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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이이화의 책. 조선의 마지막 100년 동안 벌어진 여러 민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특히 홍경래의 난과 동학혁명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 두 전쟁이 가장 큰 규모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이필제’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이필제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러 차례의 봉기를 주도했다. 민란이란 것이 단 한 번만 일으켜도 목숨을 잃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용케도 잡히지 않고 여러 곳에서 거사를 주도한 것으로 보아 예사로운 인물이 아닌 듯. 동학 전봉준은 체포 후 일본이 자신들의 앞잡이로 이용하기 위해 여러 차례 회유했음에도 이를 모두 물리치고 당당히 죽음을 택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일본은 조선을 큰 저항없이 집어 삼키기 위해 이렇듯 여러 방면에서 참으로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했을꼬? 민란을 대처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그저 일본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북미간의 강대강 대립으로 어수선한 시국. 당사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왜 없을까? 부디 치밀한 숙고와 현명한 판단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외세에 한없이 무기력했던 근세 100년의 모습은 한 번으로 족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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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서 19세기는 이른바 ‘민란의 시대’라 부른다.
‘민란(民亂)’이란 민중들이 국가 또는 지배세력의 그릇된 정치행태에 대항하여 벌이는 봉기를 일컫는데, 최근에는 ‘민란’이라는 용어보다 ‘민중항쟁’으로 칭하고 있다.
정조의 죽음으로 시작된 19세기는 이른바 몇몇 가문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는 세도정권의 시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들은 민중들의 실생활은 아랑곳하지 않고, 특정 가문을 위주로 한 정책으로 인해 민심은 점차로 이반되어 갔던 것이다.
이 시기의 농민항쟁은 급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다양한 사회적 모순이 쌓여가면서 세도정권에서 자행된 무자비한 수탈체제에서 폭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자는 19세기에 발생한 ‘민란’의 배경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탐구하고, ‘홍경래의난’을 비롯한 19세기 농민항쟁의 발생과 전개 양상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특히 1962년 영남지역을 위시하여 전국적으로 발생한 농민항쟁은 조선의 봉건적 모순이 폭발하는 모습을 띠고 있으며, 이후 동학농민혁명으로 이어지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끝내 무능한 조선왕조는 외세의 침략 앞에 무기력하게 국권을 침탈당하는 지경에 처해졌으며, 그마나 뜻있는 지사들에 의해 의병 운동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지배계급들의 모습과 민중들의 저항을 통해서, 어쩌면 우리 시대 사회적 모순의 양상을 비춰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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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힘이 없으면 사람들이 고생한다. 이는 사람들이 국민이던 시절은 물론 신민에 불과하던 시절에도 동일했다. 저마다 자구책을 찾아 헤매는데, 거기에 질서나 규칙 따위를 요구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당장 먹고 사는 게 급한 이들의 눈엔 보이는 게 없다. <민란의 시대>는 조선의 마지막 100년을 다룬 책이다. 사실 몇몇 이들은 조선에 대해 임진왜란 때 이미 무너졌어야 한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왜란과 뒤이은 호란으로 국가의 기강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삼정의 문란, 신분제의 붕괴 조짐 등 교과서를 통해 숱하게 접해 온 현상들이 등장했던 게 이 시기 무렵이다. 후기로 갈수록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국가의 녹을 먹어야 할 관료들은 탐욕으로 불탔다. 국가가 이들에게 충분한 급료를 지불하지 않으니 그들 또한 살기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을 수밖에. 처단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탐관오리 또한 어쩌면 시대가 빚어낸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가해자를 동조하는 건 아니지만 태생적으로 악하기만 한 인간은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정씨가 등장해 현재의 이씨 왕조를 대체한다는 식의 주장이 한때 널리 유포됐다고 들었다. 누가 발설한 것인지는 모르나 새 시대를 기원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것만은 사실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데 기대어 새 삶을 개척하고자 움직였던 이들이 존재했다. 왕이 하늘보다도 높은 시대였으므로 그들이 품은 불온한 생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고로 그들은 비밀결사체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시국을 논하고, 뜻이 맞는 이들을 서서히 규합해 나가는 과정을 상상해 본다. 언제가 한 판 뜨기에 적절한 시기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이 뭐 있냐는 말도 있으나 잡히면 끝장인 상황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조심해야 할 것 투성이었을 거다. 생판 모르던 이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쏟은 공이 얼마나 클지도 짐작이 쉽지 않았다. 언제고 나의 계획을 발설하는 자가 등장하면 아무것도 행하지 못한 상황에서 허무하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설렜을까. 신세계를 열기 위한 그들의 분투를 높이 사고픈 마음이 절로 들었다. 대개 민란은 즉흥적인 성격이 강했다. 치밀하게 계획할수록 성공률이 높겠지만, 머리를 굴려가며 세태를 논할 만큼 정신줄을 꼭 붙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듯하다. 내 가족이, 이웃이 죄 없이 붙잡혀가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세금이 연달아 부과되는 원통한 상황의 연속이라면 그럴 만도 하다. 나와 유사한 사람이 주변에 많다면 더더욱, 순간 ‘욱’ 하는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채 관아로 달려가는 건 시간문제다. 각종 무기로 무장했다손 치더라도 그들은 민중이었다. 군사훈련을 받은 이들과는 차원이 달라 금방 진압당하기 일쑤였다. 많은 민란의 주동자들의 신상이 이토록 정확히 기록에 남았다는 것은 그들이 약했기 때문 같다. 외세가 아니라 차라리 민란에 의해 나라가 멸망했더라면, 잡혀 효수당한 이들이 죄인 아닌 승리자로 역사에 기록됐더라면 과연 어땠을까를 묻고 싶었다. 그렇다고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마냥 씁쓸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평민 의병장 신돌석은 국사 교과서에도 수록돼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저자는 신돌석이 실제로는 머슴이 아니라 자작농 수준의 재산을 지닌 향반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낯선 이름을 하나 더 언급했다. 안규홍. 머슴 출신 의병장이었던 그는 3년여의 활동 동안 크고 작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13도 연합 부대에는 포함되지 못했으니, 나라를 위하는 마음보다 어쩌면 신분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어 컸던 모양이다. 그에 대한 일화를 접하고 나니 셀 수 없이 많을 이름 모를 희생들을 떠올리게 됐다.
‘민란’이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마 당대 지배층들은 횃불을 앞세운 민중들을 폭도 즈음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길 꿈꿨다. 그들이 있어 썩어가던 연못에 작으나마 파문이 일 수 있었다. 역사는 결과가 성공이냐 실패냐에 따라 달라진다. 먼 훗날 지난 겨울 광화문을 뜨겁게 달군 촛불은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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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구성시 내용을 더 띄울 필요가 있습니다. 책을 읽을 시 눈에 안들어 옵니다. 내용의 재미를 떠나 일단 글자 자체가 눈에 쉽게 들어와야 한다고 봅니다. 페이지를 늘리고 그림이나 당시의 사진을 추가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중 항쟁이라는 흥미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단순 나열하는데 그쳤습니다. 역사적 사료를 시대순으로 나열하는데 그쳤습니다. 역사 교과서를 읽는것 보다 흥미가 안생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