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민지 경험, 한국 전쟁 그리고 분단. 이 특수한 역사는 수많은 아픔을 양산해 냈다. 숱한 이념 논쟁, 이산 가족, 장기수 및 수배자 등. 많은 부분 진보를 경험했노라고 이야기되는 한국 사회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닫힌 사회가 아닐까 생각된다. 수많은 가해자들이 여전히 떵떵거리며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가운데, 사회를 위해 싸웠던 대다수의 이들은 빈곤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 그 부조리를 치유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할지.. 아마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 또 하나의 아픔이 있다. 다른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가 아닐까 생각된다. 민주화 운동을 하던 아버지와 아들이 연속적으로 옥고를 치를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은 결국 우리 사회의 아픔이며, 우리 모두의 아픔일 것이다. 시대는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시대는 그들을 투사로 만들었고, 그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에 비해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것들은 너무도 무거웠다. 학자로서의 명망으로 인하여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형량을 낮출 수 있었던 아버지 안재구.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존재를 너무도 낯설어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이름 모를 이들에게 강압적으로 끌려가던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가 느꼈던 것은 두려움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부재’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 항상 아버지는 살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의심 어린 눈초리와 손가락질 속에서 그는 자신이 걸어가게 될 길을 미리 읽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랬기에 아버지가 겪어야만 했던 그 고충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총학생회장이 되었고, 긴 수배 생활을 견디어냈고, 마침내(?)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구국전위’ 사건으로 인해 감옥으로 끌려간 아들.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의 삶을 부정치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삶을 통해 아버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고, 현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많은 아픔들에 대해 진지해질 수 있었다. 이 책은 한 부자(父子)의 아픔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아픔을 담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어느 곳에 그들과 같은 아픔을 경험한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감하게 아버지의 뒤를 따라 걸은 아들은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지난 날 그러했듯이…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3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지난 날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영원히 자신의 편일 아버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세상 사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현 사회를 꿰뚫는 날카로운 분석력을 함께 나누는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회는 그들의 성장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는 모습으로… 책의 뒷 부분에 수록되어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진지한 대담 속에서 나는 그들이 경험했던 아픔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