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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퀴블러의 다른 작품인 <<죽음의 순간>>을 보라고 지도교수님이 권해주셨는데 우연히 신간으로 발간된 이 책(The Wheel of life)을 먼저 읽게 되었다. 처음 두 장(chapter)은 그녀의 의사로서의, 자원봉사자로서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녀의 이런 모습들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핑계로 항상 자선을 기부의 수준으로 하고 있었던 탓에 직접 발로 뛰는 그녀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닐 때 아니라고 하는 그녀의 용기와 환자를 가진 가족을 위해 먼길도 마지 않고 찾아가 큰 병원에 장티프스 환자인 아이를 맡기는 것을 보고도 놀랐다. 아마 요새는 병원이 돈을 버는 장소라는 느낌이 강한 탓에 그녀가 환자 입장에서 환자와 이야기 하고 호스피스로서 그녀가 여러가지 진행했던 계획과 일들이 계속 나를 놀랍게 만들었다.
나머지 두 장은 그녀가 임사상태를 경험했던 사람들을 토대로 그리고 그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다. 아직 여기까지 나의 마음은 열려 있지 않아서 거부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임사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따뜻한 빛에 싸여 있었고 무한 사랑을 느꼈다는 말을 듣고서 알수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믿겨지지 않는 말들이라고 거부하면서도 그들이 말한 사후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던 탓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삶에 대한 강의는 고치와 나비로서 상징화되는데 마치 이것은 그리스 사람들이 프시케(그리스어로 '영혼'이라는 뜻)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낸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시케 역시 죽음을 경험하고 내적 성숙을 이뤄냈으며 그녀가 맡은 3가지 임무 (1) 사나운 양의 털 뽑아오기 (2) 곡식별로 정리하기 (3) 지하세계로 가서 페르세포네에게 그녀의 미(화장품)를 조금 가져오기 를 맡아 완수하게 신의 술 암브로시아를 마시고 불멸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3)의 임무는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옆길로 잠깐 새보자면, 이 세가지 임무마다 뜻하는 심리적 상징이 있음을 증명하는 책도 예전에 읽은 듯하다. 어쨌튼 이런 죽음의 경험은 그녀에게 불멸의 진리를 깨닫게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퀴블러 역시 여러 환자들과 이야기하고 자신의 유체이탈 경험등을 토대로 죽음의 경험을 우리에게 나눠주고 있다. 아직도 전부를 믿지 못하는 의심이 나에게 남아있지만 그녀가 말하는 나비의 상태를 나는 믿고 싶다.
아래는 내가 최근에 찾아낸 책인데 같이 읽으면 흥미로울 것 같다. The language of psyche : mind and body in Englightment thou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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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있던 엊그제는 봄비가 촉촉히 내렸다. 잎샘추위도 꽃샘추위도 다 지난 듯한 이맘때쯤에 내리는 비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야말로 단비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자서전<생의 수레바퀴>를 읽으며 '죽음'을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언제나 담담하고 평온한 것이었다.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그저 허상일 뿐, 실제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새 생명을 키우는 봄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 그것이 '죽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모든 사람은 같은 근원에서 왔고 같은 근원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모두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과 모든 악몽, 신이 내린 벌처럼 보이는 모든 시련은 실제로는 신의 선물이다. 그것들은 성장의 기회이며, 성장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P.384)
<인생수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스위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세 쌍둥이의 맏이로, 살아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900그램의 미숙아로 인생을 시작한 그녀가 인류에게 가장 큰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려 했던 '죽음'이라는 주제에 인생의 대부분을 바쳤던 저자의 삶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문구 회사의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집을 뛰쳐나갔던 당찬 소녀는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폴란드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나치스의 마이다네크 수용소를 방문한다. 사람들이 가스실로 끌려가기 전날 밤을 보낸 막사의 벽마다 가득 그려진 나비 그림을 보며 품었던 강한 의문은 그로부터 스물다섯 해가 지나서였다.
"우리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 오를 번데기를 품은 고치처럼,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이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고통도 두려움도 걱정도 없이, 아름다운 한 마리의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아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노래하고 춤춘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상상할 수도 없는 커다란 사랑에 둘러싸인다." (P.382)
선거를 앞두고 경쟁적으로 자서전을 쏟아내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행태에 신물이 난 나는 자서전이라면 지레 피하고 본다. 읽히지도 않는 쓰레기와 같은 책을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며 출판회를 갖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인지 기억에 오래 남는 자서전은 몇 권 되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만난 것도 우연이었다. 떠돌이 철학자로 유명한 에릭 호퍼의 자서전을 읽으려고 도서관에 들렀다가 눈에 띈 이 책을 나는 순간의 갈등도 없이 대출을 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그때의 선택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내가 읽은 자서전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아리에 도르프만의 자서전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와 <스콧 니어링 자서전>, <간디 자서전>, 그리고 이 책 <생의 수레바퀴>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책들 상호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만 같다.
호스피스 운동의 창시자이자 죽음학의 세계적인 대가인 저자가 말년에 이르러 뇌졸중으로 쓰러져 휠체어와 침대를 오가며 생활하는 악조건 속에서 생을 되돌아보며 심혈을 기울여 썼다는 이 책에서 의학자와 영성가로 평생을 살았던 저자의 분투와 노력이 가슴 깊이 느껴진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신분석이나 심리학 분야에 있어 왜 스위스 출신들이 많은가? 하는 의문이 그것인데, 칼 구스타프 융이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삶을 살펴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깊은 사색과 인간에 대한 사랑, 자연과의 친숙함이 원숙한 삶을 살게 한 원천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성장하는 데 특별한 스승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삶의 스승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아이로, 말기 환자로, 청소부로......, 세상의 그 어떤 학설과 과학도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힘에는 미치지 못한다." (P.189)
저자의 또 다른 책<상실수업>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평화는 고통의 정중앙에 놓여있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세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부딪쳐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면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우리는 그럴 때 비로소 평화를 얻는다. 며칠 전 한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한 여배우의 이름이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극심한 고난과 상실의 아픔 속에서 살았던 그녀의 얼굴에서 한줄기 햇살처럼 따뜻한 평화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기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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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이다. 바로 성장하는 자유, 사랑하는 자유이다. 삶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치료비를 낼 수 없는 죽어가는 여자들을 진료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일자리를 잃게 되더라도 나는 자신의 마음이 옳다고 느끼는 대로 선택을 했다. 내게는 그것이 좋았다. 다른 선택의 여지도 있었을지 모른다. 인생은 선택의 길로 가득 차 있다.
‘생의 수레바퀴’라… 처음에 이 책 제목을 듣고, 내가 읽은 책인가….라는 착각에 빠졌다. 내용도 그러하다.
이 책은 <인생 수업>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의 회고록이다. 책을 읽으며, 헨렌 니어링이 떠올랐다. 헨렌 니어링이 자연 속에서 자신 만의 세계를 구축해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었다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람들 속에 머물며, 그 사람들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여인이다. 이 둘의 삶은 닮은 듯 대척점에 놓여 있다.
스위스의 평범한 가정, 세 쌍둥이의 첫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치열한 질문을 던지곤 했던 그녀는 유독 의협심이 강했다. 불쌍한 동물들은 집안으로 데리고 와서 돌보고, 부당하게 대우받는 동급생을 대신해 목사의 얼굴에 성경책을 냅다 던지기도 하고, 수업료를 못 내는 친구들을 위해 모금 활동을 하다가 정학의 위기에도 쳐 하지만, 지도 교수에게 당당히 의사로서의 책임을 상기시켜 일을 무마시키기도 한다. 자라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하고, 희생자들을 돌보기 위해 위험이 따르는 구호활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다. 삶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다. 뛰어난 의사들도 죽음이 삶의 일부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영위하지 못한 사람은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 –p155~156
그녀는 어려서 심하게 앓으면서 중환자실에 격리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이 깨달음은 그녀가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천착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의사가 된 이후 그녀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친다. 죽음에 관한 강의와 인터뷰를 하고, 책을 발간하면서 그녀는 종교계와 의학계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다.
오랜만에 감동이 있는 에세이를 접한 것 같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꿋꿋이 가는 것,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치더라도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것, 평생을 두고 한 가지 주제에 몰두할 수 있는 것, 이 것이다 싶을 때 주저 없이 실천하는 것, 그리고 이 길이 아니다 싶을 때 과감하게 그만두는 것 등.
‘선택’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했는데, 선택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날 이 책을 읽었다. 어쨌든, 못해서 후회할 일 남기지 말고, 열심히 이것 저것 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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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삶 속에서 고난을 경험한다. 쓰라린 경험을 하면 할수록 거기에서 더 배우고 성장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삶(사는것)과 죽음이 수업의 과목과 같다고 말하고있다.
한 여자로서의 엘리자베스는 정말 멋있고 대단한 여자였다.
넘치는 열정이 부러웠고,
태어날때부터 900 g으로 태어나, 살아갈 가능성은 희박했고 작가는 이점때문에 다른 이보다 열배의 노력을 하고, 그녀가 왜 살아야 하는지 자꾸만 의미를 부여했던것같다. 이것이 그녀에겐 큰 고통이었다.
그녀는 어렸을때, 고열로 한 아이와 입원한다. 그녀가 사랑하던 토끼가 한마리 있었다. 그 토끼를 아버지는 죽여 저녁식탁에 내놓는다.
그녀는 국제평화봉사단에 참여하고, 전쟁이 끝나고 폐허로 변한 곳에서 많은 사람에게 긴급한 치료를 해주며 원조의 손길을 내미는 봉사단원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한다. 전쟁의 고통과, 힘겨움을, 병자취급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따뜻함으로 다가가 진심으로 치료해준다. 이런 점이, 정신과 육체가 황폐해진 이들에게는 정말 감사했으리라. 그리고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대학을 가고, 의사 고시 시험을 보고 합격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남편 매니를 만난다. 같이 병행해서 열심히 산다. 진찰이나 왕진이 아니라 격려와 위로를 해주는 시간이 더 좋았다고 말한다.
가난하고 비참한 환경속에서 자란 흑인 청소부 여자.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걸렸다.
사람이 너무 많아 기다리다가
"죽음은 두려운게 아니에요.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난 손을 잡고
그녀는 감동을 받는다. 나 또한, 대단한 여자라고 생각이 든다.
슬픔과 고통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면, 맘이 짠하다.
그 당시에 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엄마를 잃는다는 슬픔은 엄청난 것이었다. 1년이 지나도 여전했다.
뒤돌아보고 삶을 헛되이 보냈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세요.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과 악몽은, 성장의 기회이며, 성장이야말로 삶의 목적이다. 먼저 자신을 치유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치유할수 없다.
우리는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할때까지, 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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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사출신으로 성인의 반열에 오를만한 이는 딱 두 분이라고 본다. 한 분은 슈바이처이고, 다른 한 분은 생사학의 대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이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극도의 고통에 맞서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평생 동안 보살펴 온 「죽음의 여의사」. 그녀는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에서 존재의 유일한 목적은 성장임을 강조한다. 육신을 허물처럼 벗어 던지고 자유로운 나비가 되어 신의 정원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아름다운 태도일 것이다. 평생 죽음과 상실을 다룬 심리학자가 들려 주는 인생역정도 만만치 않다. 이야기는 유소년, 청장년, 중년, 노년의 삶으로 구분되고, 각 삶의 단계에 걸맞은 상징적인 동물(생쥐, 곰, 들소, 독수리)로 그 시기의 전반적인 풍경을 재현한다. 가령 어릴 때 그녀는 활동력이 뛰어나고 활력이 넘쳐서 생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세쌍동이 중 첫째로 태어나 900그램밖에 나가지 않아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아이였지만, 자라면서 생쥐처럼 생기 있고 장난을 좋아하고 앞서갔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영지주의자적인 성향이 강했고 공포와 죄의식을 강조하는 종교적 논리와 제도적 규율에 반발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 남편을 만나고 의사가 되고 그와 결혼하여 미국에 정착한다. 곰처럼 동면이란 인고의 시간을 지나 태평한 삶을 누렸다. 의사로서 훌륭한 의사란 해부와 수술과 처방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자비심과 사랑이야말로 모든 치료의 근본임을 깨닫는다. 그녀의 첫 강의 시간이 감동적인 영화처럼 매우 인상적이다. 그 강의를 준비하면서 저자는 인본주의적인 성향의 「생사학」에 평생 종사하리라는 소명을 깨닫고 그 기틀을 확립한 것 같다. 중년이 되어 저자는 「삶과 죽음, 그리고 이행」이란 워크숍을 시작하며, 점차 생사학에서 자신의 연구경력을 쌓아나가며 명성을 얻게 된다. 사후체험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죽음의 체험은 고통도 두려움도 불안도 슬픔도 없음에 주목한다. 또한 무조건적인 사랑이야말로 인생의 참된 목표라는 점을 생사학을 통해서 확신한다. 그녀는 들소처럼 드넓은 초원을 천천히 거닐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 저자는 자기를 고집 세고 자아도취적이고 좀 별스럽다고 평가하지만, 사랑의 길을 구현하도록 운명지어진 자신의 소명을 힘껏 껴안는다. 노년이 되어 독수리처럼 하늘로 날아올라 사람들에게 밝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삶의 가혹함을 말하고 역경이란 인생이란 학교에서 내놓는 숙제라고 말한다. 「골짜기를 폭풍우로부터 지키려고 메워버린다면 자연이 새겨놓은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된다.」 역경과 싸워 이겨내는 의지의 철학을 제시하고 조건 없는 사랑만이 인간의 상처를 치유함을 일깨운다. 71세 노년에 중풍으로 인해 생사의 갈림길에 처했어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불굴의 열정으로 이 책을 완성하여 자신의 신념과 깨달음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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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내게 말했다. ‘살아라.’” 고인이 되신 장영희 교수의 마지막 추천사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을 보면서 정말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 책을 덮으면서 나 또한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라고 했다. 죽음이 아름답지 않다면 삶 또한 아름답지 않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에 대해 많은 연구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한 의사로서의 꿈을 이루고 산 사람이다. 아주 작은 시골에서 일하고 싶어하던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통해 인간의 아주 본질적인 고통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찾아낸 호스피스인 것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어려서 세 쌍둥이 중에서도 아주 작은 900g으로 태어났고 어려서 병원에 입원했던 병실에서 옆 침대에 누워있던 친구의 죽음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 친구의 죽음이 두려움이 아닌 편안한 안식으로 어쩌면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숲속의 동물을 집지하에서 보살펴 주었고 죽음을 맞이한 동물에게는 작은 묘지까지 만들어 주었으며 자신의 꿈을 위해 가출까지 한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연구실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환자들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병이 난 환자를 돌보고 치료해주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환자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까지 최선을 다한 의사였다. 그 시발점은 그녀의 가슴속에 있는 사랑이 근본이었겠지만 죽음 또한 삶의 한 일부분이라는 그녀의 생각이 뒷받침 해준 것일것이다. 죽음 또한 아름답게 해주어 삶을 마치는 사람에게 영원한 편안한 안식을 주는 것 이것이 그녀가 다른 의사와 다른 점이었고, 그녀의 사랑이었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다.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뛰어난 의사들도 죽음이 삶의 일부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영위하지 못한 사람은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 환자의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평생을 받쳤다 해도 과언이 아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삶을 통해 그녀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살아라’ 그것도 그녀는 우리에게 죽음의 앞에서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게 ‘살아라’라고 말해준다. 그녀가 진정으로 되고 싶어했던 시골의 의사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을 통해 한 사람 삶을 완성시켜주는 것, 이 모든 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에서 근본이 된 것이다. 사랑이 있다면 어떤 일도 견딜 수 있다. 이 책을 덮으면서 아름답게 살아가고 아름답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되어지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를 통해 어쩌면 아주 두렵지만은 않은 것일지도 모르며 정말 내 삶을 완성 시키는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사랑을 실천한 저자 그녀가 우리에게 준 메시지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살아라’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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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느낀점이 많은 책이다~~!!! 정말 내가 이런책을 읽어서 감명깊다! 생의 수레바퀴... 진짜 이책을 다 읽고 난뒤 느낀점이 바로 살아야겠다.. 무슨일을 하더라도 살아야 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따! 느낀점이 정말 많다 이사람도 이렇게 사는데 나라도 못살까 하면서 무조건 살아야겠다... 이책을 읽으면서 조그맣고 아름다운 눈의 물방울도 흘린것같다 정말 여러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겠다 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정말 살아야겠다 제목과 일치한 생의 수레바퀴..... 생 정말 중요하다 모든사람들이 자살은 잊고 살았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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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은 『상실수업』, 『인생수업』 두권다 만나보았지만 이책이 가장 좋았다. 앞의 두권은 간혹가다가 지루한 부분이 있었고 같은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어 읽다가 지쳐서 쉬기를 반복했지만 『생의 수레바퀴』만큼은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죽음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은 살면서 언제가는 죽음이란것에서 피할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삶이 비참해지지만 때로는 기쁘게 맞서기도 한다. 죽음앞에서 기쁘고 당당하게 설수 있다면 지금 생에서는 후회하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내일해야지'라고 미루지 않고 할수 있다거나 오늘 마음 먹은일들을 끝내고 노력할수 있다면 삶이 더욱 풍요롭고 즐겁지 않을까.
엘리자베스는 어린시절부터 세쌍둥이의 하나로 태어났다. 너무 작게 태어나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음에도 엘리자베스는 살았다. 성장하면서 부터는 엘리자베스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때부터 살아있는 모든것에 끌렸던 그녀는 알베르크 슈바이처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의술을 펼치는 삶을 꿈꿨다. 그녀의 아버지는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엘리자베스는 의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린시절부터 세쌍둥이로 태어나고 보니 어머니조차도 자신을 구분해내지 못했으니 주변사람들은 말할것도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녀는 어린시절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애쓰며 살았다. 언제나 누군가보다 열배의 노력을 하고 열배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엘리자베스는 항상 활력이 넘쳤고 하루종일 숲과 초원을 뛰어나니고는 했다. 어느날 그녀는 감기증상이 악화되어 폐렴과 늑막염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어린 생명은 죽음과 싸우고 있었고 쇠약해질때로 쇠약해져 있었지만 점차 건강을 회복해갔다.
엘리자베스는 학교에 가기를 좋아했지만 R목사가 성서를 가르치는 설교내용은 공감할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학대하는 목사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큰 목소리로 목사에게 당신이 가르치는 종교는 믿고 싶지 않다고 소리쳤다.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을꺼라고 생각했지만 결론은 그 수업에서 면제받았다. 어린시절의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자신이 하고 싶은것에 대한 굳은 열망이 존재했고 주관이 뚜렷했던 아이였다. 진로를 고민했던 그녀는 처음에는 연구실에서 일하게 되었고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는 여의사를 돕는 일들을 했다. 이제 안 된가고 생각할 때에도 언제나, 어디선지 모르게 한줄기 작은 빛이 비쳐온다. 그 작은 빛을 바라보면 다시 용기가 솟구친다. 그리고 다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힘이 솟구친다.P98 후에 엘리자베스는 의사시험을 준비하고 합격이란 결과를 얻는다.
의과대학시절 만난 매니와 그녀는 결혼을 했다. 처음 두사람의 삶은 가난하고 힘겨웠지만 서로 이겨내고 사랑해갔다. 그리고 바쁜나날들을 보내던 엘리자베스는 아버지를 잃는 슬픔과 임신중에 아이를 잃는 슬픔을 겪었지만 나중에는 예쁜아이를 가지게 된다. 삶에서는 그녀 뜻대로 되가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정생활에서 융합하지 못하였고 매니와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을 돌보고 에이즈에 걸린 환자들까지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의지들은 꺾이지 않았다. 사람들을 돕는 삶을 선택했던 그녀에게 뇌졸증이라는 병마가 찾아들었음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집필을 했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선물해주었다. 뒤돌아보고 삶을 헛되이 보냈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세요. 해온 일을 후회하지 않도록, 또는 다른 삶을 바라지 않도록 살아가세요. 정직하고 충만하게 삶을 살아가세요. 살아가세요.P163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나는 얼마나 그삶에 충실했는가를 돌이켜보았다. 큰 사랑도 아닌 가족의 사랑조차도 나는 미루고 있었고 나에 대한 사랑도 많이 부족했었다. 내 삶에 충실하자고 다짐했던 일들도 자주 잊기 일수였고 삶이 즐겁지 않고 기쁘지 않다고 불만들을 내뱉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사는 것은 정직하고 충실하게 살아내고자 한다면 그 속에서 희망과 기쁨 모두를 발견해낼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죽음과 함께 살아온 엘리자베스의 삶의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내 마음도 따뜻해졌고 내 삶을 더욱 나아질수 있도록 지금 이순간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들었다. 끊임없이 사고하고 생각해내면서 나은 삶을 만들어 갈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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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사냐?” 사람들이 비꼬거나 짜증을 낼 때 흔히들 쓰는 말이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 “정말 왜 살지” 라는 의문이 든다. 그것도 진지하게..... 부모님보다 오래 사는게 효도니까, 자녀들 때문에 산다 등 여러 가지 말들을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은 아니다. 왜냐햐면 그 대답 안에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 존경하는 사람들도 다 중요한 것 당연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인데 주위의 누구 때문에 산다는 말(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은 자신을 버린다는 느낌이어서 싫다. 그럼 나는 왜 살까? 시퍼런 칼날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니며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며 왜 하루하루를 살아갈까? 종교적인 믿음을 가져보라는 소리도 있지만 종교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는 나로서는 그럴 생각도 없다. 그 때 우연히 발견한 책이 “생의 수레바퀴” 이다. 죽음으로 삶의 이유를 배운다. 이때까지 생각해 보지 않은 관점이었다. 삶이란 의문은 많이 들었지만 죽음이란 의문은 자주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죽음을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해방의 출구로 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힘든 삶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편안한 새로운 삶으로 이르는 길로 정의한다. “우리가 지구에 보내져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몸은 벗어 버려도 좋아. 우리의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누에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이란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영혼을 해방시켜 걱정과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신의 정원으로 돌아간단다. 아름다운 한 마리의 자유로운 나비처럼 말이야. -암에 걸린 아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위의 이 말처럼 “왜 사느냐”에 대한 적합한 답은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왜 지구로 보내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보내진 목적은 뭔가 배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에에서 벗어나 나비처럼 훨훨 하늘을 날아가기 전에 우리는 지구에서 배움의 절차를 완벽하게 수행해 내야 한다. 그 배움의 절차가 성공리에 이루어지면 죽음, 즉 자유로운 나비가 될 수 있다. 살아가는 하루하루 시간, 시간이 배움의 순간이며, 피부색깔, 연령, 학력에 상관없이 모두가 우리의 스승이다. 얼마나 마음을 열고 수용하느냐는 우리의 자유의지이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고난을 겪는다. 중요한 것도 있지만 무가치해 보이는 것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우리는 선택을 통해 그것을 배운다.” 결국 매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매 시점이 중요하다. 얼마나 아름답고 자유로운 나비가 되느냐는 지구에서 배움이 얼마나 완성적이냐에 달려있으니까! 그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뒤돌아 보고 삻을 헛되이 보냈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세요. 해온 일을 후회하지 않도록 또는 다른 삶을 바라지 않도록 살아가세요. 정직하고 충만하게 삶을 살아가세요. 살아가세요.” 이 책은 뜨거운 책이다. 읽는 동안 자신의 믿음을 실천한 그녀의 인내력과 노력에 놀랐고, 나이에 상관없이 배우려는 그 열정에 한 번도 감탄했다. 자신의 믿음처럼 아픔도 일련의 배움의 과정이라는 자세로 수용해가는 그녀의 삶의 방식은 빠르고 편함에 익숙해져있는 나를 눈 뜨게 해 주었다. 자유의지로 선택한 자신의 삶을 배움의 자세로 살아간다. 좋은 죽음에 이르기 위해..... “기러기는 언제 하늘을 향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누가 그 계절이 왔음을 가르쳐주는 것일까? 우리 인간은 나아갈 때를 어떻게 알까? 철새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분명히 알고 있다.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한 목소리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때임을 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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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수레바퀴는 엘리자베스 퀴브러 로스의 자전글이다. 엘리자베스는 세쌍둥이중 900그램의 미숙아로 가장작고 연약하게 태어났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자녀를 사랑하지만 직업관은 고지식한 편이다. 그는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의 사무실에서 비서를 하라고 말한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의 말에 거부하고 스스로 의사가 될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엘리자베스는 태어날때부터 하늘의 계시를 받은것 같이 아픈 사람들에을 편하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꿈도 그쪽으로 가는 길만을 모색한다. 그녀의 삶은 또다른 슈바이처의 삶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바이처는 상처를 치료하지만 그녀는 사람들 마음의 병까지 어루만지는 그런 치료를한다. 그녀의 꿈인 치료센터를 건립하기까지 많은 이들이 반대를 한다. 그녀의 지인들도 무모한 도전이라고 반대를 하지만 그곳의 주민들은 더욱더 강력하게 반대를 한다. 하지만 오직 환자만을 생각하는 엘리바베스는 그런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헤드 워터스에 치유 센터를 건립한다. 이유를 알수 없는 불로 치유 센터는 불타버렸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삶 속에서 고난을 경험한다. 쓰라린 경험을 하면 할수록 거기에서 더 배우고 성장한다." 라는 말로 자신의 고난을 경경만이 강하게 만든다는 신념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내곁에도 장기간 아픈 가족이 있다. 그래서 아픈이들의 고통을 곁에서 봐왔기때문에 어느순간이 되면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어버린다.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수 없어지고 의무만이 남는건 가족의 일원으로 더욱 고통이 된다. 우리나라 정서상 남에게 가족을 맡기기는 힘들다 그런데 생의 수레바퀴를 읽고난 지금은 그런 생각을 갖는게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이 중어들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이들을 만날수 있는길을 보호자란 이름으로 막는건 다시 생각해봐야할 문제인것 같다. 엘리자베스이 노력이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퍼져 고통받는이들 줄어들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 그 힘든길을 행복한 마음으로 가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생을 읽고 죽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삶을 가꾸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장영희 교수님의 마지막 추천서에 "살아라" 그녀의 그말은 아마도 자신을 두고 한말이 아닐까 장영희님또한 암으로 고통받으면서도 행복한 마음으로 살다가신 분이다. 두사람의 인생을 보고난뒤 가족의 소중함과 생명의 소중함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