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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를 읽은 후 로맹 가리의 장편 소설을 두 편 찾아 읽었다. 두 편 모두 장편 소설로 '자기 앞의 생'과 이 책 '유럽의 교육' 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놀랐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으면서 느낀 냉소적인 로맹 가리는 온데간데 없고, 장편 소설 속의 로맹 가리는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찬 휴머니스트였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말로써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극과 극으로 가득 찬 동물, 모순덩어리이긴 하지만, 한 명의 작가가 자신의 책들 속에서 이렇게도 다른 모습을 가지는 것은 나로서도 처음이였다.
이 리뷰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동화적이다. 감상적인 부분도 많이 띄고, 약간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지적되듯,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 대해 작가의 경험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내용이 유치하든 아니든 바탕에 깔린 인간에 대한 믿음은, 같은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나가는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책 속의 주인공인 야네크는 전쟁을 경험하면서 희망에 대해 회의적인 비관론자가 된다. 그러나 야네크는 인간에 대한 믿음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그도 역시 인간이기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인간이기에, 혹한을 배경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따뜻하다.
주인공은 야네크이지만, 이 책은 그를 위주로 서술되고 있지만은 않다. 숲속의 빨치산들. 독일 병사들, 전쟁을 겪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까지 작가는 담담하게 묘사한다. 묘사되는 전쟁 상황들은 모두 비극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대학생 빨치산 대원인 도브란스키는 희망을 믿는다.
도브란스키는 이상주의자이자 낙관주의자이다. 도브란스키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글을 쓴다. 그가 쓰는 글의 제목이 '유럽의 교육' 으로, 소설 전체의 중요한 축이 된다. 야네크와 도브란스키, 일견 대립되는 듯한 둘은 서로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도브란스키가 죽자, 야네크가 '유럽의 교육'을 그 대신 끝내게 된다.
책을 덮으면서, 야네크와 도브란스키, 그 둘의 모습을 로맹 가리가 모두 지니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반대편에 서있음에도 연민과 이해로 서로를 대하는 그들.
책속에서 로맹 가리가 말한다, 그들의 목소리로. 진실이란 지금 이순간 존재한다고. 인간의 이름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진실은 지금 이순간에도 반드시 존재한다고.
[인상깊은구절] 인간이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세상이나 개미들이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세상이나 다 마찬가지다. 잔인하고 불가해한 세상. 우스꽝스러운 잔가지 하나, 지푸라기 하나를 늘 더 멀리 끌고 가는 것밖에는 생각할 줄 모르는 세상. 이마에 땀을 흘리고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늘 더 멀리! 숨을 돌리거나 왜냐고 질문하기 위해 한 번도 멈추는 법 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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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나라란 어떤 모습일까?”
중요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유럽 각국에서는, 아들들은 총살당할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실 벽에다 ‘자유 만세!’라고 마음껏 써갈기고 있는 반면, 많은 기성 세대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기억해라. 그들이 더 현명하다. 중요한 건 살과 피, 땀과 어머니의 품이지 깃발, 국경, 정부가 아니다. 명심해라. 시체는 폴란드 찬가를 부를 수 없다! –p117
이 소설은 1942년에서1943년까지, 폴란드의 어느 마을, 산 속에 숨어 독일 점령군과 게릴라전을 벌이는 빨치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14세의 소년, 야네크이다. 소년의 아버지가 ‘중요한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후, 소년은 아버지의 당부에 따라 숲으로 숨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빨치산들과 1년간의 시간을 보내며, 희망도 보고, 절망의 끝까지 추락하기도 하고,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유럽의 대학들은 문명의 요람이었지. 하지만 또 다른 종류의 유럽의 교육도 있단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받고 있는 교육이지. 총살 집행반, 구속, 고문, 강간,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모든 것의 파괴. 암흑의 시절이지. –p93
또 한명의 주인공은, 순수열혈청년, 대학생 도브란스키다. 그는 봄이 오면, 증오도 학살도 끝날 것이라며, 평화가 유럽에 찾아왔을 때,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책을 쓰고 있다. 파괴, 암흑의 시절 역시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한 요소라 믿으며 꿈을 꺾지 않는 것이다. 야네크는 이런 도브란스키에게서 희망을 보지만, 무참하고 무기력하게 쓰러져가는 조국의 현실을 보며 냉소를 보낸다. 마치 스탈린그라드 전투처럼 팽팽하게 희망과 절망은 균형이 유지된다. 그 속에서 소년은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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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로맹 가리의 명성에 비해 좀 무덤덤하게 이 책을 읽는다. 하지만, 전쟁 말미에 출간된 이 책이 얼마나 뜨거운 반응을 얻었을지 상상은 된다. '파괴, 암흑의 시절'이 인간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정말 어려운 시절일 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희망은 새로운 고통을 견뎌내도록 격려하는 신의 술책인가, 나 또한 희망과 냉소를 오가며 읽었다.
하지만, 분명한 생각은...세상을 발전시키는 사람은, 자신의 바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실천하는 도브란스키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숲 속에서 그가 읽던 인상적인 시구절을 떠올려본다.
낙담하여 제자리걸음만 하는 나의 연인이여……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쇼팽의 야상곡이 듣고 싶어졌다. 그의 피아노 곡은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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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계 유대인으로 태어나 프랑스 참전용사, 외교관 그리고 문인으로 삶을 마감했던 로맹 가리의 데뷔작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에 대항해서 싸운 레지스탕스 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로맹 가리에 전쟁 중에 집필했다는 소설을 단박에 읽어 버렸다. 역시 자기가 관심이 있는 주제를 다룬 책을 읽을 적에는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유럽의 교육>은 히틀러의 독일군이 전 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1942~43년의 폴란드의 어느 숲을 공간적으로 배경으로 한다. 열네 살 먹은 얀 트바르도브스키(야네크)는 나치 독일군의 야만적인 침탈행위에 분연히 대항하다가 목숨을 잃은 아버지가 몰래 만들어준 은신처에서 “인디언 전사 와인투”의 글을 읽으며 빨치산의 꿈을 꾼다. 전격전(blitzkrieg)으로 독일에 참담한 패배를 당한 폴란드인들은 숲을 거점으로 삼아 독일점령군에게 대항하기 시작한다. 야네크는 장렬하게 산화한 아버지로부터 받은 브라우닝 권총을 가지고, 야블론스키가 이끄는 일단의 “산사람들”에 합류한다. 폴란드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영웅적인 저항과 폴란드의 “빨치산 나데이다”의 신출귀몰하는 신화는 점령군의 폭력에 떠는 폴란드 민중의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온다.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언제 독일군의 총탄을 가슴에 맞을지 모르는 극악한 상황 속에서, 어린 야네크는 야블론스키의 심부름을 하면서 듣게 된 음악, 특히 쇼팽을 사랑하게 된다. 쇼팽의 조국이 폴란드라는 사실에서, 작가가 쇼팽의 폴로네즈를 고른 것이리라. 로맹 가리는 전쟁이라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을 노래한다. <유럽의 교육>에는 야네크가 빨치산 생활 도중에 만나게 된 대학생 출신의 아담 도브란스키가 애지중지하는 공책에는 소설 속의 소설이 등장한다. 나치의 천년제국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시기에, 빨치산 나데이다의 신화만큼이나 전 유럽에서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결국 승리하리라는 신념을 불어 넣어주는 도브란스키의 메시지는 허무맹랑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로맹 가리가 레지스탕스 활동을 통해 들려주는 관계는 참으로 다양하다. 폴란드 민중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독일에 협력하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증오하며 폐병으로 죽어가는 빨치산 아들, 스탈린그라드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장군 아들을 둔 늙은 제화공 출신 하사관 아버지, 빨치산과 독일군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다가 그만 사랑하는 아내를 점령군 경찰에게 빼앗겨 버린 농부, 30살이나 어린 아내를 둔 변호사 선생의 자살 트럭 공격, 사랑하는 두 딸을 잃어 미쳐버린 사나이의 절규 등 다양한 이유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나서게 된 사연들이 소개된다. 그네들의 사연을 읽으면서, 왜 이 책이 처음에 나왔을 때 <분노의 숲>이라는 제목이었는지 바로 깨달았다. 빨치산 나데이다는 폴란드 민중 내부로부터의 신화다. 그는 절대로 독일군에게 잡히지 않으면서 가장 어려워 보이는 시간과 공간에서 빨치산 전사들을 위로한다. 그는 저항군의 신부일 수도, 노벨화학상을 받은 천재 과학자일 수도, 전직 레슬링 선수일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전설적인 인물 나데이다가 될 수 있다는 신화는 독일군의 선전과 폭력에 대항하는 민중의 힘으로 다가온다. 나데이다가 내부로부터의 저항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스탈린그라드는 외부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상징이다. 훗날 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꾼 것으로 간주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얼마나 레지스탕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는지 로맹 가리는 생생한 기록으로 독자에게 환기시켜준다. 어쨌든 평화로운 세상이었다면 유럽의 정상적인 문명의 세례를 받았을 야네크와 조시아는 전쟁의 포화 가운데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들에게 당장 허기와 추위를 피하고, 살아남는 것 외에는 다른 목표가 없다. 생존이 최우선 목표인 다른 아이들에게 유대인 분더킨트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듣기 위해 자신의 생명 같은 감자 자루를 내던지는 야네크는 진귀할 존재일 따름이다. 로맹 가리는 전쟁을 통해 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야네크의 뒤를 쫓는다. 야네크는 그렇게 사랑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되고, 또 음악을 사랑하게 된다. 처절한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작가가 말하는 선한 ‘유럽의 교육’은 그렇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작가의 데뷔작이 이렇게 경이적인 혜안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과연 공쿠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할 만한 작가의 필력이 데뷔작에서부터 그 아우라를 발하고 있었다. |
|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의 가서 죽다를 인상깊게 본 후 다른책을 찾은것이 바로 유럽의 교육이었다. 뭐 책에대해서 잘 알진 못하지만 정말 이게 같은 작가의 책인가 할 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아무튼간에 이 책은 약간 거부스러운 제목(나도 일단 교육이란말에서 흠짓했으니까;;)에도 불구하고 술술 잘 읽힌다. 그 이유인즉 아무래도 내 생각엔 우리와 같은 정서가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리라... 이 내용은 독일점령 당시의 폴란드 이야기이다. 이런 얘기를 읽을때마다 흠뻑 감동 받을 수 있는건 우리도 일본에게 점령 당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설령 겪지 않았더라도 우리의 피,DNA하나하나가 기억하고 있을테니까... 물론 여기서 일본이 나쁘네 하는걸 말하려는게 아니다. 그저 살면서 누군가의 얘기를 들을때 나도 그것과 똑같은 일을 겪은적이 있을때의 공감대 처럼, 아픔에 대한 공감대로 이 책은 술술 읽힌다. 음....사실 여기까진 곁가지에 불과하다. 이책은 정말 울지 않을수 없다. 삶을 살아간다는거 자체가 때론 울지 않을 수 없게하는구석이 있다. 이 얘기또한 너무도 절절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어쩌면 지금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 속이기 때문에 더 절절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간에 읽은지 한달이 지나도 아직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부족한 표현력이지만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는 다 주고 싶다.. |
| 이 소설은 2차대전을 배경으로 폴란드 빨치산 속에서 생활하는 한 열네살 소년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야네크는 전쟁을 겪으면서 너무 일찍 성숙해버린다. 그리고 독일군에게 몸을 팔아 정보를 캐내어 빨치산에게 전달해주는 조시아라는 소녀 역시 점차 희망을 믿지 않게 된다. 전쟁은 곧 끝날것이며 평화의 날이 오리라는 것은 그들에게 먼 얘기일뿐이다. 하지만 이상주의자인 도브란스키는 평화의 날이 곧 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소설 제목 답지 않은 이 '유럽의 교육'은 소설 중간에 야네크와 도브란스키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부분에서 나온다. 야네크는 유럽의 교육을 살인을 가르치는 교육,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는 자를 죽이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도브란스키는 유럽이 그동안 발전시켜온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화 등이 유럽의 교육이라고 믿고 있다. 이렇게 '노래'하는 도브란스키 앞에서 야네크는 그에게 시니컬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과연 언제까지 그런 희망의 노래를 부르게 될까를 생각한다. 야네크의 그 물음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의 물음으로 공감을 형성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외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이 세계는 힘의 논리가 통하는 세계이다. 절대 정당화될 수 없고, 수많은 세계인이 반대한 전쟁도 세계최강국은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전쟁을 감행했고 또 승리했다. 과연 언제까지 우리 인간은 전쟁이 사라지는 세계를 맞이할 수 있을까? <유럽의 교육="">을 읽으면서, 또 이번 이라크 전쟁을 겪으면서 진정한 평화의 세계가 올 것인가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도브란스키와 같은 희망의 노래는 필요할 것이다. 도브란스키 같은 사람들, 그런 희망을 가진 사람들, 그런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좀더 평화적이 된것일테니까. 반전시위가 가장 격렬하게 펼쳐졌던 곳도 유럽이었던 것처럼. 소설을 보면서 전쟁의 비극인 시공간을 초월해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의 이라크 전이나 50년전의 폴란드에서나 또는 한국전쟁에서의 비극은 모두 처절하게 슬프고 안타깝고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느끼게 한다.유럽의> |
| 로맹 가리의 <유럽의 교육="">이 원제를 찾아 다시 소개되어 무척 반갑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이 책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003년 3월 20일 미국의 일방적 침략으로 시작된 이라크전의 현장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방영될 때, 팔다리가 잘린 채 침상에 누워 있는 아이들의 고통이나 미군의 찝차를 따라붙으며 물이나 음식을 구걸하는 아이들의 불안한 눈을,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질서가 사라진 삶터, 이성과 합리적 행동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는 폭력과 만행의 현장에 내팽개쳐진 아이들은 그야말로 야성적 본능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꿈을 키워야 할 시기에, 부모님이나 형제들의 품속에서 삶의 행복을 만끽하기에도 모자란 시기에, 이라크의 아이들은 짐승이 되는 법을 먼저 배우고 있는 것이다. 폭격과 총격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 아이들은 이로써 모두 테러리스트의 인자를 갖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스스로 테러리스트를 키운 강자들은 이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벌이는, 힘을 가진 자들이 펼치는 한 판 신기루 같은 서커스는 종내 오장육부에 파고드는 암덩어리로 자리할 것이 분명함에도 말이다. 이 아이들의 눈은 무엇을 보았으며 또 앞으로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유럽의 교육="">을 읽는 동안 이 아이들의 두 눈이 무시로 떠올랐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의사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혼자 남겨진 소년 야네크가 산속에서 생명에 대한 원초적 본능으로 살아나가는 과정을 그린 <유럽의 교육="">은 다음과 같은 전언을 전한다.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 습격의 기회를 엿보며 굶주림과 추위의 나날을 견뎌야 하는 빨치산들의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소년 야네크는 여러 위기를 겪으며 마침내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삶을 받아들이기까지 야네크가 겪어야 했던 공포와 절망은 작지 않다. 아버지가 죽고 혼자 남겨졌다는 것을 알게 된 야네크는 이제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 될 것이며, 절대로 변치 않는 사실이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며,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된다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야네크는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은, 미래를 절망하지 않는 건강한 빨치산들을 만나게 되고 창녀짓을 하며 근근이 먹고 사는 소녀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자신의 고통을 추스려나가기 시작한다. 함께했던 이들이 총격으로 사망하고 하나둘 곁을 떠나가는 날이 오지만 야네크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만났던 삶의 얼굴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사람과의 따뜻한 교류를 통해 질박하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생="">에서도 부모들에게서 버림받거나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아이들에 주목한 로맹 가리는 소년소녀들의 고통스러운 성장담을 통해 인간 사회의 단절과 분열은 물론 원초적 공포와 절망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듯하다. 이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죽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 있고 내 팔다리마저 잘려나갈 수도 있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희망이나 믿음은 로맹 가리가 버리고 싶지 않은 꿈 중에 하나일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 세상이 보호막 없는 난장, 전장과 다르지 않다는 절망적 인식이 있기에 그의 꿈이 한층 애절하게 다가오는 것일 터이다. 그가 버려진 아이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인간의 시스템, 체제가 갖는 이러한 본질적 모순 속에서는 어느 특별한 아이만이 버려지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유럽의 교육'은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인 동시에 강자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된다. 누구에게나 유년이 있고 그 유년은 유년이기 때문에 보호받거나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타인의 유년을 훼손해야 할 까닭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자기>유럽의>유럽의>유럽의> |
| 지금 한창 머나먼 나라 미국과 이라크는 전쟁중이다. 이런 시점에서 난 '유럽의교육'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지금 당장 내가 경험하지 않은 전쟁이란 소재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지만 내가 태어나 자라면서 전쟁이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는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닐것이다. 그래서일까... 조금은 친숙하다고까지 느낄수 있는 내용들이였다. 열네살 소년 야네크가 전쟁을 경험하면서 그 속에서 세상을 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와 함께 등장하는 도브란스키... 그 또한 어린 야네크와 조금은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야네크에게 많은 것을 깨우치게 도와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비참하고 냉혹한 현실에 어린 소년은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조금씩 익히게 된다. 도브란스키는 전쟁 중에도 이런 전쟁과 증오가 사라지고 형제애가 넘치는 아름다운 세계를 건설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간직한 채,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쓰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언젠가는 완성될 책에 붙이고자 하는 제목이 바로 '유럽의 교육' 인 것이다. 이 제목을 받아들이는 두 인물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야네크는 유럽의 전쟁이 어린 학생들에게 살인을 가르키며 그 속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켜서 강인하게 만든다는 것일거고, 도브란스키는 전쟁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이겨낸다면 아름다운 다음 세상을 만들어 낼수 있다는 희망적인 의미일것이다. 두 인물을 통해서 난 모든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전쟁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모든 인간들이 조금씩은 다를 것이다. 그 상황을 이용해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조금은 간사해질수도 있고 비열해질수도 있을 것이고,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 정확한 행동을 취할 수도 있을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희생 정도는 어느정도 감수할 수 있고 좀 더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며 매사에 즐겁게 생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올바른 교육을 하고 누군가 그 교육을 받는다 해도 그 안에서는 분명 바른 교육만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과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전쟁 목적을 보면서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들은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주장하지만 그 안에는 다른 뜻이 내재되어 있고 그로 인해 아주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을 통해서 당사자인 미국과 이라크 뿐만 아니라 주변국가의 국민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교육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힘없는 자는 그 위치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웠을것이고 힘있는 자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자신의 마음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것들에 의해서 얼마나 아름다워질수 있고 따뜻해 질수 있는지를 조금은 알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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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쇼팽이 폴란드 출신 음악가라는 것을 들지 않더라도, 그리고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스러운 삶들이 많이 등장하는 이 소설에는 쇼팽이 어울린다. 그러므로 전쟁으로 인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소년 야네크가 소설 속에서 애잔한 쇼팽의 곡조에 매료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유럽의 교육'이라는 제목만으로 도무지 내용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소설은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에 따라 빨치산과 합류한 열네 살의 야네크가 전쟁을 겪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성장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고, 반전 소설이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 내려지는 것은 좀 억울한 감이 있다. 이 점은 제목 자체에서 해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옮긴이의 글에서도 상세하게 나와 있지만, 작품에서 말하는 유럽의 교육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지성의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 교육이 그 시대에 낳은 것은 전쟁을 강요한 살인 교육이라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새로운 시대를 기약하는 희망의 교육이라는 상반된 의미로 보여주고 있다. 전자는 주인공 야네크의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교육, 후자는 젊은 지성의 대학생 빨치산 도브란스키의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교육이다. 타협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러한 상반된 교육에 대한 관점이 결말에는 결국 한 점에서 만난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고, 도브란스키가 지은 책인 '유럽의 교육'을 야네크가 대신 완성함으로써 그 해결을 찾은 것이다.
이 소설의 핵심어는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말은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말이다.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이 해야할 일을 역설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야네크의 성장은 이러한 진리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또 그가 전설적인 빨치산의 영웅 나데이다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에서도 그의 정신적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소설 속 그 한 많은 삶들로 인해 오랫만에 가슴이 아려옴도 느꼈고, 한편으로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에 화도 났다. 이 소설 속의 소설인 도브란스키의 '유럽의 교육'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전세계를 시끄럽게 했던 이라크전이 종반부에 접어들었고, 언론에서 더 이상 전쟁 운운하지 않으면 우린 다시 전쟁의 위험과 잔인함을 잊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 어디선가에서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총부리가 다른 누군가에게 겨냥되어 있을 것이고, 결국 지구 멸망 그 순간까지 완전한 종식은 힘들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도 든다. 전쟁에 대한 망각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라도 '유럽의 교육'과 같은 책을 곁에 두고 읽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의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걸까? 이 책을 읽겠다는 사람에게 권고 한 마디. 꼭 쇼팽을 들으면서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쇼팽을 좋아한다면 이 소설을 아주 마음에 들어할 거라 의심하지 않는다. [인상깊은구절]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아버지의 말처럼, 아무래도 거짓말인 것 같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하던 그 말처럼 야네크는 그 얼굴 또한 살아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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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인간이란 종족은 정말 연약한 젖먹이 동물이다. 다른 포유동물과 다르게 보호기간이 엄청나게 길다. 그 어마어마한 보호 기간 동안, 어린 사람은 교육을 받게 된다. 어느 쪽으로든 강인한 모습을 갖추도록 강요받으며 십 년을 넘게 교육받는다. 한 개체의 정신을 지배할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교육은 때론 두려워지기도 한다.
#1.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의 모든 부분에서 배어나는 한 마디였다. 사랑, 배려, 자비, 평화 같은 것들은 굉장히 연약하다. 전쟁 통에서는 전혀 무가치한―또는 선전의 유효성에 견주어 가치 있는―개념들로 몰락한다. 정말로 몰락할까.
세계대전은 거센 바람이었다. 세계 사람들이 여태껏 많은 노력과 인내를 통해 피워낸 민들레의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여름은 지나갔고, 2차 세계대전으로 강풍이 불어왔다. 바람은 민들레 홀씨를 퍼뜨렸지만, 겨울을 이내 몰고 왔다. 끝없이 내리는 눈처럼, 두개골 속까지 꽝꽝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기온처럼 대포소리가 울렸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자꾸만 생각났고, 숲에서 울리는 영원한 속삭임 속에서까지 그 말이 떠올랐다.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그것은 참 이상한 말이었다. -p.60
14세의 주인공 얀 트바르도브스키는 겨울을 버텨낸 민들레 홀씨였다.
#2. 유럽, 문명의 요람이자 무덤.
20세기 이후의 유럽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뛰어난 과학 기술과, 탁월한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대학이 숨 쉬는 땅이었다. 철학이 발달하고, 합리적인 사고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때, 어안이 벙벙해지는 일이 벌어졌다. 전쟁. 그것도 엄청난 규모의 세계대전이.
“유럽의 대학들은 문명의 요람이었지. 하지만 또 다른 종류의 유럽의 교육도 있단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받고 있는 교육이지. 총살 집행반, 구속, 고문, 강간,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모든 것의 파괴. 암흑의 시절이지.” -p.93
세계의 겨울은 유럽에서 시작됐다.
#3. 판도라의 도움 : 헛되지 않은 희망
열네 살의 소년은 1년 동안의 빨치산 활동을 겪으며 교육을 받게 된다. 스케이트를 어설프게 타던 독일군 병사를 총으로 쏴 죽이고, 야네크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유럽의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수하고 만다. 다른 한 사람이 등장한다. 희망을 노래하는 빨치산 도브란스키. 그는 글을 쓰며, 전쟁의 겨울이 지나면 민들레가 곳곳에서 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전쟁의 끝을 목격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도브란스키는, 희망을 계속 잇는 사람으로 야네크를 지목한다. 절망에 빠져있는 야네크와 희망을 노래하는 도브란스키. 유럽의 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몫은, 어디까지나 학생에게 있는 것 같다.
전쟁은 끝났고, 폴란드는 독립국이 되었으며 올해 봄에도 민들레는 피었다. 내년에도 민들레는 노란 머리채를 흩날리면서 피어날 테다. [인상깊은구절] “사람들은 서로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이어 그 이야기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지. 그들은 그로써 신화가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자유, 존엄성, 형제애, 인간으로서의 명예. 우리 또한 이 숲에서 동화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있는 거야.” -p.76 절망은 어디에나 떠돌고 있어. 옛날부터,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p.78 그냥 한 인간이었지. 그는 마음속에 있는 인간성의 호소에 설복당해 결국 독일 병사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린 거였어. 하지만 우리는 그것밖에, 그 꼬리표밖에 볼 줄 몰랐지. -p.80 “우리는 지금 글라이더 활공 중이야.” 그가 이렇게 기분을 표현한다. -p.128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뿐인데,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 죽지 않는 것, 얼어 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지구는 둥글며 자전한다든가, 맞춤법이 어떻게 된다든가 하는 것 등 제 나이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다 깨우치는 것보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p.194 그때 문득 야네크에게는 인간 세상이 어떤 거대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먼 채 꿈만 꾸는 감자들이, 자루 속에서 무정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라는 것이었다. -p.269 불사, 무적의 대장, 절대로 적의 손에 잡히지 않고, 그 어떤 방법으로도 체포되지 않는 대장. 어둠 속에 있을 때 용기를 내기 위해 노래를 부르듯이, 우리는 그렇게 하나의 신화를 창조해냈던 거야. -p.271 인간은 결코 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일렁이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었다. -p.272 “너는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어째서?” “왜냐하면 너는 불행하니까.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는 그 무엇도 너를 불행하게 하지 못해. 알겠지. 나도 대단한 걸 배웠어.” -p.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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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탄생이, 얼마나 많은 죽음이 필요할까?" (282면)
명분 있는 전쟁이 과연 있을까? 대부분의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20세기 초 세계를 광풍으로 몰아넣었던 1,2차 세계대전 또한 인간의 허황된 욕망이 불러일으킨 참극에 지나지 않았다. 로맹 가리의 데뷔작인 <유럽의 교육>은 세계사에 유래없는 이 참극을 총과 포탄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한 발 떨어진 숲 속의 빨치산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14살 소년인 야네크의 눈으로, 각각의 사연을 가진 빨치산들의 경험담을 통해,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마을을 점령하고 있는 독일군의 만행을 통해 전쟁의 허구성을 유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많이 생각났다. 산으로 쫓겨간 이들, 빨치산... 그들은 왜 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가. <태백산맥>의 빨치산들에 비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이 느슨해보인다. 아마도 산에 들어간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명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태백산맥>의 빨치산들과는 달리 이 책의 빨치산들은 빼앗긴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저항의 수단으로 산을 택했다.
<유럽의 교육>이란 책의 제목은 이 책의 빨치산 중 한 명인 도브란스키가 창작하는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유럽의 교육'을 전쟁과 파괴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교육이라 명명한다. 그래서 도브란스키는 이 악조건 속에서도 진실은 있으며 훗날 믿음을 주고 희망이 될 피난처로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책이 되길 바란다.
"진실이란 역사의 순간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과 같은 시간 속에 있어. 그런 때에는 인간이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모든 것,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모든 것이 은신처를, 피난처를 필요로 하지. 그 피난처는 음악일 수도 있고, 시일 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어. 나는 내 책이 그런 피난처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지. 전쟁을 겪은 후, 모든 것이 끝난 후 그 책을 펼 때 사람들이 아직 다치지 않고 남아 있는 자신들의 선의를 다시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지. 저들이 우리를 짐승처럼 살게 했지만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원해. 절망한 예술이란 없어. 절망스러운 것, 그건 오직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뿐이지." (79면, 도브란스키)
그러나 어린 야네크와 그의 여자친구 조시아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래서 유럽의 교육을 전쟁과 파괴가 난무하는 세상 그 자체로 바라보며, 인간의 본성을 의심한다.
"유럽의 대학들은 문명의 요람이었지. 하지만 또 다른 종류의 유럽의 교육도 있단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받고 있는 교육이지. 총살 집행반, 구속, 고문, 강간,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모든 것의 파괴. 암흑의 시절이지." (93면)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고통을 겪는 데 '마지막'은 없었다. 그리고 희망은, 새로운 고통을 견뎌내도록 인간을 격려하기 위한 신의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194면, 조시아)
"'더 이상 전쟁이 없게 하기 위해서 스탈린그라드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어.' 하지만 이미 그녀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 사람들은 어떤 사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맞서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 병사의 힘은 분노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것, 그리고 문명의 발자취들은 폐허일 뿐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4면, 조시아)
'유럽의 교육'이 어떠한 의미를 갖든지 불변할 수 없는 진리는 전쟁을 통해 많은 이들이 죽고 상처받았다는 것이다. 도브란스키의 말처럼 희망을 만들 수 있는 교육이 되려면 유럽 자체의 전쟁도 종식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이후로 전쟁 또한 발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도브란스키의 말처럼 되기를 희망하면서도 결국 인간이기에 똑같은 오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 수많은 전쟁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적어도 젊은이들이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가지려면, 그리고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하루빨리 소모적인 전쟁과 파괴의 행위를 멈추어야 할 것이다.
"이 전쟁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 적어도 참전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고 있다. 또 귀환해봤자 그들의 가정은 파탄이 나 있을 것이다. 아니다. 전쟁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이다." (267면, 클렙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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