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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춘춘시대 전국을 주유하면서 온갖 박해와 비웃음을 사면서도 그 행보를 멈추지 않는 것은 다름아닌 주나라때의 올바른 정치를 재현코져, 특히 禮를 근본으로 하는 정치를 설파하고자 하였다. 물론 당시의 세인들은 이러한 공자의 시도를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폄하 하였다. 결국 맹자에 이어 한나라때에 이르러 공자의 생각은 빛을 보게 되었다. 공자가 주창한 예에는 음악 또한 포함되어있다. 특히 조선의 성군 세종의 경우 궁중음악인 아악을 새로이 정립하면서 중국의 음악이 아닌 조선의 음악을 갖고저 부단히 노력을 하였다. 이는 음악이란 본디 특정나라 특정민족의 정신을 반영하여야 제대로 된 음악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예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사고라는 형식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음악은 문자보다 더 먼저 이러한 사고와 감정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그 역활을 해나가고 있다. 우리가 대중가요을 들어면서 음률과 그 노랫말을 무심코 흘려듣는것 같지만 그 노래가 전달 할려고 하는 감정들은 우리의 뇌리속에 자리잡게 된다. 달리 표현해서 노래는 바로 인간들이 삶을 대변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소리꽃>은 한 歌人의 삶을 조명한 소설이다. 300여년만에 한적한 사찰의 석탑 밑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된 항아리와 그리고 가인의 일생을 요약한 목판을 통해서 진정한 자신만의 노래 그리고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노래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속 화자인 역사학자의 시각은 바로 작가의 시각이고 작가는 이러한 시선을 통해서 주인공 솔이의 삶을 그리고 있다. 녹색손님의 권유로 구곡산에서 가루라와 경주를 하고 음악의 신이 현현한 가릉빈가에게 인정받아 항아리를 손에 넣게 된지만 솔이의 고난의 역경은 바로 항아리에 소리를 담아야 하는 운명으로 결부된다. 그것도 여태까지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노래만이 항아리에 담을 수 밖에 없다는 숙명으로 다가 온 것이다. 조선 중기 인조반정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소설은 그동안 성리학에 철저히 길들여진 음율 다름아닌 조선의 것이 아닌 중국의 것을 모방한 음악일색이었다. 또한 이 음악은 바로 가진자 양반들의 사상을 대변할 뿐 절대다수인 대중의 삶은 그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솔이 역시 저절로 있었도 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노래에는 타고난 가인이었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노래 역시 전시대에 정형화된 노래였을 뿐이었다.
판소리가 일반 평민문학을 대변하는 것은 다름아닌 일반민중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배계층의 고고한 기상이나 절개와는 다른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노래형식으로 달리 표현했을 뿐 판소리 자체가 사람들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 내용은 구구절절히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것이다. 솔이가 새로운 노래를 찾아 길을 나서 겪게 되는 과정이 바로 교방한켠과 같은 작고 죽어 있는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닌 현실 그 자체 살아있는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한다. 몰락한 양반으로 저자거리에서 이야기를 팔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전기수 대우, 반정성공으로 전도양양한 앞길이 보장되었지만 모든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진경을 그리고져 노력한 고강, 불우한 출생을 겪고 어머니를 찾아서 남사당패에 들어간 어름사니 도일, 소작농으로 어렵게 자신의 논을 장만하였으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최개동 통해서 사장된 음악이 아닌 일반대중속에 살아있는 삶을 그대로 표현한 노래를 찾아가는 여정은 눈물겨울 정도로 고난이 연속이다. 마치 평민문학인 판소리가 탄생하기 까지 그 얼마나 많은 질시와 힘겨움이 있었겠나 하는 추측을 반증하기로 하듯이... 전기수 대우에게서 전체적인 노래의 스토리 전개과정, 어름사리 도일의 몸짓에서 느리고 빠른 장단, 소작농 개동의 삶을 노래한 무녀 선이네의 간장을 녹이는 애틋함, 고강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을 바로 바라보는 눈에서 마침내 솔이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파격적인 새로운 노래를 완성하게 된다. 솔이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항아리는 바로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살 수 없듯이 노래 역시 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서양의 클래식과 팝에 익숙한 지금의 우리에게 새삼 우리의 가락 우리의 노래 판소리는 너무나 멀리 비현실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명절때처럼 특별한 날이 아니면 듣기조차 힘든 노래가 판소리이다. 흥부가, 심청가등 대표적인 판소리를 우리는 단지 권선징악이라는 유교적인 교훈이 담긴 계도적인 형태로 인식하고 있지만 판소리에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일반 대중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어떠한 새련미나 포장도 없이 그냥 그대로 사람들이 느꼈던 희노애락이 담겨져 있고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있다. 소설속 승종이 솔이의 노래를 듣고 노래가 너무 길어서 어찌 이해가 되겠냐고 반문했듯이 판소리는 이러한 삶을 담고 있기 때문에 길 수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판소리보다 진한 감동과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 만큼 판소리는 노래가 아닌 일반 대중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는 식민통치기간 내내 판소리를 폄하하고 왜곡했던 것이다. 그 만큼 판소리를 노래가 아닌 대중의 사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판소리를 비롯한 우리 고유의 노래는 관심밖의 세상에 자리잡고 있다.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우리 고유 의식 박탈은 음악이라는 장르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한번 쯤은 우리 고유 노래를 음미해 볼 여유를 가져야 할 때는 아닌가 싶다. <소리꽃>는 그야말로 노래가 꽃으로 승화한 소설이다. 동살, 돋을볕, 씨아, 생청스러운, 기직자리는 노래처럼 그리고 화사한 봄날에 예쁘게 활짝핀 꽃처럼 아름답지만 여태까지 제대로 모르고 있는 우리말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솔이가 항아리에 노래를 담듯이 작가는 소설속에 우리의 혼을 담고 있다. 마치 우리 소리의 한을 작가는 독자들 마음속에 자리한 항아리에 담고 싶어 하는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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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꽃 제목에서 말해주듯 소리를향한 간절함을 갖은 한 여인의 일생을 이야기한다. 내가 사는곳은 소리의 고향인 남원이다. 어릴때부터 주변에서 많이 듣는게 창이다. 어릴때는 그 소리가 너무도 듣기 싫었다. 텔레비전에서 화려한 율동과 신나는 음악에 맞춰 나오는 노래에 흠뻑 빠져살았다. 그런데 부모님은 전축에 조상현명창이나 박동선 명창의 춘향가 특히 사랑가와 숙대머리를 많이 들으셨다. 더구나 춘향의 고장이다보니 창이나 국악그리고 농악 좌도농악은 정말 원도 한도 없이 듣게되었다. 소리명창도 있지만 듣는 명창도 있다. 어릴때는 그렇게 싫턴 창이 언제부턴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듣다보면 이건 아니라는게 느껴진다.
소리꽃을 읽다보니 옛날명창중 이화중선이 떠오른다. 그녀의 고향은 남원이 아니지만 시집이 남원이다. 그녀는 결혼후에 창을 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알고있다. 그시대에 소리를 한다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그녀는 명창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의 득음을한다. 솔이또한 최종적으로 그녀가 도착할 곳이 득음의 경지가 아닐까. 솔리는 노래를 부르기를 원하지만 솔이의 엄마는 자신의 삶을 후회하면서 솔이가 힘든길을 가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를 말리지만 그 피가 어디로 가겠는가 솔이는 소리를 담는 신기한 항아리를 얻게되고 자신의 그렇게 바라던 노래를 원없이 부르게 되지만 항아리는 쉽게 솔이에게 원하는걸 취하게 만들지 않는다. 솔이는 노래를위해 원했던 항아리때문에 힘들게되고 그녀는항아리에게 벗어나기위해 여행을 떠나게 되고 여행길에 많은 인연을 만든다. 그렇게 떠난 여행길에 소리를통한 깨달음을 얻게된다.
나는 소리꽃에서 이땅에 득음을 향에 노력했던 많은 명창들의 모습을 만나게되었다. 폭포에서 목에서 피를토할때까지 소리를 내는 그들의 노력과 다른삶은 존재하는지 모른채 오직 소리하나만 생각하는 일편단심을 말이다.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우리의 창의 맛을 모른다. 클래식이 처음 들을때 힘들듯이 창또한 그렇다. 자꾸 들어야 귀가 열린다. 옛날에는 방송에서 일주일에 한번씩은 방송을했었는데 요즘은 방송에서도 무관심이다. 우리가 우리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라지게 될수도 있다. 세계어느 문화못지 않는 위대한 우리의 노래를 자주 접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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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만 보아도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은 나라이기에 제일 먼저 저 단어가 떠오른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지금은 IT 강대국이라는 불리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과거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예술성에서 두드러지는 분야는 음악 중에서도 ‘판소리’가 아닐까? 라는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판소리’나 ‘창’은 우리 민족의 고유성을 충분히 표현하고 나타내어 준다. 힘들었던 시기에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껴안으며 ‘음악’으로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노래’로 승화시키며 ‘판소리’와 ‘창’을 통해서 하나 됨을 담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노래만이 아니라 춤으로도 표현을 한 ‘탈춤’이나 전통 악기로 우리나라의 독특한 전통을 살리며 많은 사람이 ‘우리의 것’이라고 불릴만한 전통을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소리’하면 생각나는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나게 되었다. 「소리꽃」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책 제목처럼 우리나라의 전통을 일깨워주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내용은 주인공 ‘솔이’는 어린 시절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 소녀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솔이’의 꿈은 원 없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노래를 좋아했고 사랑했던 소녀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솔이’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매를 들면서까지 야단을 쳤던 것이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딸이 걷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못 부르게 했던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솔이’는 노래가 부르고 싶었고 길을 따라가던 중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길을 따라 걸으면서 ‘항아리’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항아리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게 하는 신기한 항아리였다. 노래가 부르고 싶었던 ‘솔이’에게는 보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항아리는 ‘솔이’에게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게 해주는 대신 ‘항아리’인 자신을 얻기 위해서는 소중한 것을 잃을지도, 고통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조건을 내건다. ‘솔이’는 ‘항아리’가 꼭 필요했기에 그것을 받아들이지만 ‘항아리’는 점점 요구하는 게 많아졌고 그로 말미암아 ‘솔이’는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항아리’를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떠돌던 중에 스님을 만나게 되고 ‘염불’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솔이’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해주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을 비롯하여 불교적 가르침, 그리고 깨달음과 얻는 것과 잃는 것 등을 생각나게 해준 책이었다. 이 책은 ‘우리 소리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새남소리」, 「민꽃소리」에 이어서 마지막 작품인 「소리꽃」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예술적 소재로 그 색채가 선명하고 짙은 작품이었다. 어느 가인(歌人)이 생을 바치고 득음을 통한 자신의 삶과 인생의 여정을 그리고 있으며 여정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의 애환과 한(恨)을 담고 있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항아리’를 통해서 판타지적인 요소로 재미를 더해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서편제》와 《천년학》이 생각이 났다. 스토리는 이 소설과 연관성은 없지만 ‘소리꾼’에 대한 소재와 그 시대의 애환과 한(恨)은 닮았기에 ‘판소리’에 대한 깊은 울림을 생각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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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이름 지어진 우리의 노래는 한 나라의 전통음악이 그렇듯, 다른 나라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분지어지는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음악과 미술, 그리고 춤등의 문화 중 우리의 역사를 흐르는 전통의 그것들이 가지는 그 다른 점을 흔히 "한"이라는 한글자의 말로 설명하곤 한다. 전통문화에는 반드시 그 민족만의 고유성을 관통하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공감대가 존재한다. 애잔함이나 슬픔등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로는 절대 표현하고 규정지을 수 없을 것 같은 한 글자. "한"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를 흐르는 전통의 힘이기도 하다.
![]() 원 없이 노래하고, 욕심없이 얻으라. <소리꽃>은 어린시절부터 노래 부르기를 끝없이 원했던 한 소녀의 일생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솔이라는 이름의 이 소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노래를 중얼거리고 언제나 자유롭게 노래 부르기를 꿈꾸는, 그저 작은 꿈을 가진 소녀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의 어미는 스스로가 노래를 원해 일생을 그늘지게 만들었음을 자책하며 자신의 딸에게는 그 운명의 그늘이 내려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솔이가 노래하는 것을 금하려 한다. 그저 노래가 하고 싶었던 솔이는 노래를 원없이 부르리라는 일념으로 꿈인지 환상인지조차 알 수 없는 길을 걸어 노래를 부르되 다른 이에게는 들리지 않게 하는 신기한 항아리를 얻는다. 항아리는 솔이의 노래를 담고, 솔이는 소리 내지 않고, 방해받지도 않은 채 원없이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댓가없는 가치가 어디있겠는가. 솔이가 노래를 부르는 자유를 얻은 대신 항아리는 말한다. 자신은 까다로울 뿐 아니라, 자신을 얻기 위해서는 고통을 겪어야 하며 소중한 것들을 잃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어린 소녀는 그저 노래를 원할 뿐이다. 그리고 소녀의 일생은 이제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항아리의 의지에 의해 조금씩 변해간다.
판타지와 현실 그 중간 사이. <소리꽃>에는 동화나 전설쯤에나 등장할 법한 노래하는 항아리가 나온다. 항아리는 솔이의 노래를 담고 후에 그 노래를 풀어놓는다. 처음에는 그저 솔이의 노래를 담고 풀기만 하던 항아리는 어느 순간부터 솔이에게 사람의 노래, 살아가는 삶의 노래를 요구하기 시작하고 솔이는 항아리의 파업(?)선언이 던지는 압박을 이기지 못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주어진 안락함을 뒤로 한채 떠돌리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떠도는 인생의 길목에서 스님의 염불소리에 마음의 고요가 있음을, 풍요로운 이야기 속에 많은 사람들의 인생 또한 담겨 있음을 경험하며 스스로의 인생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한다. 1,2편 2권으로 만들어진 <소리꽃>의 첫번째 이야기는 솔이가 세번째 거처를 향해 가고 그곳에서 고매한 성품으로 그림이라는 한 분야의 예술을 깨달음의 경지로 이끈 고강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하는 것으로 한숨을 쉬어간다. 솔이의 인생은 이제 반절을 지나온 것이다. 앞으로 어떤 삶을 또 맞딱드리게 될지 아직 알 수는 없으나 그녀는 여전히 노래를 찾아 떠나는 떠도는 인생을 진행중에 있으며 수 없이 많은 고뇌와 번민, 그리고 육체적 고통과 힘겨움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한이라는 한글자의 단어에 함축된 대한민국의 정서를 노래속에 녹여내기 위해 일생을 바치게 될 솔이의 여정이 여전히 나는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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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이 들어간 표지인지라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붉은 색 꽃 그림이 마치 종이에 베어있는듯 해서 뭐랄까, 상당히 여성스러운 느낌이랄까? 뭐 아무튼 첫느낌은 그랬다. 이 작품의 서두는 최인호의 <상도>나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처럼 현재에서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30년간 비문에 적힌 금석문을 연구해 온 학자 '나'가 화자로 등장하는데 얘기는 이 학자가 '솔' 이라는 가인의 행적을 적은 글을 찾아냄으로써 시작된다. 시작은 판타지 분위기로 간다. 그러니까 그렇게 발굴한 솔이의 목판에 새겨진 굴자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이 화자에게만 보인다는 설정인 것이다. 그리고 얘기는 이 화자를 통해 마치 화자가 감상하는 것처럼 이 인칭으로 진행된다. <솔이 너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너의 일생을 내게 생생히 보여주었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노래 좋아하는 솔이가 노래하는 항아리를 얻는 과정을 그리는 데 그또한 환타지이다. 우리나라의 바리데기 설화나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처럼 무시무시한 어떤 공간에 들어간 솔이가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괴물들의 테스트를 받으며 바람을 달성한달까? 이때까지만 해도 오, 조금 특이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나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노래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솔이라는 여인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고 풀롯은 대개 재미로써 실패할 확률이 매우 적은 모험 플롯이다. 그러니까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주인공이 온갖 역경을 헤쳐나가며 길바닥 위를 굴러다닌다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풀롯은 길바닥 위를 굴러다니는 과정에서 무궁무진한 에피소드를 쏟아낼 수 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재미없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재미가 없다. 그런 면에서 모험 플롯을 가진 소설치고는 다소 유니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엄청나게 지루하니까. 과거 언제인가 나이 지긋하신 작가분께서 사람들은 왜 그리 소설의 이야기에만 관심을 두는가, 라는 식의 글을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분의 의견이 당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설에서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다면 대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런 분들의 작품을 읽어보면 대체로 일장연설로 지면을 채우기가 일쑤인데 그 일장연설의 가치 또한 그다지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마치 세상 돌아가는데 문외한인 선생님께서 자신만이 아는 삶의 철학이라고 생각하여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미 모든 학생이 다 알고 있는 뭐 그런 고리타분한 상황과 비슷하달까? 이 작품도 이야기가 없다. 있긴 있는데 상당히 지지부진하다.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냐면 환타지적 요소를 서사에 넣어본적이 없는 분이 탐탁지 않게 그것을 사용하여 작품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붕 떠있는 것 같은 느낌하며, 본래 일장연설로 지진부진하게 이야기를 정체시키는 타입이신데 어찌어찌 그래도 이야기를 꾸려갈까해보나 그것이 잘 안되어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든다.
가장 큰 문제는 문체에 있다. 묘사란 독자가 공감할 수 있을 때 흡인력을 발휘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독자가 문장을 읽었을 때 뜬구름 잡듯이 허공만 휘젓게 되는 묘사는 억지스럽고 치장만 과해 허세를 부린듯한 문장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데 이 작품이 그렇다. 이 작품은 그 정도를 넘어서 한글임에도 전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문장도 적지 않다.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다거나 일반인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뭔가 고급스러운 문장이라고 생각한다면야 할 말 없지만 나는 그런 부류가 아니라 솔직히 좀 짜증이 났다. 세련된 문장은 감각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 독자의 가슴에 와 닫는 것이지, 냅다 몌별이니, 모야무지니, 사전을 찾아보면 뜻은 나오대, 좀체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의 집합소처럼 문장을 꾸며서야 이거 원, 당췌 몰입이 되겠는가 말이다. 한글 단어 공부하자고 소설을 읽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새로운 단어로 신선한 문장을 보여주는 맛도 좋은 장점이 있으나 뭐든, 도가 지나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나는 오히려 그 난해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문장을 꾸미는데 소용된 시간으로 이야기의 완급을 꾸려나가는데 더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문장임에도 긴장이 늘어지지 않는 이야기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면 그또한 다른 시각에서 판단이 될 수 있을 텐데 정작 주인공이여야 할 이야기는 축, 늘어진 채로 질질 끌려가다서다 한다. 심지어 여간해서는 긴장이 풀어지기 힘든 환타지적 장면에서조차 축 늘어진다. 그러니까 같은 얘기를 해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 재미없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작품의 이야기들이 후자에 속한다. 300쪽의 페이지가 900쪽처럼 느껴지는 1권에 이어 2권에 들어가야하는 심정이 다소 깝깝하기는 하나, 간혹 2권에서부터 달려주는 작품도 있으니 다소나마 기대감을 안고 들어가봐야겠다. 하, 그러나 이 분의 문체와 이야기를 진행 시키는 방식으로 봐서는...딱히...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