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세탁하는 방법까지도 관심이 있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세탁하는 방법까지도 관심이 있었다." 내용보기
지금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만해도 남자들은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안일은 여자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어려서 부엌에 들어가는 것 조차도 제지를 당하곤 했다. 이러한 것들이 멀리는 조선시대에 형성된 성리학의 영향인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은 조선시대의 사대부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세탁하는 방법까지도 관심이 있었다." 내용보기

  지금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만해도 남자들은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안일은 여자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어려서 부엌에 들어가는 것 조차도 제지를 당하곤 했다. 이러한 것들이 멀리는 조선시대에 형성된 성리학의 영향인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은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집안 살림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고, 또 신경도 쓰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곤 한다. 사대부라면 의당 의관을 정제하고 글을 읽거나, 부귀에 초연해야 한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이런 선입관이 어떻게 형성되어 우리에게 주입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들을 읽어가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들과 다른 면을 발견하곤 한다.

 

  이 책 [조선 사대부가의 살림살이]도 그런 책들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생활에서의 목표는 글을 읽어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의관을 갖추고 글을 읽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의관을 갖춘다는 것은 그만큼 살림살이와 관계되는 것이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의관을 통해서 당시 그들의 살림살이를 살펴보고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의관을 예를 수행하는 필수조건으로 보았고, 의관을 바르게 갖추는 것이 학문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관은 경우에 따라,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신분에 따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복식이 정해져 있었다. 관직에 나아간다면 과거에 합격했을 때, 종묘에 제사 지내러 갈 때, 국왕을 수행할 때, 외국에 사신으로 갈 때 입은 옷이 모두 달랐다. 물론 국가에서 지급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복식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그러기에 주위에서 빌려 입는 경우도 흔했다고 한다. 16세기를 살았던 유희춘이 10년간에 걸쳐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미암일기]에서, 우리는 당시 사대부들이 관직에 나아가는데 필요한 다양한 복식들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런 복식을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복식의 관리는 바로 복식의 수명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살림살이를 규모 있게 한다는 것은 복식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넉넉지 않은 살림 속에서 복식의 세탁과 관리는 여자들의 몫이기에 앞서 남자들의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십육지]에 여러 가지 관건과 함께 망건의 세탁법까지 기록해 놓았을 것이다. 이처럼 망건이나 갓을 세탁하는 법, 마름질 하는 법, 그리고 풀 먹이고 다듬이질 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관리는 사대부가의 살림살이를 품위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살림살이에도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생활의 문제가 선결되어야 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학문을 하면서 부모를 봉양하고 제사를 받드는 것이 자손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대부들이 자손의 도리를 다하고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했다. 물론 권문세가나 재산이 많은 경우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사대부들 스스로 살림살이를 위해 일을 했다. 살림살이에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학문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 셈이다. 그래서 퇴계 이황과 성호 이익은 농사를 지으라고 했고,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뽕나무를 심어 품위를 지켜줄 생계대책을 세우라고 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결코 가정의 살림살이에 대해서 등한시 하지 않았음을 살펴보고 있다. 또한 그들이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의관의 마련과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우리가 몰랐던 선조들의 일상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조선의 사대부] 시리즈를 꼬박꼬박 찾아서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k*****1 2017.02.13. 신고 공감 4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