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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나는 시를 쓸 줄 모르지만 가령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평생 아침이 젤 쓸쓸하다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빠져나가는 게 그렇게 힘들다 시를 쓸 줄 모르기 때문에 나는 한낮으로 가려고 오늘 아침에도 갑옷을 찾아 입는다 하얀 모시식탁보 깔린 식탁 위 등 푸른 생선이 되고 싶다 시인다운 아침을 맞는 것은 내 평생의 꿈이었다 삭은 관절들과 굽은 어깨뼈가 쇠단추 많이 달린 갑옷에 눌려 내려앉는 소리가 난다 창 너머 창날 같은 햇빛 속엔 유성이 가뭇없이 지고 우리집 젊은 개는 여전히 짖지 않는다 장마전선은 아직도 먼 남녘에서 요지부동이다 어린 왕자가 산다는 혹성612호에 세상에 이미 이름을 얻은 소설가가 시인을 꿈꾸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지만 박범신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게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작가에게 있어 글이란 이를테면 옷과 마찬가지인 셈이고, 소설이란 그 중에서도 ‘촘촘한 논리의 그물망’으로 짠 산문에 속하는데, 박범신 작가는 그 옷을 ‘전사의 갑옷’이라고 부르고 있다. 쇠단추 많이 달린 이 갑옷은 죽음으로부터 삶을 지켜내는 데는 효과적이겠지만, 너무 무겁다. 그래도 소설가는 습관처럼 아침마다 이 무거운 갑옷을 찾아 입는다. 그 무게에 횡경막이 눌려 숨쉬기조차 곤란할 날도 있고, 목까지 올려 채운 쇠지퍼 탓에 비지땀을 흘리는 날도 있지만,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생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직업인으로서의 소설가의 한낮이란 이처럼 철저히 산문적인 시간인 것이다. 지루하고 한편으로는 치열한 그 전투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가끔씩 고개를 들어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았을 테인데, 무장해제된 그 순간에조차 햇빛은 다만 창날처럼 날카롭게 그를 찔렀던 모양이다. 그가 햇빛을 오래 가려줄 장마전선을 기다리고, 비 내리는 저녁을 소망하고, 햇빛에 번쩍거리는 갑옷을 벗고 내 몸에 꼭 맞는 어둠의 면 내의로 갈아입는 한밤을 기다리는 게 바로 이런 까닭이겠다. 그에게 평생 아침이 제일 쓸쓸했던 것도 바로 이런 탓이었겠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그가 환한 대낮의 산문적 소설 쓰기를 마침내 밀쳐냈을 때, 홀연히 시가 그를 찾아왔다. 이 시집에 실린 시편들의 상당수가 아마도 그렇게 해서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모시식탁보 깔린 수수하고 정결한 저녁 식탁에 오른 등 푸른 생선처럼 담백하면서도 맛깔 난 시들이 여럿 눈에 띄어 미덥다. 박범신 작가는 ‘나는 여전히 시를 쓸 줄 모르지만’이라고 위 시를 끝맺고 있지만, 아래 시들을 읽어보면 그게 지나친 겸손이라는 걸 누구나 알게 된다. 자, 그 싱싱한 등 푸른 생선들을 가시 발라 가면서 천천히 맛보시라. 사랑 아무도 순간을 버리면 영원을 얻는다고 믿지 않네 꿀벌들은 오늘도 은방울꽃 작은 향수에 대롱을 박고 황홀한 긴꼬리제비나비는 산초나무 어둔 가슴에 새똥 같은 알을 낳는다 누가 새똥 속에 영혼의 각성이 깃들여 있는 줄 알겠는가 당신은 영원으로부터 와 내 영혼의 뜨락에 순간의 불씨를 놓고 지금 사랑이라고 부르네 프시케(Psyche)라고 등이 가슴보다 어두운 당신 (38쪽) 중심 흔들리는 나무 흔들리게 놔두지 못하고 받침대 세운 날 고등어 한 마리가 토막난 눈으로 사기접시에서 나를 보고 있다 토막난 동해가 흔들린다 (45쪽) 대학생 딸이 고독할 때 우리 아빠가 작가라는 걸 들은 어떤 후배가 묻는 거예요 혹시 언니 아빠가 젊은 신부 너를 거기 구름 젖은 길가에 두고 떠날 때 나는 매번 류머티즘에 걸린다 나의 젊은 신부여 너는 내 모든 관절에 위치해 있다 (62쪽) 소음 개가 달을 보고 짖는 것은 심심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세상을 보고 짖는 것은 무섭기 때문인데 그대는 오늘도 개보다 많이 짖는다 (87쪽) 불의 나라 특별시에선 오늘도 천삼백만 그들이 꽁무니에 불 하나씩 매달고 앗 뜨거 앗 뜨거 일렬종대로 도망치고 있다 장관이다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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