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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9 : 출사표를 올리다>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7) [My Review MMCCCXXXIV / 휴머니스트 5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예순세 번째 리뷰는 이릉대전에서 크게 패배한 유비는 제갈량에게 뒷일을 맡기고, 제갈량은 유비에게 충심을 보이며 출사표를 내미는 <이희재 삼국지 9>이다. 관우가 죽자 유비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사실 곧바로 동오의 손권을 상대로 복수전을 펼친 것은 아니다. 한중왕에 오른 유비는 아직 조조를 상대해야 하는 바쁜 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조조가 죽고 조비가 헌제에게 선양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유비도 '촉한의 황제'에 즉위한 뒤에야 비로소 '복수전'을 떠날 차비를 마친다. 물론 제갈량은 동오는 동맹으로 손을 잡아야 할 대상이지, 사사로운 감정으로 복수를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며 만류하지만, 유비는 때마침 찾아온 장비의 통곡 소리에 관우의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허나 얼마 되지 않아 또 하나의 비극이 펼쳐진다. 관우형님의 복수를 하려 군사를 정비하던 장비가 부하 장수의 배신으로 인해 전투도 치루기 전에 비명횡사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유비는 이 소식을 듣고 졸도를 할 지경이었지만,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만은 꺾지 않았다. 그렇게 삼국지 3대 대전 가운데 하나인 '이릉대전'이 펼쳐진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이희재 삼국지 9> 관점 포인트 : 소설 삼국지에서는 '이릉대전'에서 초반에 유비군이 연전연승을 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그 승리의 주역이 죽은 관우와 장비의 아들들인 '관흥과 장포'가 대활약을 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릉대전이 한창일 때 관우의 혼령이 이끌어 자신을 죽인 오나라 장수 반장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관흥과 마주치게 한 뒤에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게 하고, 파죽지세로 밀고 오는 유비군을 달래기 위해 장비의 목을 가지고 항복했던 범강과 장달을 유비에게 보내며 화친을 꾀하지만, 유비는 분노를 참지 않고 두 사람을 장포에게 맡기자 장포 역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하여 두 사람의 목을 베어 장비의 영전에 제물로 바친다. 이때 마량이 유비에게 복수는 이쯤에서 멈추고 동오와 손을 잡고 함께 조비를 치는 것이 합당하다고 건의했으나 유비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결국 손권을 멸하는 것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에 손권은 육손을 총사령관으로 내세워 유비의 100만 대군을 막으라고 명하자, 육손은 '이릉'을 목전에 두고 성안에 틀어박힌 채 수비만 할 뿐 도통 나가서 싸우려 들지 않는다. 때는 한여름으로 뙤약볕을 막지 못하는 평지에 진채를 세웠는데 육손이 맞서 싸우지를 않자 더위와 갈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유비는 진채를 길게 이어진 강가 숲속으로 옮겨 해결하고자 했는데, 육손이 이때를 노려 '화공' 작전을 펼치며 유비의 '장사진'을 단박에 무너뜨리고 만다. 이에 깜짝 놀란 유비는 진채에 불이 옮겨 붙고 육손의 대군을 막지 못하고 괴멸되자 겨우 몸만 빼내어 '백제성'으로 숨어들고, 때마침 달려온 제갈량에게 유언을 남기며 숨을 거둔다. 하지만 이 역시 정사 삼국지에서는 완전 다른 내용으로 전한다. 애초에 유비의 100만 대군은 많아야 10만이 채 안 되는 8만이라 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육손군도 최소 6만에서 많게는 10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비가 초반에 파죽지세로 손권군을 밀어붙이며 멸망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은 거짓이다. 그리고 관흥과 장포도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 심지어 황충조차 이 전쟁에 참전한 기록이 없다고 할 정도니, 소설 삼국지의 내용은 시작부터 끝까지 '허구적 창작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릉대전 자체가 허구라는 얘기는 아니다. 유비의 공격에 손권은 초반에 허둥거리다 육손을 내세워 '장기전'으로 유비군을 지치게 만들고 난 뒤에 빈틈을 노려 대반격을 가해서 유비를 패배시키고 비통한 마음에 불귀의 객이 되게 만든 사실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나관중의 스펙타클한 서사는 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관도대전'과 '적벽대전'도 모두 나관중의 손을 거쳐 화려하게 둔갑(?)한 작품인 것은 마찬가지다. 실제 역사서에는 모두 짤막한 문장으로 나열되어 있을 뿐인데 말이다. 그 담백한 역사서술을 화려하고 생생한 묘사와 인물 간의 심리전을 극적인 서사로 펼쳐냈으니 정녕 천재 작가라고 해도 물색 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바로 그 재미로 소설 삼국지를 읽는 것이고 말이다. 한편, 유비가 세상을 뜨면서 제갈량에게 중임을 맡기니 촉한은 전쟁을 멈추고 동오와 손을 잡고 조비를 상대하려 한다. 왜냐면 이릉대전으로 촉한과 동오가 모두 지쳐있는 빈틈을 노려 조비가 다섯 갈래로 촉한을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제갈량은 조운과 마초, 위연 등을 몰래 보내 네 갈래 공격은 막아내지만, 조비의 부추김을 받아 동오의 손권이 쳐들어오는 길목은 아직 막지 못했다. 이에 제갈량은 등지를 보내 손권과 다시 손을 잡고 조비를 공략하자고 약조를 받아낸다. 이렇게 한 차례 조비의 공격을 막아낸 제갈량은 느닷없이 '남만 정벌'을 공표한다.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풀어주길 반복하여 정벌에 성공하자, 이번에는 대대적인 조비 공략을 위해서 '출사표'를 내놓았다. 무려 여섯 번이나 말이다. 나가는 글 : 오늘날에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서 '단단한 각오'를 내비칠 때 '출사표를 던지다'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 많이 퇴색된 표현이 되고 말았다. 왜냐면 제갈량이 여섯 번이나 출정했다고 모두 실패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제갈량이 쓴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다고 전하지만, 나는 한 번도 눈물이 난 적이 없다. 아마도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제갈량이 보잘 것 없던 처지일 때 유비가 몸소 세 번이나 찾아와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유비의 꿈'을 충직한 신하인 제갈량 자신이 '대신' 이루겠다는 다짐이 주요 골자이긴 하지만, 그 내용 말고도 차고 넘치는 '한자말'로 구구절절 읊조리고 있기에 뭘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나불거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용이 '격식'을 따지고 '품위'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크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기에 눈물 따위를 흘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제갈량의 첫 출정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아직 사마의가 조비의 의심을 사서 군권을 갖지 못한 상태였고, 제갈량보다 한참 모자란 조진 장군이 총대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제갈량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허나 병참보급을 위해서 필히 막아내야 할 '가정'이란 요충지를 마속이 시건방을 떨다가 빼앗겨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자 제갈량은 모든 병력이 굶어죽기 전에 퇴각을 해야 하는 불운을 겪는다. 이렇게 1차 출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보급 문제'는 제갈량을 끝까지 발목 잡게 되고, 결국 출정할 때마다 번번히 실패하는 꼴을 면치 못하게 된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바로 '읍참마속'인데, 사실은 마속을 죽이긴 하지만 목을 참해서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둬두고 천천히 죽어가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마속이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가솔을 보살펴 달라고 간청하였고, 마속을 아들처럼 여겼던 제갈량도 이 간청을 받아들여 마속의 아들들을 잘 보살폈다고 한다. 다만 막속이 저지른 죄에 대한 감형은 없었다. 심지어 제갈량 스스로도 패배한 과실을 엄중히 물어서 '승상'직을 내려놓고 '우장군'으로 지위를 격하시켜 패배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출정 당시에 다른 장수들은 마속이 실전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가정'을 지키는데 적임이 아니라고 충고했지만, 제갈량이 이를 묵살하고 마속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며 중임을 맡겼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제갈량이 아들처럼 여긴 마속을 '자신의 후임자'로 단단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큰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비리'를 일삼은 셈이다. 이렇게 보면 제갈량도 사리사욕을 챙기는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도 있지만, 제갈량이 '내정'에서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것에 반해서 '실전'에서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제갈량의 업적은 '정사 삼국지'에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실 '박망파 전투'를 비롯해서 '적벽대전', '한중공략' 등등 제갈량이 참전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박망파 전투는 유비의 작품이며, 심지어 삼고초려를 하기 전에 벌어진 전투였다. 그러니 제갈량이 활약할 수조차 없는 전투였고, 적벽대전의 성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노숙과 주유의 공이 크다. 노숙은 손권과 유비의 동맹을 이끌었던 주인공이고, 주유는 조조와의 결전에서 승리를 이끈 주인공이었다. 소설 삼국지에서 보여준 제갈량의 활약은 모두 소설 속의 허구적 묘사일 뿐이다. 그리고 유비가 서촉을 차지하고 조조와 '한중공략'에 맞서 싸울 때에 제갈량은 '성도'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정작 조조와 대면하고 맞서 싸운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유비였단다. 역사상 조조와 제갈량이 서로 대면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제갈량은 한 것이 무엇인가? 촉한의 내정을 빠른 시일내에 초과달성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반면에 전쟁에서는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했고, 큰 활약을 한 적도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소설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천재적인 전략'을 펼치며 모든 전장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으며 무조건 승리로 이끌어내고, 심지어 천변의 재주까지 가지고 있어서 '하늘의 운수'에 통달하고 '동남풍'까지 맘대로 부리는 귀재로 묘사하는데, 이는 나관중의 '허구적 장치'로 소설을 읽는 재미를 극대화하는데 탁월함을 나타낸 것일 뿐, 실제 제갈량의 재주는 아니라고 한다. 그렇기에 소설 삼국지를 '역사'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앞서도 강조했다. 그럼 소설 삼국지를 왜 읽어야만 하는 걸까? 다름 아닌 수많은 영웅들의 다채로운 인생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남을 속이고 이득을 챙기는 모략'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이런 '모략적 처세술'에 어릴 적부터 노출되어 있어서 남을 속이고 이득을 챙기는 것도 훌륭한 지혜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그런 지혜도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 할 지혜임에는 틀림 없다. 그렇지만 '절박한 생존'을 다투는 일이 없을 때에는 그런 저급한 지혜를 사용해서는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삼국지>는 온통 전쟁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에 매 순간이 '절박한 생존'을 요구하는 혼란한 시대를 담았다. 그렇기에 그런 저급한 지혜마저 엄청 화려하고 멋지게 포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 평화로운 시대에는 어떤 지혜를 써야 할까? 그래서 우리가 소설 삼국지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바로 '유비'다. 그는 절박한 순간에도 저급한 지혜로 위기를 모면하기보다는 '신의'와 '인'을 내세우며 기다릴 줄 아는 처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역사속 유비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그도 당시 다른 영웅과 마찬가지로 '저급한 처세술'을 사용하며 촉한의 황제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나관중이 묘사한 유비는 다르다. 소설 속의 유비는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 결국 '올바름'으로 '그름'을 이기는 진정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모습과는 많이 왜곡된 모습이지만, 차라리 이렇게 왜곡된 유비의 모습을 통해 배우는 지혜가 그나마 낫기 때문이다. 이제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10권이 남았다. 기대해주신다면 감사하겠다. 다음에 계속. #리뷰 #에세이 #이희재삼국지 #휴머니스트 #이릉대전 #출사표 #읽어야할이유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