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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문은 작년인가 제작년에 읽었었다.(난 원래 날짜개념이 심하게 없는편이다)
제목 그대로 좁은문으로 들어가듯이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읽으면서 내내 가슴
을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답답하고 꽉막히고 숨막힌듯한 그런것들.
1947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읽기전에도 제목은 알고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것이다. 작가는 모른다하더래도.. 앙드레 지드는 본인 자체가 이
해 받기 힘든 특이한 캐릭터이다. 어떤 소설속 주인공보다도 특이한 그런 사람.
자기가 죽도록 쫓아다녀서 외사촌 누이와 결혼에 성공했지만 그녀와는 정신적인
사랑만하고는 정작 자신은 다른 여자와 관계하여 아이까지 낳는다. 거기다 나중
엔 동성애까지... 성적 취향이 무지 제멋대로인듯. 내가 앙드레 지드의 작품을
접한건 좁은문과 전원 교향곡 두편이지만 그 두편만을 놓고 봤을땐 부인을 통해
이런 작품들이 탄생한게 아닌가 싶다. 전원교향곡은 표지의 그림만을 보고 그냥
잔잔하고 평화로운 내용이러니 생각을 했다. 눈먼 소녀를 목사가 집에 데려오면
서 마치 관찰일기를 쓰듯 목사의 일기로 내용을 이끌어나간다.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목사와 함께 생활하면서 사랑을 느끼고 그로인해 행복해하지만 눈이 보이
게 되자 비로소 진실을 보게 되고 목숨을 버린다. 목사가 자신의 아들과 눈먼 소
녀를 놓고 갈등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종교적으로 일기
를 적지만 그 글엔 심한 질투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소녀의 죽
음과 아들의 개종으로 이어지고 목사는 더이상 기도할 수 조차 없는 상태가 된
다.
정말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것처럼 그 일기속 인물들이 실존인물들 같은 착각
이 들었다. 눈먼 소녀와 목사가 만났을때 난 해피엔딩을 꿈꾸웠지만 결국은 비극
이었다. 그렇기에 더 오래 오래 생각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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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사랑하지 않음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이유로든지 이별의 이유는 결국 사랑을 지속할 만큼 사랑하지 않아서이고, 그건 이별을 고한 사람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시에 수 만번을 사랑한다 말해도 한 마디 이별을 고하는 말에는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림을 알았다. 아마 내가 사랑을 믿지 않은 건 그 때부터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제롬을 숨막히게 하는 사촌누이 알리사. 제롬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이유로 동생인 쥘리에트도 제롬을 사랑하기에 동생을 위하여, 또 제롬보다 나이가 많아서, 또 우리 둘 각자가 상대방을 잊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서로 더 진정으로 가깝다고(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롬보다 나이가 많아서라는 이유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알리사다운 생각이 아니고 나머지 두 가지는...모르겠다. 난 결국 모든 게, 결국 제롬과의 사랑을 이루지 않은 것은 그 만큼 제롬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고 제롬도 그걸 헤치울만큼 능력이 안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알리사는 그녀의 방식대로 제롬을 충분히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은 것이였고, 그녀도 그것이 마음의 짐이 된 채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나의 이러한 생각들은 사랑이 '결혼'으로 결실을 맺는다는 현실적인 입장에서이다. 하지만 그것을 잠시 접어두고 이 [좁은 문]을 읽었다. 즉, 앞의 제롬과 알리사의 신랄한 사랑의 관계에 관한 글은 모두 키보드 밑으로 묻어버려야한다. 알리사가 끝까지 제롬과 결혼을 하지 않으면서도 제롬 곁에서 있고 싶었던 마음이 애잔하다. 하나님을 둘러 싼 확고한 믿음과 그 안에서 탄생한 알리사만의 행복. 무엇이 그토록 알리사에게 제롬을 향한 사랑을 희생시키게 했는지, 그녀의 마음을 따라갈 수는 없는 심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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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 없는 좁은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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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문’은 성경에 나오는 아래 구절때문에 관심이 있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길도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고 생명에 이르는 문은 작고 길도 좁아 찾는 사람이 적다.” 연애 소설이면서 종교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 여주인공 알리사의 심리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였다. 남주인공 제롬이 알리사를 사랑하는데, 알리사의 동생도 제롬을 사랑하는 구도는 드라마적인 요소이고 통속적인 결말을 예측하게도 하는데 후반부에 다르게 전개된다. 그 다름은 종교적인 이유에 의한 것으로 결국 알리사는 제롬보다는 좁은문을 택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동감할 수도 있고 아니면 반감이 갈 수도 있는 호불호가 강한 스토리이다. 좁은문이 앙드레 지드의 대표작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원교향곡이 더 재미를 준다. 한 목사가 우연히 맹인 여아를 구제하고 가르치면서 서로가 서서히 사랑하게 된다. 그 목사에게는 가족도 있고, 자녀들도 있으니 구도상으로는 불륜 드라마이지만 통속적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목사의 아들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데 맹인인 그녀는 자신을 돌보는 목사를 사랑하고 누가 맹인과 결혼하겠냐며 목사의 아들을 단념시킨다. 목사는 자신의 사랑이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 아님을 성경의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면서 스스로 변명한다. 우연스럽게도, 여주인공이 수술에 의해 광명을 찾게된다. 처음 보는 세상의 광명은 생각보다 아름답지만 인간의 모습은 슬프다. 특히 자신의 존재로 인해 그늘진 목사 부인의 모습과 눈을 떠보니 자신이 상상했던 목사의 모습을 자신이 거부했던 목사의 아들에게서 보게 된다. 비탄적인 결말이 될 수 밖에... 소설의 구도는 재미있지만 현대 소설로 쓰였다면 여주인공의 수술장면이 비과학적이라고 지적받았을지 모른다. 맹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시신경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예를들어 얀구이식을 받아도 볼 수 없다고 들었다. 하여간 그런 비과학성은 애교로 봐줄만큼 소설의 내용은 괜찮다. 3/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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