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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최근세사요 종막을 고하는 드라마이기도 한 청사(淸史)는 의외로 한국인에게 인기가 없었다. 현대 중국의 강역 얼개를 형성한 것도 청대의 일이요, 그 가장 안정적인 통치 시스템과 경제 번영을 누린 것도 이 시대의 일이며, 황제 1인 통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팩터인 '뻬어난 천자의 자질' 그 전형, 정수를 보여 준 것도 단연 이 황조의 몫으로 돌아가야 하며, 하다못해 말년 시스템의 급격한 노화와 통치자의 부패로 새 시대 공화혁명(나아가 공산 혁명에까지!)의 단초를 열어 준 것도 이 '마지막 황조'의 공이라면 공이다. 이런 매혹과 관심의 결정체인 왕조사가 어째서 한국인에게만은 그 주시의 사각에 그간 놓여 있었을까? 첫째는 본토에서조차 겪지 못한 수위로 고조되었던 성리학의 교조화에 매몰된 지식층이 (당대의 일이니 당연하기도 하겠지만) 이미 경전화를 넘어 사문화의 경지에 도달했던 중국사(이른바 18사)의 숭앙에만 집착한 나머지, 그 고지식한 조상들의 영향만을 냅다 받은 한참 후대의 후손들조차 청대사에 눈 돌릴 엄두를 내지 못했고(할아버지가 읽던 책만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다음으로 중화민국 대에 들어 간신히 이루어진 정사화의 지지부진 탓일 수도 있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나름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연암의 저작에서조차 드러나듯) 역사 고찰을 넘어 청 제국 자체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이야 대륙에서 제작된 드라마의 방영만으로도, 나름 흥미진진하기도 하며 유익한 교훈을 담뿍 담고 있는 갖가지 정치사에 대해 일반인조차 빠삭해지는 혜택을 입고 있기도 한 시절이고, 따라서 이 '강건성세'의 갖가지 이벤트에 대해 제법 몇 마디 말줄도 꺼낼 줄 아는 이가 많다. 그렇다면 과거로부터의 고리타분한, 화석화한 텍스트라 해서 경원할 게 아니라, 영상을 넘어 문자 교본으로부터도 한번 지식을 정리하는 작업에서 다른 보람을 찾을 수도 있다.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이 시리즈에는 풍부한 팩트가 담겨 있으며, 그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어설픈 사회학 지식 몇 점을 갖고 함부로 일반화한 결론을 끌어내거나 견강부회격 왜곡을 일삼는다면, 이야말로 지식의 천박함을 폭로하는 소치요 누백 년에 이르는 오명을 자초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통찰과 교훈도 팩트에의 철저한 고찰 없이는 나올 수 없으며, 행여 설익은 명제의 나열 만으로 어리석은 대중에게 착시를 유발, 얄팍한 인기몰이나 선동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그만큼 수치스러운 일도 없다. 옹정은 오랜 동안 불안정한 후계자의 위치에 머문 사람이었고, 일정 시점 이전엔 아예 후계자 물망에서조차 벗어나 있던 인물이라 묘호나 연호보다는 그 본명 '윤진'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지금 엘리자베스 여왕의 적장남인 찰스도 노년에 접어든 나이지만, 이 윤진도 그 부친 강희제가 워낙 건강 체질로 탁월한 치세를 펼친 탓에, 그리고 그 쟁쟁한 후계자, 동렬의 형제들과 치열한 황위 각축을 벌인 탓에, 지존의 위상에서 대접을 받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고, 만세야의 칭호를 들은 기간은 더 짧았다. 3권 구성의 시리즈 중 이 책의 분량은 당연 그런 사정을 반영하여 가장 적은 편이다. 이 등예쥔의 저작은 (여러 차례 내가 이야기한 것처럼) 심오한 통찰이나 학적 깊이가 대단히 부족한 반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명명에서 보듯 상업광고적 카피 추출 능력이랄까,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표어화 수완은 대단히 뛰어난 편이다. 정통 역사서에 애정을 갖던 분은 이런 류의 속 보이는 처세술 서적에 염증을 느낄 만도 하지만, 진정 역사에 천착할 줄 아는 이라면 오히려 프로파간다에서도 팩트를 추출하길 백사장에서 사금 거르듯 희열을 느껴 가며 행할 줄 아는 능력자라고 할 수 있다. 팩트의 충실한 배치와 누락 없는 사실의 서술이 비록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이 책의 독자적 가치를 대체할 수 없게 하는 미덕임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