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션 D시리즈-크래시』를 읽고 솔직하게 내 자신 고백하건데 지금까지 갖거나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을 억제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나이 60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그 간의 과정들이 결코 쉽지 않은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자신과 현재의 생활에 모든 것을 바치는 열정으로 임하다보니 다른 쪽에 많이 신경이나 생각은 물론이고 행동으로는 거의 참가하지 못한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렇다고 내 자신은 절대 별다른 사람은 아니다. 당당한 한 명의 대한민국의 남아로서 그 모든 것을 다 행하면서 생활하고 싶은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약간의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간이라는 것을 느끼는 시간도 되었다. 어쨌든 지나간 시간들의 회상이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 후반기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더욱 더 노력해 나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여러 가지로 착실하게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좋은 책들을 많이 대하는 독서 활동도 들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삶속에서 소홀히 하거나, 도저히 접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을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의 멋진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해보지 못했고, 아쉬움이 남는 것이나, 장차를 준비하기 위한 목적에서 충실하게 하는 독서 활동 시간이 매우 행복한 시간이다. 지금까지 비교적 많은 부류의 책들을 대하면서 내 부족한 부분을 많이 보충하는 시간을 갖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변화를 추구해 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내 자신에게 이 책도 많은 흥미와 함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되어서 매우 뜻 깊었다. 현재 내 자신의 생활 속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중에서도 성에 대한 것은 많은 부분에서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암암리에 이루어짐은 물론이고, 상식과 원칙을 벗어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러다보니 소설 작품으로도 표현하여 대리 욕망 또는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에디션D(desire)시리즈 중 이 책 ‘크래시(CRASH)’도 바로 인간의 에로티시즘과 욕망을 다루기 때문에 잘못하면 인간의 성욕을 자극시키는 노골적인 묘사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깊은 내면의 심리를 통한 목소리를 통해서 우리 독자들을 자극시키고 있다. 내 자신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한 인간의 성욕에 대한 강력한 문체, 비범한 상상력, 기괴한 접근을 통해 전개해 나가는 작품으로 신선한 독서시간이 되었다. 아울러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인 성욕에 대한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시간도 되어 매우 유익하였다. 역시 우리 인간은 어마어마한 존재라는 것도... |
1. 에디션 D라는 문학시리즈를 처음 만났다. 이 시리즈는 인간의 욕망과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욕망과 에로티시즘이라... 그것은 선보다는 악에 가까운 이야기. 지킬박사보다는 지킬 박사 내면의 악마. 하이드를 묘사한 작품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책을 읽을 때는 투철한 윤리 의식을 아주 잠시만 한 쪽에 놓아두고 즐길 필요가 있다.
이런 소재를 다룬 문학 작품을 손에 들고, 갑자기 성인군자가 된 것 마냥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어 외설적이라던가 폭력적이던가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할 거면 차라리 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저자나 독자 양쪽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리뷰에서는 도덕성을 고려하지 않고 책을 읽은 소감에 대하여 쓸 예정이다.
2.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책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발라드의 책이 출간되기 전에 <크래시>을 받아서 읽어 본 편집자가 작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책의 작가에게는 정신과 치료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매우 공감이 가는 평가다.
도덕적 잣대를 버리고 책을 읽기로 했지만. <크래시>에서 묘사되는 성애는 너무나도 무분별하여 눈살이 찌푸려진 적도 많았다. 직접 읽어보면 알겠지만, 상상 이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와 찌푸려지는 묘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그만큼 <크래시>에 녹아있는 작가의 관점이 뚜렷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좀 더 작가에 대하여 살펴보니 제임스 발라드 작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은 작가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작가들은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완벽하게 다른 상징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로 황소 머리를 만들어낸 피카소의 작품이나, 별다를 바 없는 변기 하나를 갖다놓고 샘이라고 부른 뒤샹의 작품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들이 사용한 변기나 자전거처럼 제임스 발라드가 포스트모더니즘을 위해 차용한 이미지는 자동차. 그리고 자동차 사고. 몸에 새겨진 흉터. 이렇게 세 가지다. 보통 자동차에 대한 우리의 고정된 관점은 우리 생활에서 이제는 아주 익숙한 이동수단으로 바라보는 정도이고, 소설로 폭을 넓혀 생각해보면 로드무비를 가능케 해주는 수단의 성격으로 사용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자동차의 고유관점이 변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단순한 이동수단이라는 도구의 영역을 넘어 더 좋은 차. 멋진 차. 남들과는 다른 차를 타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이러한 자동차 사랑은 애인을 바라보는 것과 유사한 모습으로 진화된다. 실제로 어떤 이는 자기 차를 애인 다루듯이 애지중지하기도 한다.
발라드가 착안한 개념은 바로 이와 같은 새로이 형성된 관점이다. 그래서 제임스 발라드는 자동차를 애인이라는 생물적인 요소로 재해석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2가지는 무엇일까? 자동차 사고는 남·녀가 충돌하는 바로 그 순간. 서로의 몸이 상대의 몸에 의해 충돌하여 찌그러지는 그 상태를 의미하며, 자동차 사고로 생긴 흉터는 충돌 중의 열락으로 서로의 몸에 새겨지는 생채기 같은 것이거나 또는 충돌한 이후에 새겨지는 문신의 의미를 뜻한다. 인간에 대한 새디즘이 자동차라는 물질로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3.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크래시>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변태성향을 갖게 되는 데에 있다. 사고 순간의 쾌락이 어떤 것인지 솔직히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나로서는 사고의 순간이란 그저 벗어나고 싶은 순간일 뿐이었건만) 그들은 자동차라는 공간 속에서 격렬한 충돌을 벌인다. 그러한 충돌의 순간은 부부가 맺은 서약도 가로막을 수 없었다. 남편이 운전석에서 룸미러로 뒷 자석을 보고 있건만, 아내는 보란 듯이 다른 남자. <크래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 '본'과 질펀하게 충돌질을 벌인다.
그렇다. 크래시에서는 본이라는 인물은 가장 탐구할 만한 인물로 등장한다. 1인칭 나의 관점에서 특이하면서도 닮고 싶은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탐색하는 것. 그것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의 '나'가 조르바를 바라봤을 때, <노란새>에서 '나'가 머프를 바라봤던 그 시점과 일치한다.
본이라는 인물은 욕망의 끝을 달리는 인물이다. 그는 영국에서 가장 황홀한 존재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얻기 위해서. 그녀가 탄 차량에 충돌할 순간을 노린다. 그는 그녀에게 <크래쉬>의 쾌락을 전해주기 위해, 몇 년 동안 차량 파손의 현장과 인간의 사고 현장에 들러서 순간을 카메라에 채집하며 그 순간을 준비한다. 현장의 다른 사람들은 사건 조사를 위해 카메라에 순간을 담지만, 그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충돌의 쾌락을 상상하기 위해서 카메라에 담는다.
그뿐만 아니라, 전문 스턴트맨을 고용하여 직접 시나리오도 작성한다. 과연 이런 치밀한 리허설에 의하여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어떻게 되었을까? 본의 욕망에 그녀의 육체가 무너졌을까? 무너지지 않았을까? 그 방향을 탐색하며 순간을 위해 살아가는 기이한 본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도덕적 잣대를 버리고자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너무나 파격적인 설정이라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기에는 상당히 망설여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를 다시한번 일깨워준다. 그리고 우리의 숨겨진, 감춰진 욕망이 이정도인가 하는 생각도 듬과 동시에, 도대체 어디서 용기가 나 이런 소재를 글로 쓸 생각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인간의 에로와 욕망을 구분하기란 힘들것 같다. 그리고 에로티시즘을 추구한다고 하여, 그게 비정상적인 범주라 칭할수는 없겠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상적인 범주(물론 그 정상이란 것도 개개인별로 판단 기준치가 다르겠지만.)에서 많이 비껴서 있는 것 같다. 출판사에서 내건 모토가 인간의 에로티시즘과 욕망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라 하니, 섣불리 딴지를 걸기는 뭣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 시리즈에 대한 기획의도를 펼쳤겠는가. 자동차사고라 하면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후유증이 꽤 오랫동안 남는 사건인데, 그런 사고를 통해 오르가슴을 느끼고 그 감정을 다시 느껴보기 위해 일부러 사고를 내고, 또 자신의 몸에 상댕의 몸에 생긴 흉터를 보고 어떤 쾌락과 함께 흥분을 느낀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싶을 정도였다. 기이한 성생활을 즐기는 발라드와 캐서린. 그들은 자신들의 외도를 애써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다. 거기다 우연히 일어난 자동차사고를 통해 희한한 느낌을 받은 발라드는 점차 자동차충돌과 섹스와 접목시키는 사태까지 벌인다. 더 웃긴것은 이러한 행위자체를 은근히 주도하고, 주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점차 자신들의 성적쾌락을 높여가고 만족시키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외설이냐, 예술이냐를 구분하는 것은 한끗 차이라는 말이 나오나 보다.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것을 감정을 배제한채 바라볼수 있는 사람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고, 자칫 잘못하면 죽음으로까지 치달을수 있는 그런 치명적인 사고앞에서도 제아무리 감춰진 욕망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맹목적으로 달려들어 섹스를 할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웠다. 아무튼 이 책을 쓴 작가도 대단하고, 이 작품을 토대로 수많은 반대를 무릎쓰고 영화를 찍은 감독도 대단하고, 또 이런 방향의 책들을 모아 시리즈로 내겠다 용기를 낸 출판사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