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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삼국지 3 : 한실의 풍운> 요코야마 미츠테루 / 박영 / 대현출판사 (2002) [My Review MMCCCLVI / 대현출판사 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여든다섯 번째 리뷰는 개인적으로 어린이나 청소년 독자들에게 권장하기에 부족함이 많은 책이라 생각하는 <전략 삼국지 3>이다. 일본의 것이라고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나쁜 것'을 본다고해서 전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왜냐면 나 어릴 적에도 '이런 것'들을 수두룩하게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본색' 가득하고 '끔찍한 장면 묘사'가 수두룩하다고 해서 절대로 보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왜' 불편하고 나쁜 것인지 그 이유를 알고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면서 '그냥'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쟁'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나쁜 것이지 좋다는 얘기인가? 그게 아니라 우리가 영웅이라고 여기는 안중근과 이순신을 진정한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전략 삼국지 3> 관점 포인트 : 공자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스승으로 삼을 만한 이가 있다고 말이다. 왜냐면 그중에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보다 못난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에게서는 분명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배우려고 노력해야 마땅한 일이고 말이다. 그런데 나보다 못난 사람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다름 아니라 '저런 못난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와 같은 뜻을 가진 사자성어로 '반면교사'가 있다. 말 그대로 '나쁜 점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뜻이다. 이런 선생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는 그런 나쁜 선생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어릴 적에 TV방송에서는 온통 '일본 애니메이션'이 나오곤 했다. 그런 만화들은 으레 적들을 무찌르고 쳐부수고 때려잡는 '정의의 용사'가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정의의 용사가 나쁜 악당을 혼쭐 내주고 쳐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동네친구들과 함께 환호성을 외치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난 다음에는 골목길로 나가서 방금 본 장면들을 흉내내고 따라하며 '악당 역할'을 맡은 친구를 쳐부수는 시늉을 하며 놀곤 했다. 정말 재밌고 즐거운 한때였다. 그런데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어릴 적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죄다 '일본'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충격적이었다. 우리 나라의 영웅들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일본의 것이었다니 말이다. 당시만해도 '왜놈 것은 무조건 나쁘다'고만 배우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분명 '한국말'을 썼는데 어떻게 일본 것이라는 거지? 하면서 궁금해하기도 했다. 그러다 군대를 제대하고 어른이 되니 '일본의 것'이 왜 나쁜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악당이라고해서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무조건 때려잡고 쳐부수고 잡아다 죽이면 안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일본 애니메이션과 일본 만화는 때려 죽여도 아무렇지 않게 표현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좀 더 찾아보니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 '무사도' 같은 것을 '일본적인 것'이라며 숭상하는데, 이런 정신의 핵심이 '체면'을 몹시 중시하며 체면을 훼손하면 죽을 각오를 하고 체면을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기는 풍습이 일본인에게 깊이 뿌리 박혀 있다고 한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자기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 발생해서는 절대로 안 되며,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칼을 뽑아들고 체면을 손상시킨 당사자와 결투를 벌여야 체면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만약 체면 상하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는데도 상대가 너무 강해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려서 절대 복종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말이다. 이걸 좀 더 확장시키면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스미마셍'을 남발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의 체면을 상하게 만들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미안합니다)'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란다. 그런데 상대가 '스미마셍'을 받아주지 않으면 도리어 '내 체면'이 손상되는 일이니 나도 참지 않고 싸울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두 사람이 서로 싸우지 않으려면 한 쪽이 '스미마셍'이라고 얘기하면, 상대방도 '나 역시 당신의 체면을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라는 뜻으로 '스미마셍'이라고 대답해야 한단다. 이런 까닭으로 일본인들은 별일 아닌 것으로도 서로 '체면 존중'하는 척하며 스미마셍을 연발한다. 하지만 상대가 자기보다 '급'이 낮거나 존중해야 할 '체면'조차 없다고 판단되면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가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사무라이 계급일 때 기분이 나쁘면 칼을 뽑아들고 자기보다 낮은 사람이면 가차 없이 목숨을 빼앗아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단다. 누구도 그 일을 두고 탓하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그게 일본인들의 오래된 풍습이다. 물론 일본인들도 '사람'인 이상,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함부로 칼을 뽑아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무리 '해도 되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나쁜 짓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정 그렇다면, 애초에 '나쁜 짓'이라 규정을 하고 나쁜 풍습을, 나쁜 사상을, 나쁜 정신을 없앴으면 될 것이 아닌가? 왜 나쁜 짓인 것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냅뒀던 것인가? 일본 헌법에서는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면서 명백히 '위법'으로 규정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일본의 전통사상이라면서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살인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건 좀 문제가 아닐까? 나가는 글 : 책의 내용은 '십상시의 난'이 벌어지기 직전인 '하진의 죽음'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중국 고전인 <삼국지연의>의 내용에 충실한 내용이지만 불필요한 '살해장면'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한 컷으로도 충분할 것을 '한장 두장'이 넘치도록 죽이고 또 죽이는 장면의 연속이다. 물론 혼란스러웠던 그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일 수 있다. 그래도 너무 과하다. 이런 식의 '일본 만화 삼국지'는 이 책 말고도 많을 것이다. 또한 이런 일본색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따라 그리는 다른 나라의 '만화 삼국지'도 분명 있을 것이다. 과연 이게 바람직한 일일까? 분명 이런 만화책은 불온하니 멀리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허나 부득이하게 봤더라도 문제는 없을 수 있다. '반면교사'로 삼고 앞으로 이런 식의 표현은 걸러서 바르게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문제는 남는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그대로 모방하고 흉내내는 몰상식한 사람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 '거장의 필치로 삼국지의 매력을 가장 잘 그려냈다'는 식의 문구는 자제해애 할 것이다. 반드시 빼야 할 문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든든한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다. 일본인들에게는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인물일지라도 한국인에게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주장을 하면 반론으로 '안중근'도 이등박문을 죽인 테러리스트고, '이순신'도 풍신수길의 군대를 몰살시킨 잔혹한 살인마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맞다. 안중근도, 이순신도 사람을 죽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영웅이다. 왜냐면 안중근은 '동양의 평화와 모든 인류의 안녕을 위해하는 이등박문'을 죽였고, 이순신은 죄 없는 조선백성들을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들어서 함부로 아프게 하고 굶주려 죽게 만들었으며 마구잡이로 잡아가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기에 '내 나라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이다. 이들을 함부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것도 구분할 줄 모르는 몰상식한 사람과 더 대화를 이어가야 하겠는가? 굳이 찍어서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는 '아둔한 경험론자'라면 대화 사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