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구입할 당시 가장 눈길을 끈 게 살라딘이란 말이었다. 이슬람의 영웅. 제삼차 십자군 전쟁에서 십자군을 패퇴시킨 이 인물에 대해 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책을 받았을 때만 해도 기뻤었다. 하나 서평과 책 제목만 보고 산 잘못인가? 책의 주 내용은 살라딘이 아닌 로빗훗에 나오는 사자왕 리차드의 일대기였다. 초반부는 살라딘이 어떻게 이슬람 세계를 통합하고 십자군에 맞서는지 나오지만 그 후로는 대부분이 사자왕 리차드와 그의 활약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알고자 하는 살라딘이나 이슬람 신의 전사들은 그야말로 양념에 불과했다. 제목을 오독한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 책 제목은 이슬람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이니. 하지만 나처럼 단순한 사람은 신의 전사들이 자하드에 나서는 이슬람 전사들이지 기독교 십자군이라 생각을 못하니 책 제목이 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이슬람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비추천의 책이다. |
|
살라딘의 탄생에 관해 이야기하다 리처드의 유년시절을 이야기하고 그 시점과 설명이 너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음. 십자군전쟁에 대해 쓴 책중 인물묘사는 가장 섬세했으나 책집필과정에서의 크나큰 오류는 도저히 예쁘게 넘겨봐줄수 없는정도.이책을 절반으로 나누어 사자왕리처드의 이야기는 제외했다면 최고의 책이 될만하다.물론 아랍의 이야기를 영어권자가 쓰고 거기에 또 전혀 옮긴이가 이분야에대해 기본지식이 없다보니 엉터리 해석이 만만치 않은것을 책자체의 흠이라고는 할수없겠다.
걸러서 본다면 살라딘과 무슬림의 행태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알수있는 책! [인상깊은구절] 전지전능한 알라시여! 그분의 영혼을 받아들여 주시고 그분이 원했던 마지막 정벌지인 천상의 문을 열어 주소서. |
| 꽤 두꺼웠지만.."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전쟁"을 봤기 때문인지 낯설지가 않아서 쉽게 읽혔다. 쉽게 읽을 수 있게 책을 쓴 이유도 있겠지만. 볼핀치의 원탁의 기사를 보면 권말에 사자왕 리차드와 살라딘간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연히 굉장히 리처드를 미화했다. 그런데로 낭만이 있는 이야기로 구성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니까. 이와달리 본서에서는 보다 사료에 근거한 양대 진영의 영웅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양쪽진영 모두 이길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지만 서로 그런 호기를 놓쳤다는 점과 리처드가 유럽으로 돌아가면서 리처드와 살라딘 모두가 그들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하는 일들. 운명의 두사람이란 느낌을 가지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두 영웅의 이야기를 멋지게 윤색했던 것이리라. 십자군전쟁에 대한 의문점 중의 하나인 집단적인 광기는 어느정도 인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는 것을 전체적인 십자군전쟁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신앙적으로 행동했던 것은 무슬림 들이었고. 지도층의 선동에 의한 집단적 광기의 역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공으로 세뇌되었던 한국의 7,80년대와 여전히 그 체제를 활용한 정치인과 북한의 김정일 정권 등. 오랫동안 십자군 전쟁의 종교적 열정이라는 위장된 모습으로 인하여 진정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없었던 것같다. 하지만..그런 교훈을 얻었더라도 현재까지 반복되는 모습을 보면..그래봤자 별 차이가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절망감도 느껴진다. Bowling For Columbine 에서처럼 공포로 조장된 집단적 광기에 놀아나는 모습에서 빨리 인류가 벗어났으면 좋겠다. |
|
부제는 <사자왕 리처드와 살라딘의 십자군 전쟁>, 원제는 <신의 전사들 - 3차 십자군 속 사자왕 리처드와 살라딘> 입니다. 제목만 봐서는 아랍의 관점을 대폭적으로 수용한 분위기가 나고, 실제로 거의 공평하게 두 관점을 배분함으로서 살라딘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실은 책이 되었습니다. 등장하는 군주들 중에서, 현명하고, 관대하며 믿음이 깊지만 그로 인해 극단적인 배타주의를 수용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가장 이상에 가까운 군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서문에서 저자는 이 살라딘의 이미지는 현재의 아랍-이스라엘 관계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상징이라는 점을 지적함으로서 현실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러한 공평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중세라는 역사 세계를 다루는 전체적인 구도에서는 인물 중심적인 소설 쓰기의 느낌이 납니다. 가장 전통적인 역사 서술 방식이자 일반 대중의 피상적인 중세관을 만족시키는 데는 여전히 최적의 선택이지요. 다만 레스턴의 책에서는 중세의 구도 즉 십자군 전쟁 안에서 적과 아군을 찾아내는 대신, 각자 장단점을 가진 두 영웅이 맞붙는 3차 십자군 전쟁과 배후의 유럽 궁정을 대비시킵니다. 신중한 것 같던 저자는 유럽의 국제 관계에 대해서는 사악함 같은 단어를 주저없이 사용하더군요. 저자는 중세의 많은 사료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가 믿는 사료에 대해서는 가끔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글에서 리처드 1세는 동성애자라는 타이틀을 다시 한번 땄긴 해도(이건 이미 지난 50년간 인권운동과 관련되어 인기 있는 역사적 주제였다는군요) 무모함이나 지나친 잔혹성 같은 용맹한 전사들에게 흔한 단점 이외에 독자를 실망시킬 만한 점을 별로 드러내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판의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 달리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입니다.
반면 존엄왕 필리프 2세는 도대체 왜 이 사람이 "존엄왕" 인지 이 책을 읽어서만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재위 기간 동안 프랑스 영토를 네 배로 넓히고 프랑스의 지방 행정 체계 구도를 확립했다는 학계 일반의 평가(상당히 인정받고 있는 번즈의 책에서 요약하였습니다)가 이 책에 나올 필요는 물론 없습니다. 그러나 외교적 수완에 능한 그를 "옛 애인이기도 한" 리처드 1세에 대한 질투심, 배신감 그리고 왕으로서의 자존심에 받은 상처라는 사적 감정 때문에 그를 모략한 사람 정도로 서술해 버리고 만다면 좀 지나치게 몰아붙인 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이징거가 말했던 것처럼 이 시대는 아직 군주의 사적 감정과 공적 문제가 쉽게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이기도 합니다만, 필리프라는 인물과 그의 업적을 감안할 때 적어도 최종 이유로 사적 감정을 지적하진 않는 게 나았을 것 같습니다.
덧붙여, 이 책의 에필로그는 순전히 리처드의 죽음을 다루고 있으며 후기에서는 저자 자신이 얼마나 리처드와 살라딘에게 매혹되었는지 밝혔는데, 그로 미루어 보아 "살라딘과 리처드의 대결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는 한국어판 표지의 문구는 어디까지나 인트로였던 것인 모양입니다. 마지막 장에서 서문의 내용과 대구를 이룰 수 있는 내용을, 적어도 이후의 십자군 원정에 대해서만이라도 언급했다면 아마 이 글의 방향은 상당히 달라졌을 겁니다.
영국 아마존의 한 독자는 이 글을 픽션이라고 규정하고 별을 다섯 개 주었는데 어쩌면 이 책을 즐기는 가장 마음 편한 방법은 이처럼 요즘 한국 사극 보듯 보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도 읽을 동안에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무척 재미있었으니까요. |
|
#연말리뷰 제임스 레스턴의《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은 제3차 십자군 전쟁의 두 주역, 이슬람의 살라딘과 영국의 사자심왕 리처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장엄한 역사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책은 두 영웅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들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매우 역동적으로 묘사하여, 독자가 12세기 중동의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묘미는 동시대에 존재했던 두 천재적 군주를 입체적으로 대조하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은 1187년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탈환한 사건부터, 이를 되찾으러 온 리처드와의 운명적인 대결을 다룹니다. 아크레 공방전: 리처드가 이끄는 십자군이 아크레를 점령한 후 수천 명의 이슬람 포로를 학살한 사건은 전쟁의 잔혹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격렬한 전투 중에도 살라딘은 리처드가 말에서 떨어지자 새 말을 보내주거나, 그가 병이 나자 눈(ice)과 과일을 보내 병문안을 하는 등 기사도적인 일화를 남깁니다. 이는 두 사람이 서로를 가장 증오하면서도 가장 존경하는 숙적으로 인정했음을 보여줍니다.맹목적인 신념의 위험성 신을 향한 열정 vs 인간의 탐욕 양측 모두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수행했지만, 그 이면에는 영토 확장, 명예, 경제적 이권이라는 세속적인 욕망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관용의 위대함 리처드의 무력보다 살라딘의 관용이 결과적으로 더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현대 사회에서도 힘의 논리보다 품격과 지혜가 승리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협정과 공존전쟁은 결국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가 아닌 라믈라 협정으로 마무리됩니다. 리처드는 예루살렘 탈환에 실패하고 돌아가지만, 살라딘은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이 안전하게 성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이는 종교적 증오를 넘어선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누가 옳은가"를 묻지 않습니다. 대신 그 치열했던 현장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 동시에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합니다.
|
|
우선 눈길이 가는 것은 번역자 이현주씨의 프로필이다. '이슬람'에 적대적일 수 밖에 없는 <감리교 신학대학교="">의 교수이기 때문이다. 저자 제임스 레스턴이 '아랍출신'이 아니라는 것도 당연히 놓칠 수 없는 사실 중의 하나다. 객관적으로 역사를 기술하려 노력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입장에서 자유로운 글쓴이는 없는 법이다. 물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여 이 책은 그런 '가치관' 문제에선 자유롭다. 제임스 레스턴은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을 둘러싼 각 종교들의 '영웅'전을 달필로 그려냈다. 책 앞부분에 첨부되어있는 그 당시 주요 격전지 사진까지 보면 마치 그 현장에 달려간 것만 같다. 어쨌든 지은이와 번역자가 "사심" 없이, 다시 말해 종교적 편향성이 없이 십자군 침략, 그 중에서로 하이라이트인 리처드와 살라딘 사이의 대결을 기탄없이 실감나게 기술했다는 점만 가지고도 이 책은 별 다섯개를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한국에서는 사실 '살라딘'이란 군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민족정신"을 떠올리면 늘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는 것처럼, 중동권 사람들도 석유를 노리는 서구인들의 침략 하에선 항상 살라딘을 그린다는 것만은 알아두셨으면 한다. 십자군 침략 당시 유럽인들은 "종교 박해"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꾸며내어 예루살렘을 침공, 잔인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대학살과 강탈로서 사방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반면 수십년이 지나 아랍권을 대단결시켜 관용과 관대함으로써 예루살렘을 '수복'한 살라딘은 '양보'에 가까운 자비로서 많은 포로들을 헐값에 풀어주다시피했다. 그 숱한 세월동안 많은 아랍 남녀노소가 죽어가고 팔려가고 겁탈당했던 역사에도 불구하고‥. 살라딘은 십자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을 못 보고 '가난하게' 숨을 거두었지만, 기실 그당시 아랍권의 완벽한 '해방', 그 단초는 그가 마련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살라딘의 라이벌로선 "로빈 훗"에도 등장하는 리처드왕이 거명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지적했다시피, 리처드는 전쟁에선 재능이 돋보였으나 다방면에서 칭송할 면이 없었던 인물로서 단지 '살라딘'에 대한 호적수로서 서구 쪽에서 미화한 인물에 불과할 뿐이다. 단지 전투에서 살라딘과 대등하게 설 수 있을 뿐이지, 관대한 정책과 적군에 대한 관용, 아울러 모두가 득을 볼 수 있는 윈윈게임 전략에서 심하게 말하면 쥐새끼만도 못한 인물인 것이다. 제임스 레스턴의 책이 돋보이는 것은 이 살라딘과 리처드에 대해서 "세부적인 묘사"를 하는 데에 정열을 아끼지 않앗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아민 말루프 저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에서 다소 부족하게 서술되어있던 이 양웅(兩雄)에 대해 궁금한 점을 상당수 얘기해주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대만족이었다. 논픽션이지만 그러한 현실성이 흥미진진하게 서술되어 온갖 분칠을 해댄 픽션 따위는 가볍게 뭉게버린다 하면 지나친 말일까 ?
물론 이 책이 위험한 점은 몇가지가 있다. 첫째로, 십자군 전쟁에 대해 '양비론적'인 인상을 안겨줄 수 있다.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둘다 마찬가지로 싸웠으니 그게 그거라는 식의 착각을 하기 쉽게 <전쟁중심>으로 서술되어있다. 둘째로, 십자군 전쟁에 대한 국내의 인식도가 낮은 상황에서 한국 독자들이 이 오랜 "침략행위"의 핵심을 <살라딘 vs="" 리처드="">로만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셋째로, 다양한 면에서 세계사에 변화를 불러일으켜온 이 전쟁에 대해서 단지 '전쟁'. '종교'적인 시각에서 관조만 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앞에서 언급한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의 경우는 박진감과 긴장감은 없어도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아랍권의 '약점'이 무엇이고 아랍이 반성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야만적인 프랑크(유럽)인이 보다 문명적이었던 아랍을 지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번뜩이는 통찰로 기술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 책은 '나무'는 보여주되 '숲'은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안겨준다. 여러분들이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을 같이 읽어보길 진심으로 권하는 바이다.
좌우지간 이 책은 서점 베스트셀러란을 장식하는 수많은 잡쓰레기 중에서 드문 명저라고 확신한다. 제임스 레스턴의 서술도 그 문장이 마음을 홀딱 사로잡거니와, 역자 이현주씨도 곳곳의 사소한 실수를 제외하면 무난한 번역으로 인생에 오점을 남기지 않은 듯 싶다. 게다가 출판사 '민음사'는 비싼 책 가격이지만 그에 부족하지 않게 종이 질부터 커버 디자인 처리, 그리고 오탈자 점검부터 사진/그림 첨부까지 고품질을 달성해놓았다. (* 출판사 김영사를 가히 위협한다) 중세 아랍 역사, 특히 십자군 전쟁에 대해선 관심없다고 무시할 분도 있으실 것인데‥. 이라크 전쟁부터 중동권에 대한 현 미국의 패권주의가 가속화되었고 한반도 전쟁위기까지 심화되는 마당에서 '역사'를 돌아보지 않으면 여러분은 어딜 바라보겠다는 것인가 ?<현대판 살라딘="" vs="" 리처드="">는 지속 중기도 하거니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에는 전세계적인 핵심 화두 중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것이다. <아랍인의 눈으로="" 보는="" 십자군="" 전쟁="">과 같이 읽길 다시 한번 권한다.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고싶으시다면‥ [인상깊은구절] 기독교 문화의 시각으로 서구 문화를 공부한 우리는 유럽에서 일어났던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을 서구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으며, 옮긴이 역시 이런 시각을 보유한 채 재3차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삼은 제임스 레서턴의 '신의 전사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을 번역하면서 본인의 이런 편향적 시각은 많이 변하였고 특히 이슬람 문화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이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아랍인의>현대판>아랍인의>살라딘>전쟁중심>아랍인의>감리교> |
| 역사가 항상 발전하고 있는가에 대해 난 아직도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진 않습니다. 오늘도 팔레스타인에서는 미국 주도의 로드맵에 반대해서 무장단체인 하마스와 이스라엘 군은 서로 총격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유혈분쟁을 종식하고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창설한다는 로드맵이 양쪽의 명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할바엔 언제든지 분쟁의 씨앗을 품고 있다 하겠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로드맵이 12세기말 제3차 십자군원정때에 사자왕 리처드와 살라딘이 맺은 협정과 차이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할 것입니다. 12세기말에도 십자군의 라틴왕국은 그때까지 자신들이 방어한 영토와 살라딘이 라틴인들을 쫓아낸 영토를 갈라서 국경을 만들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똑같이 소중히 여기는 성지인 예루살렘은 비록 살라딘이 차지했지만, 기독교 순례자들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예루살렘의 성묘교회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12세기 십자군전쟁 시대의 예루살렘과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을 지켜 보면서 새로운 역사에 대한 믿음이 자꾸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 지금 지구 저편 중동에서는 이슬람과 기독교, 이슬람과 유대교의 분쟁이 끊임 없이 일어나 뉴스를 통해 소개되어지고 있다. 대부분 우리가 접하는 소식들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는 이름 아래 사건의 근저에 숨어 있는 배경들은 무시한 채 피상적인 현상만을 알려주는 게 대부분이다.근대 이후 서구 문명의 세례를 받은 이땅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기독교는 우리편이라는 식의 의식과 시각을 가지게 된 듯하다. 하기는 모르는 나라와 사람보다는 한번이라도 들어보고 경험해 봤던 나라와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건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마치 박찬호선수가 'LA다저스' 소속일 때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 많은 MLB 팀들중 LA다저스만 응원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우리가 낯선 이슬람보다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기독교문명에 더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9.11 사태이후 이러한 우리의 판단력은 더 굳어져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충돌에서도 이슬람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두 문명의 충돌을 가치나 역사적 배경을 떠나서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사실 종교와 정치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모든 에티켓 관련 서적들의 표현인데 두 문명의 충돌을 우리는 객관적이라는 허울 속에서 지나치게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적인 가치관으로 재단하였던 건 아닌가 싶다. 어찌보면 가장 배타적인 두종교의 충돌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를 좀더 객관적으로 보는데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교과서 속에서의 십자군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가치관을 떠나 각 진영-의적 로빈훗의 주군인 십자군의 리처드와 지하드의 영웅인 살라딘을 통해서-을 객관적으로 하나의 사실로 접하다보면 우리의 지금까지 가져왔던 편견을 걷어낼 수 있으리라 싶다. |
|
좋은 말은 여러 소감에서 다 나왔고, 개인적인 감상글을 쓰자면... 원제 "Warriors of God"에서 보다시피, 한글제목에서 '무리하게' 책 앞에 붙인 살라딘은 엄밀하게 말해 조연급이고... 이 책의 주인공은 리처드 3세입니다. 그 점은, 이야기의 중심은 유럽쪽의 정치사에 무게가 실려있고, 이슬람 세계의 이야기는 상당히 미약하게 나온다는 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개인적으로 살라딘 이야기를 기대하며 구입한 입장에서는 초반의 예루살렘 무혈점령 이후 지루한 느낌이 없지않아 들었습니다. 이슬람 이야기가 요새 이슈라는 점은 알겠습니다마는... 한글제목은 무게중심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중세유럽정치사 또한 그리 잘 알지는 못하는 바이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소재인 3차 십자군 전쟁의 전개와 더불어 끝까지 읽어가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주인공이라는 하였지만, 좋은 점을 써주기만 한 것이 아닌 것이... 주인공 리처드 3세의 많은 단점들이 노골적으로 부각된 데에 반해... 상대인 살라딘은 넘치는 관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과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마는, 피바다였던 기독교도들의 1차 십자군원정때 예루살렘 입성과정과, 피흘리는 일 없이 이루어졌던 살라딘의 예루살렘 입성과정이, 서구인들에게조차도 너무 큰 인상을 남겼었나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취향입니다마는, 좀 더 무게있는 역사서술을 써 주었으면 하는데, 글쓴이 직업이 저널리스트라서 그런지, 역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좀 애매한 서술이라서... 아쉽습니다. 더불어, 저자 문제인지 역자 문제인지, 전투서술이 여엉~ 박진감이 없습니다... 마는, 엄정한 역사서술을 기대했던 본인의 기대에 어긋난 단점일 뿐이라고 생각되고, 편하게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며, (비교적) 저렴한 편이기도 하다고 생각되니, (특히) 십자군 전쟁에 대해 긍정적인 쪽 생각을 가지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인상깊은구절] 1187년에 살라딘의 병사들이 예루살렘을 다스리자 살라딘의 통치는 곧 높이 평가를 받았고 술탄은 훌륭한 지도자로 칭송받았다. 특히 1099년에 1차 십자군들이 도시를 함락한 후 자행했던 대파괴와 대조되었다. |
|
공정한 무슬림이자 통 큰 관용을 보인 지배자, 유능하고 세심한 자질, 성품의 통치자로서 살라딘, 살라흐 앗 딘이 부각된 건 이미
학계에서 오래되었습니다만, 대중들에게는 영화 '킹덤 오브 헤븐' 같은 오락물의 성공으로 최근에서야 널리 알려졌죠.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건 그가 쿠르드 족 족장의 혈통이라는 점인데, 이 때문에 마치 이백 년 전 그리스가 투르크 제국에 반기를 들고 독립
운동을 벌일 때 바이런 등 유럽 낭만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은 사례처럼, 오늘날 쿠르드족의 독립 국가 창설 움직임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로맨틱한 성원을 보내고 있기는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