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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치원 교사로 ADHD에 관심이 많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 ADHD가 의심되는 유아도 몇 명이 있었고 최근 어린이 ADHD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ADHD 과연 이 아이들은 왜 그런 것이며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며 어떻게 이해해주어야 할지 도움을 얻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ADHD 아이들에게 약물치료를 하는 것을 엄중히 반대하고 있는 책이다. ADHD 아이들 중 리탈린이라는 약을 복용 중인 아이들을 ’리탈린파’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러한 처방은 절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ADHD라는 질병을 낙인찍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단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라고 볼 뿐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법은 따로 있으나 학교와 교사가 단순히 지도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에게 약물을 집어넣고 온순하게 만들려고 하나 아이들은 그 모든 분노와 불안을 속으로 표출할 뿐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리탈린이라는 약물이 아이에게 치명적인 여러 부작용을 초래한다고도 말한다. 최근 TV에서 ADHD 어린이들만 생활하는 전문학교가 소개된 적이 있다. 이 책 역시 ADHD 어린이들이 생활하는 전문학교였는데 TV에 방영된 내용과 너무 비슷한 구조와 학습지도가 이루어지고 있어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이 학교에서 생활하게 되면 일부러 일반 학교의 규율에 억압받을 일도 없고 아이에게 많은 놀이의 경험을 줌으로 더 많이 움직이는 산만한 아이에게 에너지를 분출할 기회를 주고 긍정적인 자기관을 갖게 하고 더 나아가 선택학습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집중도를 높여가는 수업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나도 ADHD 아이를 지도해 본 일이 있는데 솔직히 힘든 게 사실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며 그 아이로 인해 모든 수업 분위기가 엉망이 됨은 물론 계속 눈여겨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그저 ’정말 못 말리는 말썽쟁이’ 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교사들의 시각이 아이들을 학교에서 내쫓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가 아이에게 맞추어 주어야 한다고. 이 대목에서 우리 교사들의 ADHD에 대한 인식이 막연히 부정적이고 그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좀 더 눈과 마음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정말 친환경적이고 자연스러운 치료를 권하는 책이다. 말 그대로 약물을 거부하고 놀이만으로 아이들을 치료하는 학교란다. 문제 행동이 다분했던 아이들이 이 학교에 적응하고 에너지를 분출하고 성취감을 얻는 모습들은 참으로 훌륭했다. 모두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아이는 각별히 지적받던 일상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반감되는 것이다. 정말 아이를 위한 학교 기관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ADHD 어린이뿐 아니라 모든 학교가 이렇게 아이들이 흥미롭고 즐겁게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 ADHD 자녀를 둔 부모라면 리탈린이라는 약물 투여로 치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약물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전문 학교 기관이 아직은 없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약물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고도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학교 사례뿐 아니라 ADHD 어린이들을 약물없이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 중이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단순히 아이의 기운을 빼버리는 약물 투여를 치료의 한 방법으로 고집할 게 아니라 전문학교 기관이라던지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치료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 책은 에세이 형식으로 ADHD 아이들의 일상을 담고 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렇게 약물없이 치료를 하는 아이들이 얼마의 기간이 지나 호전되기 시작하는지, 아니면 졸업을 한 어린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등. 좀 더 눈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연구결과라던지 수치들을 증빙자료로 게재해두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학술을 뒤엎고 그에 반하는 이론을 주창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이런 경우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결과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관심이 갈만한 수치들은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 것이 없이 ’약물없이 치료해야 한다’ 라고 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 학교가 앞으로는 이런 연구에 게을리하지 않아 수치화하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학계에서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과연 그러한지를 밝히려는 연구들이 또 이어질 것이다. 그제야 ADHD를 보다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고 치료 방법 또한 연구, 개발되리라 본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정보들과 연구나 새로운 시도에 발 빠르게 움직였으면 좋겠다. 이 학교의 효과가 입증되고 이러한 교육이 ADHD 아이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명확해진다면 ADHD 어린이를 치료하는 데 있어 새로운 지평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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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않아요' 라던가, '우리 아이는 너무 산만하고 정신이 없어서 걱정이예요' 하는 말들을 하는 엄마들이 많이 있다. 이런 말에는 부모말 잘 듣고, 얌전하게 자기 일 하고, 진득하게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그런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묻어 있다. 물론 가만히 있지 않고 산만한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면 선생님에게 더 많이 혼나고, 학습 성취도 떨어지고, 이런 저런 문제를 많이 일으킬거라는 걱정도 담겨 있다. 그러면서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서 학습지 풀고 책 읽는 다른 집 아이들을 부러워한다. 걱정이 앞서는 부모들은 혹시 우리 아이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가 있는게 아닐까 염려하기도 한다. 이제 이 낮설고 어려운 병명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듣는 말이 되어 버렸다.
아이를 이해하기 힘들고,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때 그 원인을 신경화학적인 것에서 찾는 것은 사실 제일 간단한 해결법이다. 내 아이가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고 가만 있지 못하는 것이 뇌에 있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부족한 탓이라서 '라탈린'이라는 약을 복용하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가. 실제로 이 약을 투여하면 날뛰던 아이들도 가만히 책상에 앉아 있게 되고, 진정 상태가 된다. 정신없이 산만한 아이때문에 고민하던 부모라면 대번에 환영할만한 일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교육및 의료 당국에서 책상에 앉아 진득하게 배우는 것을 힘들어 하거나 자신의 감정조절을 잘 못하는 아이들에게 ADHD 진단을 내리고 의무적으로 '라탈린'을 복용하게 하고 있다. 부모가 라탈린 투약을 거부하면 아동보호국에 아동학대로 신고가 된다고 한다. 라탈린으로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라탈린의 효과를 보충할 혈압약 '클로니딘'을 추가로 복용하게 한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다. 심지어 라탈린이라는 약은 강남같은 곳에서 '공부 잘 하게 하는 약'으로 일부 학무모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일들은 과연 무엇일까.
근 며칠동안 '민들레 출판사'에서 나온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책을 붙들고 살았다. 책 장마다 수없이 밑줄을 그어가며 책에 빠져 공감하고 읽어 내렸던, 오랜만에 만난 너무 소중한 책이었다. 이 책은 미국에서 '프리 스쿨'이라는 독특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가 당국에서 ADHD 판정을 내린 아이들을 약물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교육하고 키워 온 경험들을 담고 있다. 그녀가 프리스쿨에서 만난 아이들은 미국 사회가 약물없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낙인 찍은 아이들이다. 산만하고, 충동적이고,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고, 방해하고, 공격하고, 파괴하는 이런 아이들은 교사 하나가 20여명 이상의 아이들을 통제해야 하는 제도권 교육 현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골치거리가 된다. 이런 아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교사는 교육 당국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교육 당국은 아이에게 ADHD 판정을 내려 약물을 복용할것을 강제한다. 날뛰던 아이가 약을 먹으면서 조용해지면 교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럭저럭 교사의 지시를 따라오고 통제가 되는 나머지 아이들과 학교 수업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과연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 애초부터 정말로 문제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였을까? 약물로 그 아이의 문제 행동만 없애면 다 끝난 것일까. 정말 그 약물이 그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일까.
어떤 일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손쉽고 빠른 해결책을 원하게 된다. 크리스는 아이들에게 무언가 '결핍'되었을때 그 원인이 단 한가지라고 보는 기계적 사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우리가 걱정해야할 '장애'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기계적 사고에 의하면 아이들의 결핍은 뇌의 화학적 불균형 때문이고 이런 불균형은 유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때문에 미국에서만 한 해에 수백만의 아이들이 의학적 장애가 있다고 분류되어 독한 신경화학계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크리스는 아이들에게 투여되는 약물이 장기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동시에 약물요법으로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안 아이의 삶에서 찾아야 하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더 큰 위험에 빠지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결핍' 된 것은 특정한 신경전달 물질이 아닌, '진정한 관심'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에 힘들어하거나 감정조절을 못하는 수백만명의 아이들은 유전적 장애가 있어 약물요법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처지에서 자신만의 문제를 겪는 아이들이다. 그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서 그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믿어주는 사람들과 자신에 대한 이해를 키우고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다. 크리스가 운영하고 있는 '프리스쿨'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꼬리표를 달고 약물을 처방하는 것을 거부한다. 프리스쿨은 아이가 집중하고 싶어할때에 집중하고 싶어하는 대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아이가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선택하게 하면서 배울 의욕이 없는 아이에게는 어떠한 배움도 강요하지 않는 방법으로 아이로 하여금 내면의 에너지를 조금씩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
30년 동안 프리스쿨을 운영한 크리스의 경험속에서 'ADHD'는 유전적 결함이 아니라 배움에 자신을 투자할 준비도 의지도 능력도 없는데 공부를 강요당해서 생기는 결과다. 아이들은 다 자기만의 발달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빠르고, 어떤 아이들은 늦다.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시간에 발달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제도화된 교육 시스템은 모든 아이들을 같은 시간에 같은 방식을 통해 같이 발달할 것을 주문한다. 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든 아이들은 '문제아'가 되버린다. 예전에 아이들이 다니던 서당을 생각해보자.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나이에 입학하고 졸업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글 공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부모는 서당에 아이를 맡기고 아이는 아이의 실력이나 재능만큼 자신의 배움을 앞서간다. 일정한 나이가 되어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몇달만에 천자문을 떼고, 어떤 아이들은 몇 년만에 그 과정을 마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속도대로 배웠다.
오늘날 우리들의 아이들의 삶에는 가슴뛰는 모험도 없고, 마음껏 탐험할 자연도 없다. 안전한 골목이나 공터도 없고 아니 그보다도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며 자신의 흥미와 재미를 스스로 찾아낼 그런 기회조차 없다. 세상은 점점 더 어린 아이들에게 일찍 읽기와 쓰기를 배울것을 강요하고 있다. 아이가 학교나 유치원에 다니는 시간, 등 하교 하고 숙제하는 시간,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고 학원에 다니는 시간, 텔레비젼을 보고 게임을 하는 모든 시간을 다 빼고 나서 아이 스스로 무언가를 탐색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성찰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이런 시간들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의 시간을 최대한 간섭하고, 프로그래밍하는데 매달린다.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가장 큰 불행이다. 아이들은 어릴때부터 온갖 프로그램을 통해 길러진다. 이런 프로그램에 들지 못하는 아이들은 점점더 방치되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는 행동반경은 점점 좁아지고 어른들이 개입하는 프로그램과 상업적인 시설들의 확장속에서 모든 것들이 패키지로 아이들에게 제공된다.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내면에서 넘쳐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무엇하나 제 마음대로 펼치고, 뒹굴고, 시도하고, 발산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 넘치는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배울 수 있을까. 더구나 점점 더 부모들의 육아 스타일은 아이들의 세계를 통제하고 개입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부언가 해내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욕구와 리듬을 스스로 관리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는 모험과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 프로그래밍된 유전기와 자기절제력을 상실한 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급증하는 현상 간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확신한다. 아이들의 거칠고 산만하고 공격적인 행동은 일종의 조난신호, 즉 도움이 필요하고 자기를 구원해달라는 요청이다. 욕구불만과 정서불안의 표출이지 질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사 에쉬턴 워너는 자신의 저서에서 모든 아이에게 창조적 분출구와 파괴적 분출구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창조적 분출구가 충분히 열려져 있지 않으면 아이의 에너지는 파괴적 분출구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제도권 교육은 아이들의 창조성을 표출할 수 있는 시간들이 계속 정규 과정에서 밀어내고 있다. 국, 영, 수만 강조되는 교육은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체육등의 활동을 점점 더 축소하거나 없애고 있다. 오직 주요과목의 성적 올리기에만 급급해 하고 있지 않은가. 상위 5%의 아이들을 위해서 나머지 95%가 희생되고 있는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서로를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고, 이탈하고,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거듭 말한다. 아이가 보이는 모든 행동은 아이의 표현임을 말이다. 아이는 가만히 있지 않는 것으로, 반항하거나 파괴하고, 남을 괴롭히고, 말을 듣지 않는 것으로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부모와 사회에게 말을 하고 있다. 그 말에 귀 기울이고, 그 말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서 쉽게 약물을 먹이는 방법을 택한 미국 사회는 점점더 심해지는 청소년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고, 해결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노력이 따르는 것을 거부한 대가로 더 심한 문제에 마딱뜨리는 어리석음을 이젠 우리가 따르고 있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직후부터 시작되는 부모와의 건강한 유대감조차 이 시대의 산업화된 출산환경은 아기가 태어나자 마자 의료진의 손에 옮겨져 일사불란한 처치를 겪고 신생아실에 격리되는 것으로 막고 있다. 이런 시스템으로 많은 엄마들이 아기와의 유대감 형성에 두번째로 중요한 모유수유에 실패하고 있다. 육아보다 경제적 활동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자 마자 시설에 맡겨져 충분한 부모와의 신체적 접촉을 누리지 못하고 있고 너무 어린 나이에 각종 단체와 프로그램속에 들어가면서 스스로 탐험하고 탐색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아이에게 가해지는 불행한 폭력이다. 이런 환경속에서 아이들의 에너지는 늘 갇혀있다. 그 에너지가 행동으로 감정으로 분출하는 것 조차 장애로 여기고 약물을 투여해버리는 무시무시한 사회, 우리가 진정 염려해야 하는 것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에게 가하고 있는 이런 폭력들이다.
문제의 원인을 아이 하나에게 돌려버리는 해결은 참 쉽다. 그렇게 하면 거기에 얽혀있는 우리 어른의 책임도 면할 수 있다.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보다 적응하는 아이들이 더 많지 않은가. 그러니까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문제라고 보면 마음 편하다. 그 아이들만 해결하면 되니까..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쉽지 않지만 아이들이 자기만의 방식대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작은것 하나라도 어른의 개입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사회가 손 쉬운 방법으로 우리 아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려고 하면 최선을 다해 막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노력 해야 한다.
당신의 아이가 얌전하고 반듯하게 자라는 아이라도 이 책은 유용하다. ADHD 증세가 없다 하더라도, 그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 부모라도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정말이지 돈이 있다면 모든 부모들의 손에 한권씩 들려주고 싶을 만큼 많은 지혜와 통찰이 들어 있는 책이다.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야 할 일곱살이지만 여전히 쓰기와 셈하기에는 관심없고 종일 뒹굴거리며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는 필규를 보면서 가끔 생겼던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는데 이 책에서 큰 용기와 배움을 얻었다. 아이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거나, 답답하고, 걱정되는 모든 부모들에게 크리스와 그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성장은 커다란 감동과 배움으로 다가갈 것이다. 늘 좋은 책을 만드는 "민들레"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런 책이 진정한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하는 상업화된 출판계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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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아내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점점 산만하고 거칠며 자기밖에 모른단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어지고 자기중심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들. 낯선 장소에 풀어놓은 새끼고양이처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부산스럽다. 어린이집을 누비고 다니면서 자기 입맛에 맞는 일만 골라서 한다. 온 세상이 자기 차지인 양 뻔뻔하게 굴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아이들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에 걸렸다고 한다.
ADHD는 여러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양극화된 논쟁의 한 극단에는 ADHD라는 질병이 존재한다고 믿는 주류 교육학자와 아동심리학자, 소아과 전문의, 뇌과학자, 학부모 들이 있다. 이들이 볼 때 지나치게 충동적이거나, 지나치게 산만하거나, 지나치게 고집이 세거나, 지나치게 충동적이거나, 지나치게 인내심이 없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지나치게 공격적인 아이들은 유전으로 추정되는 뇌의 생화학적 불균형이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의 결과로 뇌는 스스로의 활동, 예컨대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충동을 제어하는 기능을 가능하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진다. 따라서 각성제를 복용하면 신경전달물질을 내보내는 뇌의 관제센터가 깨어남으로써 아이가 더 고분고분해지고 집중력도 향상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남자아이들의 약 15-20%가 학교에서의 행동이 문제가 되어 리탈린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메틸페니데이트나 그 비슷한 약물을 복용하는데, 복용을 시작하는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미국의학협회지」2002년 2월호에 실린 조사결과에 따르면, 1991년에서 1995년까지 만 두 살과 네 살 아이에게 리틸린을 처방하는 건수가 300%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것은 자본과 국가의 적극 개입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방법은 의심의 여지없이 생체심리학적 약물치료일 것이다. 하지만 약물치료를 택함으로써 치러야 하는 비용은 어떤가?
ADHD 처방약은 매우 독하기 때문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를테면 두통, 식욕부진, 신경과민, 심장마비 등을 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뇌 크기를 영구적으로 축소시킬 수 있다. 아울러 아이에게 약물을 먹이는 것은 아이가 자신의 충동을 다스리고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는 법을 배울 만한 생물학적 능력이 없다는 최종선고를 내린 것과 진배없다. 이렇게 약물요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아이의 삶에서 찾아야 할 문제의 또 다른 원인들이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가 보기에 주의력이 부족한 학생들 대부분이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진짜 문제인데 말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결핍된 것은 ‘주의력’이 아니라 ‘관심’이고, 약점을 파고들기보다 장점을 키워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것은 실제 경험을 이론과 접목하고 있다는 데 있다.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꼬리표를 달거나 정신과 감정을 조절하는 약물을 투여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것이다. 다니던 유치원 원장이 ADHD 검진을 권유하며 다른 유치원을 알아보라고 하여 프리스쿨에 오게 된 윌리엄, 리탈린을 먹고 교실에서 죽은 듯 널브러져 있던 열 살배기 데미안, 일 년 넘게 리탈린을 복용하다 프리스쿨로 전학을 온 브라이언 들은 학생 개개인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프리스쿨에서 비로소 ADHD의 꼬리표를 떼어 내고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는다. ADHD에 대한 주류의 반응이 아닌 이 시각은 프리스쿨의 핵심 원칙으로 바라보면 당연한 결과다.
1. 모든 아이들은 자신만의 계발 과정이 따로 있다. 프리스쿨에서는 학생이 세 살에 글을 깨우치든 열 살에 글을 깨우치든 중요하지 않다. 아이마다 각기 다른 것을 각기 다른 시기에 배울 준비가 된다. 2. 학교는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공동체여야 한다. 아이들도 이 공동체를 이끌어나가는 데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며, 가능한 한 서로 간의 의견 차이를 자기들끼리 조율할 수 있도록 격려 받아야 한다. 진정한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모두를 포용하며, 각 개인에게 전체의 안녕을 믿고 맡긴다. 경쟁보다는 협동을 더 소중히 여기며, 누구도 소외되거나 낙오되지 않게 한다. 3. 학교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아이의 정서적 건강을 최우선시 한다. “머리는 언제나 마음을 따른다.” 4. 모든 아이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어루만져주는 손길이 필요하다. 세상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특수아라는 냉정한 부류보다는 특별한 존재라는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15 - 16쪽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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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은 주의력결핍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빠의 관심 결핍, 흥미진진한 학습 환경의 결핍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산만하다고 꾸짖기보다는 관심과 사랑으로 감싸며 학습환경의 중요성을 이 책을 통해서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이해하고 받아주지 못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되며 많은걸 알게 되었습니다. 꼭 한번 읽어볼만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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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조응즈/ 민들레/2009 근대적인 의미의 교육이 가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더 들어가자면 종이와 인쇄술의 발전이 가장 큰 공로자라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그 책 중에서도 근대적인 의무 교육을 받기 시작한 세대라면 일생 피할 수 없는 책이 있으니 바로 교과서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때 부터 이른바 대중적인 교육이 시작되었죠. 교과서에 의한, 교과서에 맞춘, 교과서에 따른... 그리고 그 교과 과정에서 쳐지게 되면 다들 아동바동 전전긍긍 하게 됩니다.
사실 의학적으로는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야 비로서 성인의 뇌가 완성이 되구요, 그 이전의 뇌 발달 사항은 천차만별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뇌과학에 대해 무지했던 지라 아이의 뇌가 3세 이전에 거의 결정된다고 보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속속 발표되고 있죠. 어떤 아이는 좀 일찍 발달하고 어떤 아이는 늦을 뿐입니다. 따라서 5살 까지는 천재 같던 아이가 10살이 지나면서 평범해지고, 10살까지 글을 못 읽던 아이가 나중에는 언어학자가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지은이는 미국의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오랫동안 선생님을 한 사람입니다. 미국 사회라는 것이 아직까지도 모든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긴 하지만 대중 매체를 통해 여러가지 불안 요소가 많은 사회라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높은 이혼율, 마약, 총기 사건, 인종 차별 등등... 불안한 환경에서 불안한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은 그만큼 상처받기 쉽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개한 아이들도 대부분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 학습장애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고 리탈린 같은 향정신성 약에 노출되기도 해서 오히려 더 해결점에서 멀어지게 된 경우입니다. 그리고 대안학교에서 놀이 같은 공부로 점차 다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지은이는 애정과 사랑을 담뿍 담은 문체로 글을 쓰고 있지만, 정말 보통 사람이라면 잘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극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애정과 사랑이 너무 지나쳐서 아이에게 너 좋으라고 시킨다는 이유로 너무 일찍 부터 공부를 시켜서 이런 문제를 일으키고 또 어떤 부모는 아이를 너무 방치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기 까지 해서 문제를 일으키지요. 어떻게 보면 지은이의 말대로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획일화된 제도의 문제이고, 또한 어른들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료 급식도 좋지만, 이런 가족의 일이라는 이유로 가정 폭력이나 무관심에 방치된 아이들에게 좀더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 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싶은 생각도 들구요. 어쨌거나 어린이는 우리사회의 미래니까요. ^^ 여러 생각이 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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