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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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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도회인들에겐 ‘박제된 추억’이자 ‘조로早老한 미래’이다. 그 여름날 ‘굼벵이 구멍’을 보고서 매미를 잡던 모험담은 생명의 환희를 잃어버린 채 기껏 세대차를 드러내는 징표로 전락해 버렸다. 대신 집단 도취의 일종인 웰빙의 광풍에 휩쓸려 너도나도 덜 오염된 먹거리를 선점하는 것으로 자신의 계급적 우월성을 증명하느라 일없이 분주하다. 혹은 가급적 소득 없는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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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도회인들에겐 ‘박제된 추억’이자 ‘조로早老한 미래’이다. 그 여름날 ‘굼벵이 구멍’을 보고서 매미를 잡던 모험담은 생명의 환희를 잃어버린 채 기껏 세대차를 드러내는 징표로 전락해 버렸다. 대신 집단 도취의 일종인 웰빙의 광풍에 휩쓸려 너도나도 덜 오염된 먹거리를 선점하는 것으로 자신의 계급적 우월성을 증명하느라 일없이 분주하다. 혹은 가급적 소득 없는 타인들과의 접촉일랑 체계적으로 배제한 채 ‘포스트 잇’보다 편리한 애완동물의 재롱을 위약僞藥삼아 근근이 생명의 갈증을 대리 만족하며 살아간다. 이런 와중에, 과잉 계몽된 인간 종들에게 벌써 단물 빠진 껌보다 식상할지도 모를, 더구나 이 ‘새것 강박증 시대’에 150여년이나 지난 옛날이야기인 ‘진화론’이라니? 내가 찰스 다윈의『종의 기원』은 집어든 것 역시 순전히 남들과 달리 소문의 진상을 확인해봤다는 지적 욕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헌데, 이런 심중을 꿰뚫어 보듯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다윈에 대한 학내 안팎의 구설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양자론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이 이론들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달리 다윈의 이론은 온갖 종류의 무지한 비평가들에게 쉬운 공격 목표로 보이는 모양이다.” 1859년 출판된『종의 기원』은 초판 1250부가 당일로 매진될 만큼 당대의 사람들에게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 다윈의 이론이 그간 ‘열쇠 없는 자물통’처럼 단단히 유지됐던 ‘종(種)의 불변성, 안정성’에 대한 믿음에 심대한 균열을 내어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종의 다양성을 해명하기 위해 퀴비에의 ‘천변지이설(天變地異說)’이 지질학의 정설로 여겨졌던 것만큼 세간의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천변지이설이란 먼 옛날 지구에는 돌발적이고 격심한 지각 변동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데 그 때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물이 사멸하고 살아남은 것들이 세계에 널리 분포하게 되었다는 이론을 말한다. 하지만, 1836년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와 갈라파고스,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거쳐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다윈에게는 ‘종의 변이에 대한 자연 선택’인 진화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즉, ‘자연선택에 의해 생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특징(형질)은 생물 집단 내에서 점점 뚜렷해지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특징은 점점 사라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 자연선택의 개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준 책은 바로 맬서스의『인구론』(1798)이었다. 자연선택, “이것은 맬서스의 학설을 아주 강조하여 모든 동식물계에 적용시킨 것이다.” 맬서스의 핵심 주장은, 바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인간 사회의 기근과 빈곤, 악덕이 발생한다는 것.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세계에도 생존할 수 있는 개체보다 더 많은 수가 태어나는 탓에 '생존 경쟁'(Struggle for Existence)은 불가피한 것이 되어 버린다. 여기서 “생존경쟁이란...한 생물이 다른 생물에 의존하는 것을 포함하며, 또 개체의 생명을 이을 뿐만 아니라 자손을 계속 남긴다는 것까지도 포함하여 사용한” 개념이다. 하지만 그것은 선악이란 윤리적 차원으로 포섭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단지 그러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천명’이란 층위에 놓인 문제일 뿐이다. 비록 다윈은『종의 기원』서두에서 ‘인간의 기원을 다루지 않겠다’ 공언했지만, 인간종 역시 ‘자연선택’의 파장과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얼마든지 유추가능한 일이었다. 당연스레 기독교의 교리에 입각한 '신의 형상'(Imago Dei)을 닮은 유일무이한 피조물이라는 인간 존재의 지반은 원천적 붕괴의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안타깝게도, “역사를 그토록 포악하게 만든 것은 의견 다툼이 아니라 의견에 대한 신앙, 즉 신념의 다툼이다”는 니체의 서늘한 혜안은 찰스 다윈이라 하여 운 좋게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언제나 시대를 한 걸음 앞서 거슬러 갔던 모든 위대한 사상들의 슬픈 운명이었다.『종의 기원』은 ‘신의 그림자’란 아교를 뒤집어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로부터 맹렬한 비난과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특히, 다윈에 대한 반발은 미국에서 더욱 강했는데, 진화론을 가르쳐 성서의 권위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테네시주의 고등학교 교사가 재판에 기소될 정도였다. 다윈의 이론을 자신의 입맛대로 왜곡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 중 가장 악의적인 경우는, ‘사회적 다윈주의’라는 명분아래 인종주의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대신 박애와 평등의 미덕을 짓밟아버린 짓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류라는 미래의 벗들에게『종의 기원』을 통해 다윈이 주고자 했던 선물은 결코 그런 허접 쓰레기들은 아니었다. 외려 그의 진정한 메시지는 인간이 자연 ‘밖’이나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 ‘속’의 일부분이라는 걸 자각함으로써 ‘생명 앞에 겸허한 자세'을 갖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더불어 진화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열등한 생물도, 그 계단 꼭대기에 서 있는 우수한 생물도 없는 것처럼 ‘진화는 (일방향의) 발전이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다’는 것도. 다윈은 그의 자서전을 통해 ‘알을 수집하기를 좋아했지만 새 둥지에서 절대 알을 하나 이상 집어오지 않았고, 고기를 좀 잡지 못하더라도 살아 있는 벌레를 미끼로 쓰지 않았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종의 기원에 관한 그의 지긋한 열정은 그렇게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에 깊숙히 뿌리내린 채 찬찬히 익어갔던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i*****n 2005.07.22. 신고 공감 8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