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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진정한 우수성 [열하일기]
"연암 박지원의 진정한 우수성 [열하일기]" 내용보기
“매양 말고삐를 잡고 안장에 앉은 채 졸아가면서 이리저리 생각을 풀어냈다. 무려 수십만 마디의 말이 가슴속에 문자로 쓰지 못하는 글자를 쓰고, 허공에는 소리가 없는 문장을 썻으니, 매일 여러 권이나 되었다. 라는 고백처럼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열의로서 집필된 책이다.   [열하일기]는 중국기행문으로서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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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양 말고삐를 잡고 안장에 앉은 채 졸아가면서 이리저리 생각을 풀어냈다. 무려 수십만 마디의 말이 가슴속에 문자로 쓰지 못하는 글자를 쓰고, 허공에는 소리가 없는 문장을 썻으니, 매일 여러 권이나 되었다. 라는 고백처럼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열의로서 집필된 책이다.

 

[열하일기]는 중국기행문으로서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으로 연암 박지원도 가게 되었는데 이 때까지 연암은 이렇다할 벼슬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삼종형 금성위 박명원에게 부탁하여 사절단에 오르게 된 연암은 말 등에 앉아 중국의 모든 것을 관찰하여 기록하였는데 열하일기를 가지고 조선에 오자 열하일기는 사대부들에게 비난을 받게 된다. 이 비난의 이유는 여러 가지 였는데 열하일기가 비난의 대상이 되자 정조에게 까지 불려가게 되지만 정조의 뜻에 의해 서민들도 읽기 쉽게 한글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받게 되는데  이유는 열하일기 안에 당시 사회 제도와 양반사회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문체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정약용 같은 일부 지식층에게도 비난을 받는다.)

 

읽는 동안 나 역시 실학파였던 연암 박지원에 대한 몇가지의 오해를 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박제가가 북학의를 저술할 때 한 말 때문이다. 박제가는 청나라에 박지원보다 먼저 다녀왔는데 그 중에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언문을 쓰지 말고 모든 백성이 청나라 말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실학파들이 지나치게 청에 치우쳐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나는 한가지로 많은 것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곤 하는데 바로 그런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박제가의 지나친 격정의 말을 실학파 모두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열하일기 안에서 만나는 연암 박지원의 생각들은 무척 사리에 밝고 생각이 깊으며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나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었다.

 

열하일기를 번역한 김혈조는 책의 앞머리에 열하일기를 읽는 방법을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열하일기에는 연암 박지원의 진정성, 책을 집필한 진정한 의도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것은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꼭 참고해야할 것 같다.

첫째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의 제공이다.

두 번째가 선진 문화 문물을 본받아야 한다는 북학의 내용이다.

세 번째가 천하대세를 어떻게 전망했는가? 하는 주제이다.

네 번째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간 유형에 대한 묘사와 인물의 창조이다.

다섯 번째가 선비 곧 지식인의 역할과 처신에 관한 문제이다.

 

“조선의 지독한 가난은 따지고 보면 그 원인이 전적으로 선비가 제 역할을 못한 데에 있다.”

 

역사는 현재의 미래라는 말처럼 역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해 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위의 다섯가지의 주제로 들여다본 열하일기의 가치는 열하일기를 세계유수의 고전 반열에 편입시켜야 하는 주장이 타당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

 

1권 책의 시작은 압록강을 출발하여 요양에 이르는 <도강록>부터 시작하는데 중간중간 연암의 재치있는 언변에 웃음이 나기도 하며 넓디 넓은 요동 벌판을 마주하며 한바탕 통곡하기 좋겠다는 대목에서 연암의 깊은 생각을 알 수 있다. 심양의 이모저모를 살핀 <성경잡지>와 말을 타고 가듯 빠르게 쓴 <일신수필>에서는 청나라의 풍물과 체험을 , <막북행정록>에서는 북경에서 열하까지 가는 동안의 체험담이 쓰여져 있다.

 

2권은 열하에 도착하여 배정된 숙소 태학관에 머물면서 청나라 고관과 과시 준비생 및 학자들과 만나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실은 <태학유관록>으로 시작되는데 천체,음률,라마교등의 이야기들은 조선인인 연암에게는 생소할 터인데도 전혀 밀리지 않으며 오히려 중국의 학자들이 연암에게 감탄하는 대목에서는 독자인 나도 왠지 뿌듯해 지는 기분이었다. 태학유관록에 실린 이야기들은 뒤에 나오는 <곡정필담><망양록><황교문답><반선시말><찰십륜포>에서 본격적으로 내용이 세분화되어 다루어진다

 

2권의 주된 내용은 중국의 지식층들과의 필담을 통하여 천하의 정세를 살피는 한편 조선에서는 청이 중국을 지배한지 백년이 흐르고 있음에도 아직도 친명배청이라는 사상을 버리지 못한채 청을 미개하게 만 보는 조선의 지식층을 바라보며 한탄하는 내용이 지배적이다. 명나라의 지식층들이 자신들이 멸시하던 만주족의 지배를 받으며 고뇌하는 모습을 통하여 조선선비들이 조금이라도 무식과 무지함을 벗어나길 바라는 연암의 소망 또한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이 무지함에서 비롯됨을 개탄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아마도 연암은 조선에서 실학파들이 가지고 있던 고민들이 무척이나 사무친 듯 보였다. 슬프다 ! 하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거 보니 ........

 

3권은 북경에서 연암이 보고 들은 것과 경험한 것들을 모아 기록한 것으로 일종의 박물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환희기>에서는 요술을 부리는 것이 신기하여 요술놀이를 구경하지 못한 조선사람들이 글을 읽어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놓았는데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연암의 글은 관찰자시점에서 쓴 글들이 많은데 무척이나 세세하게 기록하려고 한 것을 보며 연암이 열하일기를 통하여 조선선비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 하는 취지를 엿볼 수 있다. <피서록>은 열하 피서산장 밖 태학관 회나무 아래의의자에 앉아 더위를 식히면서 쓴 시화인데 수록된 시화를 통해 연암의 비평의식을 볼 수 있다.

 

 

2권까지는 긴 여정을 그린 여행기이지만 3권은 주로 이야기들이 많다. 신기하고 진기한 물건들을 보면 자세하고도 세세하게 설명하려 애쓴 흔적이 보이고 지식인으로서 가져야할 마음가짐과 삶에 교훈이 될 내용들을 통하여 통찰하길 바라며 중국과의 교류가 중요한 이유와 조선의 현실을 비판하지만 독설적이거나 직설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해학적인 필체로 표현하고 있다. 열하일기의 기본 사상은 이용후생으로서 연암 박지원은 자신의 글을 통하여 백성들의 삶을 좀 더 편하고 부유하게 되길 바랐으나 사실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다. 열하일기를 통해 정조는 노론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젋고 유능한 실학파들을 등용하려고 하지만 많은 반대에 부딪히게 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열하일기를 읽으면 연암의 학문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데 실로 능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명문 양반가 출신으로 많은 공부를 하였던 연암이 일찍 학문에 눈을 뜨며 속물적인 사회를 혐오하게 되어 연암협에 의지하여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음에도 출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마도 열하일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방대한 지식과 뛰어난 문장력, 사실적인 묘사는 아마도 그 시대의 문인들에게는 분명 충격이었을 것이라 어림짐작해본다. 사대부들이 자신의 자리에 위기를 느끼게 된 이유 또한 그와 같지 않을까 한다. 그처럼 열하일기는 민족과 세계의 고전에 값하는 기념비적인 저술이다. 또한 과거 한 시대를 살아간 선인의 자취에서 현재의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되는 기쁨과 더불어 연암 박지원의 진정을 되새기며 이런 책을 저술한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열하일기는 이백년이 흘렀음에도 연암의 정신은 유장하게  깨어 내려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명이기도 하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1.12.16. 신고 공감 10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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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고의 기행문,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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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잘 알려진 <열하일기>는 실학자 박지원이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 축하사절단으로 4개월간 중국 북경과 열하지방을 다녀오면서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기행문이다. 총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에는 의주를 출발해 북경을 거쳐 열하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일기체로 정리했다. 제2권은 열하에 머물면서 겪고 토론하고 느낀 점을 정리한 부분이다. 3권은 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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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잘 알려진 <열하일기>는 실학자 박지원이 1780년 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 축하사절단으로 4개월간 중국 북경과 열하지방을 다녀오면서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기행문이다. 총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에는 의주를 출발해 북경을 거쳐 열하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일기체로 정리했다. 제2권은 열하에 머물면서 겪고 토론하고 느낀 점을 정리한 부분이다. 3권은 열하에서부터 귀국길에 오르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몇가지 측면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문학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로 당시 독자인 조선인들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전달한다. 자연풍광이나 문화, 그날의 일정에 대한 기술이 마치 독자가 직접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적절한 부분에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지만 가능한 구체적 상황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대로 소개하여 글을 읽는 독자들이 최종 판단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사신들이 열하에서 황제의 명에 따라 라마교를 대할 때, 공식사절단원들과는 달리 제3자의 입장에서 즐기듯 중립적으로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


둘째로 <열하일기>는 관찰자로서의 단순한 기록의 수준을 넘어 현지인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읽어내고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본받아야 할 지에 관한 구체적인 견해와 대안을 함께 제시한다. 그는 수레 이용, 벽돌 사용, 깨어진 기와의 재활용과 같이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것들이 바로 중국의 위대한 장관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학자다운 시각이다. 또한 티벳의 라마불교와 지도자 반선을 만나는 이야기에서는 말 한 마디, 사건 하나에서 당시 국제정세를 읽어내려가는 연암의 식견를 엿볼 수 있다. 

 

셋째로 <열하일기>에는 저자의 사색과 고뇌가 묻어 있는 각종 문학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역시 그 백미는 <허생전>이다. 하나의 이야기 속에 매점매석하는 양반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조선경제의 허약함, 멸망한 명나라에 매달려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양반들의 위선, 청나라의 제도 특히 기와나 수레, 심지어 똥거름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의 삶에 보탬이 된다면 배워야 한다는 이용후생의 정신,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약 4개월간의 연암의 대장정을 엿보며 우선 여행가로서의 연암에 대한 감탄과 존경심이 일어난다. 그의 여정은 오늘날 학생들의 현장체험 학습을 연상시킨다. 그가 타고 다닌 말에는 당연히 지필묵이 실려 있었다. 여행을 하루하루 하면서 그의 짐 보따리는 커졌을 것이다. 보고 느끼고 필담한 내용들을 다 모았으니 돌아올 때 그의 짐은 메모지 담은 것이 가장 컸으리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그의 끝없는 호기심이 부럽다. 여행을 하다가 피곤해 졸면서 지나가는 낙타를 보지 못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기를 깨우지 않는 하인들을 야단치는 장면이 몇번 나온다. 당시 이교도인 라마교와의 만남에서 공식사절단원들은 이교도라고 배척하고 마지 못해 응하고 있지만, 연암의 눈은 오히려 말똥말똥하게 빛난다. 당시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하나의 장면이 신기롭고 호기심을 끌었을 것이다. 그가 전하는 장면장면은 생생하면서도 이면까지 꾀뚤어보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조선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열하일기>는 금서가 되고,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손자인 한말의 박규수 조차도 당시상황에서 열하일기를 책으로 내는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만큼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한 지식인의 고뇌와 열정이 일기의 형식에 담겨 펼쳐지는 조선시대 최고의 문학작품, 별 5개가 전혀 아깝지 않다.

c******4 2016.06.07. 신고 공감 9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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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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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엄한 단평일수도 있지만, 음... '열하일기'도 좋은데, 이 돌베개 에디션은 그 좋은 걸 더 좋게 만든, 말하자면... 일등 건기식에 '밥도둑'의 특장까지 더한, 상품으로서의 책이 어디까지 매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 그런 아이템이라는 뜻을 서투르게 표현한 것으로 선해해 주었으면 좋겠다.이 책은 2009년 가을께에 나왔다. 하드커버와 이 '보급판'이 같이 선보였는데, 보급판이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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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엄한 단평일수도 있지만, 음... '열하일기'도 좋은데, 이 돌베개 에디션은 그 좋은 걸 더 좋게 만든, 말하자면... 일등 건기식에 '밥도둑'의 특장까지 더한, 상품으로서의 책이 어디까지 매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 그런 아이템이라는 뜻을 서투르게 표현한 것으로 선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2009년 가을께에 나왔다. 하드커버와 이 '보급판'이 같이 선보였는데, 보급판이라고는 해도 세 권을 담은 케이스의 질이 좋고, 책 표지가 예쁜데다, 그 내용의 충실함 면에서 다른 한국어번역판(현재 나와 있는 것은 '보리'에서 낸 北譯에디션이 있다. 이 버전은 북역총서 국내간행의 일부이기도 하다), 같은 분야 비슷한 성격의 다른 번역서, 심지어 이런 민족문화유산 현대화를 표방한 기존의 어떤 저작과도 비교해도,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탁월하며, 1) 특정 상품이 단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뿐 아니라, 2) 문화민족의 후손(소위)으로서 최소한의 구색을 갖추는 목적에서라도 취해야 할, 하나의 표준이 될 자격을 구비했다고까지 생각한다.

1)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하자면,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도 그저 보기 싫게 생겼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요즘 같은 풍토에서, 사실 누가 이런 책을 읽고 앉았겠냐는, 당연하면서도 심각한 상황 인식의 산물이 바로 이런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한 말이다. 고급의 독서를 즐기는 이라면, 이런 일급의 두뇌와 품성의 저자가 남긴 작품일진대 근대조선의 주류 트렌드 한학 소양을 따로 익혀서 원문을 찾아서라도 읽어야 마땅하고, 이미 외부의 촉구가 없어도 제 자신의 필요와 끌림에 의해 그 스텝은 진척되어 있는 게 보통이다. 책과 담을 쌓거나, 저질 불량 상품에 중독된 된장(전자와 차이가 별로 없거나 더 나쁘다) 등의 무식쟁이라면 사실 어떤 레벨의 혁신 아이템이 나오든 오불관언이며, 다만 과시의 효과가 기대될 경우에나 관심을 주는 척 할 뿐이라, 역시 건강한, 혹은 유의미한 고민의 대상은 아니겠다. 문제는 초중등 교육 과정에 속한 어린이-청소년이라든가, 표준적인 관심과 소양, 열의를 가진 중간층의 경우인데, 잠재적이긴 하나 막대한 볼륨의 수요를 지닌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특정정파적 사고에 편향되지도 않으면서도, 예컨대 민족주의, 시민사회지향, 보편 교양에 바탕한 전문성 추구 등 바람직한 지향성을 지닌 쪽으로 건전한 시장을 육성할 것인지의 이슈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난문에 대한 하나의 말끔한 실례 제시, 완벽한 부분해로서의 실증이라고 주저없이 평가하고 싶다.

2)의 문제, 예를 들자면 20여년 전(혹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남한체제의 지적 천박성과 불건전성을 타매하는 데 있어 단골로 쓰인 팩트가, 북 정권과 달리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변변한 연구,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현대어 번역 작업 하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상에는 스스로 품고 있는 농도보다 훨씬 강한 호소력으로 다가오는 명제가 있기 마련인데, 얼른 들어 이론의 여지가 없는, 가슴을 치는 통박처럼 다가오는 저 '고발'은, 물론 일면의 타당을 지니긴 하나 그닥 공정하지는 못한(경우에 따라 정직하지도 못한) 언술이다. 해당 주권국가 영역 내의 모든 자원을 공공선 추구의 명분 하에 거의 무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사회주의 체제의 경우, 더군다나 북처럼 내셔널리즘을 그 지상의 구호 중 하나로 채택한 케이스라면, 이런 사업의 경우 그 완결시점이나 완성도가 차라리 문제가 될 정도로, 어찌 보면 당연한 치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부분이다. 사람이건 집단이건 능력과 가용자원의 한계가 있는 것인데 알고 있는 모든 가치와 미덕을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는 게 당연하고, 남쪽의 체제는 아무리 낮잡아 말해도 그 문화사업의 국가중심 추진을 포기한 데서 온 그 여력으로... 많은(그냥 이렇게만 이야기하자) 것을 이루어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북이 지금 지니고 있는 것과 그것 때문에 놓쳐야 했던 것들의 비중을 비교하자면, 그 실상의 참담함은 차마 입에 담아 이야기할 실정이 못된다. 이런 이유로, 국역화 작업의 지난 시절 부재, 지연을 들어 바로 체제 비하에까지 치닫곤 했던 그런 주장의 경솔함은 최소한 이 시점에서 충분히 반성되어야 하지 싶다. 볼 사람은 원문을 구해서라도 이미 다 봤고, 저속한 동기의 개입이 아니고선 눈길도 안 줄 구제불능은 국민세금 들이부어 뭔 사업을 벌이건 제겐 그저 먼 나라 일일 뿐인데, 그 하나를 열 일 제치고 밀어붙이지 않았다고 "이놈의 나라는 망해야해!"가 입에서 나온다면 그게 제 정신인 인간이겠는가. 언제부터 그리 책을 사랑하고 문화를 존중하는 마인드로 살았다는 건지. 그런 거창한 소릴 하려면 더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근거가 따라붙어야 최소한 들어주는 사람에 대한 매너일 것이다.

리뷰를 여기 쓴대봐야 한계가 있어서 다음 달쯤 시간이 나면 자세한 분석으로 연재를 잇고 싶다. 이런 걸 또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음?

      추가 논의 링크:

열하일기(2)

열하일기(3)


s****o 2011.05.17. 신고 공감 8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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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년 전 '연암'이 후손을 위해 남긴 이용후생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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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조선시대 최고 문장가이자, '문체반정' 주역인 연암 박지원 선생이 44세 때인 1780년(정조 5)에 삼종형 명원(明源)이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 잔치 진하사로 베이징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수행하면서 열하(熱河)의 문인들과 사귀고, 연경(燕京)의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본 것들을 기록한 일기이자, 기행문이다.   연암 선생은 <열하일기>에서 중국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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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조선시대 최고 문장가이자, '문체반정' 주역인 연암 박지원 선생이 44세 때인 1780년(정조 5)에 삼종형 명원(明源)이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 잔치 진하사로 베이징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수행하면서 열하(熱河)의 문인들과 사귀고, 연경(燕京)의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본 것들을 기록한 일기이자, 기행문이다.

 

연암 선생은 <열하일기>에서 중국의 역사와 풍속, 지리, 토목, 건축, 천문, 선박, 문화와 정치를 경험하고 겪은 충격을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조선 지배층인 사대부와 조선 사회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결국 이 신랄한 비판때문에 지금은 <열하일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고, 한 번쯤은 다 읽었고, 연암 선생 최고 역작으로 평가하지만 조선말 사대부들은 1901년 한학자 김택영이 <연암집>을 엮으면서 펴내기까지 약 1세기 동안은 '불온서적'으로 만들어버렸다.

 

김택영 이후 <열하일기>는 1948년에 시작된 최초의 전문 번역인 김성칠 선생본, 북한 국립출판사의 리상호 선생본, 윤재영 선생의 박영문고본, 가장 최근에 출간된 고미숙 선생을 통하여 번역과 편역을 통하여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또 <열하일기>가 나왔다. 도서출판 '돌베개'가 한국한문학의 산문 문학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으며, 특히 연암 박지원의 산문 문학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면서 <박지원의 산문문학> 따위를 쓴 한문학자 김혈조 교수 (영남대 한문교육과)의 새 번역으로 완역 펴냈다.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건너며'(도강록)으로 시작하는데 연암 선생은 처음부터 명나라가 망한지 130년이 지났는데도 명을 중국의 주인으로 숭상하는 조선을 향한 신랄한 비판하고 있다. 변화를 읽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사대부를 향한 연암의 비판은 어쩌면 새로운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자신을 향햔 채찍일지도 모른다.

 

"청나라 사람이 중국에 들어가 그 주인이 되니 훌륭한 전통 문화 제도가 변하여 오랑캐 문화로 바뀌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수천 리의 우리나라는 압록강을 경계로 나라를 다스리며 홀로 과거의 문화 제도를 지키고 있다."(1권 27쪽)

 

그리고 중원의 주인인 청나라가 아니라 망한 명나라를 아직도 숭상할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아직도 한반도에 제한시키는 역사와 영토의식까지 부재한 것을 비판하는 연암을 보면서 읽는 이들은 연암이 단순히 우리는 못났고, 중국은 잘났다는 사대주의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일순간에 지워버리는 자주의식이 매우 강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

 

"아! 후세에 땅의 경계를 상세히 알지 못하고서 한사군의 땅을 모두 함부로 압록강 안으로 한정해 사실을 억지로 끌어다 합치시키고 구구하게 배분하고는, 그 안에서 패수(浿水)가 어디인지 찾으려 하였다. 압록강을 패수라 말하기도 하고, 청천강을 패수라 말하기도 하며, 대동강을 가리켜 패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조선의 옛 영토를 전쟁도 하지 않고 줄어들게 만든 격이다."(1권 84쪽)

 

연암은 우리나라 굴뚝이 틈이 생기면 실낱같은 바람이라도 아궁이 불을 꺼 버리기 때문에 우리나라 방구들은 불을 밖으로 내뿜어 골고루 따뜻해지지 않지만 청나라 굴뚝은 큰 항아라만 하게 뚫어서 벽돌을 부도탑 모양으로 쌓아 올려 집의 높이와 같게 하여 연기가 항아리 속으로 떨어져 마치 숨을 들이쉬듯 빨아 당기는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

 

"우리나라는 집안이 가난해도 글 읽기를 좋아하지만, 수많은 형제들의 코 끝에는 오뉴월에도  항시 고드름을 달고 있으니 원컨대 이 법을 겨울의 괴로움이나 면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1권117쪽)

 

추위에 떠는 가난한 인민들을 향한 선비의 애틋한 마음과 함께 추우면 생각을 고쳐 굴뚝을 새로 만들어여 하는데도, 책상머리에 앉아 글만 읽으면 된다는 사대부를 향한 비판은 230년 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주는 교훈이 매우 크다. 

 

책상머리에서 글이나 읽으면서 변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는 사대부를 향한 비판을 이어가던 연암은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420리 이며, 만리장성 밖 200여리 지점에는 있는 열하로 떠나면서 소현세자를 떠올리며 가슴을 치는 장면은 영락없이 조선 사대부다.

 

"아아, 마음 아프다! 소현세자가 심양의 사저에 계실 때 당시 신하들이 떠나고 머무르거나, 사신기 가고 올 즈음에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된 자는 마땅히 죽어야 된다는 말쯤은 오히려 느긋한 표현에 속할 것이다. 어떻게 머물 수 있었겠으며, 어떻게 떠날 수 있었으랴? 어떻게 참고 보냈으며 어떻게 참고 놓아주었는가? 이야말로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통곡했을 때이다. 서캐처럼 작은 나 같은 미천한 신하가 백년이 지난 뒤인 오늘 생각해 보아도 오히려 혼이 싸늘하게 연기처럼 사그러지고 뼈가 시리어 부서질 듯한데, 하물며 당시 그 자리에서 이별의 절을 하고 하직하는 말을 하는 즈음에야 어떠했겠는가"(1권 467쪽)

 

100년 전 세자가 청나라에 끌려간 것을 떠올리면서 뼈가 시리는 고통을 겪는 연암은 또 다시 지배층을 보면 통탄할 일이다.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100년이 지났는데도 조선 지배층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나라 관원들이 말을 직접 관리보고 이런 일을 천하다고 하지 않으려는 우리나라 사대부를 향한 비판은 일하지 않고 살려는 우리에게도 귀중한 가르침이다.

 

"우리나라 사대부들은 모든 일들을 직접 하지 않는다. 옛날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을 때이 한 양반이 자신의 비복을 시켜 말에게 콩을 더 주라고 주의를 주었다가 좀스럽다는 이유로 그만 전랑의 벼슬자리가 막힌 일이 있다. 말을 관리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큰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서 모든 것을 아래 비복들의 손에 맡긴다. 비록 직책은 목장을 감독하는 일이고, 사람은 정식 벼슬을 하는 사람이건마는 도대체 말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목축을 맡은 관원들이 무식하다는 말이다."(2권 87쪽)

 

일하지 않는 사대부, 말을 돌보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조선 관원들. 말을 기르는 것이 진정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인데도 조선지배층은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조선이 부강해질 수 있겠는가.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말을 기르는 방법도 모르는 조선 사대부는 외교도 문외한이라고 통탄하고 있다. 내치도 못하면서 외치도 못하는 조선. 그것을 본 연암의 고통은 뼈져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교적 언사에 익숙하지 못해, 혹 어려운 것을 묻는데 급급하거나 당대의 일을 섣불리 이야기하기도 하고, 혹 우리의 의복과 갓을 과시하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의복과 관을 부끄러워하는지 살피기도 하며, 혹은 바로 대놓고 한족을 어찌 생각하느냐고 다그쳐 물어봄으로써 그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든다. 이따위 행동은 비단 그들이 꺼려하고 싫어하는 행동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어설픈 실수이고 역시 셈세하지 못한 것이다.(2권 282쪽)

 

외교를 어설프게 하는 것에 대해 연암은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을 청해야 마음 놓고 이야기를 터놓도록 유도하고, 겉으로는 잘 모르는 것처럼 가장해서 그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면, 그들의 눈썹 한 번 움직이는 데서도 참과 거짓을 볼 수 있을 것이요, 웃고 이야기 하는 동안에도 실정을 능히 탐지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상대를 배려하면서 상대 마음을 읽고, 국익을 위해 일하는 것은 이 시대 외교 상식인데 230년 전 연암은 벌써 알고 있었다.

 

<열하일기>는 이처럼 변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고, 우물 안에 갇혀 있으면서 망한 명나라가 숭상하는 조선 사대부를 향한 일갈이 곳곳에 묻어있다. 이는 230년 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마찬가지다. 배우고, 배워야 한다. 변하는 세상을 읽고 나의 고집에만 갇혀 있으면 우리에게 진보는 없다. 만약이지만 조선말 사대부들이 <열하일기>를 읽고 탐독했다면 100년 후 조선은 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연암의 후학인 유득공은 <열하일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중국의 노래나 가요에 관한 것, 풍습에 관한 기록도 사실은 나라의 치란(治亂)에 관련된 것들이고, 성곽과 궁실에 대한 묘사라든지, 농사짓고 목축하며 도자기 굽고 쇠를 다루는 것들에 대한 내용은 그 일체가 기구를 과학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하여 민생을 두텁게 하자는 이용후생(利用厚生) 의 길이 되는 내용이  모두 <열하일기>에 들어있다."(1권 23쪽)

k****e 2010.01.17.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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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열하일기...연암 박지원의 중국 열하 대장정 기행문
"22. 열하일기...연암 박지원의 중국 열하 대장정 기행문" 내용보기
드디어 말로만 수차례 듣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완독했다. 그동안 호질, 허생전, 양반전등 저자의 짤막짤막한 이야기는 접한 바 있었으나 기실 이 역시 열하일기에 수록된 사실 조차도 이번에 알았기에 새로운 내용으로 가득한 열하일기가 흥분을 갖게 만들었다.   앞서 북경을 유람했던 홍대용의 영향을 받은 저자는 더 나아가 아무도 가지 않았던 열하까지 섭렵하고 그 기행문
"22. 열하일기...연암 박지원의 중국 열하 대장정 기행문" 내용보기

드디어 말로만 수차례 듣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완독했다. 그동안 호질, 허생전, 양반전등 저자의 짤막짤막한 이야기는 접한 바 있었으나 기실 이 역시 열하일기에 수록된 사실 조차도 이번에 알았기에 새로운 내용으로 가득한 열하일기가 흥분을 갖게 만들었다.

 

앞서 북경을 유람했던 홍대용의 영향을 받은 저자는 더 나아가 아무도 가지 않았던 열하까지 섭렵하고 그 기행문을 장구하게 늘어놓았으니 실학자이자, 이용후생의 결정판이라 부를만 하다.

 

특히, 젊은 시절 허생전에서 읊었듯이 벼슬엔 관심을 두기보단 독서에 매진하였으며, 세상을 경험하는 일에 더 분주하였다. 벼슬길에 나선건 50세가 되어서 였으니 남들이 퇴진할 무렵에서야 진정 백성을 위하여 나라의 부름에 나아갔던 것이다. 설익은 지식은 화를 부른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벼가 익을 때까지 기다린 연후에야 작은 고을의 수령자리 조차도 엄격하게 부름을 받기에 이른것이다.

 

열하일기는 내용도 실로 방대하고, 지적인 욕구도 크고, 학문적 소양도 넓었으며, 정치, 경제, 문화, 그림, 골동품, 군제, 역사등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데 연암의 실사구시 정신을 조목조목 엿볼 수 있으며, 인간적인 면도 두드러지고, 처세술 또한 각별하다.

 

한편, 영조의 사위인 삼종형 금성위 박명원 정사, 8촌 아우인 박래원등과 함께 어쩌면 가장 팔자좋은 빽을 배경으로 느즈막하게 북경 유람길에 나선 몸이었지만 그 기상과 품은 웅지는 실로 거대함을 느낄수 있었으며, 북경에서의 한족, 만주족, 몽고적, 소수민족, 서양인등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도 친명,중화를 가슴에 품고, 실사구시, 흑묘백묘의 논리로 무장하고, 현실적으론 청의 품도 마다하지 않고 어쩌면 철저히 광해군 같은 중립, 중용의 도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후기 성리학의 근간이 많이 무너지고 오랑캐에게 발목 잡힌 조선이었지만 그 기개만큼은 뒤지지 않았으며, 후세에 남겨 교훈을 삼고자 한 연암의 선비정신은 두고두고 본받아야 할 지침서로서 열하일기 곳곳에서 느껴진다.

 

k****d 2013.05.1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