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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은 아직 내게 익숙하지 않은 작가다. 중단편 <아주 사소한 중독>으로 처음 만났고, 하나의 단편을 더 만난게 전부였다. 환영(幻影)이라 뜻의 곡두와 묘한 표지가 왠지 끌렸다. 소설은 곡두라는 제목처럼 잡히는 것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10편의 소설 중 <곡두>, <자두 >, 상쾌한 밤>은 연작소설과 같은 흐름을 갖었고, 다른 소설 <환대>, <구름 한 점 - 환대2>도 마찬가지였다. 함정임의 소설속 인물들은 정착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여기 저기 삶의 언저리를 떠돌거나, 다시 정착할 어딘가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들이었다.
<곡두>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동거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자의 어머니가 결혼을 허락하면서 여자는 결혼식에 함께 들어가야 할 사람이라며, 노모가 수소문한 이복 오빠의 흔적을 따라 다닌다. 그러나 도착한 곳마다 그는 이미 떠난 상태였고, 사람들의 말을 통해 오빠의 일상을 듣든다. 한 번도 만나적 없는 오빠의 존재가, 그녀에겐 곡두가 아니었을까.
<곡두>가 여자의 이야기라면, <자두>는 남자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곡두>보다 구체적인 상황이다. 남자와 여자는 둘 다 이혼경력이 있으며 여자에겐 아이도 있다. 남자는 결혼과 함께 이사를 하려고 집을 내놓는다. 화가였던 전처의 그림이 거실에 걸려있는 집은 쉽게 팔리지 않고, 남자는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새로게 펼쳐질 삶을 생각한다.
<상쾌한 밤>은 여자의 오빠 이야기라 하겠다. IMF로 인해 떠돌이가 된 그, 결혼을 앞두고 자신을 만나려 하는 이복 여동생, 상견례 참석 소식을 전하는 아내. 위장 이혼인 아내가 완전한 결별을 통보할까 그는 두려워한다. 단편은 뚜렸한 결말 없이 흘러간다.
<환대>, <구름 한 점 - 환대2>는 죽음으로 인한 부재, 이별을 말한다. <환대>는 여동생이 모시고 있던,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큰 딸 안서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상한다. 자신을 유독 아꼈던 아버지와 불화가 시작되었던 시절,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 빈자리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 안서는 생각한다. <구름 한 점- 환대2>는 안서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우연하게 근처 요양소에서 자신을 딸로 착각하는 노인 달자씨를 통해 안서는 돌아가신 아버지,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곡두>,<자두>,<상쾌한 밤>이 난해한 꿈의 느낌이 강한 반면에 두 편의 소설은 소설보다는 일상의 기록처럼 다가온다. 꾸며지지 않은 우리네 모습처럼 담담하다.
함정임의 <곡두>는 특정 지명이 곳곳에 등장한다. 인상깊었던 곳은 <환대>, <구름 한 점 - 환대2>에서 등장하는 추리문학관, 달맞이언덕, 송정, 오륙도, 등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나머지 소설 <달콤한 눈물>,<행인>, <킬리만자로의 눈[目]>,<백야>에서도 목포, 슬라이고의 이니스프리 호수섬,아프리카 등 불쑥 불쑥 길을 떠나고, 떠도는 군상들이다. 지친 일상을 달래기 위한 휴식이나, 여행을 위한 떠남이 아니라, 정착할 이유를 찾기 못해, 부유하는 삶이다. 하여, 사랑하는 연인, 가족이 있어도 그들은 모두 쓸쓸하고 외롭다.
<곡두>인 양, 함정임의 소설은 낯설고 어렵다. 존재하나, 잡히지 않는, 환상과 환영의 세계, 그 곳에 함정임의 소설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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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10년 전 즈음인 것 같은데 그녀가 뜬금없이 <곡두>라는 책을 사달랬다. 작가도 책 제목도 들어본 적 없었지만 책 선물은 가격 면에서 부담 없이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것 같아 내심 기뻤다. 그런데 나중에 읽어 보니 어떻더냐고 지그시 물었더니 영 탐탁지 않은 반응이 돌아 왔었다. ‘칫, 뭐야, 기껏 사다주었더니. 쩝.’ 나도 영 불만스러웠지만 그만큼 별로였나 보다 했다. 그렇게 이 책은 책장 뒷칸에 꽂혀 눈에 띄지 않게 방치되었으며 무관심 속에 서서히 그 존재감을 잃어만 갔던 거다.
어차피 책장이란 공간은 살생부가 살아 숨 쉬는 곳이기에 넣고 빼고 하다 보니 그때서야 수줍게 얼굴을 드러냈던 이 책. 한참 지났고 정보도 전혀 없지만 지금 내가 읽는다면 어떨까? 표제작 ‘곡두’에서는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녀가 전처와 이혼하고 혼자 살던 그를 만나 재혼하게 될 상황에 다다른 이야기이다. 인륜지대사,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대신에 식장에 손을 잡고 들어갈 대타가 필요했다. 그 사람은 배다른 오빠 하린 뿐이었다, 여태 왕래없이 일면식 없던 오빠를 지금에서야 찾는단 말인가.
오빠 하린이 있다는 통영의 어느 식당을 찾아 간 그녀는 오빠를 만나지 못하고 그의 흔적 만을 뒤쫓아 연명예술촌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지두화를 그린다는 오빠와 겨우 전화 연 결이 되었지만 여동생이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하린이 수화기에서 ‘오빠’라 고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에 기겁한 것이나, ‘오빠’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는 그녀 의 상반된 증언이 등장하는 장면이 꽤 인상적이다. 실재와 억압된 무의식이 빚어낸 환상 이야말로 작가의 현실 인식이라고 하였다. 비록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단편소설이었지만.
사실상 몇 편은 묶여서 연작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주인공들은 역마살 낀 것 마냥 정처 없 이 여행을 다니며 방황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그 와중에 익숙했던 것들과의 작별과 상실이 모티브가 되어서 책장을 덮고 나면 좀 우울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녀가 썩 내켜하 지 않았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것 같고 지금이라도 읽었으니 도리는 다 한 것 같다. 덧붙이자면 작가의 후기보다 더 독한 평론만 쏙 뺐더라면 다 좋았을 게다. 나를 넘 힘들게 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