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에서 상사가 내게 남기는 고과사항, 평가는 심지어 "타사"의 고위 간부에게까지 넘어가 그의 인성과 자질을 가늠할 핵심 자료로 쓰일 수 있습니다("타사"라고 제가 일부러 강조까지 했습니다. 전직 단계 이전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한국에서 사실 파워와 인맥으로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상사는 지금 몸담는 회사에서 나의 가까운 장래와 향후 십 년 비전의 빛깔을 좌우할 생사여탈권을 쥔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대략 이십 년 전부터 대기업에서부터 다면 평가가 시행되기 시작한 것도 역으로 이런 상사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반증해 주는 사실이 맞습니다. 공식적, 제도적 영향력이 아니라도, 그저 업무와 현실에서 내머리 위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며 지시, 평가, 평점 등 모든 지배력을 행사하는 그에게, 약자의 위치에서 취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합니다.
이와 비슷한 게 대학원에서 학생과 지도교수와의 관계입니다. 단 이런 관계는 대학마다 조금씩 형편이 달라서, 생사여탈권을 제도적으로 분명히 장악하고 있는 교수에게도 그리 고분고분하지 않게 굴고, 심지어 대립, 견제 목적에서 일종의 "정치" 전선까지 형성하는 경우도 간혹은 보았습니다. 뭐 회사에서의 상하관계도 그렇게 따지면 예외가 없는 건 아닙니다. 물렁한 위인이 어쩌다 높은 직급에 올랐을 시, 교활하고 정치에 능한 아랫사람한테 휘둘리며 못 볼 꼴 보게 하는 모습도 아주 드물지만은 않습니다. 여튼 이런 사례는 좀처럼 접하기 힘들겠고, 당장 우리들 대부분이 처한 현실은 상사에게 잘 보인 후 조직에서의 위상을 아슬아슬하게 다지는 능력을 키우는 쪽에 가깝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능력의 진수라고 해야겠으며(사람을 만나 상대할 때 이게 서투른 사람은 확인 안 해 봐도 커리어가 부실하다는 게 바로 티가 납니다), 이게 안 되면 별을 달아도 결국 상무에서 더 못 올라가고 회사를 나와야만 합니다.
충, 왜 저기 일본어 이름자에 "타다"라고 읽는 이 글자는, 중근세에 들어 너무 군신 관계의 미덕만을 강조하는 쪽으로 쓰여 우리가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은 평등한 사이에도 성심성의를 다한다는 식으로 많이 쓰이는 글자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에 딱 불편하게 다가온 게,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걸 미덕으로 강조하나 하는 의문이었지만(사실 세상은 별 세상도 아니며, 갑을에서 기어야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죠 ㅋ), 책 내용은 그런 것보다(물론 그런 내용도 있지만) 인간된 도리로써 성실하게 소통에 임하라는 쪽입니다. 너무 겉발림 충성으로 일관하면 그게 어디 윗사람한테 통하기나 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도 내가 아랫사람으로서 맡은 직분은 확실히 수행해준다는, 성실한 마음가짐이 바로 진정한 "충의"와도 통합니다. 그럼 구태여 "충의"라고 표현할 게 있었을까. 이는 직장의 진짜 현실을 감안한, 차라리 작가의 정직한 표현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2장의 "업무"는 직장생활의 본질입니다. 업무가 원활히, 그리고 충실히행해져 윗선에 올라가야 그의 승진, 정당한 고과에 근거가 생기며, 아무리 인간관계가 능하고 정치에 통달해도 이게 안 되면 현상에 출구가 생길 리가 없습니다. 이 책에서 재미있게 본 건, 앞 1장과 관련하여 "나의 실적뿐 아니라 상사의 실적까지 관리하라"는 충고입니다. 앞에서는 내 실적을 상사의 실적으로 포장하여 나 자신을 감출 줄 알라는 조언이 있었는데(물론 이게 지나쳐서 이용만 당하고 말면 안되겠지만), 여기서는 그보다는 상사의 업무까지 내 것과 일체시켜 케어할 수 있는 융통성과 포괄적인 "정치"를 일러 주는 취지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요즘 일부 정치인들에게서 "법으로 칼퇴근, 연차 쓰기를 강제하는" 공약이 나오곤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아주 자연스럽게 야당 성향이 되곤 하는 기제를 특히 보수 성향에서 눈치챈 까닭도 있다고 봅니다. 책에서 주장하는 것 중 좀 지나치다 싶은 느낌을 받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지만, 어쩌면 책이 지나친 게 아니라 우리가 몸담는 그 현실이 악독하다고 봐야 맞을 것입니다.
상사의 기분과 스케줄과 심지어 앞으로 어느 선에 연을 대어야 유리할 것인가까지 (이 책에 나온 대로) 다 케어하고 나면 무슨 여력이 남아서 충실한 업무 완성에 쏟을까 싶기도 하지만, 여튼 "이 선 이상은 도저히 못하겠다" 같은 체념, 자기 타협은 곧 퇴직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런 무능자들이 낮이고 밤이고 블록질만 하며,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는, 있지도 않은 허상으로 자신을 가장하는 천하에 쓸모 없는 환각에만 빠져 들곤 하죠. 그래서 2부 말미에는 "일로 승부를 걸라"는 주문이 또 나오는데, 책 전체에 충의와 업무 양 주제로 공평하게 배분한 건 그만큼 적실성을 갖춘 체제라고 생각됩니다.
정보는 어느 조직에서나 개인과 라인의 생사를 좌우하는 요소입니다. 이런 정보는 일단 유리하든 불리하든 흘러돌아가는 날것을 내가 먼저 캐치한 후, 상사와의 관계에서 키를 쥐기 위해 저수지처럼 담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는 본디 "진실"과는 전혀 무관하게, 사람들이 들어 솔깃할 만한 정도에 따라 인기와 유통력이 커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정보란, 조직 안에서 이를 그럴싸하게 가공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전달하는 당사자의 영향력이 증대되거나 축소되기도 하는 게 사실이죠. 이런 걸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평소 관계에서 소외되었다가 거짓말이나 퍼뜨리면서 무슨 권력투쟁의 승자나 된 듯 보상심리를 맛보는 루저 타입(이런 인간은 정작 자기 직장에서 능력 발휘가 필요할 때는 극단적으로 서투르며, 남을 해코지하려다 되려 지가 주저앉게 마련입니다)도 있기 때문에, 이런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무리가 따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주장된 내용 중 가장 눈여겨 볼 만한 건 "상사가 없을 때 상사와 더 많이 소통하라"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제1장, "나의 실적을 그의 것과 유기적으로 연계시킬 줄 안다" 같은 챕터에 잘 나와 있습니다.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주문도 있는데 사실 이는 사회 생활의 기본입니다. 하다못해 학교 동문회에 나가도 집안 출신이나 부의 편재 여부가 천차만별인데, 화제만 꺼냈다 하면 설전으로 번질 인화성 화제를 구태여 뭐하러 입에 담겠습니까. 이게 세대별로 단일한 경향이 나타는 것도 아니라서, 몇 대를 두고 수천 명 종업원을 거느리며 영향력을 행사한 집안의 자제가 다른 또래들과 같은 지향을 갖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불편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자제하는 건데 이걸 뿌득뿌득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존재 과시를 위해서 꼭 입에 올리고 마는, 자기 통제가 안 되는 위인이 꼭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소통도 못하는 인간, 친구 감정도 배려 못하는 위인이 무슨 나라 걱정을 한단 말입니까. 무책임한 화제 거론에 쾌감이나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은, 몸담은 조직(아주 특수한 경우도 있겠으나)에 대해서도 결국 책임을 안 느낀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화제에는 스토리와 희망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도 귀담아 들을 만합니다. 여튼 어느 조직이건 모임이건 사람들은 어떤 비전과 전망을 얻으려 모여드는 거지, 듣기만 해도 기분 망쳐지는 담론을 귀에 담으러 회합을 갖는 건 아닙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이며, 사람이 자기만의 개성과 희망과 모색을 행하는 건 자기 공간에서 수행해도 무방합니다. 조직의 공간에서 개인의 방향성을 연장하는 건 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꼭 보면 "조직'에서 제 할 일 못하는 사람이 엉뚱한 데선 단합이니 분위기를 입에 올리며 만회를 하려 들더군요. 사람은 그가 속한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능수능란히 적응할 수 있는 도량이 있어야 하며, 이야말로 조직 안에서 상하와 융합하며 일신의 영달까지 도모할 수 있는 인재의 기본 조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