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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떠날 너에게 런던을 속삭여줄게.> 굉장히 좋은 제목이고, 그런 제목과 잘 어울리는 표지 디자인이고 이들과는 달리 별 볼일 없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이게 여행기야, 이야기 책이야, 싶은 책을 쓰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그건 작가의 생각일 뿐이다. 작가의 생각과 다른 독자인 나는 이 책을 읽고 어떻게 느꼈냐면 정신없는 걸토크 매거진 같다고 생각했다. 좋아. 이제 편을 가르자. 작가가 의도한대로 여행기인지 이야기 책인지 모르겠었기 때문에 좋았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은 전부 절루 가고, 이게 뭐야?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은 전부 일루 오라. 한 가지 분명한 건, 절루 가면 작가의 사인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와봐야 욕 밖에 먹을 게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오란다고 진짜 오니?
내 의견을 덧붙이자면 앞서 던져놓은 걸토크라는 부분을 좀 명확히 해야겠다. 내가 말하는 걸토크란 게 이런거지. 시작은 분명, 어떤 목적과 중심이 있는 주제였다. 그러나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잘 생긴 남자가 지나가니까 그 남자의 외모를 두고 각종 탤런트와 비교하더니 이윽고 그가 입은 브랜드로 논평이 넘어가고 다시 우리나라 젊은 남성의 소비형태에 대해 각자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는 거다. 적절한 타이밍에 맞아맞아, 라고 추임새를 넣어줌으로써 서로가 돈독한 친구임을 즉각적으로 확인하면서도 이제 막 나온 콜라를 바라보고는 웨이터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저는 다이어트 콕을 시켰는데요? 그러자 웨이터는 그럼 반만 따라 드세요, 라는 현명한 답변을 남기고 돌아서자 항의를 할 생각으로 발끈하던 이들은 막, 카페에 들어 온 소지섭을 보고는 거북이처럼 목을 납작 숙이고 마치 안보는 척 해가면서 얘, 얘, 소지섭이다, 로 대화가 바뀌는 것이다. 만약, 내 여자친구가 드러운 탬즈강을 보고는 온갖 멋진 상상과 생각과 연상되는 물체들을 나열해가며 달려라 하니, 혹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되어간다면, 졸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들어줬으리라. 더 솔직히 말하자면 참을 때까지 참아보고 당장 닥치지 못해! 라고 까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돌지 않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하겠지.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까지 그래야 한다면 이건 좀 다른 문제다. 게다가 이 책에는 "값"이라는 코너가 있으니 말하자면 컬토크를 사서 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만약 이랬으면 달랐다. 이를테면, 이 책에 나온 소제목대로 런던탑이라든가, 웨스터민스터 사원이라든가를 중심에 두고 그에 관한 역사적 사실, 혹은 문학적인 부분을 다루었다면 달랐을 거란 얘기이다. 그러니까 경회루를 보고 경회루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애기하는 건 아주 훌륭한 기억 학습법이 된다는 얘기이나 단순히 그렇게만 하면 역사를 싫어하는 사람은 지루하겠지. 그러니까 그걸 전달하는 이가 얼마나 재미있게 전달하는 냐가 가치의 관건이 된다고나 할까? 같은 얘기도 누가 어떻게 얘기하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지듯이 말이다. 가령, 세인트 앤드류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면 <브레이브하트>의 주인공이자, 그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리엄 윌레스가 환생하여 전투를 벌이는 장면까지도 상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대영박물관에 그 유물이 전시되어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수메르 문명으로 날아가서 메소포타미아 평원 가르고 간간히 늑대와 춤도 춰가면서 길가메시와 맞짱이라도 뜰 기세로 나가다가 또 미라로 빠지면 대체 난 어쩌라고. 런던을 속삭여 준다매. 돌아도 너무 멀리 돌잖아요. 어차피 관련이 있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냐고? 그렇게 따지면 인류의 문명 중에 관련이 없는 이야기도 있냐고!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거다.
목적이 없어도 이야기의 중심은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은 블로그 포스팅이 아니니까. 혹은 이저도저 아니라 해도 재미라도 있었다면, 그래, 저자의 스타일대로 인용해서 말하자면 그리스의 수사학의 얘기대로 정보를 주거나, 감동을 주거나, 재미를 주어야 한다는 견지에서 보자면,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다는 얘기이다. 정보? 이순신 장군을 뵈러 간 사람에게 이순신 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장군이 지닌 칼의 역사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끝나는 이야기를 과연 정보라고 할 수 있을까?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서 들어 간 카페에서 웨이터가 주야장천 설명해주는 티라미스 케잌이 과연 정보가 되겠느냐 하는 말이다.
이렇게, 편이 갈릴 수 있는 내 생각은 차지하고라도 한 가지 치명적이라 여겨지는 편집의 실수는 바로 사진이었다. 없느니만 못하다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 점은 책을 보면 알 사실. 여행기가 아니기 때문에 사진이 중요한 책이 아니었다고? 그럼 사진을 싣지 말았어야지. 그래도 여행에 대한 약간의 정보는 주고 싶었다고? 그럼 하나를 실어도 제대로 된 걸 실었어야지. 뭐야, 편리한 대로 말하기 위해서 기행문도 아니고 이야기 책도 아니라는 식을 표명한 것인가? 그리고 작가의 문체. 호흡이 좋지 않은 장문은 정보, 혹은 쉬운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용이한 문장이 아니었다. 마치 혼자 만의 상상과 흥취에 빠져 즐기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독자가 공감하기 힘든 문장과 잘 정리된 이야기가 아닌 상태로 많은 지식을 늘어놓으면 현학적이며 가벼워 보이기 십상인 것이다. 단지 작가의 방대한 지식에 감탄하기 위해서 책을 보는 독자는 없으리라. 이런 부류의 책은, 우와, 좋다. 이런 느낌이 들게 하는 게 옳지 않을까? 독자의 머릿속에는 하나도 정리된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러니까 용이하게, 혹은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늘어 놓은 다양한 이야기들은 많이 아시네 그려, 혹은 짜깁기 하시느라 바쁘셨겠구려, 라는 느낌 이상은 들지 않았다. 사진도 볼 게 없고 이야기도 재미없는 상황인 지라 긍정적인 감상을 남기기가 어렵구랴.
내 입장에서 이 결혼은 반댈세, 이며 이 유니크한 시도는 좀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연구되어져야 할 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장소의 선택 또한 유니크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솔직히 이 책에 선택된 장소들은 우리 옆집 고양이조차 알고 있을는지 모른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장소를 주제로 한 여행책은 차고 넘친다. 대중에게 유명한 장소는 아니지만, 정말 좋은 장소들이 많지 않은가. 노련한 여행기란 바로 그런 곳을 중점적으로 다뤄주는 게 더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라고요? 아,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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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런던에 가보지 못했다. 가까운 장래에 갈 예정도 없다. 그런 점에서 오랫동안 책장 한 구석에 묵혀 두었던 이 책 『런던을 속삭여 줄게』는 내게는 꽤 무난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본문을 읽기 전에 늘 먼저 읽어보는 뒷표지와 책날개에 적힌 글에 따르자면, 이 책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여행 에세이도 아니고 실용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여행 안내책자도 아닌 것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내 짐작은 옳았다. 지난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다시 반추하는 감정노동이나 다가오는 여행 계획에 참고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지적인 수고는 이 책이 요구하는 바가 전혀 아니었다. 이 책의 집필에는 여행 중에 느꼈던 감동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한 심미적 동기나 구체적인 여행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실용적 동기와는 전혀 다른 동기가 작용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한 도시의 이름을 빌어 갈망과 호기심과 또 다른 세계와 또 다른 삶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즉, 낯선 도시에서 마주친 풍경에서 찾아내고 떠올리고 불러낸 숱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은 욕망. 나에겐 꿈이 하나 있는데 그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를 쓰는 일이다. 그 꿈이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내가 어려서 『천일야화』의 애호가였다는 것이다. 매일 새로 결혼하고 싶어 하는 왕의 손에 다른 여자들이 죽지 않도록, 페르시아의 용감한 여자인 세에라자드가 밤마다 왕에게 들려주는 환상적인 이야기가 바로 『천일야화』라고 내게 처음 소개해준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잊었어도, 나는 그날 묘하게 달아올랐던 내 뺨의 열기를 선명히 기억한다. 장래의 꿈을 적어오라는 칸에는 꼬박꼬박 “진정한 승부사-세에라자드”라고 써냈고, 그러면 선생님들은 ‘저 애가 장차 뭐가 되려고 저러나?’ 하는 심란한 속마음을 숨기고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좀 학교에 모시고 올래?” (4쪽) 장래의 꿈이 ‘진정한 승부사-세에라자드’였던 어린 유감스럽지만 나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해야 될 것 같다. 그녀가 런던의 주요 명소 여덟 군데를 순례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표정이 거의 없는 여행 안내책자의 공식적인 문장들보다야 훨씬 더 흥미로운 게 분명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녀만의 독특한 표정과 생생한 목소리는 부족해서 좀 실망스러웠다. 물론 이 책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배경과 내용은 아라비아의 기이한 이야기들로 가득한 『천일야화』와는 많이 다르기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점을 십분 고려한다고 해도 그 정도가 좀 지나쳤다. 지면의 대부분이 단순히 그 명소가 어느 책이나 글에 언급되었다고 해서, 또는 그 명소에 어느 인물의 무덤이나 석상이나 또는 유물 따위가 있다고 해서 인용하고 불러낸 무수한 텍스트들과 인명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엘리자베스 1세나 넬슨 제독처럼 그 명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영국 역사상의 위인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유명한 시인, 소설가, 고고학자, 심리학자, 지질학자 등의 이름과 저작도 엄청나게 동원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그녀의 박학다식함에 좀 놀랬을 정도다. 그녀가 이 책을 쓰는 데 영감을 준 책이라면서, 이 책의 말미에 간추려 놓은 백여 권이 넘는 참고도서 리스트는 나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설과 시집뿐만 아니라 평전, 역사학, 고고학, 신화학, 경제학, 생물학, 물리학 등 전방위에 걸쳐 있는 그녀의 방대한 독서량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굽이굽이 엮인 그 무수한 텍스트들과 인명들을 이어주고 있는 가느다란 끈은 언제라도 끊어질 듯 위태위태하게 느껴졌다. 그 가느다란 끈의 중간 중간에서 이따금씩 번뜩이는 재기 발랄한 문장과 유쾌한 개인적 체험담 및 제법 오래 익힌 사유의 힘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이 책 전체는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맥락 없이 주절대는 아주 장황한 수다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자신의 목소리로 한바탕 신나게 떠드는 수다가 아니다 남의 목소리를 빌려서 더듬거리는 지루한 수다. 다음과 같은 문장들에 힘입어 이 책은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러한 문장들의 대부분은 남의 저작에서 인용한 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사유에서 길어낸 것이다. 사람들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글자로 이뤄진 시’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말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설형문자에 대해선 ‘젖은 모래에 찍힌 새의 발자국’ 같다고 한다. 히타이트의 설형문자를 읽는 방법은 소가 쟁기질하듯이 읽는 거라고 한다. 첫 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둘째 둘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째는 다시 첫 줄처럼). 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어려서 엄마에게 처음 붓글씨를 배울 때 큼직한 붓으로 제일 먼저 그려본 게 한자의 부수들이었다. 마음 심(心)이나 손 수(手), 눈 목(目) 같은 글자들에 대해서 엄마는 이것은 마음으로 헤아려야 알 수 있음을 뜻하는 글자이고, 이것은 손으로 더듬어 만져야 알 수 있음을 뜻하는 글자이고, 이것은 열심히 지켜봐야만 알 수 있음을 뜻하는 글자라고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좀 커서 생각해보니 세상 자체가 모두 상형문자일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둔황의 하늘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볼 때 사막이 여성의 에로틱한 엉덩이처럼 부드럽게 보였을 때, 투루판의 모래 바람이 거리의 포도나무를 노랗게 때려대 포도가 모래 자국으로 곰보처럼 되었을 때, 바둑판의 나뭇결에서 어느 해 유충이 뚫었던 구멍을 발견했을 때, 아스팔트 위에 찍힌 장난꾸러기의 발자국 위로 빗물이 떨어지는 것을 봤을 때…… 그럴 때 세상은 사연으로 이뤄진 시이며 상형문자이다. (118쪽) 대영 박물관의 이집트 문명 전시실에서 상형문자를 보고 쓴 이 짤막한 글에 나는 그녀가 인용한 수많은 사람들의 글과 말보다도 더 깊이 공감한다. 이 글에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개인적인 삶에서 길어낸 애틋한 추억도 함께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단편적인 추억으로부터 삶과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하나의 의미 있는 통찰을 끌어낸 그녀의 사유가 아주 정직한 목소리로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더욱 값지다. 어렸을 때부터 ‘진정한 승부사-세에라자드’를 꿈꾸었던 그녀에게는 아마도 문자와 그 문자가 품고 있는 숱한 이야기들에 대해서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깊은 매혹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토록 책 읽기에 탐닉했던 것일 테고, 여행을 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물과 풍경의 모습도 자신의 눈과 손으로 직접 보고 느끼기보다는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들을 먼저 떠올리며 그에 의거해서 그 사물과 풍경의 모습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리라. 런던 여행기를 쓰면서도 그곳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일을 쓰기보다는 그 동안 책에서 읽었던 런던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더 우선적으로, 그리고 더 많이 적어 넣게 된 건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행기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이야기책도 아닌 게 되어버린 이 기묘한 책 『런던을 속삭여 줄게』는, 그래서 ‘절반의 성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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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여행이라면 환장을 하는 사람이며 런던과 그 주변에서 약 5개월을 방황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런던이 뿜어내는 갖은 종류의 숨결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은 런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정혜윤씨가 얼마동안 런던에 머무르며 이 이야기들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좀 더 정혜윤씨 자신의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사람들의 책에서 인용한 이야기들, 굳이 여기가 아니어도 신화 이야기, 역사 이야기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이야기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이야기들로만 채워져 있다. 자기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빈약하다. 이런 식의 글쓰기는 요즘 블로그 세대들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책이란 것은 블로그나 미니홈피와는 조금 달랐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웨스트민스터사원/세인트폴대성당/대영박물관/자연사박물관/트라팔가광장/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런던탑/그리니치천문대. 나는 작가가 왜 런던의 수많은 장소 중에서도 위의 장소들을 독자들에게 '속삭여 주'는 대상으로 삼았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물론 글 중간중간 다른 장소에 대한 몇마디가 덧붙여지기는 하지만 여하튼 위의 장소들이 메인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고 나름 이야기거리가 있는 장소일지는 몰라도 너무 대표적인 장소들이다 보니 여행지를 생각할 때 가슴 두근거리는 떨림을 주는 장소로는 생각되지 않는 곳들이다. 오히려 작가가 곁다리로 끼워넣은 런던의 여러 공원들이나 큐가든 같은 곳들이 오히려 런던을 가게 될 이들이 꼭 가봐야 하는 곳들이 아닐까 . 그리고 런던의 거리와 사람들, 홍차와 스콘, 뮤지컬과 극장, 지하철과 이층버스 등이 가져다 주는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되어 버린 런던은 너무 심심한 런던일 것이다.
앞으로 다른 여행지에 대한 그녀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면, 좀 더 다른 방식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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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매력적인가. 그 도시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런던을, 그것도 내 귀에 속삭여 준다고 한다. 거기에 '언젠가 떠날 나에게' 속삭여 준다고 한다.
언제나 일상이 버겁고, 언제나 여행을 꿈꾸는 나같은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이랸 말이냐. 내가 언젠가 이곳을 떠나, 일상을 벗어나 런던이라는 도시를 밟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솔직히 처음에 책이 출간 됐을 때, 이러한 매력적인 제목에 이끌려 구매를 생각했었다. 그러다 여자처자 여의치 않아 빌려보게 되었는데, 안 사길 잘 했단 생각이 든다.
영국과 런던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거나,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런던에 대한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지식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런 상태에서 읽자니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사원이나 사물, 인물에 대해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고 그 소재를 풀어내기 위해 작가가 인용한 여러 작품들도 접해본 것이 거의 없어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어떤 단어의 뜻을 몰라 사전을 찾았더니 사전의 풀이 중에 모르는 단어가 있고, 또 그 단어를 찾으면 모르는 단어가 다시 등장하는 이런 국어사전식 오류에 빠진 찜찜한 기분이랄까.
게다가 첨부된 사진들은 나를 당혹케 했다. 여행 에세이에서 이런 재생지에 흑백으로 사진을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사이즈도 부적절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제목이 안겨주는 기대를 처음 몇 페이지에서 무너뜨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거기에 작가의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하듯 수많은 작품들의 부분 부분이 인용되었고, 뒤에도 참고 문헌이라고 따로 붙어있을 정도로 이 책에 도움을 준 책들이 많은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그 책들을 작가가 어떻게 소화했고 받아들였는지가 이 책에서 주되게 표현해야 했을 부분 같다. 하지만 글쎄...
런던과 큰 밀접성이 있는지 의아한 인용도 있었고 (물론 적절한 인용도 있었다) 그 인용이 작가의 어떤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지 불분명한 것들도 많다고 느꼈다.
요즘 자꾸 리뷰를 비판적으로 쓰는 것 같다. 그냉 근거없는 내 기대가 컸을 뿐일수도 있는데-
내가 무식해서 받아들일 역량이 안 됐던 것일까. 아무튼 제목에 비해, 기대에 비해 실망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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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PD의 세번째 책을 살까 말까 했다. 그래도 안 가볼테니까 간접체험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10,800원(10%정가할인금액)을 투자했고 시간을 투자했는데... 다음 번 책이 나오더라도 그녀의 명성과 지난 두 권의 영향으로 또 구입을 할 매니아--제자 김PD 덕보고 1:1 미팅이라도 해볼까?^^--로서 더 이상의 혹평은 하지 않겠다.
나 이 구절 학생들에게 써먹을까도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가보기 전까지는 답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행동에 못 옮기겠다. 아니 좀 철면하고 이렇게 마무리할까? 너희들이 그리니치 가서 보면 알려주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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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하도 많이 소개되길래 혹해서 구입했어요. 표지도 맘에 들었고, 여행 서적을 원래 많이 좋아하는지라. 그런데 이럴수가 서점에서도 사실 비닐에 싸여있어서 안은 못봤는데, 여행서적이라 말하는 이런 예쁜 표지 안에 재생지같은 종이에 사진하나 없는 글들만 가득할 줄이야. 원래 재생지 페이퍼백 책들을 좋아라하지만 그래도 여행 서적이라면 사진은 혹은 그림이라도 좀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빌브라이슨처럼 쓰지 못할 거라면 사진이나 그림은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 구성이라면 가격은 왜 이런거지, 싶어요.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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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낮에 마신 커피의 작용 때문에, 혹은 잠깐 자고 일어난 초저녁 잠 때문에, 혹은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아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이때 벨소리는 반드시 '따르르릉'하는 아날로그적인 소리로 울려주어야 하며, 전화기도 이왕이면 옛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을 듯한 엔틱풍이면 좋겠다. 이 시간에 누굴까, 의아하면서도, 마침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참이었으므로, 아주 반갑게 수화기를 집어 든다. "여보세요?" 그리고 전화선을 타고 전해져오는 목소리는, 아, 그녀다! 21세기의 셰에라자드, 정혜윤. 옛날옛날 페르시아에, 매일 밤마다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리하여 많은 여인들의 목숨을 구하는 셰에라자드가 있었다면, 지금 내 곁에는, 불면의 밤으로부터 나를 구해주는 현대판 셰에라자드 정혜윤이 있다. 전화기 너머에서 "내가 이야기 들려줄까?"라며 밤새 내 귓가에 대고 런던을 속삭여 주는 그녀 정혜윤, 그리고 그녀의 책. <언젠가 떠날 너에게 런던을 속삭여 줄게>.
이 책은, 내게 이렇듯 밤 늦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같은 느낌이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잠 못 이루는 나를 구해주려,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벨소리를 울려온 이에게 나는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전화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 많은 이야기들은, 그러니까 이 책은, 나를 불면의 밤에서 해방시켜주지는 못한다. 나는 오히려 그녀가 속삭여 주는 이야기들에 취해, 이 밤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달콤한 불면이다.
이 책을 '여행기'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여행기'가 아닌 탓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여행기'라 함은, 런던의 여러 볼거리를 화려한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그곳의 어디는 어떻더라, 음식은 어떻더라 등을 알려준다거나 하는 여행기, 또는 절로 감성이 풍부해질 듯한 사진에 시처럼 아름다운 짧막한 글귀를 적은 그런 여행기 말이다. 적어도 '내가 흔히 생각하는 여행기'는 그렇다.) 이 책은,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르면 좋을까? 저자의 말 때문인지 역시 '천일야화'가 떠오르는데, 그냥 '이야기책'이라는 이름이 좋겠다. 각자 읽기 나름,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내게 이 책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 어떤 이야기책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이다.
현대의 런던을 살아가는 런더너 중 그 누구도, 정혜윤 그녀처럼 이렇게 많은 런던의 이야기들을 알고 있지는 못할 것 같다. 그녀는 마치 높은 곳에서 런던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숱한 세월을 지내온 한 그루 나무 같다. 그 나무의 잎사귀 하나하나, 그 나무의 그늘 한뼘한뼘, 그 나무의 뿌리 마디마디에는 런던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 나무가 실제로 있다면, 그 나무를 지금까지 살아오게 한 것은 햇빛과 빗물이겠지만, 정혜윤이라는 그 '나무'를 키운 자양분은, 그녀가 읽은 수많은 책들이다. '지독한 독서가 정혜윤'
이 책은, 정혜윤,이라는 이름 앞에 붙은 그 수식어(지독한 독서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은 나와 그녀의 첫만남이기에, 내게 더 큰 놀라움을 안겨다 준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독서 면모를 느끼며, 나는 계속 그 수식어(지독한 독서가!!!)를 떠올렸고, 연신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자면, 런던의 이야기,보다는 그녀의 독서 경력이 내게 더 큰 관심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런던을 속삭여주기 이전에, 그녀에게 런던을 속삭여 준 책은 어떤 책들이 있을까? 나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또다른 수많은 책들의 리스트에 매료당했다. 정혜윤,이라는 '나무'를 키워온 그 '햇빛과 빗물'말이다. 그녀가 자신의 '햇빛과 빗물'을 아낌 없이 내어놓았다. 런던에 대해, 1001일이라도 속삭여 줄 수 있을 그녀의 이야기 중 일부일테지만, 다른 어떤 책에서도, 이만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유니크하게' 런던을 만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야기에 굶주린 이들이라면, 런던의 옛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이라면, 새롭고 특별한 여행기를 원하는 이들이라면, 꼭 정혜윤, 그녀가 속삭여주는 이 런던 이야기를 만나보길. 아직도 전화기 너머에서 그녀가 속삭이는 것 같다. "런던을 들려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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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독히 사랑하는 저자가 도시에 얽힌 모든 이야기를 껴안고 런던 여행을 떠났다. 뉴턴,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의 묘비가 있는 웨스트민스터에서 그들의 삶과 문학을 논하고, ‘화이트 헤븐’의 강자락에서 인생을 논한다. 대영 박물관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앨버트 박물관에서 제인 오스틴과 빅토리아 시대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책은 여행기를 표방하면서도, 문학작품의 순례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여행지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문학 속 문장들과, 삶을 일치시킨다. 독자에게 교훈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딱딱한 고전을 일상의 풍경 앞에 자연스럽게 꺼내 보이는 작가의 내공, 이 책 꼭 읽어보리라 불끈 쥐게 되는 주먹, 이 것이 이 책의 관전포인트이다. 2년 전 정혜윤님의 <침대와 책>을 읽고, 그녀의 독서기에 열광하면서도, ‘과도한 수식어’에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이 책은 전작에 비해 조금 날렵해졌다. 여행이 주는 홀가분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 책을 덮고 나니, 영국을 열 번도 더 다녀온 느낌이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지 않아도, 이런 여행 너무 황홀해. * 끄트머리 생각 * - 작가가 소개한 책 중, 90%는 존재조차 모르는 책이다. 기가 좀 죽는다. - <침대와 책>을 읽으면서는 99%가 모르는 책이었으니, 그래도 나름대로 진전이 있었나 - 나에게 이렇게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반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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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떠날 언젠가는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너에게 내가 가지고 싶었던 그곳의 컨텐츠를 차분하게, 작가 정혜윤은 말해주고 있다.
런던을 그래, 런던! 수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열망의 도시로 자리잡은 그 곳
속삭여줄게 정혜윤 작가는 런던을 꾸밀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알고 느낀 그 곳에 대한 느낌을 친구에게 말해주듯이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행서적이라고 하면 그 곳에 가는 법, 그 곳에서 봐야 할 것, 주변 맛집, 선물로 좋은 것을 설명해놓은 정보 나열식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곳에 문외한 우리에겐 이러한 1차 정보가 많은 도움이 되곤한다. 하지만 그 곳이 아무리 아무리 유명하고 좋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볼 땐 아니고 이게 뭐가 뭔지도 모른다면 그게 정말 나에게 가치가 있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지 유명하다고 해서 사진 한 방, 기념품 한 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정도는 월드와이드웹의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가 그곳에 가고 싶은 열망을 갖는다는 것은 그곳에 있는 어떠한 의미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예를 들어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은 무지 큰 철골구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파리가 풍기는 낭만적인 향기와 에펠탑의 히스토리등이 뒤섞이어 에펠탑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정혜윤 작가는 나에게 런던 곳곳의 의미를 되새겨줬다.
단지 유럽이고 유명하고 제임스 맥어보이가 살아서 런던에 가고 싶었던 나는, 런던에 대한 컨텐츠를 많이 갖고 있지 못했다. 런던에 대한 희미한 열망만 있었을 뿐 런던에 대한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런던이라는 도시의 다양한 의미들을 발견해내기 시작했다. 세인트 폴 성당, 대영박물관, 빅벤... 각각의 풍부한 컨텐츠를 가진 문화컨텐츠의 다양한 모습들이었다. 정혜윤 작가가 속삭여주는 이것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무척 흥미로웠다.
단지 막연한 열망에서 런던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어 준 책. 앞으로 (언젠가...ㅠ)떠날 런던행 비행기에서 친구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아진 것 같아 기분이 설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