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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 네이처-바로 우리가 잡초다
"세컨 네이처-바로 우리가 잡초다" 내용보기
가령, 멧돼지나 고라니가 애써 가꾸어 놓은 농장을 짓밟고, 농작물을 먹어 치운다 해도 기꺼이 친구로 대할 수 있을까? 만일 넝쿨식물과 관목류가 슬금슬금 경계를 넘어 누군가의 뜰과  삶의 영역을 허락 없이 잠식해 들어온다고 해도 이들을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다. 자연 생태에 관한 위대한 작품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는 콩밭의
"세컨 네이처-바로 우리가 잡초다" 내용보기

가령, 멧돼지나 고라니가 애써 가꾸어 놓은 농장을 짓밟고, 농작물을 먹어 치운다 해도 기꺼이 친구로 대할 수 있을까? 만일 넝쿨식물과 관목류가 슬금슬금 경계를 넘어 누군가의 뜰과  삶의 영역을 허락 없이 잠식해 들어온다고 해도 이들을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수용할 수 있을까?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다. 자연 생태에 관한 위대한 작품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는 콩밭의 잡초를 뽑아내는데 죄의식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우드척(대형 땅다람쥐의 일종)과 새들보다 콩을 더 많이 차지하는 일에도 회의적인 감정을 느껴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였다.

소로로 대표되는 순수 자연주의자의 영향을 받은 미국인들은 자연과 이를 가꾸는 일(즉 개발 또는 문명)은 양립할 수 없다는 뿌리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자연에 손을 대면 누군가는  득을 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대립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은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중간지대를 찾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세컨 네이처>의 저자 마이클 폴란은 이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것을 발견해 나가는 실습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이다"라고 말한다. 폴란은 미국 코티네컷 콘월에 있는 5에이커의 거친 땅을 7년 동안 정원으로 가꾸며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 시켜 나갈 수 있는 해답이 바로 정원에 있음을 이 책은 통해 보여 준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서 말이다.

 

폴란이 꿈꾸었던 정원은 늘 꽃이 만발해 있으며 해충도 없고 잡초도 없는, 자연이 늘 요구에 순응하고 완벽하리만치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당근과 옥수수, 강낭콩은 끊임없이 너구리와 우드척, 사슴, 두더지 들의 공격을 받고, 꽃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꿈꿨던 정원은 해충과 온갖 잡초로 고통받는다. 그럼에도 소로의 충실한 제자임을 자처했던 초보 정원사인 저자는 우드척에게 엽총을 쏘거나 살충제로 해충을 박멸하거나, 채소밭 주변에 전기 철조망 따위를 설치하는 것은 지나칠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짓이라 생각한다. 야생에서 스스로 자라난 잡초들도 애써 꽃들의 친척으로 대접하려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정원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정원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하다. 아름다운 꽃과 수려한 나무를 심고, 채소와 당근과 옥수수를 가꾸는 광경을 보면 우리 입장에서는 전원 속에 집이 있고 아름다운 뜰과 텃밭이나 또는 농지를 갖춘 농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정원은 농장, 정원사는 농부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끊임없는 야생동물의 공격과 넝쿨들로 질식해 가는 화초들을 보며 정원으로 쳐들어 오는 이 무뢰한들을 물리치기 위해 결국 전기 담장을 두르고 잡초를 제거하기로 한다. 자연에 배반 당한 처절한 심정으로.

『오랜 정원의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여러 문화가 출몰했지만,

 정원에 담장을 친다는 것은 퍽이나 보편화된 개념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버가 댐을 만들듯이 우리가 담장을 만든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있을까?
이제 내가 담장을 세울 때가 온 것이다.(76쪽)

나는 그들의 미덕을 생각해서 의심을 무릅쓰고 자리를 확보해 주었다.
나는 그들을 정원 식물의 일원으로 대우해주었지만 그들은 정원 식물로서
제대로 처신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심어 가꾸는 다른 품종들과 달랐다.
아니, 전적으로 다른 존재 방식을 가진 것 같았다.
발군의 순발력으로 신속하고 기민하게 움직인다.
식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영민했다.(156쪽)』

그러나 유명한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저자에게는 잡초를 제거하는 데에도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했음이 분명했던 것 같다. 잡초에 대한 수긍할 만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관련 서적과 안내서를 살펴보고 잡초를 제거할 결정적인 약점을 찾아내 정원에서의 잡초 제거를 정당화한다.

 

『그렇다면 관연 잡초란 무엇일까?
(중략)
첫 번째는 잘못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식물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재배되는 식물에 비해 유난히 공격적인 속성을
가진 식물이라는 말로 축약된다.(158쪽)

그들은 숲이나 대평원과 같은 공간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잡초는 정원, 목초지, 잔디밭, 공한지, 철길을 좋아하고 대형 쓰레기통 옆이나
갓길의 갈라진 틈새처럼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그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좋아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164쪽)

잡초들은 정원 식물보다 그다지 자연적인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이 특별한 자리를 달라고 권리를 주장할 만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주의자들이 잡초에 가졌던 각별한 감정은 한갓 즉흥적인 감상에 불과했다.
이제 내가 잡초에 대적하는 일은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자초하거나 군림하기 위해
무책임한 힘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165쪽)』

더 나가 잡초를 통해 은근히 내비치고 있는 자연에 대한 생각을 읽어 볼 수 있다. 우리가  '원래 그대로의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호하다는 것이다. 현재 야생 상태의 자연은  겨우 몇 백 년 전 유럽인들과 함께 들어온  유럽의 잡초들이 본래의 토종 풀들을 몰아내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 간 오늘의 모습일 수도 있고, 더욱 먼 과거로 확장해 본다면 현재 숲이었던 공간은 공룡이 뛰어놀던 시절엔 대초원이었을 수도, 빙하기에는 빙하에 쓸려 나간 황무지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잡초의 개념을 인간의 교란에 적응해서 생존해나가는
생명체라고 정의한다면, 인간이야말로 모든 잡초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가장 원초적인 잡초라 정의할 수 있다."
다른 것이 잡초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잡초다.(169쪽)』

이쯤에서 저자의 논지를 섣불리 예단할 위험성이 있다. "인간 역시 다른 생명체 속에서 평등한 존재의 하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 같은 결론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똑같이 행동하는 순간부터 지구의 상태는 악화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다소 의외의 경고를 한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은 자기 영역의 확장과 종족 번식의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데  막강한 창조력과 문명화된 기술을 소유한  인간마저 그러한 본능에 따라 충실히 행동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비극적인 상황을 우려한 듯하다.

오히려 인간은 지구의 충실한 정원사로서 정원을 가꾸듯 자연을 가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제하고 인내하는 것, 양심, 윤리적인 선택, 분별력 등 인간이 이루어 놓은 문화만이 미래의 방향을 좋은 쪽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지구를 경작하는 정원사이면서 지구의 잡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정적인 역할에 비해 무척이나 모호한 우리의 견해를 잘 정립해야 한다.
우리야말로 문제인 동시에,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173쪽) 』

이것이 저자가 하고 싶었던 핵심 이야기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무분별하고 과도한 개발은 피하되 일방적인 자연 숭배주의로 자연을 방치하면 안되며, 상처 받은 자연은 정원을 가꾸듯 인간이 돌봐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이라는 것 말이다.

 

이 책의 소재는 단순하며 결말은 명료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국에서 잔디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역사, 재래 장미와 교배 장미가 등장하는 장미정원, 두엄 만들기와 나무 심기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펼치고 있는 이야기의 진폭은 넓고 전문적 식견은 깊다. 현란한 글 솜씨로 펼치는 지적 파노라마에 잘못 빠져들면 끝도 없이 헤맬 수 있다. 

그러다 불쑥불쑥 등장하는 주제의 흐름과 별 상관없는 예기치 않은 문장을 만날 때, 오히려 더욱 열광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 말이다.

『땅을 경작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농민이 독립할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가 사회적 지위와 인간적인 위엄을 갖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자연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덕을 쌓아나갈 수 있다.(106쪽) 』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정성을 다한 마음으로 땅을 일구고, 자연이 주는 혜택에 따라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농부들에게 합당히 돌아가야 할 이런 말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오랜만에 밑줄을 그으며 읽은 책이다.

p****a 2018.04.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