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 간 한반도는 일본소설 붐에 휩싸여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의 이름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중략) 이에 옮긴이는 20세기 초, 중엽에 발표된 일본 소설 중에서 한국인들이 꼭 읽어야 할 것을 선별해 그들 작품에 내재된 매력을 찾고자 하였다.」 이게 책 첫장 <옮긴이의 글> 에서 밝히는 책을 편집한 계기이다. 여기서 '순수문학이 아닌 흥미위주의 일본 소설이 흥행하는 것에 대한 모종의 일침'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스스로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 이 책을 쥔 게 사실이다. 「일본 소설 붐의 원인 혹은 그 바탕을 찾는 일인 동시에 향후 한국문학에 주어진 문학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모색하자는 의지의 표출」. 그 산물이 이 책이다. 전후 근대 초중엽에 활동한 일본 고전 문학의 대가들은 근대에도 많은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하는데, 나의 실력 부족으로 '내가 아는 작가'와 '거장'들 사이의 갭이 너무나 크게 느껴져서 "대체 어디가 영향을 받은 건데?" 하고 느껴버리고 만다. 요컨대 알지를 못하니 대단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현대의 것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고전을 먼저 알아야 하겠구나 하고 느낀 건, 오히려 책을 읽기 전이 아니라 책을 읽고 나서였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거장은 나쓰메 소세키, 하야시 후미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리시마 다케오, 다야마 가타이 이렇게 다섯 명이다. 그 중, 다른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그친 반면, 아쿠타가와는 3개의 작품, 나쓰메는 2개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각 단편을 소개하고 난 후에는 각 작품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야시 후미코의 《철 늦은 국화》는 남녀의 밀고 당기는 연애담을 그리고 있는데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서 책을 시작하는 도입부로서 적절한 배치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코》, 《어느 바보의 일생》, 《톱니바퀴》로 이어진다. 아쿠타가와의 작품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코》를 제외한 두 작품에서는 말년에 점점 광기로 미쳐가는 작가 본인의 심상이 드러나고 있어, 무겁고 어지러우며 난해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톱니바퀴》에선 화자(작가본인)가 접하는 모든 현상들이 그의 신경질과 우울을 일으키는 자극제가 되고 있는데, '광인의 세계'가 정상인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가 예감하는 죽음의 운명을 타인조차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통감하는 부분에서 소름을 느끼려면, 길고 난해한 앞 부분을 인내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다음 아리시마 다케오의 《카인의 후예》는 소작농의 처절한 인생을 그린 작품인데, 중고등학교 문학 수업시간에 많이 봤을 우리나라 근대 소설과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카인의 후예》를 읽는 동안에는 마치 학교 문학 수업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이 책에 실려있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사회의 부조리함을 잘 드러내고 있어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작품 안에서 줄곧 "이러다 누구 하나 죽지" 하는 긴장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어 위태로운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열흘 밤의 꿈》과 《하룻밤》이 실려있다. 나쓰메 소세키가 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코》를 읽고 재기가 넘친다고 인정을 한 것이 아쿠타가와가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는데. 역으로 여기 실린 《열흘 밤의 꿈》과 《하룻밤》을 읽으면 아쿠타가와의 글에서 느껴지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특히 이 두 작품은 이성적인 해석을 거부하는 듯, 분위기와 일화만으로 무장되어 있는데 거기서 작가 특유의 작품 세계가 녹아난다고 해설은 전하고 있다. 특히 《하룻밤》은 '아무런 사건도 없는' 하룻밤 이라는 시간 동안의 '정경'을 묘사한 듯한 작품인데, 나쓰메가 "인생을 쓴 것이지 소설을 쓴 게 아니다." 라고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생무상 덧없는 것이구나 하는 아련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야마 가타이의 《소녀병》은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병적 취향을 가진 남자의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소녀병》은 별볼일 없는 남자가 아름다운 소녀를 바라보기 좋아하는 성적 취향으로 인해 맞이하게 되는 비극을 담담하면서도 자조적인 문체로 서술하고 있어, 자연주의 소설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한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자연주의 소설에 대항하는 문학파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쿠타가와의 앞 작품과 다야마의 작품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아쿠타가와의 소설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이 자기 내면의 굴곡 속으로 빠져드는 과정이었다고 한다면, 다야마의 소설에서는 제 삼자의 화자가 주인공의 인생을 관조하는 과정에 있어, 읽을 때의 무게감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각 장 끝에 있는 '해설'이 없었다면 분명 이 모든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각 소설이 갖고 있는 '전율돋게 하는 부분'을 알고나면 이제까지 졸음을 쫓아가며 읽어온 과정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다. 작품의 의미는 후대가 갖다 붙인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의미를 부여하면 역시 대단해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아쿠타가와는 자신을 존경하는 사람들과 마주치면서도 현기증과 자기혐오감을 느끼는 인물이었지만). 가장 좋은 건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고 "아 재미있었다" 라고 하는 경지이겠지만, 거기까지는 아직 멀었는가보다. '해설' 부분을 작성해준 역자에게 고마움을 표해야할 일이다. 흥미위주의 소설은 시간을 죽이고 재미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이지만, 그것도 한번 더 깊게 생각하면 어떤 문학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고전을 읽는 건 읽는 과정에서 문학성을 찾을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이고, 결국 어떤 책이든지 재밌게 읽을 수 있게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걸작에 관하여』의 저자 샤를 단치는 「고전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차이가 있다.」 라고만 하고 어떤 차이인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는데, 어쩌면 거기에 대한 답을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한 단락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책의 제1저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이다. 나쓰메 소세키를 제치고 그가 이 책의 대표 작가로 되어 있다는 점이 의외이면서도 왜인지 반갑다. 역시나 가장 인상 깊었던《톱니바퀴》의 마지막 장면과 역자해설을 정리하고 마쳐야겠다. 「거기에 누군가가 계단을 분주히 올라오는가 싶더니 금세 또 후닥닥 내려갔다. 나는 그 누군가가 아내였음을 알고, 놀라 몸을 일으키자마자 바로 층층다리 앞에 있는 어슴푸레한 식당 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내는 엎드린 채로, 숨을 죽이고 있는 듯 보였고, 끊임없이 어깨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아무 일도 없어요." 아내는 겨우 얼굴을 들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을 계속했다.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 아니지만, 그저 어찌된 일인지 아빠가 돌아가실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지요..." 그것은 내 평생을 통해 가장 무서운 경험이었다. -나는 더 이상 계속해서 말할 힘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기분으로 살고 있는 것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누가 내가 잠든 사이에, 살며시 목을 졸라 죽여줄 사람은 없을까? (불안정하고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세기말적 공포를 표현한 작가 최고 걸작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서술한 정황들로 볼 때 일인칭 시점을 그대로 받아들여 작자 자신의 상황으로 환원해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역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