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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서양 철학 최초의 윤리학서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독서했다는 뿌듯함이 아니다. 명색이 학생들에게 '도덕'을 가르치는 윤리교사로서, 이제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읽었다는 부끄러움이다. (게다가 이 책은 완역본도 아니고 요약해설서이다.) 나에게 없는 것은 고전을 끈기 있게 곱씹을 '인내심'이 아니라, 여유 있게 책과 마주할 '시간'이 없는 것이라고 자신을 합리화 하지만, '이렇게라도 읽는 게 어딘가?'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스스로를 보며 '여전히 갈 길이 멀다'라고 생각한다. 우려했던 거와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숙독하는데 그리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대학 재학 시절 전공 전문서적들과 씨름하며 고민했던 지성의 날이 아직 그렇게 많이 무뎌지지는 않았나보다. 이데아(형상)가 최고선이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이 도덕적인 삶이라고 규정했기에 '윤리학'을 형이상학의 영역에 포함시켰던 '플라톤'과는 달리,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eudaemonia)이 인간 삶의 궁극적 목표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윤리학'을 실재에 기반을 둔 현실적인 실천 철학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적 기반은, 서양철학사의 그의 위치와 무게를 볼 때 극히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오늘 날까지도 그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는 확고한 틀로 작용한다. '귀족'이라는 그의 출신 성분으로 인해 현대 윤리에서 결코 배제할 수 없는 '민주주의'나 '인권'같은 개념은 비록 ('윤리학'이라는 타이틀과는 어울리지 않게) 찾을 수는 없지만, "'중용'이라는 메커니즘을 반복 실천하여 'arete'(탁월성 또는 덕)을 내재하여 'agathon'(선 혹은 좋음)에 이르고, 궁극적으로는 '행복'에 이른다."는 이 책의 핵심적 논거는 누구에게나 설득 가능할 만큼 보편적이며, 누구에게나 설명 가능할 만큼 상식적이다. (주어진 과제는 '교육 활동을 통하여 어떤 구체적인 방식으로 학생들의 덕을 내면화하는 것이냐'이다.) 나의 무지와 지적 허세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2,400여 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결례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비록 요약서이긴 하나 그의 책을 읽고 철학하는 동안, 즉 지적인 활동을 위한 관조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개인적으로 나는 행복했으므로 그의 의견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공감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