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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다는 말밖에 안나오는 것 같다. 이 가을에, 나는 조금 매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매섭고 서글프고 서러운. 무엇을 하든지 의욕도 못느끼고 싫증느끼고 결국엔 공허함에 빠져 하늘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가을을 타냐, 고 물으면 그보단 가슴이 뚫렸다. 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그런 마음이었다.
아침 만원 버스 안에서 책을 읽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 번 펴서 읽기 시작한 책때문에 그저 마음이 따뜻해지고 웃음이 베시시, 나왔다. 시험기간이라 책 읽을 짬을 만들기 어려운데 오늘 짬짬이 틈이 날때마다 읽고 집에 돌아와서도 읽어서 꼭, 다 읽어야 했다. 계수나무의 순수한 마음이 나까지 물들이는 것만 같았다.
정채봉님의 글이라는 것부터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순수하고 맑은 계수나무를 만난 행운에 감사한다. 계수나무의 말을 볼 때 마다, 계수나무를 따라 배들이 마을을 돌아다닐 때마다 나는 흐뭇하게 같이 말을 걸고 같이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삽화의 도움을 좀 받지 않았나 싶다. 참 잘 어울리는 삽화였다. 매 그림마다 상상했던 배들이 마을을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글 속의 아이들과 여러 인물들은 각자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계수나무도. 하얀구름도, 연순네도, 순애 삼촌도. 그런 아픔이 꽃냄새 풍기고 풀냄새 풍기고 바다내음나는 배들이 마을의 풍경에 어우러져 잊혀지는 것 같지만, 아픔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글을 읽으면서 반성하게 되었던 것도 있다. '어른'의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그들의 꿈을 무시한 적은 없었는가. 마치 계수나무의 선생님처럼 말이다. 계수나무의 할아버지가 계수나무를 보듬어주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 각박한 도시에서는 이런 예쁜 생각을 하는 아이도, 이 아이를 보듬어 줄 부모도 흔치 않다는 것이 슬펐다.
배들이 마을을 휩쓸었던 해일이 지나가고 계수나무의 꿈에서처럼 꽃이 만발하고 모두의 모습이 평화로워지기를. 이 세상의 무신경한 어른들이 이 글을 읽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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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는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 나무와 꽃과 곤충을 보며 안녕! 인사하던 나를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른께 인사하다 가랑이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 본 그 때 하늘은 정말 눈 시리게 파랬다.
만나는 나무마다 꽃마다 인사하며 가을이 오는 소식을 친구와 동네 아저씨들에게 알리러 다니는 순수한 소년, 학교에서 말썽꾸러기이지만 절대 밉지 않은 소년, 자연과 어울려 살 줄 아는 배들이 마을 사람 계수라는 아이의 시선으로 본 마을의 일상이야기다.
너무 당차기도 한 소년 계수는 자신을 키워주던 외할머니댁에서 할아버지댁으로 와 '배들이'마을 사람이 된다. 어느 날 어느때고 동네를 떠들석하게 하는 욕쟁이 아줌마 목골댁을 만나고 메아리에게 욕을 시킨다며 말대꾸하는 당찬 계수! 그러나 계수는 알게 된다. 목골댁이 욕하는 것은 산에 나무하러 들어간 나무꾼들에게 하는 것이라는 걸 ....
학교가는 언덕위의 매화나무 그루터기가 친구다. 학교가는 길에 언덕위로 올라가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결국 지각을 하게 된다. 학교에선 늘 지각을 하며 참다참다 옷에 실수를 하고 만 오줌싸개에다 선생님때문에 머리가 아파 죽겠다는 계수 땜에 친구들도 함께 학교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만 계수의 재치로 집으로 돌아 오게 된다.
새로이 이사를 오게 된 하얀구름이랑 친구가 되고 모든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눈다. 아무것도 재보지 않고 그냥 친구가 된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던 아버지가 오셨지만 엄마는 오지 않아 계수는 무척이나 가슴아파하지만 할아버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배들이 마을은 개발로 인하여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결국 얼마있지 않아 마을에 태풍으로 인한 큰 해일이 닥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고귀한 생명을 그리고 마을의 건물들을~.
그러나 큰 해일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희망을 찾는다. 아침에 닭이 낳은 달걀을 보고, 매화나무 그루터기에서 새순이 나온 것처럼 새로운 삶은 또 찾아올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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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
이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이분의 글은 언제나 맑고 향기롭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기억난다. 정.채.봉 정채봉님의 어린 시절을 비춘 것 같은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 학교 선생님도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말썽쟁이였던 계수나무. 외가에서 친가 할아버지네로 삼촌 손에 끌려 살러가던 날 처음 본 푸른 바다를 보고 누가 저렇게 물을 많이 엎질러 놓았느냐는 말에 아!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어찌나 재미있는지. 엄마도 없이 아빠도 없이 그렇게 자라는 모습이 애처럽고 안스러우면서도 엉뚱한 상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에, 한참 웃고 섰다가 그 아이다운 순수함이 너무나 예뻐 주인공 계수나무를 마주보고 있는 듯 슬며시 미소짓곤 했다. 그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깨끗한 유리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듯 읽으면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노래를 찾는다며 바람을 쫓아다니는 연순네 아줌마, 온갖 험한 욕으로 산을 지켜내는 다리를 저는 욕쟁이 목골댁, 군대에서 탈영해 사랑하는 홍주고모를 만나러 왔다 군화발에 채이며 도로 잡혀간 순애삼촌, 그 홍주고모를 읍내 신발가게에 중매섰다가 순애삼촌에게 목이 졸리고, 벼랑에 버려진 옷처럼 자살한 순애삼촌의 이야기, 마을의 유지로 이장보다 권세를 부리는 애숙이 아빠, 바닷가 마을이 개발되어 돈을 벌게 되자 바람이 나 버려진 하얀구름네 엄마와 다시 파도소리를 찾아 보금자리를 튼 하얀구름, 낚시대를 들고 산 위에 올라 비행기를 낚으러 다니는 바보 고봉이, 똥지게를 지고 손으로 거름을 주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기달이 아저씨, 처음 학교 가는 날 설레이다 잠을 설치고 지각하면 안된다고 아침 일찍 나가 보이는 생명체에 인사를 하느라 첫날부터 늦어버린 일, 풍부한 상상력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엉뚱한 질문에 난감한 담임 선생님이 계수나무네 할아버지를 불러왔는데 그 할아버지에 그 손주의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신 할아버지. 육성회비를 못내 교실에 남게 된 벌을 서게 된 아이들, 옛 성당-공소- 수녀님의 온화하고 넉넉한 마음, 배들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아이 계수나무의 입을 빌려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그려지는데 아!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 이렇게 애잔하고 따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구 있었구나싶다. 해일이 일어 온 마을을 쓸어버리고 간 자리 닭은 다시 알을 낳고 나무는 다시 꽃을 피우고 사람들은 다시 그렇게 삶을 일구어갈 것이라는 마지막 장면이 진한 감동을 남겼다. 어린 시절 떠나온 흙먼지 묻히며 놀던 시골 마을이 그립고 또 그리워진다.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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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들이 마을의 모든 것들과 다정하게 친구처럼 인사를 나누는 계수나무에게 밝은 목소리로 계수나무야~ 안녕!하고 인사를 하고 싶어요. 이 책은 이렇게 다정다감한 마음을 간직하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도시로 도시로 나가서 바쁘게 일하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해서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다정한 친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행복하게 마음의 위로를 받고 서로를 다정하게 격려해주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정채봉 선생님의 다정다감한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 그리고 정채봉 선생님의 유년기 이야기에서 얽어져 나왔다는데서도 더 감동과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작가의 유년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동화여서 더 마음에 가깝게 와닿는 느낌이었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물질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갈망으로 어쩌면 중요한 것들을 놓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신은 어떤 행복을 간직하고 또 매일 만들어 가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주는 시간을 줍니다.
사람들 간의 정과 관심, 따뜻한 마음들이 그래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힘이 되고 살만한 세상을 만든다는 것, 그 속에서 우리는 '희망'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또 한 번 새로운 힘을 얻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정채봉 선생님을 행복한 교훈으로 들려주십니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면서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고 우리들에게 격려의 다독임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생각하게 해주는 행복한 동화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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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정체봉 선생님의 동화가 만화영화가 되어 극장에서 상영하던 날 나는 기대와는 다르게 슬픈 결말에 실망스러움을 숨기지 못했었다. 어린 아이가 고난을 견뎌내고 극랑왕생했다는 그런 결말이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추운날 혼자서 사람이 닿지 않은 산속에 고립되어 있다가 추위에 굶어 죽은 것이지 않는가... 그래서 이런 동화는 잔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서 어린이들이 보면 좋지 않겠다..하고 생각했었던 그 작품의 작가가 쓴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 에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갔다. 이것은 어떤 작품일까? 지난 작품에서 실망스러웠지만, 또 한없이 슬퍼서 아쉬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관심을 끄는 이 선생님의 작품은 참으로 묘하구나...싶었다.
어린아이가 화자가 되어 풀어가는 이 작품은 가끔은 아이 치고는 어른이 알아듣기 쉽게 쓰여져 있어서 '역시 작가는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부분이 있지만, 어른이 쓴 어린아이의 시선은 정말 '이렇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쓰셨구나.' 하고 탄복할 정도의 기발함과 순수함이 책장 하나하나에 뭍어나있다. 지금의 나는 정채봉선생님이 이 글을 쓰셨던 때보다 훨씬 어리지만 그와 같이 생각할 수 없기에 이런 나를 위해 남기신 동화인 걸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주인공 계수나무는 산골마을의 외할머니댁에 살다가 할아버지네로 옮기는 것 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할아버지네는 바닷가에 있는 '배들이'마을에 살고 있는데 계수나무는 이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라는 것을 본다. 하느님이 엎질러놓은 물 때문에 할머니께 혼날거라는 걱정은 정말 계수나무다운 걱정이었다. 소년은 참으로 순진하고 순수한 아이였는데 소년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은 그다지 따뜻하고 친절하고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것들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가 그에게는 있었고 또 그런 것들에 의해 자신이 물들거나 혹은 변화하지 않는 모습이 난 좋았다. 그렇다고 마냥 순진한 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여느 아이들 처럼 장난도 치고 여자들 고무줄도 끊고 친구들과 주먹놀음도 하고 구슬치기하다가 심술도 부리지만 계수나무의 시선으로 책을 읽어가다 보면 그런 일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혹은 아이라면 누구나 으례 그러하다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난 살아가면서 가끔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사람이 나쁜 사람인가? 혹은 이기적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거짓말을 하는 사람, 남이 피해볼 것을 알면서 슬쩍 자기일을 미루고 얌체처럼 구는 사람, 자기가 더 이쁨 받으려고 남의 허물을 들춰내면서 아첨하는 사람.. 그러나 어찌보면 그런 것들이 어떤 악의적인 목적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면서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의례적인 습성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행동을 판단하는 우리들의 선입견이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사람이 항상 나쁠 수 없듯이 가끔은 그런 사람들도 내개 좋은 일을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주인공 계수나무도 늘 장난치고 말썽을 부리지만 그것이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 마음에 철창이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임을 알았다. 친어머니가 아니긴 하지만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정수형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우리 엄마는 언제 오냐고 울며 말을 한 것도 어른들이 본다면 속상한 일이지만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당연히 말할 수 있는 의문이었다. 수녀님이 사랑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따라하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듣지 않은 것도 계수나무는 단지 자신의 마음에 정직하기 위해서 일게고 말이다.
어린아이이면서도 어린아이답지않게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또 세상을 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계수나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계수나무가 살고 있던 배들이 마을은 언제나 행복하지만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계수나무 자신도 엄청 무서운 것들을 예상하고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신의 삶에 희망을 잃지 않고-아마 계수나무는 그것이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인지 아닌지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 자신이 할 행동과 자신이 할 생각을 했을 뿐임에도 나에겐 희망이라고 느낀 것이고- 언제나와 같이 활기차게 집으로 돌아간다. 계수나무가 그렇게 순수하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계수나무의 마음 못지않게 그를 지지해주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더욱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무척이나 엄하지만 그래도 계수나무를 한없이 이해해주시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있어서 나도 더 늙어서도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한 많은 어른들의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계수나무에게 나는 오늘도 화이팅을 보낸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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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이들을 또다른 세상으로 초대합니다. 어른들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듣던 기분을 이 책에서 또 한 번 느낄 수 있고 정채봉 선생님의 글줄에서 묻어나는 친근함과 읽을 수록 더해지는 것 같은 맛나는 말소리들에 반하게 되지요.
벌써 엄마가 된 저는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떠나는 기분으로 시골 마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네요. 그리고 마치 주인공과 한 마음이 된 것처럼 집중하며 빠져들 수 있었고요. 배들이 마을, 계수나무의 이야기들, 모든 자연들에도 친구처럼 안녕하며 대하는 계수나무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아련해지는 느낌에 행복이 그득한 듯 싶었습니다. 계수나무의 순수함과 외로움을 모두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정감이 가는 친구였지요.
따뜻하고 푸근한 느낌의 이야기여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또 아이들에게는 이런 시절이 있었고 이 시대의 계수나무처럼 오늘의 우리도 매일매일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걸고 힘차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촌 마을이어서 듣는 이야기들이 더 신기하고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들의 책임과 그에 대한 경각심, 또한 자연과 더불어 우리 인간들이 품고 이루어야 할 삶의 희망이라는 메시지까지 행복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지요.
아이들은 다 읽고 나서 마음에 든든한 나무가 한 그루 자란 것 같다는 비유를 합니다. 계수나무의 이야기, 부모님과 마을에서의 일들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계수나무의 모습에서 아마도 의미있는 교훈을 얻었나봐요.
하늘이 점점 더 높아지는 이 가을에 마음을 꽉 채울 동화를 꿈꾸는 어른과 어린이들 모두에게 이 책을 행복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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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이 읽는 동화가 아닌 '어른들의 동화' '생각하는 동화'라는 새로운 쟝르를 만든 정채봉선생님의 작품들은 어린이의 동심을 통해 우리 어른들의 순수한 본성과 참된 깨달음을 얻을수있도록 격려해 준다.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 이 작품도 정채봉선생님의 어린 시절 고향의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현재 우리사회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일의 일부라고 할 수있다.
만나는 모든 사물, 생명체에게 인사하며 엉뚱하지만 당차고 순수한 동심을 지닌 남을 미워할줄 모르는 말썽꾸러기 계수나무를 통해 이야기 내내 따뜻한 느낌을 가지며 읽어내려가게 된다. 작은 각시인 어머니가 병에 걸려 돌아가시자 외할머니댁에서 자라다가 아버지의 본처댁인 '배들이'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마을 사람들의 여러 모습이 어울어져 자연환경과 더불어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힘있는 오토바이 타는 애숙이 아버지, 노래를 찾아 바람을 쫓는 연순네 아줌마, 다리를 절어 소리로 산을 지켜내려는 욕쟁이 목골댁, 낚싯대로 산위에 올라가 비행기를 낚겠다는 바보 고봉이, 군대에서 도망쳐 나온 순애 삼촌,,,,저마다의 상처와 사연을 있는 가식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해하고 수용하며 생활하는 아이들의 동심을 계수나무를 통해 보여준다
태극기가 바람에 ~~ 를 치이마가 바람에 펄럭입니다로 개사하여 나타낸 웃음과 위트가 있는 내용이며 소리에 귀가 먹듯이 향기에 코가 먹고, 유자꽃 향기를 옷에 묻히려고 옷을 벗어 흔드는 계수나무의 순진함과 "돈' 과 '헛된욕망''개발주의자'들에 의해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 변화되고 달라져서 하느님이 화가 나서 가을을 불러들여 마을에 가을이 오지않을까 걱정했다는 순수한 어른 같은 아이 계수나무의 말 하나하나가 가슴을 찌르며 어른들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아이들의 말에 다시한번 나의 본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동심을 지닌 어린 계수나무와 이런 계수나무를 이해하며 늘 이해하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유대관계도 동화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푸근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마지막에는 인간의 탐욕으로 동네가 하도 더러워져 가니까 하느님이 쓸어버리신다고, 화가 나서 재앙을 일으킨다고 생각한 거대한 해일이 마을을 뒤엎어 놓는다. 그러나 계수나무의 꿈에서 본 꽃대궐같은 마을을 만들기위해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그루터기의 새순이 나온 것처럼 새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고자 발에 힘을 주고 걸어나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지나간 세월의 아픈 추억을 껴안고 새로운 내일의 희망을 품는 즉 멀어지는 수평선을 쫓아 가까이에 자연과 함께 이야기하며 함께 기쁨과 고통을 나눌수있는 날은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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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나무라는 소년의 이름은 살랑살랑 바람 내음이 나는듯 하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정채봉 선생님의 유작인 이 작품은 어떠한 미사 어구도
어릴적 사물의 의인화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때
계수나무라는 이름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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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동화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추억하거나 되돌아 가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정채봉선생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인 계수나무가 다도해의 작은 어촌 '배들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곳에서 마주치는 자연과 개성있는 인물들과의 생활을 순수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느끼는것을 소박하게 풀어놓았다. 나의 유년시절을 되돌아보면 계수나무와 비슷한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다른것이 있다면 어촌이 아니라 산촌이라는 것이다. 조그만 동네여서 마을에 학교에 없어 한시간여를 걸어 다른 동네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그때는 힘든줄 몰랐다. 학교와 집을 오고 가며 친구들과 많은 놀이를 하고, 개울에서 다슬기와 가재를 잡곤했던 추억이 그립다. 그 친구들도 가끔은 나처럼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지곤 하는지 궁금하다. 계수나무는 모든 사물들에게 '안녕'을 말하는 장난꾸러기지만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는 아이이기도 하다. 엉뚱하고 꿈이 가득한 아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외로운 마음을 전할곳이 없어 모든것들에게 인사를 한다. 엄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나도 둘째아이를 18개월 되던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출근할때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울고 보챈다. 그런 아이를 억지로 달래며 떼어놓고 출근하는 일이 전쟁 같았다. 퇴근후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갖은 어린양과 짜증음 모두 받아주어야 했다. 그만큼 아이가 하루종일 엄마을 기다리고 그리워했을 것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계수나무 또한 그러했을것이다. 엄마가 아빠의 작은각시이고 아파서 요양원에 있으니 그 큰 그리움을 표현하고 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연환경 파괴에 대한 경고도 담고 있다. 도시의 생활을 동경해 도시로 나갔다가 훗날 병이들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어느새 이방인이 되어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탄난 가정도 그리고 있다. 이 모두가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슬픈 현실이다. '배들이' 마을도 개발과 탐욕으로 인해 자연으로부터 크나큰 경고를 받는다. 이런 일들은 우리주변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여름 장마철이나 태풍이 올때면 제방이 무너지고 물이 넘쳐 침수가 됐다는 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러면서 항상 따라 붙는 말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예고된 인재라는 말이다. 인재를 줄이려면 무분별한 개발은 자제하고 자연과 함께 서로 공생할 수 있는 개발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항상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희망'이 없다면 삶의 의미자체가 퇴색된 것이다. 계수나무가 항상 씩씩하게 '안녕'하고 인사를 하듯이 나의 마음도 '희망'을 가슴에 품고 활기차게 한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아아, 그렇구나. 모두가 무너진 자리에서도 닭은 다시 알을 낳는구나. 감나무의 떨어지고 남은 감은 다시 익을 것이고, 텃밭의 무도 다시 살이 불어나겠지." - 본문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