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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문화적, 정신적으로 그 결과를 백성들과 공유하며 변화를 추구하는 것, 더 나아가 새로운 시대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뜻한다고 생각한다. 영조시대라고 하면 격렬하게 이어진 당쟁의 폐해가 곪을대로 곪은 시대였다. 그런만큼 당쟁의 폐해를 해소하는 탕평이 당쟁의 해결책으로 제시됐고, 영조는 이를 추진하려고 시도했고, 탕평을 뒷받침해줄 신하의 힘을 모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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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니 영조대 인물 중 이렇다하게 떠오르는 인물이 별로 없었다.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정도나 기억이 나고 홍봉한과 홍계희는 의외였는데 정조대에 워낙 기라성 같은 인물들, 예를 들면 박지원, 정약용, 홍대용같이 한국사에 길이 남을 천재형 인물들이 많아서인지 상대적으로 영조대 인물들은 그들의 명성에 가려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걸음 더 숙고해보면 김원행같이 북학파들을 지켜주고, 키워준 선배들이 있었기에 정조시절의 인물들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조시대를 만든 사람들에서 언급되는 인물은 모두 열여섯명이다.조문명, 정제두,이광좌, 조현명, 원경하, 김재로, 오광운, 박문수, 홍봉한, 홍계희, 신경준, 오명항,최규서, 이천보, 유척기, 김원행 등. 영조시대를 만든 인물들은 대체적으로 당색이 있었음에도 당쟁의 폐해가 극심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었다. 이시기 당색들을 보면 노론과 소론의 구도에서 다시 그 안에서 준론, 완론, 청명당, 북당,남당 등 여러 가지를 치며 분화돼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책은 인물들을 소개하는 글이 다소 산만한 감이 있었다. 정치노선과 지인과의 친소관계 등에서 집중도가 떨어졌고, 인물간에 뚜렷한 차이점이 부각이 되지 않았다. ![]()
이들이 정치적으로는 탕평, 경제적으로는 균역법을 실시한 것은 이런 복잡한 정치 지형 속에서 거둔 성과였다. 그런데, 이들 인물 중 앞서도 언급했지만 홍봉한과 홍계희도 언급되고 있는 것은 뜻밖이었다.이들은 탕평보다는 오히려 당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홍봉한이 청계천 준천의 실무를 맡아 진행시켰다고 하니, 노론의 이익에 우선해 사위인 사도세자를 죽게 만들었다고, 얼룩져 있는 오명이 조금은 가셔지는 듯 했다. 영조시기의 인물들은 사상적으로 성리학에 몰입하기보다는 유연성을 지닌 인물들이 눈에 띄였다. 정제두같이 양명학에 심취했던 인물이나,김원행처럼 천문학에 관심을 갖는 등 실용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인물이 포진함으로써,정조대의 실학으로 나아가는 길을 터주었다고 할 수 있다.
영조의 집권기간이 반세기가 넘는 긴 시간이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영조시대에 동참한 인물들은 세대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를 주도했던 인물도 교체됐을 것이고. 그럼에도 탕평과 균역법의 실시는 사회 경제적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상업이 부흥하는가하면, 부농의 등장하는 등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나아가 정치적으로 탕평과 경제적으로 균역법의 실시는 양반과 평민이 함께 하는즉 사회적 대동(大同)의 가치가 실제 정책으로 반영됐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정조대에 이르러 '서울과 지방을 한결같이 본다','위에서 덜어 아래를 이롭게 한다'는 균평(均平)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반이 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대목에 이르면 요즘 말로하면 '경제민주화'의 가치가 연상된다고 할까.
분명 탕평책과 균역법은 조선사회를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부농과 거상의 등장으로 조선은 왕조, 사대부 정치를 해체할 수 있는 동인이 됐지만 신분제와 봉건제 해체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탕평책과 균역법의 실시 이후 사족과 평민이 부담을 함께 지는 대동의 정신이 지속적으로 발휘되고, 정책적으로 반영됐다면 대동과 균평의 가치는 더욱 확산됐을텐데. 하지만 영조대의 변화는 지속되지 못했고, 조선사회의 질적인 변화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시대가 인물을 낳고 인물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고, 이런 선순환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순탄하게만 나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서양의 근대시민혁명이 앙시암 레짐(Ancien regime)을 깨는 것에서 촉발됐다는 것을 감안할 때 성리학적 사고 내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란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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