한다. 어른들의 조언을 들으며 고추 농사를 지어 지붕 위에 고추를 말리는 스님의 손길은 실용성과는 비껴 있지만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는 공동체적 삶이 융해되어 있다. 절기에 따라 농사짓는 소농들의 일상이 개발지상주의에 밀려나지 않기를 바라며 더 이상 자연이 황폐화되는 일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고 여긴 스님의 산막일지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지금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n*****9 2017.02.15. 신고 공감 1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용보기
4대강 사업으로 물길을 막았던 보를 개방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착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보를 개방한다는 것은 4대강 사업이 실패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다. 과연 누구를 위해서 4대강 사업을 했고, 그들은 그 사업이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란 걸 진정으로 몰랐던 것일까? 4대강 사업에 대해서 홍보하고, 온갖 수치를 들이대며 옹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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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 사업으로 물길을 막았던 보를 개방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착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보를 개방한다는 것은 4대강 사업이 실패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다. 과연 누구를 위해서 4대강 사업을 했고, 그들은 그 사업이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란 걸 진정으로 몰랐던 것일까? 4대강 사업에 대해서 홍보하고, 온갖 수치를 들이대며 옹호하던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토록 그 사업에 집착하던 이는 왜 말이 없는 것일까 

 

  4대강 사업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서 나는 지율스님을 생각했다. 천성산 습지 훼손사건을 계기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지율스님. 천성산을 떠나 경북 영덕 칠보산 기슭의 한 오지마을에서 생활하던 스님이 다시 세상으로 나와 도보순례를 한 것이 바로 4대간 공사 착공 때문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율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부친 사업이 그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자연훼손과 생태계교란이라는 허망한 결과만을 남겨서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얼핏 보았던 도보순례를 하던 스님의 모습이 뉴스를 전하는 앵커 얼굴 위에 겹쳐진다.

 

  이 책 [지율스님의 산막일지]는 땅이 죽어가고 있다는 절박한 상황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스님이 쓴 일지이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도보순례를 하기 전, 3년 동안 머물렀던 오지마을의 이야기이자 소농들의 농사기록이다. 닷새에 한번 버스가 들어오고, 열 가구밖에 살지 않는 오지마을에서 스님은 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수십 년째 똑같은 모습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오지마을에서 스님은 이 땅의 건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비록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어르신들만 남아있는 오지마을이지만,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열매를 거두는 자연의 삶이 스님에게는 깨달음이자 경전이었다고 한다. 스님은 관찰자로써 마을 어르신들이 예전과 다름없이 농사를 지으며 한 해를 보내는 모습을 그들을 대신하여 일지에 적는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 마을사람들은 단체로 온천에 가 목욕재계한 후 동제를 지낸다. 모내기를 하고, 보리를 베고, 콩과 들깨를 심고 감자를 캔다. 고추를 따고 메주를 쑤어 간장을 담고 김장을 한다. 여느 농촌에서 하는 일과 하등 다를 게 없다. 그러나 할배, 할매들은 도시에 나간 자식들을 위해, 수십 년째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지율스님이 그곳에서 듣는 할매들의 구성진 노랫소리, 할배들의 장작 패는 소리, 그리고 바람소리와 빗소리는 자연의 신음소리에 아파하던 스님의 몸을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했다.

 

  매달, 매달 쓰여있는 스님의 일지를 따라가다 보면 농촌의 한해살이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내가 귀촌을 하여 지난 1년간 살아보고 느낀 삶이기도 했다. 철 따라 해야 될 일들이 있고, 그 때가 아니면 하지 못하는 일이기에 사람들은 자연의 흐름에 삶을 맡긴다. 욕심을 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남보다 많이 하겠다며 먼저 해도 되지 않는 일이다. 다음해 쓸 거름을 일년 동안 만들기도 하지만, 호미나 낫, , 톱 등은 하루라도 손을 떠나지를 않는다. 스님이 오지마을에서 흙 집이 무너져 보기 흉하게 뼈대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개간을 하겠다고 나선다. '마당 가득 들어와 있는 대나무도 베어야 하고, 뒤엉켜 있는 찔레와 잡풀도 베어내야 하고, 버려진 쓰레기와 폐비닐도 걷어내야 하고, 구들과 서까래 넘어진 것까지.. 하루 한두 시간씩 한달 넘게 매일 일을 했지만 표시조차 나지 않는다. 마을 어르신들은 포크레인을 부르면 한나절거리라고 하시지만.. 사람의 손이, 마음이 하는 일의 즐거움과 고단함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스님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나 역시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농약이나 제초제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몸의 고단함으로 이겨내고 싶었다. 마음이 단순해지고 그만큼 삶 또한 단순해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도 어르신들이 많다. 젊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이 농사짓는 방법은 어르신들과 많이 다르다. 그들은 비닐하우스를 짓고, 기계를 사용하며 자연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농사를 짓는다. 욕망과 소비 위주의 삶 또한 도회지 사람들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스님의 일지를 읽으면서 떠오른 건 그들이 아니라 동네의 할배, 할매들이 농사짓는 모습이었다. 나 또한 지금은 관찰자의 입장에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참여자가 되면서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할배, 할매들이 사는 것처럼 자연의 일부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k*****1 2017.02.14. 신고 공감 6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그 산막에서 나는 , 그리운 것들과 만난다
"그 산막에서 나는 , 그리운 것들과 만난다 " 내용보기
지율스님의 산막일지 정체를 모르겠는 피로감에 오후가 되선 내내 ' 염증나 염증나. ' 를 염불처럼 외고 있다가 오는 주말에 보자 한 지율스님의 산막일지를 괜히 한번 들춰보는데 표지의 누렁이 일 것같은 소 녀석이 눈을 꿈뻑꿈뻑 ' 뭐가 그리 염증이 나 , 그래 염불이냐 . ' 하는 소리가 들린다 . 크고 순해 보이는 소가 종일 붙밖이로 있을 외양간 ㅡ 소도 저렇게 시간을 견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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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의 산막일지

정체를 모르겠는 피로감에 오후가 되선 내내 ' 염증나 염증나. ' 를 염불처럼 외고 있다가 오는 주말에 보자 한 지율스님의 산막일지를 괜히 한번 들춰보는데 표지의 누렁이 일 것같은 소 녀석이 눈을 꿈뻑꿈뻑 ' 뭐가 그리 염증이 나 , 그래 염불이냐 . ' 하는 소리가 들린다 . 크고 순해 보이는 소가 종일 붙밖이로 있을 외양간 ㅡ
소도 저렇게 시간을 견디는데 말 할 줄 알고 내 발로 원하면 어디든 갈 자유를 가지고도 , 오겠다는 인간을 기다리느라 나는 이 시간이 못견디게 지루하다 . 벌 받을 소리만 골라 하느라 올 복도 못오지 싶으며 ...

상상력 없는 내 머릿 속에 그린 ' 산막 '(山幕)은 옛 영화 , 또는 드라마로나 접했던 귀기(?)나 한 (恨) 서린 피막(避幕) 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 몹시 , 외지고 기울고 펄럭거릴 것을 연상한 내게 책은 뭘 또 그리 극단적이냐는 듯이 ... 옛날의 살림살이라 그렇지 사람사는 사는 곳인데 무어 그리 다를 게 있겠냐 하는 것처럼 . 오래된 (?) 사람들이 제 집마냥 드나든다 . 떡국거리 떡이나 계란 몇 알 그런 것들을 가지고 ... 혼자여도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지 ? 그렇지 ? 하는 냥 ~ 그 소소하고 소박한 나눔이 어쩐지 고픈 정처럼 찡하니 뭉클하다 .

이상하게 스님의 모습은 삼보일배 하던 어느 기사에서 마주한 때로 인상이 정지해 있다 . 스님의 약력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서 내가 본 삼보일배로 기진하던 그 안타까운 장면의 기억이 어느 해 쯤인가를 돌다리처럼 두드려 본다 . 그게 뭐였데도 결국은 우리 사는 환경으로 집결되고 그 의미는 공생하는 인간과 자연을 향한 것일게다 . 그게 내가 본 인간 지율스님의 모습이려니 ...

살아 있고 , 또 산다는 건 어쩌면 그런 기진이 , 그런 삼보일배 같은 애씀이 필요하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 뿐일까 ? 기진할 만큼의 애씀 뒤에 오는 것이 배반과 같은 허탈한 것이고 쓴 감정일 것이란 게 사는 것의 본 얼굴이란 이야기 인지도 모른다 . 그럼에도 살아 내는 것일 뿐이라는 그런 말인지도 ...

그래서 이 책엔 오래되고 오래되서 투명한 사람들이 나온다 . 나무 할배 나무 할매가 그렇고 , 구 (舊)동장님이 그렇고 옥이 할아버지 , 신호 어르신들이 , 글의 행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그렇다 . 어디 인간만이랴 누렁이가 그렇고 , 지천에 있는 풀포기가 , 언제 올지 모르는 자식들 대신으로 놓고 보는 즈르륵한 모자들이 , 오늘 쓰일 것이면서 내일처럼 쌓이는 장작더미들이 그렇다 . 그것들은 없는 것처럼 조용한 가운데 제 자릴 지키고 있다 . 그런데에 둔 오롯한 눈 길이 이 책이고 스님의 산막일지다 . 투명한 찡함이 꽃샘추위처럼 사정없이 왔다가고 한다 . 아 , 보길 잘했다 . 이들을 모르고는 나는 꽤 섭섭했을 뻔 했다 .

책을 신청한 마음엔 산막이라는 공간을 내 앉은 자리에서 엿보고 싶던 간사하고 얄팍한 마음이 있었다 . 그런 내 맘이라도 괜찮다는 듯이 글은 ,
몸만 하나 달랑 바랑같은 숨을 달고 이 땅 물흐는 곳이면 바람처럼 갔을지도 모르는 스님의 소같이 우직하고 해맑은 기운을 산막이란 공간을 통해 나와 만나게 하고 , 열가구 남짓한 황토목에서의 지난 계절을 조근 조근 , 소근소근 , 나직나직 전해주고 있었다 . 어려운 말 하나 없이 그렇게 ...

나는 너를 알기를 동산의 명월로 아는데
너는 나를 알기를 흑싸리 쭉지로 아누나 ,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고 쪼끄마한 이내 가슴 수심도 많다 .


ㅡ본문 76 , 77 쪽 마실오신 할매들 중에서 ㅡ

우리의 배움과 지식은 양적이고 수직적이고 현실적이다 . 그러니 개구리가 노래하는 세상이 아름답다던 교수는 주민들이 그토록 지키려고 애쓰던 아름다운 원흥이방죽 * 과 주변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에 앞장설 수 있었을 것이다 . 지식을 팔고 사는 세상이 무섭다 .


ㅡ본문 89 쪽 그래도 개구리가 노래하는 세상이 아름답다 중에서 ㅡ

소를 길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멍에를 씌우고 채찍을 든다 . 소가 밭을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소의 기운이 느껴진다 . 축사에 묶여 야성을 잃었지만 야생 상태에서라면 사자도 겁내지 않을 것이다 .


ㅡ본문 104 쪽 에서 ㅡ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과 도서출판 사계절의 도서 제공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y*****7 2017.02.11.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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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오지마을 이야기, 지율스님의 산막일지
"깊은 산속 오지마을 이야기, 지율스님의 산막일지" 내용보기
닷새에 한 번 버스가 들어오는 깊은 산속 오지마을세상 끄트머리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땅을 일구는 사람들그곳에서 지율스님의 기록이 시작된다.  할아버지, 시골, 콩벌레닷새에 한 번 버스가 들어오는 곳은 아니었지만 버스가 들어오길 1시간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곳에 자주 놀러갔었다. 할아버지댁이 시골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나무집이 콘크리트집으로 변하고 주변집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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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에 한 번 버스가 들어오는 깊은 산속 오지마을

세상 끄트머리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땅을 일구는 사람들

그곳에서 지율스님의 기록이 시작된다.

 

 

할아버지, 시골, 콩벌레

닷새에 한 번 버스가 들어오는 곳은 아니었지만 버스가 들어오길 1시간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곳에 자주 놀러갔었다. 할아버지댁이 시골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나무집이 콘크리트집으로 변하고 주변집들도 새집으로 바뀌면서 예전의 시골같은 느낌은 많이 사라졌지만 나에게는 행복했던 기억들이 많은 곳이다. 할아버지 오토바이 뒤에 타고서 읍내에 나가 군것질거리를 사기도하고, 할아버지가 즐겨보시던 씨름방송과 전국노래자랑을 같이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 할아버지집은 나무집인데다 꽤 오래되었기에 벌레들이 항상 있었다. 개미는 항상 기어다녔고 파리는 귓가에서 윙 윙 거리며 날아다녔으며, 콩벌래가 콩처럼 둥그렇게 말려 죽어있기도했다. 지금은 내가 사는 집에서 개미 한마리만 기어다녀도 기겁을 하지만 그때는 벌레가 있든 없든 좋았다. 왜였을까?

 

 

 

 

1,2,3월

추운 겨울이다. 찬 바람에 얼굴이 베일것만 같은 날씨지만 나무할배는 오늘도 어김없이 나무를 가지러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간다. 성치 않은 다리지만 이리 저리 산을 올라가 잔가지들을 훓어내고 지게에 옮기기 시작하고 어느새 나무 한가득 지게에 실려있다. 다시 내려온 집에 새로 가져온 나무들을 내려놓고 정리하기 시작하는 나무할배. 집에는 몇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놓은 나무들이 한가득이다. 이정도 나무면 매일같이 산을 타지 않아도 될 법한데,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산을 탄다.

 

2월 중순이 지나가면 조금씩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매서웠던 바람도 따뜻한 입김이 서려있는듯하고 바짝 수그려던 풀들도 생기를 얻어가기 시작한다. 몇가구 되지않는 마을 사람들도 한데모여 대청소를 하고 장을 담구고 밭을 가꾸기 시작한다. 3월이 되면 잠자던 개구리들도 하나 둘씩 튀어나와 개굴~개굴 울기시작하고, 그러면 숨어있던 봄이 돌아온다.

 

 

 

4,5,6월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 아침과 저녁에는 쌀쌀한 날씨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이에 굴하지않고 아침일찍 집에서 준비한 나물과 묘목, 씨앗 장들을 장터로 가져가 판다. 봄이 돌아온 4월장터에서는 여기저기서 할머니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소리가 끊이지 않는 듯 생기가 넘친다.

 

5월이 되면 부처님이 돌아오신날이 다가오고 오지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스님을 찾아와 눈인사도 하고 괜히 말도 툭툭 던져보고는 한다. 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 괜시리 웃음이 난다. 본격적으로 쌀쌀함이 가시고 땀이 송골송골 맺일거같은 따뜻한 바람이 실려오기 시작하면 하나 둘 논에 나가 모를 심는다. 힘들게 모를 심고 허리한번 펴고 또 모를 심는다. 아마 이 모는 자라서 벼가 되고 쌀이 되어 우리 밥상에 올라올 것이다.  

 

 

 

7,8,9월

7월의 무더위와 폭풍이 지나가고나면 고추농사가 시작된다. 수확한 고추를 햇살 쨍쨍한 날씨에 마당 이곳저곳에 펼쳐놓고 말리거나 방 한곳에 고추를 널어놓고 방바닥이 뜨끈뜨끈하게 불을 집혀 말린다. 예전에 우리 시골에서도 고추를 말렸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고추말리는곳을 볼 수 있는곳도 드물어진듯 하다.

 

대목이 시작되었다. 추석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할머니들은 4월장터와는 비교도 안되게 바리바리 짐을 싸 아침일찍 버스를 타고 나간다. 버스에는 이미 할머니들이 가득하고 장터에도 엉덩이 붙일 공간이 없을정도록 사람들이 빼곡하다. 밤, 대추, 고추, 나물, 도라지 등등 추석을 위한 대목장이 열렸다. 

 

 

 

 

10,11,12월

농촌에서 1년중 가장 바쁘다는 가을걷이가 시작되는 지금! 밭에 심어놓은 콩, 팥, 조, 수수는 물론 남아있는 고추도 따야되고 할일이 태산이다. 5월에 심어놓은 모가 자라 벼가 되었으니 이도 수확해야하고 정말 바쁘다, 바뻐! 바쁜 10월이 지나가고나면 11월이 오고 마을사람들의 겨울채비가 시작된다. 이곳 사람들을 솔잎을 지펴 밥을 하기 때문에 산에 올라가 1년치 솔가지를 가지러 가고, 수확했던 콩을 타작하고 타작이 끝나고 나면 메주를 쑨다. 저녁이 되면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연기가 굴뚝에서 피어오르고... 드디어 겨울이 오긴 왔나보다.  

 

 

생명의 다른 이름 

지율스님은 물론 사십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롱뇽살리기운동에 참여했고 생명운동이 펼쳐졌다. 처음 4대강사업이 알려졌을때 많은 국민들이 반대했지만 어느 순간 암묵적으로 우리들은 동의해버렸다. 살기 바빴다는 말로 변명해보고싶지만 지금도 사라져가는 생명들 앞에 이 변명도 통하지 않을 듯 싶다.

 

흘러가야할 강이 멈추면 생명도 멈춘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물과 모래를 가두며 강물을 망가뜨리는 일이 진행되고있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기위한 운동 또한 진행되고있다. [지율스님의 산막일지]는 모래바람이 부는 흐르는 강물 속 생명의 숨소리와 몇가구가 살지않는 오지마을의 조용하지만 생명이 넘치는 이곳을 닮았다. 너무 조용해 몰랐지만 흐르던 강이 멈추니 생명도 멈추는것을 이제야 알게되었다. 이 책을 읽고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동안 찾아오는 계절이지만 계절 속 사라져가는것은 왜이리 많은지 미안하고 안타깝다.

 

생명의 또 다른 이름. 책을 통해 다시한번 알게되어 지율스님께 감사하다 전해고싶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h*******e 2017.02.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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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하지 않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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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일지는 바람소리, 빗소리, 물 소리, 풀꽃 자라는 소리..자연의 소리가 가득한 산골 오지 마을에서 구부정한  허리도 필새 없이 매일을 흙 위에서 땅을 일구어 삶을 가꾸는 소박한 행복을 기록한 책이다. 귀농하여 촌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은 온전히 자연을 누리지 못한 채 자꾸만 비집고 올라오는 욕망들과 고군분투하며 지내고 있는 내게 계절이 바뀌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소유하지 않는 행복" 내용보기

산막일지는 바람소리, 빗소리, 물 소리, 풀꽃 자라는 소리..자연의 소리가 가득한 산골 오지 마을에서 구부정한  허리도 필새 없이 매일을 흙 위에서 땅을 일구어 삶을 가꾸는 소박한 행복을 기록한 책이다. 귀농하여 촌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은 온전히 자연을 누리지 못한 채 자꾸만 비집고 올라오는 욕망들과 고군분투하며 지내고 있는 내게 계절이 바뀌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어르신들의 소박한 삶은 자연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산골마을 어르신들과 스님이 함께 나누었던 삶을 책으로 엮은 이유가 자연의 소중함, 있는그대로의 자연 안에서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거라면 내게는 통한듯 하다^^. 도롱뇽 스님으로 유명한 지율 스님의 산막일지를 읽으니 자연에 조금 더 가까이하고 싶어진다.

어르신들은 어스름 달빛이 채 가시기 전에 이른 새벽부터 밭으로 나가신다. 지게 하나,호미, 삽 한 자루 가 전부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만지고 사랑하는 물건과 사람에 의해 길들여 진다고 하는데  평생을 흙 위에서 대지에 가장가까운 삶은 살아온 어르신들의 삶은 어떨지 상상해 본다.

그리고 지금의 난 무엇에 길들어 가고 있을까?

며칠 전 친정집에서 ebs 프로그램 하나를 봤다. 산골에 들어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집을 짓고 친환경적인 삶을 사는 가족의 이야기였다. 화학적 비료 없이 분뇨와 음식물 찌꺼기 따위로 친환경 비료를 만들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감자를 심으러 나온 아저씨가 흙 위에털썩 앉아 투박한 손으로 한 움큼 움켜쥔 흙을 보며 "아! 이런 게 행복 아니겠어요? 난 이런 게 너무 좋아~!" 하며 이야기한다. 순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흙과 아저씨는 서로 하나가 된 듯 함께 빛나 보였다. 아이는 진달래 꽃을 따먹고, 이제 막올라온 쑥을 뜯어 먹으며 우리는 흉내 낼 수 없는 행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온갖 합성첨가물에 절여진 과자를 먹으며 따스한 햇볕한줌 느낄 시간도 없이 학원으로 떠도는 아이들과, 햇볕과 바람 자연이 만들어낸 선물을 먹으며 흙위에서 자라는  아이(물론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과연 어느 아이가 행복할까?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결혼과 동시에 시골의작은 마을로 들어왔다. 연애시절부터 결혼하면 고향에 내려가 과수 농사를 짓고 싶다던 신랑을 따라 난 또 대책 없는 용감함을 발휘했었다.(ㅎㅎ)그렇게 나의 시골살이는 시작되었고,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살아온 8년의 시간은 언젠가는 나 또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자연스럽게 내게 일깨워 주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내게 아무것도 없는 마당에서 온전히 자연을 즐기며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게 생각의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자연은 천천히 내 삶에 스며 들었다.(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복숭아 밭에 들어와 살면서 한차례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니 같은 동네에 살았어도 빌라에 살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직접 흙을 밟고, 꽂이 피고, 나무가 자라는 환경을 삶 속에서 경험하고 나니 자연의 소중함,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년 봄 태어나 처음으로 만들어 보았던 텃밭은 너무나 어설펐지만 아이들과 내게 즐거운 일과 중 하나였다. 아이들은 벌써  봄에 만들 텃밭을 계획하고, 틈만 나면 뛰어나가 호미로 텃밭에 우거진 풀을 솎아내고 있다

아마 내가 귀농이란 걸 선택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 했을 행복이다. '자연'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은 아이들에겐 책보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준다. 봄바람에 시집가는 민들레를 직접 만나고, 노랗게 물들어 돌아온 민들레를 다시 또 맞이할 수 있는 땅 위에서 아이들은 하루가 모자라게 논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사람이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을돌보고 있음을 느낀다.

시골생활과, 아이들, 독서를 통해 내가 제로 웨이스트의 삶을 실천하려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것들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노력하지 않고 당연히 하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촌에 들어와 땅을 가꾸며 살 수는 없지만 삶에서 누리게 되는 자연을 당연시 생각하기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에 살아도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이야 의식의 전환만 있다면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

소유에 대한 집착 없이 행복을 만드는 아이들,계절마다 변화하는 풍경, 푸른 하늘과 밤하늘에 수놓은 별을 마음껏 올려다보며 살 수 있는 지금의 내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모른다. 도시의 화려함은 없지만 자연이 주는소박한 행복은 내가 느끼고자 한다면 언제나 변함없이 내 곁에 있기에  존재 자체로 행복을느끼게 해준다.

어쩌면 자연은 마르크스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 풍성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닌 풍성하게 존재하도록 해주는 통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유와 상관없는, 보다 작은 것에서 출발하는 삶의 즐거움 이야말로 삶이 기쁨이 되게 하는길이라 생각한다.

-2017.2.10 책 읽는 엄마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소유가 우리를 괴롭히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에게 궁핍을 모르게 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부풀게 해주기 때문이다. 재물이 우리가 할일을 대신하게 될때 우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 법정, <홀로 사는 즐거움>중에서 -

YES마니아 : 플래티넘 s*******l 2017.02.1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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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의 산막일지_기록되어야 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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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은 특별하다. 다음은 지율 스님에 대한 소개이다.  천성산 습지 훼손을 계기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던 지율 스님은 4대강 공사 착공 이후 산에서 내려와 30여 회에 걸쳐 도보와 자전거로 낙동강을 답사한 후 낙동강 상류 지천인 내성천 영주댐 수몰지구 안에서 텐트 생활을 하며 <모래가 흐르는 강>,<물 위에  쓰는 편지> 등의 강 관련 다큐를 만들고 현재 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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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은 특별하다. 다음은 지율 스님에 대한 소개이다.
 
천성산 습지 훼손을 계기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던 지율 스님은 4대강 공사 착공 이후 산에서 내려와 30여 회에 걸쳐 도보와 자전거로 낙동강을 답사한 후 낙동강 상류 지천인 내성천 영주댐 수몰지구 안에서 텐트 생활을 하며 모래가 흐르는 강>,<물 위에  쓰는 편지등의 강 관련 다큐를 만들고 현재 내성천 친구들과 영주댐 철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강의 범람원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한 평 사기 운동을 전개했고, 4대강 기록관 건립과 웹사이트 운영 등 사진, 영상, 기록을 모아 환경문제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스님의 소개만 읽었을 뿐인데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마도 나는 나 자신의 안위 외에 우리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반성이 벌써 시작되고 있는 듯 했다.
 
그분의 특별한 자연 그대로에 대한 사랑은 <산막일지>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책은 스님이 낙동강 도보 순례를 떠나기 전 3년 동안 머물렀던 경북 영덕 칠보산 기슭 오지 마을에서 쓴 2006년도의 일지이다.
 
1월부터 12월에 거쳐 일기를 보는 듯하게 흘러가는 하루에 대한 무심하지만 정다운 시선들을 따라가볼 수 있다. 그곳에서 남아 있는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욕심 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 거기에 더해진 스님의 생각들. 이제는 점점 더 사라져가는 삶의 모습들이라 그런지 읽는 내내 마음이 아리다.
 
이 촌구석에서 자식 오 남매 키우고 공부 시키느라고 나는 내 인생도 한번 살아보지 못했어. 그런데도 생각해보면 그때가 사는 것 같았어.”
멀리서 할아버지께서 거름을 넣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온 들이 울고 있었다. 69p
 
사람은 자기가 만지고 사랑하는 물건과 사람에 의해 길들어간다. 돈과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돈과 명예에 길들어가고, 술과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과 노름에 길들어가며, 친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에 길들어간다. ‘지금 나는 무엇에 길들어가고 있을까?’ 66p
 
자연 생태계를 어지럽히려는 인간의 무지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기계를 발명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은 기계와 도구의 발달과 함께 진화했지만 그것들에 의해 야성을 잃고 길들여가고 있다. 현시점에서 인간의 추락이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너무도 명확해 보인다. 43p
 
우리의 배움과 지식은 양적이고 수직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러니 개구리가 노래하는 세상이 아름답다던 교수는 주민들이 그토록 지키려고 애쓰던 아름다운 원흥이 방죽과 주변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에 앞장설 수 있었을 것이다. 지식을 팔고 사는 세상이 무섭다. 89p
 
철마다의 기록을 통해 농사 준비부터 본격적인 농사, 수확, 그 수고로움과 평화로움을 그려내면서 스님은 ‘이분들의 삶은 너희가 그렇게 함부로 무시해서도 건드려서도 안되는 것이다라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경고를 하는 듯했다. 그저 눈앞의 이익만 쫓으며 무분별한 발전을 도모하느라 이 사람들의 삶을 너희 맘대로 해치지 말라고, 얼마나 치열하고 소중한 하루를 살고 있는지 너희 따위가 아느냐고. 지율 스님이 호통을 치시는 기분이 들었다.
 
이윽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지율 스님에 대한 외로운 싸움의 여정이 공개된다. 김택근 씨가 설명해주는 지율 스님의 모진 세상과의 외로운 사투. 나는 비겁하게 그 슬픈 등 뒤에 숨어 바라보고만 있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지키고 싶은 것이 많은 지율 스님. 그가 지키고 싶었던 산과 강과 사람들. 스님의 인터뷰와 언론인의 소개를 통해 이 책으로 전달하고 싶은 스님의 고귀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떠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르신들이 살아 계시는 동안 전해드리고 싶었고, 마음의 고향 길도 풀숲에 묻히지 않게 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애정을 가지고 계셨을 산막의 일지’." -지율 스님 인터뷰
 
지율은 산촌의 어르신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지난날을 보여드리고 싶다. 당신들이 살았던 마을이 극락이고, 그 세월이 천국의 시간이었음을 알려드리고 싶다"라고 소개했다. -김택근(언론인)
 
새삼 잊히고 무뎌지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무엇을 지켜내고 버려가며 살아야 할지 좀 더 스스로에 삶에 대한 주체적인 생각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더 이상 자연이 숨 쉴 곳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데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키고 싶다.

c******a 2017.02.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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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지율 스님의 산막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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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것들에 대한 미안함.구도자의 삶에 대한 영역은 도시를 벗어나 입산하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일까. 10가구가 전부인 깊은 산속 끄트머리 오지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삶을 잇는 스님 "지율"을 알지 못 했다. 그녀가 비구니인 것도 천성산 지킴이로 생사를 걸고 생명을 지키려 했던 것도, 또 4대 강, 강줄기를 지키려 애쓴 것도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연신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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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것들에 대한 미안함.

구도자의 삶에 대한 영역은 도시를 벗어나 입산하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일까. 10가구가 전부인 깊은 산속 끄트머리 오지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삶을 잇는 스님 "지율"을 알지 못 했다. 그녀가 비구니인 것도 천성산 지킴이로 생사를 걸고 생명을 지키려 했던 것도, 또 4대 강, 강줄기를 지키려 애쓴 것도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연신 TV 뉴스에서 4대 강 사업은 정작 강을 죽이는 일이라 외치고 있었으니까. 그저 내 정치적 무관심으로 생명의 중요함도 덩달아 무관심에 묻혔다. 그걸 이제야 깨닫는다. <지율스님의 산막일지>는 그런 지율 스님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처럼 따뜻한 책이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나는 그분이 밭에서 일할 때, 풀을 벨 때 호미질과 낫질하는 손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자야 아재의 눈은 보는 데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보려 하지만 자야 아재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p57

 

나무를 한가득 지개에 지고 재 넘어오시는 나야 아재의 걸음이 눈에 밟히는 듯하다. 당뇨로 이미 더 이상 세상의 것을 볼 수 없지만 평생을 지고 넘었기에 아재의 걸음은 쉼이 없고, 오히려 아재를 맞닥뜨린 지율 스님이 멈추어 숨을 고른다. 보이지 않는 아재를 위한 배려가 아닌 숙연함으로. 도시가 복잡할수록 인간사 역시 복잡해지는 게 아닐까. 도시를 벗어나 세상의 끄트머리 마냥 인적 고요한 마을에 머문다면 시간도 함께 사람을 따라 조용하고 느릿하게 사람 곁에 머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책은 사람 냄새나고 조근해서 좋다.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친구가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은 자기가 만지고 사랑하는 물건과 사람에 의해 길들어 간다. 돈과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돈과 명예에 길들어 가고, 술과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과 노름에 길들어 가며, 친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에 길들어 간다. '지금 나는 무엇에 길들어가고 있을까?'" p66

 

매서운 바람이 양철 지붕을 데리고 갈 만큼 추운 1월과 2월이 지나고 봄이 오는 3월의 한자락에 만나게 되는 이 글에서 나를 생각한다. 돈과 명예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고 술과 노름은 질색하지만 친구는 좋아했는데 지금은 스스로 멀리하다 보니 가까이할 친구가 떠오르지 않는다. 외롭지 않아 외로운 나는 친구에게 길들여 있지 않았나 보다. 친구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나 보다.

 

"묘목을 옮겨 심으며"를 읽다가 기발하고 유쾌한 나무 이름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낫다. "사귑시다 아가시나무", "크긴크다 말좃나무"라니 산속에 팔십 평생 들어앉아 있으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되고 구도자가 되는 걸까.

 

추억이란 과거의 시간, 행복에 머문다.

"땅의 힘을 받고 풀들이 무성해지고, 나무들이 푸른 잎을 펼치는 계절이다." p120

 

스님의 5월 예찬이다. 푸르고 생동감 넘치는 5월이라는 걸 알지만 이처럼 표현할 수 있는 혜안이 부럽다. 또한 유년시절 땅거미 질 녘까지 정신을 놓고 놀다가 엄마가 "밥 먹어라"라고 외치실 때가 내 놀이의 끝이었음을 기억하게 하고, 고소하다고 달래며 먹어보라고 입에 넣어주시던 원기소가 그렇게도 먹기 싫었던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울컥하다. 세월이 지나 오십이 낼모레여서 아득해야 할 유년의 기억은 이리도 생생한지. 그렇게 그 시절을 "그때가 좋았다!"라고 하는 나는 왜 도시에 안주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결국 눈물을 보였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눈물 바람을 하면 아내나 아이들이 웃곤 하는데 더구나 책을 읽다가 눈물바람을 하는 꼴을 보이면 더 많이 웃을 거 같아 얼른 눈을 손으로 닫고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다름 아닌 불구가 되었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에 쓰이는 걸 꺼려했다는 호영의 이야기, 그의 큰 형이 사진 속 동생을 가리키며 "엄마, 여기엔 팔이 있다."라는 대면 대면해도 사랑 가득한 형제의 회한을 마주하다, 어느 날 갑자기 불구가 된 내 모습에 내 손을 잡고 서럽게 "장남 노릇 잘하겠다."라고 다짐하며 내게 걱정 말라던 동생의 눈물바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철없고 밖으로만 겉돈다고 생각했던 두 살 터울 동생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나보다 더 장남 노릇을 잘하고 있다.

 

간간이 정치적 소신이나 사견을 풀어 놓기도 해서 덩달아 울분이 일기도 하지만 이 책이 문득문득 울컥해지는 이유는 그런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내 어머니가 가슴을 채우기 때문이다. 스님의 1년 동안의 산막 일지는 단순히 1년의 기록이 아닌 시간이 더디 흐르는 세월의 발자취가 아닐까 싶을 정도며, 차분하면서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활자를 따라가다 보면 이내 마음이 훈훈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터지고 갈라지고 두터워진 손을 흔드는 내 어머니가 그 오지 산막에 앉아 계신 듯하여 울컥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c********u 2017.02.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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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의 산막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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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일면식도 없는 스님이건만.. 지율스님에게는 뭔가 빚진 기분이 든다. 아마도 마음으로만 동참해서이겠지.. 지율스님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 세계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율스님이 이곳에서 이런 삶을 살고 있구나..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구나 싶었다.. 같이 동참해드리고. 그냥 같이 옆에 있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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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일면식도 없는 스님이건만.. 지율스님에게는 뭔가 빚진 기분이 든다. 아마도 마음으로만 동참해서이겠지.. 지율스님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 세계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율스님이 이곳에서 이런 삶을 살고 있구나..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구나 싶었다.. 같이 동참해드리고. 그냥 같이 옆에 있어드리고 싶다..

c*****i 2017.02.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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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의 산막일지를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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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의 산막 일지를 들여다보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닷새 만에 한 번 버스가 들어오는 마을에 그녀가 살았다. 차가 인간의 삶에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문명의 이기로 인한 편리함이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행복으로 이끌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시골 흙집에서는 겨울에 따뜻한 것이 최고다.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땔감에 저절로 미소 짓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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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의 산막 일지를 들여다보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

 

 

닷새 만에 한 번 버스가 들어오는 마을에 그녀가 살았다. 차가 인간의 삶에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문명의 이기로 인한 편리함이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행복으로 이끌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시골 흙집에서는 겨울에 따뜻한 것이 최고다.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땔감에 저절로 미소 짓게 되는 것이 한겨울 시골의 풍경이다. 몸을 움직이고 몸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이 다름 아닌 삶의 진정한 모습일 거다.

 

 

P130~131

할머니의 흙손이 논 가득 초록을 색칠해가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탐욕에 길들여왔는지 스스로를 깊이 돌아보고, 우리의 소원이 가난한 시절의 소원들처럼 절실하고 소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살기 좋아졌다는 세월에 쌀금은 없고, 소 값은 자꾸 내리고, 핵교 다니는 아도 없는데 요상하게 돈 나가는 데는 많고, 할배는 조차대고, 몸뚱아리는 예전 같지 않고, 시어머니 없어도 이눔의 시집살이는 점점 더하니."

건너 산언덕에 뻐꾸기 울음소리는 날아오르고 아카시아 향기, 찔레꽃 향기는 무심히 바람에 실려 오는데 높은 웃음소리, 깊은 한숨소리 함께 물논에 심어진다.

 

 

P182

논에 물꼬를 보고 올라오시는 국화 할배를 고갯길에서 만났다. 맨발에 흰 고무신, 손에 든 삽, 밀짚모자 그리고 등에는 지게를 지고 있다. 경운기 하나 없이 다섯 마지기 논과 천여 평 밭을 부치는 것은 할배와 할배의 지게이다. 어느 때는 똥장군이, 어느 때는 거름이, 어느 때는 콩이나 고추가 할배의 지게에 실려 있다. 언덕에 앉아 쉴 때도 지게는 할배와 거의 한 몸이 디어 등짝에 붙어 있다. 그렇게 칠십 평생을 살아오셨고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P256

할배는 경운기 한 번 몰아보지 않고 칠십 년 동안 이 산촌에서 농사를 짓고 사셨다. 아니,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리라. 팔십사 년 전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셨을 뿐이다.

낫과 도끼와 톱과 지게, 그리고 약간의 미장 도구가 할배의 살림살이 전부이다. 할배의 손은 할배의 눈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 기억들은 툇마루 끝에 남은 햇살처럼 비껴간다. 기억의 시간은 빠르고 기다림의 시간은 더디기만 하다.

 

 

닷새에 한 번 버스가 들어오는 깊은 산속 외진 마을에서도 어르신들은 쉬지 않고 일했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손발을 가만두는 날이 없었다. '봄에 싹이 터서 그해 가을에 열매를 맺고 죽는 일'이라는 '한해살이'의 정의처럼 심고 가꾸고 거두고 '죽음'과도 같은 겨울을 보내고 다시 또 봄에 씨를 뿌린다. 바람 소리, 빗소리, 할배의 장작 패는 소리, 댓잎이 사그럭거리는 소리, 할매의 구성진 노랫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긴 겨울 끝에 다시 봄이 오고, 또다시 낫과 호미를 드는 소농들의 삶이 돌고 도는 자연의 순리가 곧 깨달음이요, 경전이다.

 

 

불편을 감수하며 사는 생활 속에서 참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살아가는 일이 남의 것이 아닌 것이 없다. 하늘에 배우고 땅에 배우고 구름에게 배우고 바람에게 배우고 사람에게 배우고 곡식에게 배운다. 세상에 배우고 본받지 아니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소는 길들여졌다. 순한 소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밭을 가는 소를 보는 것도 어려워졌다. 소는 다만 인간의 식욕을 채우기 위한 사육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인간의 욕심이 내려지는 순간 자본주의 사회도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P280

새들이 날아와 양철 지붕을 밟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었습니다. 하늘과 바다와 숲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는 시간입니다. 이 눈 뜨임은 자연의 시간이며 우주의 시간이라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사람은 자기가 만지고 사랑하는 물건과 사람에 의해 길들어간다. 논과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돈과 명예에 길들어 가고, 술과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과 노름에 길들어 가며, 친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에 길들어 간다. '지금 나는 무엇에 길들어가고 있을까?'

 

 

 

 

지율스님의 산막일지(지율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y****a 2022.01.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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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의 산막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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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의 산막일지는 스님이 경북에 위치한 한 산골 산막에서 지내면서 1월부터 12월까지 있었던 일들을 적어놓은 책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열 가구의 마을 분들의 일상은 어떤지, 그곳의 풍경은 어떻게 바뀌는지 잘 기록되어 있다 보니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인간극장’을 본 느낌이었다. 특별한 소재가 없어도, 그냥 평범한 누군가의 하루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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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의 산막일지는 스님이 경북에 위치한 한 산골 산막에서 지내면서 1월부터 12월까지 있었던 일들을 적어놓은 책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열 가구의 마을 분들의 일상은 어떤지, 그곳의 풍경은 어떻게 바뀌는지 잘 기록되어 있다 보니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인간극장을 본 느낌이었다. 특별한 소재가 없어도, 그냥 평범한 누군가의 하루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평범해 보이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평소에는 읍내에 나가기도 쉽지 않은 산골이라 농사일이 거의 없는 겨울에는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는 듯 하지만 봄이 오고 추수를 하기 위해 농사일을 시작할 때 즈음에는 스님의 문체에서도 뭔가 활기활 느껴지는 것 같았고, 가본적 없는 곳이지만 머리 속에 어떤 장면들이 그려지기도 했다. 책 중간중간 볼 수 있는 사진들 덕분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내 머리 속을 휘감는 많은 생각들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것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문명이 주는 편리함에 젖어 수 백 년간 전해 내려온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등한시 하고 있지는 않은가 

-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인간의 이기심이 인간보다 더 오래 이 땅에 살고 존재했던 자연을 마음껏 사용하고 심지어 훼손하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자각하고 걱정한 적이 있는가 

- 마트에서 쌀, 과일, 채소들을 사면서 농사짓는 분들의 노고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는가 

 

 

 

심지어 추수했을 때 쌀 한 가마니에 정부 수매가로 환산하면 (당시 금액으로) 15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읽은 다음에는 너무 화가나서 사실 그 이후 글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쌀 한 가마니가 80KG이고, 80KG을 추수하기 위해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은 1년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에서 일을 하신다. 그분들의 1년의 노고를 가격으로 책정한다는 자체가 어쩌면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15만원은 정말 너무했다. 책에서 읽었던 계산법에는 논 열두 마지기에서 추수를 하면 나락이 400kg 정도인데, 방아를 찧으면 3분의 1이 줄어든다. 서른 다섯 가마니를 당시 정부 수매가로 환산하면 500만원 남짓이다.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 정도 되는 금액이다. 이걸 이제서야 알게 된 나도 너무 부끄럽고, 쌀은 마트에서 사서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너무 한심했다. 쌀은 마트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농사 지으시는 분들의 한 해 삶이 고스란히 담겼는데 정말 너무 관심이 없었다. 최근 정부 수매가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2016 12월 기사에는 쌀 한 가마니가 12만원 남짓이다. 이 정도면 농사 지으면서 빚이 없고, 생계가 유지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의문이 생긴다.

 

쓸데없는 걱정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농업 인구가 줄고 농경지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우려를 고등학교 때부터 갖게 되었었다. 미국과의 FTA로 인해 싼 가격에 쌀이 수입되고, 우리나라 농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생업에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쌀 관련 뉴스를 들을 때 마다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 타격을 입었는지, 입었다면 얼마나 입었는지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최근 한국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고 백남기 농민의 사건을(이라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으나) 꼽을 수 있겠다. 정부가 약속했던 쌀 수매가를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깎아버리는 통에 그것에 항의하기 위해 상경하신 분들께 정부는 사과는커녕 몹쓸 짓을 일삼고, 심지어 가족들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과연 이런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고 개선 될 수 있을까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쭉 수도권에서 살았다. 부모님 고향이 모두 시골이어서 명절 때나 방학 때 시골에 가서 며칠 지내고 오곤 했다.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나는 네 살 때는 내 동생 출산을 이유로 강제로(?) 할아버지 댁에 격리(???) 됐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할아버지 댁에 아궁이와 솥도 있었고 외양간에 소랑 돼지랑 외양간 앞에 닭도 있었고 할아버지 댁 앞에는 논, 옆에는 밭이 쭉 있었고 밭 너머에는 산도 있어서 겨울에 눈이 많이오면 비료포대로 썰매도 탔었다. 가끔 청개구리도 볼 수 있고, 여름에는 시끄러울 정도로 큰 매미 울음 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친척 동생들과 잠자리도 잡으러 다녔고, 겨울이든 여름이든 아침에 밖에 나가면 폐가 시리도록 시원한 공기를 들이쉴 수 있는 곳이다. 1년에 두 세 번 가면서 며칠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시골에서 오래 사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조금 크면서는 시골에 가면 티비도 제대로 안 나오고 휴대폰도 잘 안 터졌기 때문에 학업을 핑계로 시골에 발길을 끊었었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 간은 친척들의 잔소리 어택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시골에 갔었는데, 나름 할아버지, 외할머니께 짧게나마 얼굴을 보여 드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라는 생각이 들었었고 혹여 돌아가시게 되면 시골에는 더는 갈 일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나마 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있어서 시골에 가면 쌀이나 채소, 과일을 챙겨 주셨었는데, 이제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셔서 시골에 갈 일이 없게 되었다.

 

 

나도 시골 생활이 불편하고 싫은데, 누군가는 계속 시골 생활을 유지해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은 시골에서 사시는 분들이,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많이 힘들지 않으시고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생업을 이어 가셨으면 좋겠고 나라에서도 취약한 부분들을 정비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이상은 멀쩡한 산을, 멀쩡한 강을 인간의 욕심으로 뚫어버리고 메워버리는 짓은 안 했으면 좋겠다. 사라지는 생물, 동물들을 생각하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서 마음이 무거울 뿐이다.

 

 

내가 너무 우울한 쪽 주제에 심취해서 의식의 흐름이 슬픔, 분노, 안타까움으로 진행 되었지만 시골 어르신들의 인정, 소박함, 너그러움, 재치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도시의 삶이 갑갑하고 지겹다면 이 책으로 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리뷰는 예스 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 되었습니다.]

Y********7 2017.02.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