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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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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서 흔히 우리는 깨달음의 글, 지혜의 글들을 읽는다. 그것이 짧은 잠언 형식을 지니는 글도 있고, 아니면 이야기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우화 형식도 있다. 이런 다양한 형식은 인간의 삶이 다양하고, 개성적인 모습으로 숱한 세월을 두고 흘러왔기 때문에 당연하리라. 그 세월속에서 얻어진 예지가 비유가 주를 이루면서 삶에 대한 통찰을 기록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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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서


흔히 우리는 깨달음의 글, 지혜의 글들을 읽는다. 그것이 짧은 잠언 형식을 지니는 글도 있고, 아니면 이야기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우화 형식도 있다. 이런 다양한 형식은 인간의 삶이 다양하고, 개성적인 모습으로 숱한 세월을 두고 흘러왔기 때문에 당연하리라. 그 세월속에서 얻어진 예지가 비유가 주를 이루면서 삶에 대한 통찰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다가가서 지혜를 얻고 싶은, 그리고 표현의 묘미도 느껴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글의 전개


알무스타파(선택받은 자)가 오팔리즈 성에 들어와 12년을 살면서 그 성의 사람들과 삶을 공유하다가 새로운 세계로 떠나면서 남긴 이야기 형태로 그려진다. 지은이 칼릴 지브란이 뉴욕에서 12년이나 살았고, 그의 고향이 레바논인 것은 글의 형식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뉴욕을 떠나면서 깨달은 내용을 비유적으로 알무스타파란 존재를 제시하여 풀어나간 내용으로 보면 될 듯하다.


내용은 삶과 죽음 인생의 전반에 관하여 이루어진다. 형식은 마을 사람들이 떠나는 선지자에게 자신들의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내용이 모두 비유적이고 삶에 대해 깊은 통찰의 내용을 담아 깨달음으로 읽어나가야 공유가 된다. 절대 진리를 생각하면서 그의 생각을 받아드리려 할 때, 그의 말들은 살아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이라 여겨진다.


책은 들어가는 말과 질문에 대한 답 26개 그리고 나가는 말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짜임이 너무 명확하게 되어 있어 책의 질서를 찾기는 쉽다. 그러나 그 내용에 들어가서 깊은 정신세계를 그려내며 비유적으로 깨달음을 제시해 나가기에 쉽게 가까이 다가가지지는 않는다. 아래 책의 중심 내용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들을 몇 개 제시한다. 그 제목에 핵심적인 내용이 비유로 처리되어 있는 부분을 옮겼다. 


의미 깊게 읽은 내용


<사랑> 

사랑이 여러분을 손짓해 부르거든 그를 따르십시오. 비록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 지라도

사랑은 여러분에게 금관을 씌우기도 하지만, 여러분을 십자가에 못 박기도 합니다.

사랑은 여러분을 자라게도 하지만, 여러분을 가지를 쳐내기도 합니다.

사랑의 이중적 속성을 이야기하면서 사랑을 할 것을 권하고 있는 내용이다.

<결혼>

두 분이 함께 하되 그 안에 공간이 있게 하십시오.

두 분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이 춤추게 하십시오

서로 사랑하되 속박이 되도록 하지는 마십시오.

사랑이 두 분 영혼의 해변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십시오

결혼을 더불어 나누는 서로 구속하지 않는 관계로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쉽지 않다. 결혼이란 것이 서로에게 조금씩 책임을 동반한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자녀>

여러분의 자녀는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저 위대한 생명이 사랑하는 그의 아들입니다.

그들이 비록 여러분을 통해서 왔다지만 여러분으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비록 여러분과 함께 있지만 여러분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자녀를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로 인정을 해주라는 뜻이다. 자기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일 것이다. 오늘날 자식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려야할 말이다.

<주는 것>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 중에 모두 다 주는 이도 있습니다.

이들은 삶과 삶의 풍요로움을 믿는 사람들로서 이들의 뒤주는 빌 일이 없습니다.

즐겨 주는 이들도 있는데, 그 즐거움이 그들의 보상입니다.

참된 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남는 것을 주는 것은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쓰지 않고 베푸는 것을 준다라고 말하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

너를 내 손에 넘겨준 그 자연의 법칙이 나 역시 더욱 힘센 손에 넘겨줄 것이기 때문에

너와 나의 피는 하늘 하무를 먹이는 소액에 지나지 않지

사과를 깨물 때면 사과에게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십시오.

네 씨 내 몸에서 자라고, 내일 싹틀 네 싹 내 심장에서 꽃 피고, 네 향기 내 숨결이 되리니,

철따라 우리 함께 즐거워하리.

먹고 마시는 것을 명쾌하게 자연적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주고 받는 것이라, 결국은 우리도 자연으로 돌아가 수액의 일부분이 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도록 하고 있다.

<일>

여러분이 일을 하는 것은 대지 그리고 대지의 영혼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계절의 바뀜을 모르고, 무한을 향해 다양하고 자랑스럽게 순응하며 행진하는 생명의 행렬에서 낙오하는 것입니다.

일은 자연의 질서에 동참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일을 하지 않음은 자연의 질서에 낙오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으며, 일의 속성을 밝히고 있다. 

<죄와 벌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자신의 죽음에 완전히 무책임하다고 할 수는 없고,

도둑맞은 사람도 자신이 도둑맞은 일에 완전히 허물이 없다 할 수 없고,

의로운 사람도 악한 사람의 행위에 완전히 죄가 없다할 수 없고,

깨끗한 손을 가진 사람도 흉악한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완전히 결백하다 할 수가 없습니다.

죄와 벌의 상대적임을 말하고 있으며,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짐을 말한다.

<자유>

여러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낮에도 근심이 없고 밤에도 아쉬움이나 슬픔이 없을 때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 삶을 옭아매도 훌훌 벗고 얽매이지 않은 채 이를 딛고 올라설 때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속박에서-삶과 죽음의 내용도-벗어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성과 감정>

여러분의 이성과 감정은 바다를 가는 여러분 영혼의 키요 돛입니다.

돛이나 키 중 어느 하나만 없어져도 여러분은 파도에 나부끼며 떠다니거나, 바다 한가운데서 꼼짝 못하고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성과 감성은 상부상조하는 관계지 별개의 사항이 아니라 말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기울어질 때 올바른 삶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가르침에 대하여>

그 누구도 여러분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앎이 동트려는 새벽녘 이미 반쯤 잠든 그 무엇을 밝혀 주는 것 말고는.

성전 그늘에서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걸어가는 스승은 그의 지혜를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과 사랑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가 정말로 지혜롭다면 여러분에게 자기가 지은 지혜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명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분을 여러분 자신 속에 있는 마음의 문턱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가르침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여러분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아름다움 자체를 말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채워지지 않은 필요에 대해서만 말한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필요가 아니라 황홀입니다.

아름다움은 느끼는 것이지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참된 아름다움은 황홀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글의 정리


이 외에도 기쁨과 슬픔, 집, 옷, 사고파는 것, 법, 아픔, 우정, 말하기, 시가, 선과 악, 기도, 쾌락, 종교, 죽음 등에 대한 내용이 거침없는 생각으로 비유로 처리되어 있다. 생명이 있는 이야기가 꿈틀거리며 우리에게로 달려오는 듯하다. 잠언의 성격을 지닌 글들이 한 사고에서 이루어져 나왔다는 것은 경이롭다.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내용이 참된 지혜로 다가온다. 지혜자는 이 말들을 다 전하고 다음에 만날 것을 이야기하며 배를 타고 떠난다. 그는 영원의 지혜를 향해 그의 항해를 계속할 것이다. 우리도 그를 따라갈 것인가, 이 공간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은 목이 말라 타는 입도 아니고 무언가를 잡으러 내민 빈손도 아니다. 우리에게 영원으로 이끌어 가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만드는, 영원의 힘에 대해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말이다.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말이다.


끝내면서


여러분 속에 계신 그분은 사과꽃으로 덮인 거대한 참나무, 여러분은 그의 힘 때문에 대지에 묶여 있고, 그의 향기 때문에 대기로 올라가고, 그의 튼튼함 때문에 죽음을 모르게 됩니다. 그분을 마음에 두고 살 때 우리는 더욱 넉넉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것들에 대해 경이를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경이로운 생각이다. 거대한 질서를 생각해 볼 수 있고 그 질서의 부분에 놓인 우리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존과 자기연민에 머물지 말고 늘 깨달으면서 위대한 삶을 사는 분들을 마음에 그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분들이 읽고, 삶에 대해 마음에 담아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해 본다.

 

j****3 2017.11.29.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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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가 들려주는 '진리'의 의미
"예언자가 들려주는 '진리'의 의미" 내용보기
는 '선택받은 자'라는 뜻의 알무스타파라는 예언자가 12년간 머무르던 오팔리즈 성을 떠나면서 그 곳 사람들에게 전해준 진리를 이야기 형식으로 전하는 칼린 지브란의 잠언록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달 전쯤 읽은 책에서 인용되었던 부분이 인상 깊어 펼쳐들게 되었으나 그 때 인상 깊었던 그 부분보다 더 와닿는 구절은 없는 듯 하여 아쉽다. 그 부분은 바로 '일에 대하여'에 나오
"예언자가 들려주는 '진리'의 의미" 내용보기
<예언자>는 '선택받은 자'라는 뜻의 알무스타파라는 예언자가 12년간 머무르던 오팔리즈 성을 떠나면서 그 곳 사람들에게 전해준 진리를 이야기 형식으로 전하는 칼린 지브란의 잠언록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달 전쯤 읽은 책에서 인용되었던 부분이 인상 깊어 펼쳐들게 되었으나 그 때 인상 깊었던 그 부분보다 더 와닿는 구절은 없는 듯 하여 아쉽다. 그 부분은 바로 '일에 대하여'에 나오는 구절이었는데, 인용하자면 이렇다. " 그대가 만일 사랑으로 일할 수 없고 싫은 마음으로 일할 수 밖에 없거든, 차라리 일을 버리고 사원 문 앞에 앉아 기쁨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구걸이라도 하라. 만일 그대가 무관심 속에서 빵을 굽는다면, 그대는 인간의 배고픔을 반밖에 채우지 못하는 맛없는 빵을 구울 것이기에, 또한 그대가 증오에 차서 포도열매를 밟는다면, 그대의 증오가 그 포도주 속에서 독을 품을 것이기에, 또한 그대가 천사처럼 노래하면서도 그대 자신이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사람들을 귀멀게 해 낮은 소리와 밤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들 것이기에. " 지브란은 알무스타파의 입을 빌어 인간의 삶과 관계된 다양한 진리들을 이야기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시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그래서 글들은 마치 성경과 같은 종교서적이 그런 것처럼(성경은 안읽었지만, 여튼,비슷한 것 같다_-) 단순하게 읽힐 법 하면서도 형이상학적 깊이가 있다. 그런 까닭에 단숨에 읽어나가기 보단 시일을 두고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두고 두고 읽고 또 읽어야 의미를 곱씹을수록 새로운 깨달음에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실로 알무스타파는 지브란 자신의 정체성 - '이슬람 수피 신앙적 토양'과 '마론파 그리스도교'의 융화 - 을 바탕으로 그가 지향하는 구도자상으로 여겨진다. 그가 말하는 것들은 말의 이면에 형이상학적이나 보편적인 진리를 담지하고 있음직해보인다. 물론 현세에 찌들어 있는 나의 의식에 그것들은 반에 반푼어치도 감지되지 않은 것 같다만, 뭔가 형용하기 힘든 '울림'은 느껴졌다. 이 '울림'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진리'를 알게 되었다는데서 오는게 아닌 것 같다. 진리에도 어러 종류가 있으리라 생각된다만 그 중에서도 알무스타파가 들려주는 '진리'는 앎 그 자체는 아니다. 그의 '진리'는 이야기를 통해 듣는 이로 하여금 자아와 세계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얻게끔하는 매개일 뿐, 그 자체로 완성적 형태는 절대 아니다. 알무스타파가 말하는 '진리'란 '성찰과 깨달음' 이후의 '실천'을 통해서야 비로소 완성적 형태를 띄게 될 것이다. 알무스타파의 예언은 그 자체로서는 진리의 담지형태일 뿐이리라. 진리란 '영원' 또는 '무한'하다는 말들을 곧잘 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해본다. 진리란 인간에게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적어도 인간에게 있어 진리란 완성태로 존재할 수 없다. 진리란 그 불완전성, 진리를 향한 인간의 영원한 열망 속에서야 인간적인 빛을 발하는 것 아닐까 싶다. 예언자 역시 그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예언자, 훗날에도 가까이 두고 어느 잠 안오는 밤이면 가끔씩 펼쳐 들어 잠언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여유를 갖고 싶은 책이다. 그렇게 종 종 나와 세상에 대해 지브란처럼 그윽한 깊이로 관조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자녀에 대하여 여러분은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대로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육체를 위해 집을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의 영혼을 위해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여러분이 꿈길에서도 가볼 수 없는 내일의 집애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처럼 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그들 이 여러분처럼 되게 하려고 애쓰지는 마십시오. 삶은 언제나 거꾸로 가거나 어제에 머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에 대하여 사실 생명에 무엇을 주는 것을 생명 자체일 뿐, 여러분은 스스로를 주는 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하나의 목격자일 뿐입니다. 죄와 벌에 대하여 단 하나의 잎새도 나무 전체의 묵인 없이 혼자 노랗게 될 수 없듯이.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도 여러분 모두의 숨은 뜻 없이는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신성한 자아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행렬처럼 여러분은 모두 길이요 길벗입니다. 여러분 중 하나가 넘어졌다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있음을 경고하기 위해 넘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앞서 간 사람을 위해 넘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앞서 간 사람들이 비록빠르고 확신있게 걸어갔을지라도 그 걸림돌을 치워 주지 않고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여러분의 마음을 무겁게 할지라도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자신의 죽음에 완전히 무책임하다 할 수는 없고, 도둑 맞은 사람도 자신이 도둑 맞은 일에 완전히 허물이 없다 할 수 없고, 의로운 사람도 악한 사람의 행위에 완전히 죄가 없다 할 수 없고, 깨끗한 손을 가진 사람도 흉악한 사람의 행동에 대하여 완전히 결백하다 할 수 없습니다. 자아를 아는 것에 대하여 자아는 끝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진리를 다 터득했다." 하지 말고, "나는 한 가지 진리를 알게 되었다."하십시오. "나는 영혼이 가야 할 유일한 길을 발견했다." 하지 말고,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는 한 영혼을 만났다." 하십시오. 영혼은 모든 길로 다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친절이 거울에서 스스로를 응시할 때 그것은 돌로 변하고, 선행이 부드러운 이름으로 스스로를 찬양할 때 그것은 저주의 아비가 됩니다.
b********t 2005.09.1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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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힘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통찰의 힘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내용보기
대학시절부터 좋아해온 칼릴 지브란의 글. 연애편지를 쓸때도 즐겨 따오던 아름답고 심오한 시들. 국내에서는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류시화의 시들 역시 이런 깊은 영성의 색깔이 칠해져 있다.   이 책은 이제껏 읽어왔던 칼릴 지브란의 시와는 상당히 다르다. 우화의 느낌이 강하면서도 곳곳에 잠언의 향기가 스며나온다.   때때로 삶이 혼란스럽고,탁해져 있을때에는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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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부터 좋아해온 칼릴 지브란의 글.

연애편지를 쓸때도 즐겨 따오던 아름답고 심오한 시들.

국내에서는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류시화의 시들 역시 이런 깊은 영성의 색깔이 칠해져 있다.

 

이 책은 이제껏 읽어왔던 칼릴 지브란의 시와는 상당히 다르다.

우화의 느낌이 강하면서도 곳곳에 잠언의 향기가 스며나온다.

 

때때로 삶이 혼란스럽고,탁해져 있을때에는 이런 '성경'과 같은 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를 통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또 소설을 통해서도 삶의 간접 경험을 해보기도 하지만, 여러 참고서 역시 도움이 되지만 뭐니뭐니해도 교과서를 봐야하듯 이런 교과서적인 (어찌보면 너무 옳은 말이래서 따분하기 그지 없는) 책이 필요할 때가 있다.

 

'통찰'의 힘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무수한 깨달음과 경험, 그리고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 짧은 책으로도 통찰의 힘을 더할 수 있을만큼 이 책은 지극히 도덕적이고 교과서 적이지만, 그만큼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기억나는 말은..

'감정과 이성은 배에 필요한 돛과 키와 같다..'

돛과 키가 알맞게 작용해야 배가 움직이듯 사람도 감정과 이성의 적절히 조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림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단순하면서도 강한 색채의 그림이 어찌보면 잔잔하며 부드러운 글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머리가 복잡하여 두꺼운 책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이 책을 일부러 집어 들었다. 짧지만 굵게 뭔가를 얻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에서..

 

j*****l 2008.05.2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디자인이 너무 예쁘다
"디자인이 너무 예쁘다" 내용보기
책 속에 그려진 삽화들의 따뜻한 색채가 책을 볼 때 즐거움을 준다. 마치 동화책을 보는 것처럼 푸근한 마음이 든다. 처음 『예언자』를 사려고 했을 때 여러 출판사의 책들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를지 고민이 되었는데 결국 고른 책이 현암사에서 나온 책이였다. 왜냐하면 판매량이 여느 책보다 많길래 골라보았다. 얼마후 배송된 책을 살펴보니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칼리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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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그려진 삽화들의 따뜻한 색채가 책을 볼 때 즐거움을 준다. 마치 동화책을 보는 것처럼 푸근한 마음이 든다. 처음 『예언자』를 사려고 했을 때 여러 출판사의 책들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를지 고민이 되었는데 결국 고른 책이 현암사에서 나온 책이였다. 왜냐하면 판매량이 여느 책보다 많길래 골라보았다. 얼마후 배송된 책을 살펴보니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칼리 지브란의 아포리즘을 예쁜 삽화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었고 덧붙이자면 종이의 질이나, 인쇄상태가 깨끗하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결론은 책 속에 삽화가 있다는 이점을 보고 고른 것이 다행스럽다.

[인상깊은구절]
사랑이 여러분을 손짓해 부르거든 그를 따르십시오. 록 그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YES마니아 : 플래티넘 a**9 2006.07.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