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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성표 선생. 40대 초반 영혼의 결핍을 느끼며 가졌던 2년의 안식년. 캐나다 알버타주 로키산맥 자락에 위치한 조용한 도시 재스퍼(Jasper)에서 보낸 시간들을 사진과 함께 묶어낸 에세이집이다. 일러스트에 관한한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라 손꼽히는 그에게, 2년의 시간은 영혼에 단비를 내리는 점심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점심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직장에서는 하루의 방점을 찍는 휴식시간이자 짬짬이 자기 계발을 하기도 하고, 쓰린 속을 달래며 해장국 한사발 들이킬 수 있는 안도의 시간이다. 이성표 선생은 푸른 자연을 향했다. 드높은 산과 호수, 청명하게 펼쳐진 하늘을 배경으로 그는 어떤 식사를 한걸까?
책 제목처럼 점심시간을 이용해 짧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자연이란 이름의 아름다운 풍경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한없이 내면으로 향한 진중한 글은 통통 녹색 빛깔을 내뿜듯 자연스레 읽힌다. 하지만 그는 고백한다. 로키의 아름다움보다 먼저 2층의 작업실이 떠오른다고. 거기서의 눈물과 한숨과 기도, 자신의 인생을 부패시켜 온 습관들을 인정하던 괴로운 순간들을 반추한다.
최고라고 평가받던 그가 홀연히 캐나다를 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누구나 대가라고 칭송함에도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자기 고백은 주목할 만하다.
일러스트레이션은 왜 이리 졸렬한가? 꾸며대는 그림, 의도를 갖고 비틀어대는 그림, 세속적 되바라짐이 물씬한 그림들. 일러스트레이션, 이 아름다운 단어가 그런 그림들로만 메워져야 하는가. 물처럼 맑은 그림, 위로하는 그림, 평화를 주는 그림들로 일러스트레이션이 채워질 수는 없을까.
2007년인가 이성표 선생과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속된 말로 왠만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10배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원고료. 그럼에도 그의 그림엔 영혼이 담겨있다. 2년 동안 그가 담아온 재스퍼의 영혼이, 서서히 그림으로 체화된 건 아닐까?
아내에게 물었다. 재스퍼 2년간 대자연에 살면서 얻는 것이 무엇일까? 헹구는 기간 아니었을까? 40년 넘게 쓴 기계를 맑게 닦는 기간. 그렇구나. 나를 씻은 시간.
내 주위에도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귀농을 하거나 돌연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이 많다. 또한 뒤늦게 하고 싶던 공부를 하러 이 나라를 등진 선배도 있다. 대부분 30대 후반에 인생에 있어 과감한 선택을 했던 그들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했다. 당장 살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자신을 한탄하며, 그런 결정을 내린 그들의 용기를 부러워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어딜 가든, 어떤 일을 하든 결국엔 자신과 만나야 한다고. 그림처럼 펼쳐진 대자연 속에서 안온한 휴식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생산을 전제로 하지 않는 휴식은 그야말로 심심하기 짝이 없다.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생의 이면을 아우를 수 있는 단단한 영혼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솔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작가가 누구나 혹할만한 사진들을 내보이며, 진실된 자기 이야기를 한다. 현장의 진실과 책 속의 사진은 늘 약간의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는 치열하게 자신을 몰아붙인다. 내게 2년이란 안식년이 가능하다면, 난 꼭 인도를 향할 것이다. 무더위와 더러움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남아있는 내 삶을 계획하고 싶다. 적어도 마흔이 되기 전에. 내 인생의 점심시간, 그 식탁을 손수 차려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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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한 문체와 멋부리지 않은 사진들, 캐나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보고 있자니 떠나고 싶어진다. 우리나라엔 바쁜 일상에 매여, 쉬어서는 안된다는 듯 앞으로의 행진에만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 가운데서 혼자 멈춰 서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이 책은 느림의 미학속으로 부드럽게 독자를 끌어들인다. 문득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시간을 다스리기보다는 쫓겨왔던 모습..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와 대면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맑고 청아한 호수 사진은 거의 꿈결같다. 목적을 상실한 채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원한 물 한잔이 되어줄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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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난 표지가 맘에 들지 않지? ㅎㅎ
"런치타임"이라는 말이 너무 너무 멋지지..않나..^^
나도 런치타임을 같고 싶으나, 런치타임을 가질만큼 열심히 달려왔나라고 자문하자면... 그렇지 않기에 런치타임은 평생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_-; 그대신...난 티타임이나 여러번 가져야겠다.. 이책 조바심내며, 성공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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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런치타임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 책을 집어든 나는 숨 가쁘게 읽어 내렸다. 자신의 작업을 통해 풍성한 삶의 의미를 추구했던 그리고 그 삶의 의미를 기꺼이 타인과 공유하고픈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한 아티스트의 잔잔한 삶의 성찰이 이제 갓 50에 접어든 나에게 남의 일 같지 않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주었던 것이다. 그는 거대 도시 서울의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네와 다른 점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테두리에 안주하지 않고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후반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일상의 삶을 잠시 접고 용감한 도발(?)을 감행했다는 데에 있다. 그 것(?)을 찾기 위해 저자는 로키 산맥의 아름답고 작은 마을 재스퍼로 놀.러.갔.다. 그것도 아내와 두 아이 식솔들을 다 데리고 말이다. 자신을 찾기 위해 감히 재스퍼를 향해 떠났던 그는 책의 첫 페이지에 이렇게 말한다. “퍼내기만 했던 영감의 밭을 이제 쉬게 하리라.”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고민과 갈등을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해서 그는 그 실천 방법으로 ‘런치타임’을 고안해 내었다. “푸른 자연 속에 들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아보리라. 내 인생의 점심시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책의 제목 런치타임은 그렇게 시작한다. 40년 전반기의 삶을 살아온 그로서 후반기 50년 삶을 기대하면서 잠시 쉬는 ‘점심시간’을 창조해 낸 것이다. 푸른 자연 속에 들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아 보겠다던 그는 이렇게 본문을 시작한다. “나는 재스퍼에 놀러 갔다. 놀아야 내가 보일게 아닌가.”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재벌의 아들 쯤 되는 양, 숨막히는 서울의 일상을 탈출하여 가족과 함께 경치 좋은 로키 산맥의 그림 같은 작은 마을로 신선놀음을 하러 간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럼에도 그는 책 속에서 여전히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아무런 장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한 힘없는 가장이며, 한 여인의 지아비요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에게는 자신의 삶 뿐 만 아니라 가족의 삶도 책임져야 하는 모든 중년의 나이에 있는 아버지들이 가져야 하는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까지 모아온 돈을 하루 하루 축내며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불확실성에 대해 무기력한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숙명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 불완전한 놀이와 동거하면서 그 속에서 이웃들을 만나며 자녀들을 키우면서 자신을 성찰한다. 특별히 갈 곳이 없는 그가 하는 수 없이 이방의 작은 시골마을의 어느 집 2층의 작업실에 올라가서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는, 옹송그레 앉아 있는 사내, 45년 이상을 살아온 육체, 변화를 싫어하는 묵은 정신을 가진 한 중년의 사내를 만나면서 말이다. “재스퍼에서 나는 미술사책 한 권 읽지 못했다. 재스퍼에 나른한 오후 같은 한가함은 사실 없었다. 거기엔 나의 잘못된 생활 습관, 불안감 안달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들과 정면으로 대면했다. 재스퍼는 그동안 살아온 방식에 대한 반성의 토대가 되었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나는, 내면에 쌓여 있던 잘못된 신념들과 싸웠다. 나는 2년 동안 나와 불화했다. 재스퍼 안식년이 평안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본문인용) 그는 사이먼과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 의 노랫말처럼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재스퍼에서 부끄러운 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허울만 좋은 거짓의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재스퍼에 간 지 일 년쯤 지나자, 나의 오래된 문제들과 나쁜 습관들이 서서히 드러났다. 한편으로, 내 삶의 가능성과 소원들도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본문인용) 그는 로키산맥의 대자연 속에서 놀.면.서. (그러나 마음 편안한 놀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발견해나간다. 그가 자신을 성찰하고 돌이켜 새로운 자세를 곧추 세울 수 있었던 이유로 나는 감히 그가 예수가 말한 복의 정신을 소유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해 본다. 예수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허울만 좋은 거짓의 삶을 감히 버릴 줄 아는 가난한 마음을 가졌었고, 자신의 부끄러운 속을 들여다 본 애통함이 있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 1872~1945 독일, 문화사학자)가 말한 ‘호모 루덴스’ 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그는 “놀이는 문화 그 자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일정한 크기로 존재해 왔으며, 태초부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기에 이르기까지 항상 문화 현상 속에 함께 있었다. 인간 사회의 중요한 원형적 행위에는 처음부터 전부 놀이가 스며들어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놀이는 진지함에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놀이와 진지함의 대립은 결정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삶에는 의미가 필요하다. 마음을 비우고 쉬는 것이 좋지만, 우리는 쉬려고 살지는 않는다. 노는 것이 일상이 되면 거기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아마도 우리는 놀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가치를 창조하며 사는 존재들이 아닐까?” (본문인용)
그렇다. 놀이는 진지함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중요한 원형적 행위이다. 그의 글에서 나는 진지한 삶을 찾기 위해 놀이를 선택한 그의 혜안을 보았다. 로키산맥의 평화롭고 작은 마을 재스퍼는 단지 진지한 삶을 찾기 위한 그 원형적 행위인 놀이의 도구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런치타임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나는 그 답을 본문 269쪽 에필로그에서 찾았다.) “아내에게 물었다. 재스퍼 2년간 대자연에 살면서 얻은 것이 무엇일까? 행구는 기간 아니었을까? 40년 넘게 쓴 기계를 맑게 닦는 기간.” (본문인용) 그는 재스퍼의 2년을 이렇게 말한다. “너무 오랜 길을 돌아왔다.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이제야 제대로 깨닫고 있다. 비로소 평화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릴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일러스트레이션, 그것은 빛의 나눔이며 정신의 나눔이다. 보석 같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사람들의 가슴에 심게 되는 행운이 있게 되길 소망한다.” 나는 그가 런치타임 이후의 소망을 꼭 실현하기를 기원한다. 특히 본문 속에 들어 있는 그가 직접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은 나를 로키산맥의 아름다운 작은 마을 재스퍼에 살았던 주인공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는 것을 저자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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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꿈꾸어 온 일상이다.
그리고. 지독히도 부러웠다.
캐나다 재스퍼에서 지내는동안 써내려간 가족과의 일상. 풍경.
생각과 생각 사이의 여유. 상념. 혹은 푸념들까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조용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홀연히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재스퍼라는 공간이 주는 선물였을까.
인생의 절반을 지나고 있다는.. 나이가 주는 선물였을까.
언젠가의 나만을 위한 "점심시간" 을 기다리며.
나른한 주말 오후. 쇼파 위에서 뒹굴면서 읽어보련다.
그렇게 읽어야지 어울리는 책 같으다.
아! 다시금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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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자기자신에게 선물한 적은 몇번이나 있을까. 물론 우리는 언제나 지갑을 열어 결제를 하고 물건을 산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칭찬으로 자신에게 선물하는 기분을 만끽하며 구매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고보니 나도 스스로에게 선물을 한지 한참 되었다. 10대때부터 포상의 일환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선물을 자주 했었다. 단 한 권의 책이 준 영향이었다. [빨간머리 앤]에 보면 앤이 보고 싶은 책을 두고도 계획한 문제풀기를 마치기 전까지 읽지 않는 부분이 나온다. 그 부분때문에 나는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이루어내었을때 주는 상을 생각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