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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라고 하면 저속하고 천박한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여가 시간까지 침투하여 자본화하려는 현대 사회의 거대한 의지는 말초적 자극을 수단으로 하는 오늘날 문화를 탄생시켰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박영욱의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170쪽을 펼쳐보라. '이 시대에 순수 예술을 고집하는 사람은 정신 분열증 환자이다.'라는 초록색의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싫든 좋든 대중문화도 우리의 삶과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엄연한 하나의 문화이다.
170쪽에서 인용된 문장은 영국 팝아트의 1세대에 속하는화가 리처드 해밀턴의 말이다. 그가 보기에 순수 예술가란 화실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는 순간에만 순수 예술적 전통과 가치 기준을 철저하게 따를 뿐, 밖에 나온 순간 외제 자동차를 타고 비싼 브랜드의 옷을 입는 이율 배반적인 인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만화와 거의 구별이 안가는 작품을 그린 리히텐슈타인이나 깡통 같은 것을 그린 바 있는 엔디 워홀 등은 이 시대에 맞는 엄연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예술의 형식은 많은 변천을 겪어 왔다. 종교적 가치가 최우선으로 고려되던 중세 시대의 예술은 '이데아'적인 엄격한 틀을 강조했다. 그러다가 인간의 의식이 점점 해방이 되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신의 의지를 찾으려는 시도를 넘어 인간 본연의 의식을 담기위한 노력들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예술사는 그리게 된다. 작품의 내재적 특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외연적인 사회적 경향이 예술 안에 반영이 되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며, 우리의 현실적 문화이다.
문제는 내용이다. 얼마나 대중문화가 '대중'이라는 말이 붙는 다른 여타 용어와 다르게 '문화'라는 이름에 걸맞는 의미를 담는가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인간의 욕망에 대입되는 제논의 역설(아킬레우스는 결코 먼저 떠난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철학적 역설)을 '$<>a'로 나타내었다. '$'라는 주체는 절대 'a'라는 욕망의 대상을 완전히 획득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욕망이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 그것을 덧없게 만드는 욕망의 또 다른 부분인 '잉여욕망'이 욕망의 추구를 환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바로 여기에 예술의 의미가 있다. 억압된 '환상'의 세계를 나타낼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각박해져 가는 현대 사회에 대중 문화는 이러한 '예술'의 역할을 충실히 할 필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인상깊은구절] p.201-210 언어학자 방브니스트는 서사 내용을 가진 말이나 작품이 전언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가에 따라 '담론'과 '이야기'로 구분한다. (중략) 말하자면 과학은 '담론'이 아닌 '이야기'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객관적 성격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 마치 거울 단계의 어린아이가 거울 속의 이미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듯 '주체'라는 기호를 자신과 상상적으로 동일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말하자면 자신이 아닌 '이미지' 혹은 '기호'를 자신으로 오인하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바로 그러한 허구적인 동일시의 과정을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중략) 기호학적 주체의 탄생은 발화 과정에서 두 개의 상이한 주체가 이질성을 파괴하고 봉합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즉 문장 속의 나와 현실의 나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중략) 카자 실버만은 일상적인 담론과 달리 영화나 소설의 경우에는 발화하는 주체와 발화의 주체 이외에 제3의 주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략) (표에서)발화하는 주체: 카메라, 편지, 구성, 녹음... 발화(속)의 주체: 주인공 발화된 주체: 관객철학으로> |
| 나는 개인적으로 커트 코베인과 고흐를 좋아한다. 코베인의 음악은 정돈되지 않은 것 같지만 뭔지 모르게 사람을 잡아당기는 흡인력과 카리스마가 있는 것 같다. 고흐 역시 거칠고 정돈되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은 나의 시선을 한꺼번에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제껏 나는 왜 코베인의 음악과 고흐의 그림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작 몰랐다. 이 책은 바로 나 자신도 모르면서 내가 좋아했던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소위 고급예술이라는 것을 좋아하긴 하면서도 대중음악이나 문화가 천시되는 이유에 대해서 평소에 납득할 수가 없었다. 왜 대중음악이 천박한 것인지, 또 왜 그런 편견이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항상 불만을 가졌지만, 뭐 마땅히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대중문화가 고급문화에 비해서 뭐가 천박하냐?", "그렇지 않다"는 식의 선언적이고 교과서적인 대답만 반복하는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더이상 새로운 것들을 배우지 못했다. 미디어 서평에서도 한결같이 지적했던데, 정말 이 책은 대중문화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시도인 것 같았다. 철학적인 방법론과 그것을 구체적인 대중문화에 적용한 것, 그리고 대중음악에 대한 피상적인 서술이나 가사 분석이 아닌 음악 이론을 통한 방법론적 접근. 이런 것들이 이 책의 장점인 것 같다. 비록 음표나 음악이론 화성학 등 조금 생소한 내용들이 이 책에 들어있어서 가끔씩 읽는데 당황스럽긴 했지만, 오히려 많은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는 철학 전공자라는데 정말 철학은 모든 학문을 포괄하나보다. 피상적인 설명이 아니라 음악, 미술, 영화 이론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쉽게 풀고 있는 것이 돋보인다. 특히 음악에 대한 설명은 내가 지금껏 그 분야에 대해서 궁금해 하면서도 접할수 없는 것들이라서 더욱 좋다. 저자는 소쉬르, 바르트 등의 기호학을 음악이론에 적용하고 있으며, 나티에라는 음악이론가도 소개하고 있다. 이 부분이 특히 내 관심을 끌었다. 어쨋든 대중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철학을 대중문화 혹은 예술 분석에 어떻게 적용할까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리고 대중음악 전문가들도 반드시 한번쯤은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지금까지 이런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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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는 내 전공 중 하나지만,
사실 학교에서 많이 배우지도 못했었고,
학교에서 수업 하나 들었다고 다 알기에도
참 넓고도 넓은 영역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자기 스스로 대중문화의 여러 영역에 대한 소양을 쌓지 않는다면
결코 탁월해질 수 없는 학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전공 이외에도 영화, 음악, 미술 등에
꾸준히 소양을 쌓아온 현직 교수다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라는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들에게 천차 만별의 반응을 들었다는데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하고 들었을 학생들에게
딱히 정답이라는 걸 제시해 줄 수 없는 학문이라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대중문화와 철학을 연결해보려는 시도는 좋고,
나름대로 저자의 학문 및 문화적 소양도 넓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탁 와닿을 정도의 무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수업으로 들었으면 재밌었을 것 같은데
[인상깊은구절] 물론 그런 주장에 대해 미니멀 아트를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만 해석하는 것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니멀 아트 역시 사실상 이러한 가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형태를 단순화하려는 미니멀 아티스트들의 시도는 점차 형태를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추상화하는 경향으로 귀결되어 갔다. 결국 자신들이 극복하고자 한 가식적인 예술의 덫에 스스로 빠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보면 미니멀 아트는 추상주의를 극복했다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추상주의를 제시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p46 칸트와 커트코베인 마르크스주의적 태도의 장점은 작품의 의미를 사회 구조적 관점에서 조망한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에 있다. 즉 그들은 작품의 모든 내용을 계급 이해관계의 관점으로 환원시키는 '환원주의적' 입장을 견지한다. 작품 자체가 어떤 형식으로 얼마만큼의 완성도를 이루고 있는가에 대한 내적 완성도는 그들의 1차적인 관심사가 아니다. 어떤 작품이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지니고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면, 그러한 예술적 완성도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교묘해진 이데올로기적 포장으로 비난받는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은, 그것이 얼마만큼의 내적 완성도를 갖추었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의도로 생산했는가에 있다. -p79 부르디외와 70년대 포크송, 그리고 서태지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예술이 근원적인 욕망의 실상을 은폐하고 대신 환상으로 채운다는 이중적 성격이다. 그러한 이중적 성격은 예술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현실 생활에 필요한 자아의 활동도 이러한 이중적 측면이 있고, 심지어 꿈도 마찬가지이다. 꿈이 아무리 무의식의 세계라고 하지만 꿈 역시 욕망의 본래 모습에 접근할 수 없다. 꿈에서도 검열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근친상간을 하는 꿈을 꿀 때 결정적인 순간 잠이 깨는 것은, 꿈이 욕망의 실상에 어느 정도 접근은 허용하지만 그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가 있어서이다. 하지만 예술은 보다 실상으로부터 훨씬 먼 곳까지의 접근도 허용한다. 예술에서 현실의 자아는 실상으로부터 너무 떨어져서 아예 실상의 흔적조차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p123, 지젝, 혹은 프로이트와 팝아트 팝 아티스트들은 현대 사회에서 이런 순수 예술은 그 자체가 일종의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대중 매체가 모든 것을 장악해버린 이 시대에 순수 예술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새악한다. 현대 사회에서 대중 매체의 힘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매체가 갖는 힘을 독립시켜 그것을 예술의 테마로 설정하고 있는 매체 예술의 등장이 이 사실을 잘 드러낸다. 그러므로 대중 매체에 의한 대중 예술의 시대에 대중 예술의 가치를 부정하고 자신의 세계로 파고드는 순수 예술가의 노력이 해밀턴에게는 이율 배반적인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171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팝아트 그들은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표현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대중문화의 맥락보다는 순수 예술의 맥락에 두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만든 예술적 이미지가 대중문화 속에 편입됨으로써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활용해 그것을 순수 예술의 맥락에 집어넣음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팝아트를 접하는 대중들은 오히려 그것을 보면서 어리둥절한 당혹감을 느낀다. -p180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팝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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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렵게 보여서 그렇지, 사실 철학으로 대중문화를 읽으려는 시도는 계속되어왔다. 무엇보다 철학 자체가 삶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데서 출발한 학문이기 때문에 철학을 통해 대중문화를 읽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문화라는 것이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고 즐기는 방식이라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그것이 전개되어 가는 데에는 분명히 어떤 방식이나 논리 즉 철학이 관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박영욱의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는 바로 그런 오기에서 시작한 책이다. 철학이 폼 잡으며 경험론이나 합리론, 혹은 실존주의 등을 이야기할 때 박영욱은 그것만이 철학의 전부는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전면에 너바나를 내세운다. 너바나를 대중문화로 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너바나는 분명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하나의 문화였고 거기에는 고전주의의 대표인 클래식을 뛰어넘는 철학이 존재하고 있다.
책 서두에 썼지만, 아마 박영욱은 그것을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통해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1. 대중문화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철학에 바탕을 둔 대중문학의 논의가 아닌 단순히 철학을 대중문학에 끼워 맞추는 소극적인 입장을 버려야한다. 2. 철학이 순수하고 고고한 이미지를 깨면서 범속한 대중문화에 다가설 때 보다 알찬 논의가 이루어 질 수 있다. 아마 이 두 가지가 박영욱의 생각일 것이다.
박영욱의 그 생각에는 100% 동의하지만, 솔직히 책 자체는 좀 투덜거릴만큼 지루했다. 그의 논증 방식이 음악적 소양이 없는 사람에게는 매우 지루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도 이런 용감한 글쓰기를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도 상상하는 능력을, 꿈 꾸는 능력을, 창조하는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기에. [인상깊은구절] 하지만 환상 활동으로서의 예술과 놀이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어린아이들은 놀이를 할 때 자신을 감추지 않는다. 즉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반면 어른들은 놀이를 하지 않는다. 자라면서 놀이는 유치하고 창피한 행동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인데, 진짜 이유는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이 놀이를 대체한다.증명>철학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