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에 비하면 분명 인간 사회는 진보했고 그 속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사상은 현대 사회를 이루는 가장 큰 두 축으로 자리매김한 듯 하다. 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는 사회를 통제하는 기제가 보다 세련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신분제 등은 존재하지 않고 법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한 존재로 이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삶의 질, 수준이 똑같지만은 않음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는 많은 이데올로기들을 가동하고 있으며, ‘정상’이라는 범주 속에 세상을 가두고 있다. 그 범주에 속한 소수의 사람들만의 평등이 모든 사람들의 평등으로 이야기된다. 언론매체 등은 그런 기제들을 보다 강고히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정상 범주로부터 탈피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위 ‘탈영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상의 범주에 속해있을지도 모르는 우리가 탈영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가식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정상이라는 식의 사고 역시도 세상에 의해 강요당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의 피곤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숱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정상의 범주에 포함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심화되어가고 있는 경쟁으로 나타나며 나, 우리 가족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한 배제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현대사회에서는 나와 다른 것들을 짓밟음으로 인하여 나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사회를 구성하는 주류 질서로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주체들은 모두 주류 사회 속에 속할 수 없는, 소외당한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주류 사회에 의해 끊임없이 이용당하면서도 그들 스스로를 주류 사회 속에 편입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오늘날 과열되어 있는 입시 경쟁, 명문대 지향의 모습 등은 한 예에 불과할 뿐이다. 그 모든 것을 우리는 혐오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만큼 그 배제의 기제들은 너무도 섬세하고 세련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세상은 여성들을 일정 나이가 되면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잠재적 임신부이자 어머니로 파악한다. 그 주류 질서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소위 ‘악한 여자’ 라는 수식어만이 달라붙을 뿐이다. 여성의 어머니로서의 숭고함은 한없이 찬양되지만 그 찬양은 남성의 눈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작 여성 자신은 어머니라는 지위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고된 싸움을 벌여야만 한다. 남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남성은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1차적 주체로 모든 짐을 짊어진다. 그 무게는 너무도 무겁기에 그들의 어깨는 오늘도 축 쳐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 질서에 대해 반항할 용기를 갖지 못한 듯 하다. 왜 성공해야 되고 출세해야 되는지를 알지 못하고,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를 묻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보이지도 않는 목표에 집착한다. 세습되는 계급을 부정하는 속에서 계급 타파 아닌 보다 상류 계층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움직임만이 보인다. 한국 근대 역사에서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였던 지식인들이 지녔던 모순을 우리는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이를 끌어안고 사랑을 실천한다는 기독교는 타 종교를 배척하고 이단에 대한 금 긋기를 통해 스스로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시 되어온 철거민 문제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바라보면서 단순히 불쌍하다는 식의 동정론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며, 동시에 투쟁할 여력조차 없었던 이들은 망각하는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 역사는 항상 주류만을 기억했고 1등만을 기록으로 남기는 모진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주류를 가능케 한 것은 비주류가 존재했기 때문임을 우리는 애써 부정해왔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서로가 서로를 짓밟으면서 평등을 이야기하고 행복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분히 모순적이다. 관심을 가지고 나와 다른 형태의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해 이해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그러한 삶을 살아보지 않는 이상 타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부정확하고 왜곡된 형태의 진술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에서부터 모든 변화는 시작한다는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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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책은 읽어야할 필요성은 절실히 느끼지만, 사실 한권을 다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그 한자어로 된 용어부터 압박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하나의 논의를 위한 수많은 설명들이 나를 부담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쉬운 표현을 쓰는 책, 여러 개의 논문을 하나로 엮은 책을 좋아한다. 이 책 <탈영자들의 기념비="">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가 귀화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한국어 실력과 한국에 대한 통찰력을 자랑하는 박노자, 여성과 관련해 좋은 글을 종종 만나게 해주는 정희진, 우리학교 교수님 김두식, 그리고 그 외에도 중요한 주제를 잘 다뤄준 필진들에게 감사.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주류 신화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소수'라고 생각하는 집단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지만 '소수'라는 딱지가 부정적인 의미로 작용해서는 안될 상황들, 그러나 소수이기에 제 목소리를 못내고 피해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밖에. [인상깊은구절] p36 어머니와 '창녀'는 남자(아들)를 위해 같은 목적으로 일한다. 다만 상황에 따라 하는 일이 조금 다를 뿐이다. p46 한국사회가 전체 예산의 4분의 1을 국바이에 쓰면서도 이 정도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여성들의 가족 내 무보수 노동으로 사회 복지 비용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p256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그들이(성을 파는 사람들-연진 주) 특별히 보호되고 통제되어야 할 '유별난'인권을 가진 집단도, 단일하게 정체화될 수 있는 집단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들을 보호, 통제, 금지하는 법이나 정책의 존재, 이들을 특정 집단화하는 편견, 그 자체가 끊임없이 인권 침해의 소지를 재생산하고 있는지 모른다.탈영자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