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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도 나오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제시카 알바, 케이트 허드슨의 영화가 2010년 나왔을때도 나의 취향이 아니라 미뤄놨는데 며칠전 스티븐 킹의 트윗을 훓어보다가 그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듯이 짐 톰슨의 책들을 끌어안고 행복해하는 사진을 보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영화 나올때도 제시카알바 베드씬가지고 마케팅했던거 같은데... 물론, 성적인 자극이 그에게 숨겨지 새디스트 본능을 가져오는건 맞지만 그게 다는 아닌데..)
겉은 그럴듯하여 아무도 의심못하는 사이코가 등장하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텍사스버전에, 죽였는데 뽀록날까 또 죽이고 눈덩이처럼 수습해야할 사태가 불어나는 [심플플랜]인가 싶었는데 여하간 역시나 매우 입맛이 쓰다. 이 작품 하나 가지곤 스티븐 킹의 favorite이라는 것은 잘 짐작하지 못하겠다. 다만, 찾아보니 이 작품이 대중문화에 준 영감이 의외로 크다는거 (멜로디만 듣고 꽤 서정적인데 가끔 Bruce Springsteen 노래 가사를 찾아서 들어보면 가끔 깜 놀라).
여하간...만달러가지고 도망가자는 소리에 시대가 언제가 봤더니만, 1950년대 초 텍사스. 루 포드는 마을에서 신뢰를 얻는 의사의 아들로 부보안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에게는 그 지역에서 존경을 받는 집안의 딸이자 그 동네에서는 제일가는 미녀 에이미란 여자친구도 있다. 그리스인 식당 사장에게 부탁을 받아 그의 아들조니에게 일종의 멘토도 되고 보안관 밥의 애정도 받고있지만, 굵은 글씨로 표현 (이야기는 루 포드의 시점으로 이야기되어진다)되는 그의 내면은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지역노동조합장 조 로스만과의 대화를 통해, 그에게는 아버지 친구의 아들로 입양되어 그의 형이 된 마이크가 있었으며 그가 여자아이와 관련된 범죄로 실형을 살고나와 신축되는 공사장에서 실족사했던 일이 있음이 보여진다. 하지만, 실상은 그 범죄는 루가 지은 것이며 마이크가 그를 보고하고 아버지는 이 사실을 짐작하여 그를 감시하였고, 마이크의 죽음 뒤에는 공사를 벌인, 지역 거물 체스터 콘웨이가 있다고 믿고있음도..
이 지역으로 흘러들어온 창녀 조이스 레이크랜드를 두고 보안관은 루에게 그녀를 좇아내라고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은 어린시절 이후 십여년간 마음속에 봉인해둔 욕망이 다시 되살아나는 계기가 된다. 체스터 콘웨이의 아들 엘머가 그녀에게 빠져들자, 체스터 콘웨이는 그녀를 좇아내라며 돈을 맡기려하는데, 이를 기회로 생각한 조이스는 돈을 가지고 루와 같이 도망가자고 한다. 하지만, 루가 택한건 돈이 아닌 죽음. 조이스와 엘머의...
루의 시선으로 본 것이기에 어떤 것은 매우 구체적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매우 어렴풋하고 상징적으로 처리된다. 사진으로 보여진 어린시절의 가정부의 사진이라든가 형이 가해자라고 여겨졌던 사건 등등. 하지마, 루가 굵은 글씨로 아무리 속내를 털어놓아도 결국 엔딩에 가서야 그의 진짜 속내가 드러난다. 사랑하기에 죽이고 마는.. 사랑을 고통으로 바꾸어버리는 왜곡된, 내적인 세계. 글쎄, 가정부 헬렌과 아버지 등등의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더 나왔다면 너무나 뻔뻔스럽게 연기하지 않을 정도로 연기를 잘하게된 이 살인마의 고백에 쬐금이라도 공감이 가겠건만, 그저 킬러의 태연함에 놀랄뿐.
p.s: 1) 2010년도
근데, 솔직히 1976년도 버전 (https://youtu.be/DoBIN9yA9q4)이 난 더 나은거 같다.
두번 영화화 되기까지 루-조이스-에미미의 캐스팅으로 1976년 영화화되고 다시 리메이크 얘기나올떄 등등으로 이야기가 무성했다고.
2)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부고 기사에 [그리프터스]이야기다 나오던데, 이 작품의 원작자는 짐 톰슨이다. 루 포드와 같은 인물이 나오는 걸로 [Wild Town, 1957]이 있던데 이 작품은 좀 혹하다. 동일한 인물이지만 가져오는 결과물은 다른...
짐 톰슨 (Jim Thompson) Now and on Earth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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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억울하게 죽은 형의 원수를 갚겠다..마음먹고 쫓아온지 수년.. 아무도 눈치 채지 않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내 드러났을 허점이고 의심거리임에도 순수인지 순진인지 ,얄궂게도 피해자들은 아니 그 주변 인들은 하나같이 그가 가장 빠른 경찰로 인정 받을 뿐 의심하는 것보다 , 외려 의심조차 없는 세상이 더 경계를 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 말을 해준것 만 같았다. 너무 멋지게 그간 사회상과 벽화등을 정리해 올리기로 하고 오늘은 루 포드의 그 간의 삶과 오늘을 조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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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범죄소설이다. 주변에서 6명이나 죽어나간다면, 제 아무리 평판관리에 신경을 썼다고 하더라도 꺼림직한 느낌을 받는게 당연하고 그건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해서 결코 해소되지 않는 느낌인데 사이코패스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소설은 1950년대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마치 요즘 소설처럼 초반부부터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달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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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마을에서 여유롭고 한적하게 살아가는 부 보안관 루 포드는 집안이 이 마을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뼈대 있는 집안인데다 늘 웃고
다니며 친절해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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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가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완벽한 구성을 가진 작품이라고 칭찬한 작품. 텍사스 작은 마을의 부 보안관 루 포드는 잘생긴 외모에 친절한 태도로 모든 이들에게 호감을 주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으니 그가 바로 싸이코패스를 넘나드는 소시오패스라는 것. 지금까지 자신의 충동을 잘 억누르며 살아왔던 그는 마을의 창녀를 만나면서 일탈의 기회를 잡게 된다.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완전범죄를 꿈꾸던 그는 자신을 조여오는 난데없는 올가미에 당황하고 만다.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자신의 위기대처능력에 자신만만해하던 그는 과연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그 누구도 자신을 잡을 수 없을 거라 확신하는데... 완벽한 소시오패스에 대한 보고서. 도대체 짐 톰슨이란 양반은 어떻게 소시오패스에 대해 이다지도 잘 아신다냐? 혀를 내두른 작품이 되겠다. 일인칭 시점으로 쓰여져 마치 진짜 살인범의 고백처럼 들려오던데, 어떻게 이런 신빙성을 작품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앞에서 언급했던 <꿈을 파는 남자>의 주인공이 작가는 어딘가 감각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유명작가와 평범한 작가들 사이의 차이는 재능뿐이라고 단언하던데, 이런 책을 읽다보면 어느 정도는 일리있지 않나 싶다. 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런 소시오패스의 마음은 상상할 수 없던데, 도무지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도 그들의 내면을 잘 아는지 말이다. 통찰력 넘치는 심리 묘사, 소시오패스의 황량한 내면을 압도적인 절제미로 표현하는 것이 장점. 자신의 넘치는 꾀와 매력으로 살인을 하고도 넘어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내의 자신만만한 여정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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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로 유명한 책이라고 해서 주문했다가 책을 받아든 순간 역시 그런 냄새가 나는 표지를 보고 흥미가 일었는데, 안쪽의 날개를 보니 짐 톰슨이라는 작가가 오클라호마 출생이라고 적혀있다. 잠시 고향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1952년 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한 책의 전개가 마치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이나 미드를 보고난 것처럼 시간이 금방 흐르는 느낌을 주어 애초에 1박2일 간의 출장에서 비는 시간에 읽기위해 재미있고 가벼운 책을 고르려던 목적에 정확히 딱 맞는 선택이었다. 핸드백을 메고 다녀야 해서 조금이라도 무게를 덜어야 했는데 누런 종이는 가벼웠다. 틈날 때마다 커피숍에서도 읽었고 여관에서 반신욕 하면서 들고 읽기에도 좋았다. 텍사스의 루 포드 부보안관은 겉으로 보기엔 조금 어리숙하고 사람 좋아보이지만 알고보면 여러 외국어를 읽고 머리도 좋지만 순간적으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살인까지 저지르며 살인에 대해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책을 앞부분을 읽어가면서 미드 덱스터의 주인공 텍스터가 생각났다. 차이가 있다면 덱스터가 살인에 대한 충동과 감정이 없는 가운데에서 아버지의 교육을 통해 그 살인욕구를 나쁜놈들을 죽이는 것으로 푼다면, 여기 루 포드는 그냥 닥치는대로 죽이고 또 그걸 덮기위해 또다른 살인을 한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사이코패스이자 소시오패스인 이 주인공이 1인칭으로 말하는 소설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잔인함과 또 한 건의 살인을 덮기위해 그걸 아는 다른 사람을 죽을 계획을 하는 주인공조차 잡히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첫 살인을 덮어준 아버지의 애정이 결국 여러 건의 살인이 되고, 아들을 살린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소설은 다양한 이야기의 전개가 아귀를 맞춰 진행되고 놀라운 반전이 있어 줄거리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보잘 것 없는 동네가 석유가 나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석유회사 사장과 동네사람들을 통해 보여주고 주인공이 사는 동네의 모습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 묘사가 되어 그냥 흔한 장르소설이 아니라 뛰어난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역시 베스트셀러는 아무 책이나 되는 것이 아니다. 272쪽의 “잡초란 엉뚱한 곳에서 자란 식물을 말한다” 황금가지라는 출판사와 어울리지 않게 오자가 꽤 있다. 재미를 주안점에 둔 소설이라 이런저런 오자는 그냥 넘어갔는데, 176쪽과 209쪽에서 보이는 것은 좀 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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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읽은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이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구매했을 당시의 이유 역시 돌이켜 보면 자극적인 제목과 더불어 밀리언셀러클럽 시리즈 라는 이유였던것같다. "내 안의 살인마"라는 제목과 새빨간 권총이미지가 어쩐지 구매욕과 더불어 호기심을 자극했다라고할까? 책 소개글 마저도 친절하고 예의바른 한 남자의 가면 뒤에 냉혹하고 잔인한 연쇄살인마가 숨어있다라는 선전문구로 나로써는 구매하지 않을수 없었다랄까? 그런이유로 이 책을 구매한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번 책은 기대가 너무컸나보다. 아무래도 살짝 실망스러움이 밀려오는건 어쩔수없는것같다.
캐릭터적인 면에 있어서 아무래도 나는 차가운 도시 남자 혹은 차라리 대놓고 나쁜남자임을 더 선호하는게 확실하다. 세상에 둘도 없을 착하고 호구스러운 캐릭터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려움은 없는지 힘든일은 없는지 혹은 힘든일은 내가 다 짊어지겠다는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캐릭터의 이중적인 모습은 도무지 좋아지지않는다.
물론 사람좋은 착한 남자이미지는 연쇄살인마의 겉모습일 뿐 일지언정, 난 겉은 차갑고 나쁜 남자라도 속은 내 여자에게 만은 따뜻한 도시 남자가 더 취향이라는걸 새삼스럽게 느꼇다랄까? (아.. 요즘들어 눈이 너무 높아진것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대체 나쁜놈들을 좋아해서 어쩌자는거지.)
아무튼 그런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는 주인공이 알고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연쇄살인마 라는 설정인데 그래도 내 여자에게 만은 따뜻 할 줄 알았거늘.. 나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의 감정이라곤 도통 느끼지 안는듯한 캐릭터의 설정자체도 그렇지만 더더욱 날 아쉽게만든것은 작가의 쉽게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
내 컨디션이 나빳던걸까? 아니면 원래 해당 작가님이 다소 어려운 문체를 구사하시는걸까? 문장을 곱씹어 읽어도 쉽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않아 그저 읽기만 하며 넘어갔던 점도 없이않아 잇는듯하다. 평소 문장그대로 쉽게 상황설명하는 간결한 어투를 선호하는바 대화체 이후 뒤에서 새삼스레 해당 상황에 대한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들이 대체 좋단 소린지 나쁘단 소린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한 장면들도 종종 있었다.
조심스레 진행된 반전은 너무 조심스러워서 오히려 다소 소심스러워 보이기까지했고, 서부 텍사스를 배경으로 이어진 연쇄살인범의 살인사건은 어쩐지 너무 막 전개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막무가내로 진행되는지라 결과가 정말이지 어떻게 마무리 될지 궁금하기도했는데.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주변 캐릭터 들뿐만이 아니라 더더욱 속을 알수없는 주인공을 기준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결코 해피엔딩으로 볼수없다.
물론 인간은 모두 선하지 않고 순수하지만도 않다. 태어날때부터 반드시 모두 악한 사람이야 있겠냐만은, 태어나면서 후천적인 영향으로 악해지는 사람들은얼마든지 존재하고, 그와 더불어 후천적인 영향이 아니더라도 어느정도의 악은 내재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참 인상적인제목이었는데.. 아무래도 캐릭터 적인 면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고 작가 특유의 문장들이 다소 어려운 관계로 크게 만족스럽진 않은듯해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아무리 비주얼 좋은 사람좋은 20대 보안관 이라고 하더라도 캐릭터 적인 면에서 부터 일단 아쉬워지니 영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대체 마지막에 나타나 잡초 운운한 변호사의 역할이 무엇인가?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 잡초와 꽃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더니 급 사라졌지? 루가 범인으로 몰린 것에 대한 가설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결과적으로 대체 그 어설픈 조연의 등장인 뭐지? 아..여간 아쉬운게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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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살인마. 워낙 유명한 소설인데다가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입소문을 탄 작품이지만, 나는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난 영미 소설쪽은 주로 추리 소설을 읽어왔지만, 미드쪽의 범죄 드라마를 좋아했기에, 어떤 이야기일까 하고 구매전부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던 소설이기도 하다. 텍사스의 작은 마을의 부보안관 루 포드. 그는 근면성실하며, 잘생긴 외모에 친절하고 예의바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는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내면을 가진 사람이었다. 루가 창녀 조이스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의 마음 깊이 봉인되었던 어둠이 15년만에 꿈틀거리며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루는 조이스만 죽이면 다시 그 어둠을 깊이 잠재울수 있다고 믿지만, 그건 단지 착각이었을까. 형에 대한 복수란 명목으로 조이스와 엘머를 살해하고, 조이스와 엘머가 서로를 죽인 사고로 처리하지만, 조이스는 완전히 죽지 않고, 결국 수술을 받다가 숨졌다는 소식이 루에게 전해진다. 어리숙한체 하며, 자신은 범죄와는 동떨어진 사람인양 행동하는 루. 그러나 그 사건은 조금씩 루를 압박해오기 시작한다. 용의자로 몰렸던 조니의 알리바이가 확인될까 싶어 조니를 살해하고, 자신을 목격한 듯한 노숙자를 살해하고, 모든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본 자신의 약혼녀 에이미까지 살해하게 되는 루. 그는 완벽하게 자신의 죄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건의 진실은 작은 틈으로 모래가 빠져나오듯이 조금씩 빠져 나온다. 요즘의 서스펜스 소설과는 달리 슬로우 템포로 진행되는 소설이긴 하지만, 루 포드가 화자로 자신의 범행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는 서술 형식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듯한 루의 모습, 그리고 살인을 계획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는 모습은 요즘 시대의 사이코패스를 떠올리게 한다.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란 작품으로 사이코패스란 용어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1950년대의 소설에서 이런 캐릭터를 창조해냈다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가 엘머를 죽인 건 단지 복수심이었을까. 절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건 조이스를 죽인 범인을 만들기 위했을 뿐이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모습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기에 더욱더 섬뜩하게 다가왔다. 특히 약혼녀 에이미를 살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아이처럼 그날을 기다리는 루의 모습은 악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요즘 세상이었더라면, 루의 범행 사실은 일찌감치 폭로되었을테지만, 1952년에 첫 선을 보인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아직 과학 수사라는 것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였고, 또한 작은 마을의 혈통있는 가문이라는 것이 루에게 있어 큰 이점이 되기도 했다. 비록 속도감이라든지, 스릴감 면에서는 요즘 작품에 뒤쳐진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범행을 즐기는 듯한 루의 캐릭터는 단연코 이 책에 있어 가장 큰 일등 공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자신이 범행을 저지를 동기, 적당한 이유와 구실과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않나 싶은 루의 마음속 어둠, 그리고 우리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의 변화란 것은, 섬뜩함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 또한 에이미의 편지, 그리고 죽지 않았던 조이스의 등장은 멋진 반전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마지막을 잘 장식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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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욕구 혹은 욕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식욕이나 수면욕 등 신체적이고 생존을 위한 욕구도 있고 그보다는 조금 정신적 요소도 가미되어 있지만 여전히 본능적 욕구에 가까운 성욕도 있을 것.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욕구 및 욕망이 존재하며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러한 차이가 성격의 차이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런 욕구들 중의 하나가 폭력에 대한 욕구일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 사회에서 사회성을 습득하면서 자란 사람은 어느 정도의 사회적 규범과 획득된 이성에 의해 이를 대부분 통제하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꽤 있고 그런 사람들 중에 사회가 정한 일정 수준을 넘어선 자들을 우리는 범죄자라고 부르며 사회의 법규로 처벌한다.
인간의 폭력에 대한 욕망은 고대 올림픽에서 치루어졌던 최고(最古)의 스포츠들 중에 투기 종목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요즈음에도 갈수록 자극적이고 강도가 강해지는 스포츠들-예컨대 이종격투기-의 인기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약육 강식의 시대에서 강한 수컷이, 혹은 강한 존재가 가장 강한 상대를 만날 수 있게 하고 종족 번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강함과 폭력의 원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찌 되었던 건 간에 폭력 성향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음에는 동의가 가능하다.
이렇게 서론을 길게 뺀 것은 이 책이 제목 만큼이나 인간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과 살인에 대한 본능을 1인칭 시점으로 극명하게 드러내어 주는 다소 특이한 구성을 특징으로 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부터 살인자를 알려 주는 이 책은 도서 미스테리라고 불리는 구성과 비슷한 플롯이다. 일반적인 미스테리가 수사를 하는 사람이 범죄자를 쫓는 구성이라면, 도서 미스테리는 범죄자는 초반에 이미 밝혀져 있고 그 범죄가 밝혀져 가는 과정이 서술되며 범인을 쫓아 추리하고 수사하는 자의 심리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고 수사를 피해가는 자의 심리가 우선되는 장르이다.
특정한 살인 동기보다 그야말로 내재된 살인 욕구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스스로 정당화하고 은폐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술수를 부리고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그의 섬뜩한 심리 과정이 묘사되어 있는 이 책은 '과연 내 안에도 저런 심리가 숨어 있을까?' 싶은 생각도 떠오르게 만든다.
여러 모로 볼 때 주인공이 약간은 비정상적인 심리를 갖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나,
공중 전화 박스에서 통화를 오래 하다가 뒷사람이 채근하자 살인을 저지른 일이 9시 뉴스에 대서 특필되던 시절에서 요즘은 그와 같은 어이없는 살인과 죽음이 너무 많아서 그저 하나의 가십 거리가 될 뿐인 시대로 세태가 바뀌어 버린 요즘에는 과연 비정상적인 사람만이 이런 일을 저지를까.. 오히려 엄청난 사회적 변화의 흐름으로 말미암아 내재된 욕망을 '사회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넘쳐 흐르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내 주변의 누구도 안에 살인마 혹은 잠재적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로 비약해 버렸지만, 오래전에 쓰인 이 책이 지금 다시 읽힐 수 있는 건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하면서 경종을 울려 주기 때문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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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작가의 요즘은 너무 진부한 소재가 되어 버린 이야기라 사실 읽으면서 조금 뜨악했다. 도대체 이 작품의 시대 배경이 언제지? 라는 의문을 읽자마자 품었어야 하는데 나는 늘 조금은 늦게 뭔가를 느끼기에 읽는 도중 1952년이 작품의 배경임을 알게 되었다. 1952년의 미국 남부가 배경인 작품인 것이다. 그것만 먼저 알았더라도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작품이다. 그러나 또 하나 의문을 품었다. 짐 톰슨이라는 작가는 이 작품을 언제 쓴 거지? 지금 살고 있는 작가가 배경만 1950년대로 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작품 자체가 1952년 작품이다. 작가도 이미 고인이 된 분이다. 이런 책에 대한 약간의 조사를 하고 읽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이렇게 작가와 작품에 대해 알고 읽는 것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50년 초 석유개발로 인구가 갑자기 늘어난 소도시의 부보안관으로 있는 마을 사람 모두가 사람 좋다고 인정하는 루 포드는 그러나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지금 쓰고 있는 가면이 벗겨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 그에게 그 가면이 벗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을에 자리를 잡은 창녀 조이스와의 만남이다. 그 만남으로 루는 자기 안에 억제하고 있던 살인 본능을 뿜어내고야 만다. 물론 조이스때문만은 아니다. 자신 대신 어린 시절의 죄를 뒤집어 쓰고 소년원에 갔다가 나와 사고로 죽은 아버지가 양자로 들인 형에 대한 복수심도 있었다. 그 복수를 부추기는 노동 조합장이 있었고, 아들과 창녀 사이를 떼어달라고 명령을 한 마을의 유지 원수 체스터도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이런 복합적인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살인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계속하는 루의 모습과 그 모습을 보며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서 점차 멀어지는 모습 속에 폐쇄적인 마을에 떠도는 범죄의 그림자를 느끼게 된다.
지금 작품과 비교하면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시대를 감안하고 보면 잘 쓰인 작품이다. 살인자의 심리 묘사와 마을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고 전형적인 미국 남부의 느릿느릿함이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느낌은 좋았다. 아마 그 시대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읽어도 괜찮다. 살인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루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마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심정과 일치시키고 있는 점은 그 시대, 그런 마을의 폐쇄성과 살인이라는 폐쇄성을 동일시하고 있다. 루에 의해 점점 밝혀지는 그의 과거와 감추어진 추악한 진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문제점과 그들이 밝히는 이야기들은 작품에 집중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또한 마지막 반전은 그 나름대로 당시에는 꽤 신선했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을 조여오는 것들을 알면서도 '인생에 위기가 찾아오면 관심 분야가 적어진다.'고 받아들인다. 그의 관심은 단 하나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그러면서 그가 묻는다. 누가 게임을 시작한 것이냐고. 마지막 '우리 모두'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모르던 작가의 몰랐던 작품을 뒤늦게나마 누군가의 안목에 의해 내가 읽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모르고 지나간 작가들이, 작품들이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다. 그 모든 작품들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누구에게는 정당한 평가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 작품은 범죄자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범죄자가 화자로 등장해서 자신의 범죄를 드러내고 자신의 심리를 보여주는 한편 스쳐지나가듯 다른 이들의 모습 속에 담겨 있는 범죄, 사회가 묵인하는 범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의 사회와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범죄자는 더 잔인해지고 악날해졌지만 그만큼 사회도 더욱 변하지 않고 화석처럼 단단해졌음을 알게 된다. 스타일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인간 자체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자신 안에 그 어떤 악도 없다 자신할 수 있겠는가. 숨겨진 보석, 흙 속의 진주란 이런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