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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3』열하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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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겁게만 느껴졌던 『열하일기』 읽기가 마지막에 이르렀다. 부담되는 책읽기였지만,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재미있게 읽히는 책 때문에 어느새 즐겁게 임하기 시작했다. 그 시대에 이런 글을 썼다는 게 믿기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성리학을 따랐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고루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드넓은 중국 여행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공부했고, 또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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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겁게만 느껴졌던 『열하일기』 읽기가 마지막에 이르렀다. 부담되는 책읽기였지만,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재미있게 읽히는 책 때문에 어느새 즐겁게 임하기 시작했다. 그 시대에 이런 글을 썼다는 게 믿기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성리학을 따랐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고루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드넓은 중국 여행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공부했고, 또한 학식이 있는 사람과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한자로 쓸 수밖에 없었지만, 가끔씩 중국어도 배워 서툴게나마 그들과 소통하려했던 연암은 진정 실학자였다.

 

조선에서 압록강, 북경을 거쳐 열하까지의 여정을 담은 글이 1권이었고, 2권은 열하에서 북경에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담으며 곡정과 필담을 나눈 이야기들을 말한 글이었다. 3권은 환희기 부터 시작하여 옥갑야화, 북경의 이곳저곳을 유람하고 적바림 모음과 동란재에서 쓴 글을 담은 내용이다. 환희기는 요술놀이 즉 북경에서 본 마술을 직접 구경하고 글로 썼다. 황제의 생일에 맞추어 열하로 모여든 마술사들은 각기 자신의 기량을 뽐냈고 연암은 그 스무가지의 마술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화담 서경덕에게 일어났던 일을 말하며 요술쟁이가 우리를 현혹시킨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보는 사람 스스로 현혹되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꽤 인상적이다. 우리 스스로 무엇을 보느냐,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눈앞에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는 것을 말한 부분이었다.

 

열하의 피서산장에서 쓴 시화를 모은 피서록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중국에 있는 서적에 올라와 있는 조선인의 시와 연암이 외우고 있는 조선인들의 시는 꽤 좋다. 연암은 문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걸출한 선비라는 그의 벗 나걸(자 중흥)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 '문 밖에 중흥이 오는 발소리가 나면 반드시 먼저 문방사우를 감춘 연후에야 나가서 맞이한다' 라고 했다. 왜냐면 '종이 쪼가리가 부족해서 글자의 정이나 획, 파임을 다 쓸 수 없게 되면 붓을 종이 밖에까지 운필을 했기 때문에 좌석이 온통 새까맣게 되었다' 라는 것이다. 

 

연암의 벗들은 그가 중국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을 때, 전별시를 건네주었다. 멀리 중국에까지 유람을 떠나는 연암에게 준 전별시는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몰라 건넨 시였으리라. 이별의 마음을 담아 잘 다녀오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시였다. 어느 책에선가 글씨를 잘 쓰는 이에게 묘지명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읽은 것 같은데, 연암 또한 누님과 형수의 묘지명을 지었고, 중국 여행에서 아름다운 필적을 가진 사람에게 글씨를 받으려고 하였다고 했다. 내가 죽고난 뒤 누군가 써주는 묘지명이 아니라 죽기전에 미리 묘지명을 받고자 하는 것은 미리 죽음을 준비하고자 함이었던 것 같다.

 

 

 

중국에 들어가 다시 출판된 조선시대 어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 판본을 구하고 싶었으나 책값 문은 닷 냥을 마련하기 어려워 아쉽고 섭섭하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능어가 지은 서문이라도 베껴서 뒷날 참고 자료로 삼고자 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의약처방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열하일기 마지막 뒷편엔 의약 처방 기록을 따로 둘 정도였다. 나도 몇가지 참고하고자 하여 포스트잇을 붙여두었다. 이처럼 다양한 서적을 읽고 그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책에 남기는 이유를 우리는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

 

열하일기 마지막 편에는 그의 소설 「허생전」이 수록되었다. 사실 「양반전」 등 소설을 그가 썼다는 것은 알았지만 열하일기 편에 수록된 것은 몰랐다. 윤영에게 들은 허생 이야기라는데, 연암은 「허생전」에서

재물을 얻는 방법과 이상향의 섬을 건설했고, 북벌 정책을 위한 세가지 계책도 말한 이야기였다. 어느 집단이든 사람을 잘 써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좋은 사람이 들어와야 그 집안이 잘 되는 것처럼 정치를 하는데서도 제대로 된 사람을 써야 이루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연구하고 파악하는 일이 먼저일 터, 천하를 도모하기 위해 사람을 부려 청나라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중요성을 말했다.

 

이야기라는 것이 듣거나 읽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경우도 많지만, 이야기 속에서 가르침을 주거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허생전」 한 편의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듯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 백성들이 핍박받지 않고 사는 게 어떤 모습일지 연암의 생각이 드러난 글이었다.

 

중국을 여행하기 위해 공부하고 준비했던 연암은 여행을 하며 새로운 문물을 우리나라에 사용해보고자 했고, 그가 가진 지식을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그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진정 시대를 앞서 나가는 사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의 사람이었지만 우리는 지금도 그의 글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7.02.28. 신고 공감 9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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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마지막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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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듯 연암의 발길을 따라 숨가쁘고 머나먼 여정을 했다. 물론 연암은 이러한 여정이 찰나처럼 짧게만 느껴졌겠지만 조선선비로는 최초로 열하의 피서산장을 구경하고 이교도인 반선을 만나는등 그야말로 자신의 목적을 120%달성한 여정이었음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번 권은 연암이 열하와 그리고 열하에서 북경으로 건너와서 북경 거리의 진기한 모습을 보고 느낀점을 위주로 기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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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듯 연암의 발길을 따라 숨가쁘고 머나먼 여정을 했다. 물론 연암은 이러한 여정이 찰나처럼 짧게만 느껴졌겠지만 조선선비로는 최초로 열하의 피서산장을 구경하고 이교도인 반선을 만나는등 그야말로 자신의 목적을 120%달성한 여정이었음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번 권은 연암이 열하와 그리고 열하에서 북경으로 건너와서 북경 거리의 진기한 모습을 보고 느낀점을 위주로 기록한 일종의 박물기라고 해야할 것이다. 특히 귀국하는 길에 옥갑이라는 곳에서 역관들과 격식을 떠나 담소를 하는 도중 윤영의 이야기라는 단소를 달면서 들려준 <허생전>은 지금까지도 많은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이번 권은 앞에서 말했듯이 박물기의 성격이 강하지만 연암이 누구인가 연암은 쉽고 부담없이 읽을거리에도 그만의 촌철살인같은 해학과 자기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래서 연암을 읽으면 읽을수록 역시 프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건륭황제의 만수절을 기념하여 열하곳곳에서 펼쳐진 신기한 요술이벤트를 목격하고 남긴 환희기는 그 내용만으로도 현대의 마술 디너쇼를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듯이 리얼하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환희기의 원문은 모두 4자씩 토를 끊을 수 있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연암의 탁월한 글솜씨를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연암은 말미에 화담 서경덕과 장님과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생물학적인 눈에 보이는 실체가 세상의 모든것이 아니라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 광명정대한 눈이란 진정한 자신의 소견이 없으면 그저 창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선 선비들의 학문연구를 독려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권의 하이라이트는 옥갑에서 들려주는 허생전일 것이다. 우리는 허생전을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지금으로 따지면 허생은 거시적 경제흐름을 읽을줄 아는 대가였다. 특히 상품의 유통에 대한 높은 식견을 가지고 한나라 경제를 통제한다. 하지만 연암은 허생전을 통해서 당시 조선의 경제적 체력이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비판함과 동시에 아직도 존명정신으로 똘똘 뭉쳐있는 엘리층의 위선적인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 여기서 허생은 아마도 연암 자신의 분신일 것이다. 탁상공론과 명분에 목메고 있는 당시의 지식층은 연암눈엔 마치 어린애들의 투정으로만 비쳐졌다. 북벌의 쌍두마차였던 효종과 이완을 슬그머니 끌여들여 북벌의 허와 실을 세세하게 밝혀 북벌의 허망함을 질타하고 있다. 그렇다고 연암이 친청주의자라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연암은 열하일기 곳곳에서 되놈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듯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지만 연암에게 그러한 되놈에게도 배울것은 배워야 한다는 근본적인 갈망이 이었다. 연암은 손자가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했듯이 그토록 증오하는 적을 알아야 그 적을 정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연암은 청나라의 제도 특히 기와나 수레, 난방장치 심지어 똥거름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철철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던 것이다. 그만큼 연암에게 청의 모든 문물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극기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북경의 사찰과 도교사원 그리고 야소교의 성당을 관람하면서 느꼇던 양엽기에서 연암 특유의 유머러스한 필치를 보여주므로서 다시 한번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북경의 법장사라는 절에서 발견한 김창업과 홍대용의 이름을 발견하고선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고북구 만리장성벽에 새겼던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번 새겨볼까라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아마도 지금우리들이 공공건물이나 화장실등에 써갈기는 낙서의 기원은 역사적으로도 그 내력이 있는것 같다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연암의 여정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열하일기 전반에 걸쳐서 연암은 이용후생을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주체적인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비단 지금의 청제국이 최강이라고 하지만 그들에게도 약점은 있고, 비록 오랑캐라고 하지만 그런 오랑캐에게도 배울것은 분명이 있다는 점을 소중화라고 떠벌이는 조선의 비루한 선비들에게 던져 주는 메시지인 것이다.

 

▣ 정조가 침몰하는 조선이라는 배의 선장이었다면 연암은 알려지지 않는 조타수였다. 이는 물론 사견이지만 정조의 문체반정은 정조의 노론에 대한 히든카드였다. 정조는 문체반정의 시범케이스로 연암의 열하일기를 지목했고 열하일기는 그야말로 금서로 낙인 찍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금서지정이 오히려 세간의 불을 댕겨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서 그동안 우물안의 개구리격이었던 조선선비들의 정신을 일깨우는데 일조를 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아마도 정조는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고 역으로 식자층의 허상을 깨는데 연암의 열하일기를 적극 활용했던 것은 아닐까.

분명히 열하일기는 당시에 불온한 서적이었다. 건륭이라는 연호를 버젓이 사용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무엇보다 열하일기의 내용자체가 쓰나미와 비견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 그자체였던 것이다. 왜 연암은 이렇듯 위험한 게임을 했을까 아마도 그 해답은 치서록에 담겨있는 밴댕이가 새우가 되고 새우가 가오리가 된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진실이라는 것은 시대와 지역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할려고 하는 것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연암에게 진실이나 진리는 고정화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그 과정을 찾아가는 길이 있을 뿐이였던 것이다.

l******e 2009.12.24.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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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 그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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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에 빠져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한동안 연암앓이를 할 것 같다. 고전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 전에는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매력이 느껴지고 최근에야 고전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다. 고전을 통하여 현재를 읽는다는 말처럼 고전은 현재를 대변해주고 있으며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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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에 빠져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한동안 연암앓이를 할 것 같다. 고전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 전에는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매력이 느껴지고 최근에야 고전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다. 고전을 통하여 현재를 읽는다는 말처럼 고전은 현재를 대변해주고 있으며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글을 쓰는 것은 학습이 아니라 열정이다라는 신경숙 작가의 말인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바로 그 열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뻣다. 실제로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오로지 쓰는 것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것은 열하일기를 읽으며 연암의 진정이 느껴지는 데 첫째가 조선에 있는 선비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고 둘째가 바로 자신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선비들에게 보여주려 하였던 것은 조선선비들이 우물 안의 개구리란 생각이 가장 컷고 연암은 일찍부터 벼슬에는 뜻이 없었기에 자신이 연암협에서 지낼 때 불편함이 없도록 배우고자 함이다. 그러나 조선선비들은 열하일기가 보여주는 세계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문체반정이라는 명목으로 연암을 공격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3권은 북경에서 연암이 보고 들은 것과 경험한 것들을 모아 기록한 것으로 일종의 박물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환희기>에서는 요술을 부리는 것이 신기하여 요술놀이를 구경하지 못한 조선사람들이 글을 읽어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놓았는데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연암의 글은 관찰자시점에서 쓴 글들이 많은데 무척이나 세세하게 기록하려고 한 것을 보며 연암이 열하일기를 통하여 조선선비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 하는 취지를 엿볼 수 있다. <피서록>은 열하 피서산장 밖 태학관 회나무 아래의의자에 앉아 더위를 식히면서 쓴 시화인데 수록된 시화를 통해 연암의 비평의식을 볼 수 있다.

 

<구외이문><동란섭필>에서는 잡다한 이야기들이 다수 실려 있는데 처음 목격한 신기한 물건이나 다시 생각해야 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하여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다. 조선의 역사, 문학, 문화, 지리, 음악에서 역사적으로 특이한 문제를 중심으로 그 유래나 진실을 밝힌 내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띈 이야기는 <허생전>과 <전겸익>의 이야기인데 허생전은 연암 자신을 의인화 시켜 뜻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풍자소설이다. <전겸익>을 통해서는 중국에서는 전겸익이 황제의 눈밖에 나서 금서로 찍혀있는 줄도 모르고 과시공부 하는 선비들에게 현실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전겸익에 대한 사실을 상세하게 실었다. 실학파들은 과거제도의 폐단에 대해서도 주창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권까지는 긴 여정을 그린 여행기이지만 3권은 주로 이야기들이 많다. 신기하고 진기한 물건들을 보면 자세하고도 세세하게 설명하려 애쓴 흔적이 보이고 지식인으로서 가져야할 마음가짐과 삶에 교훈이 될 내용들을 통하여 통찰하길 바라며 중국과의 교류가 중요한 이유와 조선의 현실을 비판하지만 독설적이거나 진설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해학적인 필체로 표현하고 있다. 열하일기의 기본 사상은 이용후생으로서 연암 박지원은 자신의 글을 통하여 백성들의 삶을 좀 더 편하고 부유하게 되길 바랐으나 사실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다. 열하일기를 통해 정조는 노론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젋고 유능한 실학파들을 등용하려고 하지만 많은 반대에 부딪히게 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열하일기를 읽으면 연암의 학문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데 실로 능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명문 양반가 출신으로 많은 공부를 하였던 연암이 일찍 학문에 눈을 뜨며 속물적인 사회를 혐오하게 되어 연암협에 의지하여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음에도 출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마도 열하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문장력, 사실적인 묘사는 아마도 그 시대의 문인들에게는 분명 충격이었을 것이라 어림짐작해본다. 사대부들이 자신의 자리에 위기를 느끼게 된 이유 또한 그와 같지 않을까 한다. 그처럼 열하일기는 민족과 세계의 고전에 값하는 기념비적인 저술이다. 또한 과거 한 시대를 살아간 선인의 자취에서 현재의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되는 기쁨이 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1.09.26. 신고 공감 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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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이야기꾼 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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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세권을 다 읽고 나니까 우선 연암의 열하여행 엿보기가 끝났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1권이 압록강에서 열하까지의 일일일정을 정리한 것이라면, 2권은 하루이야기에 담을 수 없는 사색과 토론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권 3권은 열하에서부터 귀국길에 오르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3권에는 마술쑈 관람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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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세권을 다 읽고 나니까 우선 연암의 열하여행 엿보기가 끝났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1권이 압록강에서 열하까지의 일일일정을 정리한 것이라면, 2권은 하루이야기에 담을 수 없는 사색과 토론의 이야기를 담은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권 3권은 열하에서부터 귀국길에 오르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3권에는 마술쑈 관람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환희기>, 현지 선비들과 나눈 시화 이야기를 담은 <피서록>, 그간 들은 신비한 이야기를 모은 <구외이문>, 북경의 이곳저곳의 정취를 담은 <황도기략> 등 여행의 이모저모가 담겨져 있다.

 

약 4개월간의 연암의 대장정을 엿보며 느낀 점은 우선 여행가로서의 연암에 대한 감탄과 존경심이다. 그의 여정은 오늘날 학생들의 현장체험학습을 연상시킨다. 그가 타고 다닌 말에는 당연히 지필묵이 실려 있었다. 여행을 하루하루 하면서 그의 짐 보따리는 점점 커졌다고 한다. 보고 느끼고 필담한 내용들을 다 모았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또한 그의 끝없는 호기심이 부럽다. 여행을 하다가 피곤해 졸면서 지나가는 낙타를 보지 못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기를 깨우지 않는 하인들을 야단치는 장면이 몇번 나온다. 당시 이교도인 라마교와의 만남에서 공식사절단원들은 이교도라고 배척하고 마지 못해 응하고 있지만, 연암의 눈은 오히려 말똥말똥하게 빛난다. 당시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하나의 장면이 신기롭고 호기심을 끌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장면장면은 생생하면서도 이면까지 꾀뚤어보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열하일기가 정말 훌륭한 작품으로 이어오는 진짜 이유는 여행기가 단순한 풍광과 정취를 전달하는것 이상의 무엇을 담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3권에 나오는 내용중의 백미는 역시<허생전>인 것 같다. 하나의 이야기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단순히 웃고 넘어갈 일은 아닐 것이다. 매점매석하는 양반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조선경제의 허약함, 멸망한 명나라에 매달려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양반들의 위선, 청나라의 제도 특히 기와나 수레, 심지어 똥거름에 이르기까지 우리 백성들의 삶에 보탬이 된다면 배워야 한다는 이용후생의 정신, 이런 것들이 연암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이리라.

 

조선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열하일기>는 금서가 되고,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손자인 한말의 박규수 조차도 당시상황에서 열하일기를 책으로 내는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 한 지식인의 고뇌와 열정이 일기의 형식에 담겨 펼쳐지는 별 5개의 작품임에 틀림없다.



c******4 2010.01.19. 신고 공감 5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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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적 여정의 산물.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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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인 고미숙 작가는 『열하일기』에 대해 “문체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열하일기』는 정통고문체에서 패사소품체를 종횡으로 넘나든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수많은 변이형들이 산포된다. 우리말 대화는 문어체의 고문으로 표현하되, 중국말 대화는 굳이 구어체인 백화문으로 표현하여 언어의 차이를 부각하는가 하면, 또 조선식 한자어를 고문체 안에 뒤섞거나 빈번히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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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평론가인 고미숙 작가는 열하일기에 대해 문체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열하일기는 정통고문체에서 패사소품체를 종횡으로 넘나든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수많은 변이형들이 산포된다. 우리말 대화는 문어체의 고문으로 표현하되, 중국말 대화는 굳이 구어체인 백화문으로 표현하여 언어의 차이를 부각하는가 하면, 또 조선식 한자어를 고문체 안에 뒤섞거나 빈번히 속담, 은어, 욕설 등을 구사함으로써 마치 돈키호테의 시종 산초 판사가 그러하듯- 이른바 특수어들의 경연을 연출해낸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140) 고 했다. 이처럼 열하일기는 기존의 고지식하고 정형화되어 있는 조선 사대부의 문체에서 벗어나있다. 오죽하면 정조는 근자에 문풍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죄다.열하일기를 내 이미 익히 보았거늘 어찌 속이거나 감출 수 있겠느냐? 열하일기가 세상에 유행된 후로 문체가 이같이 되었거늘 본시 결자해지(結者解之)인 법이니 속히 순수하고 바른 글을 한부 지어 올려 열하일기로 인한 죄를 씻는다면 음직으로 문임 벼슬을 준들 무엇이 아깝겠느냐? “ (나의 아버지 박지원 중에서)” 라고 하였다. 정조의 측근관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문체반정의 바람은 바로 열하일기를 정조준 할 만큼 그의 글은 파격적이었다. 중국의 고전을 인용하는데 머물렀던 조선의 선비들에게 그의 글은 이단아였다. 고미숙 작가의 말처럼 그의 글에는 속담과 은어와 욕설이 난무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웃음과 해학이다. 열하일기는 바로 웃음과 해학이 넘치는 한바탕 굿판이다. 여행 중 아무리 어려운 고비와 어려움을 만나도 그 마무리는 유머다. 역사적인 사실이나 성인의 춘추(春秋)를 논하는 문장에서도 마무리는 언제나 해학이 넘친다. 그런 글쓰기는 연암자신을 닮았다. 그래서 글쓰기는 바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하지 않던가.

 

   3권의 첫 이야기는 환희기다. 이는 열하에서 본 다양한 마술을 묘사한 글이다. 소개된 마술 중 지금도 볼 수 있는 마술도 있지만,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신기한 마술도 있다. 황제의 생일에 맞추어 열하로 모여든 마술사들은 각자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연암은 단순히 마술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마술이 가진 사회적 기능이나 의의를 언급한다. 더불어 정말 두려워할 마술은 크게 간사한 사람이 충성스럽게 비치는 것과 천하에 가장 고약한 사람이 점잖은 척 하는 것이라며 한나라의 효광이 여섯 임금을 섬긴 것과 5대 시대에 풍도가 명철보신을 하며 여러 임금을 섬긴 것을 가장 따라 하기 힘든 마술이라고 비꼬는 부분은 해학이 넘친다. 또한 어차피 마술이란 눈속임이니, 아무리 뛰어난 마술사도 장님을 속일 수는 없다며 우리가 눈에 보이는 상()에 갇혀 세상을 편협하게 바라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중국인과 관련된 조선 시인의 작품, 조선과 관련된 중국 시인의 작품, 연암이 사행 길에서 목격한 시 등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 등을 모은 피서록, 장성 밖에서 들은 신기한 이야기들을 모은 구외이문에는 연암이 직접 목격하거나 중국인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했다. 이 장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중국판 동의보감을 돈이 없어 구입하지 못하고 서문만이라도 후일의 연구 자료로 삼기위해 필사하는 장면은 안타까움이 앞섰다. 옥갑에서비장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은 옥갑야화에는 역관과 그들의 무역에 관한 이야기가 주 소재였다. 헌데 이야기를 이어가다 결국 연암이 허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는 연암이 허생전을 저술하기 이전부터 이야기의 얼개는 이 십 여년이 넘게 그의 가슴속에서 구상되었음을 알게 한다. 허생은 어쩌면 연암이 이루고 싶은 이상세계의 표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경의 명승지와 건물의 모습과 그 내력을 기록한 황도기략, 북경의 공자사당을 참배하고 기록한 알성퇴술은 유교와 유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뭇잎에 글자를 써서 항아리에 보관하다는 의미의 양엽기는 북경성 안팍에 있는 사찰과 도교사원, 기타 민간신앙과 관련된 건물, 야소교와 관련된 유적을 소개하고 있다. 동란섭필에서는 중국과 조선의 역사, 문학, 지리, 음악까지 그 영역이 확대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나 강조된 것은 중국의 부강을 가져온 3황제인 강희, 웅정, 건륭 등 중국황제의 처세의 긍정적인 부분과 충선왕, 전겸익 등 역사 인물에 대한 비판적 관점 등이 곁들여 있다. 이 장에서는 용은 용이 되지 못하는 새끼 아홉 마리를 낳는데, 그 용들의 역할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이 장을 만나기전엔 사찰이나 유적에 있는 비석의 바탕돌이 거북인 줄 알았더니 무거운 것을 잘 짊어지는 비희(贔屭)라는 용의 첫 번째 새끼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진리중의 진리다. 종의 머리에 새겨진 용은 포뇌, 기와에 새겨진 용은 치문, 칼자루에 새겨진 용은 애자, 향로에 새겨진 용은 금세라고 한다. 같은 것 같지만 각기 다르다고 하니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마지막 장은 의약처방 기록을 모은 금료소초이다. 그 시절에는 일반 서민들은 의학적 치료를 받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민간에서 구전되어오는 비방으로 치료를 하곤 했다. 초행길에 나서 길을 잃을 염려가 있을 때는 향충 하나를 손에 쥐고 있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던가, 잠자리를 환으로 만들어 장복하면 정력이 좋아진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시골이나 여행길에서는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는 처방들도 보였다. 최고의 의학서적인 동의보감을 구입하려고 했던 것도 주위에 병든 이들에게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돈이 없어 구입하지 못한 연암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이처럼 사행 길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기록과 기억에 의존하여 정리했다. 하지만 연암은 단순히 자신이 보고 듣고 알게 된 것을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곁들이고, 조선의 문물과 비교 분석한다. 또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그 오류를 바로잡고, 역사적인 의의를 파헤친다. 어디 그뿐인가? 신분을 떠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 사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면 나이와 신분을 떠나 몇날 며칠의 필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그런 열린 마음이 열하일기의 수많은 소재가 되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물건은 청심환이다. 또한 연암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바로 달빛이다. 달빛이 좋은 밤에 달빛을 벗 삼아 연암 혼자서 즐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여럿이 함께 사행 길에 나섰지만 자신의 마음하나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을 때 그는 달빛을 벗 삼았다. 어쩌면 달빛은 그가 외로울 때 그를 위로해주는 또 다른 친구였다. 또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박장대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연암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냥 유머가 아니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기가 여러 번이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물이 불어 목숨을 내놓고 강을 건너야 하는 시점에서도, 열하로 떠나느라 헤어졌던 일행과 해후하는 장면에서도,그의 농담과 해학은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삶일지라도 웃음과 해학을 잃지 않는 연암. 긴 사행 길에 메모할 붓과 벼루, 먹만을 챙기고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있는 연암, 은자가 없어 동의보감을 구입하지 못하고 서문만 베껴 아쉬움에 돌아서는 연암, 가진 것은 없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가졌다. 부족하지도 않고 풍요롭지도 않으며, 오른쪽도 아니고 왼쪽도 아니며, 열린 것도 아니고, 닫힌 것도 아닌, 그는 어떤 것에도 제약을 두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학문에 대해서도.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았으니,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고 나를 버리니 아()과 타()의 구분이 없고, 귀와 눈의 감각과 선입견을 버리니 세상과 내가 한 몸이다. ‘여래의 평등안소경의 눈이 바로 이를 두고 한말이다. 열하일기는 사물이 가진 이름이라는 형식과 감각을 통한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무상한 흐름에 몸을 맡기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생성할 수 있는 연암의 노마드적 여정의 산물이다. 어차피 여행이란 유목민의 삶에 대한 경이(驚異)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던가?

 

 

h*****o 2017.02.11. 신고 공감 4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해외연수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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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연암일기와 보낸다. 이것만으로 풍요로운 휴일이었다.   해외연수라고 나가서 보고 듣고 했다며 적은 글들을 종종 보았다. 이 책을 읽으니, 이전에 본 해외연수보고서들이 부끄럽게 떠오른다. 그들은 무얼 하러 해외에 갔으며 무엇을 보고 배웠더란 말인지. 배움과 놀이에 대한 차원이 다른 글이다. 특히나 우리의 공직자들에게 세금으로 보내는 해외연수의 기회를 줄 때에는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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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연암일기와 보낸다. 이것만으로 풍요로운 휴일이었다.

 

해외연수라고 나가서 보고 듣고 했다며 적은 글들을 종종 보았다. 이 책을 읽으니, 이전에 본 해외연수보고서들이 부끄럽게 떠오른다. 그들은 무얼 하러 해외에 갔으며 무엇을 보고 배웠더란 말인지. 배움과 놀이에 대한 차원이 다른 글이다. 특히나 우리의 공직자들에게 세금으로 보내는 해외연수의 기회를 줄 때에는 연암의 이 책을 사전에 읽게 하고, 비슷한 차원에서의 보고서를 요구했으면 좋겠다는 억지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지금의 외교관들 중에 연암일기와 같은 기행문집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좀 속상했다. 이 책이 책의 가치만큼 널리 읽혀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쉽고, 박지원의 사상으로 당시에 어떤 정책을 펼 수 없었던 역사적 상황도 아쉽고, 지금도 여전히 박지원과 같은 선각자들이 제 뜻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아 아쉽고. 어느 시대에나 선각자는 있는데, 그들의 앞선 시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인데, 정치와 권력은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자존심은 올바른 방향으로의 변화까지 거꾸로 돌리고 있으니.

 

기록, 기록하는 자의 힘. 기록하는 습관은 천성일까, 노력의 결과일까.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후로 기록만큼 효과적인 유산이 없다고들 하는데, 가치가 있는 만큼 무서운 힘을 가진 일이다. 북경에 가면 박지원처럼 쓰면서 보고 싶다.

 

 

333-337

천고의 역사상, 나라가 흥하고 망하고 하는 흥망의 시점에서는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하늘의 뜻은 요망한 재앙과 상서로운 조짐으로 나타나서 그 뜻이 나라를 몰아내서 제거하려는 것인지, 혹은 나라를 부지하여 세우려는 것인지 반드시 확실하게 힘을 싣는 바, 비록 철없는 부인네나 어린애들이라도 하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환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충신과 의사들은 한갓 한 손으로 하늘의 뜻과 맞서서 대항하려고 하니, 어찌 어긋나고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천하를 차지할 수 있는 임금의 위엄과 무력을 가지고도 능히 일개 선비를 굴복시킬 수 없으니, 이는 선비의 꿋꿋한 절개는 백만 군중보다도 강하고, 사람이 지켜야 할 영원한 도리는 한 시대에 나라를 얻는 것보다 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충신의 그런 행동은 역시 천도가 거기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나라의 터전을 처음 일으키는 임금이 자기 자신의 역량과 일의 핵심을 충분히 살피고 장차 천하를 차지했다고 한다면, 이는 하늘이 명을 해서 그리 된 것인가? 아니면 순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천하를 취한 것인가? 하늘이 내게 천하를 차지하라고 명하고 내가 힘을 쓰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면, 그 뜻이 장차 천하에 대한 책임을 내게 맡기려고 그런 것인가? 아니면 천하를 가지고 내 몸을 이롭게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내 몸을 이용하여 천하를 이롭게 하려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천하를 이롭게 하는 방법에는 진실로 올바른 길, 즉 도가 있을 터이다. 그래서 나는 천명을 받아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므로 무왕이 포악한 주왕을 정벌한 것은 무왕 개인이 그를 정벌한 것이 아니고, 도가 있음이 도가 없음을 정벌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왕은 당당하게 천하를 차지하고도 천자의 자리를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하늘에 대해서는 의심함이 없고, 사람에 있어서는 꺼림이 없으며, 적국에게도 원수 됨이 없고, 천하 사람에게도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아, 오직 도가 있는 곳을 따라서 거기에 나아갔던 것이다.

때문에 무왕이 기자를 방문한 것은 사람 기자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도를 찾아갔던 것이다. 도를 방문한다는 것은 천하를 이롭게 하려는 것이다. 만약 무왕이 기자를 윽박질러 강제로 신하로 삼으려고 했다면, 기자라는 사람도 역시 홍범구주를 싸 가지고 문천상처럼 땔나무 시장으로 나아가 죽으며, ‘도를 전하고 못 전하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고 했을 것이다.

후세에 천하를 차지한 사람 치고 천명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역량이나 일의 핵심을 정확하게 살필 수 없기 때문에 하늘을 믿지 않는다. 하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나의 무력으로 굴복시킬 수 없는 사람은 모두 나의 강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의로운 군사를 규합하여 망한 나라를 다시 광복시키려고 하지 않을까 상상하여 항상 두려워하게 되니, 차라리 ‘그 사람’을 애초에 죽여서 후환을 없애 버리는 것만 못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 사람’이란 자도 역시 한 번 죽어서 대의를 만천하에 밝히려고 한다. ‘그 사람’이란 자는 천하 사람들에게는 어버이와 형의 존재와 같은 사람이다. 천하 사람들에게 어버이와 형이 되는 사람을 죽였는데도, 그 자제 되는 사람들과 원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어찌 가능하겠는가?

아하, 슬프다. 천하의 흥망은 일정한 운수가 있는 법이니, 망한 나라의 백성으로, 문 승상처럼 절개를 지킨 사람이 어느 시대이건 배출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당시 천명을 받아서 새로이 천하를 차지한 임금은 바로 ‘그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내 생각은 이렇다. 백성으로 삼되 신하로 부리려 하지 말고, 존중은 하되 지위는 없게 하며, 봉하지도 조회를 받지도 않는 그런 반열에 두면 그만일 것이다.

원나라 세조로서 해야 할 일은 친히 문천상의 사관에 나아가서 그가 차고 있는 차꼬를 천자의 손으로 깨 버리고, 동쪽을 향하여 그에게 절을 한 뒤에 중국의 문화로 오랑캐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물어야 할 것이며, 천하 사람들을 인솔하여 그를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날의 훌륭한 왕들이 썼던 방법이ㅏ.

‘그 사람’이 백이처럼 깐깐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라고 벼슬을 거부하거나, 이윤처럼 적극적이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서 덮어놓고 벼슬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것은 훌륭한 왕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이다. 문천상의 고향 여릉의 백 이랑 정도 되는 밭에 구역을 지어서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면, 녹봉을 받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하, 문천상이 말하기를 나라가 망했으니 마땅히 죽어야 하는 것이 자신의 분수이지만, 그래도 만약 산다면 고향으로 돌아가 농부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그것은 바로 망한 나라에 살 수 없으니 백마를 타고 동쪽으로 가겠다던 기자의 뜻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으로서 떳떳한 윤리를 서술하는 까닭과 예악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생의 뜻은 바로 이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문 승당 사당 이야기>

열하일기 3



YES마니아 : 로얄 j***6 2012.02.26. 신고 공감 1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마지막 권을 내려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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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쓰는 도서 리뷰입니다. 한동안 공연쪽에 몰입해있다보니 독서할 시간이 짧았고 그래서 더디 책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열하일기 마지막 권은 열하와 북경의 잡다한 일상, 풍경, 대화, 기행문, 여러 시와 글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한문으로 읽으면 그 문장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하지만 저처럼 한문을 잘 모르는 세대에게 한문은 그림의 떡이고 또한 책 자체가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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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쓰는 도서 리뷰입니다. 한동안 공연쪽에 몰입해있다보니 독서할 시간이 짧았고 그래서 더디 책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열하일기 마지막 권은 열하와 북경의 잡다한 일상, 풍경, 대화, 기행문, 여러 시와 글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한문으로 읽으면 그 문장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이 빼어나다 하지만 저처럼 한문을 잘 모르는 세대에게 한문은 그림의 떡이고 또한 책 자체가 번역본으로 원문이 다 실려있는 것이 아니므로 오로지 상상만으로 그 아름다움을 그려봅니다.

 

북경을 거쳐 열하에 이르는 긴 여정, 그리고 짧은 열하와 북경의 체류 속에서 연암은 많은 것을 보고 또 많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일상에 대한 것들도 많이 나오고 조선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풍광들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동경과 사대의식, 그리고 그와 모순되는 청나라에 대한 은근한 비판 의식이 책 속에 녹아있습니다.

 

한족과 만주족, 둘을 구분짓기도 하고 조선은 예로부터 오랑캐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나라라며 소동파의 고려에 대한 비난과 비판에 스스로 변명을 합니다. 이미 망해서 사라진 송과 고려를 두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연암의 변명을 현재를 사는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의 제게 중국은 거대한 이웃나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 땅에 가서 세상의 중심을 경험한다는 그런 동경과 중국을 다녀왔다는 자부심을 제가 실감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세계가 하나처럼 보이는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오랜 역사 가운데 중국에 대한 동경이 가장 덜한 시대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짧은 순간이외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대국이며 상국인 중국에 도착한 연암으로서는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고 산악지대로만 둘러쌓인 조선과 다른 지대와 풍광, 제도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길과 수레로 문물이 막히지 않고 통용되는 중국의 모습은 조선과 다른 것이었겠지요.

 

그와 동시에 그 중국을 통치하는 것이 오랑캐라는 것이 연암에게 모순을 심어주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청나라 특유의 복색과 변발을 보면서 머리를 깎고 조주를 두른 관료들의 모습에서 오랑캐의 관습을 떠올리면서 풍자를 하고 또 한족들과 더불어 회한의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저 중화란 사상을 잠시 생각하게 됩니다. 중화, 중국을 통치하는 자의 출신이 어디이건 중국의 중심을 통치하는 것은 천하를 통치하는 것이고 통치하는 자들은 중국에 물들어 중국이 되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우리말과 중국의 언어가 다르고 한자라는 글자을 공통으로 삼으니 말과 글이 같은 중국에 대해 가지게 되는 일종의 자격지심도 있어 보입니다. 운을 두고, 사고의 깊이를 운이 살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면도 보입니다. 뜨거운 감자와 같은 중국에 대한 감정들, 그 속에서 저는 방황하는 선비의 모습을 잠시 보았습니다. 그것은 뭐라 꼭 집어 말하기 어려운 느낌입니다.

 

선비 연암이 본 중국과 인간 연암이 본 중국 그 사이에 차이는 없었던 것인지 궁금해하면서 책을 덮었습니다. 이제 책은 어머니의 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제가 너무 오래 이 책을 잡고 있던 터였는데 이리 넘기게 되어 홀가분합니다.



YES마니아 : 골드 e***h 2012.10.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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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기와 옥갑야화가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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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제3권은 요술놀이 이야기 <환희기>, 피서산장에서 쓴 시화 <피서록>, 장성 밖에서 들은 신기한 이야기<구외이문>, 옥갑에서의 밤 이야기 <옥갑야화>, 북경의 이곳저곳 <황도기략>, 공자 사당을 참배하고 <알성퇴술>, 적바림 모음<앙엽기>, 동란재에서 쓰다<동란섭필>, 의약처방기록<금료소초> 등 9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환희기>와 <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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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제3권은 요술놀이 이야기 <환희기>, 피서산장에서 쓴 시화 <피서록>, 장성 밖에서 들은 신기한 이야기<구외이문>, 옥갑에서의 밤 이야기 <옥갑야화>, 북경의 이곳저곳 <황도기략>, 공자 사당을 참배하고 <알성퇴술>, 적바림 모음<앙엽기>, 동란재에서 쓰다<동란섭필>, 의약처방기록<금료소초> 등 9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환희기>와 <옥갑야화>가 일품이다.

 

<환희기>는 말그대로 마술공연을 보고 써내려간 관람록이다. 연암이 본 스무 가지 마술을 눈 앞에 펼쳐지듯 상세한 필체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중국의 뛰어난 요술쟁이들은 오늘날의 마술사들을 무색케 할 정도로 세련된 기예와 무대 매너를 선보이고 있다. 연암은 머리말에서 요술을 금지하지 않는 이유에 나름 설득력있는 문화정치적 논리를 제시한다. 이는 요술과 마술을 허하는 데에서 기인하는 사회문화적 예방조치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훗날 정조의 문체반정에 대한 비판의 소지가 될 수도 있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땅덩어리가 워낙 광대해서 능히 모든 것을 포용하여 아울러 육성할 수 있기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는 데 병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천자가 이를 절박한 문제로 여겨서 요술쟁이들과 법률로 잘잘못을 따져서 막다른 길까지 추격하여 몰아세운다면, 돌리어 궁벽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꼭꼭 숨어 때때로 출몰하면서 재주를 팔고 현혹하여 장차 천하의 큰 우환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사람들로 하여금 요술을 하나의 놀이로서 보게 하니, 비록 부인이나 어린애조차 그것이 속이는 요술이라는 것을 알아서 마음에 놀라거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임금 노릇하는 사람에게 세상을 통치하는 기술이 되는 것입니다."(15-6쪽)

 

<옥갑야화>는 북경에서 돌아오는 길에 옥갑이라는 곳에 묵으며 여러 비장들과 밤새 나눈 이야기를 수록한 것이다. 주로 당릉군 홍순언 같은 역관들의 이야기와 유명한 '허생전'이 수록되어 있다. 연암은 허생의 일화를 통해서 북벌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연암식의 유토피아적 공동체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허생 이야기는 연암이 젊은 시절  윤영이란 인물에게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당나라 전기소설 [규염객전]과 [사기]의 <화식열전>을 본떠 지은 이야기다.

z***a 2010.11.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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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통해 보는 연암 박지원의 인간적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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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권 다 봤다.모르는 내용들이 많아서 점점 지루해져가고 있었는데,그래도 끝까지 읽어보려고 눈에 불을 켰다. 당시 황제의 생일에 맞추어 마술사들이 열하에 모여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자랑했는데,그것을 연암이 보고 묘사한 글이다.고리 두개를 연결했다 떼었다 하는 것이나, 찢어진 줄 알았는데 다시 붙어있는 종이,불을 내뿜는 것 등 세상에 지금도 사용하는 마술들이 2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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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권 다 봤다.

모르는 내용들이 많아서 점점 지루해져가고 있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읽어보려고 눈에 불을 켰다.




당시 황제의 생일에 맞추어 마술사들이 열하에 모여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자랑했는데,

그것을 연암이 보고 묘사한 글이다.

고리 두개를 연결했다 떼었다 하는 것이나, 찢어진 줄 알았는데 다시 붙어있는 종이,

불을 내뿜는 것 등

세상에 지금도 사용하는 마술들이 200년 전에도 있었다니 너무 신기했다.

특히 장을 파할 때가 되자 일부러 마술도구를 실수로 쏟아버리는 것처럼 해서

이 모든 게 가짜라는 걸 알리며 쇼를 마치는 것은 센스가 넘쳤다. 


당시 사람들도 마술을 너무 놀라워했는데 그에 대해 정치와 연관하여 적은 것은 참 뜻이 깊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이런 요술하는 재주를 팔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본래 나라의 법 밖에서 활동하는 것인데도

그들을 처벌하여 멸절시키지 않음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기에 내가,

"중국의 땅덩어리가 워낙 광대해서 능히 모든 것을 포용하여 아울러 육성할 수 있기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는 데 병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천자가 이를 절박한 문제로 여겨서 요술쟁이들과 법률로 잘잘못을 따져서 막다른 길까지 추격하여 몰아세운다면,

도리어 궁벽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꼭꼭 숨어 때때로 출몰하면서 재주를 팔고 현혹하여

장차 천하의 큰 우환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사람들로 하여금 요술을 하나의 놀이로서 보게 하니,

비록 부인이나 어린애조차 그것이 속이는 요술이라는 것을 알아서

마음에 놀라거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임금 노릇 하는 사람에게 세상을 통치하는 기술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피서록의 내용은 대부분 시화이다.


그 중 재밌던 부분.


'<태평광기>란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떤 아낙이 보니, 불을 피우느라 입으로 불을 부는 자기 아내의 모습을 보고서

시를 지어 주는 이웃집 남자가 있더랍니다. 그 시에


불을 부느라고 붉은 입술 뾰족하게 내밀고

장작을 넣느라고 비스듬 드러난 옥 같은 팔.

멀리 바라보이는 연기 속의 얼굴

흡사 안개 속의 꽃이라고나 할까.


라고 읊었습니다. 그 아낙이 제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으며,

당신은 어째서 저런 본을 못 배우시고 하자, 남편이,

임자도 불을 불어 보시게. 내 의당 본떠서 시를 지으리다, 하였지요.

이에 남편이 시를


불을 부느라고 시커먼 입술이 움찔움찔

장작을 넣느라고 비스듬히 드러난 새까만 팔뚝.

멀리 바라보이는 연기 속의 얼굴

흡사 사람의 정기를 빼먹는 귀신이라고나 할까.


라고 지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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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연암이 지은 <담원팔영> 중 마음에 들었던 시, <감영지>


남쪽 비탈에는 온종일 그림자 너울너울 하는 모습

그림자가 나를 부르는 것 같기에 나도 그를 불렀다네.

미풍이 한들한들 불어 오자 물오리 해오라기 떠나가며

어지럽게 물방울에 수백 개의 얼굴이 비치노라.



강희 황제가 피서산장을 읋은 시가 모두 36수인데, 그에 대해 연암의 평은 아주 냉정하다.

그런데도 황제의 시라고 갖은 주석을 갖다 붙인 것을 비판하고 있다.


모두가 다 비루하고 치졸하여 운치라곤 없다.

대개 평소의 포부를 억지로 읊어서 드러내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아랫사람들은 온갖 책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광범하게 시를 주석하였다.

예컨대 피서산장에서 가장 아름다워 제일경이라고 하는 연파치상의 궁전을 두고 지은 시에


피서산장에 자주 피서를 오니

고요하고 조용해 시끄러운 일 적어지네.


라고 했는데, 이 시에 무슨 허다한 설명을 붙여서 주석을 낼 필요가 있단 말인가?...

겨우 두 구절인 이 시에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 터에, 어찌 허다한 주석이 필요하겠는가?

또 황제가 시가를 지을 때 어찌 허다한 출처를 인용하여 지었으랴?



또한 어이 없는 전통이 된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서로 실력을 가늠하고 골탕 먹이려고 시를 활용하는 것도 어이 없다.

서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 좀 안 하면 좋으련만.


임금 측근의 신하로 중국 사신을 접반하기 위해 용만(의주)에 갈 때는 반드시 글재주가 뛰어난 선비를 엄선하여 일을 맡겨서 임기응변의 수작을 대비하게 한다.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은 길에 오면서 반드시 그따위 시들을 끄집어내니, 그 의도는 접반사를 골탕 먹이기 위함이다.

당시에 접반을 나가는 여러 사람들 역시 반드시 이런 것들을 미리 연습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게 된다.

결국 하나의 전례가 되어서 하는 것이지, 즐거워서 그런 시를 짓는 것은 아니다.





옥갑야화는 북경에서 돌아오는 길에 옥갑이라는 곳에 묵으며 밤새 나눈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역관과 무역에 대한 것이 주된 화제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허생전이 나온다.

정말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눈이 있지 않고서야 그렇게 쓸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에는 이름을 감추고 은거하며, 모든 세상사를 깔보고 공손치 아니하게 사는 사람도 진실로 있는 법이니,

어찌 홀로 허생에 대해서만 그런 인물이 정말 있을까 하고 의심을 할 것인가?

한양 평계의 국화 아래에서 한잔 술을 마시고, 붓을 잡아 쓴다. 연암.




한 사람의 시각에서 보고 생각하고 쓴 것을 읽음에

여행기라는 틀이 주는 독특함이 있는 것 같다.

낯선 것을 보고 대하는 자신의 태도와

약간의 불안과 기대가 함께 드러나고 있어

연암 박지원의 인간적인 면모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s******2 2015.04.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