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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라는 함민복 시인의 글들 역시.. 죄다~ 일가친척인 것 같다. 하나의 제목 아래, 연관이 있는 듯 없는 듯한 글들이 줄줄이 이어지다 끝내는 하나의 이야기로 마무리 지어지는 그의 글을 읽고 있자니... 이 사람은 천상~ 글쟁이구나~싶었다. 마치 공처럼 이리 저리 대중없이 막 튀어오르던 글들이 끝으로 갈수록 모아지고 다듬어져 그의 생각을 콕 찝어 이야기한다. 새삼.. 그의 마음에서, 머리에서, 손으로 나오는 그의 글재주가 참으로 부럽다. 나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며 괜히 샘낸다.ㅋ 참으로 그럴 수 있는데 말이다..^;;;ㅋ
읽다 말다 읽다 말다 하며 근 일 년 가까이 읽고 말았는데.. 그 긴~ 시간 타박않고, 재촉않고, 빌려주고 기다려 준 친구가 무척 고맙다. 덕분에 좋은 책, 좋은 사람, 좋은 곳을 두루 알게 되었다.
p.107 어머니에게서 나에게로 건너온 것은 무엇이고 나에게서 어머니에게로 건너간 것들은 무엇일까. 어머니는 내 육체의 전생이고, 나는 어머니 육체의 내생이다. 그러니까 어머니도 살아 있고 나도 살아 있다. 어머니가 죽어 나로 부활해 나는 어머니가 된 게 아닐까?
p.138 "막걸리가 뭔 안주가 필요 있나. 술로서 완벽하지 못하고 부족한 술에나 안주를 곁들이는 것이지." "그렇지요, 형님. 이 마지막 남은 풋고추는 제가 안주 할게요." "어, 이 사람 보게. 막걸리는 무거워서 아랫사람한테 따를 때도 두 손으로 따라야 하는 술이여. 예의 바른 아니, 예의 가르치는 막걸리 앞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여." 음식과 술의 경계를 넘는, 우리 연배들에게는 술의 첫 경험을 허락해주었던, 막걸리를 먹으면 대화도 덩달아 털털해지고 순해진다. 나는 그게 좋다.
p.191 나물들을 무쳐놓고 밥을 먹었다. 나물들은 향기로웠다. 나물을 씹다 멈췄다. 울컥 감정이 솟구쳤다. 기름과 깨소금. 고향 인근 어머니 방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음식을 싸주셨다. 나는 먹을 게 수두룩하다고 하며 안 가져간다고 했다. 소리를 버럭 지르며 가방에서 음식물들을 꺼내놓기도 했다. 그러고나면 맘이 아파, 가지고 오던 기름과 깨소금. 기름과 깨소금으로 무친 나물을 먹다가 어머니가 떠올라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상에 팔꿈치를 대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음식의 맛을 떠올리며 만드는 음식들. 아, 내가 음식의 맛을 분석해보는 기준에 어머니의 입맛이 이미 들어 있던 것이다. 맛에도 유전인자가 있다.
p.194 꿩이 내달은 길은 고라니 길이 될 수 있고 고라니 길은 사람 길이 될 수 있다. 사람이 걸어 다니던 길은 큰 차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막 꿩이 낸 길은 길의 새싹인가. 길들은 진화와 퇴화를 반복하며 서로 만난다. 길끼리 만나지 않는 길은 존재할 수 없다. 길 중에, 섬[島]인 길은 없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p.274 현실. 외모 성형은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다. 그러나 욕망에 사로잡힌 마음 성형은 잘 되지 않는 시대다. 아니, 마음 성형은 해서 뭐하냐고 핀잔 듣는 시대다. 반성만 하며 살면 되었지 실천은 뭔 얼어죽을 실천이냐고, 촌스럽게 아마추어같이 왜 그러냐고 웃음가마리가 되는 시대다. 이 시대의 구성원인 나는, 죽을 때 분명 깨닫게 될 것이다. 이 · 렇 · 게 · 사 · 는 · 게 · 아 · 니 · 었 · 는 ·데, 라고. 그렇다면, 죽음만이 마음을 성형할 수 있단 말인가? 슬프다.
p.298 그렇게 조심조심 살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 놀러온, 내가 살던 옛동네 동생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했을 때 그가 던진 말 한마디가 나를 후려쳤다. "괜잖시다. 다, 사람 살아가는 소리 아니꺄. 사람 소리인데, 뭘 그러시꺄." 사람 살아가는 소리. 사람 소리라. 그 말은 쪼잔한 내 맘보를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나는 옆방에 아이가 없어서 시끄럽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여겼다. 싸움하지 않는 이웃을 만난 것만도 축복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었다. 이 얼마나 좀팽이 같은 심사인가. 아이 우는 소리, 싸우는 소리 다 사람 살아가는 소리라고 생각하면 못 받아들이고 못 껴안을 게 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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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점에서 책을 고를때 너무 읽고 싶은것이 많아 ![]()
내가 20살때 경대뒷골목에서 시골에서 온 친구집에 잘때다. 자취하는 친구가 밤늦게 연탄불을 간 모양이었다. 새벽에 소변이 하고 싶어 깬 나는 머리가 아팠다. 걸어서 화장실을 가려고 방문열고 나오다 부억에서 쓰러져 기어서 마당까지 가서는 주인집 사람들을 안나오는 목소리로 불러 친구를 병원으로 실어 보낸 적이 있었다. 난 동치미 국물로 넘겼지만 얼마나 무서운지 그뒤론 내 친구는 내 엄마의 부름으로 우리집에서 살았다. 이 책을 이런 40대 50대의 추억의 쪼가리 들이 많다. ![]() 보통의 사람들은 고향을 물으면 전북 군산입니다. 아니면, 경남 입니다. 이렇게 지명만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 지역이 명사르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곳의 유적이나, 특징을 그려볼수 있게하는 성품을 지녔다. 이책을 읽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 단원을 읽고는 생각에 빠지고 감상에 젖었다 빠져 나와야 하니 자연 시간이 많이 걸릴수밖에... 집이 내 움직임의 합삼점이라는 표현. 정말 시인이 길래 이런 표현이 나오나 보다. 이 책 한권이면 지은의 삶과 성품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알수있다. 더불어 나의 과거를 되 짚어보는 시간을 가질수 있다. 특히, 4~50대분들은 꼭 읽고 마음만이라도 고향으로 그리고 추억으로 돌아 가보는 시간을 가져??겐 정말 귀한 시간을 준 길들은 다 일가 친척이다. 이책이 고맙다. 내 고향은 "내고향 남쪽바다 그 푸른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라는 가고파 기념비가 있는 경남 항구도시 마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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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첫 산문집을 읽고 나서 자가용 트렁크에 라면 박스와 쌀가마니, 반찬거리를 가득 싣고 찾아가고 싶었다. 숫기 없는 두 사내가 만나면 처음에는 서먹하고 우물쭈물하겠지만 찾아온 사연을 들어보면 분명 노을 지는 바닷가 개펄로 안내할 것 같았다. 이야기는 길어지고 서로의 마음은 따뜻하게 차오르겠지. 그러나 시인이 책을 내면 곧바로 사서 읽거나 시인에 대한 기사를 뒤적이며 만남을 미루어왔다. 그런데 최근에 시인이 부쩍 가깝게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만나는 시간이 가까워진 것일까. 시인이 이러저러한 곳에서 강의를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마음만 먹으면 참석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이거니와 초청 단체도 익숙하다.
시인의 책을 읽으면 시인의 마음결이 얼마나 곱고 여린지 인간의 성선설을 믿게 된다. 이번 산문집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첫 이야기부터 그렇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전화를 걸어오는 동생이 있단다. 주례를 섰던 동생. 동생의 간곡한 부탁으로 주례를 서게 된 시인은 백화점에 가 거금 사십만 원을 지불하고 양복 한 벌도 샀다. 손을 떨며 예식장에 두 시간 전에 도착해 결혼식 두 건을 보았다. 식순과 주례자의 시선 처리를 공부할 목적으로. 예식 시간이 다가와 주머니에 챙겨온 넥타이를 꺼내들고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아 맸다.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이 쓴 주례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딱 맞는 주례사. 오랜 결혼 생활을 한 사람이 경험에서 나온 것을 쓴 것 같다. 주례사 제목은 ‘밥상을 들 때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두 사람에게.’
굴렁쇠를 훔쳐 엿장수 집에 갔는데 아이들 마음이 다치지 않게 점잖게 타일러주던 엿장수 이야기(「굴렁쇠」), 산골로 너무 깊이 이사를 하게 되어 이삿짐 차 기사에게 계약한 액수보다 돈을 더 얹어주려고 하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산속까지 들어온 사람에게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야박하게 거리나 따지며 운임을 더 받을 수 없다는 기사 이야기(「이사」) 등은 감동적인 이웃들의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다. 이번 산문집은 ‘길들은 진화와 퇴화를 반복하며 서로 만난다. 길끼리 만나지 않는 길은 존재할 수 없다. 길 중에 섬(島)인 길은 없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전등사에서 길을 생각하다」)라고 쓰고 있지만 실상 사람들은 다 일가친척임을 쓰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눈물샘을 적시는 감동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지의 힘」에 나오는 똥차 끄는 사람 이야기는 하하하 한참을 웃게 한다. 수거한 분뇨를 다 버리고 나면 바닥에 찌꺼기가 남는다. 그 찌꺼기를 버릴 때 나무 작대기로 헤쳐 본다. 그러면 거기서 오만 잡동사니들이 다 나오는데 어느 날 반지 하나를 주웠다. 마침 부인 생일이고 선물 살 돈도 없고 사준 적도 없고 해서 반지를 깨끗하게 닦았다. 반지를 선물했더니 너무 좋아하는 부인.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부인이 쌀 씻을 때 그 반지가 유난히 반짝인다. 그래서 밥할 때만이라도 좀 빼고 할 수 없냐고 부탁하니까 부인 왈, 당신이 사준 반지 죽을 때까지 빼지 않겠다고 한다. 거기다가 부부 사이가 더 좋아져서 잠잘 때 반지 낀 손으로 남자의 중요 부위를 덥석 잡고 잔단다.
시인이 강화도에 정착한 까닭도 짐작할 수 있는 글이 있어 반갑다. 시인의 고향은 충북 중원군. 내륙 지방에서 태어났는데 바다가 있는 강화도에 정착한 것이 궁금했다. 그런데 「물고기」를 읽으면 시인이 강화도에 정착한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의 어린 시절 별명은 어부였다. 맨손으로 물고기를 잘 움켰거니와 맨손으로 잡기 힘든 피라미도 너끈히 잡았다. 학교에 등교하지 않으면 급우들은 고기 잡는 곳으로 찾으러 왔다. 지금도 물고기 꿈을 꾸면 기분이 좋고 간혹 복권도 산다는 시인. 그러고 보면 같은 충북에서 태어난 나는 7년 동안 동해안 바닷가에서 살았고 별명도 동해바다라고 쓴다. 그러니 시인은 강화도의 시인일 수밖에 없겠다. 앞으로도 계속 그곳에서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글들로 많은 사람들에게 성선설을 믿게 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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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사는 시인, 아직 결혼 안하고 홀로 사는 시인, 가난하고 착한 삶을 보여주는 시인.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시 한 편 발표하면 대중가요 작사가나 작곡가만큼 수입이 생겼으면 좋겠다. '가난한 시인'이라는 말을 더 이상 안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좀 아팠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싶어도 아픈 건 아픈 것이다. 내 삶이 아니어도, 내가 아는 분이 아니어도, 좀 미안하고 부끄럽고, 서글펐다. 독자가 이러할진대 작가는 어떠하랴. 글을 써 주시는 작가가 고맙기만 했다.
시인이 쓴 산문집을 읽을 때 좋은 점이 있다. 가락이 산문에도 살아있는 것이다. 읽다 보면 저절로 가락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내용은 다소 서글퍼도 글 속에 담긴 가락 때문에 약간 즐거워질 것이다. 시인들의 모든 산문이 이러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또 작가가 고맙다.
덧붙이는 말 이 책의 작가에 대해서는 시집으로 통해 알고 있는 게 전부이다. 작가가 강화도에 살고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블로그 이웃인 '마리에띠'님과 '온리원'님이 내내 생각났다. 게다가 책 속에 작가가 어머님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그 글을 읽다 보니 최근에 어머님을 여읜 마리에띠님이 저절로 떠올라서 글이 더 슬퍼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 책은 또 잊지 못할 책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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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도 거의 지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업무 차 창녕에 위치해 있는 노인요양소에 들렸습니다. 떠나기 전 수녀님의 안내를 받아 할머님들의 잠자리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시간이어선지 거동이 불편하신 아흔을 훌쩍 넘긴 할머님 한 분만이 홀로 침대에 누워계셨습니다.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눈동자가 참 맑으신 분이구나 생각하는 찰나, 수녀님께서 할머니께 말을 건넸습니다. “할머니, 누구 생각하세요?” “...” “할머니, 조금만 혼자 계세요. 손님 배웅하고, 금방 다시 올게요.” “...” 할머니는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혼자 계신 할머니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데 수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도 젊은 시절에는 글도 쓰고, 책도 읽으셨을 텐데 지금 모습에서는 옛날 모습을 찾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 이 말을 듣는 순간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나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젊었던 시절을 떠올릴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하게 될 상황이 떠올라 허전하고 허탈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만 예외가 적용되는 법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시간의 법칙이니 억울할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창녕에서 이름 모를 할머님 한 분을 뵙고 온 후 한동안 마음은 더없이 공허했지만 삶에 대한 의욕은 점점 더 커지는 감정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가 함민복의 에세이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2009.10.1 현대문학)》을 읽게 되었습니다. 함민복의 시 〈그늘학습〉, 〈선천성 그리움〉 등을 좋아했던 터라, 그의 에세이집이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읽으면서 창녕에서 뵈었던 할머님 생각이 더 깊어져갔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도 간절해졌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 책이 지나간 옛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사랑했던 감정을 되살아나게 하고, 그래서 잊고 싶었던 아픔도 생각나게 만듭니다. 작가의 추억이 나의 추억과 같지 않지만, 다른 추억을 통해 비슷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에, 작가가 느끼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어서 실성한 사람처럼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게 됩니다. 사담이지만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읽으면서 발견한 〈오이냉국〉은 오래 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기뻤습니다. 이 글이 함민복 시인의 글인 줄도 몰랐었거든요.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는 떠나가는 사람 뒷모습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쓸쓸한 이 겨울에 꼭 어울리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아픈 추억도 정겹게 느껴지는 것과 같이, 이 책은 쓸쓸하고 추운 겨울밤을 훈훈하게 덥혀 줄 책이기도 합니다. 깊어져가는 겨울, 늦기 전에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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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솔직히 독특한 제목이란 인상을 받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음미하지는 못하였다. 강화도 시인으로 유명하다는 '함민복'이란 작가! 글쎄, 내겐 생소할 뿐이었다. 그런데, 칭찬일색인 추천평을 읽다보니, 왠지 꼭 읽어야지 하는 마음, 읽지 않으면 후회로 남아 이 가을, 뭔가 채워지지 않을 공허감에 몸부림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서면 마음을 간질거렸다. 와우~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속 이야기는 훈훈하기 그지 없었다. 정말로 따뜻한 이야기들로, 찬바람 속, 마음만큼은 포근하게 감쌀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면 너무 과장일까!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묘약이 책 속에 숨어있다.
함민복 그는 강화도 시인으로 유명하단다. 또한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 연재되어 사랑을 받았던 에세이집이란다. 그것도 <눈물은 왜 짠가>와 <미안한 마음>에 이어 세번째 에세이집! 그런데 처음으로 접하는 이야기지만, 소박하면서도 정이 넘치고 따뜻한 이야기가 가득 펼쳐진다. 읽고 나면, 함께 나눠보고 싶고, 칭찬하게 되는 이야기로, 시인 특유의 맛깔스런 언어의 유희에 자꾸만 읽는 속도가 뎌뎌진다. 어느 형이 보내준 호박 하나를 책상에 올려놓고 한겨울을 나면서, 그는 형의 땀방울이 호박이 되어 우리 마을 청년들 가슴으로 이사온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마음속으로 이사를 온 것(이사 26쪽)이라 표현하는데, 뭉클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역시 감동을 주면서, 스스로를 뒤돌아보게 된다. 그의 표현대로 눈이 심장보다 더 뜨거워지는(109쪽 나는 내 맘만 믿고)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작가를 비롯하여 제목도 낯설었다. 그럼에도 이야기 속 예쁜 표현들에 반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훈훈한 이야기들로 작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소탈하게 털어놓는 그의 추억, 관계 속 인생 이야기는 내게 작지만 큰 위안들 주었다. 어느 때보다 마음이 배부르고 든든한 느낌으로 가득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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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저 달장아찌 누가 박아놓았나
맘 마중 나오는 달정거장 길이 있어 어머니도 혼자 살고 나도 혼자 산다 혼자 사는 달 시린 바다 저 달장아찌 누가 박아놓았나 -110쪽에서-
인생을 길이라 생각했다. 가기 쉽고 힘들지 않은 평탄한 길도 있지만 산세 험난한 길도 있고, 거친 돌들이 박혀 발이 아픈 길도 있다. 힘들게 올라가지만 정상에서 느끼는 시원한 바람과 풍경이란.... 인생이란 그런 길과 같다고 생각했다.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은 순수하다. 만나보지 못한 분이지만 사슴처럼 맑은 눈망울을 하고 계실 것 같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친구를 위해 작품을 읽어준 날 답례로 술 한 잔 받아주는 친구들. 시를 쓰지 못한 날은 그냥 가버린다는 친구들. 그 친구들에게 데모를 한다고 냄비를 엎어놓고 두 손 든 친구들과의 삼겹살파티. 웃음이 나왔다. 그 이야기 끝에 좀 더 세월이 흘러 스러져간 추억을 붙잡고 쓰고 있을 시인의 아픈 마음에 괜시리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어머님의 묘 앞에서 어린 시절 어머님이 싸주신 도시락을 떠올리고 제대로 해주지도 못했다며 마음 아파하시는 어머님 생각에 얼른 내려왔다는 글에서도 그리움이 뚝뚝 떨어졌다.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고. 시대를 함께 걱정하는 마음에 내 마음도 보태고싶어졌다. 봄이 허리 펴는 소리에 꽃들이 피어난 봄날의 이야기도, 미처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지만 그의 친구 이야기에 같이 웃고, 눈시울 적시고, 인터넷에도 없는 낙지 잡는 법을 읽으며 너털 웃음 날리고 그가 배운 이야기에 공감을 하고, 군사정권 시대와 촛불 집회, 유년의 어린 시절과 그가 떠나온 길 이야기, 그리고 그 끝에 조롱조롱 달린 이슬같은 시 한 편들....
이야기마다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어떤 부분은 웃기고 어떤 부분은 슬프고, 전체적으로 그리움이 가득하게 퍼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길 위에서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는 좀 애절하게 들린다. 지난 추억을 뒤적이는 길섶의 이야기에 시가 있어 더 좋고 느낌이 살아난다. 이렇듯 아름다운 슬픔을 노래하는 이가 있어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픈 길에서도 어린 시절의 길에서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글. 내가 읽은 그의 글은 이랬다.......
집 속에 살던 내가 집을 떠나면 집이 내 속에 들어와 산다. -119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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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한파에 몸을 바짝 옴츠렸던 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었다. 에세이집이니 첫 장을 넘기는 마음은 가벼웠고, 상쾌한 아침에 읽는 글이니 즐거웠다. 그러나 한 자 한 자 읽어갈수록 마음은 더 심란해졌다. 그리곤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뜨거운 무엇이 치밀어 올랐다. 문장의 힘을 새삼 되새겼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다음(Daum)에서 두어 번 그의 에세이를 읽었을 땐 이 정도의 느낌을 받지 못했었다. 눈대중으로만 읽어서였을까. 아니면 화면으로 보는 글과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읽는 글의 차이였을까. 강화도 시인 함민복의 에세이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현대문학, 2009년)는 이렇게 나의 첫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동안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품은 적이 있었다. 결국 말뿐인 이 생각의 사치는 강화도 시인, 함민복의 글 앞에서 한껏 부풀다 터진 풍선처럼 스르르 수그러들었다. 누군들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몸 속 깊은 곳에 배인 감춰진 욕망을 배설하지 않는 한 이상적인 삶에 대한 기대는 한갓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설픈 몸짓으로 뻘 한가운데에서 낙지를 잡아보겠다고 허우적거리는 시인의 모습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촌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추억은 현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마흔이 넘은 노총각을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대하는 애틋한 마음은 부족함이 없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근본이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면서도 끝내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모순을, 하루에 몇 번밖에 오지 않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세상과 만나는 시인의 발품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욕심 없이 사는 삶의 모습은 어느 한 순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걸어왔던 삶의 발자취 속에서 소리 없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라 여기는 삶의 여유가 그걸 말해준다. 나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내 삶의 발자취 속에서 나는 어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조용히 뒤돌아본다.
by 꽃다지, 2009년 11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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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사람도 아닌 길에서 일가친척이라고 연관을 짓는 작가가 시인이라는 것 외에는 잘 알지 못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냄새가 풍긴다고 할까? 그저 막연하게 정이 많은 사람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시인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라는 것에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의 글은 '떨림'이라는 책에서 잠깐 보았는데 거기서 옛애인의 전화에 가슴떨려 하던 시인의 순박함에 세상의 때라고는 전혀 묻지 않았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강화도에 살아서 강화도시인이라고 불리우는 함민복시인. 몇 년전에 지인들과 강화도에 1박 2일 간 적이 있다. 석모도가는 길에 배를 타고 가면서 새우깡을 뿌리며 내내 달라붙는 까마귀들이 정겨웠고 갯벌에 스멀스멀 기어나니는 게도 눈에 많이 띄어 신기했다. 마니산을 비롯하여 낮은 산도 많고 섬속의 넓은 평야와 염전 등 드넓은 자연이 마치 섬 아닌 곳에 와있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계단위로 이어진 보문사의 눈썹바위 마애불상에서 108배를 드리는 지인을 기다리며 비록 불자는 아니었지만 나름 숙연해지는 감상에 젖기도 했었다. 강화도는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비참한 역사와 관련이 많은 지역이라 지나간 아픈 과거의 흔적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번 방문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강화도라는 말만 들어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눈물은 왜 짠가'라는 시로 잘 알려진 이웃아저씨 같은 푸근하고 정감있는 그야말로 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별로 특별하지도 않고 내세울 것 없지만 그의 글 속에는 어린시절의 아련했던 추억이 소담스럽게 묻어나고, 가난하고 소탈하지만 섬세한 부분도 없지 않고, 지극히 시골스러움 삶 의 이면에는 왠지 모를 혼자사는 남자의 고독감마저 스물거린다.
자신의 요즘 살아가는 일기도 있고, 젊은날의 아픈 회고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사색이 담겨있기도 하다. 특히 강화도와 함께하는 그의 잔잔한 살아가는 이야기들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 그 자체로 다가온다. 결혼도 하지 않은 사십대의 총각이 지인의 주례를 서기 위하여 2시간이나 먼저 결혼식장에 도착해 예행연습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 내륙에 살아 바다를 보고 한눈에 반해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버리고 바다와 함께 살며 틈틈이 시를 쓰면서 낙지를 잡는 한량같은 사람이기도 하다. 병이 든 어머니에게서 산소 호흡기를 산소코뚜레라 비유하며 자기자신의 존재도 모르면서 타인을 어찌 알랴 하면서 어머니와의 같이 살았던 행복한 순간들을 기억하며 어머니의 회복을 기원하는 그의 마음과 집에 대한 단상에서 자신의 소유로 된 집한해없이 임대로 사는 집에게 자신의 적나라한 사적인 비밀을 들켜버린다는 수줍은 고백을 하는 시인.
봄을 보내면서는 '부드러우면서도 톡 토리지며 시샘도 하는 바람과 화려하면서도 따듯함을 잃지 않는 꽃과 달뜬 새소리 수놓은 봄편지와 안녕하며 지나간 세월을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버스는 가다 서다 이 길을 반복하며 지나가듯이 우리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등사의 대웅보전의 전설로 유명한 이야기중 전등사 추녀를 받치고 있는 나부상에 대한 잘못된 유래도 허균의 '사찰100 미 100선'이라는 책을 근거로 여인상은 나부상이 아닌 외호신 중의 하나인 나찰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어느 작가는 '잠언이 들어있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강화도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지만 개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길들은 다 이어지고 진화와 퇴화의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서로 만나기에 일가친척일 수밖에 없다는 그의 논리가 정리의 계절인 가을에 한번쯤 자신의 지나온 인생길을 생각하며 주변인들을 좀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나브로 찾아온 초겨울 날씨에 참으로 따듯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을 읽을 수 있음에 작은 행복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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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인생을 공부하기에 좋은 계절이라는 시인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것들 중에 "詩"가 차지하는 부분도 크다.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詩心'이 있다고 한다. 누구나 시를 쓸수있다.
올해 여름에 인터넷 다음에 글을 연재할때 업데이트날을 챙겨가며 읽었었다. 눈은 떴으나 말은 못하는 시인의 어머니에게 문병을 온 일가친척들이 하나같이 "내가 누구유" "나 몰라유? 청주 동상" 이 상황을 찬찬 히 바라보던 시인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p.81 어머니는 늘 대답을 못했고 질문자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누구라고 문제의 정답을 밝혔다. 없나를 질문으로 던졌고 자신 속에는 분명 어머니가 있어 자신은 어머니와 무슨 관계로 존재한다고 밝혔다.
어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썼던 시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의 의미가 잘 표현되었다.
[나의 여집합인 나] 아버지가 죽고
시인이 쓴 에세이집은 한문장 한문장이 시라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