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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2] 삼국통일, 이제는 초치검이 필요하다.
"[문무2] 삼국통일, 이제는 초치검이 필요하다." 내용보기
전편 [문무1]에서, 황산벌에 도착한 유신은 백제군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고 계백과 얘기를 한다. 이미 기울어진 왕실보다는, 핍박에 지친 백성들을 생각하고 일통 삼한의 원대한 이상을 향해 같이 하자고.. 그러나 계백은 거절한다. 백제의 녹을 먹고 있는 신하로써 왕실이 위급하다 하여 버릴수는 없다고, 이미 처자식의 삶을 거두고 이곳에 왔노라고… 이 대목에서 나는 계백의 마음
"[문무2] 삼국통일, 이제는 초치검이 필요하다." 내용보기

전편 [문무1]에서, 황산벌에 도착한 유신은 백제군이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고 계백과 얘기를 한다. 이미 기울어진 왕실보다는, 핍박에 지친 백성들을 생각하고 일통 삼한의 원대한 이상을 향해 같이 하자고.. 그러나 계백은 거절한다. 백제의 녹을 먹고 있는 신하로써 왕실이 위급하다 하여 버릴수는 없다고, 이미 처자식의 삶을 거두고 이곳에 왔노라고이 대목에서 나는 계백의 마음을 가늠해 본다. 신라가 당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유신의 설득에 계백이 호응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서..

 

신라군은 계백에 가로막혀 움직일수가 없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함을 느낀 흠순은 아들 반굴을 적지에 보낸다. 반굴이 백제군 4명과 싸우다, 3명을 죽이고 결국은 죽는다. 이를 본 품일이 관창을 내 보낸다. 관창이 나가서 싸우다 포로로 잡히고, 관창이 16살 어린 소년인 것을 안 계백은 돌려보낸다. 이에 관창이 다시 나가 싸우니, 계백은 눈물을 흘리며 관창의 목을 친다. 이를 본 신라군의 사기는 올라가고, 결국 백제는 그렇게 황산벌에서 무너진다. 당의 소정방과 함께 유신은 사비성을 함락 시키고, 웅진으로 도피했던 의자왕은 사비로 돌아와 항복을 한다. 소정방은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의 신하들을 포로로 잡아 당으로 돌아가고, 당황제 이치는 웅진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여 직접 통치하고자 한다.

 

이후 각지에서 백제부흥군이 일어나고, 이들은 웅진도독부를 비롯한 당나라 군사들을 공격하고, 백성들은 또다시 전란에 휩싸인다. 이에, 661년 춘추는 백제부흥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친정에 나선다. 그러나 지금의 익산에 이르러 미륵사 부근에서 야영을 하던중 고구려 연개소문이 보낸 자객 용척에게 살해된다. 이 책은 역사소설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자꾸 내가 알고 있던 역사와 다르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를 생각하곤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법민이 신라 30대 왕위에 오른다.

 

당황제 이치는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소정방으로 하여금 고구려를 치게 하고 신라에게 응원군을 요구한다. 문무는 유신과 함께 5만 군사를 일으켜 친정을 하지만 백제부흥군에게 길이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를 못하고, 그들만을 토벌한후 서라벌로 돌아온다. 평양성을 포위 공격하고 있던 소정방은 신라에 식량지원을 요청하고, 이에 신라는 유신으로 하여금 식량을 운반토록 한다. 유신은 고구려 깊숙이 들어가 소정방에게 식량을 지원하나, 소정방은 겨울 추위와 배고품을 이기지 못하고 철군한다. 유신은 철수길에 고구려군과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다. 문무왕의 백제유민에 대한 덕치는 탐라가 스스로 복속해오게 만들었고, 내사지성에 모여있던 백제부흥군 잔당들은 흠순이 토벌을 한다. 웅진도독부가 계속 공격을 받고 문무의 덕치에 불안을 느낀 당나라 황제 이치는 측천무후의 계략에 따라 백제의 왕자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삼아 옛 백제땅으로 보낸다. 고구려에서는 30여년간 실권을 휘두르던 연개소문이 유언을 남기고 사라지고, 권력은 나눠가진 형제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난다. 이에 당은 또다시 고구려 정벌군을 일으키고, 고구려 연정토가 문무에게 귀순한다.

 

어느날 왜에서 문무에게 밀사가 와서 서찰 하나를 전해준다. 대해인 이라는 사람의 서찰로 그는 왜 천황의 상징인 초치검을 취했다가 자신의 거사가 성공하면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왜의 실권을 쥐고 있는 중대형천황이 백제에서 건너간 백제계 인물임을 고려할 때 대해인이 연개소문 일거라고 확신한 문무는, 삼한일통후 당과의 일전을 생각할 때 왜와의 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의 청을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문무는 초치검을 취해오도록 승려 도행을 밀파하고, 도행은 왜의 황성에 잠입하여 초치검을 취해 달아난다. 해안가에 도착하여 배를타고 신라로 향했으나, 비바람에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해 결국 왜군들에게 잡혀 모진 고문끝에 죽음을 당한다. 끝내 문무가 보낸 밀사라는 비밀을 가슴속에 간직한채.. 이는 일본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668년 당나라는 신라군들의 용맹에 힘입어 평양성을 함락 시킨다. 당나라 장군 이적은 문무가 항복을 받기 위해 평양성에 도착도 하기 전 보장왕과 고구려 신하들, 그리고 고구려 유민들을 포로로 하여 당으로 돌아가고, 당황제 이치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고구려를 당나라의 변방으로 편입시킨다. 문무는 울분을 삼키며 훗날을 기약한다. 예나 지금이나 국제관계는 힘의 우위에 따라 결정된다는 냉혹한 진리를 다시 한번 느낄수 밖에 없다.

 

이제 백제도 망하고, 고구려도 망했다. 여기까지는 나도안다. 약간의 각색은 했겠지만 줄거리의 토대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문무는 어떤일을 할까? 죽어서 왜의침입을 막는 용이 되겠다고 동해안에 수장을 한걸로 알려진 문무대왕은 초치검과 어떤관계가 있을까? 3권을 빨리 읽고싶다.



k*****1 2009.11.04. 신고 공감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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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문무천황이 되다.
"문무왕, 문무천황이 되다." 내용보기
소설 <문무>는 한반도의 사건을 기준으로 하자면 김춘추가 혼인을 올려 일가를 이루던 시기부터 그가 무열왕으로 재임하고 문무왕을 거쳐 신문왕과 성왕에 이르는 꽤 오랜 시간을 다루고 있다. 내용 속에 포함된 신라의 중기의 왕부터 시작하자면 선덕과 진덕 여왕을 지나 신라 최초의 진골출신 왕이며 동시에 신라의 하대로 구분짓는 무열왕과 문무왕 그리고 신문왕과 성왕에 이르는
"문무왕, 문무천황이 되다." 내용보기

소설 <문무>는 한반도의 사건을 기준으로 하자면 김춘추가 혼인을 올려 일가를 이루던 시기부터 그가 무열왕으로 재임하고 문무왕을 거쳐 신문왕과 성왕에 이르는 꽤 오랜 시간을 다루고 있다. 내용 속에 포함된 신라의 중기의 왕부터 시작하자면 선덕과 진덕 여왕을 지나 신라 최초의 진골출신 왕이며 동시에 신라의 하대로 구분짓는 무열왕과 문무왕 그리고 신문왕과 성왕에 이르는 6왕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제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바로 그 사건, 그리고 많은 이들이 가설로 세우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시기에 집중된다. 바로 우리 역사의 문무왕과 일본의 문무천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과 신라, 문무왕 법민의 망명

신라는 삼한일통이라는 대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당의 힘을 빌리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삼국의 통일 이후 신라의 발목을 잡는 다소 복잡한 힘겨루기의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며, 역사는 이를 삼국통일의 과정에 독자성이 결여된 한계였다고 말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에는 그랬다.) 힘을 빌려준 자는 당연히 싸움의 전리품을 나누어 가지기를 바라게 되고, 그것이 하나된 신라를 위협하는 씨앗으로 남았다는 이야기이다. 문무왕의 고민은 바로 이 점에서 시작한다. 당의 계속되는 위협을 떨치기 위해 그들과의 힘겨루기를 지속해야했던 문무왕. 당연히 문무왕의 이런 행동이 곱게 보일리 없는 당은 문무왕 법민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게 되고 그를 제거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취하게 된 것이다. 문무왕 법민은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스스로 일본으로 망명할 것을 계획하고 그의 아들 정명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왕위를 물려받은 그의 아들 정명이 바로 신문왕이기도 하다.

 

문무왕, 문무천황이 되다.

<문무>의 세번째 이야기는 바로 이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신라 제 30대 왕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문무왕 법민이 당의 압박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하고 그곳에서 일본의 황태자가 되었으며, 훗날 제 42대 천황으로 기록된 문무천황과 동일인물이라는 바로 그 설을 소설로써 이어낸 것이다. 당의 압력에 의해 국왕의 자리에서 일생을 마치지 못하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채로 왜라고 불리우는 작은 섬나라로 망명와 오랜 시간을 숨죽인 신라의 제30대 왕 법민. 그가 처음부터 계획했던 은밀하고도 치밀한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마음과 어떤 심정으로 그 시간을 이겨내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담아낸 이야기인 것이다.

사실 혹은 환상.

소설 <문무>가 담고 있는 가설, 신라 제30대 왕이자 삼한일통을 이룩했던 문무왕이 일본의 제42대 천황인 문무천황과 동일인물이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역사속의 숨겨진 혹은 밝혀지지 않은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이다. 우리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본다면 조금은 유쾌하고 즐겁기까지 한 이야기. 하지만 일본의 국민들이 듣는다면 어딘지 모르게 분하고 말도 안된다고 치부해버릴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이 설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사실 그것은 이 책을 읽는 우리가 밝혀낼 부분은 아닐것이다. 재고의 여지가 있고 역사적으로 실증되어야할 가치가 있다면 언제든 어느나라의 역사학자에 의해서든 연구되고 기록되지 않겠는가? 다만,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 역사에 채 밝혀지지 않은 희미한 부분에는, 이렇게 엄청나고도 즐거운, 그리고 아름다운 사실 혹은 환상들이 남아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한번쯤 꿈꿔 볼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 아닐까?

t*******9 2009.11.06. 신고 공감 0 댓글 0