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0.0
  • 50대 0.0
리뷰 총점 종이책
[다니엘 바렌보임 : 평화의 지휘자] 미움 받는 마에스트로에 대한 변명
"[다니엘 바렌보임 : 평화의 지휘자] 미움 받는 마에스트로에 대한 변명" 내용보기
2011년, 거의 30년 만에 한국을 찾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소식에 들떴었다. 들뜬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기 때문에 좌석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고, 원하는 좌석을 구할 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포기했었다. 포기가 쉬웠던 건, 들떴던 만큼 내 눈으로 그의 지휘나 연주를 보는 일을 상상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를 그렇게도 좋아했느냐 하면 사실
"[다니엘 바렌보임 : 평화의 지휘자] 미움 받는 마에스트로에 대한 변명" 내용보기

2011년, 거의 30년 만에 한국을 찾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소식에 들떴었다. 들뜬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기 때문에 좌석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고, 원하는 좌석을 구할 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포기했었다. 포기가 쉬웠던 건, 들떴던 만큼 내 눈으로 그의 지휘나 연주를 보는 일을 상상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를 그렇게도 좋아했느냐 하면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평범하게도,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카라얀과 베를린필의 음반들에 익숙할 뿐이고, 명성이 높은 이들을 동경하는 수준이기는 하다. 주빈 메타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의 내한 때도 역시 표를 구하지 못했다. 바렌보임과 메타는 어린 시절 지휘를 공부하던 때부터 절친한 친구로, 이 책에도 50년 전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작년과 올해 연달아 빈 필의 지휘를 맡게 됐다. 나는 이 두 명의 비유럽인을 다음 달에 유럽에서 만나는 비유럽인 여행자가 될 예정이고, 그 준비과정으로 바렌보임의 자서전을 읽었다.



누군가의 팬을 자처하게 될 때엔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 지적인 선택의 사례가 계기가 되곤 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팬이 되었던 것도 <스타트렉 다크니스> 개봉 당시 파파라치를 향해 이집트로 가라는 일침을 놓는 것을 본 이후였다. 드라마 시리즈 <셜록>을 본 것도 그 모습에 반한 후였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그의 팬이 되기 전부터 좋아했던 키이라 나이틀리도 그녀의 여성성에 대한 소신있는 발언 때문이었다. 소외 계층인 극빈층의 지역에서 오케스트라를 탄생시키는 '엘 시스테마'의 주인공, 구스타보 두다멜에 대해서도 당연하다. 나는 늘 이런 식이라, 다니엘 바렌보임의 팬이 된 것도 그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나누는 지적인 대화와 행동들 때문이다. 이스라엘 국적의 바렌보임이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이드와 가자지구 분쟁에 취하는 태도는 두 진영의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를 향한 길을 제시한다. 



중동 문제의 이해관계에 놓여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음악에 문외한이라 해도 바람직하게 여겨질 만한 다니엘 바렌보임이지만, 그렇지 않은 데엔 그의 사생활이 있다. 실력보다 도덕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가 영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도 그의 사생활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내가 가지 못했던 그 내한 공연에서의 에어컨 사건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의 정치적 행보로 팬이 되었지만, 사생활을 알게 되었을 땐 팬이 되기 힘들었다. 촉망 받던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와 결혼 후, 그녀가 손가락 마비로 투병을 하던 때에 벌인 외도로 자식까지 낳았고 이혼을 요구했다. 뒤 프레의 임종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몰래 만나던 피아니스트와 재혼했다. 전해지는 여러 이야기를 종합하면, 전형적인 나쁜 남자가 바렌보임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뒤 프레의 영화 같은 삶은 여전히 바렌보임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준다. 완벽한 사람을 찾기란 역시 어렵다. 



이 모든 걸 잠시 잊게 만드는 게 그의 음악이다. 명성에 기인해 관심갖기 시작했지만, 그의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건 바흐의 골드베르크 협주곡을 들을 때였다. 글렌 굴드의 맑고 또박또박한 연주를 좋아했던 내게, 본래 피아니스트로 음악 생활을 시작한 그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는 바흐가 아닌 쇼팽이나 드뷔시의 음악처럼 서정적으로 들렸다. 무척 새로웠고, 새롭게 바흐를 이해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의 이 자서전에는 그가 서문에 밝히듯 사생활에 대해 말하진 않지만, 어떤 태도로 음악을 대하고 연주하는지 세세하게 묘사된다. 그의 음악 이야기를 읽으며 오랜만에 바렌보임의 연주와 지휘를 들었는데, 역시 그의 음악을 들을 땐 사생활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는 이 책에서 아주 지적이며, 소신 있고, 심지어 그에 대한 많은 평가와 다르게 겸손하기까지 하다. 자서전이니 당연히 자신을 포장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을 여느 때보다 뽐내곤 한다.



사생활 때문에 그에 대한 인간적 평가를 부정적으로 내릴 수는 있을 테고 나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뮤지션으로서 부정적으로 평하는 데에는 이견이 있다. 그의 도덕성 때문의 그의 음악을 듣지 않겠다는 사람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서 그의 음악성까지 저평가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주로 상황상 약자인 뒤 프레의 입장에서 그들의 일을 보지만, 뒤 프레와 형부에 관한 소문도 있고, 실제 둘 사이의 일과 그 배경이 된 마음은 그들이 아니고선 알 수 없다. 사랑은 원래 당사자들도 다르게 느끼게 마련이니까. 바렌보임은 평생을 음악적 성공과 함께 뒤 프레와의 일에 대한 비난을 받으며 살아왔다. 바렌보임이 크게 후회하고 있다면, 그가 뒤 프레를 향해 진실을 고백하고 사과한다면,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게 될까.



이미 그녀는 떠났고, 그가 사람들을 향해 이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침묵과 더 나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뿐이다. 공인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어떤 식으로든, 어떤 규모로든, 어떤 깊이로든, 언급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만, 그만큼 아름답지도 못하다. 바렌보임이 여생을 침묵을 지키며, 음악으로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끝까지 지금만큼의 팬이 될 수 있도록. 세상에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사람은 많고, 심지어 빼앗아 가는 사람도 수없이 많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 아닐까. 게다가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의 삶은 피해야 할 것이든 추구해야 할 것이든 언제나 귀감이 된다. 




많은 연주자들이 자신감을 높인다는 비음악적 이유 때문에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을 한다. 하지만 자신감이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자신감을 쌓으려는 목적이라면 음악 연주는 그리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베토벤, 바그너, 드뷔시, 불레즈와 모차르트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은 우리 불쌍한 피아니스트들이 자신감을 얻게끔 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장 내밀한 감정을 써 나간 것이 아니다. 자신감은 성격과 추론 능력에 달려 있다. 우리는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력을 통해 이를 높일 수 있다. (28~29쪽)



유대인의 역사가 현대 생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각 덕분에, 위대한 음악 작품에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그 하나는 작곡 당대와 연관이 있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는 영원성과 관련을 지니는 것이다. 이 영원성 덕분에 우리는 2백~3백 년 전에 작곡된 음악에도 여전히 관심을 갖게 된다. (47쪽)



정치인은 타협하는 능력이 클수록 더욱더 전진한다. 반면 예술가는 타협하지 않을수록, 더욱더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255쪽)



내 생각에, 인간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유를 추구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단지 정치적 자유만이 아니라 사상이나 행동의 자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은 아주 빈번하게 자연에 지배당하며, 사랑이나 증오 같은 감정이나 가족, 사회, 교회에 속박당한 노예이기도 하다. 하나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또 다른 무언가에 속박당한다는 뜻이다. (321~322쪽)



음악은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치의 경우처럼 손쉽게 남용 될 수 있다. 바이마르에서 열렸던 워크숍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의 음악인들은 함께 연주하면서 이전에는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화해와 우정을 음악을 통해 이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 같은 사실은 음악이 중동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음악은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학교이면서, 동시에 삶에서 도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348쪽) 

l******e 2015.04.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