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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영혼의 무기』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
"『영혼의 무기』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 내용보기
내가 처음 작가 이응준을 만난 건 『내 연애의 모든 것』이라는 소설이었다. 어쩌면 남자가 이처럼 달달한 소설을 쓰나. 여당과 야당의 정치인을 내세워 로맨틱 코미디를 절묘하게 버무린 작품이었다. 그 소설 속 남자 주인공 이름이 김수영이었는데, 이응준의 이설집을 읽고나니 그가 왜 남자 주인공으로 김수영이라는 이름을 썼는지 알겠다. 그가 100번쯤 읽었다던 『김수영 전집2』.
"『영혼의 무기』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 내용보기

내가 처음 작가 이응준을 만난 건 『내 연애의 모든 것』이라는 소설이었다. 어쩌면 남자가 이처럼 달달한 소설을 쓰나. 여당과 야당의 정치인을 내세워 로맨틱 코미디를 절묘하게 버무린 작품이었다. 그 소설 속 남자 주인공 이름이 김수영이었는데, 이응준의 이설집을 읽고나니 그가 왜 남자 주인공으로 김수영이라는 이름을 썼는지 알겠다. 그가 100번쯤 읽었다던 『김수영 전집2』. 그의 김수영에 대한 애정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그리고 이응준이라는 이름을 본건 어느 유명 소설가의 표절에 대한 글이었다. 한동안 우리나라 출판계는 유명 작가의 표절로 들썩였다. 작가와 출판사는 사과문을 냈지만 알맹이 없는 허울뿐인 사과를 했다며 시끄러웠다. 그때 우리가 분노했던가. 그러다가 말겠지 하며 남의 일인양 무관심했던가. 그러면서도 한가지 대단했던건 선명하게 새겨진 이응준이라는 이름이었다. 선배 작가임에도 이렇게 표절 의혹을 제기할 수 있었던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응준 작가의 산문집을 만났다. 800여 페이지가 넘는 그야말로 벽돌 두께의 책을 말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에서도 느낀 바지만 그의 명료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었다. 이번 산문에서도 그의 확고하게 정돈된 생각들과 깔끔한 문장을 만날 수 있었다. 『영혼의 무기』라는 제목을 가진 산문에서 느낄 수 있는 건 그의 문학에 대한 고뇌, 그리고 문학에 대한 통찰이었다. 물론 그는 시나 소설 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에 이르기까지 문화예술의 전반적인 분야를 다 섭렵하고 있는 작가였다. 어디 문화예술 뿐일까. 종교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말할 줄 아는 작가였다.

 

 

 

요즘은 누구든지 개인 미디어에 실시간으로 글을 올려버리는 가공할 자신감과 광기에 가까운 습성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글을 쓰는 능력을 함양하고자 하는 이라면 아직은 미숙한 자신의 글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진정한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과거 우리의 작가들은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글이 발표되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았다. 그리고 대중은 그러한 작가정신을 흠모함으로써 자신의 소박한 문장을 되돌아볼 줄 아는 아름다운 교양이 있었다. (201페이지)

 

반려견을 키워보지 않았지만 반려견을 키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곧잘 들었다. 애지중지 키웠던 반려견을 보내고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고, 다시 이별하기 싫어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들었었다. 책 속에서 작가는 반려견 토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토토는 생각한다'라는 장을 할애할 정도였다. 가족보다 더한 애정을 퍼부었던 토토에 대한 감정들이 엿보여 가슴이 뭉클해졌다. 누군가와, 그 누군가가 동물일지라도, 이별하는 건 정말 슬픈 일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그의 산문에서는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들이 보였다. 똑같은 책을 긴세월 동안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그렇게 책을 읽어보았던가 싶다. 책이 많다고 자랑만 할줄 알았지, 한 권의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은 게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이처럼 한 권의 책을 100번도 읽어야 우리가 글이라는 걸 쓸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고 스스로를 의심하였기에 작가가 되었다. (286페이지)

 

시는 나를 치유한다. 시는 비록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 때로 전부처럼 여겨지는 유일한 무엇이다. (575페이지)

 

훗날 전집으로 남고 전집으로 평가받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317페이지)

 

그 무엇보다도 기억해야 할 것은 그가 말한 다음의 문장들이었다. 누가 바로 내 눈 앞에서 나를 줄곧 지켜보고 있다 한들 항상 나의 모든 글들은 내가 죽고 나서 읽힐 것을 상정한 채로 쓰인다. (357페이지) 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문학을 사랑한 작가만큼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 하는 것을 말했다. 그의 영혼이 문학 말고는 기댈데가 없다고도 말했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 특히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나는 이응준의 산문이 좋았다. 그의 언어는 다채롭고 명료하며 독설적인 면이 존재했다. 문학에 대한 통찰은 또 어떻던가. 다양한 문화예술을 하고 있지만 문학에 대한 사랑은 영원히 꿈틀대지 않을까 싶다. 그가 소설을 더 펴냈으면 좋겠다. 칼날이 되어 누군가의 폐부를 찌르는 그의 문장들을 소설에서 만나고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7.02.21. 신고 공감 11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글쓰기를 통해 불구덩이 같은 생을 가로지르다!
"글쓰기를 통해 불구덩이 같은 생을 가로지르다!" 내용보기
한때는 치열한 삶을 꿈꾸었다. 세상에서 살면서 내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잡고 평생 씨름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그런 삶이 부담스럽다. 그냥 물 흐르듯이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삶을 살고 싶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그럼에도 아직도 삶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 열정과 몸부림이 부럽다. [영혼의 무기]라는 방대한 이응준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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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치열한 삶을 꿈꾸었다. 세상에서 살면서 내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잡고 평생 씨름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그런 삶이 부담스럽다. 그냥 물 흐르듯이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삶을 살고 싶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그럼에도 아직도 삶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 열정과 몸부림이 부럽다.

[영혼의 무기]라는 방대한 이응준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한 마디로 정리하라면 바로 이 '치열함'이다. 이 책은 작가가 그동안 써왔던 많은 양은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다. 두께가 무려 800페이지가 넘는다. 내용 역시 단순한 삶에 대한 감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영화나 책에 대한 감상, 정치적인 이야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인터뷰 내용까지 다방면에 걸쳐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느낌을 한 편의 서평에 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전반적인 느낌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로 그 '치열함'이다.

이 책의 서문에 해당되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바로 자신의 이 치열함을 이야기한다. 그는 스무 살 때 가졌던 세상을 향한 열정을 아직도 간직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회고한다.

"스무 살 무렵을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삶의 해답에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근접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맹랑했던 것일까, 어리석었던 것일까. 그때로부터 자못 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냉정한 결과는 비참까지는 아니더라도 차라리 허망에 가깝다. 확실한 패배보다 오히려 더 괴로운 오리무중 속에서 나는 고정 중이다. - 중략- 나는 무턱대고 내 인생과 싸우듯 다만 세상에 지지 않으려는 본능에 기대어 이 산문들을 써 내려갔다. 때로는 멍하니 걷던 길 위에서의 작은 수첩 속 몇 줄이었고 대로는 하루 이틀을 꼬박 뜬 눈으로 버티는 고단한 몇 장이었으나 분명한 것은, 뜻밖에도 바로 그것이 맹랑하고도 어리석기 그지없는 내 인생이 세상과 화해하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사실이다. 스무 살 무렵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직도 사막과 가시덤불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지만, 그때의 그와 오늘의 나는 죽음과 같은 안식에 눕기보다는 불구덩이 같은 생을 가로지르려 노력하기에 여전히 이렇게 한 사람이다." P 10-11

 

그의 치열함은 단순히 글쓰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정치에 대한 그의 견해 역시 편안한 길을 가기보다는 모두에게 돌을 맞는 중도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중도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모두 공격을 받고, 무능하거나 우유부단함으로 비친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도야 말로

"우리의 습관 같은 선입견과는 완전 다르게, 사실 중도만큼 정치적으로 래디컬 한 입장도 없다. 극우와도 싸우고 극좌와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중도주의자는 그 어느 혁명가보다 치열하고 그 어느 애국자보다 중후하다. 흰옷에 떨어진 피보다 선명한 중도는 회색주의자가 아니다. 중도는 어설픈 화해를 거부하고 옳은 판단을 내려 행동하는 강력한 이성의 실현이다.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아닌 너의 무관심은 중용이 아니라 한갓 중간이며 사랑할 때는 사랑하고 미워할 때는 미워하는 절도에 중용의 본질이 있노라고 철학자 우송 김태길 선생은 갈파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대한민국 안에서 좌에게 이용당하고 우에게 휘둘리고 있는 중도주의자 백범에게 아쉬웠던 것은 정당성도 의지도 아니었다. 오직 힘이었다. 실력 없는 중도는 그저 갈등하는 소수일 뿐이다." - P 159

이 얼마나 예리하고 날카로운 지적인가? 나 역시 정치적 중도를 표방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항상 보수와 진보에게 욕을 먹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극단적인 사람들의 목소리만이 항상 진리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일까? 극단은 결국 자신 외의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돌리고, 결국에는 끔직한 학살?을 꿈꾸는데도...

 

사랑에 대한 그의 메시지 역시 남다르다.

"사랑은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부러 사랑을 해서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삶의 비밀에 한 발짝씩 접근할 수 있다. 그 비밀을 풀어낸다는 소리가 아니다. 불꽃에게 다가가듯 이 세계와 사랑에게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뜻일 뿐, 와중에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 사람마저도, 전부 불에 타 사라질 수도 있다. 사랑의 고통을 맛볼 것인가, 아니면 회피할 것인가.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대체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죽음이며 무엇이 이 세계란 말인가? 내가 사랑한다고 미고 있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재에게서는 재의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다. 죽은 불의 냄새가 난다. 우리는 불꽃인가? 자, 이제 어쩔 작정인가?" P 376-7

글을 읽으면서 글 속에서 그 사람의 치열함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즐거움인가? 내가 살지 못한 그 치열함을 타인의 글로서나마 대신 맛볼 수 있으니... 스스로를 산문가도, 소설가도, 대설가도 아닌 이설가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지옥과 연옥의 국경선에 참오를 파고 전쟁을 기다리는 말단 병사와 같은 심정으로 글을 쓴다고 고백한다. 과연 그런 심정이란 어떤 심정일까? 비록 치열한 글 쓰는 삶은 살지 못했지만, 이응준 작가의 이설집을 통해 그런 삶을 느껴본다.

i*******3 2017.02.16. 신고 공감 3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는 민낯의 두꺼운 불편함... 이응준, 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異說集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는 민낯의 두꺼운 불편함... 이응준, 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異說集" 내용보기
이응준의 산문집(혹은 이설집) 《영혼의 무기》는 팔백 페이지가 넘는다. 두께와 무게로 치자면 무기로 사용해도 될 법하다. 책 안에서 ‘’요즘 잘 나가는 영화의 액션 장면에서는 종종 두껍고 딱딱한 책을 무기로 쓰더라.“ 라고 말하는 장면도 찾아냈다. 자기 전 드러누워 책을 보는 습관이 있는데, 심지어 이 책도 그 습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금요일부터 연이틀 어깨에 문제가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는 민낯의 두꺼운 불편함... 이응준, 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異說集" 내용보기

  이응준의 산문집(혹은 이설집) 《영혼의 무기》는 팔백 페이지가 넘는다. 두께와 무게로 치자면 무기로 사용해도 될 법하다. 책 안에서 ‘’요즘 잘 나가는 영화의 액션 장면에서는 종종 두껍고 딱딱한 책을 무기로 쓰더라.“ 라고 말하는 장면도 찾아냈다. 자기 전 드러누워 책을 보는 습관이 있는데, 심지어 이 책도 그 습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금요일부터 연이틀 어깨에 문제가 생겼었다. 어느 한 방향으로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책을 다 읽었고, 이제 어깨도 다 나았다.


  책은 모두 일곱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챕터인 <보리수 아래서>는 자신의 그득한 상념을 적어내고 있다. 자신의 일상을 간결하게 들여다보고, 그 간결함에 깊은 생각을 보탠다. 넘치는 것 같지도 않고 모자라는 것 같지도 않다. 일종의 깨달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자잘한 깨달음들이 모여서 우리 범인들의 삶은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우리들 일상의 보리수 아래에서도 가능한 것들이다.


  “생이 아무리 비극적이고 그 끝이 허무할지라도, 신학자 폴 틸리히의 주장처럼, 인간은 비극이 없이는 제대로 살지 못한다. 비극은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진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극은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진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통과 염려는 다른 것이다. 고통은 인간을 강하게 하고, 슬픔을 알게 하고, 사랑하는 법을 숙고하게 하고, 겸손을 가르치고, 스스로 있게 하지만, 염려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다. 염려는 오늘을 쑥대밭으로 유기하고 내일에 불을 지른다. 염려는 고통을 괴물로 둔갑시키고 나를 겁먹게 한다. 왜소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성경에는 오늘 고민은 오늘 족하다고 쓰여 있다.” (20014.1) (p.49) - 보리수 아래서 중


  두 번째 챕터인 <광장에서>는 일종의 시평時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 사회를 바라본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런 저런 적폐를 향하여 아유를 보내는데, 좌와 우를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물론 나는 작가 이를 좀 구분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회의하는 자유주의자로 자신의 포지션을 정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겠으나, 회의하지 않는 모든 태도를 파쇼적인 것으로 몰아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회의라는 태도를 너무 확신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회의주의자의 태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본다.


  “소설 《독일어 시간》에서 작가 지그프리트 렌츠는 아주 기발하고도 명쾌한 원인을 내세우며 제3제국의 도래를 분석하고 있는 듯한데, 그것이 바로 독일 민족의 해학성 부재, 곧 유머의 부족이다. 한마디로 일상의 사소한 파격조차 용인하지 못하는 독일인들의 고지식함이 히틀러에게 집권의 기회를 열어주었으며, 그것이 결국엔 전 인류적 페스트인 나찌 파시즘의 창궐로까지 이어졌다는 시각이다... 굳이 예술정신이라 창하지 않더라도, 예컨대 창조적인 사고체계는 파시즘을 향한 가장 효과적인 항체가 될 수 있다. 파시즘은 이성을 바탕으로 한 사상의 수준이 아닌 탓에, 긴장감을 완화하고 윤활해주는 정신의 숨구멍, 즉 생각이 자유롭고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2001.6) (pp.99~100) - 광장에서 중
  “자동차라고는 한 대도 없는 나라에 운전교본이 들어와 자동차에 대한 공상을 유행시킨 뒤 그것이 실제로 사방에 자동차들이 다니고 있다는 착각으로까지 이어져 온 나라를 가짜로 만들어버리는 셈이 아니고 뭔가. 자동차를 몰아본 자는커녕 자동차를 구경해본 자도, 자동차가 다닐 도로조차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나는 우리 학계의 통섭과 융합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통합과 융합이란 고수들끼리의 통섭과 융합이지 이제 갓 입문한 자들끼리의 통섭과 융합은 아닐 것이다.” (2013.5) (pp.122~123) - 광장에서 중
  “... 보수주의자들은 국가 체계의 골격과 그 기능의 선함을 소중히 여기는 상식주의자들이다. 이 사회가 보수에게 요구하는 진정한 모습은 독선과 오만과 작당과 부패가 아니라 고뇌하는 균형감각과 솔직담백한 소통, 치열한 직업정신과 청정한 위엄이다. 이 나라의 소위 좌파들이 선한 사마라아인과 고독한 지식인 행세로 나르시시즘의 허기를 채우고 있다면, 이 나라의 소위 우파들은 애국자 행세로 속물의 극치를 보여준다... ‘애국’이라는 것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처럼 매우 모호하고 난해한 개념이다. 그래서 애국은 자신을 정말 애국자라고 착각하는 근육주의자들에 의해 아집과 폭력으로 쉽게 변질되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과연 누가 목숨을 던져 국가를 지키는지는 새벽 닭이 두 번 울기 전까지 예수를 세 번 부인하는 베드로처럼 그때 가 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법이다. 타락한 종교가 죽음을 가지고 사기를 치듯이, 병든 사회주의자 평등과 정의감과 조직으로 사기를 치듯이, 파시스트들은 애국으로 사기를 친다.” (2014.6) (pp.150~151) - 광장에서 중


  세 번째 챕터는 <전장에서>이다. 조금 긴 서평들과 인터뷰를 비롯해 책이나 작품과 관련한 자시의 생각을 드러낸 글들이 실려 있다. 이 챕터에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에 대한 글이 포함되어 있다. 그 문제제기로 인하여 생각한 것 이상으로 상심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옳은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이야기하는 일이 쉽지 않은 우리네 세태를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다음 챕터인 <참호에서의 책읽기> 또한 짧은 리뷰들을 모아 놓았다. 두 챕터의 차이가 살짝 궁금하다.


  “나는 정원이 있는 남향집에서 자랐다. 삼대가 선행을 쌓아야 남향집을 얻는다는 소리도 그 어린 시절에 들었다. 햇살은 굉장한 기구이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식구였다. 나중에 아버지는 그 남향집을 헐어내고 높은 상가건물을 지었는데, 이제는 남의 소유가 돼버린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리가 잃은 것들은 남향의 보금자리와 거기를 비추던 햇살 정도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를 잃어버리고 완전히 각자가 되었다.” (2001.9) (p.251) - 전장에서 중


  나머지 세 개의 챕터는 <토토는 생각한다>와 <시인 함성호 씨> 그리고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이다. <토토는 생각한다>는 작가와 오랜 세월 함께 한 강아지 토토, 그리고 지금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 간 강아지 토토에 대한 짧은 글들 모음이다. <시인 함성호 씨>는 작가가 가깝게 지내는 시인 함성호에 대한 글인데, 투덜거림과 야유와 애정이 뒤섞여 있다.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는 짧은 일기글이고, 2013년 6월 2일부터 2016년 11월 10일까지의 기록이다. 작가의 민낯을 들여다보게 된다.


  “말... 나는 토토가 언젠가 한 번은 내게 말을 할 것만 같다. 이렇게 우리 둘만이 서로를 고요히 보고 있을 때면, 영영 이별하기 전까진 언젠가 단 한 번은 나의 토토가 내게 말을 걸어올 것만 같다.” (p.473) - 토토는 생각한다 중
  “대한민국에서 ‘의식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은 사실 너무나 쉬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대신 써주면 된다. 그러면서, 그것이 자기의 ‘계산’이 아니라고 믿고, 나중에는 그런 생각 자체까지 지워버리면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체질이 된다. 대한민국에서 ‘의식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은 ‘의식 있는 국민’이 되는 것보다 사실 너무나 쉬운 일이다. 멋져 보이는 말만 골라서 하면 된다. 그걸 진정한 용기라고 자뻑하면 된다. 고독하고 아픈 척하면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말 고독하고 아프다고 믿어버리면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이 ‘의식 있는 작가’는 많은 ‘어떤 정의로운 독자들’을 창녀로 거느린 유곽 같은 사회의 포주가 된다. 이것은 어려운 길이 아니다. 매우 쉬운 길이다. ‘어떤 정의로운 대중’은 그걸 잘 모른다. (2015.4.12.) (pp.650~651) -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 중
  “타인의 욕망을 이용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타인의 무지를 이용하는 자들은 구원의 도리가 없다.” (2016.9.20.) (pp.752~753) -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 중


  중간중간 드러나는 좌파 지식인 사회(좌파 문학인 사회를 포함하여)에 대한 작가의 억하심정에 자주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글을 읽는 동안 종종 불편하였다. 작가는 위선보다는 악이 낫다고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에게 우리 사회에서 좌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위선적인 그룹으로 분류된다. 우리 사회의 좌파가 가지는 문제점에 대한 작가의 지적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 좌파의 표상이 정말 우리 사회의 좌파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몇몇 챕터 그러니까 시인 함성호 씨, 라는 챕터와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 와 같은 챕터는 굳이 산문집에 넣지 않아도 좋았을 것 같다. 작가는 연예인이 아니니 굳이 이런 민낯인 글로 자신의 속살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연예인이 민낯을 드러낼 때 그것이 치장된 자신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무대 위와 그 아래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이는 것이라면), 사실 작가의 모든 글은 이미 그 자체로 민낯이어여만 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응준 / 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異說集 / 비체 / 831쪽 / 2017 (2017)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7.02.2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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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향한 부단한 회의(懷疑)...
"사랑을 향한 부단한 회의(懷疑)..." 내용보기
이응준. 잘 모르는 작가다. 고작 그의 소설 두 권만 읽었으니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소설로 만나 본 그는 문장을 참 잘 쓰는 작가였다. 왜 어떤 글을 읽으면 글 쓰는 솜씨를 훔치고 싶은 작가가 있지 않은가? 솔직히 그런 작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번에 나온 그의 책, '영혼의 무기'를 보고 알게 되었다. 요컨대, 이런 글을 통해서다. 요즘은 누구든지 개인 미디어
"사랑을 향한 부단한 회의(懷疑)..." 내용보기

 이응준. 잘 모르는 작가다. 고작 그의 소설 두 권만 읽었으니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소설로 만나 본 그는 문장을 참 잘 쓰는 작가였다. 왜 어떤 글을 읽으면 글 쓰는 솜씨를 훔치고 싶은 작가가 있지 않은가? 솔직히 그런 작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번에 나온 그의 책, '영혼의 무기'를 보고 알게 되었다. 요컨대, 이런 글을 통해서다.


 요즘은 누구든지 개인 미디어에 실시간으로 글을 올려버리는 가공할 자신감과 광기에 가까운 습성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글을 쓰는 능력을 함양하고자 하는 이라면 아직은 미숙한 자신의 글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진정한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과거 우리의 작가들은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글이 발표되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았다. 그리고 대중은 그러한 작가정신을 흠모함으로써 자신의 소박한 문장을 되돌아볼 줄 아는 아름다운 교양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작가들의 글은 한낱 철지난 상품이 돼버리고 그런 작가들을 자신의 분신보다 열등하게 여기는 대중의 문장은 변기 모양의 흉기다.(...) 글이 그 내용과 형태의 가치를 담보할 때까지 스스로 감추고 기다리는 태도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기법일진대 이 당연한 사실을 작가와 대중이 모를 때 그 사회는 언어의 무간지옥 속에 갇힌다.(p. 201 ~ 202)


 그는 쉽게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의 글을 세상에 내보는 것을 두려워 하며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된 글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였다. 얼른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도자기 만드는 장인이 떠올랐다. 설령 단 한 개의 도자기도 세상으로 내보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격이 되지 않으면 모조리 깨버리는 장인. 이응준에게 글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가 쓴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는 말에서 언뜻 그런 것이 감지된다. 그에게 있어 글은 그냥 글이 아니다. 어쩌면 자신의 존재 전부를 걸어야 할 지도 모를, 영적인 그 무엇이다.


 필사로 문장이 얻어진다는 것은 철저한 허상이다. 문장은 영적인 물질이다. 그것은 반 이상이 타고난다. 또 문장을 못 쓴다고 소설가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거칠고 아귀도 맞지 않는 문장을 쓰면서도 독특한 세계관으로 이름을 날린 작가들은 많다. 그러나 그들이 아름다운 문장의 소설가라는 말을 듣지는 못할뿐더러 문장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소설의 맨 처음이기는 하다. 더더욱 필사를 멀리 해야 하는 이유에 다름 아니다. 작가가 되려면 일단은 마음에 새겨진 것들을 글로 옮겨야 한다. 그것이 비록 누구의 영향을 받아 싹을 틔웠든 간에, 결국에는 작가 나름의 해석과 정신이 담긴 글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필사를 통해 작가가 됐다고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들 무슨 대단한 고행 중에 문학의 본령을 터득한 줄로 아는데, 알고 보면 그들의 글을 문학으로 승격시킨 요소는 무식한 필사가 아니라, 하다 못해 필사까지 감행하게 한 열정과 노력이었을 것이다.(p. 229)


 '영혼의 무기'를 읽다보면 그가 굉장히 종교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글은 그런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번제로 드리는 기도는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 말이나 막 할 때 눈을 뜨고 있는 우리는 눈을 감고서 기도한다. 세상은 살인적인 속도에 온갖 현란한 치장과 야비한 선전 들을 실어서 보여준다. 그러나 그럴수록 인간이라는 상처는 참혹해지고 삶은 중심을 잃지 않았던가. 나를 보고 사랑한다고 하는 이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나를 듣고 뭔가를 깨달은 그 사람의 영혼을 믿는다.(p. 27)


 그것이 작가로써 가지는 세상과 대중에 대한 의무이기에. 쉽게 말하자면, 진정성. 그랬기에 그는 설사 자신의 문단 생활이 망쳐지더라도 신경숙의 표절에 대해 '침묵의 공범'이 되기를 거부하고 기꺼이 '내부고발자'가 되었을 것이다.


 신경숙은 한국문학의 당대사 안에서 처세의 달인인 평론가들로부터 상전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으며 동인문학상의 종신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등등'의 요인들로 인해 문단 최고의 권력이기도 하다. 그러한 신경숙이기에 신경숙이 저지른 표절이 이른바 순수문학에 대해서는 순진할 수밖에 없는 대중, 특히 한 사람의 작가만큼이나 그 개개인이 소중하기 그지없는 한국문학의 애독자들과 날이 갈수록 하루하루가 풍전등화인 한국문학의 본령에 입힌 상처는 그 어떤 뼈아픈 후회보다 더 참담한 것이다.(p. 389)


 '영혼의 무기'는 이런 이응준의 글들을 담고 있다. 시인으로 등단하여 소설가를 겸하는 그가, 시와 소설로 발표하지 않은 글을 다양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문학적 장치로 여과되지 않은 것이라 더욱 자신의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글을. 작가는 스스로 '이설(異說)집'이라 이름 붙였다.



 이설(異說). 그것은 왼손잡이와 같다. (너무 서툰 비유라 미안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계속해 보련다.) 다들 오른손으로 하라고 강요하지만 결코 굽히지 않는 왼손잡이. 당당히 왼손을 들고 오른손잡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모습을 외치는 왼손잡이. 이 책에 담긴 이설(異說)의 형상이다. 그것은 듣기에 편치 않은 말이다. 고개를 외로 꼬고, 삐딱한 시선으로 면전에서 대놓고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달라' 하는 말이니까. 실제로 불편한 글이 있다. 보수와 진보 양 쪽의 적대적이며 편협한 태도들을 공박하는 글을 읽노라면 팔짱만 끼고 말만 앞서는 양비론자 같기도 하고 혹은 잔혹한 괴물에게도 어느 정도 인간성이 있을 것이라 순진하게 기대하고 있는 이상주의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도중에 책을 던지지 않고 끝가지 읽게 되는 것은 설령 그런 글이라 하더라도 그 바탕에서 어떤 아집이나 타산 같은 것이 아니라 '나도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 우리 같이 고민해 보자.' 하는 식의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맞다. 그의 이설(異說)은 종착지가 없다. 누구나 종착지로 생각하는 곳에서 홀연히 나타나서는 '아직 우리는 더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길과 같다. 온전한 이해를 위한 부단한 회의(懷疑). 그것이 바로 그의 이설(異說)이다.


 인간에 대한 회의(懷疑)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p. 198)


 그러므로 '영혼의 무기'는 두 가지 점에서 이롭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작가 이응준의 영혼이 가진 전체적인 형상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해답 같은 것은 나와 있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에 대해 평소 잘 생각해 보지 못했던 방향에서 전혀 새로운 쪽을 가리키며 진행되는 사유의 경로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아주 흥미로운 여정이었다. 그가 보여주는 색다른 풍경은 흥미로웠고, 동의할 수 없는 지점들은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무려 831 페이지의 책으로, 책 자체가 무기가 되는 책이지만 지루해서 하품이 나거나 난해해서 건너뛰는 곳은 없었다. 알뜰하게 읽게 되고 살뜰하게 다가오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하나는 확실하다. 이응준 작가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 작가는 그것 역시 회의(懷疑)해야 한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그의 반려견 '토토'에게 바쳐졌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모양이다(정확히는 2016년 7월 1일). '토토'에 대한 그의 태도는 그의 회의(懷疑)가 실은 좀 더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걸 드러낸다. 어떤 존재든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내 앞에 있는 존재가 얇은 평면이 아니라, 저마다 살면서 감내해 온 과정이 있는 입체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타자에 대한 존중이 먼저고,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 바로 그런 것을 위한 회의(懷疑)이기 때문이다. 그런 눈을 가진 그이기에, 인간과 동물 사이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나같이 묵직한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존재들이므로.


 세상의 혼돈 앞에서는 숨이 막히듯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그 혼돈을 견뎌내느라 날이 갈수록 강퍅해지고 잔인해지고 사나워지는 사람들 앞에서 다름 아닌 나 자신을 본다. 만약 공부라는 것이 있다면, 공부란 그 반대편으로 걸어가려는 안간힘일 것이다. 이것이 공부의 시작이거나 공부의 전체가 될 수는 없겠지. 그러나 공부의 중간 점검 정도는 될 것이다. 그릇된 공부는 때려치워야 한다. (2016년 8월 7일 / p. 711)


 그에게 회의(懷疑)란 공부고 종국엔 사랑이다. 이런 이설(異說)을 어찌 감미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때로는 독주(毒酒)가 약이 되기도 한다. '영혼의 무기'가 그렇다. 자주 흠뻑 취할 만 하다. 


l****1 2017.02.28.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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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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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응준보다 소설가 이응준을 난 더 먼저 알았다. '내 연애의 모든 것', '밤의 첼로' 등 달달한 연애세포를 자극하는 로맨틱 코미디 소설이나 아리고 상처받은 인물들이 상처를 들여다보는 아린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을 먼저 접해서인지 나에겐 이응준은 소설가로 먼저 인식된다. 여기에 칼럼니스트와 영화감독까지 더해진 이응준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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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응준보다 소설가 이응준을 난 더 먼저 알았다. '내 연애의 모든 것', '밤의 첼로' 등 달달한 연애세포를 자극하는 로맨틱 코미디 소설이나 아리고 상처받은 인물들이 상처를 들여다보는 아린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을 먼저 접해서인지 나에겐 이응준은 소설가로 먼저 인식된다. 여기에 칼럼니스트와 영화감독까지 더해진 이응준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인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채에서 나온 '영혼의 무기'는 이응준 작가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원색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으로 짧은 글들이지만 자꾸만 이어지는 생각에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난 죽음이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지는 않지만 죽음이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초반부에서 유독 다크한 느낌을 많이 풍기는 것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는 불편함보다는 인간이 느끼는 죽음이 쓸쓸하고 안타까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생이 아무리 비극적이고 그 끝이 허무할지라도, 신학자 폴 틸리히의 주장처럼, 인간은 비극이 없이는 제대로 살지 못한다. 비극은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진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p49-0


우리는 성공 때문에 좌절한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강해진다. 용기란, 그리고 능력이란,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내가 먼저 아는 것이고, 그런 나를 몰라주는 세상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증명해 보이는 과정이다.               -p60-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고 있으면서 우리는 현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나 역시도 무슨 때마다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설마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더 많다. 아직 읽은 적은 없는 저자의 책 '국가의 사생활'에 대한 남북의 통일에 대한 섣부른 기대도 없고 오히려 통일이 된 후에 지금도 암울한 경제가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거의 하지도 않는 걱정 아닌 생각도 했을 때가 있었지만 보수, 진보를 떠나 어떤 집단이 정권을 집권해도 통일에 대한 힘은 부족하다는 글에는 공감하게 된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경숙 작가의 표절이 있었다. 신경숙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그렇기에 더 실망스럽고 제대로 된 입장표명이 없어 더 안타까웠다. 모든 창조는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저자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빗대어 '똥'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표절은 한국문단에 깊이 들어와 있어 표절에 대한 이야기는 씁쓸하면서 지금껏 우리 문학을 지켜온 선배들과 그 뒤를 이을 후배들을 위해 날카롭게 비꼬아 주는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난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으며 내 안에 쌓여 있던 불만스런 감정들이 상당부분 해소됨을 느낀다. 저자처럼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도 있지만 많은 책을 읽고 몰두하면서 간접적이나마 즐거움을 찾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독서는 독서에 대한 명상이자 수행이고 장인의 방법론이기도 한 것이다.               -p104-


대담은 그 사람의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소설을 두고 이야기하는 대담, 인터뷰들은 내가 알고 있는 작품에 대한 생각이 깊지 못함을 알고 있었기에 저자가 알려주는 인물, 사물 등을 통해 다시 책을 찾아 좀 더 깊이 있게 읽을 마음을 갖게 해준다.


나는 아직 젊기에 비극을 쓰고 있다. 그리고 노인이 되어서는 희극을 쓰고 있을 것이다. 청춘을 다 탕진한 뒤에도 코미디를 쓰지 못한다면 그것보다 부끄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고 스스로를 의심하였기에 작가가 되었다. 만약 내가 인간을 신뢰했더라면 문학이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p286-


토토를 생각한다, 시인 함성호씨,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는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좋았던 부분이다. 나이 많은 애완동물 토토와 시인 함성호씨... 성호형에 대한 이야기는 그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간략하지만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라 머릿속으로 연상이 되어 읽은 부분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비극보다는 희극이 좋다. 새드엔딩보다 해피엔딩을 찾아보게 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글 하나하나가 자꾸 곱씹어 읽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영혼의 무기'는 짧은 글로 이루어져 있어 읽는데 부담감은 적지만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매력적인 책이다. 이응준 작가의 자유로움과 그가 얼마나 더 우리를 설레게 하는 책들을 쓸지 기대한다.

q******5 2017.02.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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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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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작가. 1970년 생으로, 20살에 시인으로 등단. 우아~~~ 20살에. 제가 문학을 너무 몰라 이응준 시인의 글은 처음입니다. 소설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 중인데도 그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 했습니다. 시집을 두 권, 소설집을 다섯 권, 장편소설도 네 편이나 발표했더군요. 이번엔 산문집입니다. 한국에선 수필이 잘 안 팔린다는데도 이렇게 책이 나온 걸 보면 대단한 작가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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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준 작가. 1970년 생으로, 20살에 시인으로 등단. 우아~~~ 20살에. 제가 문학을 너무 몰라 이응준 시인의 글은 처음입니다. 소설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 중인데도 그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 했습니다. 시집을 두 권, 소설집을 다섯 권, 장편소설도 네 편이나 발표했더군요. 이번엔 산문집입니다. 한국에선 수필이 잘 안 팔린다는데도 이렇게 책이 나온 걸 보면 대단한 작가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낙서장이나 블로그에 수년간 쓴 것들을 모아둔 것 같은 느낌의 잡동사니 산문집입니다. 일기처럼 자신의 생각을 쓴 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쓴 글 등 내용과 형식도 다양합니다. 제가 등단 작가가 아니지만, 제 블로그 글도 몽땅 모으면 책 한 권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작가 지망생인지라, 작가에 대한 글 소설에 대한 글, 글쓰기에 대한 글, 문학에 대한 글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좋았던 부분 중에 몇 개만 골라보겠습니다.


왜 젊은이들을 위로하는가? 기운 차리게 해서 또 편의점에서 부려먹으려고?


지금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헌법이 열등해서도 아니고 법이 모자라서도 아니다. 법을 만드는 자들부터 타락해 법을 안 지키기 때문이다.


  법은 누구나 지켜야 합니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왕인 줄 아는 한 정신병자가 법을 어기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 아니게 됩니다. 왜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까요. 저자는 헌법이 열등해서도 모자라서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법을 만드는 자들부터 이미 타락했기에, 그들부터 법을 안 지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치인부터 법을 안 지키는데 국민들이 법을 지키고 싶을까요? 그러니 여기저기서 불법이 횡행하고 억울한 사람이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나라를 이 꼬락서니로 만들어놓고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정말이지 꼴불견입니다. 어떤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랍니다. 아프면 환자지요. 환자는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지 위로받고 노력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필사로 소설 수업을 시키는 것은 진지한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당장 힘 좀 쓰게 하겠다고 미래에 발병할 괴로운 병원체를 강장제로 먹이는 것과 같은 짓이다.


요즘 젊은 소설가들은 상상력이 없다. 문학상 눈치 보고, 출판사 눈치 보고, 이러는데 무슨 상상력이 있겠나. 작가의 모럴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거다. '나는 이 사회를 흔들어놓겠다, 이 사회를 뒤흔들 질문을 던지겠다.' 이 강력한 의지가 글을 쓰게 하는 거라고. 그런데 남의 눈치를 보니까 쓸 게 없지, 여기서 '남'은 누굴까? 여기까지만 하자.


만약 신경숙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받아 적다 보니 시인 김후란 번역의 <우국> 속 저 부분을 표절한 <전설>의 그 부분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 거라고 주장하려면, 가령, 자신의 집 앞에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밤 태풍이 몰아쳤고 이튿날 맑게 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그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은 모양으로 간밤 비바람에 깎여 있더라는 해괴한 어불성설을 명쾌한 사실로 증명해내야만 할 것이다.


  저자는 필사를 극구 반대합니다. 필사를 필사적으로 반대합니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절대 해선 안 될 어리석은 짓이라고 충고합니다. 왜 한국문학이 이 꼬락서니가 됐을까요. 상상력이 부족하니 표절이나 합니다. 표절이 아니면 재미가 없거나 읽을만하지 않습니다. 저는 '등단제도'가 한국문학을 시궁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상에 오직 우리나라만 등단제도가 있습니다. 등단제도가 훌륭한 것이라면 노벨문학상이 수십 명은 나왔어야죠. 그런데 0명입니다. 등단제도가 개쓰레기 구닥다리 제도라는 증거입니다. (등단제도가 쓰레기라는 건 제 생각이며 저자의 생각이 아닙니다.) 외국에도 등단제도가 있었다면 우리가 읽고 있는 고전들 중에 몇 권이나 살아남았을까요? 발표 당시에는 아무도 읽지 않아서 잊혀진 소설이 세월이 지난 후에야 제대로 평가받고 전 세계인이 읽는 소설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읽은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단 하나뿐인 소설이더군요. 그 나라에 등단제도가 있었다면 이 훌륭한 소설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 했을 것입니다. 한국문학 말아먹는 등단제도 때문에 젊은이들은 심사에 통과될 소설을 씁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그렇게 소설을 씁니다. 그러니 무슨 상상력이 있겠냐고요. 그래서 표절이나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소설 쓰기가 힘들어지면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다. 그런데 소설가로 사는 것이 힘들어지면 카프카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산문(<소설의 기술>)을 읽는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에 대한 생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첼로 소리 같은 글들은 작가란 천국에서조차 이방인이어야 하며 그의 조국은 '망명'이라는 사실을 감각하게 해준다.


작가란 세계를 무너뜨리고 재구성하려는 불가능한 야망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그러는 것은 기껏해야 비극이지만 누군가는 그 비극 안에서 불새가 소리치며 날아오르는 것을 본다.


  제 꿈은 '중학교 국어선생님을 하며 소설 쓰는 것'이었습니다. 네, 과거형입니다. 선생님이 못 됐으니 이미 깨진 꿈이지요. 그다음에 새로 세운 꿈은 '아빠 되기, 소설가 되기'입니다. 아빠가 되는 꿈은 기적적으로 이뤄졌고, 아직 소설은... 그래도 저는 이 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평균수명으로 따져도 아직 살 날이 40년이나 남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소설 쓰기 힘들 때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다고 합니다. 카프카, 그는 소설을 쓰려고 결혼도 안 했습니다. 오직 소설을 쓰기 위해 혼자 살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소설을 쓰다가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카프카의 생애가 계속 떠오릅니다. 그래선지 저자는 소설가로 사는 게 힘들면 카프카에 대한 글을 읽는다고 합니다. 저야, 뭐, 아빠가 되고 싶었기에 결혼을 했지만, 저도 소설가가 되기 위해선 무언가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 어렵습니다. 소설가가 되는 길은.


변화하지 않으면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살아남지 못한다. 지는 것은 고사하고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변화하는 척하면서 싸우면 져도 더럽게 진다. 죽어도 더럽게 죽는다.


파시즘의 얼굴

사람들은 관대하게 지배당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_ 요제프 괴벨스, <미하엘>, 1936.


  '변화'를 저는 '진보'라고 바꿔서 읽어봤습니다. 진보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나라 보수정권의 처참한 모습을 매일 뉴스를 통해 보고 있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인지 왕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유딩화법 구사자는 법 위에서 헌법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이제는 정치에 관심 좀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요. 아주아주 옛날 옛날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죠. '정치에 무관심하면 당신보다 못한 놈에게 지배받는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하하하. 정말 대단한 철학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수준이 박ㄹ혜라서 그런 대통령을 가졌나 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유딩화법이나 쓰니까 저런 대통령을 아니 왕을 가졌나 봅니다. 그래서 배워야 합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안 하면 망합니다. 망해도 아주 더럽게 망합니다.


문학이 뭐냐고? 문학은 인간과 세상이 신이라는 존재처럼 우스꽝스럽다고 벽에 말해주는 것이다.


사건이 넘치게 있어도, 인간의 내면이 없는 이야기는, 사실상 소설이 아니다.


작가는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나 소설을 쓰다 보면, 문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구나,라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측면으로 접근하든, 전적으로 '육체적 중노동'이다.


  저는 시간만 나면 소설 생각입니다. 문학적 소양이 너무 형편없어서 요즘은 고전을 주로 읽습니다. 이제 몇 권 읽었지만 '아~~ 이래서 고전이 됐구나'라는 걸 많이 느낍니다. 그러곤 위축됩니다. '나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글쓰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중노동입니다. 하지만 저는 문학을 하려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요. 언젠가는 제 책도 세상에 나올 날이 있겠죠. 그날 제 책에 멋지게 친필 사인을 해주렵니다. 하하하.

n****7 2017.0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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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영혼의 무기-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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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그와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그가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다. 이응준 작가의 생각과 그에 관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이 [영혼의 무기]를 읽는 시간이다.   그는 토토라는 아주 사랑을 주었던 강아지가 있으며 시인 함성호와 꽤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고 있고 중도성의 정치성향을 지니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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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그와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그가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다. 이응준 작가의 생각과 그에 관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이 [영혼의 무기]를 읽는 시간이다.

 

그는 토토라는 아주 사랑을 주었던 강아지가 있으며 시인 함성호와 꽤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고 있고 중도성의 정치성향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격을 표현한 말이 있어서 인용해 본다. 낙관과 비관이 이상한 비율로 뒤섞인, 허무주의에 입각한 독실한 탐미주의자? (330p) 이보다 더 완벽한 표현은 없는 듯 하다. 누구보다도 자신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제목과 표지에서 비슷한 느낌의 책을 비교해보게 된다. 하루키의 [잡문집]이다. 같은 빨간색 계열의 표지. 잡문집과 이설집. 약간은 다른 뉘앙스이지만 글의 성격면에서 볼 때는 비슷한 면이 많다. 자신이 관심있는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를 포함해서 시상식에서 했던 말 또는 기사들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잡다한 글들을 묶어 놓은 것이 잡문집이라면 이설집은 오래전 자신이 썼던 글들부터  최근까지 썼던 글들 - 정치에 관한 자신의 생각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쓴 글도 있으며 어느 한 작가의 작품에 관한 글도 있다 -  을 인터뷰를 포함해서 모아 편집했다. 이만하면 상당히 비슷한 성격의 책이 아닌가.

 

 

이응준이라는 이름이 낯선가? 적어도 내게는 아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라는 표지가 이쁜 책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책은 나중에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해서 더욱 인상에 남아있다. 작가의 다른 책은 보지 못했었는데 꽤 많은 책을 그동안 써 왔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남녀주인공 모두를 정치가로 삼아서 굉장히 독특한 케이스다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성향이 이번 책에서도 그대로 묻어 나오는 듯 하다.

 

 

작가는 스무살, 시인으로서 등단했고 그 이후 소설가로써 다시 등단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만큼 시와 소설을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다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사실 시인으로써의 그는 잘 모른다. 내가 읽은 책은 그의 소설이었고 그러므로 전혀 알 수 없는 그의 시의 세계지만 그가 시에 관해 표현한 글을 읽고 있자니 왜 시를 읽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인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시는 쓰기도 어렵지만 읽는 것도 만만한 예술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의 눈은 아흔 아홉 번 얻었다가도 백 번 실명하기가 쉽상이다. 아직 미학적 기준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어제와는 전혀 다른 멍청한 소리를 시에 대해 늘어놓기도 하는 까닭이 그래서이다. (238p)

특히 그의 이설집을 읽고나니 찾아봐야 할 책이 생겼다. 신경숙의 책와 김수영 평전이다. 자신이 직접 비교해 본 후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필력했던 그의 기고.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너무도 궁금해서 직접 검색을 해서 찾아봐야만 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 이미 어떤 사건인지 잘 알고는 있으나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문장을 세세히 비교해 본 적은 없어서 궁금했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했던 간에 나는 그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기고를 하고 난 후 오로지 아웃사이더 작가로서 묵묵히 살아가겠다.(401p) 라고 말했던 그의 일간지 인터뷰 기사를 보는 순간 그 '아웃사이더'라는 표현이 어쩌면 작가의 실제의 모습과도 가장 비슷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한 권의 책이 더 눈에 들어오는 데 만약 좋아하는 책 꼭 한권을 저승까지 챙겨가야 하는 게 극락왕생의 필수조건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김수영 전집2?>>를 고를 것이다.(278p) 라고 말한 그의 문장에서 나는 김수영이라는 사람이 대체 누구길래 그의 작품도 아닌 평전을 꼽았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2'라는 숫자로 보아서 분명 1권도 있다는 소리같인데 1권을 아닌 2권을 고른 작가의 선택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이 또한 궁금치 않을수 없다. 알려면 직접 읽어봐야 한다.

 

 

 

본문에서는 자신이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또는 아직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글들도 많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한 사람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었는데 작가도 알고 나도 개인적으로 알았던 사람이라서 더욱 반갑게 글을 읽었다. 엄홍길 산악인에 가려서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산악인 박영석.

 

 내가 아는 목사님의 동생분이시라 외국 생활을 할때 몇번 뵙고 도움을 받았다. 워낙 한국에 잘 계시지 않는 분이어서 한국에 와서는 뵙지 못했었는데 어느날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허망해했던 기억이 났다. 장례식엔 엄마가 대신 다녀오셨는데 작가가 아는 그분의 이야기를 읽으니 더욱 반가왔다. 아는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것 마냥 말이다.

 

또한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강아지 토토에 관한 글들은 한 챕터를 할애해서 '토토는 생각한다'라는 제목을 붙여서 따로 편집을 할만큼 애정을 보이고 있다. 책의 제일 앞에 있는 글자도 역시 '토토에게'이다. 작가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자 식구이자 동반자임에 분명했던 토토.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이 글들에 그대로 녹아 있는 듯이 보여 토토는 사랑을 많이 받았겠구나, 행복했겠구나를 더욱 느끼게 만든다. 지금은 다른 강아지를 입양해서 잘 데리고 살고 있겠지. 아마도.

 

토토뿐 아니라 또 한 챕터에 오롯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시인 함성호씨'라는 제목이 붙은 챕터다. 작가가 그와 만나면서 있었던 일, 그와 통화하면서 느꼈던 일, 또는 그를 생각하면서 적었던 글들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아옹다옹 거리고 때로는 든든한 형처럼 의지할 곳도 되어 주는 시인 함성호. 나는 함성호라는 이름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나에게 시란 분명 어려운 부분에 틀림없지만 왠지 이렇게 알아온 '함성호'라는 이름은 너무나도 친숙해져버려(이응준 작가 덕분에) 만약 함성호의 시인의 시를 읽게 된다면 좀 더 가깝게 읽혀지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든다. 특히 작가가 처음 함성호 작가를 만났을 때를 묘사해 놓은 장면이 인상적이다. 왠지 최근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의 전생을 표현해 놓은 듯 한 묘사가 아닌가. 작가의 글솜씨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한시간 쯤 뒤 기골이 장대한 함성호가 골목 어귀에 들어찬 어둠을 뚫고 노변 파라솔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내 정면으로 저벅저벅 걸어올 때 언뜻 나는 그가 현대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고구려 무사라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337p)

'책은 친구다!'라는 나의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작가의 책에 관한 표현은 정말 다양했다. 정말 끝도 없이 나올 것만 같은 '책은 ~다'. [책과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글에서 그는 끊임없이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책을 비유했다. 책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물건이다. 책은 나무다. 책은 반도체다. 책은 물이다. 책은 베개다. 그러면서 요즘 영화에서는 책을 무기로도 쓰고 있다고도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그의 책은 영혼의 무기라는 제목이 아니어도 실제로 무기로 쓸 수 있을만한 무게를 자랑하고 있다. 책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다양한 무기체인 것이다. 비록 손에 잡히는 유기체이기는 하나 말이다.

 

또한 사람이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롭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자가 강자다. 라고 주장하면서 책을 읽으면 혼자 있을 수 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책을 읽을 수 있다. (138p)라는 말을 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가장 문제점 중 하나가 외로움이라는 것 아닐까. 누구도 곁에 없고 혼자 죽는다고 해서 고독사라는 말이 붙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고독사는 고독해서 외로워서 죽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외로움을 극복하고 싶은가. 책을 읽어라. 책은 당신에게 훌륭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작가의 이 글을 읽으면서 백번이고 천번이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말판 신문에는 책코너가 따로 나온다. 새로 나온 책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주말에서는 김훈 작가의 신간이 실렸다. 사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기사를 읽는 순간 편집자 레터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선가 많이 읽어본 글귀다. 영혼의 무기를 읽다가 잠시 멈췄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글을 쓸 당시 기자는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왠지 모를 반가움에 다시 한번 더 정성을 들여 찬찬히 기사를 읽게 된다. '흰 옷에 떨어진 피보다 선명한 중도'라는 제목이 눈에 계속 들어온다. 내가 느끼는 작가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한다. 그는 중도를 지키고자 하나 그 중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글로써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는 작가도 많지만 그의 경우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누가 뭐라고 비웃듯 훗날의 나는 정말로 희극을 쓸 것이다.(426p)라고 말했던 그의 말처럼 언젠가는 쓸 그의 희극을 읽고 싶어진다. 누구보다도 시니컬한, 그러면서도 중도성향의 무심한 허무주의자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러면서도 절대 놓치지 않는 약간은 블랙코미디적인 희극이 나오지 않을까.

 

예외없음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사형수다.(689p)

b***8 2017.02.06. 신고 공감 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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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기 -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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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딱 받았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압도적인 두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거 완전 벽돌중에서도 대박 벽돌이라는 느낌을 받아서 왠만한 벽돌책들은 애교수준이 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 압도적인 책의 볼륨에 이건 베게로도 쓰다간 목이 날라갈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두께의 책입니다.이응준이라는 작가는 처음 접하게 된 작가이지만 이전에도 많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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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딱 받았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압도적인 두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거 완전 벽돌중에서도 대박 벽돌이라는 느낌을 받아서 왠만한 벽돌책들은 애교수준이 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 압도적인 책의 볼륨에 이건 베게로도 쓰다간 목이 날라갈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두께의 책입니다.

이응준이라는 작가는 처음 접하게 된 작가이지만 이전에도 많은 작품들로 꽤 유명한 작가로 알려져 있더라구요. 이 작가의 작품인 이 이설집(異說集) 이설이란 세간의 흔히 알고 있는 사실과 설과 주장과 의견을 달리 해석한 것을 말한다고 하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작가의 의견과 이야기를 모은 것이 바로 이 이응준 작가의 이설집 영혼의 무기입니다.

7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각각의 테마와 이야기를 산문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아 이런 것도 이렇게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띈 내용중에 하나는 필사에 관한 내용인데 예전에 국내 문단에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신경숙 작가의 표절시비와 겹쳐져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내용입니다. 흔히 정독중의 정독을 필독이라고 하죠. 베껴 써 가면서 읽어나가는 것 그런데 여기선 필사를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베껴써가면서 하다보면 본연의 문필의 개성이 없어지고 그것이 지속되다보면 나의 글이 아닌 누군가의 글에서 멈출 수 밖에 없음을 가장 많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국내 문단이 어느순간부터 더는 진보할 수 없게 된 것이 이런 개성의 부재와 바닥을 드러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에 필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필사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창작의 부족으로 인해서 사람인지라 자기도 모르게 예전에 필사하면서 참고한 문구와 그 글을 나도 모르게 접목시키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여서 이것을 아주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죠. 필사는 하되 자신의 색과 개성과 문필을 유지하면서 나의 글을 써 내려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시한번 경고하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사회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상당히 날카롭고 예리한 비판이 많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함을 금치 못하는 부분들도 있고, 어디까지만 개인의 의견을 모아놓은 작품임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있기에 이런 의견도 비판을 듣고 인정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 함성호씨나 밀봉유리병과 같은 것은 궂이 이 책에 넣을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금치못하고 이로 인해서 더 책의 두께가 두꺼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게 된 부분으로 그래도 작가의 방대한 분야의 지식과 영역에 대해서 감탄을 하게 된 작품으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도 생각을 할 수 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작품으로 이 작가 정말 대단한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 엄청난 작품이었습니다. 다소 처음 그 엄청난 두께에 압도당해서 겁을 먹은 작품이었는데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읽다보면 어느세 작가의 그 지식의 바다속에서 같이 공감하고 헤엄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된 작품으로 참 어느면에선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방대한 영역과 분야에 대해서 작가의 날카롭고 예리한 건전한 비판과 생각에 대해서 풀어내고 있는 이응준 작가의 산문집 영혼의 무기 압도적인 두께로 인해서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을거 같은 흉기이지만 지식에 대한 날카로운 무기로도 될 수 있는 이 작품을 읽고 작가와 함께 책을 읽으며 토론을 벌여보는 것도 어떤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b******2 2017.02.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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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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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작품을 처음 대한 것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이었다.독특하게도 정치적인 노선이 반대인 두 남녀의 로맨스물을 그리면서도 정치에 몸 담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차후 다른 작품들을 찾아서 읽은 케이스다.   그런 그가 이번에 기존에 글을 통해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놓은 책의 제목이 바로 '영혼의 무기,  아응준 이설 집'이다. 이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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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작품을 처음 대한 것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이었다.

독특하게도 정치적인 노선이 반대인 두 남녀의 로맨스물을 그리면서도 정치에 몸 담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차후 다른 작품들을 찾아서 읽은 케이스다.

 

 

그런 그가 이번에 기존에 글을 통해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놓은 책의 제목이 바로 '영혼의 무기,  아응준 이설 집'이다.

 

이설 집이 생소했던 제목이기도 했지만 벽돌 두께를 자랑할 만큼의 무려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글들이 압도하는 느낌은 대단했다.

 

 

 

 

책의 구성은 총 7개의 큰 챕터로 나눠져 있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는 기록의 저자 개인의 생각이 담겨있고, 대담과 인터뷰, 일기 형식의 짧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아웃사이더'를 자청하는, 저자의 글들은 그의 팔방미인 격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고, 그래서 그런지 그가 몸 담고 있는 분야만도 시인. 소설가,  칼럼니스트. 각본가. 영화감독.....

대단하단 느낌이 든다.

.

저자 자신도 "산문가도, 소설가도 아닌 '이설가'를 꿈꾸었다"라고 말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가 글쓰기는 직업을 통해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해 내는 구절구절마다 그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하고 더군다나 최근의 신경숙 작가에 대한 표절 시비에 대한 작가로서의 한국 문단의 비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쓴 글들은 견고한 성에 부딪쳐 자신의 소리가 없어질지라도 언젠가는 그 자료는 남는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 한국문단이 어떤 반성과 성찰을 거쳐 기성세대의 작가들이 걸어가야 할 양심들을 독촉하는 글은 인상적이었다.

 

 

정치면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지향하는 현 세태의 지지자들을 향한 자신의 생각들이 산문집이란 형식을 빌려 무섭도록 냉철하면서도 가볍게 읽히기도 하고 논리적인 생각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이채로움을 준다.

 

 

더군다나 작가로서 자신이 사랑한 문인들에 대한 글, 독서 편력에 대한 책 소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책 선택에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과 함께 책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게 하며 특히  [김수영 전집 2]에 대한 애정은 남다름을, 생활 주변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반려견이었던 토토란 강아지와 시인 함성호 씨에 대한 이야기는 묵직한 주제에 익숙하다 일변하여 가벼운 모드로 돌아서게 만드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

독서는 독서에 대한 명상이자 수행이고 장인의 방법론이기도 한 것이다. -p104-            

 

 

 

 

 

 

특히 함성호 시인과의 관계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기에 부러움을 느끼게도 해 주고 일기라는 형식을 빌려 쓴 글들은 그 자신의 내밀한 고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타인에 대해 말할 때 느끼는 방법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모처럼 이응준이란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이 산문집은 그간 그가 지난 세월에서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열어놓은 글들로 차 있기에 조금이나마 작가에 대해 알게 한 책이 아닌가 싶다.

 

 


 

 

 

m*******n 2017.02.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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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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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異說) 이란 통용되는 것과는 다른 의견이나 주장 또는 내용이 기괴하고 허랑한 저술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응준 이설집 또한 같은 의미로 봐야하는 걸까?《영혼의 무기》라는 제목에서 추리소설을 연상해 집어든 책이다. 요즘 유럽추리소설에 푹 빠져살다 생겨난 오류라고 변명해야겠지. "나는 산문가도, 소설가도, 대설가도 아닌 '이설가'를 꿈꾸었다."고 말하는 작가 이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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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異說) 이란 통용되는 것과는 다른 의견이나 주장 또는 내용이 기괴하고 허랑한 저술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응준 이설집 또한 같은 의미로 봐야하는 걸까?《영혼의 무기》라는 제목에서 추리소설을 연상해 집어든 책이다. 요즘 유럽추리소설에 푹 빠져살다 생겨난 오류라고 변명해야겠지. "나는 산문가도, 소설가도, 대설가도 아닌 '이설가'를 꿈꾸었다."고 말하는 작가 이응준의 첫 산문집. 나는 이 책을 통해 이응준이란 작가를 처름 만나본다. 그리고 평소 대하던 내용의 글이 아닌지라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름 다양한 독서를 해왔다 자부하지만 이것으로 내가 편독을 해왔음이 밝혀지는 것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그는 30년 이상의 세월을 한우물만 파며 살아온 사람이다. 하나의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백 번은 읽어야 한다. 세종대왕께서 이런 말도 했던가? ​매일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중 내 시선을 받게 되는 책은 또 얼마나 될까? 일주일에 세권이상의 책을 읽는 나도 그러한데 한달에 한두권의 책을 읽는 사람들의 눈에는 또 어떠할까?

《영혼의 무기》는 1996년 10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썼던 글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명동백작> 속의 김수영과 박인환이란 이름이 등장한 것을 보며 박인환이란 이름에서 탤런트이자 영화배우 박인환을 떠올리는 무식함도 자랑했다. 물론 이 책속에서 말하는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를 써낸 시인 박인환을 말함이겠지. 박인환은 1956년 이상을 추모한다며 연일 술을 퍼마시다 죽고 1968년 여름 김수영은 버스에 치여 사망한다. 누군가 비밀스레 쓴 일기를 읽어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써내려 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소설수업에서의 필사란, ​국내의 기성장작의 소설을 소설가 지망생이 그야말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배껴 쓰며 문학을 수련하는 과정이다. (p.228) 소설가가 되기위한 일환으로 필사를 이야기하는 작가들은 많다. 또한 작가지망생들은 필사를 기본적인 공부로 여기고 있기도 한다. 필수로 여기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 개념을 생각치 못했다. 문장강화와 문학의 수련이 필사를 해야하는 이유라고. 내가 소설가가 되지 못한 이유는 한권의 책도 제대로 필사한 적이 없는 탓이었어.

불과 몇십미터를 두고도 드물지 않게 마주 서 있는 거대 교회들이 통일 이후 자신들의 재산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그리스도의 말씀 따라 이북에서 내려온 동포들을 먹이고 재우고 교육하는 사랑을 실천한다면, 한 동네에도 수십 다발씩 있는 저 작은 교회들이 한 몸으로 연대해 이북 동포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을 돕는다면, (p.116) 그럴수 있다면 조국의 통일이 그리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닐것을. 책속에서 발견한 글 중 마음에 드는 글귀였기에 옮겨 적어본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이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데 쓰일 물적 영적 인프라로 준비해 놓으신 것이라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처럼 보여져.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보면 가장 먼저 보여지는 것이 밤하늘을 붉게 밝히는 붉은 십자가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티베트의 라사압소를 페키니즈와 교배시켜 만든 시추(사자개)는 오랫동안 중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해 왔다. 시추는 저자 이응준과 함께 기거하는 애완견이기도 하다.

<필사로 소설수업을 패서는 안 되는 이유> 소설가가 되기위해 소설을 필사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데 소설을 필사해서 안되는 이유라니? 단순에 읽어 내려가는 소설이 아니라 이 책을 읽기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만약 이 책을 필사하라고 한다면? "당신이나 나나 이렇게 살아서 무슨 뽀족한 수가 있소, 같이 갑시다." (p.252) 이상이 소설가 김유정에게 찾아와 함께 자살하자고 제의했을때 김유정은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더불어 그의 친구들에게 그를 잘 살펴보라며 당부까지 했다고. 김유정에게 자살을 제의했던 이상(본명 김해경)은 스물일곱살의 나이로 요절, 일제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불리며 대표작은 <날개>다. 내가 아는 김유정의 소설은 필사를 위해 도서관에서 빌려다 본《봄봄》이 유일하다. 끝까지 필사못했다는 안타가움을 안고 있는 책이다. 보리수 아래서/ 광장에서/ 전장에서/ 참호에서의 책읽기/ 토토는 생각한다/ 시인 함성호 씨/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 중 토토는 생각한다는 반려견 토토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이 쓰여진 것이다. 또한 저자는 시인 함성호 부분에 많은 할애를 함으로서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정치적 자유도 우리의 마음이 자유롭지 않으면 우리에게 자유를 주지 못한다." - 시인 타고르​

 

s*******1 2017.02.1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