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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70세 생일연에 맞추어 조선에서 북경, 북경에서 열하까지 가는 과정을 담았던 『열하일기』 1편에 이어 『열하일기』 2편에서는 열하에서 북경까지 오는 과정과 열하에서 만난 중국인들과 나눈 필담을 정리한 글이다. 1편에서도 느낀 바지만 연암은 중국을 여행하기 전에 여행에 대한 많은 준비를 했다. 그가 중국인들에게 했던 질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과학 분야 뿐 아니라 문화, 역사,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드러냈다.
조선사람들은 명나라를 섬기고 받들었다. 그래서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많았다. 중국 사람들을 보면 만주족인지 한족인지 구분도 안하고 덮어놓고 되놈으로 취급하여 얕보고 교만하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몸에 배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연암은 그들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어떻게하면 조선에서 사용할까 고심했다. 뿐만 아니라 곡정 왕민호와 나눈 필담에서 보면 그가 궁금한 것들은 중국의 한족 여자들의 전족에서부터 의복, 모자 들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전족을 한 여인들을 보며 곡정은 세 가지 재액을 말했다. 먼저 발에 가해진 재액으로 한족 여인들의 전족을 말했고, 머리에 가해진 재액으로는 재갈 물리듯 꽁꽁 얽어맨 망건을 들었고, 천하의 독초인 담배를 세 번째 입에 가해진 재액이라고 했다. 지금도 담배를 피우는 많은 사람들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말이었다.
음악의 소리는 모발의 숲 사이를 감돌고 혈맥의 살결을 통과해서, 들려올 때는 어렴풋이 손님을 마중하는 것 같고, 사라져 갈 때는 가물가물 쫓아갈 수 없을 듯합니다. 만져 보아도 손에 걸리는 게 없고, 보아도 눈에 뜨이는 게 없습니다만, 사람의 삭신을 시큰거리고 슬프게 만들며 애간장을 녹입니다. 떠나갈 듯 가다가 다시 돌아오는 소리는 마치 아직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고, 끊어지다가 다시 이어지는 소리는 마치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342페이지)
망양록 편에서 음악에 대해 토론하는데 가히 음악 전문가인가 싶을 정도였다. 형산 윤가전이 연암을 위해 양 한 마리를 쪄 내왔으나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양을 잊었다고 해서 '망양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가 이해하지도 못할 음률과 소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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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자인 연암은 종교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다.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70세 탄신연에 초대된 서번(티벳)의 승려인 활불 즉 달라이 라마에 대해 알기 위해 많은 질문들을 건넸다. 달라이 라마를 극진히 대하는 건륭제에 대해 연암이 한 말은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해마다 만리장성 밖의 황량한 벽지인 열하에 와 머무는 이유는 명분상으로는 피서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변방을 방어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스승으로 모시면서도 황금전각을 지어주며 그를 감금한 것이라고 했다. 천하의 형세를 파악했던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을 청하여 마음 놓고 이야기를 터놓도록 유도하고, 겉으로는 잘 모르는 것처럼 가장해서 그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면, 그들의 눈썹 한 번 움직이는 데서도 참과 거짓을 볼 수 있을 것이요,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실정을 능히 탐지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종이와 먹을 떠나서 그들의 정보와 소식을 대략이나마 얻을 수 있었던 방법이다. (282~283페이지 중에서)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던가. 코페르니쿠스가 처음으로 주장했다. 과연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중국인들이나 조선인들은 지구가 모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연암은 중국 열하지방에서 달을 쳐다보며 지구가 둥글것이라는 말을 한다. 벗인 홍대용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연암은 조선의 선비들이 생로병사하는 동안에 나라의 강토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때부터 의식이 트여있는 지식인이었다. 열하를 유람하는 것에만 그친게 아니라 먹을 갈고 붓을 들어 글을 썼다는 사실이다. 주막에서 말술을 마셔 그들을 놀래킨 일들은 여행자의 두려움을 잊기 위한 일이었다. 내심으로는 두려우나 겉으로는 의연한척 행동했다. 중국 여행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던 연암을 보았다. 준비된 자만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실생활에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지에 대한 역사나 문화에 대해 미리 알고 가면 그 나라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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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은 열하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으나 2권은 열하에서 황제와 대면하게 된다. 연암이 사절단을 따라온 목적은 북경에서 중국의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함이 목적이었으나 황제의 열하행차로 인하여 황제로부터 호출을 받게 되고 박지원은 홀로 열하땅을밟게 된다.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열하땅을 밟는 것이다. 1권보다 더 방대한 연암의 지식을 엿볼수 있는데 연암 박지원의 박학다식함에 중국인들도 연암의 학문에 놀라워하지만 책을 읽는 나역시 참으로 놀라웠다. 특히 지전설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서양인들보다 더 앞선 시각이라 무척 대단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연암은 친구 홍대용의 학설이라 밝히지만 연암이 가지고 있던 천문학적인 시각과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를 앞서가는 눈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열하에 도착하여 배정된 숙소 태학관에 머물면서 청나라 고관과 과시 준비생 및 학자들과 만나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실은 <태학유관록>으로 시작되는데 천체,음률,라마교등의 이야기들은 조선인인 연암에게는 생소할 터인데도 전혀 밀리지 않으며 오히려 중국의 학자들이 연암에게 감탄하는 대목에서는 독자인 나도 왠지 뿌듯해 지는 기분이었다. 태학유관록에 실린 이야기들은 뒤에 나오는 <곡정필담><망양록><황교문답><반선시말><찰십륜포>에서 본격적으로 내용이 세분화되어 다루어진다. 조선인으로 처음으로 열하에 도착한 감회로 밤에 잠못이루고 서성이다가 술집에 들어가 오랑캐를 만나 두려움에 오랑캐에게 괜한 호기를 보이는 장면은 연암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중국이 말을 다루는 모습을 관찰하여 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말해주는데 자신이 연암협에서 살게 된 까닭이 일찍부터 목축에 뜻이 있기 때문이라며 조선에서 목축업이 발달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주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그 이유는 간단하게 말을 다루는 방법이 틀렸고, 말을 먹이는 방법이 옳지 못하고, 좋은 종자를 받을 줄 모르고, 목축을 맡은 관원이 무식하기 때문이다. <환연도중록>은 황제의 만수절 행사를 마친 뒤, 열하에서 다시 북경으로 돌아기기까지 길에서 경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만리장성의 역사와 그 제도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함께 수천, 수백마리의 낙타를 보며 낙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황교문답>에서는 황교에 관한 이야기인데 황교를 쓴 이유에 대해서 서문에 연암이 밝혀놓았다. 그것은 바로 천하의 형세를 살피는 것이 목적인데 황제가 티벳의 반서를 스승이라 삼은 이유를 정치적인 이유라 설명하고 있다. 티벳의 강성함을 견제하는 방법으로 황교를 우대해주는 것이다. 또한 중국인, 특히 한족 지식인들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모색과 만주족들을 바라보며 천하의 대세를 읽고자 함이니 연암의 학문의 깊이는 지식을 넘어 천하를 대비하고 있었으니 그 깊이가 과히 알 수 없음이다. (후에 중존 이재성의 논평에서는 반선에 대한 이야기를 연암보다 더 자세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왜냐 반선에 관한 기록이 연암이 외국인이기 까닭에 반선기록의 존재는 엄청난 것이지만 사사로운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심세편>에서는 천하의 형세를 살펴본 글인데 특히 중국의 문화 정책과 관련한 사상 통제의 실제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연암은 여기에서 천하정세를 살피는 자신의 방법을 피력하는데 조선 선비들의 우매함을 중국의 선비들과 비교분석하여 설명하고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을 청하여 마음 놓고 이야기를 터놓도록 유도하고, 겉으로는 잘 모르는 것처럼 가장해서 그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면, 그들의 눈썹 한 번 움직이는 데서도 참과 거짓을 볼 수 있을 것이요,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실정을 능히 탐지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종이와 먹을 떠나서 그들의 정보와 소식을 대략이나마 얻을 수 있었던 방법이다. <망양록>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차려 놓은 양고기 요리를 먹는 것조차 잊었다는 뜻이다. 여기 정신을 팔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고금 음악 변천사이다. 음악의 악률과 그 원리에 관한 문제, 음악의 문화적 의의, 악기의 변천사, 음악 이론의 변천등을 중심으로 전문적 지식을 동원하여 담론한 글로 가장 어려운 장이다. 2권의 주된 내용은 중국의 지식층들과의 필담을 통하여 천하의 정세를 살피는 한편 조선에서는 청이 중국을 지배한지 백년이 흐르고 있음에도 아직도 친명배청이라는 사상을 버리지 못한채 청을 미개하게 만 보는 조선의 지식층을 바라보며 한탄하는 내용이 지배적이다. 명나라의 지식층들이 자신들이 멸시하던 만주족의 지배를 받으며 고뇌하는 모습을 통하여 조선선비들이 조금이라도 무식과 무지함을 벗어나길 바라는 연암의 소망 또한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이 무지함에서 비롯됨을 개탄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아마도 연암은 조선에서 실학파들이 가지고 있던 고민들이 무척이나 사무친 듯 보였다. 슬프다 ! 하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거 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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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은 1편에서 이어저 8월 9일부터 14일까지 일기 형식으로 계속된다. 연암 일행은 열하에 도착하여 태학관에 머무는데, 태학관이라는 곳이 청나라의 고관과 과시 준비생 및 학자들이 묵던 곳이라 그곳에 머무는 동안 소중한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사람 보는 눈이 까다로운 연암은 만나는 사람마다 눈코입의 상세한 생김새와 차림새를 상세하게 기록하였으며, 또한 몇마디 나누어보고 그의 학식을 판단하기까지 한다. 특이한 점은 여행 길에서도 그랬지만 태학에서는 더더욱 연암을 보고 읍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당시 태학관이라는 곳이 황제의 생일 축하연이 있는 주간동안 세계적 규모의 축제 분위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연암은 청의 여러 지식인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주제는 지리, 풍속, 제도, 천문과학, 종교, 역사 등의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엄청난 양의 지적 교류를 남긴다. 왕곡정과 윤가전과는 몇일 밤을 꼴깍 꼴깍 새워가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지적인 대화들을 나누었으며 이들을 별도의 글로 남겼다. 열하에서 만나 인연을 만든 사람의 수만도 손에 다 꼽을 수 없을만큼 많은데, 이들의 이력과 출신, 성격, 만나게 된 배경들을 경개록이라는 별도의 글로 만들어서 열하일기 전체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개괄적인 이력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여행 중 연암은 처음 밟아보는 변방의 땅에서 눈에 띄는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들으며 예리하게 관찰하고 조선의 현실과 비교한다. 금광과 목축에 대한 사색이 기억에 남는데, 이 기록이 맞다면 당시 조선의 압록강에 많은 양의 사금이 있었으며 이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밀매되었는데, 중국에서 보는 웅장한 건물들 지붕이며 벽에서부터, 모자에 박힌 금까지 모두 조선에서 나온 금이라고 하는 것에 놀란다. 조선에서는 금이 귀해 금관자나 금띠를 두르는 이품 이상의 벼슬마저 서로 빌려서 사용하는데, 열하의 기와에 도금한 그 흔한 금이 모두 우리나라에서 난 것인지를 의심한다. 당시 사신들이 주로 사용하는 돈은 은자로서, 조선에서는 은이 흔했고 그것이 조공무역 과정에서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만 왕실에서도 모르고 중국 황제도 모르고 있는 사금 역시 알게 모르게 중국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이와 부채, 그리고 연암의 필사기인 청심환 역시 중국 사람들에게는 알아주는 물건들이었던 것 같다. 당시 정자나 누각의 모든 창호는 조선의 종이를 발랐다고 한다. 한지의 세계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청심환은 도대체 얼마나 싸짊어지고 갔을지 모를 정도로, 연암이 만나는 사람들마다 선물이나 답례품으로 주는데, 또 여행 중 만난 중국 사람들은 이것 한 알 얻자고 별별 사기를 다 친다. 1편에서도 먼저간 사신들이 행폐를 부렸다고 거짓말로 불쌍한 척을 해서 얻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도 뜻하지 않은 엉뚱하고 난처한 만남의 대부분이 기승전->청심환한알만 굽신굽신으로 끝나는 것이다. 사실 내게 중국 사람들은 좀 사기꾼같은 기질이 있다는 있는데, 이 사람들을 보니 딱 그렇다. 하다못해 절에 사는 중까지 목이 말라 오미자 몇알 따먹었다고 연암을 잡아먹을 구는데 결론은 청심환 한알만 주쇼로 끝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특히 당대에 연암이 홍대용과 교류하며 지구는 둥굴다는 것, 지동설, 그리고 여러가지 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들을 단지 철학적 통찰만으로 추리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우주의 별들과 달에 대한 섭리를 만물의 세심한 관찰로부터 유추하여 통찰로 얻어내는 과정은 놀라운 것이었다. "지구의 본체는 둥글고 허공에 걸려 있어 사방이 모나지도 않고 또 위와 아래도 없으며, 도는 모양이 마치 문의 돌쩌귀가 돌아가듯 해서 태양과 처음으로 마주치는 곳이 아침에 먼동이 트는 지방이겠지요? 지구가 점점 돌면서 처음 태양과 마주치는 곳에서 점점 어긋나고 멀어지면서 정오도 되고 해가 기울기도 하여 낮과 밤이 되는 것이겠지요?" "비유하자면 창구멍으로 햇살이 새어 들어와 크기가 작은 콩알만 하게 되었을 적에 창 아래에 맷돌을 놓아두고 햇살이 비추는 곳을 먹으로 표시한 뒤 맷돌을 돌리면 먹으로 표시한 부분은 처음 햇살이 비친 곳을 지키고 움직이지 않을까요? 아니면 서로 어긋나 돌아보지 않고 지나치게 될까요? 맷돌이 한 번 돌아서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면 햇살과 먹을 표시한 부분이 겨우 합해졌다 잠시 만에 다시 사이가 벌어질 것이니, 지구가 한 번 돌아서 하루가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이겠지요? 또 등불 앞에서 물레가 돌아가는 것을 관찰해 보십시오. 물레가 돌아가는 곳마다 면면이 빛을 받게 될 것이니, 이는 등불이 물레 주변을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 "해와 달은 오른쪽으로 돌아 마치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 같아, 그 궤도가 크고 작은 것이 있고, 돌아가는 속도가 더디고 빠른 것이 있어서, 일 년이 되고 그믐이 되는 것이 모두 정해진 법도가 있습니다. 해와 달이 왼쪽으로 돌면서 지구를 두른다고 말한다면 우물 안에 앉아서 하늘을 보듯 지나치게 좁은 식견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이야기들을 뭘 잘 모르는 기풍액에게 하였는데, 그가 좀더 학식이 높은 윤가전과 왕민호에게 알려 이를 듣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왕민호와 윤가전과 함께 그야말로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필담을 나누는 것이다. 황제의 명으로 생신 축하연에 참석하기 위해 열하로 갈 때 사신 일행은 황제의 명에 따라 엄청난 특권을 누리며 배도 먼저 타고, 수많은 중국측 수행원들의 대접받으면서 가게 되는데 반대로 돌아갈 때는 찬밥신세가 된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당시 청나라의 황제는 서번(티베트)의 승왕인 반선(성승, 달라이라마)을 당시 황금 지붕으로 된 궁전으로 된 데려다 놓고 극진한 대접을 하고 있었고 조선의 사신들에게도 그를 만나보라는 지시를 내렸으나 중국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오랑캐로 보고 교류하지 않는 것을 법도로 알고 있던 융통성 없는 조선의 사신들은 이를 거절하다가 어쩔 수 없이 보러 가고, 가기싫어 죽겠는 표정으로 가서는 예도 갖추지 않고(절도 안하고) 뻣뻣하게 군다. 그것도 모자라 귀행길 안전을 빌어주는 부적으로 하사받은 구리불상 및 여러 하사품들을 하찮게 여긴다. 청 황제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었지만, 이런 일들은 황제를 명을 받들던 예부와의 매끄럽지 못한 관계로 북경으로의 빠른 귀환으로 이어진 듯싶다. 오늘날 에세이같은 성격도 있고, 때론 과학서나 역사서 같기도 한데 여행 중 만났던 인물들과의 관계와 개성들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에 때때로 소설과도 같은 풍경이 자주 만나는데, 개성면에서 단연코 가장 빛나는 인물은 연암이다. 곡정필담에서 특히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나는데, 그는 어마어마한 지식으로 분야를 막론하고 시대와 공간을 종횡무진 마구 가로지르는 왕곡정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지식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와 동등하게 서로 이게 옳네 저게 옳네 하며 비판하면서 심도 높은 대화를 하는 이상적인 학자면서 또 밖에 나가 술집을 기웃거릴 때에는 생전 처음 보는 '험악'하게 생긴 서역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술동이채 털어 넣는 술허세를 보이기도 한다. 2편을 읽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했는데, 읽어도 읽어도 영 모르겠는 난코스가 있다. 라마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황교문답과 반선의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는 반선문답까지는 좋았는데, 양고기 맛을 잊게 한 음악이야기라는 망약록서와 곡정과 나눈 필담인 곡정필담 이 두 부분에서는 좀처럼 읽어도 읽어도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제 자체가 이 주제 저주제로 종횡무진 마구 가로지르는데다가 역사적 인물, 역사적 사건들이 자유자재로 거론되고 이것들에 대한 두 상반된 시각, 혹은 두 공유된 시각이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흘러다니기 때문이다. 황제의 생일을 맞아 중국을 둘러싼 각국에서 조공들이 들어오고, 요술쇼도 구경하고 열하는 완전히 세계적인 축제 분위기다. 우리의 연암선생은 신났다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즐기고 먹고, 마시고, 허세도 부리면서 하나하나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지금처럼 편하게 편과 메모지가 흔한 세대도 아니고 글자를 쓰려면 먹을 갈아 붓으로 쓰는 시대에 어떻게 말안장에서까지 글을 썼는지, 또 필담하고 난 후에 중국인들은 그것들을 모두 태워버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 많은 말들을 기억해서 기록했는지 대단하고 또 대단하다. 이제 3편이 남았는데, 곡정필담을 읽으며 내가 중국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를 절실하게 느꼈다. 중국 통사를 한 번 훑고 3권을 읽었으면 하는데, 독서토론 도서라 다음주까지 읽어야한다. 다음 3편도 역시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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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박 4일간 죽기 살기의 일정으로 열하에 도착한 사행단 일행은 임시 숙소로 배정된 태학관에 머물게 된다. 2권은 8월 9일부터 14일까지 건륭제의 칠순연에 참석하기 위해 대기하던 곳인 태학관에서 만난 윤가전을 비롯한 청나라 고관과 과시 준비생과의 주고받은 이야기를 기록한 태학 유관록으로 시작한다. 조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과 우리나라의 지리, 풍속, 제도를 소개하고 중국시집에 기록된 조선 관련 시화에서부터 천체, 음률, 라마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주고받는다. 또한 청나라 통치하의 한족 지식인들과의 필담을 통해 그들이 가진 고뇌를 엿본다. 더불어 조선인으로서 열하에 처음 도착한 벅찬 감회에 잠 못 이루고 혼자 마당에 나와 달그림자와 더불어 장난치는 모습과 혼자 들어간 술집에서 중국의 음주문화와 다르게 데우지 않은 술을 대접에 마시다 주당으로 인정받아 오랑캐에게 술대접을 받는 부분은 연암만의 위트와 해학이 넘친다. 또한 윤가전과 명나라 여자들의 전족이 가진 폐해와 담배의 폐해에 대해 논하는 부분은 실학자로서의 연암의 사상을 엿보게 한다. 북경에서 열하로 올 때는 여유가 없어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없었지만 만수절 행사를 마친 연암일행은 북경을 돌아가는 길에서는 오던 길에 보지 못한 풍경을 보며 여유롭게 돌아온다.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된 열하일기는 여기까지이다. 연암의 세세한 관찰력은 이장에서도 빛을 발한다. 감숙성의 만리장성과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풍경을 보며 떠올리는 중국의 역사와 장성의 축조에 관련된 이야기와 성의 축조에 담겼을 민초들의 한과 설움을 되새겨본다. 이후 기록된 글은 하나의 주제를 기반으로 여행 수필식으로 엮어진 글이다. 열하에서 만난 수많은 친구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부터 시작하여 2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바로 라마교에 대한 이야기다. 고려 말 공민왕시절 요승 신돈에 의해 고려가 멸망해서인지 조선은 강력한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을 폈다. 심지어는 여자들이 절에 가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기 까지 했다. 헌데 사신단 일행은 황제의 명으로 라마교의 지도자인 반선을 만나야 했다. 건륭제는 반선을 스승의 예로 우대하며 황금궁전을 지어 기거하게 했다.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 사신단 일행은 차일피일 핑계를 대며 만남을 피했고, 일부러 길을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황제의 명을 거역할 없어 반선을 만나기는 했지만, 반선에게 예를 올릴수도, 반선이 준 선물을 조선으로 가져올 수도 없었다. 혹 나중에 탄핵의 대상이 될까 우려해서다. 라마교에 대한 내용과 반선에 대한 이야기, 반선과 만난 이야기를 통해 그 시절 조선에서 불교가 얼마나 탄압을 받고 있었으며, 사신으로서의 역할과 선비로서의 도리 사이에서 고뇌하는 조선 사대부의 고민이 엿보인다. 또한 사행과 관련된 문건을 모은 행재잡록을 통해 청나라가 조선을 어떻게 대접했으며 하급 관료들이 조선의 사신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했는가를 알 수 있다. 연암의 꼼꼼함과 세밀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연암은 사행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정리했다. 일기형식으로 기록된 장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부분은 사행이 끝나고 연암골로 돌아가서 기억을 정리하며 적은 글인 듯하다. 물론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행과정에서 만난 이들과 필담을 나눈 기록 등을 꼼꼼히 정리했다. 그들과 고받은 필담을 통해 중국의 역사, 인물, 풍습, 관습, 법체계와 과학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대화의 범위가 모든 학문에 미친다. 어디 학문뿐인가! 음악의 이론과 그 원리에 대한 문제, 음악의 문학적 의의, 악기의 변천사, 음악 이론의 변천 등을 기록한 망양록에 이르면 연암의 지식의 심오함에 그만 입이 떡 벌어진다. 조선시대 학문을 하는 선비라면 학문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전문지식까지 겸비해야 만이 진정한 선비로 인정받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잘 다루는 악기 한 두 개쯤은 있어야 진정한 선비로 대우받을 수 있었으니 조선의 선비가 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음악을 기반으로 그 이면에 새겨져있는 역사발전의 내면적 이유, 인간의 자기 가치를 결정하는 처세관 등의 핵심적인 주제에 관한 깊은 대화는 읽는 이를 질리게 한다. 옛날 공자가 순임금의 음악인 소(韶)를 들으시고 고기 맛을 잊었다고 한 고사가 과장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장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곡정과 나눈 필담을 적은 곡정필담에 이르면 연암의 해박함과 다양한 지식은 상대를 질리게 한다. 곡정 왕민호와 나눈 필담내용은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주와 천체에 대한 문제, 물체의 본질, 생물의 기원 등에 관한 자연과학적인 분야는 물론 철학적 주제와 종교, 정치, 역사, 문화와 역사인물에 대한 것까지 이르고 있다. 헌데 이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혹시나 만나게 될 청의 지식인들과의 학술적 대결에서 절대지지 않기 위해 길을 가는 말위에서 토론에 대해 철저히 준비했다는 그의 고백을 접하고는 그의 대단한 학문적 자존심이 엿보인다. 만주족 지배하에 불우한 지식인인 곡정을 빌어 어쩌면 벼슬을 포기하고 산야에 은거한 자신을 투영한 것 같아 안쓰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심각한 학술적 토론이라고 하더라도 연암은 특유의 해학과 위트를 잊지않는다. 하지만 이런 글들이 경망스럽다고 해서 패관잡기로 취급되어 일부 고루한 선비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 시대에든 머릿속에 든 것 없는 허울 좋은 이들은 실질을 배제하고 형식만을 중시한다. 하지만 연암이 누구인가? 정덕(正德)보다는 이용(利用) 후생(厚生)을 먼저 생각하는 실학파의 한 주류인 북학파의 선두 자가 아니던가? 이렇듯 연암은 여행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단순히 기억에만 의존했겠는가?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들을 때마다 꼼꼼히 기록으로 남기고 후일에 돌아온 후 따로 정리하여 기록에 남겼다. 커다란 체구와 태양인의 성품을 지닌 연암에게서 볼 수 없는 성품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지식인이 갖추어야할 소양이 아니던가. 그의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은 이런 꼼꼼함과 치밀함의 소산은 아닐까? 지식인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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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읽어 보고 싶다.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넋두리처럼 써 본다. 나도 원문을 읽고 즐길 수 있는 실력이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허영심이라도. 작가가 어떤 한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을까, 한글로 풀이된 것만 읽자니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든다, 그런 생각.
좋은 책이다. 누가 읽으라고 한다고 해서 읽을 책이 아니다. 그냥,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찾아 읽게 되어 있는 책이다. 그리고 느끼게 되리라. 대단하다는 것을. 1780년에 우리의 조상이 쓴 글이 이만큼이나 거룩하다는 것을.(나는 좀 많이 반성해야 한다. 지난 사람들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분별력 없는 태도에 대해)
아쉬운 점은, 지금 중학생들에게 소개할 만한 글을 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책이나 작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요즘 학생들의 수준이나 취향 탓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빠르게 감각적으로 변하고 있는 흐름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는 이 책 속의 글이 느리고 더디며 어렵다는 느낌을 줄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글, 가치 있는 글이라도 일단 재미없다고 읽지 않으려고 하는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진지한 독서를 원하는 학생들에게만 유용하겠다.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는 일, 여행기를 읽는 것을 참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은 새롭다. 그저 돌아다닌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서 본 것, 신기한 것, 우리의 것과 다른 것만 소개하지 않는다. 내 밖의 것을 보는 시야가 넓고도 깊다. 우리에게 이 책이 있다는 것이 문화유산 측면에서는 축복이다.
작가가 한문이 아니라 한글로 열하일기를 썼더라면, 아, 어떻게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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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제2권은 태학관에 머물며<태학유관록>, 북경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환연도중록>, 열하에서 만난 중국친구들<경개록>, 라마교에 대한 문답<황교문답>, 반선의 내력<반선시말>, 반선을 만나다<찰십륜포>, 사행과 관련된 문건들<행재잡록>, 천하의 대세를 살피다<심세편>, 양고기 맛을 잊게 한 음악 이야기<망양록>, 곡정과 나눈 필담<곡정필담>, 피서산장에서의 기행문들<산장잡기> 등 11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과 <곡정필담鵠汀筆譚>을 추천한다. 물론 일반독자들에게 친숙한 글은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와 <상기象記> 등이 수록되어 유명한 <산장잡기山莊雜記>이지만, 개인적으로 연암과 윤가전, 왕곡정과의 필담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태학유관록>은 8월 9일부터 14일까지 열하에 있는 태학관에서 엿새간 머물면서 당시 청나라 통봉대부 대리시경을 지낸 형산 윤가전尹嘉銓과 거인 곡정 왕민호王民暭와 만나 대담한 내용들로, 중국학자들이 물은 조선의 풍속과 제도에 대해 연암이 답변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 왕민호가 궁금해하는 조선의 미풍양속에 대해 연암이 사대부 여자가 두 남자를 섬기지 않는다는 것을 조선의 미덕 가운데 하나로 간주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연암이 이 말을 했을 때 형산과 곡정이 나름의 대화를 한 것도 믿기지가 않거나 이상하게 여겨서일 것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연암의 이런 생각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오히려 곡정이 연암보다 오늘날의 페미니스트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에도 이런 풍속이 있어 아주 고질적인 폐단이 되었습니다. 혼인을 하기 위해 예물만 보내고 아직 초례를 치르지 않았는데 불행하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여자는 평생 동안 혼자 살아야 합니다. 이건 그래도 오히려 나은 편입니다. 심지어는 대대로 사이가 좋은 집안끼리는 뱃속에 든 아이를 두고 혼인을 정하고, 혹은 남녀가 모두 갓난아이일 적에 부모끼리 혼담을 주고받았다가 남자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여자가 독약을 먹거나 목을 매달아 한곳에 묻히기를 바라니, 참으로 예법에 크게 어긋나는 일입니다."(2권34쪽)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때 연암이 무색해지는 것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연초와도 관련이 있다. 나이 70대의 윤가전과 60대의 왕민호 모두 담배를 혐오해 피지 않는데, 연암은 연초를 즐기며 연초의 의학적 효용을 빌려 구색을 맞춘다. 형산 윤가전은 1781년 문자옥에 의해 희생되고 그의 저서도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연암의 글을 통해 한국의 후생들이 그의 학식과 풍채를 엿볼 수 있게 되니 시공을 초월한 인연이란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곡정필담>은 열하 태학관에서 함께 기거했던 중국 학자 곡정 왕민호와 더불어 필담한 내용들이다. 곡정과 연암은 달세계, 지전, 역법 같은 자연과학적인 문제와 종교, 역사, 문화와 인물 등에 대해 담론을 나눈다. 특히 자연과학에 대한 담론은 그 내용이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허구적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
![]()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 필담을 나눈 것이 자세히 드러나있다. ![]() 태학관에 머물 때의 이야기. 그 중 군기처 대신이 황제의 명을 받들고 와서, 서번(티베트)의 성승을 만나보라고 한다. 당시 황제는 살아있는 부처라며 라마승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중. 조선의 사신들은 오랑캐들 하는 짓들이라며 싫어하고, 어떤 사람은 가서 만나면 더 난처한 지경에 빠질 거라고 걱정하고, 어떤 사람은 예부에 글을 올려 이치를 따져 보자는 둥 의견이 분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법을 따지자는 것도 어처구니 없었지만 결국 황제라는 권력 때문에 이렇게 논의가 벌어졌다는 것이 비단 이 때의 이야기만이 아니기에 씁쓸했다. ![]() 열하에 머물러 있다가 황제가 북경으로 가라고 명을 내려 밤까지 급히 짐을 꾸리는 것도 울컥했는데, 조선 사신들의 뜻을 황제 듣기 좋게 고친 것도 어이 없었다. 사신들이 예부에서 황제에게 올린 글을 몰래 고쳐서 올린 것을 따지자, '너희가 황제께 올린 글은 그 말뜻이 애매모호하여 고마워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내용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너희를 위해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사실에 근거해서 진술하여 영광되고 감동된다는 뜻을 폈다'며, 그러면서 얼른 조선 사신이 출발하게 재촉하는데 이는 다시 글을 못 올리게 훼방을 놓으려는 수작이라고 한다(p.101). 황제를 뵈러 열하로 갈 때와 다 뵙고 다시 북경으로 돌아갈 때의 대우가 판이하게 다른 것도 그렇다. 이에 박지원은 '세력이 있는 곳에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따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고 일이 썰렁하게 식으면 의지하고 기댈 곳이 없어진다. ... 세상이 생긴 이래로 휩쓸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 라고 말했다(p.127). ![]() 박지원은 황교(라마교)에 대해서도 중국 사람과 필담으로 문답한 내용을 적었다. 그런데 계속 필담한 내용을 모두 불태우고 심지어는 종이를 꾸겨 씹어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한족만이 아니라 만주족은 더 심했단다. 이에 박지원은, 망한 나라의 백성인 한족은 지금 세상에 초월한 듯 살아야 하니 괴롭고 만주족 역시 황제와 가까운 직위에 있어 법이 엄하고 가혹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하는 당사자들도 괴로울 것이라고 쓰고 있다. 필담을 하는 중국의 유학자 역시 유학을 비판하고, 세태를 비판하는 것은 알고 배운 만큼 세상이 잘 돌아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지식인들의 말은 겸손하면서도 무력한 슬픔이 느껴진다. "지금 세상에 문장이 뛰어난 인물로 그 두 사람과 비교할 만한 이가 있습니까?" 라고 물으니 여천은 대답은 하지 않고 멋대로 붓으로 장난을 치며, "없다고 하면 있고, 있다고 하면 없습니다." 라고 하기에 나도, "나라고 생각하면 너고, 너라고 생각하면 나입니다." 라고 응수했더니, 여천은 앞으로 나와서 내 손을 한참 잡고는 스스로 자기 가슴을 가리키다 또 내 가슴을 가리킨다. 박지원이 필담으로 그 많은 내용을 나눈 것도 대단하지만, 참 언어와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신들도 말이 통하지 않아 의심이나 분노를 항상 역관에게 퍼부었다는 이야기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졌다. 대개 말이 서로 통하지 못해 피차가 역관의 혓바닥에만 의존하기 때문인데, 사신은 자신이 속하지 않았나 의심을 품고, 역관은 이를 밝히기 어려워 항상 원망하게 되니, 상하의 사정과 처지가 막혀서 서로 통할 수 없다. 사신이 역관에 대한 책임을 독촉하면 할수록 서반과 통관의 농간이 더욱더 심해져, 일이 되고 안 되고 혹은 빠르고 더딤이 처음부터 그들의 수중에 놀아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걸핏하면 뇌물을 찾게 되고 해가 갈수록 점점 증가하여 이제는 아주 관례가 되었다. 아마 같은 말을 쓰더라도 자신을 변호하고 거래를 해야 하는 모든 관계에서 신뢰가 없다면 이와 같은 일은 계속 반복될 터이다. ![]() 천하의 형세를 살펴본 심세편에서는 중국 문화 정책과 관련해사상 통제의 실제를 예리하게 분석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황제가 걸핏하면 주자를 내세우는 까닭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다. 천하 사대부들의 목을 걸터타고 앞에서는 목을 억누르며, 뒤에서는 등을 쓰다듬으려는 의도이다. 천하의 사대부들은 대부분 그러한 우민화 정책에 동화되고 협박을 당해서 쪼잔하게 스스로 형식적이고 자잘한 학문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이를 눈치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p.284). 참 고전을 보면서 재차 느끼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 사람이 가진 본성이 그래서다. ![]() 음률에 대해서 다룬 '망양록'은 당최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음악에 관한 시조들까지 잔뜩 끌어다 썼는데 들어야 되는 음악을 그런 감이 없는 내가 읽으려니 그냥 그건 넘어갔다. 곡정(왕민호)과 나눈 필담은 참 길었는데, 깊이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둘이 소통하면서 이야기해서 그런가보다. 그 중에서도 박지원이 덧붙인 말이 제일 인상 깊었다. 박지원도 한양을 떠나 8일만에 황주에 도착했을 때 생각해보니, 학식이라곤 전혀 없는 자신이 중국에 들어갔다가 위대한 학자라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고 질의를 할 것인가 생각하니 걱정이 되고 초조했단다. 그래서 예전에 들어서 아는 내용 중 지전설과 달의 세계 등을 찾아내 말고삐를 잡고 안장에 앉은 채 졸면서 이리저리 생각을 풀어냈단다. 정말 다양한 분야를 관찰하고 많은 이야기를 풀어낸 박지원도 초조감을 느꼈다니 참 인간적인 면모가 보였고, 그래서 왠지 나도 용기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한편 곡정이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것. 재상에 자리라는 것이 윗사람에게 신임을 받으면 아랫사람에게는 인심을 잃게 되고, 백성에게 잘 보이면 군주에게는 시기를 받게 되는 법입니다. 한 시대에 임금을 도와 정치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렁과 난간을 손으로 받치고 있다가 한 번 손을 놓치는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와장창 쏟아져 내려 뒤집어쓰는 꼴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와 예수님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잘못된 정보였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와전되거나 잘못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비판. 우리나라가 목축에 요령이 없어 좋은 말이 없는 것을 비판하면서, '말을 다루는 방법이 틀렸고, 말을 먹이는 방법이 옳지 못하고, 좋은 종자를 받을 줄 모르고, 목축을 맡은 관원이 목마에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짚었다. 그런데도 채찍을 잡고 말 앞에 나서서 국내에는 좋은 말이 없다고들 떠들어댄다. 어찌 나라 안에 쓸 말이 없겠는가? 이런 한심한 일은 하나하나 손으로 꼽을 수도 없다(p.83). ... 말을 관리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큰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서 모든 것을 아래 비복들의 손에 맡긴다. ...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목축을 맡은 관원들이 무식하다는 말이다(p.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