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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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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석을 처음 만난 건, 신경림 선생을 통해서였습니다. 간간히 발표하시던 문학 관련 수필이나 결정적으로는 나중에 책 로 묶여 나왔지만, 어느 문예지에 연재하셨던 시인들 소개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던 거지요. 그러던 차에 마침 창비에서 나온 백석 시 전집을 보게 되었고(출간은 87년 어름이었고, 실제 책을 제대로 접한 건, 대학에 복학하고 3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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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석을 처음 만난 건, 신경림 선생을 통해서였습니다. 간간히 발표하시던 문학 관련 수필이나 결정적으로는 나중에 책 <시인을 찾아서="">로 묶여 나왔지만, 어느 문예지에 연재하셨던 시인들 소개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던 거지요. 그러던 차에 마침 창비에서 나온 백석 시 전집을 보게 되었고(출간은 87년 어름이었고, 실제 책을 제대로 접한 건, 대학에 복학하고 3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정지용을 필두로 한 30년대 시인들에 심취해 있던 터라, 백석은 그 과정에서 거쳐야 할 통과 의례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10여 년 전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처음에는 무척이나 낯선 어휘들에 당황해야 했습니다. 일상에서 전혀 접해 볼 수 없었던 평북 사투리들... 부지런히 부록으로 실린 '시어 사전' 비슷한 것들과 시들을 왔다 갔다 하며, 때론 시어 밑에 뜻을 써 놓으며(아마도 그렇게 시어 밑에 써 놓은 것은 이후 김수영 전집을 읽으며 한자어에 한글로 해석을 써 놓은 것을 빼고는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지런히 몇 번인가를 읽었습니다. 2.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 <사슴>에 실린 시들을 근간으로 하는 그 전집에서 사투리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그의 시에서 풍기던, 당시 시단의 중추였던 정지용과 윤동주의 냄새였습니다. 문학사적 연대기로 본다면, 정지용이 백석에게, 백석이 윤동주에게 영향을 주었던 거지요. (그러고 보면, 당시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이고 후에 <문장>지 주간으로 있던 정지용이란 시인은 30년대부터 이후 현대시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시인임에 분명합니다. 뭐, 청록파 지훈, 목월, 두진을 모두 추천해서 문단에 나오게 한 것 역시 그였으니까요.) 3. 그러다 정말 윤동주가 일본 유학 시절, 백석을 너무 좋아해 학교와 과까지 옮겼다는 것과 백석이 태어났던 평북 정주가 춘원을 배출한 고장이고, 김억이 선생으로 있고 그 제자였던 소월이 다녔던 오산학교가 있던 곳임을 알고는 더더욱 백석에 빠져 듭니다. 4. 그러다 졸업을 앞둔 4학년. 기어이는 그에 대한 논문을 쓰기로 작정을 합니다. 당시 매년 열리던 우리 과 학술 발표회 때, 역시 논문을 한 편 내기로 조교 형과 턱없는(?) 약속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남들 취직 공부할 때 국회도서관에서 그에 관한 논문을 뒤졌지요. 그런데, 좀 충격이었죠. 88년에 해금된(그는 한국 전쟁 때 월북해 그 전까지 그의 시집은 금서였답니다.) 그였고, 남은 시라고는 고작 백 편도 되지 않는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박사학원 논문 하나와 석사 논문 여러 개가 있더군요. 그리고 그 논문들에는 이미 제가 하고픈 해석과 발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거든요. 늦게 태어난 걸 후회해 본 적은 아마도 그 때가 처음이지 않았을까요? 5. 논문 작업은 거기서 끝이었지요. 그러다 마침 4학년 수업에 지금도 만해 학회를 이끄시는 2,30대년대 시 연구의 권위자이신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백석을 발표할 일이 있어, 조금 더 자료를 뒤져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가 전쟁이 나기 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는 밑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입니다. 그런데 당시 우연히 본 전쟁 후 북한 자료에 그의 이름이 떡하니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전쟁 전, 그의 '모더니즘 보이' 같은 세련된 외모, 그리고 그의 시들을 볼 때, 북으로 넘어간 후 자의든 타의든 붓을 꺾었을 것이 더 분명했고, 그의 이름이 발견된 것은 북한 중앙노동당 문학분과 중 '아동문학 분과'라는 것도 좀 의아스러웠습니다. 거기다 '백석'은 그의 필명이었지요. 본명인 '백기행'으로 안 쓴 것도 좀 의아스런 일이었고... 아무튼 그래서 그 발표 마지막에 슬쩍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의 존재가 북에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우리 선생님의 질문. "자네는 백석이 북에 가서 문학을 했을 거라고 보나?"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셨던 게지요. 당시 외교부라도 가서 더 많은 자료를 더 찾아보려고만 했지, 그러지 못한 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할 밖에요. 6. 그러다 2천년 이후 나온 실천문학판 <백석 전집="">에 그가 북한에서 쓴 글까지 보고서야, 아차 했다는... 위대한 학사 논문이 나올 수 있었는데요...^^ 7. 그를 좋아한 표면적 이유는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8. 하지만 저런 일들을 했던 이유는 다분히 백석은 몇 편 되지 않는 시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말했던, 그의 시에서는 지용과 동주의 냄새가 나는 것은 물론, <여승> 같은 시에서는 이야기시적 요소가, 동시 같은 시들에서는 천진만난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그리고 40년대 만주를 떠돌며 쓴 시에서는 한 사내의 외로움이 짙게 배어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9. 작년, 재작년 학원 수업을 하며 백석이 수능에 나올 것이라고 줄창 떠돌고 다녔더랬지요. 그에 대한 문학사적 위치나 그의 시가 지닌 느낌 등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답니다. 그래서 재작년 수능에 그의 시가 출제되었을 때는 맞추었다는 기쁨이 더 컸지요. 그러다 강사들 모임 카페에서 어느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걸 보게 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백석을 수능 문제지에서 보아 우울하다고... 그 말을 듣고 리도도 슬퍼집니다. 이제, 나만의 백석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무수한 고등학교 선생님, 강사들이 침을 튀기며 대수롭잖게 그의 이름을 말할 테니까요. "2004학년도 수능 기출, 그것도 복수 시비 답으로 문란을 일으킨 시 '고향'의 시인이다."하고 말이죠. 10. 밑의 시는 앞서도 말햇듯 전쟁 전 그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랍니다. 시 제목이 좀 어렵죠? 뭐 별 건 아닙니다. '남신의주(신의주는 다 아시죠? 그 남쪽이겠죠.)' '유동(동네 이름입니다.)'에 있는 '박시(박씨, 박가 성을 가진 이)'가 운영하는 '봉방(지금 식으로 말하면 '여관, 여인숙'쯤 될 것 같습니다)'에서 쓴 시 정도가 제목이 의미하는 바일 것입니다. 고향, 가족과 헤어져 만주 벌판을 헤매던 한 때는 멋쟁이 신사 소리를 듣던, 한 시인의 고독한 영혼을 느끼신다면 좋겠습니다.

[인상깊은구절]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i****o 2005.12.13. 신고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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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전집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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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보물 1호가 민음사의 김수영전집이다. 보물 1호가 예전에는 최하림씨가 쓴 김수영 평전이었는데 이사를 하다가 잃어버렸나 아니면 물건 볼 줄 아는 사람이 가져갔나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오래된 보물 1호를 상실한 기분은 궁민(窮民)들이 남대문 1호에 바치는 애도 이상으로 나에겐 슬픔이다. 그리고, 나에겐 보물 2호가 있다. 바로 백석전집이다. 물론 다 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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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겐 보물 1호가 민음사의 김수영전집이다.

보물 1호가 예전에는 최하림씨가 쓴 김수영 평전이었는데 이사를 하다가 잃어버렸나 아니면 물건 볼 줄 아는 사람이 가져갔나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오래된 보물 1호를 상실한 기분은 궁민(窮民)들이 남대문 1호에 바치는 애도 이상으로 나에겐 슬픔이다.

그리고, 나에겐 보물 2호가 있다. 바로 백석전집이다.

물론 다 읽지 못했다. 그건 다 읽고 나면 떠나버린 첫사랑처럼 영영 내곁을 떠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상소유욕이지만 어쨌든 이런 기분을 이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난 김수영의 산문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도 자취를 감추었다. 기나긴 추적 끝에 밝혀낸 사실은 얼마 전에 들렀던 선배 한 분이 술김에 가져갔다는 것이다. 돌려 달라고 몇 번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다. 진보신당의 자리매김에 바쁘다나 어쩠다나...

여하튼 돌려받는 것이 요원할 것 같아서 다시 새 책을 살까 고민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그가 세상을 버리는  이유는 무서워서임을 ..그리고 상당히 性적인 시임을 내 안에서 느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변태일까?

내가 그의 시 중에 제일 좋아하는 시는 북관에서 인가 하는 시이다.

고향도 아버지도 다 있었다. 분명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시는 내가 잠시나마 함양의 녹색대학을 다닐 적에 읽었던 시인데, 고향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이 시만큼이나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할 정도로 좋아했던 시이다.

백석은 멋있게 생겼다. 표지에 나오는 그의 머리는 대중연예잡지에서나 봄직한

멋진 스타일이다. 아니면 바람을 맞았나. 그는 호남형이다. 물론 사진만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야수형이다. 잘 생기고 좋은 시를 쓰는 그는 야수형에 변태성만을 가진 나 같은 이들에겐 이물감을 느끼게 한다. 다만, 그의 좋은 시가 있어 오늘도 나는 백석을 생각한다.

 

사족을 달자면 김수영자서전이 청계천의 허름한 헌책방집에서 발견했다는 아무것도 아닌 기분처럼 백석전집도 낯선 시골의 허름한 책방에서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헌 것을 좋아하는 기질은 적어도 내 처에게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어쨌든 난 내 아내를 사랑한다.

y***1 2008.04.25.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