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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만난 책 중 가장 얇고 가벼웠다. 워낙 유명세를 탔기에 내용은 빤하지만 기회를 놓쳐서인지 영화는 도통 봐지질 않았다. 영화의 감춰진 이야기를 풀어낸다기에 선뜻 읽을 생각을 했다. 표지사진은 역광으로 처리된 흑백 소 한 마리. 소가 천국에 갔다는 걸 우린 모두 안다. 이쯤되면 눈치 챘겠지만 바로 올 초 독립영화계를 뒤흔들었던 영화 <워낭소리>다. 제작사이자 배급사인 인디스토리는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감춰진 뒷 이야기를 아낌없이 엮었다. 이충렬 감독과 고영재 프로듀서를 비롯한 영화 참여자들의 진실된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일석이조다.
알다시피, <워낭소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늙은 소가 주인공이다. 그들을 통해 고향의 깊은 향수와 긴 인생길의 통찰을 담아내고 관객과의 소통을 요구한다. 그런데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감동을 섞어 관객의 눈물까지 맛본 것이다. 영화 <워낭소리>의 성공과 한국정서의 감동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저릿함 자체로 다가온다. 더 신기한 것은 동양, 서양 할 것 없이 인류 전체의 소통에 성공한 결과에 있다. 실제로 미국의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돼 미국인의 눈물을 훔치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그 옛날 우리네 아버지와 닮았고, 소는 그런 아버지를 평생동안 지켜온 묵묵하고 우람한 존재로 그려진다. 세월. 바로 그것은 할아버지와 소를 동반자로 바꾸어 놓았다. 늙고, 병들고, 지혜로운 존재. 천천히 가는 존재. 그래서 <워낭소리>의 물리적 무게는 이토록 가볍지만 실제로는 세상 그 무엇보다 가볍지가 않다.
독립영화 만들기가 원래 이토록 어려운 거였나. 이충렬 감독이 처음 기획한 것이 1997년이고, 전국 방방곡곡을 수색한 끝에 2004년에야 비로소 할아버지와 늙은 소를 만나게 되었으니 이는 분명 기적같은 운명이 작용한 것이라 봐야 한다. 농촌 어느 마을에나 할아버지와 소가 있지만 피사체로서의 그들을 선택하기란 죽음보다 어려운 일이었다고 감독은 회상한다. 그리고 꼬박 3년을 매달렸다. 제작비 지원부족, 연이은 실패에서 오는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어느 것도,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시간들을 헤치고 만들어진 <워낭소리>는 10만이면 성공으로 여겨지는 독립영화계에서 입소문만으로 300만명이 넘는 흥행기록을 세운 작품이 됐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처음 알게 되었다. 정말 간절히 원하면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이충렬 감독이 담아낸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40년 동행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나는 시골 출신이 아니고, 아버지가 소를 팔아 나를 공부시킨 것도 아니지만 기억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엔 언제나 소가 있었단 것을. 가끔 뒷간으로 가는 길목에서 여물을 먹거나 졸면서 나를 맞았던 소가 사라져 버린 게 언제인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동행사진을 보며 여러 번 가슴이 울컥, 감동이 벅차올랐다. 하물며 영화는 오죽했겠는가. 영화가 유명세를 타면서 관계자들과 주인공 도처에 드러나는 절망을 보았다. 유명세라는 게 원래 힘들겠지만 제 3자로서 보기 좋은 장면은 분명 아니었다. 한 시골마을로 달려드는 기자들의 취재와 구경꾼들의 지나친 관심을 막기 위해 배급사에서 직접 양해를 구하는 진귀한 풍경까지 보게 되었다. 나도 이젠, 할아버지와 할머니 가족이 이전처럼 편안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천국에 갔을 거라 믿는 소가 가끔 워낭소리를 들려줬으면 하는 소망이다. 태어나서 살다가 어느 날 훌쩍 천국으로 가는 것. 그래서 아직 천국으로 가지 못한 이들과 이별하는 일. 그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소의 워낭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다. 우리네 아버지이자 어머니, 한국의 거대한 기둥, 주인공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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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초에 영화 "워낭소리"가 개봉된 후 주변의 사람들 얘기가 '괜찮았어', '난 별로던데','그냥 그래'... 이랬다. 영화를 본 이들마다 주관적이긴 하지만 내뱉는 얘기가 달라 나도 '봐야지' 하면서도 정작 시간을 내질 못했다. 사람의 감수성 예민 정도랄까..감동과 눈물에 메말라 있는 이에겐 '뭐가 그리 울만한 일이야'며 코웃음을 칠테지만, 시리도록 차가운 가을바람에 낙엽이 떨어져도 가슴 한켠이 시려움을 느끼는 이는 눈물을 흘리며 보았을 영화이다.
책을 보고 난후 스크린의 영상의 참맛을 가슴으로 느껴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감독이 말하려는 아버지의 헌신과 그 곁을 지키는 소와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소소한 일상을 우리의 내면에 물결치듯 잔잔하게 울려 놓은 듯 하다. 그에 비해 활자로 보는 워낭소리는 영상의 효과음과 시각적인 장면, 단시간에 집중하여 빠져드는 영화만의 감흥이 쉽게 오지 않는다. 이충렬 감독의 영화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가 오히려 내 눈길을 끌었다. 막연히 사람 사는 세상을 그려보고 싶었다던 이 감독. 가난으로 제대로 배우지 못한 콤플렉스로 가족이나 주변과의 관계는 썩 좋질 않았다. 자라면서 서로 따뜻하게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하고 다정한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아버지. 그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을 속죄하려 시발점이 된 것이 '워낭소리'이다. 그의 유년 속의 소를 닮은 아버지를 끄집어 내어 '존재'를 영화화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그가 생각했던 이미지에 맞는 아버지와 소를 찾는 것부터 촬영 전반에 걸친 사소한 문제들까지 쉽게 제작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인고 끝에 다큐적인 영화는 아버지와 소, 할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지나치고 살았던 정서와 감성을 찾아내 소를 동물로만 여기지 않고 삶의 동행으로 여기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난 아직 워낭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책에서는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300만이 울고 울었다 하니 그 감동과 전율이 워낭소리가 아닐까 한다. 감독이 말하는 "워낭소리"는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주변을 돌아보고 '아버지와 소'처럼 느림을 배우고 더 나아가 잊혀지는 관계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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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로 제작되어서 독립영화최고의 관객동원을 갱신한 영화를 다시 책으로 엮어내면서 영화제작시의 비하인드 스트로리까지 엿볼수 있는 책이었다. 영화로 보고 다시 책으로 읽으니 감동이 배가 된다. 알수없었던 뒷 얘기들까지... 독립영화를 하시는 모든 분들께 경외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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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책으로도 나왔군요 영화 정말 좋았습니다.
책에 표지 훈훈한 시골 풍경에 왠지모를 따스한 느낌이 들어요 출퇴근 길에 읽으면 좋을듯 싶네요 책으로 다시 되새김질 하듯.. 읽어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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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우리나라를 떠들썩 하게 했던, 독립영화로는 사상 유례없는 300만 이라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었던 영화 워낭소리를 책으로 먼저 만났다. 평소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일이 거의 없는 나로써는 티비나 인터넷뉴스로만 접했던 워낭소리의 파급효과에 대해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했다. 보고 싶은 영화중 하나였던 것이지만 항상 그렇듯 보고싶은 것으로만 끝났다. 요새는 티비에서도 해주든데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었다. 그렇게 잊혀져 가던중 이 워낭소리가 책으로도 발간 된다는 광고를 보고 영화로 못봤으니 책으로라도 간접적으로 감동을 느끼고 싶었는데 운이 좋게 기회가 왔다. 역시 생각했던데로 잔잔하며 푸근한 감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느낌을 영상으로 봤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보니 이 워낭소리를 제작하기 위해 감독 및 제작진이 거의 10년에 걸쳐 기획하고 준비하고 촬영했다고 하는데, 진짜 대단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감독인 이충렬은 처음에는 독립영화 식으로 만들 의도는 없었다고 하는데, 제작비가 부족해서 어쩔수 없이 독립영화로 만들었다하는데 결과는 성공이니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이런 일은 두번 다시 오기 힘들수도 있을 것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제작할때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제작했다 하니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런 절실하고 부단한 노력으로 영화를 끊기있게 만들었으니 그 노력이 관객들에게 전해져서라도 이 영화는 성공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다른 영화들을 대충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티비에서 우리나라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을 봤는데 신은 1000만 관객이라는 기적을 한 감독에게 2번 주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기적이 2번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 하겠다. 독립영화 쪽에서 보면 300만이라는 관객수는 상업영화의 1000만명에 육박하거나 더 넘어서는 관객수라 할수 있다. 5만명만 넘겨도 성공한 영화라고 하는데 300만 이라니...상상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의 인터넷기사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할머니 할아버지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워낙에 유명해지다보니 여기저기서 많이 괴롭힌다고 하는데, 이 영화가 갑자기 이슈가 됐을때는 얼마나 심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시골에서 평생을 그냥 평범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이런 많은 관심을 받게되면 매우 혼란스러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스컴의 입장에서는 이런 특종을 놓칠리 없고 기사는 써야하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는 하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느린 삶에 대한 욕구가 막 치솟았다. 요즘 우리의 삶은 너무 빠르고 바쁘고 긴장의 연속이기 때문에 이런 느린삶을 즐기기엔 너무 벅차다. 그래도 중간중간 짬을 내서 느린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은 해본다. 과연 실천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조만간 영상으로도 워낭소리를 들어봐야겠다. 책의 내용이 과연 영상으로는 어떻게 표현이 되었을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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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본 감동이 컸기에 이 책이 더욱더 보고 싶었다. 이 영화를 선택해서 봤을때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볼게 없어서라는 단순한 이유로 친구와 둘이 몇몇되지 않는 조조영화를 봤던 기억이 선하다. 영화가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아 봤고, 별 기대없이 보았기에 감동은 두배세배 더했다. 그 감동을 고스란히 이 책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더 읽고 싶었고, 영화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전 재산이자, 친구이며 집안의 일꾼인 소 가축이라지만 언뜻보면 가축이전에 이들의 가족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책속에 담겨있는 농촌의 풍경 그리고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담겨있어 책장을 넘기면서 가슴이 아려왔다. 이상하게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두 번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내가 책을 통해 영화을 재생하고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노부부의 모습이 한없이 좋았아며 한없이 가슴이 아프기도한 책이다. 사실 워낭소리라는 책을 통해 나는 소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 노부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젊은이가 없는 농촌에서 이 노부부의 생활모습 그리고 정겹지만 외롭게만 보이는 이들의 풍경같은 모습이 가슴을 따뜻하게도 했지만 가슴을 아프게도 한 것이 사실이다. 이 노부부가 죽음을 정리하듯이 영정사진을 찍는 모습이라던가 모든 것을 왠지 모르게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파왔다. 서평을 쓰면서 영화와 책이 함께 떠올라 흥미롭다. 대부분 영화로 본 다음 책을 보면 시시하고 책을 본 다음 영화를 보면 졸작으로 느껴진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가슴속에 따뜻함이 고스란히 남겨져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노부부에게 한평생 친구 아닌 가족이 되어주었던 소는 이제 세상을 떠났고 이 노부부도 스스로 생을 정리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 오면 한번 떠나는 세상이지만 이 노부부에게는 이상하게도 슬플과 따뜻함이 함께 공존한다. 마치 오랜후에 이들은 다시만나 또다시 소소한 행복과 아픔을 같이 견디고 나갈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영화처럼 따뜻했던 책이서 참 좋았다. 이상하게도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움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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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영화 중에서 300만을 울렸던 감동적인 영화를 남들 다 볼 때 정작 나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 아쉬움은 더 크게 남았던 터였다. 하지만, 고맙게도 그 아쉬움을 책으로 대신 달랠 수 있었다. 독립영화로 개봉한 「워낭소리」가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아마도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이 책으로 대신 위로하라고 전하고 싶다.
이 영화는 너무나 유명해서 제목만 들어도 안다. 그만큼 눈물과 깊은 울림을 선사한 작품이기에 책으로 만나는 감동과 울림은 영화를 통해서 스크린으로 전해져오는 것과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영화를 보지 못했기에 책을 통한 감동과 울림만 고이 간직하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할아버지와 소의 살아가는 인생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경북 봉화에서 할머니와 소와 함께 지내시는 ‘최원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면서 눈물을 쏟아내게 하였다. 할아버지는 소를 사람처럼 대하신다. 여물을 줄 때에도 직접 풀을 베어서 소에게 먹인다. 마치 자신의 자식처럼 말이다. 그런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관계는 마치 아버지와 아들 같다. 그렇게 40년을 지내왔는데 어느 날 수의사가 소가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부정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받아들일 수 없으셨는지 아니면 믿을 수 없으셨나 보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자식처럼 생각하고 4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지낸 소가 1년밖에 살 수 없다는 통보를 받으시는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소의 사랑과 우정을 질투하시는 할머니 역시 마음은 매한가지다. 할아버지에게는 그냥 소, 일하는 소가 아닌 자식처럼 여긴 소였고, 그 소가 하늘나라로 갔을 때 직접 땅에 묻으시는 모습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안겨주었다. 대부분 소는 평생 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소가 많지만, 할아버지의 소는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온 시간과 세월은 자신이 소가 아닌 마치 자식인 양 소를 보살펴 주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아들처럼 일을 거들어주며 함께한 세월은 두 주인공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든 동물이든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지만 이 책에서 소의 죽음은 마음을 크게 울렸다. 텍스트로 표현할 수 없는 할아버지의 표정, 소의 모습은 영화를 통해 깊은 울림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자리는 슬픔이 남는 법이니까.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말이다. 이 작품은 두고두고 꺼내어 읽어도 그 감동과 울림은 똑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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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 독립영화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영화 워낭소리. 스크린으로 느낄 수 있었던 그 감동을 이제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워낭 소리는 소의 목에 걸어둔 작은 종의 소리를 말하는데, 사람과 소의 소통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워낭을 들고 있던 할아버지 손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되었던 기억이 살아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 때의 설레임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경북 봉화의 인적이 드문 시골에 평생 밭을 가꾸고, 농사일을 해오며 살아오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마흔 살이 넘은 소 한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넓은 초원위에 석양이 내리고.. 오늘도 무뚝뚝한 할아버지와 또 언제나 그의 곁을 지키며 묵묵히 따르는 소는 할아버지와 함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일반적인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정도라고 하는데,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소는 벌써 40년을 함께 했고 얼핏 봐도 삐적 마르고, 볼품없는... 보기에도 안쓰러운 그런 소였다. 하지만 이렇게 볼품없는 소는 할아버지와 평생을 함께 해 온 인생의 유일한 친구이자, 농사일에 없어서는 안 될 농기구가 되었고, 때에 따라서는 불편한 다리의 할아버지에게 자가용도 되주는 그런 동반자였다.
할아버지는 나이도 많으신데다, 어려서 다리 한 쪽을 못쓰게 되어 불편한 몸이었고, 이제는 귀까지 들리지 않는 노인이었지만 손수 농사일을 하시고, 꼴을 베어다 언제나 할아버지의 손으로 직접 소의 여물을 끓여 먹이시는 분이다. 할머니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는 할아버지의 귀에는 이상하게도 소의 워낭소리는 늘 분명히 전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수의사가 할아버지 댁에 방문을 해서 소를 진찰하는데 앞으로 길어야 1년정도 살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수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소를 향한 할아버지의 눈빛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빛이었다.
추석에 내려온 9남매의 자식들은 할머니와 함께 몸이 편찮으신 할아버지가 이젠 농사 일도 그만 하시고, 편히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를 내다팔기를 권유한다. 병원에서도 일을 더 이상 하시면 안된다는 진단을 받으시고 돌아오셨던 할아버지는 내키지 않았지만 소를 우시장에 내다 팔 결심을 하고 다음 날 소를 팔러 우시장으로 향하는데... 소가 우는 모습을 이 때 처음 봤던 기억이 난다. 그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주르륵 흘러 내리는 소의 눈물을 보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정과 사랑을 눈물로 표현하는 것이었을까? 한참동안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던 순간이기도 하다.
소를 팔러 나가야 하는 할아버지의 심정이나, 이번 역시 묵묵히 따르는 소의 마음을 생각해 보니 가슴이 아련해짐을 느낀다.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수없이 소를 팔기로 했던 할아버지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우시장의 이웃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흥정을 하려했고, 상인들과 가격을 흥정하면서 할아버지의 마음은 늙은 소에 대한 자존심이셨을까?
결국 속내를 감추지 못하시고 다시 소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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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변함없는 일상은 다시 시작되는데 소의 걸음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던지 지금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거리를 언제나 할아버지 곁을 지키며 묵묵히 뒤따르던 우직한 소의 모습이 이렇게 감동적으로 보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늙은 소는 이제 그 생명을 다해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서질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수의사는 할아버지께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할아버지는 소에게 평생을 매달아 두었던 고삐와 워낭을 낫으로 잘라 빼주시며, 소의 마지막 가는 채비를 도와주신다.
언제나 무뚝뚝한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아끼시던 소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던 할머니에게도 소의 마지막 가는 길에 눈물을 보이시며 정을 보이시는 할머니의 모습도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눈물을 쏟게 했던 장면중에 하나이다. 수북히 쌓여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소의 마음이 이랬구나 싶었다.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소는 죽기전에 그 많은 나무를 해놓고가야 떠나는 길에 마음이라도 편했나 보다. 이런 소의 마음을 할아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셨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죽은 소를 땅에 묻어주시고, 그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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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땅을 가꾸며 농사를 천직으로 살아오신 할아버지. 몸이 부서지도록 평생 일을 해왔던 할아버지 곁에는 한 발자욱 내딛기도 너무나 힘에 겨워도 늘 든든하게 버텨주었던 소가 동행해 주었다. 40년을 함께 했던 소는 이제 그 몫을 다하고, 할아버지의 곁을 떠났지만 지금도 내 귓가에 워낭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 하다. 워낭소리는 할아버지의 일생과 또 할아버지의 소중한 인연이었던 소와 자연을 보며 우리 인생에 중요한 그 무엇을 오랜 시간 마음속 깊이 품고 살 수 있도록 다시 살펴볼 수 있었던 참 의미있는 영화였다. 워낭 소리 그 10년간의 기록을 다시 읽으며 함께 할 수 있었던 감동은 책으로 오랫동안 소장할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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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함께 한 세월의 소리, 워낭.
워낭소리를 보고 대구에 엄마와 아빠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전 도시에서 자라지 않고 촌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에 영화의 소리가 울림이 참 컸다고 생각합니다. 소는 참 눈이 이쁜 동물이죠.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주는 동물이기도합니다.
영화는 소의 죽음으로 시작하고 소와 함께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일상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소와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였다는 것이 감독의 입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화촬영당시의 힘들었던 에피소드들과 소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고서 관객의 입장에서는 78분을 감상하고 끝이지만, 감독은 이 영상을 자연스럽게 뽑아내기위한 수고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고마움이 나타난 다큐이기도 하고 영화이기도 한 '워낭소리'라는 작품이 탄생된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보고서 한씬한씬들의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자했던 것을 좀 더 명확하게 생각하게끔 정리된 듯 싶었습니다.
도시친구들에게 워낭소리 봤니라고 물었을 때 들었든 말 중 하나가 1년에 한두번 내려가는 시골할머니집이 생각난다는 였습니다.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것과 사뭇다른 반응에 워낭소리를 보는 사람에 따라 참 여러가지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만큼 영화는 울림이 커서 독립영화로는 처음으로 300만 관객을 동원하였으니까요. 영화가 끝나고도 소의 워낭소리가 들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 그 후에 할머니와할아버지가 40년지기 소를 잃고 새로운 소와 함께 하는 삶이 걱정스러우면서도 그 빈자리를 채우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있기에 부모님의 감사를 드리고 자식으로서 못한 부분까지 생각하게끔 다그치는 영화같아서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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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의 블랙버스터 영화에 밀려 상업성이 부족하면 국내 영화 시장에서 몇 일 버티지 못하고 막을 내리는 것이 우리 영화의 현실이다. 그런데 “워낭소리”는 저예산의 독립영화 임에도 불구하고 300만의 관객동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이 놀라움은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면서 보고 들은 한국적 정서에 기반을 하고 있는 듯 싶다.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외국인들에게도 소개되었다고 하는데 한국어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영어 자막이었지만 할아버지와 소가 빚어내는 삶의 일상들이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해지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고 한다. 입소문과 언론에서 많이 어필하였지만 정작 나는 영화를 만나보지 못했다. 하여 이 책을 통해 그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하면서,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 감동의 근처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책을 읽은 후 나의 느낌은 영화보다는 글로 작품 “워낭소리”가 더 생생하게 표현되었을 것 같았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시골에 대한 동경, 또는 어렸을 적 살았던 농촌 마을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그 시절, 그 곳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소와 평생을 같이 한 할아버지의 소에 대한 남다른 애정, 그리고 가끔씩 그것에 대해 지청구를 하는 할머니지만 그 잔소리에는 깊은 정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소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관계와 시골생활의 이야기를 떠나 이 글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궁극적으로 어떤 자세와 현안을 가지고 삶을 대해야 하는지를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탈무드의 이야기처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마음속을 잔잔하게 울려주는 소리가 곳곳에 있었다. 지게질을 하는 할아버지와 일상에서의 할머니의 자연스러운 모습, 굵게 주름 패인 그분들의 표정, 우직한 소의 큰 눈망울 등 많은 그림이 삽입되어 있어서 조금이나마 영화의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의 맨 앞에 쓰여 있는 “봄날은 간다” 가 참 좋았다. 우리 시대의 노래는 아니지만 나는 그 노랫말이 들려올 때면 그 가사가 너무도 시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흥얼거려 보곤 했었다. 신경숙 작가의 말처럼 “인간이 다 된 소가 천국에 갔기를, 지금도 내 귓가에 들려오는 저 워낭소리는 천국에서 들려오는 소리이기를” 나도 잠시 빌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