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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남의 문제일 경우에는 성경에 기록된대로 믿거나 그럴 수도 있다라고 말을 할 수 있지만, 나에게 다가온 문제일 경우에는 도무지 이해되지도 않을뿐더러, 억지로라도 이해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법이다. 호세아의 인생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남자라면 누구나 좋은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여 가정을 일구어 안정된 생활을 하고자하는 본능이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래서 서둘러 결혼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세아 역시 자신의 이상형인 여자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일구고 안정된 생활과 사역을 하고자하는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기도도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다가온 하나님의 음성은 그가 그동안 꿈꿔오던 것과는 상관없이 다가온다. 「호세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 하나님의 이러한 음성이 들려온다면 나라면 어떡할까를 생각하고 고민해보았다. 평생을 함께해야 할 여인이 나만을 사랑해주는 사람,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남자를 알고 또 그것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나 같으면 사명이 무엇이건 간에 쉽게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하나님의 이러한 명령이 이해되지 않고, 오히려 절망스러웠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생각에 고멜이 자신의 아내가 될 여인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를 바라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늘 외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전히 사랑함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집나간 고멜을 호세아가 다시금 찾아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날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집을 나가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여서 다시금 하나님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신다. 이것을 호세아가 알았기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순종이란,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따르는 것을 순종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99.999%의 결단을 요구하고 계시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100%의 아무 결손이 없는 순종을 원하고 계신다. 그것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호세아」,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선지자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야기 형식의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호세아의 삶을 드라마처럼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호세아의 삶을 엿볼수 있다. 작가의 동화적인 마음이 담겨져 있어서 성경의 딱딱함을 잘 보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목가적인 작가의 솜씨로 인해 인간적인 호세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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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의 성경의 이야기를 만났다. 깊은 성경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안내하였던 E.K 베일리의 또 다른 책은 바로 <호세아>(가치장조CB.2009)이다. 동일 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목수 레바이, 삭개오의 고백)의 책을 통해 그의 책에서 가지고 있는 힘을 경험했던 나이기에 이 책 역시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쉽고 재미있게 메시지를 확실하게 안내하는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이 책에서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본문의 호세아와 고멜은 설교나 책을 통해 자주 인용되는 본문이다. 따라서 작가의 글의 방향이나 메시지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창녀와 결혼한 선지자로서만 알고 있었던 호세아의 새로운 모습과 깊은 내면의 세계를 경험하였던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호세아에게서 직접 듣는 듯한 내면의 목소리와 순종했지만 결국 인간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고야 만 호세아의 모습을 통해 나 역시 동일한 한계와 동일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다. 거창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픈 그에게 느닷없는 결혼이라는 사명은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의 살아있는 상지이자 표본이 되라(16p)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본문은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과 호세아의 고민과 순종 그리고 하나님의 깊은 은혜와 깨달음을 매우 자연스럽게 풀어가고 있다. 사실 선지자로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그럴듯한 대변자로서의 모습이길 원했던 호세아였기에 그의 이 땅에서의 사명이 결혼이라는 (그것도 행실이 깨끗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답을 말씀하신 하나님을 깨닫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경험과 이성을 뛰어넘고 이해 할 수 없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의 앎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방향과 목소리를 거부하고 우리의 힘으로 결정하고 답을 찾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우리의 이러한 경험과 지성보다 더 뛰어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자 삶의 행복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선지자와 창녀가 결혼한다는 것,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그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을 사랑하시는 당신의 끝없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으신 것이다.’(43p)가 이 책의 메시지이자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 하나님의 목소리에 고민하는 호세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호세아 그리고 깊은 은혜와 깨달음을 100여 페이지의 얇은 책에 모두 담아내는 저자의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호세아의 모습을 통해 은혜 없는 율법에 갇힌 우리들에게 경종의 메시지이자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고 있다. 호세아를 통해 많이 느끼고 배웠던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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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호세아
호세아. 성경에서 만난 선지자. 설교시간에 만난 선지자. 내가 호세아에 대해 아는 것은 창녀와 결혼한 선자지라는 것 그 이상은 별로 없었다. 창녀와 결혼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호세아의 삶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경만 읽어보면 어렵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성경을 더욱더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호세아의 순종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악하여 그들을 구원하겠다고 말이다. 악하다면 별을 줘야 할텐데 하나님은 반대로 구원을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랑의 힘으로 구원하겠다고 호세아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결혼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호세아는 안된다고 말을 한다.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말을 한다.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 창녀와는 결혼할 수 없다고 말을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한다.
순종하지 못하는 이 시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유들로 순종을 거부할까? 나의 기준, 사회의 기준을 들이대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는다. 심지어는 신학자의 기준을 성경보다 더 권위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칼빈이 어쩌고 하면서 성경을 버리고 칼빈의 저서들을 마치 성경처럼 떠받든다. 그 모습과 유대교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뭐가 다를까? 똑같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목사님의 말이라면 빈대떡에 빈대가 들어간다고 해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썩는 것이다. 옛날에 성직자 외에는 성경을 읽지 못하는 한 것과 지금 이시대에 성도들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이 뭐가 다를까? 똑같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용서와 사랑을 말씀하셨다. 어떠한 죄를 지었더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 어떠한 죄를 지었더라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호세아의 결혼을 통해 말씀하신다. 도망간 아내를 다시 용서하고 사랑하는 호세아를 통해 말씀하신다. 용서는 사랑이다. 사랑한다면 용서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이 아니어도 우리는 용서를 하며 살아야 한다. 용서받은 사람이기에 죄사함을 받은 사람이기에 용서를 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용서하는 사람을 자주 보지 못한다. 그만큼 용서가 힘들기 때문이다.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한다. 느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껴보자.
하나님의 방법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방법이 이해 되지 않는다며 제각각 자신의 판단대로 살아간다. 하지만 호세아처럼 믿고 순종하는 것은 어떨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은 바로 호세아처럼 아무리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그냥 순종하는 모습일 것이다. 내 삶을 돌아보았다.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고집부리며 내 맘대로 살아온 삶들을 돌아보았다. 순종하자. 이제는 순종하다. 모든걸 주님께 맡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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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재건함으로 이스라엘을 다시 재건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방의 빛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택한 그릇이 되었다. 모두 멋지고 감동적인 사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구약에서 많은 선지자 가운데 이상한 사명을 가진 선지자가 있으니 그 사람이 바로 호세아이다.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창녀를 사랑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참 말이 안 되는 사명이다.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에게 창녀와 결혼하는 사명을 주다니. 성경을 통해서 참 의문이 가는 사명을 받은 호세아의 이야기를 E.K 베일리 목사님이 동화 형식으로 책을 썼다. 그 책이 바로 <하나님께 순종한 선지자 호세아>이다.
얇은 분량의 책속에 많은 삽화까지 있어서 책 읽기가 너무 수월하다. 빨리 읽으면 30분이면 다 읽을 양 밖에 되지 않는다. 번역자의 에필로그까지 107페이지 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냥 빨리 읽을 수 없는 이유는 잔잔한 감동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호세아서를 성경에서 읽으면서 늘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멜의 마지막이었다. 호세아는 자신의 신분, 체면, 가문을 포기하고 고멜을 택했고, 다시 종 되었던 고멜을 샀는데 과연 고멜은 어떻게 살았을까? 작가 E.K 베일리 목사님은 고멜이 호세아의 사랑에 의해 그의 아름다운 신부로 변화된 그림을 보여 준다. 호세아가 자신을 내어 준 사랑으로 고멜은 아름다운 고백을 하게 된다.
“호세아, 내 남은 평생 당신의 종이 되겠어요”
인간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호세아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자신이 만든 인간에 의해 죽어가는 예수, 자신의 아들을 죽임으로 인간을 구원한 하나님역시 이해할 수 없는 분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할 가치가 있는 존재를 사랑한다. 예쁜 연예인, 멋진 운동선수, 성공한 CEO, 정치가, 경제전문가, 대학교 교수 등 모두 사랑받을 만한 가치를 소유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뇌성마비 환자, 식물인간, 변두리의 창녀, 서울역의 노숙자들은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런 가치 없는 자들의 하나님이 되길 기꺼이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듯 하나님은 인간이라는 피조물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다. 호세아에 나오는 하나님은 위엄을 버린 하나님, 심판이 아닌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께 순종한 선지자 호세아>를 읽으며 찢어진 옷, 상하고 버림받은 고멜을 사랑하는 호세아의 뒤 모습에서 인간을 한 없이 사랑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죄 값을 담당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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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성경의 호세아서를 접하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을 느끼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사실 나 자신조차도 호세아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고 하면, 그 말씀에 순종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고 하면, 아마도 나는 이런 하나님이라면 나는 믿을 수 없다고 오히려 믿음 안에서 뛰쳐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자는 그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본다. 순종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순종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순종이다. 하지만 순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순종한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순종이 참된 순종이요, 가치있는 순종이 아닐까 싶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순종을 드린 것이다. 어느 누가 고멜과 같은 창기와 창녀와 결혼하고 싶겠는가? 모든 사람이 꿈꾸는 결혼은 순결한 결혼이요, 모두가 축복하는 결혼일 것인데, 모든 사람이 비웃는 결혼을 누가 하고 싶겠는가? 심지어 이미 더럽혀질대로 더럽혀진 결혼이라고 하면, 그것은 결혼으로서의 가치를 이미 상실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하여 결혼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시니 사랑했다. 어느날 고멜이 나가버린 이후에 고멜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발견한 호세아 선지자.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고멜과 같이 음란한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음란하게 세상과 짝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지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음란한 고멜을 사랑하는, 끝까지 찾아다니는 호세아의 모습은 음란한 이스라엘을, 그리고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끝까지 찾아다니면서 사랑한다고 고백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내 모습 가운데, 혹시 고멜과 같은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호세아 선지자의 모습은 나로서는 도저히 닮을 수도 없고, 따라갈 수는 더더군다나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은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되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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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선지자들 중의 하나인 호세아 선지자.
BC8 세기 경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러보암2세 시대에 활동한 이스라엘의 예언자. 12 소선지서 중의 하나인 이 호세아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인간의 타락과 음란, 죄성을 모두 다 껴안으시며 사랑하시는 신의 대변자? 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 호세아 선지자.
하지만,나는 지금껏 호세아서를 읽으면서 그가 인간적으로 겪었을 고통과 번민, 괴로움, 아픔 등을 앞서 생각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촛점을 맞추어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고멜의 입장에서 서 보지 못함을 후회하게 되었다.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그것을 가끔 부정하는 인간들, 되돌아 오려는 방탕한 음녀와 같은 고멜을, 결국 받아들이지 못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만드는 우리의 이기심들 그리고, 너무나 고멜을 사랑하지만, 자신도 이중의 잣대로 고멜을 대하고야 만 호세아의아픔들!
얼마나 어려웠을까 싶다. 이 책에 있는 호세아의 고백처럼, 남들처럼, 선지자의 자리에 걸맞는 아내를 골라서, 그 아내와 함께 하려는 조금은 선지자로서 평범한 삶을 거부해야 하는 호세아의 운명! 그리고 그것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죽음과 맞바꾸려 고민하다가, 결국 하나님 앞에 순종하게 되는 호세아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하지만, 또 남들보다 조금 더 잘나기를 원하는 인간의 아주 평범한 욕구들을 뛰어 넘어 , 그 너머까지 손짓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결국, 끝까지 배반할 수 밖에 없지만, 하지만, 맘 속, 저 깊숙이서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간절히 가지고 있는 고멜같은 우리들의 모습!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선물을 받아서 너무나 감사히 살다가, 하루 하루 반복되는 일상들과 부끄러운 모습들 때문에 결국 또 다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
이 책은 중간 중간에 포함되어 있는 삽화와 아울러 그리 많은 활자가 차지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101페이지에 달하는 이 작은 책은 참 많은 여백이 있었고, 오히려 그 많은 여백을 통하여 우리에게 더 많은 얘기를 해 주고 있었다. 호세아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리고 많은 주변인들의 손가락질 속에서 나 역시 그들이 되어 호세아와 고멜을 성토하고 있었다. 또 한사람! 내가 놓쳤던 고멜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남편인 호세아를, 저주하고 수군거리던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호세아의 전 생활을 건 순종, 그리고,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결국 다시금 죄로 돌아가게 말았던, 안타까운 여인 고멜과, 그리고 군중들 ....... 끝까지 손가락질 하는 용납하지 못하는 그들까지도 받아들이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고멜을 찾아 손가락질하기에 급급했던 나를 반성하고, 되돌아 보는 선한 계기가 되어준 책이 무척이나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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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로서 호세아서를 읽어보니 참 색달랐다. 수십 번 읽어보기도 했고, 그와 관련한 주석 책들을 읽어보고 여러 번 설교도 해봤지만 그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호세아 선지자의 마음이 어땠을까? 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신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다시 생각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여전히 하나님은 인내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하나님이시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계획을 사람이 쉽게 알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저 순종하고 따르는 길을 선택한 호세아 선지자의 모습이 멋있었다. 하나님께 순종한 선지자 호세아
호세아 선지자. 선지자라는 위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역시 사람인지라 처음부터 순종의 길을 가진 못했다. 여러 번의 반항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고멜 역시 처음부터 불순종의 길을 간 것은 아니었다. 선지자의 아내로 살기를 결심하고 살았지만 여러 환경이 그녀를 다시 음란한 길로 내몰았다. 순종과 불순종 분명 당사자들의 선택으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당사자들의 주변에 거하는 우리들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도와주면 안되는 것일까?
나 역시 호세아 선지자가 궁극적으로 선택한 그 길을 선택하고 따르고 싶다. 그러나 쉽지 않음을 안다. 나는 용서를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용서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안다. 나를 힘들게 했던 많은 사건들이, 여전히 내 앞에 있는 많은 장애물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 고멜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의 손가락질과 수모를 참고 아내를 받아 들여야 했던 호세아 선지자 그는 모든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멸시와 천대를 견디시고 자신의 육신을 던지신 예수그리스도를 생각게 한다.
호세아서의 핵심 메시지는 6장 1-3절에 나타난다. 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절,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여호와께로 돌아가자(1절) 그 앞에서 살자(2절) 여호와를 알되 힘써 알자(3절) 여호와 하나님 그분께로 돌아가고 그분 앞에서 살며 그분을 힘써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호세아 선지자가 말하려는 바요, 이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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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베일리 목사님의 책을 두번째로 읽었다. 먼저 읽었던 삭개오의 고백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고백이었다면 이번의 책 호세아는 내면의 갈등과 고뇌가 느껴지는 내용이 담겨있다. 구약의 선지자 호세아는 참 특이한 결혼을 하게된다.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선택에 순종하여 결혼한 선지자다. 그의 아내 고멜은 음란한 여인, 창녀였다. 그런 여인과 결혼했으니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이었을 것이다. 남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연일 오르내렸을테고 고멜과 결혼한 호세아마저도 그들 사회에서 완전히 퇴출시켰을지도 모를일이다. 누가 그의 선택을 이해하고 감싸주려고 한 사람이 있었을까 아마도 없었을것이다.호세아는 자기가 기도하던 아내상이 있었을텐데 그것을 지우고 하나님께서 짝 지워준 여인과 결혼해버린다.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 고멜은 호세아 곁은 지킨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과 말로 인해 더이상 참지 못하고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런 고멜을 다시 찾아와서 아내로 삼는 호세아는 과연 어떤 선지자란 말인가. 그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섬기다가 보이는 이방 신들을 섬기게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이방신들을 더 선호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소리치지만 사람들은 보이는 이방신들만 섬기게 된다. 이런 모습을 빗대어 호세아와 고멜을 등장시켰고 결혼시키셨는지도 모른다. 음란하기 짝이 없는 고멜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시기 위해서 호세아로 하여금 고멜과 결혼시키신게 아닌가 보여진다. 지금은 음란을 부추기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음란한 문화와 짝하면서 하나님께 돌이키기 어려운 시대다. 작금의 교회는 고상한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들이고 있는게 교회여서는 안되는데 그러고 있고 소외되고 상처진 사람들이 시대의 조류를 따라 사는게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세태를 통해 호세아를 통해 배우는 것은 죄지은 고멜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그녀를 찾아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교회안에 너무 깨끗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깨끗지 못한 이들이 들어오기에는 교회 문턱이 높아만 보인다. 사람을 고르는 모습이 있어서는 안되는데 그런 모습이 보여지기때문에 안타까운 것 같다. 하나님은 누구나에게 열려진 분이시다. 그분을 알기원하시고 믿길 원하신다. 우리는 그분을 잘 모른다.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그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깊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고멜과의 어려운 결혼 생활을 돌이켜보며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들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아 알게 도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이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을 가지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결혼생활이 늘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어려움을 통해서 나와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되어지는 바가 있다. 순간순간 포기하기를 잘하는 나와는 달리 이기적인 사랑으로 가득한 나와는 달리 하나님은 포기가 없으시고 절망이 없으시고 사랑으로 가득하신 분이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나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게 하신다.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가장 좋은 사랑을 발견하게 하신다. 혼란하다면 아직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환해진나. 하나님은 우리가 거기까지 자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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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베일리 목사님의 책은 가치창조에서 출간된 <삭개오의 고백> 이후 이번이 두 번째이다. 이전의 책에서도 그러했듯이 수채물감의 느낌이 물씬 나는 삽화와 다양한 폰트와 글씨의 크기, 중요한 부분에는 글씨의 색깔을 다르게 하기도 하고 아예 종이 색깔을 다르게 선택해서 더 집중하고 더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표현 하나하나가 모두 가슴에 와 닿았기에, 여러번 곱씹어서 읽고 또 생각해 보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사랑에 감격하고 또 감격했다. 지난 책에서도 삽화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책은 특히나 호세아의 행동과 고멜의 표정을 통해, 글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알 수 없었던 감정들까지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변자라고 익히 들어왔다. 창녀인 고멜과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심지어는 자기를 버리고 떠나 간음을 행하는 부인을 용서하고 다시 맞아들여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다. 선지자란 인간적인 마음과 자신의 의지를 다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하고 그 분의 말씀을 대언해야 하는 자이지만, 다른 것도 아닌 창녀와의 결혼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 과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경만 읽었을 때에는 호세아의 갈등과 고뇌를 느끼진 못 했었다. 다른 선지자들처럼 그 또한 쉽게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뭔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 당연하리라 생각했나보다. 이번 책을 통해서는 그간 느끼지 못했던 호세아의 인간적인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그도 인간이었기에 곰레과의 결혼을 결정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더더구나 고멜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을 때 용서하는 것 또한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보게 되었다.
죄를 지은 고멜, 죄를 지은 이스라엘의 잘못도 크지만 그 죄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호세아까지 용납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그 분의 무한하신 사랑에 감격하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면서, 다른 사람의 약한 모습을 정죄하고 용납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호세아도, 그런 나도 용서하시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를 열어주시고 기다리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다시 안아주실 분이심을 알았기에 이젠 실수하고 실패할 지라도 다시 한번 더 그 분께 나아갈 용기와 힘을 얻게 된 귀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