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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내용보기
시대의 스승이라 불리는 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뜰 때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6년 전 리영희선생이 세상을 떠날 때도 그러했고, 작년에 신영복선생이 세상을 뜰 때도 그러했다. 그분들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글을 통하여 많은 각성과 깨우침을 얻었던 지라, 나 또한 그 분들을 스스럼없이 내 인생의 스승이라 부른다. 리영희선생의 글로 인해 젊은 날 삶의 방향이 바뀌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내용보기

  시대의 스승이라 불리는 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뜰 때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6년 전 리영희선생이 세상을 떠날 때도 그러했고, 작년에 신영복선생이 세상을 뜰 때도 그러했다. 그분들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글을 통하여 많은 각성과 깨우침을 얻었던 지라, 나 또한 그 분들을 스스럼없이 내 인생의 스승이라 부른다. 리영희선생의 글로 인해 젊은 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면, 신영복선생의 글은 내가 현실의 삶에 이끌려 가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러기에 그분들이 떠나고 난 지금, 더 이상 그분들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크기만 하다. 그러던 차 신영복선생의 유고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스산하고 답답하기만 한 가슴을 적시는 한줄기 시원한 소낙비였다.

 

  내가 신영복선생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90년대 초반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그 후 선생의 저작이 새로 나올 때마다, 혹은 미처 읽지 못한 저작 한 권, 한 권을 찾아가며 읽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에 나와있는, 말 그대로 동양고전의 독법, 두 가지이다. 그는 고전은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 온 지적 유산을 물려 받는 것으로 역사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그것은 과거, 현재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먼저, 텍스트를 읽고, 그리고 저자를 읽고, 최종적으로 자기자신을 읽는 삼독(三讀)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 한가지이다. 또한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한다. 따라서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서 관철되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내가 고전을 읽을 때마다 선생의 말은 어김없이 생각나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읽으려고 하고 있다.

 

  신영복선생의 유고모음이라는 이 책은, 그가 20대 청년시절에 썼던 수상록과 서간문 7편을 포함하여,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글과 강연 녹취록 등 기존의 저서에 포함되지 않았던 글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일부 내용들은 기존의 저서에서도 인용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처음 보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3부로 구성된 책은 1부에서는 선생의 어린 시절부터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까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글이고, 2부는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던 짧은 글들 그리고 3부에는 강연에서 한 얘기들을 뽑아 수록했다.

 

  그는 감옥에서 출소자 송별식과 같이 피치 못할 경우가 되면시냇물이란 동요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노래의 마지막 구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에 이르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한다. 다 같이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는 눈빛이 되어 숙연해지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출소 후에도 마지못해 노래를 불러야 할 때 이 노래를 부르면,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사람들의 눈빛이 감옥에 있던 사람들과 같아졌다고 한다. 감옥에 있던, 감옥 밖에 있던, 사람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다 다름에도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는 똑같은 눈빛을 보고 사회의 모순을 생각했다는 데에 이르러, 나 또한 동요를 조용히 흥얼거려보지만 역시나 마지막 구절에 이르자 숙연한 마음이 든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게 되고, 내 삶을 규정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어떤 한 개의 단어를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장면에 사람의 얼굴이 담겨있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었다고 말하는 신영복선생은, 관념성을 벗어난다는 것은 연상의 세계가 관념적이지 않을 때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단어를 연상할 때, 사람의 얼굴이 담겨있지 않은 우리의 머리와, 사람과의 관계가 사라져버린 우리들의 삶 속에, 사람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우리가 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공부는 자기자신과 우리 현실에 대한 구조와 본질에 대한 이해라는 그의 말이 비로소 실감 있게 와 닿는다.

 

  그는 또 공부의 시작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부는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변화가 담보될 때 비로소 끝나기 때문에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남아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여행이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이지만, 그 종착지는 자기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느 책에선가 실천이 배제된 책 읽기 보다는 차라리 사유(思惟)가 더 낫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는 것들의 의미를 오늘의 나 자신과, 오늘의 우리 사회에 대입해보면서 책을 한쪽, 한쪽 읽어나간다. 과연 나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신영복선생이 아직 살아계시다면 오늘의 시대현실을 보면서 뭐라고 했을 지를 생각해본다. 책의 맨 마지막, 2013년 한겨레신문에 기고했던 [석과불식,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의 언어]라는 글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다. 그는 1년 전에 떠났지만,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여전히 남아있는 까닭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다.'

k*****1 2017.01.15. 신고 공감 10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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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하면 길은 생겨난다. [손잡고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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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은 두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와 [손잡고 더불어]가 그것이다. 신영복선생의 유고모음이라는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에는 그가 20대 청년시절에 썼던 수상록과 서간문 7편을 포함하여,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글과 강연 녹취록 등 기존의 저서에 포함되지 않았던 글들을 모아서 엮었다면, 이 책 [손잡고 더불어]
"여럿이 함께 하면 길은 생겨난다. [손잡고 더불어]" 내용보기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은 두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손잡고 더불어]가 그것이다. 신영복선생의 유고모음이라는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에는 그가 20대 청년시절에 썼던 수상록과 서간문 7편을 포함하여,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글과 강연 녹취록 등 기존의 저서에 포함되지 않았던 글들을 모아서 엮었다면, 이 책 [손잡고 더불어]는 신영복선생이 가석방 된 다음해인 1989년부터 서거하기 전인 2015년까지 생전에 행한 대담들 중 10편을 가려 뽑아 엮은 책이다. 인터뷰이들의 질문에 대한 신영복 선생의 답변은, 그가 우리사회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시대와 함께 했는지를 알려 주는 책이기도 하다.

 

  20여년 간의 감옥생활에서 느낀 것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그때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매우 사치스럽고 관념적이었음을 깨달았다며, 삶과 사상에 대한 정직한 인식아래 삶과 행동을 일치시키고자 노력했다는 선생의 말은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대의 아픔을 비켜 간 삶을 정직한 삶이라 할 수 없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보아온 많은 사람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지만 말이다. 학교 다닐 때 같이 셔클활동을 했던 많은 사람들, 그 당시 시대의 아픔을 나 몰라라 하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같이 했던 사람들만이 아직도 그 길을 가고 있더라는 말에서는, 자신의 스산한 삶이 이념 때문이 아니라 양심에 기인했다는 말이 가지는 뜻을 읽을 수가 있었다.

 

  이처럼 이념보다는 양심, 존재보다는 관계, 속도보다는 여백을 중시한 선생의 삶에서 그가 왜 동양학에 관심을 가졌는지도 알 것 같다. 오늘날 우리를 규정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논리 혹은 서구 논리는 전부 존재론적 패러다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동양학은 관계론적 패러다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현장에서 말하는 연대는 바로 관계론의 실천적 개념인 셈이다. 그러기에 신영복선생은 연대는 반드시 하방연대, 즉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연대의 상징적인 가시물이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라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대담을 읽어나가면서 그 글과 말 속에 담긴 의미들을 되새겨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신영복선생을 글로써 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온 글들이 [강의] [담론], 혹은 [더불어 숲]이나 [나무야 나무야]처럼 동양고전의 독법이나 기행문이었다. 그 밖의 책들도 산문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상가로써의 신영복선생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대담집을 읽으면서 비로소 조금이나마 그의 사상과 삶의 철학을 엿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여럿이 함께 하면 길은 생겨난다'고 했던 신영복선생. 그가 왜 유난히 '더불어 숲'이란 말을 좋아했는지 알 것도 같다. 우리 모두는 하나, 하나의 나무이지만 나무들이 모여 이루는 숲은 거대하기 때문일 게다. 하나, 하나의 촛불이 모인 광장이 정의를 지켜낼 수 있듯이..

k*****1 2017.01.23. 신고 공감 6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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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 후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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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 후로 다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1998년) 이후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놓치지 않고 보아오다 '강의'와 '담론'에서 머뭇거렸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제야 짐작이 간다. 짐작이 간다는 것은 그간 신영복 선생님을 이해하는 바가 단편적이었다는 것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많은 배움을 받으며 혼자 따르게 되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발간되는 책을 중심으로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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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 후로 다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1998) 이후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놓치지 않고 보아오다 '강의''담론'에서 머뭇거렸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제야 짐작이 간다. 짐작이 간다는 것은 그간 신영복 선생님을 이해하는 바가 단편적이었다는 것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많은 배움을 받으며 혼자 따르게 되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발간되는 책을 중심으로 언론에 등장하는 글을 통해 선생님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알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선생님의 일상에서 앎과 삶의 조화를 떠올렸던 것이 사실상 전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편견은 신영복 선생님의 1주기를 맞아 기획된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 신영복 1주기 특별기획에 포함된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손잡고 더불어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보여 진다. 우선 신영복 선생님을 떠올리면 바른 가치관과 바른 삶의 태도로 곧은 선비라는 인상을 떠올리며 그 틀 속에 갇혀 동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가 아닌 시대의 스승으로만 바라본 시각에서 보다 확장된 이해의 폭을 바탕으로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제시된 것으로 볼 때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은 의미가 크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는 신영복 선생(1941~2016)이 생전에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재구성하다. 생전에 책으로 묶이지 않은 글들을 모은 유고집이다. 특히 20대 청년 시절 신영복의 자취를 보여주는 글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지극히 단편적으로밖에 알 수 없었던 신영복의 성장배경이나 청년 시기에 겪었던 일상적인 이야기들은 선생님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에 충분하다.

 

신영복과의 대화라는 부제를 건 손잡고 더불어는 선생님이 2020일의 수형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이듬해인 1989년부터 타계하기 직전인 2015년까지 나눈 대담 중 선생의 사상적 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담 10편을 가려 뽑아 수록한 대담집이다. 25년 동안 김정수, 정운영, 홍윤기, 김명인, 이대근, 탁현민, 지강유철, 정재승, 이진순, 김영철 등 가톨릭 사제, 경제학자, 철학자, 문학평론가, 언론인, 문화기획자, 과학자 등의 인터뷰어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신영복 선생님의 수많은 인터뷰 가운데 선생의 육성과 사유가 오롯이 담긴 대담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다. 대담 당시의 사진이 기록의 생생함을 더했다.

 

여전히 글이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한다. 당연히 글의 힘이란 무엇인가도 함께 따라 붙는다. 여기에서 주목하는 것은 누구의 글인가라는 사람이다. 지은이를 떠난 글이 독립적으로 힘을 가진 경우가 없진 않을 것이지만 글쓴이와 결부되었을 때 글이 가지는 힘은 배가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시대의 어른으로 주목받는 이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신영복이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길게 보면서, 먼 길을 함께 걸었으면 합니다. 저도 그 길에 동행할 것을 약속드리지요.” 선생님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손잡고 더불어 함께할 우리 모두가 걸어 가야할 길임을 안다.

m*****8 2017.07.1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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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의 대학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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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이제부터 영복 오빠라고 부른다.)께서 우리 곁을 떠난 지 1주기가 되던 날이었던 2017년 1월 15일에 나는 영복 오빠의 ‘강릉대학 동창생’을 만났다. 영복 오빠와 가까웠던 분들을 모시고 함께 나누었던 정겨운 추모 식사의 자리를 정리한 뒤 찾은 대형 포장마차의 사장이 우리 일행의 대화를 듣고 말하기를 자기가 신영복 선생님을 안다고, 강릉에서 뵈었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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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이제부터 영복 오빠라고 부른다.)께서 우리 곁을 떠난 지 1주기가 되던 날이었던 2017115일에 나는 영복 오빠의 강릉대학 동창생을 만났다. 영복 오빠와 가까웠던 분들을 모시고 함께 나누었던 정겨운 추모 식사의 자리를 정리한 뒤 찾은 대형 포장마차의 사장이 우리 일행의 대화를 듣고 말하기를 자기가 신영복 선생님을 안다고, 강릉에서 뵈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만나뵈었는지에 대해서는 들려주지 않았다. 그의 침묵 속에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나는 되물었다. “! 교도소?” 그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영복 오빠가 강릉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날 처음 본 사람에게 그것까지 물어볼 수는 없었다.

 

영복 오빠가 교도소에서 지낸 2020일을 대학시절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은 손잡고 더불어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에서 여러 번 볼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감옥 아니면 만나지 못했을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의 분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어둡고 힘들게 사는 사람 속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유력한 관점을 얻었지요. 그래서 전 그 시절을 저의 대학 시절이라고 명명합니다. 교도소도 우리 사회의 모순 구조와 동떨어진 공간이 아닙니다.”이다.

 

누군가 나에게 나의 대학시절을 묻는다면, 단연코 영복 오빠와 함께 지냈던 1960~1961년이라고 말하겠다. 여섯 살 꼬마아이였던 나는 어머니의 엄격한 면접을 거쳐 우리 4남매(그때 막내 동생인 다섯째는 갓난아이였기에 제외한다.)의 가정교사로 들어온 영복 오빠에게 배우면서 새로운 가치를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껏 육십 살이 넘도록 평생 야당 지지자로 살아온 것이나, 강남의 공기와 문화보다는 광화문 촛불집회장에 나가서 탄핵을 외치는 것을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모두 그 시절 오빠와의 만남이 남긴 열매이다. 전통재래시장의 상인들을 만나도, 위정자들이나 재벌 총수들을 만나도 똑같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것도 그때 받았던 살아있는 교육 덕분이다. 끝없는 문어발식 성장론을 비판하고 아래와 위가 함께 성장하는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에 공감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때 내가 여러 사정 때문에 많이 배우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귀중한 생명 존재로 인식할 수 있도록 훈련되지 못했다면 이러한 내 모습은 절대로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의 대학시절은 영복 오빠가 감옥에 갇혀 있었던 2020일을 제외한다면 2016115일까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 걸어서 오빠에게 물어볼 수 있었으니까 ……. 그러면 오빠는 언제나 여섯 살 꼬마에게 말하는 듯 실아라고 부르면서 친절하고 명확하게 답을 들려주었다.

 

지금 나는 영복 오빠 없는 대학시절을 보내고 있다. “실아! 따스한 봄볕은 나그네의 두꺼운 외투를 벗게 하고 센 바람은 나그네의 외투를 더 여미게 만들잖아. 그렇지만 바람 중에서도 따스한 바람이라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어. 실이는 따스한 바람이 되자.” 영복 오빠의 부재가 아직 적응되지 않아서 힘들 때가 많지만 영복 오빠의 이야기처럼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춘풍이 되어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불어가는 따스한 대학시절을 보내고 싶다.

 

 

P.s. 1970년대 후반에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도망자 신분이 된 남편의 친구 정진영 씨가 1년 가까이 떠돌이 생활을 할 때 6개월 정도 틈틈이 우리 집에 머물 수 있게 해 준 적이 있다. 어머니가 수배자 신분이던 영복 오빠를 성락원에 두어 달 숨겨 주셨기에 나도 그렇게 정진영 씨가 은신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그를 숨긴 것은 순전히 오빠 때문이다(오빠는 다른 곳으로 옮겨 은신하다가 붙잡혔다). 1979년에 1212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후에는 삼청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 들어가지 못할 때에는 우리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하면서 보호해 주었다. 그러다 정진영 씨도 구속되어 감옥에 갇혔고, 영복 오빠와 같은 교도소에 머무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그는 영복 오빠의 감방을 지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선생님, 성북동이요.” “성북동 누구?” “실이. 성북동 심실.” 훨씬 나중에 김근태 의장께 들으니 정진영 씨는 무시무시한 이론을 주장하는 아주 센 운동권으로서 야권 중의 야권이었다고 한다. 영복 오빠가 출옥한 다음에 들려주시길 그땐 저런 운동권이 어떻게 실이를 알까?’ 하면서 몇 달간 고민하셨다고 한다. 사회로 돌아온 정진영 씨와도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소식 끊긴 지가 꽤 됐다. 남편은 그가 학생운동가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취직이 안 돼 마음고생이 심할 때는 종로에서 서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투자해 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정진영 씨의 안부가 궁금하고, 꼭 만나보고 싶다.

s*********3 2017.05.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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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신영복의 말과 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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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험에 최적화된 독서와 공부를 하다가(요즘은 한창 토플과 독일어 공부에 빠져있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책을 마주할 때의 충격이란.....샤워를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머리위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느낌?이라는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영복 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해서 선생께서 살아계신 동안 쓰신 책은 번역서 빼고는 모두 소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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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시험에 최적화된 독서와 공부를 하다가(요즘은 한창 토플과 독일어 공부에 빠져있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책을 마주할 때의 충격이란.....샤워를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머리위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느낌?이라는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영복 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해서 선생께서 살아계신 동안 쓰신 책은 번역서 빼고는 모두 소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말과 글을 엮었다고 해서 '별로 다른 것은 없겠'거니 했지만,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마주친 선생님의 말과 글은 또다른 깨닭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벌써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선생님의 새로운 글을 다시 못본다는 것이 독서를 하며 드는 가장 슬픈 느낌이지만, 이제 또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올 새로운 스승들을 생각하면 슬픔보다는 뿌듯함이 더 많이 느껴집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s****7 2017.01.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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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길을 알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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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이 저 먼곳으로 떠난지도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아직도 우리들 곁에서 강연으로, 위로의 말을 나누고 격려를 줄것 같이 그 모습이 생생하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스승과 같은 그의 이야기는 아직도 사람들이 그를 잊지 못하게 하는 이유일것이다. 이 책도 그런 그의 마지막 숨결이 될것이다. 그리고 선생의 위로를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것이다. 더불어 손잡고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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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이 저 먼곳으로 떠난지도 어느덧 1년이 되었다. 아직도 우리들 곁에서 강연으로, 위로의 말을 나누고 격려를 줄것 같이 그 모습이 생생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스승과 같은 그의 이야기는 아직도 사람들이 그를 잊지 못하게 하는 이유일것이다. 이 책도 그런 그의 마지막 숨결이 될것이다. 그리고 선생의 위로를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것이다. 

더불어 손잡고 살아갈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그가 너무나 생각날것같다.

t*******6 2017.01.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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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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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문드문 보이는 필사 노트가 참 좋다.  연습장에 쓰다 보면 흐지부지.. 필사 노트엔 만년필을 꺼내 처음부터 정성껏 쓰게 만든다. 신영복님의 말과 글들이 다 좋다.  두고두고 인생의 지침으로 삼을만하다. (이런 소리가 참 가소롭다 ㅋ 내가 뭐라고.. ㅋ) 만년필을 꺼낸 김에 좋은 , 짧은 글들이 아닌 책 한권을 필사해 볼까... 필사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 더불어 신영복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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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문드문 보이는 필사 노트가 참 좋다.  연습장에 쓰다 보면 흐지부지.. 필사 노트엔 만년필을 꺼내 처음부터 정성껏 쓰게 만든다. 신영복님의 말과 글들이 다 좋다.  두고두고 인생의 지침으로 삼을만하다. (이런 소리가 참 가소롭다 ㅋ 내가 뭐라고.. ㅋ) 만년필을 꺼낸 김에 좋은 , 짧은 글들이 아닌 책 한권을 필사해 볼까... 필사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 더불어 신영복 선생님의 좋은 글과 함께... 감사합니다.

c*****i 2017.0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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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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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밝히는 불로, 그동안 많은 빛을 홀로 태우며 살아갔던 선생님이 이제 자신의 글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우리의 비탈진 인생길에 미끄러 지지 말라 넘어지지 말라 재의 역할을 감당하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홀로 살아 갈 수 없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 살아 가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한없이 그리워 지는 때이다. 자신만을 위하여 남이야 어떻게 되는 살아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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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밝히는 불로, 그동안 많은 빛을 홀로 태우며 살아갔던 선생님이 이제 자신의 글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우리의 비탈진 인생길에 미끄러 지지 말라 넘어지지 말라 재의 역할을 감당하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홀로 살아 갈 수 없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 살아 가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한없이 그리워 지는 때이다. 자신만을 위하여 남이야 어떻게 되는 살아 가는 이 불쌍한 나라의 저런 어리석은 지도자는 우리의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음을, 신영복선생님과 같은 우리의 마음의 지도자가 여전히 있음에 그래도 희망은 있다.

YES마니아 : 골드 c***b 2016.1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