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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시(詩)- 조항록의 『거룩한 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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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시(詩)- 조항록의 『거룩한 그물』       조항록의 세 번째 시집 『거룩한 그물』(푸른사상, 2011)에는 환멸의 시간을 견디며 일상을 사는 자의 은밀한 삶이 깃들어 있다. 일상의 환멸을 견디며 산다는 건 그만큼 그 일상을 구성하는 현실이 열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라는 현실 자체가 그렇겠지만, 지금 이곳의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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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있어도 없는 것 같은, ()

- 조항록의 『거룩한 그물』

 

 

 

조항록의 세 번째 시집 『거룩한 그물』(푸른사상, 2011)에는 환멸의 시간을 견디며 일상을 사는 자의 은밀한 삶이 깃들어 있다. 일상의 환멸을 견디며 산다는 건 그만큼 그 일상을 구성하는 현실이 열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라는 현실 자체가 그렇겠지만, 지금 이곳의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낭만이 사라진 날것으로서의 현실일 뿐이다. 누가 알까라는 시를 보면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남들은 사무실로 걸음을 재촉하는 이른 아침에 바다로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원하는 속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실천하는 이 사람의 삶은 자본주의의 바깥으로 향하는 존재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예시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실제의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지하철 속에서 펼쳐지는 환상의 삶으로 나타난다. “그의 은밀한 비밀로 표현되는 이러한 삶은 천국행 티켓을 사려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천박한 피서이거나 유치한 낭만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피서(낭만)와 비밀 사이에 걸려 있는 시의 무게는 자본주의의 법칙에 묶인 존재들이 펼쳐내는 삶의 무게를 정확히 반영한다. 바다에 대한 상상이 유치한 낭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본주의적 삶의 무게 중심은 무엇보다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일상의 삶으로 한없이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다로 나아가는 길이 하도 즐거워 슬그머니 넥타이를 푼다 셔츠와 속옷까지 벗고 알몸이 된다에 표현되듯, 일상(법칙)의 옷을 훌훌 벗어 던지지 않으면 바다에서의 낭만적삶은 결코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요컨대 시인에게 바다는 환멸을 견디는 시적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익숙한 무엇의 지겨움이 넘쳐나는 평균율”(엘리베이터)의 세계 밖으로 시인을 인도하는 강력한 힘으로 나타나는바, 자본주의 사회의 바깥을 향한 자발적 은둔자의 삶(자발적 은둔자에게)은 이러한 낭만성의 시학을 경유해야만 제대로 실천될 수 있을 것이다.

 

자발적 은둔자의 삶은 가난을 긍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가난의 긍정). 가난에 대한 긍정은 돌려 말하면 돈을 만물의 근원으로 사고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양지가 아닌 곳에서도 생명은 살아간다. 성공이라는 소수의 신화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가끔 명치끝이 저릿할 때 있겠지만/ 그런 것이 소외의 완성이며/ 은밀한 행복의 비책이라 믿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소외의 완성이 은밀한 행복의 비책이라는 시인의 말에 주목해 보자. 소외란 자기 혹은 타자와의 거리감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소외의 완성은 언뜻 은밀한 행복의 비책과는 전혀 상관없을 듯싶다.

 

하지만 태양 아래 새로울 것 없는 욕망을/ 다시는 기웃대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라는 진술에 나타나거니와, 시인은 자본주의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소외를 완성하는 첫 걸음으로 제시하고 있다. 욕망에서 벗어난 삶은 양지의 삶이 아니라 음지의 삶을, 정확히 말해 가난을 긍정하는 삶을 가리킨다. “무얼 하는지 무엇을 하든지/ 그가 조율하는 것은 나지막한 숨소리뿐입니다/ 그래도 정말 아무렇지 않습니다에 드러나는 식물적 정신이 곧 지상의 그늘 한 칸에서 지상의 자유 한 칸을 발견하는 시적 원리에 해당되는 셈이다.

 

 

나의 아이가 나무박사가 되면 좋겠어

평생 나무만 바라보고

그 나무 밑에서 전기요금을 계산하고

새끼들 양육비를 걱정하고

다음에 이사 갈 집을 꿈꾸며 살면 좋겠어

아비처럼 나무 밑에서 아픈 것들을 떠올리지 말고

아비처럼 깊은 심호흡으로 삶의 매연을 쏟아내지 말고

빙하기의 말없는 아비와 달리

침묵의 봄날을 실컷 즐기면 좋겠어

바람이 불 적마다 한들거리는 나뭇잎들의 합창

그 평화에 아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한 음쯤 제 목소리를 얹어둘 수 있으면 좋겠어

살아서 나무만 보고 사는 사람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나무만 보고 살아도

제가 가진 것들을 시들게 하지 않는 사람

나는 아이가 나무박사가 되면 좋겠어

아비처럼 인간의 예의를 배우지 말고

무릇 나무의 수런거림에만 귀 기울이면 좋겠어

- 너는 나처럼 살지 마전문

 

 

인간의 예의를 배우지 말고 나무의 수런거림에 귀를 기울이라는 아비의 말이 가슴 뜨겁게 다가오는 이 시는, 제 아이의 미래를 생명의 미래와 더불어 사유하려는 공존의 마음으로 물들어 있다. 아픈 것들과 삶의 매연을 내몰고, 그 자리에 침묵의 봄날을, 나뭇잎들의 합창을 얹어두는 아비의 마음에는 이미 제가 가진 것들을 시들게 하지 않는 사람의 정겨운 마음이 담겨 있다. 이러한 정겨운 마음은 불쌍한 것들의 삶을 한없이 애달파하는 아내의 마음(불쌍한 것)으로 이어지고,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 말아요라는, 수만 번 들어도 변함없이 듣고 싶은 사랑의 언어(칼날이 두부에게)로 다시 이어진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는 시의 제목에 드러나듯, 시인은 이러한 사랑의 언어를 애써 숨기면서 살아야 했다. “죽을 자유는 있어도 게으를 자유는 없”(십 년 전 꽃무늬 벽지)는 세상에서, “검게 멍이 든 사람의 가슴”(밥그릇)으로 상처는 나의 숙명”(거울을 들여다볼 적)이라고 외치며 시인은 살아왔다. 환타지를 상실한 늙어버린 개가 되어”(나의 소원은) “피로가 가득 들어찬 하루의 마지막 지하철”()을 습관처럼 오가는 이러한 숙명을 단지 시인만의 특별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항록의 시는 이처럼 낭만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무리 있어도 없는 것 같은 그 사람”(항아리)의 아련한 세계로 뻗어 나간다. 정신의 발효를 구린 장맛의 감각으로 표현한 항아리에서 시인은 폭염과 비바람과 혹한과 더불어/ 시간의 곡절을 다 견뎌낸 그 사람의 환한 통증을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 항아리라는 건 언뜻 어디 한 군데 날렵한 구석이 없지만/ 투박한 한숨 한 번 내쉬는 법이 없지요라는 부분에서 알 수 있는바,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 어둠 속에/ 저 혼자 외로움만 숙성시키는 항아리(그 사람)의 시적 면모는 무엇보다 조항록이 지향하는 시 세계의 본질을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항아리의 이런 면모에 집중할수록 일용할 비굴을 주는 일상을 향한 천박한 실용주의자”(지하철 만담)의 면모 역시 그만큼 강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에 있다. 이를테면, 시인은 불이 꺼지면 자연스레 보이는 것들을 애써 외면하고 시치미를 떼며 다시 한 번 어둠을 부정했다”(다시 한 번)는 화자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당신과 나 사이에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두루 퍼져 있는 위선의 정황에 대해 비판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하철 만담을 참조한다면, 쾌속으로 움직이는 것은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게 내가 아니라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기만이고 동시에 위선(관계의 부정)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시들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것 같다. 자기기만과 위선을 가차 없이 잘라내면 항아리처럼 스스로를 충분히 숙성시키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이리 안간힘을 쓰며”(등 뒤에 너를 태우고) 이 심연과도 같은 일상세계를 가슴에 시퍼런 멍을 새긴 채 살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순환선의 기차처럼 문제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머뭇거리다에 표현되듯, 시인은 가까울수록 멀게 느껴지는 역설의 미학과 맞닥뜨린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밖으로 나갈 방법이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안에 정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시의 제목처럼 시인은 그저 머뭇거릴 도리밖에 없다. 지향점은 분명하지만, 그 지향점으로 가는 길이 불투명한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절로 피는 꽃에서처럼 봄은 결코 꽃을 잊는 법이 없다고, 그래서 봄이 되면 꽃이 절로 필 거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하마터면 얼어붙은 대지를 두드리며/ 섣부른 희망을 들먹이는 일이 되리라는 걸 시인은 분명히 알고 있다. “젖 먹던 힘을 기울여도 그 상황을 풀기가 쉽지 않다면, 이제 남은 것은 그 힘마저도 내려놓는 방법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소년처럼에서 시인은 겨울바다는 묵묵한 경전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앞서 밝혔듯이 그의 시에서 바다는 낭만성을 불러일으키는 원초적 장소로 의미화되었다. 표제작인 거룩한 그물도 이러한 바다의 상징적 맥락을 밑바탕으로 시화되고 있거니와, 자기기만과 위선을 넘어서는 문제는 무엇보다 바다라는 이 묵묵한 경전에 담긴 오묘한 의미를 읽는 데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어부 김씨는 오늘도 그물을 던진다

망망대해에 던져진 그의 그물은 두려움을 모른다

바닷길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의 고요한 마음이랄까

 

어둠뿐일 것 같은 바다 속에서

그는 용케 따뜻한 밥상과 자식들의 학비와 전기세와 물세와

아내의 병원비와 몇 잔의 소주와 몇 시간의 휴식을 낚아올린다

어부 김씨의 그물에 바다는 담기지 않는다

바다는 공허한 것이라서 가둘 수 없는 상념이라서

그의 그물은 바다를 다 흘려보내고 생활만 건져올린다

 

아무런 간판도 달지 않고 삐걱대는 작은 배

그의 하루는 그물에 걸린 한 줌의 바다마저 털어낸다

갈매기들이 휘파람을 불며 안개 같은 그의 결단을 축복한다

 

저물녘이면 그림자가 되어 포구로 돌아오는 어부 김씨

지붕 낮은 둥지 속에서 어린것들이 달려나와

비린내 가득 거룩한 그물에 얼굴을 부빈다

- 거룩한 그물전문

 

 

어부 김씨는 바닷길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바다에서 잔뼈가 굵었기에 그는 망망대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 마음으로부터 어부 김씨의 고요한 마음이 생성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그물은 바다를 다 흘려보내 생활만 건져올린다는 시적 진술에 주목해 보자. ‘생활이라는 시어가 오롯하게 부각되는 이 부분에서 시인은 속도에 치우친 도시인들의 생활과는 다른 김씨의 생활을 표나게 강조하고 있다. “그저 넘어지지 않으려고 쉼 없이 페달을 밟는”(등 뒤에 너를 태우고) 도시인에 비한다면, 어부 김씨는 말 그대로 바다로 출근하는 사람”(누가 알까)이다. 그것은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환상이 아니라, 실제의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바다의 낭만이 바다의 현실로 자리매김 되는 지점에는 이렇듯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는 존재의 현실이 스며들어 있다고 하겠다.

 

생활의 공간으로 묘사되는 이 바다에서 시인은 그물에 걸려 한 줌의 바다마저 털어내는 어부 김씨의 고요한 마음을 발견한다. 고요한 마음은 그러므로 김씨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생활의 방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화려한 생활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인과는 다르게, 김씨는 바다에서 최소한의 생활 수단을 얻고 있을 뿐이다. 시인이 그토록 넘어서려 한 자기기만과 위선의 상황에 견준다면, 김씨의 거룩한 그물에는 이러한 자기기만과 위선이 제거되어 있다. 바닷길은 김씨 스스로 움직여야 열리는 길이므로 거기에는 당연히 자기기만이 있을 수 없다. 위선은 어떤가? 김씨의 고요한 마음이 위선과 상관없는 정직한 마음의 시적 표현이라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구린 장맛을 우려내는 항아리와 같은 마음과 다를 바 없는 김씨의 거룩한 그물은 몽돌에 이르면 파도의 흔들리는 피로가낳은 둥근 자갈들로 표현되고 있다. 파도는 그 몽돌을 어루만지면서 철썩철썩 제 삶을 뉘우친다”. 김씨의 고요한 마음이 파도의 뉘우치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이 장소에서 조항록의 시는 낭만성에 머물지 않고 지금 이곳의 현실과 마주하는 시로 거듭난다. “먼지가 아니고 무엇이 현실일까”(자발적 은둔자에게)라고 시인은 스스로 되묻는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머지않아 먼지가 될 운명에 처해 있다면, 먼지가 바로 한 생의 뼈아픈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먼지는 먼지가 아닌 것들의 현존을 입증하는 역설적 존재이기도 하다. 진짜 보석에 묘사되는 손을 흔들며 첨벙거리며, 저 홀로/ 교문 안으로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다만 먼지가 될 시간의 운명으로만 재단할 수 있겠는가? 먼지가 현실이라면, 딸아이의 모습도 현실이다. 조항록의 시는 그 두 현실의 경계에서 자발적 은둔자의 거룩한 삶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 일은 성공할 수 있을까? 답이 없는 물음이란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고 시인(독자)에게 이 물음을 던져본다.

 

o*****s 2017.12.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