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암 박지원은 1780년 정조 시대에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중국에 다녀왔다. 공적인 소임이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박지원은 유람의 형태로 사절단과 함께 했다. 북경까지 예정되어 있었으나 건륭 황제가 열하 지방으로 피서를 가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가보지 못했던 열하 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왔고, 그 여행기를 쓴 내용이 바로 『열하일기』다.
『열하일기』 1편을 보면 그가 조선을 거쳐 압록강을 건너는 과정 등을 일기 형식으로 써낸 글이다. 기행문 속에서 보면 그가 제일 먼저 챙겼던 것이 두 개의 주머니 속에 왼쪽은 벼루, 오른쪽엔 거울, 붓 두 자루, 먹 하나, 작은 공책 네 권, 이정(거리의 이수)을 기록한 두루마리였다. 행장이 가벼우니 국경을 넘을 때 염려없겠다는 그의 글은 인상적이다.
연암은 물건 하나 풍경 하나 허투루 보지 않았다. 중국의 기와 들이는 법과 벽돌 쌓는 법을 상세히 바라보며 돌과 벽돌의 차이점 등을 들어 벽돌의 우수성을 피력했다. 또한 중국의 가마와 조선의 가마를 비교했을 뿐 아니라, 신행 행차 모습 또한 상세히 묘사했다. 어디 이뿐일까. 부뚜막과 굴뚝 만드는 법과 구들 놓는 법을 비교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들에 대한 선진 문물을 배우고자 했고, 우리나라에서 사용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도 남자여서 일까. 전족을 했던 한족 여성들이 화려하고 요염하게 웃는 자태지만 만주족 여성들보다 못하다고 평했다. 만주족 여성들은 화용월태의 미녀들이 많다고 표현했다. 전족에서 좀더 자유로웠던 만주족 여성들에 대한 설명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겠으나 그시절에도 미녀의 기준은 따로 있었으리라.
유람을 하겠다는 목적으로 준비를 해왔던 연암은 황제의 도읍지 행궁을 구경하는데, 부마도위인 박래원이 목책에서 건너다보다가 술집에 가버린 반면, 사람을 만나더라도 쫓겨나기밖에 더하겠냐며 앞의 궁전을 들어가 구경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하나의 장면이라도 더 구경하겠다는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고 한갓 남이 말하는 내용만 듣고 의존하는 사람과는 학문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하물며 평생을 두고 마음을 쓰고 헤아려도 도달할 수 없는 학문의 세계임에랴! (246페이지)
![]()
여자의 복장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하는데, 여자가 출가할 때 머리에 쪽을 지고 비녀를 꽃는 것과 같이 비녀도 봉황새 두 마리를 새긴 비녀가 최고 등급, 봉황새의 자태 즉 날고, 서고, 않고 웅크린 모양에 따라 구별하는데, 모두 등급과 직분이 있다고 말한 부분에서 풍속이 같음을 말했다.
종이와 붓이 중국의 제품에 대해서도 말했다. 붓은 부드럽고 유순하고 길이 잘 들어서 어깨를 움직이는 대로 함께 힘이 들어가는 것을 훌륭한 것으로 친다고 말했으며, 바퀴가 있는 수레에 대해서도 상세히 묘사했다. 대저 수레라는 것은 하늘에서 나와 땅에서 운행을 하니, 육로에서 사용하는 배이고 돌아디닐 수 있는 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에서 크게 쓰이는 것으로 수레만 한 것이 없다. (265페이지) 라고 했을 정도다. 그때의 조선엔 바퀴가 없었을 때인데 바퀴를 가진 수레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도강록 편에서 요동 벌판에 다다랐을 때 연암은 그 광활한 벌판을 보고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라고 했다. 사람이란 본래 의지하고 붙일 곳 없이 단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이리저리 나다니는 존재라는 것을.(128페이지) 이라고 했는데, 자연에 비하면 우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 더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차오름이 극에 달하면 눈물이 차오르는데, 소리를 질러 마음을 시원하게 풀었으면 했다. 그가 중국을 여행하게 된 감정들. 준비된 마음으로 왔으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어쩌지 못했던 그의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기행문을 보면 곳곳에 청심환에 대해 나온다. 우리나라엔 흔했던 물건이지만 중국에서는 굉장히 귀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조선 사람이 가진 청심환을 얻으려고 협박을 하는 노인들을 봐도 그렇다. 연암은 청심환을 허리춤에 여러 개씩 넣어가지고 다니며 나눠주곤 했다.
이런 기행문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연암의 독서를 꼽을 수 있겠다. 수많은 서책들을 함께 한 그였기에 중국인들과 필담을 나눌 수 있었고, 중국인들의 생각과 말을 듣기 위해 그들과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고 자신이 가졌던 의문들을 질문했고 답을 얻고자 했다. 어느 장면 하나 놓치지 않으려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들의 말을 받아적고, 신기한 것이 있으면 그림까지 그려 표현하려 했다. 이러한 그의 열린 마음과 열정이 오늘날 우리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것을 바라보는 그는 새로운 풍경 하나, 바라보는 사람들의 면면, 그들과 나눈 뜻깊은 대화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
|
熱河日記는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 생일) 축하사절로 팔촌형인 금성위 박명원을 정사로 하는 사행단에 군관자제(개인수행원)자격으로 장장 5개월에 걸쳐 중원대륙을 다녀온 일정을 기록한 기행기이다. 당시 연암과 교류를 가졌던 일명 연암사단인 박제가, 홍대용등은 연암보다 먼저 청제국을 다녀온 상태에서 연암의 이번 기행은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오히려 연륜으로나 학문으로 정체성이 확립된 시점에서의 중국기행은 그의 안목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절호의 기회로 다가 왔고 이런 기회를 연암은 열하일기라는 저작을 통해서 자신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후대에 우리에게 왜 연암을 조선최고의 문장가라 칭하는지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또한 도강록에서 보여주는 역사인식은 연암으로부터 230여년이 지난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상고사에 대한 왜곡으로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로 비정하고 고조선, 고구려의 강역을 축소해석하고 있는 현 주류사학자들에게는 더욱더 일침을 가한다. 연암은 심양(성경)에 도달하면서 여기가 바로 고조선, 고구려의 땅이었다고 설명하면서 고구려 수도인 평양이라는 명칭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표명하는데 이 논지는 지금 학자들 사이에선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북경에 도착하여 갑자기 열하로 오라는 황제의 명에 따라 북경에서 하인 장복과와 이별하는 모습에서 마치 절친한 지인과의 이별에서나 느끼는 애절함과 마두인 창대와 열하로 떠나는 여정에서 창대의 예기치 못한 발병을 간호해주는 모습은 당시 철저한 신분사회인 조선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휴먼니스트였던 것이다.
▣ 눈여겨 볼 만한 각론은 일신수필의 장대기, 관내정사의 이제묘기와 호질등이 있다. 장대기는 산해관 만리장성의 장대를 오르면서 느낀 감회로 무릇 인간이란 높은데 오를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막상 내려올때는 그 높이에 질려 혼비백산하듯이 이는 관직이 높을수록 그 나락의 충격도 크다는데 비유해서 관직생활의 청렴함과 덧없음을 시사한다.
연암과 함께 하는 18세기말의 중국기행은 다름아닌 연암이라는 불세출의 문장가이자 노마드, 휴머니스트 그리고 재치있는 위트가 있어 여행의 끝은 지루하지 않고 마냥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
|
내가 연암 박지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근래에 들어서이다. 안대회 저< 천년 벗과의 대화>에서 연암 박지원의 한 글귀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관심하고 있는 것만을 보기 때문에 아마도 박지원의 글들이 내 관심사였던 모양이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어렵게만 생각했던 고전 속의 위인들이 자꾸 내 마음에 들어오는 모양이 마치 천년 벗을 사귀는 기분이니 연암 박지원의 말처럼 인연으로 만난 벗이라 할지라도 그와 나누는 대화가 무료하고 함께하는 행동이 구차하다면 차라리 홀로 책 속에서 벗을 찾는 것이 낫다는 말이 십분 이해가 간다. 한 편으로는 연암 박지원의 모든 것이 궁금해진 이유도 있다. 자유롭고 호방하며 뛰어난 문장가임에도 출사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며 살기가 쉽지가 않았을 터인데 평생을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비굴하지 않으며 성리학을 하는 양반들에게 비난을 받아도 전혀 꺼리김없이 살았던 연암 박지원의 진정함을 알길 바라며 책을 펼쳤다. [열하일기]는 모두가 알 듯이 중국기행문이다.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으로 연암 박지원도 가게 되었는데 이 때까지 연암은 이렇다할 벼슬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삼종형 금성위 박명원에게 부탁하여 사절단에 오르게 된 연암은 말 등에 앉아 중국의 모든 것을 관찰하여 기록하였는데 열하일기를 가지고 조선에 오자 열하일기는 사대부들에게 비난을 받게 된다. 이 비난의 이유는 여러 가지 였는데 열하일기가 비난의 대상이 되자 정조에게 까지 불려가게 되지만 정조의 뜻에 의해 서민들도 읽기 쉽게 한글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받게 되는데 이유는 열하일기 안에 당시 사회 제도와 양반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정약용 같은 일부 지식층에게도 비난을 받는다.) 읽는 동안 나 역시 실학파였던 연암 박지원에 대한 몇가지의 오해를 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박제가가 북학의를 저술할 때 한 말 때문이다. 박제가는 청나라에 박지원보다 먼저 다녀왔는데 그 중에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언문을 쓰지 말고 모든 백성이 청나라 말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실학파들이 지나치게 청에 치우쳐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나는 한가지로 많은 것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곤 하는데 바로 그런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박제가의 지나친 격정의 말을 실학파 모두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열하일기 안에서 만나는 연암 박지원의 생각들은 무척 사리에 밝고 생각이 깊으며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었다. 열하일기를 번역한 김혈조는 책의 앞머리에 열하일기를 읽는 방법을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열하일기에는 연암 박지원의 진정성, 책을 집필한 진정한 의도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것은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꼭 참고해야할 것 같다. 첫째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의 제공이다. 두 번째가 선진 문화 문물을 본받아야 한다는 북학의 내용이다. 세 번째가 천하대세를 어떻게 전망했는가? 하는 주제이다. 네 번째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간 유형에 대한 묘사와 인물의 창조이다. 다섯 번째가 선비 곧 지식인의 역할과 처신에 관한 문제이다. “조선의 지독한 가난은 따지고 보면 그 원인이 전적으로 선비가 제 역할을 못한 데에 있다.”
역사는 현재의 역사를 대변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인간이다.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 다섯가지의 주제로 보는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진정성과 함께 열하일기가 세계 유수의 고전 반열에 편입시켜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사유하게 될 것이다. 책의 시작은 압록강을 출발하여 요양에 이르는 <도강록>부터 시작하는데 중간중간 연암의 재치있는 언변에 웃음이 나기도 하며 넓디 넓은 요동 벌판을 마주하며 한바탕 통곡하기 좋겠다는 대목에서 연암의 깊은 생각을 알 수 있다.
<성경잡지>는 심양의 이모저모를 다루고 있는데 심양에서 체류하며 겪은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장은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장인데 연암이 촉과 오나라의 젊은이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를 꽃피우는데 젊은 사람들이 연암의 깊은 학식과 재치에 반하여 외국인임에도 인연을 소중히 하는 모습이 사뭇 정겹다. 더욱 재미있는 장면은 연암이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필력을 뽐내려고 글씨 써주는 대목에서는 왜 그렇게 웃음이 나는지... 연암의 호기심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중국의 상가집을 구경하고 싶어 몰래 들어가 보기도 하고 청나라 여인들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곁눈질로 살펴본 후 글로 쓰는 모습이 떠올려지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아마 오해하기 딱 십상이다.
<일신수필>에는 청나라의 풍물과 체험을 쓴 내용인데 서문과 수레에 관한 관찰이 들어있다. 7월 15일의 일기에 연암은 중국의 장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경관에 대해 경탄하지만 스스로를 삼류선비라 칭하며 중국의 장관을 이렇게 말한다. “ 정말 장관은 깨진 기와 조각에 있었고, 정말 장관은 냄새 나는 똥거름에 있었다고.” 여기에는 연암 박지원이 조선 선비들이 농공상을 천시하여 회피하지만 중국의 법이 농공상을 발달시키기 위한 법과 제도가 잘 발달되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이 농사짓기 위한 기본적인 틀을 잘 마련해 놓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막북행정록>이 1권의 마지막인데 북경에서 열하까지 가는 동안의 체험, 특히 고생하면서 가는 길의 여정을 기록하였다. 여기에서는 사절단의 한명이었던 박래원과 이별을 하며 이별에 대한 괴로움을 생각하는 장면이 있는데 산문형식으로 되어있다. 연암은 이별과 함께 소현세자를 떠올리며 시를 읊는데 소현세자를 생각하는 연암에게서 신하의 충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책에는 그 시대에 사용되었던 물건들에 대한 설명과 과거의 모습과 오늘날의 모습, 중국의 역사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사진설명과 함께 연행의 전 코스를 답사하여 요동의백탑의 사진, 근년에 새로 복원한 광우사의 모습등의 사진을 수록하여 열하일기를 더욱 생생한 기행문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최근 열하일기를 세계 유수의 고전 반열에 편입시켜야한다는 주장은 무척이나 타당한 주장이라고 느꼈다. 또한 열하일기가 기행문의 형식뿐만이 아니라 산문형식을 띄고 있으며 연암의 창작방법은 무척이나 참신하다. 어렸을 적 국사시간에 열하일기의 일부분이라도 수록되어 공부하였더라면 조금은 실학파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을 텐데 하며 우리나라 교육에 아쉬움을 토로해본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열하일기를 읽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
흔히 여행을 우리네 삶과 비교한다. 그건 아마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알지 못하는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삶과 닮아서 일거다. 하지만 엄격하게 이야기 하자면 여행은 나아가야 할 길을 바라보면서 나아가지만, 삶이란 1분 뒤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다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뒷걸음으로 길을 걸어가는 것과 우리네 삶을 비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뒷걸음으로 길을 가게 되면 지나온 풍경은 보이지만, 내가 나아가야 할 곳의 풍경은 전혀 모르고 나아가게 되니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과 닮은 것이 아닌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여행자가 가져야할 기본 소양이 있다. 기존의 것을 고수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여행 중에 만나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풍경, 새로운 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그냥 무리지어 떠난 패키지여행처럼 자신이 다녀간 풍경 앞에서 찍는 기념사진으로 만족하고 돌아오는 여행, 해외에 나가서도 한국식당만 찾아다니는 자세는 여행이라 말할 수 없다. 그건 단순한 관광일 뿐이다. 그런 관광은 국내로도 족하다. 굳이 귀한 외화를 낭비해가면서 까지 해외로 나갈 필요는 없다. 요즘처럼 TV에서 반영되는 다큐프로등에서 보여지는 디지털 화면은 우리가 현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좋은 화질과 더 좋은 시각으로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니 물설고 낯선 타향에서 땀 흘리고, 적응되지 않은 시차에 고생하는 것보다는 츄리닝 바람에 거실에서 즐기는 관광이 훨씬 편하다. 1780년 정조4년에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해 사행하는 삼종형 박명원을 수행하여 열하에 다녀온 연암 박지원의 여정을 기록한 여행기다. 그 해 음력 5월 말 한양을 출발하여 압록강을 건넌 뒤 요동(遼東) 벌판을 거쳐, 8월 초 북경에 도착했다. 하지만 황제는 더위를 피해 열하의 피서산장(避暑山莊)으로 갔다. 황제의 명에 의해 사신 일행은 만리장성 너머 열하(熱河)까지 갔다가,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약 한 달 동안 머문 뒤 그해 10월 말에 귀국했다. 당시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발전한 청나라의 실상을 직접 목격하고 이를 생생하게 기록한 여행기가 바로 『열하일기(熱河日記)』다. 여행기를 기록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일기형식을 취해 여행의 여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기는 방법이다. 둘째는 여행 중 마주친 중요한 풍경이나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주제별로 분류하여 마치 기행수필처럼 기록하는 방법이다. 열하일기는 이 두 가지 형식을 다 취하여 서로의 장단점을 상쇄하고 있다. 단순한 기록으로 인해 심도 있는 사고가 어렵고, 단순함이 반복되는 첫 번째 방법의 단점과 둘째방법이 가진 여행의 전 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단점을 모두 상쇄한다. 1권은 한양을 출발하여 북경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 담겨있다. 박지원에게 이번 여정은 단순한 관광목적으로 떠난 여행은 아니다. 정식 사신단의 일행도 아니기에 그의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그 시절 가장 번성한 청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의 현실을 지켜봄으로써 발전된 청의 문물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견문을 습득하고, 발전된 문화를 기반으로 어떻게 하면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위한 여정이다. 『열하일기』의 곳곳에서 청나라가 눈부신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있음을 이야기 있다. 또한 그는 청나라가 한족(漢族)뿐만 아니라 몽골·티베트 등 주변의 강성한 민족들의 저항을 억누르고 그들과 융화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들여다본다. 또한 실학자로서 청의 발전된 문명과 조선의 문명을 비교함으로써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양한 분야의 해박한 지식을 기반으로 서술해 나간다. 대표적인 것이 벽돌, 가마, 바퀴, 기와, 온돌, 말 등이다. 벽돌을 이용한 건축물과 조선의 돌을 이용한 건축물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대량의 물건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바퀴가 물류에 얼마나 기여하며, 그로 인하여 상업이 발전하고 국가가 부강해질 수 있음을 들여다본다. 또한 조선의 가마와 온돌은 품이 많이 들지만 실용적이지 못함을 안타까워 한다. 또한 청의 말과 달리 조랑말인 조선의 말을 타면서도 말의 고삐를 손수 잡지 않고 견마잡이를 쓰는 풍습을 안타까워하고 있으며, 말을 타면서 도포자락으로 인해 고삐를 손수잡기 어려운 우리네 복식문화가 가진 폐단 또한 들여다본다. 어디 그것뿐인가. 중국과 조선의 음주문화까지 비교를 하였다. 하지만 이미 명이 망한지 15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청나라는 오랑캐요, 조선은 소중화(小中華)라는 의식이 골수에 박혀 청나라의 선진문물조차 싸잡아 배격했다. 명을 그리워하고, 청의 문물이 미개함을 지적하고 명의 제도와 문물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런 유교적 사대주의적인 시선이 어쩌면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았고 조선의 양반들은 경제보다 도덕을 중시하는 유교사상으로 인해 상공업이나 농업의 실무에 무지하고 무관심했다. 이런 흐름이 개화의 물꼬를 막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실사구시를 주장했던 실학사상의 북학파의 선두주자였던 박지원마저 그랬으니 다른 사대부들이나 기득권층의 사고는 오죽했겠는가? 어디를 가든지 연암은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기를 즐겨한다. 물론 서로의 말이 달라 언어소통은 안되지만, 같은 한자문화권이기에 필담은 가능하다. 사람을 사귀기전 그들의 생김새와 복식을 보고 기품이 없으면 말을 나누지 않고, 필담을 나눌만한 지식이 없으면 자리를 피하고, 학식이 깊지 않으면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관과 자세가 바르고, 학식이 있는 이들과는 짧은 만남에도 오래된 친구처럼 깊은 인연으로 발전한다. 선비를 만나면 가르침을 청하고, 학문이 깊으면 며칠 밤을 날을 새며 대화를 나누기를 즐긴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과 나눈 필담을 별도로 정리하는 치밀함까지 갖추고 있다. 이런 자세야 말로 서두에 애기한대로 올바른 여행자의 자세다. 연암은 새로운 문물과 선진 문화를 배우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문화를 습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그 속에서 조선의 부흥을 위해 개선할 점을 찾는다. 또한 발전된 청의 문문과 조선의 문물을 비교하며 조선의 기존 풍습이 잘못되었어도 잘못된 줄을 모르고 기존의 풍습만을 답습하고 있음을 가슴아파한다. 실학자다운 시선이다. 어려울 줄 알았던 여행기는 시종일관 유쾌, 경쾌 상쾌하다. 연암의 해학과 풍류도 돋보인다. 명의 여자와 만주족의 여자를 비교하며 언급한 대목은 같은 남자로써 웃음을 머금게 한다. 역시 연암도 남자다. ^^ 열하일기는 엄청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넘어간다. 고루한줄 알았던 여행기가 이렇게 담백하고 재미있을 줄 몰랐다. 살면서 꼭 한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책을 읽어가며 그 시절의 청의 문물과 조선의 문화를 들여다보는 것은 덤이다. 더군다나 연암이 지인에게 지동설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박학다식한 학문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여러 분야에 대한 해박한 그의 지식은 아마 엄청난 독서의 결과일 것이다. 간서치(看書癡)로 알려진 이덕무가 그의 절친이다. 사신 단을 따라 중국을 방문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먼저 청을 다녀온 이덕무의 자랑 때문이 아니었던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연암의 해박하고 다양한 지식을 기반으로 중국의 풍경과 문화, 중국의 역사에 관계된 유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현지에서 전문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 같아 이 책의 재미를 더한다. 마치 연암의 일행이 되어 현장에 있는 듯 착각을 들게 한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의 해박한 지식과 문학적인 소양, 더불어 명필인 그의 필체는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는다. 청의 지식인들을 만나도 절대 꿀리지 않는다. 기회가 된다면 이 책의 여정을 따라서 여행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여백에 있는 다양한 사진은 책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남은 두 권의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
|
영정조 시대 실학자 박지원이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4개월간 중국 북경과 열하지방을 다녀오면서 적은 기행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해외단기연수를 다녀오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하루하루의 일기형식으로 풀어나간 것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몇가지 측면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문학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로 당시 독자인 조선인들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전달하고 있다. 마치 독자가 직접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풍광이나 문화, 그날의 일정에 대한 기술이 생생하다. 묘사의 정확성이나 세밀함을 보면 현대 작가들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 현재의 독자들을 위해 역자가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보충설명을 제공한 것도 우리가 그들의 여정을 차질없이 따라갈 수 있도록 훌륭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둘째로 뛰어난 자연풍광이나 우수한 선진문화에 대해 관찰자로서의 단순한 기록의 수준을 넘어 현지인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읽어내고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본받아야 할 지에 관한 구체적인 견해와 대안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진정 중국의 위대한 장관이야말로 수레 이용, 벽돌 사용, 깨어진 기와의 재활용, 똥 거름의 활용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수 있는 삶의 지혜라는 점을 강조한다.
셋째로 기행문으로서 여정에서 겪고 느낀 것들을 적고 있지만, 보고 들은 다양한 이야기와 깊은 사색이 함께 묻어 있어 마치 현대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현지인들과 대화나 여행지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보고 들은 각종 이야기나 본인의 느낌을 적은 산문은 그 하나하나가 작은 문학작품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구석구석에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어 글을 읽어나가면서 웃음을 머금기도 한다. 세상 움직임에 관심도 없고 백성의 삶을 돌보지 못하는 조선의 이야기를 접하고 있으면 울분이 생긴다. 때론 그의 폭넓은 지식과 시견을 접하면서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 고전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
|
책이름으로만 알던 책을, 드디어, 마침내, 기어코 읽었다. 읽었다는 것, 이제 시작이다.
내게 능력이 있어 박지원이 쓴 원문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이런 책을 만나고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특히나 나도 읽지 않았으면서 학생들에게 책이름만 들먹이는 것이 늘 한 구석으로 켕겼는데, 최소한의 변명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이 일기란다. 난중일기, 계축일기, 또 뭐가 있었던가, 한때 국문학을 조금 공부했노라는 말도 못하겠다. 한양에서 중국의 열하까지 여행을 하면서 쓴 일기, 그게 열하일기였으니. 이 책 안에 '호질'이 있고 '일야구도하기'가 있다니. 부끄러움도 지나치면 뻔뻔함으로 변하고 마는 모양이다.
이제 겨우 1권밖에 못 봤음에도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금처럼 수월하고 편리하게 여행한 것도 아니었다는데, 그때 그 시절, 어쩌면 생명의 위험까지 느끼면서 옮겨 다닌 여정이었다니, 나로서는 그런 과정을 여행이라고는 못하겠건만, 작가는 끊임없이 살피고 찾고 연구하고 따진다. 그리고 고스란히 글로 담았다. 글로 담는 그러한 수고로움이 짐작되어 더욱 대단하게 여겨진다.
박지원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으면서, 참고서에 설명해 놓은 몇 줄, 교과서에 적힌 몇 줄로 내가 읊었던 몇 마디는, 생각할수록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작가가 직접 가서 본 당시 중국 사회의 좋은 점들, 그에 비해 우리에게 부족했던 점들,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우리가 가져와 썼으면 한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지식인의 참다운 역할을 확인했다. 모름지기 배운 사람이라면, 자신의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배우고 익혀서 이 작가처럼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살기 힘들다고 배운 것만 믿고 훌렁 이민 따위를 갈 것이 아니라.
종이의 질이 아주 좋고, 함께 실린 사진 자료가 멋지다. 박지원이 여행하던 시절의 모습 그대로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남은 풍경을 보는 맛도 괜찮다. 열하일기의 여정을 따라 문학여행코스가 생겨도 가치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려면 우선 통일이 되어야겠지만.
하나, 섭섭한 것은 이 책에 쓰인 문체가 중학생들과 함께 읽기에는 좀 딱딱하다는 점이다. 어지간한 수준의 학생들이 아니고서는 흥미를 갖게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좀 어려운 듯도 하고(특히 지적 수준을 요하는 대화나 일화의 경우), 지루한 면도 있는데, 학술적인 가치를 염두에 두다 보니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학생들과 함께 읽을 수 있을 만한 글을 몇 쪽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우리 고전 작품 중 특히 한문이 원본인 경우, 이에 대한 어른들의 고민이 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이 유용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하는.
총 3권으로 나와 있는데, 1권은 열하까지의 기행문이었다. 호질은 여기에 담겨 있다. 적어도 열하일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알게 된 것만 해도 나로서는 큰 수확이다.
|
|
열하일기, 참으로 많이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책이다. 이 책을 집어들고 몇 페이지를 펼친 다음부터 나는 열하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기행문 안에 너무 많은 세상이 있고, 너무 많은 사상이 있고, 너무 많은 사고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읽기를 마친 1권은 압록강을 건너 열하까지 이르는 여정을 담고 있다. 중간 중간 나오는 옛 요동이야기, 요동 백탑에 대한 기록, 관운장 사당 구경, 광우사기, 속재필담, 상루필담, 성경가람기, 산천기략, 북진묘기, 수레 제도, 연희 무대, 시장점포, 객점, 다리, 강녀묘기, 장대기, 산해관기, 이제묘기, 난하범주기, 사호석기, 호질, 동악묘기 등은 박지원의 재기와 필력, 사상, 그리고 선비가 아닌 관찰자로서의 면모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실생활에 관한 상세한 묘사를 통해 나는 그가 얼마나 실생활에 관심이 많았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흡사 과학자와도 비슷한 방식으로 관찰하고 조선의 문물과 청의 문물을 비교하는 것을 보면서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의 재치가 가장 잘 드러난 대목은 '호질'이다. 이 '호질'이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중국인이 지은 것인지 연암이 직접 지은 것인지 말이 많지만 나는 호질 초반부의 상투를 튼 것이라는 부분에서 연암이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청나라는 상투를 틀지 않고 변발을 했기 때문에 굳이 호질에서 상투라는 말을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왕조때야 중국도 머리를 틀어올리는 제도가 있으니 이 생각도 어찌 보면 틀린 생각일 수 있고, 번역본만 보았으니 그 부분의 원문을 본다면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으나 이 책을 통해 본 '호질'에서 나는 상투라는 단어를 통해 연암이 지었을 것이라 생각할 따름이다.
이 '호질'이 풍자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다시 한 번 울다 눈물이 났다. 위선을 풍자하는 재치가 살아있는 작품이다. 그러고 보면 책을 읽는 내내 연암은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듯 보였다. 제도를 바꾸고 문물을 바꾸고 이상타 생각하는 것을 바꾸고 허례를 바꾸고 싶어하는 그 욕망이 이 책 전반에 깔려있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작은 이야기 속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은밀하게 내비치는 이 책은 어찌 보면 그런 면에서 그 시대에 작은 충격을 던져주었을 지도 모르겠다. 연암이 말한 것처럼 과시체가 아닌 연암 특유의 문체가 살아있었다면 더 그러하였을 것이다. 경전에 쓰이는 문체가 아닌 생동하는 문체,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문체가 지니는 중요성을 살펴본다면 어찌 보면 이 책에 과감성이 있고 이 책에 도발이 있으며 살아 숨쉬는 선비의 모습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웃을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그리고 '기상새설' 일화를 통해 보여지는 어찌 보면 청의 문물과 제도에 대해 무지한 연암의 실수담을 통해 연암을 선비로서, 그리고 낯선 세상에 발을 디딘 여행자로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참 아쉬운 것이 많았다. 그것은 내가 아는 것이 없어서였다. 처음 유득공의 한시에 나온 '막수'의 의미에서 헤매이면서 이 책이 힘들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 역시 내 예상은 아쉽게도 빗나가지 않았다. 이 책 구석 구석 나오는 지명들에 대한 연암의 기록을 읽으면서 '아! 이 지역은 그 고사의 지역이었고, 이 지역은 또 저 고사의 지역이었구나'라고 무릎을 치지만 정작 만일 내게 중국을 지금 여행하라고 하면 여행하면서 바로 여러 지명들과 그에 대한 고사를 떠올리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대로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은 지식의 슬픈 일상이다. 그래서 나는 무식해서 슬프고 또 무식해서 행복하다. 무식한 것을 아는 것은 슬프지만, 그리고 책을 제대로 읽어내릴 지식과 내 안의 지식을 연결짓지 못함은 슬프지만 반대로 무식하니 유식한 저자의 글에 감탄할 수 있고, 다시 한 번 책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니 기쁘다. 휘갈겨 써내려간 이 기행문의 이제 삼분의 일을 지난 시점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연암의 붓 끝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연암에게 새로웠던 세상은 내게도 새로운 세상이기 때문에. |
|
열하일기 1 박지원 지음 돌베개 예전부터 끊임없이 이 책, 조선시대 정조 때의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완독하기 위해 방학 때마다 노력해왔지만, 결국 실패하곤 했었다. 그러다 학교 문학B 시간에 박지원의 한문소설을 공부하면서 다시 이 책, 돌베개의 『열하일기』를 공부해보고 싶어져서, 다시 시립도서관에서 모두 세 권으로 구성된 돌베개의 열하일기 중에서 제 1권을 빌리게 되었다. 1780년 청나라 건륭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북경 여행과 함께 이제까지 아무도 가보지 않은 열하지방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10월 말 경에 이 여행기 집필에 전념하게 된다. 이번에 드디어 완독하게 된 열하일기 1권은 박지원이 청나라 사신일행에 동참하여 의주에서 북경까지의 여행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압록강을 건너기까지의 일을 담은 「도강록」, 심양 여행기인 「성경잡지」, 신광녕에서 신해관까지의 일을 담아 말을 타고 가듯 빠르게 쓴 수필이라는 「일신수필」, 신해관에서 북경까지의 이야기인 「관내정사」, 그리고 열하까지 오라는 황제의 명을 받고 급히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 떠나는 여정을 담은 「막북행정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대 정신을 일깨운 파격적인 기행문학이라는 찬사를 받는 열하일기를 제대로 완역해냈다고 자부하는 책의 내용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도강록」에서 7월 초의 8일 갑신일의 일기에 있는 '통곡'에 대한 이야기였다.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생각하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박지원은 모든 감정(칠정)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나고, 그 울음 소리를 낼 좋은 장소는 시야가 툭 터진 곳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연암 박지원의 모습이 잘 드러난 부분이었다고 생각되었다. 이 책 열하일기 1권을 읽으면서, 박지원은 참으로 지적인 호기심이 많고, '이용후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새로운 물건을 볼 때마다 그것의 제도(제도는 만들어진 방법을 뜻한다.)에 대해서 하나하나 기록해두고, 또 당시의 조선의 물건 중에서 고쳐야 할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그와 같았다. 500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읽어내기가 조금은 힘들기도 했지만(그것도 3권 중에서 1권일 뿐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몇 번의 걸친 실패 끝에 거둔 성과인 만큼 재미도 있고 뿌듯함도 있었다. ㅎㅎ 당장은 힘들겠지만, 빨리 이어서 열하일기 2권도 읽어보고 싶다. 2권에서는 「태학유관록」, 「환연도중록」, 「경개록」, 「황교문답」, 「반선시말」, 「찰십륜포」, 「행재잡록」, 「심세편」, 「망양록」, 「곡정필담」, 「산장잡기」로 열한 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3권에서는 「요술놀이 이야기―환희기」, 「피서록」, 「구외이문」, 「옥갑야화」, 「황도기략」, 「알성퇴술」, 「앙엽기」, 「동란섭필」, 「금료소초」의 아홉 편으로 구성되었다. 2015.8.3.(월) 이지우(고2) |
|
많은 출판사가 있지만 특히 이 책을 선택한 건 읽기 쉬운 문체와 많은 자료 사진 때문이었다. 역자 서문에 따르면 원본에 충실했단다.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과 함께 열하까지 다녀온 일을 담은 길고 긴 기행문이다. 박지원은 특별히 맡은 소임이 없어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구경을 했는데, 이를 자세하게 일기로 쓰기도 하고 시나 소설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했다. ![]() ![]() ![]() 아 뭔가 지도가 있으면 더 좋을텐데.. 아쉬워하며 봤는데 맨 뒷표지에 지도가 있었다. 다 보고 발견해서 당황; ![]() ![]() ![]() 먼저 여기에는 새로운 문화를 보고 배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일단 낙타를 두 번이나 놓치고 못 봐서 장복이에게 처음 보는 사물이 나타나면 꼭 자기한테 일러주라고 당부하는 것만 봐도, 호기심과 열의를 느낄 수 있다. 또 사람들과 만나며 글을 써주고 하면서 자기 딴엔 멋지게 '기상새설'이라고 현판에 걸 내용을 써주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가루 가게를 말하는 거여서 민망했다는 이야기도 재밌다. 모르면 당황하기는 박지원도 마찬가지. ㅎㅎ 그래도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어쩌면 자신은 학자라서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될 가사에 대한 것까지 관심을 가졌다니 참 인정이 많아 보였다. 벽돌과 돌을 하나씩만 비교하면 돌이 더 단단하나, 쌓아 올리는 데는 벽돌만큼 견고한 것이 없다는 것, 가마에 굽는 것도 화기가 고루 유지되는 것이 청의 기술이 더 낫다는 것, 수레의 폭을 통일하니 바퀴 자국이 같아 '전철을 밟게끔' 했다는 것,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알면 뭐하나 실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레가 못 다니는 것은 배우기만 하고 써먹지 않는 선비들의 죄라고 단언한다. 또한 상인들이 무역을 독점하고 물가를 조절하며 폭리를 취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고, 조선에서도 한 번 굳어진 습을 버리지 못하고 많은 사람을 고생에 빠뜨리는 현실 등을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모두 잘 살기 위해 실용적인 학문을 배우고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런 주장을 높게 사지, 당시 박지원도 명나라를 따르는 정신을 버리지 못했으니 사대주의가 뿌리깊어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편 낮은 신분이라도 북방을 여러 번 드나들며 실제 청나라 사람들을 잘 대하는 기술을 지닌 득룡에 대한 얘기도 굳이 적고 있다. 출신보다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나타내는 부분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박지원이 사람들과 주고받는 말들을 보면 재치가 넘치는데, 그 중에서도 만주말을 하는 사람과 한자만 아는 사람 셋이 모여 있자니, 천하의 병신들이 모여 웃음으로 얼렁뚱땅 때우려는 것 같다는 말은 너무 웃겼다. 또 오랑캐를 '되놈'이라고 낮춰 부르는 걸 듣고 청나라 사람이 '소인 도이노음이요.'하고 자신을 밝히는 부분도 재밌는 에피소드. ![]() ![]() ![]() 상인들과도 교제를 나누는데, 박지원은 독특하고 고아한 물건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오래되어 보이는 것들이 사실 그렇게 보이도록 일부러 만든 거라고 상인을이 알려주는 부분에서는 속이는 장삿속이 어째 그 옛날부터 그랬나 싶기도 했다. 이에 전사가라는 사람은 '타국의 군자가 고국으로 돌아가서 중국에는 도무지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고 말할까봐' 걱정하면서, 물건을 감별하고 확인할 것을 편지로 적어주기도 했다. 이게 바로 민간외교. ![]() ![]() ![]() 어쨌든 모조품 만들어 파는 것도 그렇고, 사치스런 장식을 하면 돈이 더 잘 벌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먹고 살 길이 없어 여자들이 말에서 재주를 부리기 시작하는 것도, 한 문화와 정신을 나타내는 것들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깃들어 있었다는 게 새삼스럽고 놀랍다. ![]() ![]() ![]() 한편 여기서 벼슬아치들에 대한 비유가 참 뛰어난 부분이 있었다. '대개 장대를 올라갈 때는 한 계단씩 차례로 밟고 올라가기 때문에 위험을 모르고 있다가 내려오려고 눈을 들어보면 헤아릴 수 없이 까마득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현기증이 생기고 그저 더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오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 ![]() ![]() 그런데 북경까지 갔다가 황제가 열하에 있어 급히 또 열하까지 갔다니, 고생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단다.
이 때 역참도 들리지 못하고 길을 서둘러 불평하는 사람 얘기를 보면서는 역참, 아 아는 거 나와서 반가웠고, 조선에서도 풍요를 바탕으로 점점 서민문화가 발달했는데 청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민들에게 '수호지'를 들려주거나 창을 하는 사람들이 있던 것도 왠지 아는 부분이라 고개 끄덕했다. 워낙 많은 내용이 담겨 있어서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요즘 멋진 사진과 감상 위주의 한 두줄만 적힌 여행집들도 많은데 이렇게 먼 옛날 다녔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보는 형식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여러 방식으로 서술하고 감상을 적어둔 것도 인상적이다. 또 역시 아는 게 나올 때 더 재밌고 반가우니, 세계사랑 같이 보길 잘 했다. 공부는 이렇게 동기를 가지고 재미있게 하는 건데,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배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
|
‘연암의 사유와 연암이 보여준 행로를 따라가 보면 연암은 어떤 격식을 따르는 걸 매우 싫어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규격화되고 제도화되는 것을 극렬하게 싫어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기질이 표출된 것 중의 하나가 우울증입니다. 지금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많지만, 조선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병이었습니다. 워낙 천재였던 연암은 우울증을 굉장히 특이하게 앓은 것 같습니다.(p.375) 그러면 연암은 왜 우울증을 앓았을까요? 그것도 거식증과 불면증을 동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연암의 초상화를 보면 지식인답지 않게 비만입니다. 집도 가난하고 청렴한 게 이 집안의 트렌드였는데, 체질적으로 비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눈매에서 호방함이 느껴집니다.(’인문학 명강‘ p.376)’ 오래 전에 한꺼번에 구입해 놓고 읽지 않았던 ‘열하일기 1,2,3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바로 이 책 ‘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들이 들려주는 인문학 명강’ 덕분이었습니다. 이미 연암에 대해 여러 저서를 출판하셨던 고민숙님의 강연을 통해서 알게 된 연암의 몇 가지 키워드, 우울증과 비만 그리고 가공할 체력과 유쾌한 백수! 바로 이런 아이러니함에 호기심이 확~ 동했죠. ‘[열하일기]는 전 세계 여행기 중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하일기]에는 온갖 종류의 문체가 다 들어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 방면으로는 뛰어난 글들이 많지만, 여러 문체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지면서 공존하고 있는 텍스트는 [열하일기]가 유일합니다. 그래서 제가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열하일기]는 문체가 갖고 있는 잠재력, 실험정신을 최대한 발휘한 글쓰기입니다. 문체의 대향연이 펼쳐집니다. 사실 21세기 지성에서 굉장히 중요한 코드가 글쓰기입니다. 문장을 어떻게 연마할 것인가가 고민이라면 연암에서부터 시작하기 바랍니다.(‘인문학 명강’ p.382)’ 읽다보면 무릎을 탁 치며 ‘과연 명불허전이로구나!’란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이미 강연을 재미나게 읽고 시작했던 터라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연암의 글들은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기가 막히게 상세한 묘사, 선진문물에 대한 오픈 마인드, 너털웃음이 절로 쏟아지게 만드는 유머, 그리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그의 지성과 인성 등등에 매번 놀라서 감탄하게 됩니다. 그래선지 조금만 깊게 파고들어도 어리둥절하게 되는 저의 짧은 배경 지식에 한탄을 하면서도 연암의 ‘열하일기’는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압록강에서 북경을 건너 열하까지 가는 여정이 담겨 있는 1권만 마쳤지만, 곧~ 모두의 여정을 읽고 군데군데 다시 그의 탁월한 문체와 유머를 음미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